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자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25 백원우, 노무현과 민주주의 못지켜 '눈물' (미디어법 날치기에 대한 단상) by 진리 탐구 탐진강 (33)
  2. 2009.06.03 서울대 교수들 민주주의 요구 시국선언 전문과 1987년 6월 항쟁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


백원우 의원을 기억하십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사죄하라'고 외쳤던 사람. 저도 처음으로 그 사진 장면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막혀 끌려나갔습니다. 백 의원의 입이 틀어막힌 모습의 사진을 보면 곧 민주주의가 질식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백 의원의 입이 틀어막힌 것은 곧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백 의원은 노무현의 서거가 곧 불의의 권력에 의한 타살이라고 여겨 분노했을 것입니다. 노무현은 서거는 곧 그를 지키지 못했던 마음의 빚도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이 그의 서거에 눈물을 흘렸던 이유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입니다. 노무현의 죽음은 곧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노무현이 서거한지 2달 정도 지났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습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유린되고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부정한 방법으로 강행했습니다. 국민들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부와 권력을 향한 탐욕만이 국회에 횡행합니다. 노무현이 대통령직에 물러나 봉하마을에서 처음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감시해야 합니다"



어쩌면 노무현의 예언은 정확한 진단이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도 비전도 역사의식도 없는 한나라당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않았습니다. 미디어법이 부정투표에 의해 강행되자 백원우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습니다. 백 의원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3일 동안 새우잠을 자면서 막아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장에서 날치기 통과되자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어떤 상식도 통하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 백 의원은 망연자실한 모습인 듯 합니다. 국민의 뜻에 반하는 불법 행태를 하고, 부정투표를 하고도 환호성을 보내는 한나라당을 목도하면서 비애를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들과 국회라는 한 지붕 아래 머리를 맞대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국민들의 심정도 참담할 것입니다.

백원우 의원이 3일간 새우잠을 자면서 지켜내려 했던 민주주의는 내팽개쳐졌습니다. 백 의원은 그러나 더 치열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의 가치를 되찾아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가슴 속에는 노무현과 민주주의가 여전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백 의원이 분노의 눈물을 머금고 더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백 의원의 홈페이지 글로 마무리합니다.

3일간 국회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날치기 당일엔 저의 모든 힘을 쏟아내 한나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을 막아섰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미디어 악법’만은 끝까지 막아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언론의 자유, 언론인의 자유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중과부적 수의 열세와, 한나라당과 국회의장의 비겁한 술수에 말려, 결국 국회 본회의장에서 날치기 통과되는 모습을 분루를 삼키며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부정투표였습니다. 재투표였고 대리투표였습니다. 부정투표를 해 놓고나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한 지붕아래 그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 참담합니다.

김형오 의장 본인 스스로가 말했듯이, “이 법은 시급하지도 않을뿐더러, 민생법안 또한 아닙니다.” “조중동 보수신문에게 방송진출을 허용하는냐”가 관건이 법입니다.

야당대표가 한 말이 아니라 한나라당 출신 김형오 의장 본인 스스로가 한 말입니다. 새벽에 썼다는 그 글에 본인의 죽은 줄 알았던 양심의 흔적이 그나마 묻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환한 대 낮이었다면 그 이야기를 숨겼을 겁니다. “의장석을 먼저 점거하는 쪽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 또한 기만술이자 허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국회를 향해 국민을 향해 뻔뻔한 거짓말을 해 댄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을 국회의장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국회는 공익을 실현하는 집단입니다.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이뤄야 하는 국민의 대의기관입니다. 최소한의 기본상식이 그렇습니다. 사회적으로 갈등을 조장할 수 있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법이라면 더 오래 준비하고 더 오래 설득해 나가야 할 책무가 국회에 있습니다. 집권여당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몇 군데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60~70%의 국민이 미디어법의 강행처리를 반대했습니다. 국민의 목소리까지도 철저히 유린한 폭거입니다.

국민들께서는 국회와 국회의원이란 자리가 싸움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실까 두렵습니다. 물타기 양비론에 진실이 오도되고 싸잡아 욕먹을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선량한 국민들에게 듣는 욕과 비난이 바로 이 ‘악법’의 날치기를 막아섰던 행동 때문이라면 달게 듣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국민들께 진실을 알려나가겠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이 무도한 민주주의 유린과 폭력. 한나라당과 김형오 의장의 꼭두각시 사기극의 진실을 말입니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할 내일입니다.

