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철거민참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5.04 용역깡패들 폭력을 본 철거민이었던 나, 25년전과 비교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2. 2009.02.09 정월대보름, 창녕 화왕산 억새 산불참사 문제점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
  3. 2009.02.04 강호순 팬카페와 미친 사회 신드롬 by 진리 탐구 탐진강 (19)


"약한 자가 더 약한 자를 해치고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한 자의 등을 쳐먹고 살도록 돼 있다." 영화 "똥파리'는 똥파리같은 인생들의, 숨쉬기조차 힘든(Breathless) 절망적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줄기 희망은 있지만.

가정의 달을 맞아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들과 정겨운 시간을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언제 닥칠지 모를 용역깡패들의 폭력과 위협으로부터 불안과 공포에 떠는 철거민들도 있습니다. 싱그럽고 따사로운 오월의 햇살 아래 모두가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단지 잠이라도 편안히 잘 수 있는 공간 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도시 빈민들의 절박한 삶, 생존을 걱정하는 도시 빈민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단 돈 5만원에 판자집 철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라는 미자라지님의 참회 글을 읽어보니 약 25년전 직접 용역깡패들을 경험한 철거민들의 아픔과 고통이 생각이 납니다.

지난 1980년대의 우리나라는 폭력과 공포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는 특히나 군사 독재가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라 정치사회적으로 '약육강식'이 그대로 통용되던 때였습니다. 군사 독재 정부는 '순화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깡패들이나 반체제 인사들을 강제로 군대나 감옥에 끌고가 강제 노역이나 고문을 일삼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조폭 집단은 눈에 거슬리면 무조건 잡아가서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해 폭력을 가차없이 행사했던 것입니다. 순화교육은 조폭정부가 깡패를 이용해 자신의 정당성을 홍보한 전형적인 폭력집단의 통치방식의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시대에 조폭 깡패들이 군사정권과 경찰과 야합해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폭력이라는 힘, 물리적 힘을 이용해 통치하는 군사정부나 조폭 깡패들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누가 더 큰 힘을 갖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폭력을 통해 약자를 억누르고 자신의 이익을 착취하는 형태는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1986년 어느 날, 저는 학교 공부를 마치고 홍은동의 할머니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집과 동네 집들은 모조리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을 잃고 멍하게 폐허만 바라봤습니다. 겨우 방 한 칸에 옹기종기 함께 모여살았던 당시 서민들의 삶의 현장이 순식간에 철거를 당했던 것입니다. 할머니집의 부엌 옆에 1평도 안되는 쪽방을 임시로 만들어 공부하던 저는 황당했습니다.

막내 삼촌이 다가와 "니 책하고 라디오는 겨우 건졌다"며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던 물건들이 폐허 속에 묻혀 버리다니. 잠시 정신을 추스리고 삼촌에게 그 날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낮에 일하러 간 사이를 틈 타, 갑자기 용역 깡패들과 철거 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쳐 동네 집들을 모두 철거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철거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돌아온 주민들은 살림살이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집안의 가구나 주요 물건들은 겨우 수습을 했지만 나머지 작은 물건들은 그대로 폐허 속에 묻혀 버린 것이었습니다.

당시 용역 깡패들은 웃통을 벗고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위협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막내 삼촌은 아마추어 권투선수를 했던 분인데 수많은 깡패들의 위협에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깡패들은 온 몸에 문신이 가득했고 각목과 철근 쇠파이프를 들고 생명을 위협하며 설쳐대면 주민들도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당시 홍은동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어 본격적인 철거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80년대 서민들은 단 한 칸의 방이라도 얻기 위한 생존권 문제로 개발조합측과 협상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제대로 협상도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 생존해야 하는 서민들에게 조합측은 가혹했습니다. 용역 깡패들을 동원한 강제 철거였습니다. 서민들은 서울의 달동네에서 밀려나 수도권 변두리로 또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방 한 칸에서 고단한 삶이지만 열심히 살아왔던 서민들이 한 순간이 집과 살림살이를 잃고 가야 할 곳은 서울에 없었습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용역 깡패들은 도시 빈민들을 위협하곤 했다


