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11.01.21 아내 없는 빈자리 초등학생 두 딸의 메모에 눈물났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9)
  2. 2011.01.04 뜨게질하는 아내와 초등학생 딸, 천사로 보였던 특별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3. 2010.11.08 불타는 아파트 가을 단풍에 장모님도 놀란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0)
  4. 2010.05.20 결혼 후 남자가 장모님 잘 모시면 편한 이유 '딸이 부모 모시는 시대 왔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38)
  5. 2010.04.30 사춘기 두 딸에게 왕따된 아내가 남편 찾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2)
  6. 2010.04.23 애주가 아내의 김치냉장고 용도와 멸치 볶는 이유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45)
  7. 2010.03.25 결혼 반대한 장모, 왜 밥 잘먹는 남자 좋아할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62)
  8. 2010.03.23 아버지 친구의 딸과 맞선, 결혼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87)
  9. 2010.02.13 설날 명절의 꼴불견과 듣기 싫은 말 베스트 10 by 진리 탐구 탐진강 (51)
  10. 2010.02.05 방송출연한 옛 애인의 불행한 결혼 본다면? 당신의 생각은?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어제는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습니다. 그 전 날, 일찍 잠이 들어 평소 보다 빨리 잠에서 깬 것입니다. 냉장고의 물을 꺼내 마신 후 거실 탁자 위에 컵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탁자 위에 자명종 시계와 그 앞에 쪽지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의 메모였습니다. 저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갑자기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두 딸은 아내가 자매들과 해외여행을 간 사이 대신해 아빠의 출근과 아침 밥상을 걱정해준 메모였습니다. 큰 딸은 초등학교 6학년, 작은 딸은 4학년입니다.

식탁 위 알람시계와 메모지의 정체는?

그 메모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빠! 알람 끄려면 알람 뒤에 있는 on 스위치를 off로 바꾸세요.
그리고 아침 드실거면 저희 깨우세요. 그럼 드릴게요. We ♡ Dad
"


두 딸이 아빠를 위해 알람 시계를 준비해 두고 그 앞에는 아침 식사를 드릴 것이라는 메모도 있었다

역시 딸들은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사이에 그 역할을 대신해 아침 잠을 깨워주고 식사까지 챙겨주려는 마음씨가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아빠들이 딸 아이를 선호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날은 조용히 출근을 했습니다. 저는 새벽 6시경 일찍 출근을 합니다. 두 딸이 곤히 잠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아내는 캄보디아로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세 자매가 함께 갔습니다. 그 이유는 큰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1년 전, 겨울에 큰 언니가 암과 투병하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내와 자매들은 큰 언니의 죽음 앞에 슬퍼했습니다.

아내가 밤 12시에 슬프게 눈물 흘린 이유는?

얼마 전,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밤에 TV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책도 함께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TV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침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조금 후, 이상한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였습니다. 이상한 울음소리에 오싹했습니다. 울음소리가 통곡처럼 들렸습니다.

제가 여기저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침실이었습니다. 침실의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불을 켜보니 아내는 이불을 둘러쓰고 울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래? 내가 뭐 실수했어?"
"아니야. 그냥 혼자 있게 해줘."

"갑자기 우니까 걱정돼 그래. 혹시 내가 TV 돌려서 그런 거야?"
"아니라니까. 오늘은 언니의 기일이야. 언니한테 미안해서 그래. 혼자 있게 좀 해줘."


저녁에 아빠가 퇴근하자 두 딸은 직접 압력밥솥에 밥을 했고, 냉장고의 반찬과 함께 식탁을 차렸다 

아내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저는 그냥 거실로 나왔습니다. 그랬습니다. 언니의 기일이 되자 아내는 언니 생각에 눈물이 났던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회한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아내와 자매를 비롯 가족들은 큰 처형이 모셔진 납골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세 자매는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지요. 아내는 시계나 휴대폰도 집에 두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냥 모처럼 속세를 잊고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지요.

아빠를 위해 초등학생 두 딸이 차려준 밥상

아내는 그 동안 제가 입을 셔츠를 여러개 다림질해 두었습니다. 두 딸은 모처럼 엄마가 여행을 다녀오도록 반갑게 이야기해 주었지요. 물론 저도 아내의 마음을 알고 있던 터라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아내가 해외여행을 하는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자매들은 앙코르와트를 비롯 여러 곳을 여행하겠지요. 요즘같이 강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따뜻한 나라 여행이라서 좋을 듯도 합니다.

그러나, 아내의 빈자리가 커보이기는 했습니다. 저녁에 퇴근하니 두 딸이 아빠를 위해 압력밥솥에 밥을 직접 만들어 밥상을 차렸습니다. 큰 딸은 햄을 구웠는데 조금 타긴 했지만 맛있었습니다. 저는 계란 후라이를 만들었습니다. 찬은 많지 않지만 두 딸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는 행복했습니다. 이럴 때는 아들 보다 딸이 훨씬 좋지 않나 싶더군요. 큰 딸은 1년 전 겨울에 아빠를 위해 뜨게질로 목도리를 떠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이 딸가진 부모의 기쁨이겠지요. 


큰 딸은 햄을 굽고 반찬을 준비했고 작은 딸은 밥을 만들어 밥상을 차려 아빠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아내가 큰 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털고 즐겁게 여행을 하고 돌아왔으면 합니다. 결혼 후 세 자매가 따로 여행은 처음일 것입니다. 아내가 없는 빈자리, 두 딸이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아내의 빈자리가 허전합니다. 주말 토요일에는 두 딸을 위해 맛있는 외식을 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아내가 돌아오는 일요일이 되겠지요. 그 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간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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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아내와 큰 딸이 언젠가부터 뜨게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잠깐 하는 줄 알고 스쳐지나쳤습니다. 그러다가 큰 딸이 목도리 뜨게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큰 딸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 질문을 던져 봤지요.

"누구에게 선물할 거니?"
"아직 말할 수 없어요."

"혹시 아빠에게 선물하려고?"
"아니에요. 아빠는 엄마가 작년에 선물했잖아요."

"그렇기는 하네. 그럼 누굴까? 남자친구 생겼니?"
"아니라니까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큰 딸과 대화는 끝났습니다. 저는 누구에게 선물할 것인지 궁금했지만 참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 때서야 큰 딸은 이모에게 선물할 것이라 모두에게 비밀로 했다고 하면서 웃더군요. 이모가 아파트 아랫층에 살고있어 사전에 알려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지요. 이모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었던 큰 딸의 마음을 생각하니 기특해 보였습니다.

아내와 초등학생 딸이 뜨게질하는 진짜 이유 알고보니



이미 저는 아내에게 지난해 뜨게질 목도리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직접 뜨게질한 것이라 소중하게 다루게 되더군요. 이번에 아내는 자신의 목도리를 만들었더군요. 아내는 작년에 장모님 목도리를 비롯 여러개를 뜨게질로 만들어 선물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목도리는 없었던 것이지요. 작은 딸도 작년에 스스로 자신의 목도리를 뜨게질로 만들었으니 이제는 가족 모두가 뜨게질 목도리가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또 몇 일이 지났는데 아내와 큰 딸은 뜨게질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뜨게질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금방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매일 아내와 큰 딸의 뜨게질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목도리가 아니라 작은 털모자였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개를 계속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큰 딸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뜨게질 삼매경에 빠진 것 같네. 무슨 일 있어?"
"아,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로 했어."

