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3.19 여고생 성폭행한 경찰, 얼굴 공개 안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78)
  2. 2009.06.03 서울대 교수들 민주주의 요구 시국선언 전문과 1987년 6월 항쟁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
  3. 2009.05.04 용역깡패들 폭력을 본 철거민이었던 나, 25년전과 비교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범 김길태 사건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가운데 현직 경찰이 여고생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서울 남대문 경찰서 소속 34세의 나 모 경장이 인터넷 채팅 조건만남 사이트에서 17세 여고생에게 30만을 주겠다고 모텔로 유인해 성폭행한 사건입니다.
 
게다가  나 모 경장은 여고생에게 자신이 경찰이라고 밝히며 '성관계를 갖지 않으면 성매매를 하려한 혐의로 처벌하겠다'고 협박한 후 성폭행을 했다고 합니다. 더 기가 찬 것은 나 모 경장은 청소년 성매매 단속 임무를  맡고 있었고 사건 발생 후 은폐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이제 갓 중학생이 된 13세의 여중생을 성폭행한 후 목졸라 죽인 흉악범 김길태를 사건 현장 근처에 두고도 제대로 검거하지 못해 망신을 당한 경찰이 국민적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여고생을 성폭행하는 일을 저질렀다니 어이없고 황당하기만 합니다.

이런 사건을 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성범죄 흉악범과 뭐가 다른지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성난 민심은 '김길태의 얼굴을 공개했듯이 성폭행 경찰의 얼굴도 공개하라'는 분노를 쏟아내고 있을 정도입니다. 일부 네티즌은 '얼마 전 논란이 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논리대로 라면 경찰의 성폭행도 좌파교육 탓인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경찰의 근무 기강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반증입니다. 이번 성폭행 경찰이 소속된 남대문 경찰서는 숭례문 화재, 용산 참사, 서울광장 폐쇄 등 최근 몇년 사이 대형 사건의 중심에 있던 곳입니다.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서 근무하는 경찰서인 만큼 경찰로서의 도덕적 품위는 물론 민주주의 법질서를 잘 지키고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입니다.
 
최근 여중생 살해범 김길태 사건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성폭력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번 경찰 성폭행을 비롯 대학 축구선수 2명의 부녀자 상습 성폭행, 부산서 김길태 모방범죄 등 사건이 하루 사이에도 끊이지 않고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캐나다에 공부하러 간 한인 유학생 6명이 여고생 등 부녀자들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도 최근 발생한 바 있어 나라 망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성범죄 공화국이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이는 사회지도층 인사나 공직자들의 인식이나 품행부터 바로잡아야 할 문제입니다. 지난해 10월경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공무원이 맞선 본 20대 여성을 성폭행해 강간 치상죄로 입건된 사건도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의 현재 성범죄 문제는 위로부터의 윤리의식 실종이 더 문제인 듯 합니다.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국회의원을 비롯 사회지도층부터 성윤리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할 상황인 것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 처럼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지도층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는 이번 경찰이나 공무원의 성범죄는 물론 제2의 김길태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단지 전자발찌 착용을 비롯 사형 집행이나 보호감호소 설치와 같은 물리적 수단으로만 해결될 사안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경찰 유착 의혹을 받는 강남 성매매 유흥업소들에 대한 문제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례적으로 흉악범 김길태와 같은 성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한 경찰에게 쏟아지는 국민들의 눈초리는 '왜 성폭행 경찰의 얼굴과 신원은 공개하지 않냐'는 비아냥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에는 유난히 법치주의를 내세워 서울광장 마저 차벽으로 막고 미란다 원칙도 무시한 채 무차별 촛불시위 시민들을 구속하던 치안력을 보여준 경찰이 성범죄와 같은 민생치안에는 구멍이 술술 새는지 곰곰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공권력의 막장 드라마(?)가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이고 있습니다. 경찰에 쓰이는 국민의 세금은 권력자들의 파티가 아니라 국민 생활 안전을 위한 혈세입니다. 경찰의 사명은 오직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을 섬기고 봉사하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명령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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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22년전 군사독재 정권 시절, 1987년의 봄은 교수들을 비롯한 지식인 집단에서 시국선언의 형태로 민주주의 요구가 못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서울대를 비롯해 고려대 연세대 등 전국 교수들이 민주화 요구를 시국선언으로 발표합니다. 이 시국선언문들은 곧바로 각 대학의 대자보로 옮겨졌습니다. 대학생들은 "교수님. 힘네세요" 라고 응원하면서 민주주의의 열망을 반영했습니다.