주민들은 하루 하루 먹고 살기 바빠서 조직적인 저항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저녁에 퇴근한 큰 삼촌과 일부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조합장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조합장은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조합장의 집에서 연좌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농성이라고 해봐야 집에서 앉아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던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조합장을 만나서 항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늦어도 조합장은 얼굴도 내밀지 않았습니다. 조합장의 집에서 몇시간을 앉아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밖에서 거친 욕설이 들리면서 일단의 깡패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두목 쯤 되어 보이는 깡패가 웃통을 벗고 외쳤습니다.
"너희들 다 안나가. 다 죽여버린다. 개**들"

주민 중 한 명이 깡패들에게 '우리는 조합장과 대화를 하기 위해 왔으니 나가 달라'고 요청했으나, 깡패들이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주민들도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깡패들은 완력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저는 말도 못하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머리 속으로는 깡패들에게 달려들어 주먹으로 면상을 때려주고 싶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가 얼마나 비겁했는지 지금도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누가 몰래 경찰에 연락을 했습니다. 오랫동안을 깡패들의 위협에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한 참 후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도 깡패들과 한 패였습니다. 주민들은 전부 나가라며 깡패들과 같은 이야기만 반복했습니다. 허무하게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큰 삼촌 그리고 주민 대표 중 한 명은 밖으로 나와 경찰파출소를 찾아서 조폭 깡패들의 폭력 사태에 대해 경찰이 적극 수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파출소장은 알았다고 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폭과 경찰 그리고 조합은 한 패였습니다.

결국 주민들은 허무하게 수십년 살던 집들을 용역 깡패들에 의해 철거당하고 갈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시 은동 주민들은 가난하지만 서로 이웃 사촌 처럼 정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잠잘 곳도 없어지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집이 없어진 주민들은 당장 잘 곳이 없어 여관방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도 뿔뿔이 흩어져 당장 생존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하루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주민들은 매일 직장에서 나가야 했고 하루 빨리 도시 외곽의 빈민가로 이사를 가야 했던 것입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지만 가난한 도시 빈민들은 용역 깡패들의 폭력 앞에 무참히 무너지고, 다시 도시의 외곽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주민들을 뭉쳐서 조합측과 깡패들의 폭력에 맞서 싸우고도 싶은 심정이 굴뚝 같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당장 아이들과 가족들의 생계와 생활을 먼저 생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거대한 폭력 앞에 굴복하지만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슬픔과 분노를 거두고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때 삼촌은 안산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서울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서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직장도 퇴직하고 안산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저도 학교 문제로 다른 친척 집으로 거쳐를 옮겨야 했습니다. 서울의 서민들이 철거를 당해 수도권으로 밀려나는 일반적 형태입니다. 지금도 안산에 가면 옛날 철거민 시기의 아픔이 생각나곤 합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25년전 용역 깡패들 보다 더 잔인하다


2009년의 오늘은 어떤가요? 용산 철거민 대참사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철거민들이 죽었습니다. 거기에도 경찰과 용역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한 철거민들의 현실입니다. 25년 전과 달라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25년전 보다 더 폭력적인 철거와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시 철거민들에게는 가혹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인 풍요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철거민 사태와 같은 복지 문제나 폭력적인 통치 형태를 보면, 지금 25년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착각하게 하는 현실입니다.

그 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살았던 철거민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불끈불끈 화가 치밀곤 합니다. 실제 한 순간에 집을 잃어보고, 폐허가 된 자신의 삶의 흔적들을 바라보고, 무기력하게 조폭 깡패들의 위협에 굴복하고, 그래도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살아야 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철거민들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느껴본다면 우리는 함부로 그들을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배려와 관심을 두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약육강식의 사회라면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가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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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안전불감증이 부른 화왕산 '억새 태우기' 산불 참변을 목도하며...

정월대보름인 9일 창녕 화왕산에서 '억새 태우기' 행사를 하던 중 산불이 번져 여러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로, 매우 위험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안전 조치도 없이 행사를 강행한 창녕군 주최측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가 치솟습니다.


