'순교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23 김대중 노무현 김수환, 민주주의 순교자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8)
  2. 2009.05.28 노무현과 손녀 사진들과 동영상, 감동의 파노라마 by 진리 탐구 탐진강 (190)


올해 2009년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슬픈 역사의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 민주주의 역사의 큰 별들이 하늘나라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큰 별들의 서거와 선종에 비통해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 만큼 그들의 삶이 주는 울림이 컸다는 반증입니다. 그 슬픔과 눈물은 국민들의 상실감을 바로미터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거목이자 큰 별이었습니다. 이들 3인의 서거는 '시대의 어른이 없다'는 상실감과 안타까움으로 국민들의 마음이 심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기고 간 유지와 의미는 그대로 남아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빛과 소금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난 1987년 6월은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폭발한 해입니다.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전두환 군사 독재가 호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하던 시기였습니다. 서슬퍼런 군사 통치 시대였지만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전국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놓아 '군사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를 외쳤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명동성당 모습(좌)과 2008년 서울시청 앞 촛불시위 장면

야만적인 군사 독재 정권의 탄압과 고문 그리고 대학생들의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국민들은 오직 민주주의를 원했습니다. 군사 정권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항쟁에 무력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무차별 무력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무장 전경들에 쫒겨 명동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명동성당을 완전 포위한 전경들은 당장 성당에 진입해 무력 진압에 나설 태세였습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은 절대 야만의 군대가 성당에 진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성지였습니다. 독재시절 언론은 정권의 꼭둑각시나 다름없었습니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폭도로 매도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이 죽은 시대에 진실을 알리는 노력은 계속 되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전실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군사정권의 앵무새가 된 방송과 신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현장에서 들려주는 진신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명동성당은 끝까지 독재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무력 진압이 거세질수록 더욱 항쟁의 기운이 불타올랐습니다. 수십만명이 서울의 종로와 시청 서울역 충무로 등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은 물론 심지어 제주에서도 민주화 항쟁이 매일 계속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행동하는 양심'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매일 군사정권의 전경들에 의해 시민들이 쓰러지고 붙잡혀가더라도 또 다른 사람들이 거리로 거리고 나섰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명동성당의 비장함으로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독재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항복했습니다. 시민들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민주주의 승리가 아닌 반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기만적인 군사독재의 일당들은 살아남아 권력을 연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명동성당이 민주주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독재정권의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는 김수환 추기경의 담대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탄압받는 국민들에 대한 종교적 신념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명동성당과 김수환 추기경이 없었다면 1987년의 민주화 항생은 꽃을 피우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언제나 고통받는 민주주의 역사 현장과 함께 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포기하지않고 거리에서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과 같이 실제 행동으로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방 안에 틀어박혀 마음 속으로만 생각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간절히 소망하고 그 열정을 바쳐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우리 앞에 희망의 햇살을 비추는 것입니다.

현대사의 큰 별 3인,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영원하다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습니다. 민주주의 성지 명동성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그를 애도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보호자였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민주주의 성지 순례와 같은 사람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 지난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역주행하는 반민주 시대의 정치적 타살이나 다름없는 일었습니다. 다시 사람사는 세상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이었습니다. 봉하마을은 민주주의 성지가 되었고 전국에서 자발적인 시민분향소가 만들어져 5백만명 이상의 추모객과 함께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생각하며 다짐을 했습니다.