특히 군사정권의 고문에 의한 박종철 학생의 죽음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그 진실이 폭로되면서 종교계까지 들불처럼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한열 학생이 전경들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면서 민주주의 열망은 더욱 가열차게 불타오릅니다. 전국 대학생들은 1987년 6월 10일을 전후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전국 곳곳에서 전개하고 시민들이 학생들을 지지하면서 결국 군사독재 정권에 6. 29 선언을 통해 항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9년 6월 오늘, 서울대 교수 124명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한 눈을 파는 사이 독재의 그늘은 드리워지고, 그렇게 역사는 반복되는가 봅니다.

이한열 열사가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후 6월 항쟁의 도화선인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의 민주주의 요구 시국선언 전문]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은 단지 애도와 추모의 물결만은 아니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착잡하기 이를 길 없는 심경으로 나라의 앞날을 가슴속 깊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각계각층의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러낸 것을 계기로 우리 모두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으며 또 열어야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남발되었고 온라인상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수렴이 가로막혔으며, 이미 개정이 예고된 집회 관련 법안들의 독소조항도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야의 동의로 지난 3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출범했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회의 공개나 국민여론 수렴을 반대함으로써 위원회는 표류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법 처리 강행 방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에 따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전국 법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여론에 따라 일단 포기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탈바꿈하여 되살아나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도 큰 위험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때 집회의 강제 해산과 노동자 대량연행과 구속으로 맞서는 일 또한 구시대적 대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 과정 또한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검찰은 국가원수를 지낸 이를 소환조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3주가 지나도록 사건 처리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추가 비리 의혹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인격적 모독을 집요하게 가했다. 이는 엄정한 공직자 비리 수사라고 하기 곤란하며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농성에 대한 무모한 진압으로 빚어진 참사는 올해 벌어질 갖가지 퇴행적 사건을 예고했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이 수사기록 중 핵심적인 대목의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재판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서울 서부지법 민사12부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세입자의 재산권, 주거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현 정부의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적 애도 속에 주어진 국민적 화해의 소중한 기회를 잘 살리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를 우리는 간절히 희망하며, 다음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해야 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1. 현 정부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1.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며,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현 정부는 용산 참사의 피해자에 대해 국민적 화합에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경제 위기 하에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집권층이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서 타오르고 있는 민주적 요구에 대해 진지하고 성의있게 대응함으로써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국민적 화합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큰 길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을 것을 간곡히 바란다.

2009. 6. 3.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서명자 명단 (2009년 6월 3일)
강우성 강진호 계승혁 고철환 구명철 구인회 권태억 김길중 김도균 김빛내리 김상종 김세균 김영민 김용익 김월회 김유용 김인걸 김장주 김재법 김종욱 김종일 김진수 김춘수 김현균 김혜란 김효명 남동신 류재명 모경환 문중양 민은경 박경숙 박동열 박명규 박배균 박태균 박현섭 박흥식 박희병 방민호 배은경 배철현 백도명 변현태 봉준수 성노현 손영주 송석윤 신광현 신종호 심봉섭 안광석 안삼환 양동휴 양현아 오명석 오석배 오순희 오용록 우희종 유용태 윤순진 윤여창 윤여탁 윤제용 이강재 이건수 이경우 이병민 이성중 이성헌 이애주 이인호 이일하 이창숙 이철범 이현숙 이형목 임호준 임홍배 장덕진 장승일 전종익 전태원 정근식 정용욱 정원규 정향진 조국 조영남 조현설 조형택 조흥식 최갑수 최권행 최무영 최영찬 최윤영 한상진 한숭희 한영혜 한인섭 한정숙 허원기 홍기선 홍성욱 홍승권 홍재성 홍진호 황상익