"웬 아프리카? 더운 나라인데 털모자가 필요해?"
"응. 아프리카 신생아들 중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은 것 몰라."

"그렇구나. 큰 딸도 신생아 살리기 동참한 거야?"
"예, 아빠. 저도 아프리카 아이들 돕기로 했어요. 겨울 방학 동안에요."

"그래. 좋은 일 하는구나. 어떻게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를 하기로 했어?"
"학교에서 선생님이 뜨게질하는 것을 보고 좋은 일을 알게 됐어요."



아내와 딸이 뜨게질하는 이유를 알게 된 후 사실 마음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도 그렇지만 어느새 큰 딸이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니 대견했습니다. 큰 딸은 초등학교 6학년생입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겠지요. 겨울방학을 이용해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에 참요한 것입니다. 아내와 딸이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좀 더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궁금해 자초지종을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아내는 학교에 도서도우미로 자주 자원봉사를 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 선생님이 뜨게질하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됐답니다. 선생님에게 뜨게질하는 이유를 듣게 되었는데 감명을 받게 된 것이지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기술이나 기능을 기부해 불우이웃돕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설레이기 했지요.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아내는 선생님의 마음씨에 감동받아, 학교에서 돌아온 큰 딸에게 학교 선생님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큰 딸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대부분 뜨게질을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나 6학년 선생님들은 모두 뜨게질을 한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6학년 어느 반은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가 뜨게질로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습니다.



아내는 큰 딸에게 제안했습니다.
"우리도 아프리카 어린이 살리기 해볼까?"
"엄마, 좋아요. 저도 뜨게질하고 싶었는데 공부하라고 할까봐 말을 못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뜨게질도 열심히 하면 되잖아."
"알았어요. 엄마랑 함께 해요."

아내와 큰 딸을 그렇게 의기투합했습니다. 아내와 큰 딸은 하루도 쉬지않고 뜨게질을 했습니다. 사실 뜨게질을 하려면 털실도 사야하고 시간도 기부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태어난지 얼마 안돼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아내와 큰 딸은 뜨게질을 열심히 해왔던 것이지요.

저는 소책자가 있어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이 무엇인가 살펴봤습니다. '당신에게 주고싶은 선물'이란 제목으로 캠페인 소개와 모자뜨기 요령 등이 실려 있더군요.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에서 모자캠페인(moja.sc.or.kr)에서 진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성껏 떠준 모자는 에티오피아, 말리, 네팔 등의 아기들에게 전해져 생명을 살리게 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이란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영유아를 살리기위해 후원자가 모자를 직접 떠서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 해외 현지에 보내주는 캠페인입니다. 매년 전세계 200만명의 아기들이 자신이 태어난 날 사망하고, 400만명의 신생아들이 태어난지 한 달 안에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아기들의 사망원인은 폐렴, 설사병 등과 같이 쉽게 예방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었습니다.

사실 아기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탯줄 자르는 칼, 저렴한 항생제 등과 같이 기본적인 의료기구나 의약품만 있어도 됩니다. 그리고 저체온증을 막아줄 털모자만 있어도 아기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생아 모자 보내기 등으로 아기들의 생명 70%는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은 작은 노력의 시작인 것입니다.

신생아 살리기 캠페인에 참여하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털모자를 뜰 수 있는 재료가 담긴 키트를 구입하여 모자를 뜨고 세이브더칠드런에 보내주면 전세계 영유아들에게 전달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3년간 개인 8만여명, 단체 500여곳이 참여해 20만개 가량의 모자를 라오스, 캄보디아, 앙골라, 말리 등 4개국의 아기들에게 전달돼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실천 하나가 나비효과가 되어 학생과 학부모도 동참

이제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말리, 네팔 등에 모자를 보내줄 계획이라고 합니다. 에티오피아는 1000명 중 104명, 말리는 1000명 중 191명, 네팔은 1000명 중 48명의 어린이가 생후 5살 이전에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이번 겨울에 떠준 모자는 3~4월경에 에티오피아, 말리, 네팔의 신생아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랍니다. 시크릿가든의 현빈이 말한 것을 비유하자면 '한 땀 한 땀 떠서 만든 모자'가 소중한 아이들 생명을 구하는 셈이지요.

그런데 아프리카와 같이 더운 지역에 왜 털모자가 필요할까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말리 등 지역은 평균 기온이 높지만 밤낮 기온차가 매우 심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저체온증은 폐렴 등 여러 합병증을 유발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 증상입니다. 따라서 아기를 따뜻하게 보온해줄 모자가 필요한 것이지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런 모자를 캥거루 케어(Kangaroo Care)라고 부른답니다. 캥거루 케어 털모자는 아기의 체온을 약 2도 정도 높여줘 저체온증을 막아준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털모자 하나가 신생아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니 뜨게질 참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내와 큰 딸은 요즘도 매일 일정 시간 이상은 뜨게질을 합니다. 아프리카 등 신생아들의 저체온증을 막아줄 털모자를 뜨고 있는 것이지요. 아내와 딸이 천사같이 보였습니다. 그 보다 앞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선행과 솔선수범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선생님들의 모자뜨기 캠페인 참여 덕분에 우리 가족도 저개발국 신생아들의 생명을 살리는 인류공동체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게 됐으니까요. 

선생님들의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서로 합심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모색과 실천을 해나간다면 세상은 희망과 행복으로 밝아질 것이라 믿어봅니다. 학부모들이 '내 새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아이들을 함께 생각하는 '공동체적 시각'으로 세상의 미래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아내와 딸이 함께 털모자를 뜨게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선생님들이 있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과 실천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선생님들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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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주말에 모처럼 아파트 단지를 바라봤습니다. 고층에 살고있던 터라 멀리 아파트단지가 한 눈에 보였습니다. 눈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불타는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붉게 물든 단풍이 아파트 단지 곳곳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단풍이 펼치는 장관이었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렇게 단풍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마트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 곳 마다 빨갛고 노란 단풍이 형형색색으로 가을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며칠 전 장모님과 함께 북한산과 남산의 단풍을 구경하고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 단지 만큼 멋진 단풍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고생해 대중 교통수단을 타고 단풍 구경을 갔지만 사람들이 북적대고 그다지 볼 것이 없어 그렇다고 합니다.

붉은 단풍의 향연이 아파트 단지에서 마치 캠프파이어를 하는 듯 타오르다


그 당시 아내는 장모님과 함께 예능프로그램 1박2일 방송에서 나왔던 장소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의 단풍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장모님은 북한산에 이어 무한도전에서 나온 남산 팔각정을 찾았지만 역시나 기대에 이르지 못했답니다. 장모님은 여기 아파트 단지의 단풍이 최고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고생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 아파트 단지의 가을 풍경을 감상해 볼까요. 안개가 자욱해 사진이 다소 흐리게 나온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해해 주세요.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면 가는 곳 마다 단풍의 향연이 가득합니다. 빨간 단풍이 가장 화려하지만 노란 은행잎을 비롯해 여러 색상의 단풍도 여기저기 펼쳐져 있습니다. 눈이 한없이 즐겁니다. 단풍 뿐만 아니라 빨갛게 익어가는 감이 달린 감나무 산수유를 비롯 여러 과일 나무와 열매 나무가 종종 보이곤 합니다.