김대중 전 태통령이 지난 8월 18일 서거했습니다. 인동초 김대중의 삶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습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과 박해 그리고 납치 감금 사형에 이르는 고난 속에서도 결코 불의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독재의 회유와 협박에 굴복해 변절한 사람들이 많지만 김대중은 언제나 올바른 한길을 갔습니다. 독재 절대군주에 굴복하지않고 죽음을 선택한 영국의 성인 토머스 모어의 세례명을 갖고 있는 김대중은 어쩌면 성인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김대중의 친필일기는 어쩌면 인생과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일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역사의 큰 별들이 나란히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큰 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순교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국민들은 연이은 황망함에 더 이상 슬퍼할 기운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3인의 순교자가 남긴 사람 사는 민주주의 세상, 사랑과 평화를 향한 나눔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큰 별이 된 3인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시대를 연 영웅 3인을 떠나보내는 추모의 눈물은 비통하면서도 한편으론 훈훈하고 경건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따뜻한 사랑과 나눔의 여운이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의 소중함이 함께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의 박애정신과 무한한 존경심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인자한 할아버지와 같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적인 형님 처럼 친근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든든한 큰 어른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3인의 서거 앞에서 슬픔과 함께 상실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이 땅을 사는 인동초와 같은 사람들 만이 남아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늘나라로 떠나는 순간까지도 남북화해와 평화,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양심이고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몫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영결식이 국장으로 거행되고 그는 이승을 떠나지만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동초가 모진 겨울을 이기고 끝내 꽃을 피우듯이 민주주의 역사도 그렇게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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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생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손녀에 대해 애틋하고 각별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손녀도 할어버지를 무척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손녀 딸의 이름은 노서은입니다. 장남인 노건호의 큰 딸입니다. 나이는 올해 6살. 귀여운 꼬마 아가씨.

노무현 대통령과 꼬마 아가씨는 늘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볼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 보다  할아버지의 서거에 슬퍼할 노서은 양. 아직 할아버지의 죽음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없을, 어린 꼬마 아가씨.
 
네티즌들은 귀여운 꼬마 아가씨에게 '노다지'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너무 천진난만하고 예쁜 노서은 양의 모습이 노다지와 같은 행복이 담겨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준 듯 합니다. 할아버지는 물론 이웃들에게 항상 행복을 선사하던 노다지 꼬마 아가씨.

그토록 사랑했던 손녀를 남겨두고 세상과 의절해야 했던 노무현. 누가 고인을 끊임없이 괴롭혔던가? 왜 작은 농촌에 살던 촌부를 못살게 굴었던가? 우리나라도 잘 사는 농촌을 만들고 싶다던 소박한 꿈을 누가 앗아갔는가? 비정하고 야비한 몰상식과 열등감을 가진 권부의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꼬마 아가씨 노서은 양과 할아버지 노무현의 다정하고 행복했던 여러 모습들을 소개해 봅니다.
꼬마 아가씨 노서은 양은 할아버지와 자전거 타는 것을 무척 좋아한 듯 합니다. 어둠이 내린 봉하마을을 노무현과 손녀가 지전거를 타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빨간 장화가 눈길을 붙잡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깬 꼬마아가씨를 차에서 안고 내린 후 손을 잡고 어딘가 나들이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가족들의 모습인 듯 합니다. 하품을 하는 꼬마 아가씨가 귀엽습니다.

손녀 딸을 태우고 봉하마을을 한바퀴 돌고있는 노무현 할아버지가 참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한 때 청와대 잔디밭에 앉아서 손녀와 행복한 장난을 치며 다정다감했던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과자를 주는 줄 알고 입을 벌리던 꼬마 아가씨. 할아버지가 그냥 과자를 먹어버리자 뾰루뚱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꼬마 아가씨 노서은 양은 할아버지의 무등을 타는 것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노서은 양이 할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얼마나 좋은지, 두 손을 높이 들고 활짝 웃고 있습니다. 너무도 예쁘고 귀여운 표정입니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노서은 양과 노무현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청와대 안을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무 그늘 밑으로 자전거가 달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입니다.  

할아버지 자전거에 타고 봉하마을의 어디론가 향하던, 꼬마 아가씨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허리 춤을 붙잡고 자전거를 타던 꼬마아가씨가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동네 가게에 들른 할아버지와 꼬마 아가씨. 할아버지는 쭈쭈바를 골라 행여 꼬마 아가씨의 손이 시릴까 정성껏 휴지로 싸서 먹기 좋게 해줍니다.

할아버지와 꼬마 아가씨는 함께 마을 가게를 자주 들렀나 봅니다. 할아버지와 꼬마 아가씨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추억의 장면들입니다. 농촌 마을의 촌부로 살고자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러자 세상은 농촌에 내려가 조용히 살고있는 노무현을 시기했습니다. 아니 열등감 많은 자들은 촌부의 삶 마저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은 죽지 않았습니다. 순교자는 죽지 않습니다.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영원한 대통령으로 살아있을 것입니다. 역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불멸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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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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