사고는 행사 진행요원들이 화왕산 정상(해발 757m)에서 억새에 불을 붙이는 갑자기 불어닥친 역풍을 타고 불길이 방화선을 넘어와 등산객들이 급히 피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뉴스에 의하면 "불이 크게 번지면서 순식간에 시뻘건 화염과 검은 연기가 산 정상을 뒤덮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만 들렸으며 완전히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이번 화왕산 '억새 태우기' 행사장에는 무려 1만 5천여명의 관광객과 주민들이 몰렸다고 하는데 주요 안전요원은 110여명(경찰측 추산)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불길이 번져 이번 사고는 더욱 큰 혼잡과 피해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어제(9일) 아침에 저는 블로그에 '정월대보름 쥐불놀이하다 죽을 뻔한 사연'이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쥐불놀이가 하나의 추억이 될 수도 있지만, 순간 다른 실수로 인해 매우 위험한 불장난이 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 글에 쥐불놀이는 산불로 번질 수 있다는 예전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야기한 이번 화왕산 '억새 태우기' 행사의 안전대책 소홀을 비롯한 문제점을  조목조목지적하고자 합니다.

산 정상은 바람이 강해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화왕산 정상에서 '억새 태우기' 행사는 너무나 위험해 행사 자체부터 심사숙고했어야 합니다. 대개 산 정상은 바람을 막아줄 나무들이나 장벽이 없어 불길이 번지면 순식간에 큰 산불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산불이 번지는 속도가 강렬해 바람의 방향은 사전 준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안전대책이 매우 부재한 주최측의 무사안일입니다
우선 관광객들이 바람이 부는 방향에는 서 잇지 않도록 사전에 통제를 했어야 합니다. 만일 산불이 번지더라도 바람의 진행 방향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대형 인명 사고로 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길이 번질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사전에 사람들을 억새가 없는 공간에 멀리 떨어져 있도록 안전조치를 했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행사 진행 보다 사람들에 대한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행사 당일 바람의 세기를 고려해 행사 진행 여부 판단해야
겨울철에 산 정상은 바람이 매우 거세기 때문에 미리 바람을 고려해 행사 당일 '억새 태우기' 행사 여부를 판단했어야 합니다. 만일 억새태우기 행사를 진행하기에는 강풍이 불 경우에는 행사를 취소하고 다른 행사로 대체했어야 합니다. 이는 행사 주최측에서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던 일입니다. 산 정상에서 억새 태우기 보다는 커다란 들판에서 짚단 태우기나 논둑 태우기와 같이 덜 위험한 행사도 기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요원 배치 및 관광객 안전교육이 가장 우선입니다
행사를 진행하더라도 최우선적으로 산불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안전요원을 최대한 배치했어야 합니다. 1만 5천명의 관광객이 몰렸다면 1천명 이상의 안전요원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특히 관광객들이 산불 발생시 위험한 지역에는 위치해 있지 않도록 안전교육을 철저히 했어야 합니다. 결코 행사장에서 바람이 부는 방향에는 사람들이 없어야 했습니다.

불붙이는 행사 위치 선정에도 사전 준비가 소홀했습니다
행사를 시작하는 위치 선정도 매우 잘못되어 있습니다. 사망자 중 상당수가 근처에서 동영상 촬영을 하다가 참변을 당하거나 낭떠러지에 떨어져 사망했다고 합니다. 불을 붙이는 행사장이 낭떠러지와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따라서, 주최측은 매우 위험한 장소를 행사장의 위치로 선정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위험시 대피가 어려운 야간에 행사를 진행한 것도 문제입니다.
야간에 행사를 진행하다가 산불로 번질 경우 사람들은 허둥지둥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야가 어둡다보니 사람들은 어디로 대피할지 몰라 오히려 위험한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주최측이 행사 자체의 이익과 전시 행정에만 매달리고 사람들의 안전 문제에는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살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이들도 동반한 관광객이 많은데 야간에 위험한 장소에서 행사를 실시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산림청 및 소방청과 당일 행사 진행 여부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산불로 인해 산림에 피해가 간다거나 인명 피해가 예견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림청과 소방방재청의 허락없이 행사를 실시하는 것은 국가행정의 심각한 잘못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위험한 산 정상에서의 억새 태우기 행사를 일개 군청이 마음대로 진행한다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입니다. 산림청 및 소방청 헬기 지원 준비도 안된 것도 문제입니다. 경찰도 화재 및 인명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행사를 수수방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번 화왕산 '억새 태우기' 행사는 화왕산(火旺山)의 이름이 '큰 불 뫼'에서 온 것처럼 화왕산에 불기운이 들어와야 풍년이 들고 재앙이 물러간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3년마다 열리는데 이번이 6회째라고 합니다.