장모님과 아내가 어느 단풍 구경 보다 아파트의 단풍이 더 환상적인 이유



거의 불타는 듯한 단풍 나무는 아파트 단지의 명물입니다. 멀리 내장산 단풍 구경을 가지 않더라도 아파트 단지만 둘러봐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빨간 단풍나무 이외에도 여타 활엽수는 노란 잎으로 갈아입고 저 마다 가을을 뽐내고 있습니다.


마트를 가는 길과 아파트 단지 주변 길도 단풍의 향연은 계속 됩니다. 마트를 가는 길에는 단풍 속에서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이나 부부들도 자주 마주칩니다. 멀리 보이는 노부부의 산책 모습도 정겹더군요. 아파트 주변에 이 정도 좋은 데이트 코스가 있는 곳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걸어 보아요.


마트에 갔더니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특히나 부부들이 쌍쌍으로 많이 왔습니다. 저희 부부가 결혼할 당시인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부부가 함께 마트에 오른 일도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부는 물론 남자가 혼자 마트에서 시장보는 일도 많더군요.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마트에서 다시 아파트 단지로 돌아오니 단풍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자, 붉은 단풍으로 불타는 아파트 단지 구경 잘 하셨는지요. 장모님은 살아오시면서 이 토록 멋진 단풍을 가진 주택이나 아파트 단지를 보신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저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 단지가 이렇게 잘 꾸며진 것은 과거에 아파트 건설사가 당시 땅이 많아 시범적으로 조경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삶의 질이 중요해진 세상, 아파트 단지에서 마음껏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행복입니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철쭉, 목련 등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온갖 단풍이 향연을 필치는 아파트 단지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운치가 있습니다. 아파트를 나서 조금만 가면 산과 들이 펼쳐져 있기도 합니다. 언제나 땅을 밟아볼 수 있고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아내는 이사를 가지않고 여기서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옮길 때가 오겠지요. 저도 오래 여기서 살고 싶지만 인간사가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번 가을은 유난히 아름다운 단풍이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여러분의 가을은 어떻게 무르익어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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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막내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형, 애 낳았어."
"축하한다. 너도 아빠가 됐구나."

"고마워. 딸인데 애가 너무 예뻐."
"잘 키워라. 애 엄마에게 서운하지 않게 잘 보살펴라."

"친정에 한 달 정도 몸조리하러 갈 거야."
"그러냐. 한달 동안 독수공방하겠네."

그 후 막내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막 탄생한 아이의 사진이었습니다. 막내는 너무 신기한 듯 연신 애 자랑을 하면서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이제 막내도 결혼 후 애까지 낳았으니 가족들끼리 모이면 더욱 화기애애할 듯 합니다.

막내 삼촌부부가 애를 낳았다는 소식에 기뻐한 것은 부모님 뿐만 아니라 저희 두 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 두 딸을 제외하고 그 동안 동생들이 전부 아들만 낳았던 터라 막내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에 더욱 좋아했습니다. 두 딸아이는 가족 모임을 하면 자신들이 아이와 놀아주겠다면서 즐겨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막내의 아내, 제수씨가 친정에 한달간 머무른다는 이야기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막내, 너도 모계사회의 일원이 되는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도 장모님이 첫 애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지금도 장모님은 저희가 사는 아파트 바로 인근에 살고 계십니다.

어제 지인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였습니다. 선배 C는 근처에 처가가 있다고 했습니다. 선배 C는 미혼인 후배 K에게 결혼생활을 편하게 하는 법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에게 장인장모 식사를 사주라고 말하면 좋아."
"왜 그렇죠?"

"결혼 생활의 지혜인데 아내에게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장모님에게 잘하면 자연스럽게 아내도 좋아하게 돼. 지금은 다시 모계사회가 된 것 같아. 아내에게 열번 잘하는 것 보다 장모님에게 한번 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야."
"그렇군요. 저는 개콘에 나오는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이야기가 너무 가슴에 와닿아요."

"그렇기는 한데,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잖아. 현명한 방법은 장모님을 잘 모시는 거야. 장인장모를 잘 모시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고마워 한다고. 반찬이 하나라도 달라질 거야. 아내에게 야단칠 때도 왜 장인장모에게 제대로 못하냐고 하면 아무 소리도 못한다니까."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선배 C이 이야기에 상당 부분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장모님이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셔 도움이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평상시 잘 못하는 편이지만 장모님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가장 먼저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고마워 했습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자녀 양육을 처가 또는 친정에 맡기는 비율이 친가나 시댁 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친정 부모님에 대해서는 경제적 부담도 적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육아 문제같은 것을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높은 이유라는 것입니다. 육아에 대한 외할머니 역할이 커지면서 가족 문화도 외가 위주로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남자의 입장에서도 아내가 마음이 편하면 아이나 가정에도 도움이 되고 자신도 편하기 때문에 처가와 가깝게 지내게 되는 듯 합니다. 대체로 장모는 사위에게 음식 하나라도 더 해주려 하는 마음이 강한 편입니다. 장모의 사위 사랑이 곧 가정의 평화라고 해야 할까요? 아내도 대개 친정 엄마와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이다 보니 장모를 잘 모시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사회는 물론 전세계가 신모계사회로 점차 변하고 있습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든지, '딸이 왕 재산'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도 딸을 선호하고 딸 키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으로 변하고, 군대 가면 손님으로 변하고, 장가가면 사돈이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성들은 여권신장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배려를 해야 할 것이고, 여성들은 남성들을 구시대 가부장제의 유물 같은 대상자에서 협력대상자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여성의 책무 또한 무거워진 셈입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함께 손잡고 행복을 가꾸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막내 남동생도 앞으로 장인장모와 더욱 가까워질 듯 합니다. 소위 신모계사회는 아이의 육아를 처가에서 맡게 되면서부터 변하게 된 풍속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곧 결혼 후 남자와 여자 모두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장모에게는 아이의 육아가 고통스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 돌보는 일이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외손주 양육에 사생활을 빼앗기는 장모의 반란도 있다고 하니까요. 

사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점점 장모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모계사회가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막내 남동생도 가족 모임에 나타나면 장모 이야기가 하나의 주제가 되겠지요. 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시대는 가고, 딸이 부모를 모시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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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아내가 두 딸아이와 싸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마도 최근 몇 달 사이의 변화인 듯 합니다. 어쩌면 두 딸과 아내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두 딸의 반항심이 예전보다 많아진 이유가 큰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두 딸은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아 버립니다. 두 딸아이에게 사춘기가 온 것 같습니다. 두 딸은 예전에는 방 문을 열어놓고 지냈는데 요즘은 문을 닫고 대중 가수들의 노래를 듣거나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속닥속닥거리기도 합니다.

아내는 두 딸에게 소외감을 느끼나 봅니다. 두 딸이 문을 닫고 나오지 않자 저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이제 애들이 나를 왕따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
"애들이 사춘기인가?"