김명환(인문대) 김민수(미대) 김정욱(환경대학원) 김현진(인문대) 이건우(인문대) 이근(국제대학원) 이동수(환경대학원) 이상훈(사회대) 이용환(농생대) 이준호(자연대) 장진성(인문대) 전경수(사회대) 최병선(사회대) 최진영(사회대) 이상 124명

가나다 순 정리 (동명이인은 마지막에 나열하고 단과대 표시)

1987년 명동성당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시위 중인 대학생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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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약한 자가 더 약한 자를 해치고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한 자의 등을 쳐먹고 살도록 돼 있다." 영화 "똥파리'는 똥파리같은 인생들의, 숨쉬기조차 힘든(Breathless) 절망적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줄기 희망은 있지만.

가정의 달을 맞아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들과 정겨운 시간을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언제 닥칠지 모를 용역깡패들의 폭력과 위협으로부터 불안과 공포에 떠는 철거민들도 있습니다. 싱그럽고 따사로운 오월의 햇살 아래 모두가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단지 잠이라도 편안히 잘 수 있는 공간 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도시 빈민들의 절박한 삶, 생존을 걱정하는 도시 빈민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단 돈 5만원에 판자집 철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라는 미자라지님의 참회 글을 읽어보니 약 25년전 직접 용역깡패들을 경험한 철거민들의 아픔과 고통이 생각이 납니다.

지난 1980년대의 우리나라는 폭력과 공포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는 특히나 군사 독재가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라 정치사회적으로 '약육강식'이 그대로 통용되던 때였습니다. 군사 독재 정부는 '순화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깡패들이나 반체제 인사들을 강제로 군대나 감옥에 끌고가 강제 노역이나 고문을 일삼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조폭 집단은 눈에 거슬리면 무조건 잡아가서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해 폭력을 가차없이 행사했던 것입니다. 순화교육은 조폭정부가 깡패를 이용해 자신의 정당성을 홍보한 전형적인 폭력집단의 통치방식의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시대에 조폭 깡패들이 군사정권과 경찰과 야합해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폭력이라는 힘, 물리적 힘을 이용해 통치하는 군사정부나 조폭 깡패들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누가 더 큰 힘을 갖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폭력을 통해 약자를 억누르고 자신의 이익을 착취하는 형태는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1986년 어느 날, 저는 학교 공부를 마치고 홍은동의 할머니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집과 동네 집들은 모조리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을 잃고 멍하게 폐허만 바라봤습니다. 겨우 방 한 칸에 옹기종기 함께 모여살았던 당시 서민들의 삶의 현장이 순식간에 철거를 당했던 것입니다. 할머니집의 부엌 옆에 1평도 안되는 쪽방을 임시로 만들어 공부하던 저는 황당했습니다.

막내 삼촌이 다가와 "니 책하고 라디오는 겨우 건졌다"며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던 물건들이 폐허 속에 묻혀 버리다니. 잠시 정신을 추스리고 삼촌에게 그 날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낮에 일하러 간 사이를 틈 타, 갑자기 용역 깡패들과 철거 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쳐 동네 집들을 모두 철거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철거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돌아온 주민들은 살림살이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집안의 가구나 주요 물건들은 겨우 수습을 했지만 나머지 작은 물건들은 그대로 폐허 속에 묻혀 버린 것이었습니다.