2009년 7월 23일 국회의원 백원우

(출처) http://www.bww.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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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22년전 군사독재 정권 시절, 1987년의 봄은 교수들을 비롯한 지식인 집단에서 시국선언의 형태로 민주주의 요구가 못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서울대를 비롯해 고려대 연세대 등 전국 교수들이 민주화 요구를 시국선언으로 발표합니다. 이 시국선언문들은 곧바로 각 대학의 대자보로 옮겨졌습니다. 대학생들은 "교수님. 힘네세요" 라고 응원하면서 민주주의의 열망을 반영했습니다.

특히 군사정권의 고문에 의한 박종철 학생의 죽음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그 진실이 폭로되면서 종교계까지 들불처럼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한열 학생이 전경들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면서 민주주의 열망은 더욱 가열차게 불타오릅니다. 전국 대학생들은 1987년 6월 10일을 전후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전국 곳곳에서 전개하고 시민들이 학생들을 지지하면서 결국 군사독재 정권에 6. 29 선언을 통해 항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9년 6월 오늘, 서울대 교수 124명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한 눈을 파는 사이 독재의 그늘은 드리워지고, 그렇게 역사는 반복되는가 봅니다.

이한열 열사가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후 6월 항쟁의 도화선인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의 민주주의 요구 시국선언 전문]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은 단지 애도와 추모의 물결만은 아니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착잡하기 이를 길 없는 심경으로 나라의 앞날을 가슴속 깊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각계각층의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러낸 것을 계기로 우리 모두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으며 또 열어야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남발되었고 온라인상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수렴이 가로막혔으며, 이미 개정이 예고된 집회 관련 법안들의 독소조항도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야의 동의로 지난 3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출범했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회의 공개나 국민여론 수렴을 반대함으로써 위원회는 표류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법 처리 강행 방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에 따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전국 법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여론에 따라 일단 포기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탈바꿈하여 되살아나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도 큰 위험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때 집회의 강제 해산과 노동자 대량연행과 구속으로 맞서는 일 또한 구시대적 대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 과정 또한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검찰은 국가원수를 지낸 이를 소환조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3주가 지나도록 사건 처리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추가 비리 의혹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인격적 모독을 집요하게 가했다. 이는 엄정한 공직자 비리 수사라고 하기 곤란하며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농성에 대한 무모한 진압으로 빚어진 참사는 올해 벌어질 갖가지 퇴행적 사건을 예고했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이 수사기록 중 핵심적인 대목의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재판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서울 서부지법 민사12부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세입자의 재산권, 주거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현 정부의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적 애도 속에 주어진 국민적 화해의 소중한 기회를 잘 살리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를 우리는 간절히 희망하며, 다음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해야 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1. 현 정부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1.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며,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현 정부는 용산 참사의 피해자에 대해 국민적 화합에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경제 위기 하에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집권층이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서 타오르고 있는 민주적 요구에 대해 진지하고 성의있게 대응함으로써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국민적 화합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큰 길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을 것을 간곡히 바란다.

2009. 6. 3.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서명자 명단 (2009년 6월 3일)
강우성 강진호 계승혁 고철환 구명철 구인회 권태억 김길중 김도균 김빛내리 김상종 김세균 김영민 김용익 김월회 김유용 김인걸 김장주 김재법 김종욱 김종일 김진수 김춘수 김현균 김혜란 김효명 남동신 류재명 모경환 문중양 민은경 박경숙 박동열 박명규 박배균 박태균 박현섭 박흥식 박희병 방민호 배은경 배철현 백도명 변현태 봉준수 성노현 손영주 송석윤 신광현 신종호 심봉섭 안광석 안삼환 양동휴 양현아 오명석 오석배 오순희 오용록 우희종 유용태 윤순진 윤여창 윤여탁 윤제용 이강재 이건수 이경우 이병민 이성중 이성헌 이애주 이인호 이일하 이창숙 이철범 이현숙 이형목 임호준 임홍배 장덕진 장승일 전종익 전태원 정근식 정용욱 정원규 정향진 조국 조영남 조현설 조형택 조흥식 최갑수 최권행 최무영 최영찬 최윤영 한상진 한숭희 한영혜 한인섭 한정숙 허원기 홍기선 홍성욱 홍승권 홍재성 홍진호 황상익

김명환(인문대) 김민수(미대) 김정욱(환경대학원) 김현진(인문대) 이건우(인문대) 이근(국제대학원) 이동수(환경대학원) 이상훈(사회대) 이용환(농생대) 이준호(자연대) 장진성(인문대) 전경수(사회대) 최병선(사회대) 최진영(사회대) 이상 124명

가나다 순 정리 (동명이인은 마지막에 나열하고 단과대 표시)

1987년 명동성당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시위 중인 대학생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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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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