"그래, 사춘기인 것 같아. 둘째가 벌써 여드름이 생겼어."
"그러게. 이마에 뭐가 났던데 여드름이었구나. 참 빠르네."

"이제 당신 밖에 없어."
"뭐, 어쩔 수 없지. 애들이 컸다는 증거니까. 언젠가 올 거라 예상한 것인데 빨리 온 것 뿐이지."

그렇습니다. 둘째 딸은 초등학교 4학년 10살인데 이미 여드름이 시작됐습니다. 둘째는 다른 아이들에게 비해 발육 성장이 빠른 것 같습니다. 키가 언니보다 크고 같은 반에서 제일 크다고 합니다. 벌써 초경을 시작하고 지난해부터 브래지어를 할 정도로 가슴 몽우리도 시작된지 오래 됐습니다. 물론 12살인 첫째 딸은 그 보다 먼저 시작됐지만 거의 둘째가 비슷하게 시작된 듯 합니다.

          (지난해 제주도 해안가 산책로에서 당시 9살 둘째 딸과 아내가 산책하는 모습인데 키가 거의 자매처럼 보인다)
 
사실 아빠는 이미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유일한 남자이다 보니 아내와 두 딸은 이전부터 왕따를 시키는 일이 간혹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자기들 끼리만 시장에 간다든지 목욕탕에 가는 식입니다. 특히나 목욕탕의 경우는 성별 차이 때문에 간혹 아들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두 딸이 잘 지내더니 지금은 두 딸이 아내 마저 왕따를 시키는 형국인 셈입니다.

두 딸의 변화는 여러가지가 많습니다. 아내의 잔소리에 짜증을 내기도 하고 거울을 보면서 옷치장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아빠에게 아무렇게나 행동하던 아이들이 목욕하다가 급히 화장실 문을 닫는 등 달라진 모습입니다. 두 딸이 자신의 몸의 변화가 생긴 이후 행동에 변화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이제 두 딸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아가면서 이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듯 합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이자, 두 딸에게는 아빠인 저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일 때도 있습니다. 아내와 딸이 말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서 뭐라고 말도 못하고 가만히 TV만 보는 척 하기도 합니다. 결국 목소리가 큰 아내가 이기더군요. 나중에 아내에게 조용히 아이들과 싸우지 말라고 하지만 반항심이 커진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도 있는 듯 합니다. 아내가 저녁이 되면 와인이나 맥주를 찾는 일이 많아진 이유도 여기 있는 듯 합니다. 아내가 남편이 들어오면 옆에 앉아 하루 이야기를 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사춘기 테스트라는 글이 있어 살펴봤더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사춘기가 오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두 딸은 아주 친하다가도 서로 싸우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대개 아들과 달리 딸들은 서로 싸우는 일이 별로 많지 않다고 하던데 우리 딸들은 매일 싸우다시피 합니다. 그러다가 곧 친해져서 방에서 댄스가요를 들으면서 둘은 함께 춤동작과 노래를 하기도 합니다.

사춘기 테스트

1. 부모님과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2. 엄마 잔소리를 들으면 짜증이 난다.

3. 거짓말을 한 적이 많다.

4. 눈물이 자주 난다.

5. 거울을 자주 본다.

6.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

7. 연예인,탤런트 팬 클럽(카페)에 많이 가입을 했다.

8. 친구들과 전화를 자주한다.

9. 일을 결정할때 친구의 말을 잘 따른다.

10. 부모님보단 친구들과 있는 것이 좋다.

11. 친구 사귀기 힘들어진다.

12. 쉽게 화가 난다.

13. 동생과 자주 싸운다.

14. 이성에게 관심이 간다.

15. 내몸에 관해 점점 알고 싶어진다.

16. 우울해진다.

17. 감수성이 예민해졌다.

위 17개 문항을 전부 체크해 본 결과

0-5개 : 사춘기는 아직 아닙니다.

6-9개 : 얼마 있으면 사춘기가 시작됩니다.
10-13개 : 사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4-17개 : 사춘기 진행 중입니다.

론 매번 아내와 딸이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비해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나는 일이 많아 졌다는이야기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둘째가 거실을 거닐고 있어 한 마디 던졌습니다.
"둘째야, 이제는 숙녀같구나."

옆에 있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덩치만 크면 뭐해. 정신연령은 10살인데..."

"저, 정신연령은 9살인데요. 만 9살. 하하"

둘째가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습니다.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성숙한 둘째는 언니들과 놀거나 혼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 작년에는 2NE1의 'I don`t care'에 심취하더니 요즘은 소녀시대 신곡 '오(Oh!)에 빠진 것 같습니다. 아빠가 MP3에 신곡을 다운로드 구매해 줬더니 그것만 듣고 있습니다. 아빠가 딸들의 방에 오는 것도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사춘기 10대 소녀가 된 두 딸, 그리고 소외감 느끼는 아내, 이미 왕따됐던 아빠인 셈입니다. 그나마 아내가 남편을 찾아 호소를 하니 부부끼리 금슬은 좋아진 편입니다.

아무튼 두 딸에게도 아내에게도 힘든 시절입니다. 저야 직장에 가면 그만이지만 늘 두 딸과 씨름해야 하는 아내에게는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딸의 사춘기 시작이 아빠인 저나 아내에게 모두 어렵습니다. 두 딸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우리 아빠 엄마도 과거 사춘기 때가 있었으니 그 때를 회상해보고 인내하고 포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겠습니다. 혹시 여러 부모님들은 어떻게 아이들의 사춘기를 극복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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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느 날, 저녁에 집에 들어와 TV를 잠시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김치냉장고에서 멸치 한 봉지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미 식사도 다 끝나고 밤도 늦었는데 아내가 무슨 요리를 준비하나 싶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늦은 시간에 뭐 하는 거야?"
"응, 안주 좀 준비하려고."

"안주? 갑자기 멸치 안주?"
"예전에도 볶아서 준 적 있잖아."

이 날은 특별한 멸치 안주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멸치 봉지를 뜯어 후라이팬에 멸치를 넣더니 볶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고소한 냄새가 거실에 가득 퍼졌습니다. 노릇노릇하면서도 바삭바삭한 멸치가 완성됐습니다.

저는 김치냉장고로 가서 맥주를 준비했습니다. 아내와 너무나 자주 술을 마시는 터라 분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안주를 요리하면 자동으로 저는 식탁에 술과 술잔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다 됐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직접 조리한 안주라서 기대되네."



후라이팬에 볶음조림용 멸치를 노릇노릇하게 볶아서 고추장과 곁들여 안주로 먹으면 일품입니다

그렇게 그 날도 아내와 저는 술을 마셨습니다. 후라이팬에 볶은 멸치는 입 안에서 바삭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고추장에 볶은 멸치를 찍어 먹는 맛도 괜찮은 편입니다. 시원한 맥주와 바삭한 멸치 안주의 조화. 멸치는 그냥 말린 상태로도 안주가 되지만 후라이팬에 완전히 볶아서 안주로 만들면 짭잘하고 고소한 과자를 먹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맥주 안주라고 생각합니다.


