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K가 대만 갑부의 외동딸을 만나서 소설같은 사랑을 하게 된 사연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가 나간 이후 매일 많은 분들이 다음 편을 기대해 주셨습니다. 이번 최종편은 브라질에서 대만을 거쳐 한국까지 오게 된 이야기입니다. 1부와 2부를 못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골라'(2부) : 성당에서 둘 만의 결혼식

대만행 비행기를 탄 K와 S는 꼭 축복받은 결혼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대만에서  재력가인 S의 아버지는 외동딸이 사랑을 택해 브라질로 몰래 떠나버린 후 상심해 있었습니다. 이제는 분노 보다는 자신이 반대하는 한국 남자 K를 위해 몰래 야반도주하듯이 브라질로 도망쳐버린 딸에 대한 배신감이 컸습니다.
 
K와 S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만에 도착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장인어른과의 만남은 K에게 배수의 진을 친 심정이었습니다. 드디어 K는 S의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K는 무릎을 끓고 S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 누구 보다도 따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

S의 아버지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어버린 딸의 사랑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K는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다시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따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S의 아버지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습니다.
"브라질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나?"
"옷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자네가 브라질에서 옷장사로 최고가 된 후 다시 나를 찾아오게. 그러면 인정해 주겠네."
"예,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K는 장인어른의 제안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자신도 있었습니다. S의 아버지는 자수성가로 갑부가 된 분이었습니다. 순순히 K를 인정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지만 S가 고생을 통해 뭔가 깨닫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K와 S는 대만을 떠나 다시 브라질로 돌아왔습니다. K는 대만으로 떠날 때 보다 더 비장한 마음으로 브라질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K는 브라질로 돌아오자 마자 더 열심히 "골라 골라"를 외치며 장사에 몰두했습니다. 잠자는 시간 마저 줄여가면서 옷장사에 올인했습니다. 점점 K의 옷가게는 번창해 갔습니다. 당시 브라질의 한인 사회에서도 K의 옷장사로의 성공이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한인들 중에 옷장사를 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K로부터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K는 마음이 넉넉한 친구라서 브라질의 한인들에게 비법 전수는 물론 한인들의 여러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를 못했습니다.

브라질에서 K의 옷장사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K의 "골라 골라" 다국어 메들리는 성공의 보증수표와 같았습니다. K는 사업이 번창해 갈수록 조금만 더 고생하면 S의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S도 사업의 번창에 따라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일요일에는 둘 만의 결혼식을 거행한 신부님의 성당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영화 'Love Story' 한 장면]

그러나, 불행은 예기치 않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잘 나가던 K의 의류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한 순간에 망하게 된 것입니다. K와 S가 그토록 희망을 꿈꾸던 의류 사업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K가 너무 한인들을 믿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K의 옷장사가 성공을 거두자 K에게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접근한 한인들이 사기를 친 것이었습니다. K는 한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자금들을 쉽게 빌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 한인들이 돈을 빌려간 후 만기가 되어도 갚지않고 도피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K의 의류 사업은 한꺼번에 밀려오는 자금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도가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K와 S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대만에 갈 수가 없게 되거나, 다시 처음부터 사업을 일으키려면 수많은 세월이 필요할 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좌절과 포기를 모르던 K도 자신감을 잃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패배감일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희망이 사라진 S는 더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K와 S는 늘 믿음과 용기를 주던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신부님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K와 S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잠시나마 K와 S는 신부님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용기를 얻어 성당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전화가 왔습니다. S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만에 계신 S의 아버지였습니다.
"요즘 몸은 건강하니?"
"네. 아버지."

"왜 목소리가 힘이 없니?"
"아니예요. 아버지가 웬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사랑하는 내 딸아. 힘들면 힘들다고 왜 말을 못하니?"
"......"
S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도저히 전화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Love Story / Taylor Swift]

"K를 바꿔주라. 딸아."
"네, 접니다. 어르신."

"브라질 생활 정리하고 대만으로 돌아오게."
"네. 아닙니다."

"자네의 브라질 생활을 다 알고 있다네. 의류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알고 있고 사업이 부도난 것도 다 알아."
"네. 어떻게..."

"브라질서 사업하는 지인들로부터 소식을 수시로 듣고 있었어. 자네의 사업 수완과 성공을 이미 듣고 있었어. 자네가 최근에 사업이 부도난 것은 자네의 잘못은 아니잖아. 너무 사람 믿지 말게. 그만 내 딸과 함께 대만으로 돌아오게. 자네가 이겼네."
"장인어른...."

