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0.15 미녀 해커 40년형 vs 여중생 성폭행 불구속...공지영이 분노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5)
  2. 2009.05.21 무릎팍, 허구연 송인득 명콤비와 야구감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12)
  3. 2009.05.13 간첩 혐의로 인도 감옥에 수감됐던 친구 탈출기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소설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이 트위터를 통해 분노를 터트렸습니다. 공지영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지적 장애인 소녀를 16명의 고등학생이 화장실에서 집단 성폭행 했는데 전원 불구속이랍니다. 이유는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다" 정말 이게 제정신으로 하는 짓일까요? 이 나라에서 딸 키울 수 있나요?"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최근 대전 경찰이 지적 장애인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한 혐의로 대전지역 고교생 16명을 불구속 입건한 것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우리 사회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우선 성폭행 사건은 이러 했습니다. A군을 비롯한 세 명의 고교생은 지난 5월 중순께 서구 둔산동 건물 남자화장실에서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된 B(15)양을 유인해 성폭행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A군은 자신의 학교 친구들에게 B양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뒤 6월 중순까지 한달여 동안 A군을 비롯 대전지역 4개 학교 고등학생 16명이 B양을 집단으로 성폭행하는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공지영, 트위터 통해 '이 나라에서 딸 키울 수 있나요?' 비판

                     공지영 작가는 지적 장애 소녀에 대한 집단 성폭행 범죄에 대해 분노했다

이번 사건은 고등학생 신분이지만 죄질이 악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찰은 16명 전원을 불구속 입건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냥 풀어준 것입니다. 그러한 솜방망이 처벌 이유에 대해 경찰은 "가해학생들이 미성년자인데다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고 폭력이 행사되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처분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의 해명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이 날 또 다른 해외 뉴스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은행계좌를 해킹해 한국 돈 기준으로 약 2450억원 사당의 금액을 훔치려고 모의한 미녀 해커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입니다. 이 여성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해커(World’s sexiest hacker)라는 제목으로 영문 신문 '더 선'에 소개가 됐습니다. 러시아 태생으로 뉴욕대학교에 재학중인 미모의 여대생이었습니다.

미국, 여성 해커 범죄에 최대 40년형 강력한 법집행과 비교돼

                  러시아 출신 여성 해커가 금융계좌를 훔치다 체포돼 최대 40년형을 받게 됐다

크리스티나 스베킨스카야(22)라는 이름의 이 여성 해커는 여러 사람의 계좌를 해킹해 돈을 훔치려다가 경찰에 발각돼 체포된 것입니다. 크리스티나 사용한 해킹수법은 무작위로 이메일을 보내 이를 클릭한 사용자의 PC에 악성코드를 침투시켜 금융게좌 비밀번호를 획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조 여권을 이용해 가짜 금융계좌에 돈을 입금해 숨겨뒀다는 것입니다.

이번 범죄는 제우스라는 이름의 트로이목마를 이용한 해킹기법으로 최근 유럽 금융권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악성코드가 사용된 것이 특징입니다. 제우스 트로이목마는 은행 계좌를 비롯한 금융정보를 쉽게 빼갈 수 있도록 설계된 악성코드인 것입니다. 경찰은 크리스티나 단독 범죄가 아니라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장애 여학생에 대한 강력 범죄에 가중 처벌이 필요한 이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번 해킹 범죄로 체포된 크리스티나에게는 유죄판결이 나면 최대 40년형이 받을 수 있는 중대 범죄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엄청난 실형이 예고되는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티나는 미녀 해커라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지난 7월 러시아 국적의 미녀 스파이 안나 채프먼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의 범죄는 단순 형이 아니라 최대 40년이라는 중형에 처한다는 것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장애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에 대해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지적 장애인 성폭행 사건 불구속과 미녀 해커의 범죄 40년형을 접하며 우리나라의 법집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가해 학생들이 피해자가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악용해 악질적 범행을 저질렀는데 아무도 구속되지 않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지요. 피해 여중생은 성추행에 대한 지적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의로 보는 것은 경찰의 직무유기라고 강한 비판을 했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장애 아동이나 여학생에 대한 성폭행 범죄가 무죄 판결로 둔갑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최근 청주 지방법원은 지적장애인 10대 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31살 김 모 씨에게 피해자와 합의가 됐다는 이유로 집행유예형을 선고했습니다. 지난 4월에도 지적 장애 여중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피해자 진술을 믿기 힘들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한 바도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악질 범죄는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강력한 처벌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판결을 한 것은 사회적 큰 문제입니다.