이 날, 저는 아내 덕분에 특별한 안주와 맥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약간 과장하면 거의 알콜중독 수준입니다. 거의 매일 와인이나 맥주 한 캔 정도는 기본으로 마실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김치냉장고에는 항상 술과 안주가 가득합니다. 김치냉장고가 아니라 술과 안주를 위한 냉장고인 셈입니다.

왜 아내가 애주가가 되었냐구요? 이건 순전히 제 탓입니다.(ㅠㅠ) 그 사연을 조금 이야기해 봅니다. 아내와 제가 처음 만난 날 부터 술과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야근 업무가 많아 그 후에는 야근 후 아내가 살던 집 근처에 가서 만남을 갖곤 했습니다. 저녁에 특별히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아내가 살던 동네의 특정한 호프집에서 매일 만났습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을 느끼면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저는 저녁 술자리도 많은 업무라서 늦은 귀가가 많았습니다. 아내는 혼자 적적하면 술 잔을 기울이곤 했습니다. 늘상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다 홀짝홀짝 술을 마셨던 것입니다. 어쩌다 제가 집에 일찍 귀가하면 아내는 연애 시절이 생각났는지 어김없이 술상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매일 신혼부부는 각자 또는 함께 술을 마시는 날이 지속됐습니다.


김치냉장고 안에는 맥주 소주는 물론 오징어, 한치, 소시지 등 안주가 항상 가득 차 있을 정도입니다 

언젠가는 해외 출장이 있어 미니어쳐 양주 세트 10개 짜리를 사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집안의 장식품으로 보관하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난 후 미니어쳐 세트를 찾아보니 작은 병이 모두 비워져 있었습니다. 아내에 물었더니 가관이었습니다.

"여기 미니어쳐 양주병이 모두 비워졌어?"
"응, 내가 다 마셨어."

"뭐라고?"
"그거 나 마시라고 사온 거 아냐? 내가 좋아하는 꼬냑이잖아." 

이럴 수가. 아내는 자신을 위한 술 선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니어쳐로 예쁜 병에 담긴 꼬냑에 대부분이라서 오해할 만도 했습니다. 그저 관상용 장식으로 사온 것인데 아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사온 것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술꾼 남편을 둔 아내의 현실이었습니다.



주말이면 보쌈을 비롯한 소주 안주가 준비되기도 하며 가끔은 생라면이 안주로 사용될 정도입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김치냉장고를 열어보면 김치는 없고 술과 안주만 가득했습니다. 안주도 오징어, 한치, 소시지, 육포 등 다양했습니다. 맥주 안주는 기본이고 소주 안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가 김치냉장고를 남편에게 말도 없이 산 이유가 안주와 술 보관용이었던 것은 아닐지...  심지어 아내는 생라면을 안주로 준비할 정도이니 말 다했습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보쌈, 돼지갈비 등 다채로운 안주가 준비됐습니다. 결혼한 지 14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운명이구나 해야 겠습니다. 늘상 술이 끊어지지 않는 부부이니 이것도 이미 인연이 아닐지요. 뭐, 그렇다고 과음을 하지는 않습니다. 한 두 잔 기분이 좋을 정도 수준만 마십니다. 그렇지만 아내가 요즘은 과거에 비해 술이 늘어난 것 같아 조금 걱정도 됩니다.

아내가 멸치를 볶고 있으면 오늘은 특별한 술을 마시자는 신호입니다. 김치냉장고에도 수많은 안주가 즐비하지만 자신이 손수 준비한 특별 안주이니 술맛이 배가될 것입니다. 술꾼인 남편을 만나 애주가 아내가 된 셈입니다. 사실 저도 야근이나 저녁 술자리가 과거에 비해 훨씬 줄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면 편안한 술을 한 두잔 마시는 것이 오히려 편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술을 조금은 자제해야 할 듯 합니다. 부부가 너무 술이 과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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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미국에서 여행온 아내의 이모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가 나중에 하는 이야기가 이모님이 아주 칭찬을 자자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뭔지 물어보니 밥 먹는 모습이 듬직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보니 문득 결혼 당시의 힘든 과정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의 아내를 만날 당시에 보잘 것 없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일반적으로 따지는 결혼 조건에는 턱없이 부족한 남자였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제게 끊임없이 맞선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미 앞서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첫 눈에 반한 여자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처음 본 순간, 그냥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저녁 술자리가 잦았지만 도중에 탈출(?)해 그녀의 집 앞에 찾아가 만났습니다. 중간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저와 여자는 매일 만나는 동안 어느새 서로 사랑의 감정이 싹텄고 저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장모님이 당신의 딸이 만나는 남자를 우연히 목격하게 됐습니다. 어떤 놈팽이가 술에 취해 몸도 못가누고 딸의 부축을 받으며 여관 골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당시 저는 업무상 1차 술자리가 있었지만 빨리 마치기 위해 너무 속도를 낸 탓에 과음한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날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늘 만나던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던 저를 부축해 여관에 넣고 나온 과정을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들켰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 여자의 어머니는 놈팽이를 그만 만나라고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여자는 눈물겨운 단식 투쟁을 했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비록 가정형편을 비롯해 결혼 조건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성실한 모습이 좋았습니다. 여자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엄마, 그 남자 놈팽이 아니야. 매일 업무가 많아서 피곤한데 업무상 술자리 빨리 끝내고 나 보고싶어 왔다가 쓰러진 거야"
"아무리 그렇다고 술취해 몸도 못가누고 비틀거리는 남자는 절대 안돼."

"그러면 한번만 그 남자 만나봐. 그 후 판단해도 되잖아."
"만날 필요 없어.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거야. 안된다면 안된다. 다시 이야기도 꺼내지 마라."

저는 어머니 마음을 돌리기 위해 몇가지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우선 여자의 언니를 든든한 지원군으로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어머니가 절친한 약국집 부부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 애주가인 약국집 아저씨와 별도로 약주를 대접하면서 마음을 얻었습니다. 특히나 약국집 아저씨는 전 직장이 저와 같아 빨리 친해졌습니다. 당시 여자의 어머니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로 딸들을 키우는 동안 약국집 부부와 이웃 사촌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에 약국집 부부 마저 우군으로 만든 것은 결정적 반전의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어머니와의 마지막 담판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소 누그러진 어머니와 식사를 하면서 만남의 자리가 성사됐습니다. 저와 여자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여전히 남자에 대한 이미지는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어떤 부모가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길거리에서 인사불성이 된 놈팽이가 당신의 딸과 결혼을 쉽게 허락하겠습니까?



드디어 여자의 어머니와의 만남의 시간이 됐습니다. 사전에 마음의 준비와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왔지만 만나는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자의 가문은 제천에서 대대로 유명한 부잣집이었지만 할아버지에 이르러 다소 몰락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집안의 며느리였던 어머니는 카리스마가 넘쳤습니다.

"양친은 무슨 일 하시나요?"
"시골에서 농사짓습니다."

대화가 몇마디 오가는 동안 식사가 나왔습니다. 다소 긴장한 탓인지 반가운 식사였습니다. 무엇엔가 열중할 수 있는 식사 시간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마음 속에 품었던 생각을 말했습니다.

"따님과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비록 가진 것 없어도 따님을 행복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침묵)...."