당시 용역 깡패들은 웃통을 벗고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위협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막내 삼촌은 아마추어 권투선수를 했던 분인데 수많은 깡패들의 위협에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깡패들은 온 몸에 문신이 가득했고 각목과 철근 쇠파이프를 들고 생명을 위협하며 설쳐대면 주민들도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당시 홍은동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어 본격적인 철거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80년대 서민들은 단 한 칸의 방이라도 얻기 위한 생존권 문제로 개발조합측과 협상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제대로 협상도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 생존해야 하는 서민들에게 조합측은 가혹했습니다. 용역 깡패들을 동원한 강제 철거였습니다. 서민들은 서울의 달동네에서 밀려나 수도권 변두리로 또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방 한 칸에서 고단한 삶이지만 열심히 살아왔던 서민들이 한 순간이 집과 살림살이를 잃고 가야 할 곳은 서울에 없었습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용역 깡패들은 도시 빈민들을 위협하곤 했다


주민들은 하루 하루 먹고 살기 바빠서 조직적인 저항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저녁에 퇴근한 큰 삼촌과 일부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조합장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조합장은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조합장의 집에서 연좌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농성이라고 해봐야 집에서 앉아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던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조합장을 만나서 항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늦어도 조합장은 얼굴도 내밀지 않았습니다. 조합장의 집에서 몇시간을 앉아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밖에서 거친 욕설이 들리면서 일단의 깡패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두목 쯤 되어 보이는 깡패가 웃통을 벗고 외쳤습니다.
"너희들 다 안나가. 다 죽여버린다. 개**들"

주민 중 한 명이 깡패들에게 '우리는 조합장과 대화를 하기 위해 왔으니 나가 달라'고 요청했으나, 깡패들이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주민들도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깡패들은 완력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저는 말도 못하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머리 속으로는 깡패들에게 달려들어 주먹으로 면상을 때려주고 싶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가 얼마나 비겁했는지 지금도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누가 몰래 경찰에 연락을 했습니다. 오랫동안을 깡패들의 위협에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한 참 후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도 깡패들과 한 패였습니다. 주민들은 전부 나가라며 깡패들과 같은 이야기만 반복했습니다. 허무하게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큰 삼촌 그리고 주민 대표 중 한 명은 밖으로 나와 경찰파출소를 찾아서 조폭 깡패들의 폭력 사태에 대해 경찰이 적극 수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파출소장은 알았다고 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폭과 경찰 그리고 조합은 한 패였습니다.

결국 주민들은 허무하게 수십년 살던 집들을 용역 깡패들에 의해 철거당하고 갈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시 은동 주민들은 가난하지만 서로 이웃 사촌 처럼 정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잠잘 곳도 없어지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집이 없어진 주민들은 당장 잘 곳이 없어 여관방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도 뿔뿔이 흩어져 당장 생존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하루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주민들은 매일 직장에서 나가야 했고 하루 빨리 도시 외곽의 빈민가로 이사를 가야 했던 것입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지만 가난한 도시 빈민들은 용역 깡패들의 폭력 앞에 무참히 무너지고, 다시 도시의 외곽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주민들을 뭉쳐서 조합측과 깡패들의 폭력에 맞서 싸우고도 싶은 심정이 굴뚝 같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당장 아이들과 가족들의 생계와 생활을 먼저 생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거대한 폭력 앞에 굴복하지만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슬픔과 분노를 거두고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때 삼촌은 안산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서울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서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직장도 퇴직하고 안산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저도 학교 문제로 다른 친척 집으로 거쳐를 옮겨야 했습니다. 서울의 서민들이 철거를 당해 수도권으로 밀려나는 일반적 형태입니다. 지금도 안산에 가면 옛날 철거민 시기의 아픔이 생각나곤 합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25년전 용역 깡패들 보다 더 잔인하다


2009년의 오늘은 어떤가요? 용산 철거민 대참사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철거민들이 죽었습니다. 거기에도 경찰과 용역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한 철거민들의 현실입니다. 25년 전과 달라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25년전 보다 더 폭력적인 철거와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시 철거민들에게는 가혹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인 풍요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철거민 사태와 같은 복지 문제나 폭력적인 통치 형태를 보면, 지금 25년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착각하게 하는 현실입니다.

그 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살았던 철거민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불끈불끈 화가 치밀곤 합니다. 실제 한 순간에 집을 잃어보고, 폐허가 된 자신의 삶의 흔적들을 바라보고, 무기력하게 조폭 깡패들의 위협에 굴복하고, 그래도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살아야 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철거민들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느껴본다면 우리는 함부로 그들을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배려와 관심을 두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약육강식의 사회라면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가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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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