K와 S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K와 S는 브라질 생활을 접고 대만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K는 다시 재기해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장인어른은 두 사람의 사랑과 결혼을 인정한 상태이니 고집을 피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S가  브라질 생활을 힘들어하고 대만의 고향 생각을 많이 해 더 이상 브라질에 머물기는 힘든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S의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두 사람의 브라질 생활을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S의 아버지는 브라질의 지인들을 통해 사랑하는 딸이 잘 지내는지 늘 궁금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K의 사람 됨됨이와 사업 수완을 멀리서 지켜봤던 대만의 장인어른은 K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갑작스런 부도로 인해 S가 상심하고 괴로와 하는 모습을 더 이상 못본체 할 수 없었습니다.

대만에 도착한 K와 S는 거기서 새로운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장인어른의 사업에 참여하기 보다는 선교사의 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장인어른도 같은 종교라서 적극 후원했습니다. S의 아버지는 당분간 두 사람이 홀가분하게 그 동안의 고생을 잊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기도 했습니다. K는 대만의 오지를 돌며 선교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K와 S가 심적으로 안정을 찾고 행복한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된 셈이었습니다.

몇년의 세월이 지난 후, K는 한국과의 무역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부산과 대만을 오가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부산에 머무르는 기간도 많았습니다. 무역사업도 했지만 주말을 이용해 K는 선교사 일도 병행했습니다. K는 무엇이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였습니다. 한국 남자 K와 대만 갑부의 딸 S는 브라질서 시작해 대만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사랑과 행복을 함께 했던 것입니다.


[영화 'Love Story' 한 장면]

저는 K가 몇년전 한국에 도착했을 때 대학 1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캠퍼스 앞의 주점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K가 대학을 중퇴하고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지 15년여가 지난 후 처음이었습니다. 그와 밤새도록 그 동안의 해외에서의 삶과 S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생활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K는 술을 한잔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 주당이던 K가 아니었습니다. 선교활동하면서 술은 완전히 끊었다는 것입니다. K에게 물었습니다.
"야. 그런데 너 어디서 선교를 하냐?"
"주로 술집에서..."


"장난하냐? 술집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는 남들이 다 하는 곳 보다는 비록 힘들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서 선교활동을 한단다."

"그런데 술을 한잔도 하지 않고 어떻게 선교가 가능하냐?"
"지금까지 한 잔도 안했잖아. 물 한잔으로 이렇게 있잖아."

저와 친구들은 도저히 K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밤새도록 대학교 앞으로 주점을 돌며 K를 시험했습니다. 새벽 5시가 되었건만 K는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술 한잔도 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물이나 콜라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친구들이 이미 지치고 졸려서 몸을 가눌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K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래도 못믿겠냐?"
"K야. 우리들이 졌다. 이제 집에 가자."

친구 K의 러브스토리 3부작 최종편은 여기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어떤 분은 요즘같은 현실에 어찌 K와 S의 순수한 사랑이 가능한지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K와 S의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표현상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K는 정말 지독한 녀석입니다. 다시 만나면 부산 도착 후 선교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갖고 K와 S의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는 러브스토리를 읽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5월의 연휴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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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친구 K의 러브스토리(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가 처음 소개되자 2부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2부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실제 주인공인 친구 K의 러브스토리는 훨씬 더 감동적인 이야기이지만 세세한 부분들을 표현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한국 남자 K와 대만 여자 S는 브라질 공항에서 곧 다시 만날 것을 맹세하면서 그렇게 애타는 이별을 했습니다. K는 사랑하는 S가 멀리 대만으로 떠난 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S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었습니다.

하루가 한달과 같이 느껴지던 날들이 계속 흘렀습니다. K는 매일 매일이 그리움과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움은 더 애절한 사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대만으로 떠난 S의 마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기나 긴 기다림 속에, S가 마침내 브라질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S는 대만으로 간 후, 부모님을 따돌리고 브라질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S는 대만 갑부의 외동딸인지라 부모님은 애지중지 키운 딸이 미국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S가 설마 가난한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브라질에 머물기 위해 떠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K와 S는 다시 브라질에서 둘 만의 달콤한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브라질은 사랑에 빠진 K와 S를 위한 지상 낙원과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비자가 만료되어 다시 S는 대만을 다녀와야 하는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지만, 결혼을 결심한 K와 S에게 만료되는 비자 보다 더 큰 장벽이 있었습니다. 사실 K는 S가 대만 갑부의 딸인지 모르고 그녀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S도 굳이 자신의 신분을 K에게 밝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결심한 이상 S는 자신의 신분을 K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K는 S가 대만 갑부의 외동딸인 것을 알고나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미 S를 사랑하는 마음은 국경을 초월했지만, K 자신은 가난한 해외 방랑객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K의 마음을 헤아려 자신의 신분을 말하지 못했던 S는 K에게 "부모님을 설득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습니다. 