여자의 어머니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저는 타들어가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이 끝나고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여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가 만나보니 괜찮다고 했어. 깔깔깔."
"그래. 정말이야. 아무 말씀도 없어 걱정했는데."

"밥 잘먹는 모습을 보고 좋았대. 나 굶겨죽이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나. 대화를 나눠보니 듬직해 보였고,"
"이제 안심이다. 그 동안 마음 고생 많았지. 수고했어."

그랬습니다. 여자의 어머니는 밥 잘먹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실하고 진실성있는 남자의 말이 듬직해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그 때 긴장을 좀 해서 밥먹는데 집중이 더 잘 됐고 평소에 비해 말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살짝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후 일사천리로 결혼을 위한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결혼 후 장모님은 저를 가장 좋아하는 사위라고 합니다. 아내는 어머니가 저를 편애한다고 하실 정도입니다.

저는 반찬 투정을 하지 않습니다. 신혼 시절 아내의 음식 솜씨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무조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시골 어머니가 아버지의 반찬 투정에 마음 고생하시던 모습을 보고 저는 절대 반찬 음식 투정하지 않겠다는 다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도 자신은 저를 만나기 전까지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요리나 음식에 대해 배울 생각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맛있게 밥먹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고 지금도 말합니다. 물론 아내도 지금은 음식이 많이 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터라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결혼 이후 부터입니다.

지난 화이트데이에 장모님에게 선물을 드렸더니 활짝 웃으며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O서방, 고마워. 우리 집 큰 아들 같아. 듬직해."
"헤헤. 약소한 선물인데요, 뭘."

어르신들이 사윗감 판단에 밥 잘먹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 건강하고 믿음직해 보인다
- 반찬 투정 안해서 딸이 음식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 것 같다
- 성격이 무난하고 자신감있어 보인다
- 무슨 일이든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잘할 것 같다
- 어른들에게 예의바르고 가족을 잘 챙길 것 같다
- 밥 잘먹으면 집안에 복이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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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금으로부터 16년전 제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1994년경입니다. 요즘 결혼은 대부분 연애결혼이 많지만 당시는 상대적으로 중매결혼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혼기가 찬 자식이 있으면 부모님은 맞선을 보라고 성화이곤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입사를 했습니다. 대학 때 사귀던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그녀는 맞선 본 남자와 결혼해 버렸습니다. 입사 직전 백수 시절에 일어난 일인지라 저는 붙잡지도 못하고 후미진 선술집에서 쓰디쓴 소주 한 잔에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요즘 회사 입사는 당시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는 불행 중 다행인지 친구 따라 입사원서 넣았다가 합격을 했습니다. 여자친구와의 이별과 그녀의 결혼 소식을 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매일 밤마다 코가 비뚫어지도록 술을 마셨고 아침에는 비몽사몽간에 출근하는 반복된 일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예. 잘 먹고 다녀요. 걱정마세요."

"이번 추석에 꼭 내려와라."
"회사 일이 많아서 못갈 수도 있어요."

"아니다. 바빠도 꼭 오거라. 아버지가 손꼽아 기다리신다."
"아버지가요. 신경도 안쓰시던 분이 무슨 일인가요?"

"너 추석에 선보란다. 군의원 딸이다. 군의원이 아버지 친구인데 선보기로 약속했단다."
"네? 약속이라구요? 저는 선 안봐요."  
(잠깐, 아버지는 산골 농촌마을의 이장이셨습니다. 제가 친구 분 딸과 내심 결혼했으면 바랬습니다.) 


"그럼 못쓴다. 아버지 갑계(동감모임) 친구랑 약조한 것인데 그럴 수 없잖냐. 나도 그 집과 친하단다."
"어머니까지 왜 그러세요."

"군의원도 아주 점잖고 좋은 분이다. 딸도 아주 참하고 예쁘더라. 꼭 추석에 와라."
"싫다니까요.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사진>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중 한 장면

이렇게 어머니와의 첫번째 전화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해서 저에게 간곡한 부탁을 했습니다. 또 거절을 했습니다. 몇 차례 거절을 하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부모님께 불효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 저 추석에 내려갈게요. 그런데 거기서 맞선은 안볼 겁니다."
"뭐라고? 맞선을 안본다고? 군의원 부부와 약속한 맞선인데..."

"그러니까요. 시골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나와서 맞선보는 것은 싫다고요. 그 여자는 지금 어디 있어요?"
"서울에서 회사다닌다고 하더라."

"잘 됐네요. 제가 추석 끝나고 그 여자랑 서울에서 따로 만날게요. 추석에 시골에 내려갈 거구요."
"그래도 양가에서 맞선보기로 약조한 것인데 어쩌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잘 말씀 좀 해주세요. 맞선을 안보는 게 아니라 둘이 만난다니까요."
"알았다. 아버지에게 이야기해 볼게."

어머니와 기나긴 신경전이 새로운 반전을 맞게 됐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추석에는 꼭 내려왔으면 하는 바람에 부응하면서도 양가 부모가 동석한 맞선 대신 둘만 따로 서울서 만나기로 하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결국 양가 부모도 제가 수정 제안한 만남을 수용했습니다.

제가 맞선을 처음에 거절했던 이유는 맞선을 보게 되면 저도 부담되지만 양가 부모도 고향에서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 나중에 서먹서먹한 사이가 될까 두려웠습니다. 부모님이 아는 집안의 맞선이란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도 우려가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시에 맞선에 대해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학 시절 여자친구가 제가 백수시절에 갑자기 집안에서 선보라고 한다고 하더니 맞선본 남자와 곧장 결혼해 버렸던 아픈 맞선에 대한 기억도 작용했습니다. '나는 연애결혼해 복수할란다'는 아주 유치한 발상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추석이 되고 고향에 갔습니다. 어머니에게 군의원 딸의 연락처를 넘겨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배려 존중하는 생활이다 <사진> 영화 한 장면

"우리 고장에서 가장 참한 규수란다. 너랑 결혼하면 집안의 경사일 것 같다."
"어머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너무 부담주지 마세요."

"그래. 니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아까워서 그런다. 좋은 규수라고 읍내에 소문이 자자하다."
"알았어요. 서울에서 만나보고 말씀드릴게요."

그 후 어떻게 됐을까요? 물론 추석에 시골에 다녀온 직후 서울 경복궁에서 군의원 딸을 만났습니다.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나온 여자를 찾는 식으로 만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007데이트인가요? 경복궁 앞에서 만나 경회루를 비롯한 고궁을 거닐었습니다. 첫 만남인데 고궁을 거닐다니 무드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이 만들어준 맞선을 빙자한 소개팅 데이트를 한 셈이 됐습니다. 혹시 부모님이 소개팅 시켜준 분 있나요?

그렇게 경복궁을 거닐다가 근처 찻집을 찾았습니다. 전통 찻집 하나를 골라 들어갔는데 이것은 시골마을의 찻집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냥 시골에서 만날 것을 서울에서도 하필 경복궁에서 데이트를 하고 찻집도 시골 분위기라니.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 어땠어? 추운데 힘들지 않았어."
"아니요. 모처럼 경복궁도 둘러보고 재밌었어요."