국가의 무능한 행정과 지방 군청의 안일한 안전대책으로 소중한 인명이 살상되는 참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미 호주에서도 대형 산불로 인해 엄청난 재산 피해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충분히 외국의 사례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사전 위험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사고가 발생한 것은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질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보 1호 숭례문 전소,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 등 국가적 책임 문제
화재에 의한 국가적 참사는 이번 화왕산 산불 참사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용산 철거민 참사도 화재에 의한 것입니다. 무리한 경찰 공권력 진입에 의한 철거민들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국가의 사죄도 책임도 없이, 제대로 된 진실 규명도 없이 유야무야 사건을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화재로 전소되는 국가망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화재에 의한 대형 재난과 참사는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기에 국가적 책임이라고 봐야 합니다. 
 


더 이상 무고한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이 희생되는 화재사고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화왕산 산불 화재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과 부상자 가족들께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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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우리 사회가 미쳤습니다. 마치 광기를 가득 안고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같습니다. 요즘 돌아가는 우리 사회 현상을 곰곰 생각해보면 공포영화처럼 끔찍하고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오늘 저녁 퇴근해보니 강호순 팬카페가 사람들의 궁금증을 사로잡았나 봅니다. 강호순 팬카페가 무엇이길래 그럴까 찾아봤습니다. 카페 회원수가 벌써 1만 2천명이 넘었습니다.(글을 쓰는 동안 1만 5천명이 넘었습니다.) 2월 2일 개설한 카페인데 가히 폭발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단순한 호기심때문에 궁금해서 가입한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강호순 팬카페에 가입하지 않고 궁금증을 해결해 보겠습니다. 궁금해도 절대 가입은 하지 맙시다.
1.강호순 팬카페 주소(http://cafe.naver.com/ilovehosun)에 들어갑니다.
2.궁금한 게시물 제목을 복사해 네이버 검색창에 붙여 검색합니다.
3.그러면, 검색한 궁금증 게시물의 내용과 댓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호순 팬카페의 첫화면입니다.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보면 멤버수 등을 확인할 수있습니다.
[강호순 팬카페 메인화면]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 이름부터 '연쇄살인범 강호순님의 인권을 위한 팬카페(http://cafe.naver.com/ilovehosun)'라고 버젓이 붙어 있습니다. 카페 매니저(개설자 이름) '위대한 살인자'라는 의미인 'GreatKiller'가 필명입니다. 더욱이, 카페 주소의 영어이름이 'ilovehosun'(나는 호순을 사랑한다)입니다. 살인마 강호순에 대해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개된 인터넷 카페에 다소 노골적 애정을 과시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스톡홀름 신드롬과도 흡사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참고 http://bizworld.tistory.com/520)

카페의 전체글보기 화면입니다.

카페의 전체글보기를 살펴보니 공지글 3개를 비롯해 3,500개 이상의 글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카페 매니저가 공지에 올린 글 제목이 '본 카페에 대한 일부 언론의 여론몰이식 보도태도를 규탄한다' '근거없는 욕설과 비방글은 강퇴 조치합니다' 등이 올라와 있습니다. 상당히 노골적으로 언론과 비판글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반발을 하는 듯 합니다. (카페 옆에 붙어 돈을 유혹하는 네이버 광고가 역겨운 느낌입니다.)