사회적 약자이자 지적 판단능력마저 없는 장애 여학생에 대한 성폭행 범죄는 오히려 가중 처벌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해 범죄자들은 피해 여학생이 지적장애가 있는 것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그 범죄행위가 여러 사람에 의해 장기간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당장 구속수사를 해야 하는 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엄청난 만행이 벌어졌는데 아무도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공정 사회가 아닙니다. 미국 해커 범죄의 사례와 같이 사회적 악영향을 미치는 범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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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허구연의 야구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송인득 캐스터와의 사연은 옛날 야구 중계를 들었던 추억과 함께 허구연이 왜 송인득을 그리워 했는지, 그리고 시청자들은 왜 송인득의 빈자리가 커보이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송인득, 어서 일어나서 중계하러 가야지. 그러니 힘을 내.”
허구연이 송인득 캐스터가 숨을 거두기 두 시간 전 쯤에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대고 한 말이었습니다. 허구연과 송인득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2007년 4월 7일까지 25년간 호흡을 맞춰 온 환상의 야구 중계 명콤비였습니다.

허구연은 이 날 방송에서 " 임종장면도 지켜봤다 " " 지금도 어떤 때는 송인득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르던 동생인데, 술 담배를 멀리 하라고 했는데… "  " 지금도 방 안에서 송인득과 함게 찍은 사진을 보면서 '바보 같은 친구야'라고 한탄을 하곤 한다 "  "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그렇게 되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다 " 고 말하며 안타까움고 함께 눈시울을 붉게 적셨습니다.


야구 캐스터 송인득의 영결식은 MBC 아나운서들의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송인득의 발인에는 수많은 MBC 아나운서들이 눈물을 적셨습니다. 남자 아나운서들은 물론 여자 아나운서들도 선배의 영면에 애도의 문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야구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송인득 캐스터의 공백과 그의 뛰어난 중계방송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에서 캐스터들의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다시한번 절실하게 부각된 바 있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에서 캐스터들의 흥분 방송과 알맹이 없는 방송과 달리 고 송인득 캐스터는 경기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방대한 전문 자료를 바탕으로 깊이있고 품격있는 중계 방송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 송인득 캐스터는 경기흐름에 따라 감정의 톤을 적절히 조절하며 시청자에게 관전포인트와 시각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했습니다. 특히, 허구연 해설위원과 역할 분담을 적절하게 조하시켜 야구의 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고 송인득 아나운서는 야구 중계방송 캐스터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허구연은 "고 송인득 캐스터는 해설위원보다 더 방대한 지식과 정보로 무장하고 경기 중계에 임했다. 그리고 해설위원의 역할이 돋보이도록 질문에서부터 화법에 이르기까지 배려를 했다"고 송인득을 회고한 바 있습니다. 송인득은 특히 애정을 가졌던 야구나 마라톤에 대한 방대한 자료 수집과 공부를 지속적으로 했던 결과였습니다. 무릎팍도사를 시청한 후 잊혀졌던 송인득 캐스터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어쩌면 송인득이 있었기에 한국 야구 그리고 허구연이 빛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릎팍도사에서 허구연의 몇가지 이야기]

스파이가 된 야구 해설가

허구연은 해설가이면서도 경기전 한국팀과 맞붙는 상대팀의 감독이나 선수들을 취재해 정보수집을 했습니다. 한국팀에 도움되는 결정적 정보를 제공해 경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 것입니다. 일종의 스파이 역할인 셈입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팀들은 정보를 어느정도 오픈했지만 일본팀은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일본팀은 한국팀을 경계했다는 반증입니다. 선동렬이 일본팀의 술책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고 있는 감독이라고 합니다.

허구연 어록의 재미와 해학
▲대쓰요
감동과 기쁨의 말
▲고마워요 사또
유리한 상황에서 하는 말
▲독도를 넘기고 대마도까지 갔어요
허튼 소리에 대한 말
▲청보 핀토스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한 말   (예)만취했던 지난 밤 생각 "어제 일은 청보 핀토스 같았어."

국민스포츠로 승화시킨 열정
허구연은 일본식 야구 용어를 제대로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1982년 일본의 역사왜곡에 분개해 기존 일본식 야구 용어를 정확하게 바로잡아야 겠다고 결심했다는 이야기에 그의 애국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민스포츠로 성장하는데 있어 이러한 열정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또 허구연의 노력과 선수들의 성장으로 한국 야구는 마침내 일본이 두려워하는 팀으로 발전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제 일본의 감독이나 이치로 선수도 '한국팀과 만나는 것이 싫다. 겁나고 무섭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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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7급 공무원'이란 영화를 보고난 후 친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외국인 감옥에 수감됐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친구(이하 C)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이미 17년여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인도 현지에서 기막힌 일을 당했던 C는 당시 엄청난 충격과 함께 죽음의 공포를 느겼다고 합니다.
 