"그런데 말이야. 나는 시골 부모님이 (결혼을 전제로 한) 맞선이 싫었어. 동생 만나서 오늘 즐거웠어."
"시골 부모님들이 많이 친하신가 봐요."

"그러게. 그런데 말이야..."
"......(침묵)....."

"우린 따지고 보면 고향 선후배잖아. 처음 만나긴 했지만. 그래서 우리 앞으로도 선배 후배로 지내자."
"예. 알았어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맞선도 애초부터 싫었지만 솔직히 제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ㅠㅠ) 제 인생의 첫번째 맞선이자 부모님의 소개팅 데이트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부모님 성화에 못이겨 만나긴 했지만 한편으로 그녀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맞선녀 퇴짜놓기 만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보다 나이가 3살이 적었기에 만난 직후 말을 놨습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제 할 이야기만 다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반응이 궁금하다구요? 뭐, 어머니에게 한동안 계속 잔소리 들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실망감이 컸습니다. 한동안 소주만 드셨다는 후문. 저는 그 후에도 2년간 여자 친구도 못사귀고 무적의 솔로부대 신세였습니다. 그 사이 군의원 딸은 다른 남자와 만나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어머니는 저만 보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야, 이 눔아. 결혼식에 가보니 사람들 마다 최고로 참한 규수라고 다 그러더라. 아까워 죽겠다."
"어머니. 짚신도 짝이 있잖아요. 곧 저도 좋은 여자 만나겠죠?"

"우리집 장손이자 장남인 너에게 그 규수 만큼 좋은 여자가 또 있겠냐? 맏며느리감으로 최고더라."
"귀에 못이 박히겠어요. 그만 좀 하세요. 알았어요."

"그래서 그런데 내가 맞선 볼 여자를 하나 더 염두해 두고 있단다. 한번 만나보자."
"뭐라구요? 또 맞선이요? 어머니. 제가 졌어요. 잘못했어요. 다음 추석에 결혼할 여자 데려올게요."

그리고 저는 그 해 추석에는 여자를 데리고 시골에 갔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구요?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그 때부터 솔로부대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간절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흥청망청 친구들과 술만 마시러 다니던 제가 어머니의 맞선 이야기에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떠보니 여자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음에 든 여자 앞에서는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숙맥이던 제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가 바로 지금의 아내입니다.(^^) 물론 부모님도 지금껏 맏며느리가 최고라고 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솔로부대 탈출의 교훈 핵심 포인트
- 간절하면 꿈이 이루어진다. 결혼도 스스로 간절해야 한다.
-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만고의 진리이다. (그런가?)
- 결혼은 남자하기 나름이다. 자신감을 갖고 내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올인하라.
-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물질이 아니라 결혼에 대해 준비된 책임감이다.
- 내가 배려하면 상대방도 배려한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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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아내는 설날 명절이 다가오면서 매일 분주하고 바쁩니다. 제가 장남이고 장손이다보니 아내는 대가족의 맏며느리서 준비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집안 대청소는 물론 차례상에 올릴 나물, 과일, 음식 등을 준비하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제 저녁에 퇴근한 저에게 아내는 벌써부터 어깨가 아프다고 하소연입니다. 하루종일 장보기를 하느라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내에게 수고한다며 어깨를 주물러주고 안마를 해주었습니다. 아내가 명절마다 가장 힘든 일은 차례상 음식 준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특정한 작은어머니나 동서의 꼴불견 행동을 혼잣말처럼 제게 말하기도 합니다. 
"명절 음식 준비하는 다 끝난 뒤 매번 나타나는 OO, 정말 밉다"

사실 아내는 평소 남을 탓하는 성격은 아닌데 명절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지 간혹 가벼운 불만의 애교(?)를 표출하는 일이 있습니다. 대개 명절 음식 준비에는 아내를 중심으로 세 분의 작은어머니들과 두명의 동서가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아내와 연로한 큰어머니가 주로 하고 초등학생 두 딸이 거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작은어머니들과 동서들은 다른 일을 핑계로 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족사랑 인터넷 게시판에 설날에 속터지는 일 베스트10이 올라와 있던데 그 글을 보니 맏며느리의 입장을 대변한 내용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내가 명절에 속터지는 일 베스트10

  1)가깝게 살면서도 늦게 오는 동서.

  2) 형편 어렵다며 빈손으로 와서 이것저것 싸 가는 동서.

  3) 빨리가서 쉬고 싶은데 눈치 없이 고스톱을 계속 치는 남편.

  4) 술취했으면서 안취했다고 우기며 가는 손님 붙잡는 남편.

  5) 잘 놀다가 꼭 부침개 부칠때 와서 식용유 엎는 조카.

  6) 기름 냄새 맡으며 간신히 부쳐 놓은 부침개 낼름 집어 먹는 남편.

  7) 며느리는 친정 안보내면서 시집간 딸은 빨리 오라고 하는 시어머니.

  8) 시댁에는 20만원, 처가에는 10만원으로 차별하는 남편.

  9) 늦게 와서는 아직도 일하고 있냐며 큰소리 치는 형님.

 10)막상 가려고 하면 '한잔 더 하자'며 술상 봐 오라는 시아버지.



하나씩 살펴보니 명절 때 아내의 입장에서 충분히 속터지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가급적 여자들끼리 해결해야 할 상황에서는 개입하지 않지만 일부 음식 준비나 남자들이 도와할 일은 함께 돕는 편입니다. 명절이 다 함께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여서 정과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이란 점에서 서로가 조금씩이라도 일을 거들고 도울 수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에게 명절에 필요한 것은 세뱃돈과 격려

아내가 하소연하는 것 중 또 한가지는 명절에 들어가는 비용입니다. 아이들 세뱃돈만 해도 30만원이 넘고 차례 음식 준비를 위해 40만원 가깝게 지출이 될 것이라 합니다. 세뱃돈은 초등학생은 1만원, 중학생은 2만원, 고등학생은 3만원으로 정했습니다. 보통 각각 처한 형편에 따라 세뱃돈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지만 저희는 집안의 중심 역할을 하다보니 일반적인 세태의 적정 수준 세뱃돈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정한 것입니다.

이번 설을 맞아 학생들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여기저기 인터넷을 살펴봤습니다. 예상대로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모두 가장 받고 싶은 것은 용돈이나 세뱃돈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듣기 싫은 꼴불견은 '어른들의 잔소리'였습니다. 학생들이 싫어하는 잔소리는 어떤 말이 있는지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베스트10

  1) 너 어느 대학 갈거냐?

  2) 너 남자친구는 있냐?

  3) 너 취직은 했냐? 어디회사냐? 아직도 직장 못잡았냐?

  4) 올핸 결혼하냐?

  5) 너희 애 이번에 어느대학 갔냐?

  6) 너 살이 좀 더 찐 것 같다?

  7) 너 공부는 잘하냐?

  8) 네가 올해 몇살이더라? 몇학년 올라가지?

  9) 네 이름이 뭐였더라?

 10) 네가 둘째던가? 셋째던가?