카페 매니저의 카페 개설 취지를 비롯한 입장을 들어봅니다.


카페 매니저, 강호순을 대중스타 팬과 같이 열성적으로 옹호 계획
카페 매니저인 ‘Greatkiller’는 “카페 이름이 ‘나는 강호순을 사랑한다’이지만 범죄자와 그 행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자비에 기인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강호순의 인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대중스타의 팬과 같이 열성적이고 지속적으로 옹호해 줄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범죄자도 인권이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연쇄살인범을 대중스타의 팬과 같이 옹호해주자는 것은 상당히 오버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사형제 반대에 대한 입장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오는 듯 합니다. 그 중 하나입니다.

댓글을 보면 팬카페의 주장에 반대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옹호하는 글도 가끔 보입니다.


더 이상 강호순 카페의 글들에 대해서는 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거의 같은 레파토리입니다. 혹시라도 궁금증으로 인해 카페에 가입하고자 하는 분들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간단히 강호순 팬카페에 대해 회원 가입 없이 살펴본 것입니다.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주장을 펼 수도 있지만 카페의 내용을 살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우후죽순처럼 강호순 팬카페가 장난스럽게 계속 등장하는 것을 보면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의 역기능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 곳곳에 속도전과 광기넘치는 야만의 시대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병리현상을 겪는 듯 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정상적이지 않는 면들이 많습니다. 지난해 미국 미친소 수입 문제, 미네르바 구속, 용산 철거민 참사 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들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야만의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권위주의가 판치고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속도전이 앞서다보니 대화나 소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차피 안된다는 패배의식이 팽배합니다.

게다가 경제도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빠져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취직을 할 수 없어 방황과 자포자기에 빠져버립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힘들고 기막힌 현실을 도피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상심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습니다. 상실감으로 쓰디쓴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원망합니다.

미래 희망을 잃어버린 막장사회가 부른 현실 도피 허무주의
집에 있어도 세상사의 고통이 짓누릅니다. TV 방송을 틀면 막장드라마가 나옵니다. 불륜, 악녀, 낙태, 탈법, 범죄, 일탈, 성폭행 등 비정상적 현상들이 공영 방송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현실 판타지나 막장 인생들의 막장 사회 이야기가 잠시 세상을 잊게 해줍니다. 현실에서는 희망이 없지만 막장 드라마 속에서 나마 허영심이나 대리만족입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허무하기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왜 사회적인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고 있을까요?
사회적으로 지도층들이나 리더들이 신뢰를 잃은 것이 크다고 봅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더라도 서로 신뢰하는 공동체에서는 희망을 안고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사회 지도층이나 정부에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믿지를 않습니다. 이미 양치기 소년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속지는 않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희망과 신뢰를 잃어버린 영혼들이 우리 사회에 넘쳐납니다. 허무주의가 세상에 가득 합니다.

사회지도층의 철학 부재와 도덕성 상실이 부른 신뢰의 위기
사회지도층이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는 철학의 부재와 도덕성 상실입니다. 원칙과 상식을 스스로 깨버린 사회지도층의 신뢰 위기가 그 시작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강부자(강남 땅부자)는 서민들의 꿈을 잃게 했습니다. 부자들에게 고급아파트 부동산세 세금을 소급 적용해 되돌려 준 사건도 서민들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커다란 상처와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구분된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것은 통합이 아닙니다. 힘에 의한 통치는 소통이 아닙니다.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촛불을 다시 들었다고 합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낮은 데로 임한 것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에 달려 있습니다. 그 솔선수범은 진정성을 가졌을때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소통과 통합을 외치면서 뒷구멍으로는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지도층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자
강호순 팬카페도 하나의 사회적 병리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를 하는 살인마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카페가 생겼을까? 그것은 신뢰를 잃은 사회적 혼돈의 산물일 뿐입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은 살인마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영령과 고인의 가족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공통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를 포함한 기득권을 가진 사회지도층의 통렬한 반성과 함께 진정성을 가진 솔선수범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눈물부터 닦아주는 '낮은 데로 임해서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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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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