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차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30 군대 신교대 얼차려와 목숨 건 전초 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18)
  2. 2009.02.25 군대 고참의 전문과 군발이 10대 강적 by 진리 탐구 탐진강 (15)


지금은 군대문화도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1980년대 군대는 얼차려를 빙자한 가혹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심각한 가혹행위로 인해 군대를 탈영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20여년전 군대의 얼차려는 어떠했을까? 그것은 최근에도 역사와 전통 속에서 이어지는 경우도 있을 듯 합니다.

강원도 최전방 부대의 신병교육대(신교대)로 간 당시는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논산 신교대로 갔다면 그렇지 않았을텐데 최전방 신교대로 배치받은 신병들은 지지리 복도 없는 셈이었습니다. 전방 부대 신교대에서 얼차려는 기합과 가혹행위 사이를 오가는 줄타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조교들이 곧 즉결심판하는 악마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여름 8월 군번이라 무더운 햇볕 속에서 훈련받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신교대에 첫 날 도착하자 조교의 무자비한 얼차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등 초보적인 얼차려였습니다. 이후 대가리 박어, 대가리 박고 왼발 들고 오른손 들어, 두 손 깎지 끼고 엎드려 뻗쳐 등 응용 얼차려로 기진맥진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운도 없었던 것이 그곳은 대학생 전방입소 최전방 부대였고 과거 삼청교육대로 악명을 떨쳤던 신교대였습니다.

한 바탕 얼차려의 고통이 끝나고 잔뜩 겁먹은 신병들은 일장 훈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빨간 모자를 쓰고 가슴에 호랑이 마크를 달고 있는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위풍당당한 체구와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 그야말로 위압감을 주는 군인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조교가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이름을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튀어나온다."
"김OO, 이OO, 박OO...탐진강"

비무장지대 수색매복 전초대, 죽음의 각서를 쓰다

탐진강도 이름이 호명됐습니다. 도대체 첫 날부터 왜 이렇게 빠지지않고 이름이 불린단 말인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름이 호명된 신병은 25명 가량 됐습니다. 모두 긴장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 마크를 단 군인을 따라 갔습니다. 걸어 가는 도중에 현역 군인이 말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전초구만. 고생 좀 하겠네."하면서 야릇한 미소가 느껴졌습니다. 우리들은 후미진 곳의 막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침상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짧고 굶은 전초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중대장 : "너희들은 전초다. 위험한 곳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남자로 태어나 멋진 군생활을 할 수 있다."
중대장 : "그럼, 지금부터 나눠준 종이에 싸인을 한다. 자신없는 자는 지금 나가도 좋다."

그러자 우리 동료 중 1명이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후환이 두려워 그렇게 못했습니다. 전초 중대장이 나눠준 종이는 그야말로 '군생활 중 죽더라고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서였습니다. 신교대에 오자마자 이상한 부대에서 호명해 죽음의 각서를 쓰다니 참 복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초대는 소위 민정경찰대로 비무장지대 안에서 수색 매복, 땅굴탐지, GP 정찰 등 작전 임무를 맡고 있었던 특수 부대였습니다.

각서를 쓰고 나오는 24명의 신병들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습니다. 그것은 정말 다가올 죽음의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전초로 사전에 차출된 신병들은 신교대 훈련이 끝나며 전초중대로 자대 배치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신병 훈련장으로 돌아 온 우리들은 조교들의 얼차려와 함께 파란만장한 지옥훈련이 시작됐습니다.

군대 얼차려 중 한강철교의 한 장면인데 엎드려 다리를 다른 사람 어깨 위에 올리고 있다

신교대의 얼차려는 한강철교, 원산폭격, 대가리 박고 기어가기 등 다양했습니다. 이런 얼차려는 응용편으로 가면 인간의 한계, 또는 인간성의 말살로 이어졌습니다. 정상적 훈련 이외의 생활에서 얼차려는 가혹했습니다. 그것의 실상은 가혹행위였습니다. 모기회식, 치약 뚜껑에 머리 박기, 식판 입에 물로 오리걸음 등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미 군대를 다녀 온 당시의 분들은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군대 얼차려, 기합과 가혹행위 그 경계는 무엇일까?