명절 때 가족 모임에서 해서는 안되는 말과 행동들

어떤 매체에서 소개한 삽화인데 명절 때 가족 모임에서 해서는 안될 말과 행동들에게 대한 내용이 잘 정리된 것 같고 공감가는 이야기가 소개합니다.
먼저 처녀 총각에게 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장가가려면 직장은 잡아야지..."
"시집은 언제 가냐? 너도 많이 늙었다."


동서지간에 남편의 월급이나 경제적 비교가 되는 말은 삼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 보너스 얼마 받았어?"
"월급은 제대로 나와?"
"그 동네 아파트 값은 많이 올랐어?"

시어머니도 며느리에서 상처주는 말은 조심해야 겠습니다.
"좀 일찍 출발하지 그랬니?"
"벌써 가게! 네 남편 피곤하게 친정엔 뭣하러 가냐?"
 
부부 간에도 서로 존중하며 배려해야 겠습니다. 이런 말은 안되겠죠?
"그래도 우리 어머니 시집살이에 비하면 당신은 아무 것도 아냐"
"당신 부모만 부모야?"

그런데 20대 대학생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주로 1)좋은 데 취업해야지 2)어느 대학 다니니 3)살 좀 빼렴 4)애인은 있니 5)새해에는 장학금 받으렴 6)어릴 땐 예뻤는데, 똘똘했는데…등이 있었습니다. 10대 청소년 학생들은 반에서 몇등하는지와 같이 남과 비교하는 말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설날에는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말 보다는 세뱃돈과 함께 격려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족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서로 주의할 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서지간에 서로 자기과시하거나 비교하지 않아야 하며 시어머니는 며느리 면박하지 않고 부부간에도 서로 트집잡는 일은 삼가해야 겠습니다. 가족 간의 모임이 재산분배와 같은 돈 문제 다투는 분쟁이나 사건 사고의 소식으로 우울하게 하는 일도 있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사랑과 행복의 순간이어야 할 명절은 모두가 서로를 따뜻하게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올해 설 명절은 가족들이 모여 덕담과 서로 칭찬 격려가 오가면서 즐거운 화합과 행복의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서로 격려와 칭찬이 행복과 희망을 만드는 시작입니다. 
모두 즐거운 설 명절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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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인생을 살다보면 가끔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의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결혼한지 5년 정도 지난 무렵이었습니다. 여름 휴가를 맞이해 아내와 어린 두 딸과 함께 시골 고향집에 갔습니다. 부모님은 손녀딸들을 보는 재미에 마냥 즐거워 하셨습니다. 제가 장남이다보니 맏며느리가 된 아내에 대해 부모님은 늘 고마워 하셨습니다.

아내도 부모님께 항상 맏며느리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딸이 귀한 저희 집안에서 두 손녀의 등장은 아버지의 근엄함을 사라지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서도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아내는 낡은 시골집이지만 싫은 내색하지 않고 어머니의 부엌 일을 스스럼없이 함께 했습니다.

당시 여름휴가에는 여동생과 매제 그리고 두 아들도 저희 가족 일정에 맞춰 시골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저 보다 먼저 결혼을 한 여동생은 시골에서 사는 것이 죽도록 싫었던 터라 도시생활에 만족하며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여동생의 눈에 맏며느리가 된 오빠의 아내의 모습은 그래도 안심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여동생 남편인 매제가 시골집에 오면 장인 장모에게 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그렇게 결혼 초기의 생활은 신혼 초기에 부부싸움을 몇번 했던 것 이외에는 그 후 무난하게 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여름휴가로 시골에 내려온 첫 날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잠이 깼습니다. 혼자서 거실에 앉아있자니 심심해서 TV를 켰습니다. 아침 방송에 어떤 여자가 출연해 자신의 결혼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은 이 글의 인물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 출처> 서울공식블로그 

그 여자는 기구한 결혼생활에 대해 TV 화면을 통해 담담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소위 민속각설이로 유명해진 사람이었습니다. 여자이지만 어찌나 엿장수 가위질이 뛰어나든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방송출연까지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인상이 저에게 낯이 익은 얼굴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만났던 여자인 듯 한데 얼굴이 다소 통통해 비슷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여자의 이름이라도 자막에 뜨면 확인해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채널을 고정했습니다.

그 여자는 민속각설이가 된 사연을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결혼해 각설이로 유명한 집안에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결혼 몇해 만에 그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다리에 큰 부상을 당했던 것입니다. 남편은 회사에 다녔는데 직장을 다닐 수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의 갑작스런 사고로 그 여자는 각설이인 시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돈벌이에 나섰습니다. 남편이 일을 못하게 되면서 아이 둘과 남편을 먹여살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식당에서 일도 해봤지만 예술적 재능이 있던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각설이 공연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습니다.
 
어느정도 외모도 되는데다 여자가 민속각설이 타령을 하고 게다가 엿가위쇼 가위질 솜씨가 예술적 경지에 오르면서 그녀는 지방 도시에서 유명해졌습니다. 여성 민속각설이가 드물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눈에 띄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은 방송국에도 알려졌고 급기야 방송출연을 하게 된 사연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사고로 다리가 불구가 되면서 자신이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면서 어렵게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던 당시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TV 화면 자막에 그녀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민속각설이 HOO'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한 장면

이럴 수가. 그 이름은 바로 제가 대학교 때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사귀게 된 H였습니다. 복학 후 대학 3학년 때부터 사귀었는데 유치원교사를 하던 H는 제가 공부하던 대학 도서관에 나타나 밥을 사주곤 했었습니다. 지방도시에 살던 H는 한달에 한두번 서울에 올라오면 저를 만나러 왔던 것입니다. H는 저와 학번이 같았는데 제가 졸업 무렵이 되면서 집안의 성화에 못이겨 맞선을 보게 될 것이라고 언질을 주었습니다.

저는 목표로 하는 곳에 입사에 낙방하면서 백수였던 터라 H의 맞선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자신이 너무 초라했기에 빨리 원하는 곳에 입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H는 맞선 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청첩장을 보내왔습니다. 

이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 때 저에게는 대기업 합격 통지서도 날아왔습니다. H가 결혼식을 하는 시간은 제가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더욱이 결혼식 장소는 바로 신입사원 교육 연수원에서 바로 인근이었습니다. 신입사원 교육 퇴소식이 끝나는 날, 저는 H가 결혼하는 식장을 지나 서울로 곧장 올라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기분은 참으로 쓸쓸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기업을 다니면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혼 후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까지 저는 가난한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결혼은 처음으로 안정감있는 생활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TV화면에서 이미 잊고 지냈던 대학 시절의 옛 애인을 보게 되다니 놀랍기도 하지만 불쌍한 H의 모습에 온갖 상념이 머리 속을 휘감고 돌았습니다. 차라리 H가 결혼해 행복한 모습으로 방송에 출연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갑작스런 사고와 불행한 결혼생활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옛날 여자친구의 모습 뿐이었습니다. 안타깝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한참 상념에 젖어있는데 잠이 깬 아내의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저는 부지불식 간에 재빨리 TV 채널을 돌렸습니다. 이미 지나간 오래 전의 추억인데 괜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H에게도 측은지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아내에게 TV방송을 우연히 본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결혼 후 TV화면에서 우연히 과거 결혼 전 애인의 불행한 장면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실 것 같으신가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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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