친구 C의 사연은 1990년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C는 인도어를 공부한 친구였습니다. 이왕 공부한 인도어를 현지에서 직접 경험해 볼 겸 인도로 배낭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당시에 해외 배낭 여행은 드문 경우였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 당시 인도를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보통 배짱으로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C는 언어도 가능하고 한국에서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한 후 여행에 나섰습니다. C는 인도에서 주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어느 날, C는 기차에서 만난 인도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기차 앞 자리에 앉아있던 인도인들이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인도 여행 중에 만난 친절한 현지인들이었기에 즐거운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C는 인도인이 건네 준 음식을 받게 되었습니다. C가 잠시 머뭇거리자 인도인은 웃으면서 빨리 먹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C는 호의를 거부할 수 없어 음식을 한 입 먹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C가 눈을 떴습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아마도 인도인이 준 음식에 강력한 수면제가 들어 있었나 봅니다. C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배낭과 외투 등 주요한 물건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권이나 여행 경비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순간 C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놀랐습니다. 기차 안을 여기저기 살펴봐도 앞에 있었던 인도인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벌떡 일어나 기차의 모든 칸들을 살펴봤지만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사진]인도의 기차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소년. 창살이 마치 감옥을 연상시킨다

C는 다음 기차역에 내려 인도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자신이 기차 안에서 겪었던 일들을 인도 경찰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인도 경찰은 대충 듣더니 약간의 차비를 주며 한국 대사관에 가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C는 무성의한 인도 경찰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C는 버스를 타고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렇지만 C는 수면제 후유증에다가 너무 당황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습니다. C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일단의 인도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C를 뒤쫒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이것은 C의 환상이었을 수 있습니다.) C는 다시 당황이 되었습니다. 버스 안의 인도인들도 모두 C를 노려보는 것 같았습니다. 버스가 불빛이 환한 대형 건물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C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버스를 뒤쫒는 인도인들도 무섭고 버스 안의 사람들도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C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형 건물을 향해 달렸습니다. 자신을 뒤쫒는 인도인들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대형 건물은 저녁인데 조명 불빛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대형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건물은 담벼락이 있었습니다. C는 계속 자신을 뒤쫓아오는 인도인들을 피하기 위해 대형 건물의 담장을 넘어 갔습니다. 너무 다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단의 인도 군인들이 C 앞에 나타났습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깜짝 놀라 손을 들고) 왜 그러세요. 여기가 어디죠?"

"누구냐? 여기가 어딘가 모르는가?"
"...모르겠는데요...저를 쫓아오는 무리들이 있어서 담을 넘었는데요."

C는 인도 군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놀랍게도, C가 담장을 넘은 곳은 인도 국방성 건물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C는 인도 군인들의 심문을 받았습니다. 인도 군인들은 C를 인도의 군사 기밀을 빼내기 위해 잠입한 간첩 즉 스파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감히 인도의 국방성 건물에 담을 넘어 침투할 수 있는 자는 스파이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북한 스파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C는 이후 인도의 외국인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참고] 인도 영화 '조다 악바르'

C는 정말 억울하고 무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인도 감옥은 시설도 매우 열악했습니다.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C에게 엄습해 왔습니다. 인도의 감옥에서 하루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죽음이 다가오듯이 공포였습니다. C가 아무리 감옥 관계자에게 한국 대사관에 연락을 해보라고 해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인도 감옥 관계자들은 이미 스파이로 낙인찍혀 수감된 C의 어떤 말도 듣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거의 한 달이 지났습니다. C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C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외국인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 중 영국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영국인 수감자는 C에게 작은 메모지 하나와 펜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여러차례 호소하던 C를 위해 영국인 수감자가 교묘하게 준비한 메모지와 펜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국 대사관으로 보낼 너의 사연을 써봐라."
"이러다 걸리면 사형당하지 않을까? 무서운데..."

"걱정마라. 나는 여기 교도소만 여러번 수감돼 봐서 여기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
"알았어. 잘 부탁해."

C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국인 수감자에게 메모지를 써서 주었습니다. 어차피 인도 감옥에서 스파이 혐의로 죽는 것 보다는 탈출을 시도해 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인도 감옥에서 쓴 메모지는 다행히 한국 대사관에 도착을 했습니다. 한국 대사관에 도착한 C의 메모지를 본 직원들은 "도대체 C가 누구야."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봤다고 합니다. 인도의 외국인 감옥에 간첩 혐의로 수감된 C가 한국인인지 북한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이러한 이야기들은 친구 C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입니다.)
 
한국 대사관에 전달된 C에 관한 첩보는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으로 전달됐습니다. 한국의 안기부에서 C가 누군지 조사와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C의 친구가 우연히 참석했습니다.
"아니, C는 제 친구인데요. 이 친구는 인도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언제 인도에 갔지."
"당장 한국 대사관을 통해 C를 석방시킬 수 있도록 합시다."

이렇게 C는 인도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국정원 친구의 신속한 도움이 없었다면 C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름이 돋기만 합니다. 그 당시가 1990년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얼마나 열악한 상황인지 짐작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C의 사연은 매우 긴 이야기인데 짧게 압축했습니다. 지금도 친구 C를 만나면 가끔 인도 감옥에 수감됐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곤 합니다. 당시의 C는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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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