어느 날 동기 중 친한 녀석인 J가 사고를 쳤습니다. 저녁에 화장실에 가던 J가 야간 근무 중인 신병들을 만났습니다. 암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러자 J는 "난 조교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두운 곳이라 신병들은 누군지 분간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화장실 안에 진짜 조교가 볼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조교 중 가장 악질인 조교였습니다. 조금 후 조교가 우리 내무반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시 늦은 밤이라 신병들은 이미 침상이 잠을 청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조교 : "모두 기상!"
조교 : "어떤 새끼야? 화장실서 조교라고 한 놈 앞으로 나와!"

친구 J는 두려움에 선뜻 앞으로 못나갔습니다. 조교는 다시 외쳤습니다.
조교 : "안나오면 너희들 오늘 다 죽는 날이다. 빨리 나와!"

J가 앞으로 나갔습니다. 조교의 주먹이 J에게 날아갔습니다.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 다시 주먹을 날렸습니다. 침상 앞에서 서있는 우리들은 살벌한 광경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조교는 M16 소총을 들더니 개머리판으로 J의 가슴을 가격했습니다. 지켜보는 저는 조교를 향해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는 신교대가 아니던가. 그러나 악명높은 조교는 폭력을 예사로 즐기던(?) 악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 내무반 신병들은 그대로 서서 밤을 새웠습니다. 조교는 연대책임으로 우리 내무반 신병들은 잠을 재우고 않고 서있게 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립니다. 

일요일이 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일요일엔 종교 행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불교를 선택했습니다. 불교는 신교대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처 사찰로 갔습니다. 거기에 일반 현역 병사들도 함께 종교 행사를 했습니다. 도착한 사찰에서 긴장감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전초 손 들어!"

저는 손을 들었습니다. 야릇한 미소를 던지며 그 현역병은 말했습니다.
"너희들 고생이 많다. 그런데 나중에 보자. 그래도 여기가 좋을 거야."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 복도 없지. 그리고 나중에 사찰에서 다른 현역병으로부터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얼마 전 전초부대가 비무장지대 수색 중 지뢰를 밟아 1명이 죽고 여러 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공포감이 다가왔습니다.

다시 신교대로 돌아왔습니다. 동기 한 명이 냇가 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어제까지 저기에 있던 소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소는 다리가 세 개 였습니다. 다리가 세 개인 이유는 발목지뢰를 소가 밟아 다리 하나를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은 들은 소식으로는 다리가 세 개인 소는 도살되었다고 합니다. 큰 비가 내리면 냇가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발목지뢰가 흘러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8월의 태양 아래 치열한 신교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치받은 곳은 전초중대의 백골소대였습니다.
이런 젠장, 백골소대는 바로 지뢰밟아서 1명이 사망했다는 그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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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god의 김태우가 제대를 했다는 소식인데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군기가 센 수색대에서 복무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고참 시절의 god는 신과같은 존재였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군대 이야기 중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고참 이야기가 있는 듯 합니다. 약 20년전 군대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군생활 회상록에 적었던 고참에 대한 글인데 아마도 그 시절을 추억하거나 현재 군대 복무하더라도 온도차는 있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od 김태우 군대 시절 : 육군 웹진] 

군대를 모르시는 여성분들이나 시니컬하게 생각하는 남성분들에게는 다소 유치하거나 거북한 글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왜 그렇게 생활하고 추억하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하면서 가볍게 재미로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우선 글을 읽는데 주의사항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를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읽을 가치가 없을 수도 있으니 심각하게 고참이나 군대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이 글을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군발이와 같이 다소 비하적 표현은 당시 용어를 그대로 옮긴 것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쓰인 용어나 단어는 가감없는 당시 표현이라는 점을 밝힙니다.(요즘은 어떤 표현을 쓰는지 모릅니다.)

먼저 고참의 전문입니다. 부대마다 명칭은 다릅니다. 고참수칙이라든지 고참예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참의 전문

[정의] 고참 앞에서는 복종순종하는 군인이 된다.

[전문] 고참은 항상 자기 밑이나 친구가 아니다.
하나. 고참은 성모마리아의 기둥서방이다.
하나.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다.
하나. 고참은 을지문덕 보다 군번이 1번 빠르고 강감찬과 더블백 동기이다.
하나. 고참이 버린 담배꽁초는 길이길이 3년동안 모아 물려준다.
하나. 고참의 말은 진리이고 생명이다.

고로, 고참이 되려면 짬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
[출처 : 블로그]

*짬밥 : 군대에서 단체로 먹는 밥인데 쪄서 만든 밥입니다. 일반적으로 솥 밑 바닥에 불을 지펴서 바로 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루떡 찌듯이 밥을 쪄낸 것을 짬밥(또는 찜밥)이라고 합니다. 이 밥을 먹고 세월이 흘러 어느정도의 연륜을 쌓았나 하는 군대 고참의 기준으로 짬밥을 얼마나 먹었나 하기도 합니다.