국경을 넘어, 신분을 넘어 K와 S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결실로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S는 다시 비자 만료의 시기가 다가오자, K에게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아오기로 약속하고 다시 이별을 고했습니다. 


[사진]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김태희 김래원 주연)

늘 헤어짐은 K와 S에게 고통스런 날들이었습니다. 이번 이별은 K와 S에게 마지막 도박이었습니다. 무사히 S가 대만의 부모님을 설득해 결혼 승낙을 받아온다면 모르지만 만약 실패하면 두 사람은 영영 이별할 수도 있는 결단이었기 때문입니다. K는 불안한 마음으로 브라질 공항에서 또 다시 S를 멀리 떠나보냈습니다. K는 멀어져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그 동안 S를 처음 만난 때부터 함께 즐거웠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K는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S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쳐갔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런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S가 브라질로 돌아왔습니다. K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리고 결혼 승낙을 받았는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부모님께 결혼 승낙은 받았어?"
"아니. 그냥 도망왔어."

슬픈 표정으로 S가 대답을 하자, K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헤어져야 하는 거야."
"K야. 우리 브라질서 함께 살자. 우리 둘이 사랑하면 되는 거잖아."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그들의 운명적 사랑은 아무도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대만으로 가서 결혼 승낙을 받아오려고 했던 S는 아버지의 엄청난 분노와 반대에 직면했고, 그대로 도망치듯 브라질로 건너올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시일을 지체하다가는 아예 대만에 붙잡혀 생이별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갑부의 아버지가 소중한 외동딸을 가난한 외국 남자에게 시집가라고 흔쾌히 허락을 해줄까 싶기도 합니다.)

K와 S의 사랑은 국경이나 신분의 장벽이 가로막을 수록 더 깊어만 갔습니다. 두 사람은 브라질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잘 알고 지내던 신부님에게 부탁을 해서 브라질의 모 성당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가졌습니다. 비록 초라한 결혼식이지만 두 사람은 행복을 키워나가면서 대만의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제 K와 S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경제적인 자립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K는 독창적인 사업을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K는 한국에서부터 아르바이트를 두루 섭렵했고, 해외에서도 여러가지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K가 시작한 사업은 밑천이 적게 드는 옷장사였습니다.

K는 기발한 발상으로 옷장사를 했습니다. K는 브라질에서 "골라 골라~ 어저씨도 골라~ 아줌마도 골라~ 한벌에 5천원~" 이런식으로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남대문시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브라질에서는 신기한 장면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K는 "골라 골라"를 브라질어(포루투갈어)는 물론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으로 돌아가며 외쳤습니다. 한 마디로 '골라 골라'의 다국어 버전 메들리였습니다. 또한, 대학 1학년 시절에 K의 주제곡인 CM송 메들리가 브라질에서 '골라 골라' 다국어 메들리로 승화한 셈이었습니다.

신기한 옷장사를 본 브라질 사람들은 K에게 옷을 사기 위해 몰려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K는 짧은 기간 동안에 어느정도 돈을 벌었습니다. K와 S는 돈도 벌고 결혼 생활도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제 K와 S는 브라질의 사람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브라질에 사는 한국인 사회에서도 K의 장사 수완이 알려지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K는 경제적으로도 어느정도 자립의 기반을 다졌지만, 축복받은 결혼생활에 대한 갈증이 커져 갔습니다. S는 K와 함께 있을 때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S는 혼자서 대만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곤 했습니다. K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K는 S와 함께 대만을 다녀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K와 S는 무겁고도 장엄한 심정으로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반드시 대만의 장인어른을 설득하겠다고 마음먹은 K는 비장했습니다.

[친구 K의 러브스토리 2부를 마치면서]
K의 러브스토리가 여러 국가를 망라한 이야기이고 결혼 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아서 마지막 3부로 끝내야 할 듯 합니다. 지금까지는 브라질에서의 생활이었고 마지막 스토리 완결편은 브라질, 대만, 한국에 이르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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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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