이등병 때는 언제 일병을 달고 상병이 되고 끝내 병장의 반열에 들어 제대할까 늘 고민했는지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규율이 느슨하면 전쟁에서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군대 조직의 특성상 고참의 위치가 중요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개성 보다는 전체 구성원의 일사분란한 팀워크가 제일 중요한 군대 조직의 특성인 것입니다.  

고참의 전문은 업그레이드(?)된 버전도 있나 봅니다. 인터넷에서 소개된 글입니다. 내용이 유치하기는 합니다.

고참,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고, 정신이 멍멍해지는 말이다.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생이며, 석가모니와 같이 도를 닦으셨고, 달마대사와 같이 쿵후를 배우고 연구하셨으며, 칸트와 같이 철학을 논하셨으며, 성모 마리아와 엘리자베스의 기둥서방이시다.

고참은 모래알로 짬밥을 만드시고, 눈덩이로 우유를 만드시고, 고참은 동쪽하늘에 떠 오르는 커다란 태양과도 같으시며 쫄병은 그 주위를 하릴없이 맴도는 조그마한 위성이다. 

고참은 베에토벤에게 음악을, 펠레에게 축구를, 칼루이스에게 육상을, 피카소에겐 미술을, 히틀러에겐 독재를 그리고, 나에게는 노가리를 손수 가르치셨다. 고참이 던진 돌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뛰어가서 맞아야하고, 고참이 하는 모든 나쁜 말들은 일일이 메모를 해야한다.

(중간 생략)

또한 고참의 매력은 모나리자 마음을 자극했고, 클레오 파트라의 밤잠을 설치게 했으며, 양귀비에겐 상사병을 앓게 했다.


그리고 20년전에 군대에서 유행하던 군발이 10대 강적입니다. 지금은 군대에서 이같은 일이 거의 없을 듯 합니다만 과거에는 군인들을 괴롭히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의미로 보면 군대가 나태해지만 안되고 늘상 군기가 살아있어야 유사시 강한 군인정신을 발휘하기 때문도 있다고 위안을 해봅니다.(사실 비인간적인 처사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군발이 10대 강적

겨울에는 빵빠레
여름에는 완전군장
먹을만하면 식사끝
졸기만하면 선착순
휴가갈만 하면 비상
공부할만 하면 작업
면회만 오면 외출외박 금지
편지 쓸만 하면 소등
쉴만 하면 휴식 끝
잠들 만 하면 기상

[참고] 빵빠레
일반 사람들에게 ‘빵빠레’라는 아이스크림능 연상하겠지만, 군대에서 ‘빵빠레’는 악몽입니다. 곤한 잠을 자다가 갑작스런 ‘집합’(빵빠레) 소리에 단잠 깨고, 연병장(군대 운동장)을 돌면서 온갖 기합이란 기합은 다 받는 얼차려 종류입니다. 특히 겨울 밤에 '팬티만 입고 군화신고 연병장에 집합'하면 그 날은 끝장입니다. 한편 빵빠레에서 파생되는 얼차려가 여름에는 ‘모기 시식'입니다. 한 여름 팬티바람으로 연병장에 서있다보면 일반 모기보다 전투력이 훨씬 강한 군대 모기들이 달려들어 피를 빨아먹는데, 차려 자세로 가만히 서 있어야 하니, 그날은 그냥 모기들의 잔칫날입니다.

[출처 : 다음 카페]

과거 군대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여름에 입대했던 군번이다보니 모기회식이나 빵빠레와 같은 얼차려를 많이 당하기도 했습니다. 군대라는 조직이 '사느냐 죽느냐'라는 극한 전쟁 상황을 가정하여 훈련을 하는 곳인 만큼 개인들 선택의 폭이 거의 없는 점도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한 군대 특성을 감안해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면 보다 너그러운 마음에서 군대와 군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군대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과거와 같은 얼차려는 많이 사라졌을 듯 합니다. 국방부에서 운영한다는 동고동락 블로그를 보면 많이 개선된 군대 문화를 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엄격한 규율과 명령체계를 기본 바탕으로 하다보니 실제 군대라는 울타리에서 체감하는 정신적 고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는 없을 듯 합니다. 김태우 병장의 제대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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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