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5.15 직접 만난 강원래, 우정과 사랑의 감동이 스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
  2. 2010.01.16 20년전 군대, 말년 병장 죽이는 낙서 놀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3. 2009.06.16 노홍철 장윤정 열애, 놀러와 유재석 일등공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4. 2009.01.05 다음 첫화면에 블로그글 소개돼 가문의 영광 by 진리 탐구 탐진강 (5)


'쿵따리 샤바라~ 빠빠빠"

지금도 귓가에 어른거리는 곡조가 떠오릅니다. 바로 클론의 노래입니다. 1990년대 최고의 남성 듀엣 가수였던 강원래와 구준엽의 클론. 심지어 클론의 인기는 지상렬과 염경환이 '클놈'이란 개그맨 듀오를 결성해 활동하는 계기를 만들 정도였습니다. 당시 '쿵따리 샤바라'는 분위기를 업시켜주는 노래방 최고의 인기곡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강원래를 만났습니다. 저녁에 평범한 식당에서 회식이 있었습니다. 잠시 바람을 쐬러 건물 밖으로 나가려다 TV에서 봤던 누군가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강원래도 인사를 했습니다. '여기 왜 왔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아는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왔다고 합니다.

사실 길거리나 건물에서 연예인을 만나면 신기합니다. 실제 연예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만나 본 강원래는 그야말로 소탈한 이웃집 친구나 동생같이 느껴졌습니다. 몇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사진을 찍어도 되는 물었더니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주더군요. 그리고, 블로그에 올려도 되는지 물었더니 쿨하게 답변하더군요.
"보신 그대로 쓰세요. 그것은 (블로거의) 자유잖아요."


대개 연예인이라면 좋게 써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편하게 이야기해주는 강원래가 다시 보였습니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저에게 익살스런 포즈까지 취해주어 고맙기도 했습니다. 강원래는 당시 저녁 식사와 함께 반주를 했는지 다소 혈색에 화기가 돌았는데 사진찍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포즈까지 취해주었기에 더욱 인상이 깊었습니다.

강원래하면 클론 시절 인기 가수로서 기억도 있지만 불법 유턴 차량에 의한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사연이 떠오릅니다. 인기 절정의 댄스 가수가 하반기 마비로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강원래는 아무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댄스 가수의 길을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해 댄스를 선보여야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향해 열정과 의지를 보여준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친구 구준엽과 부인 김송이 곁에 있었습니다. 물질이 지배하는 현대 문명사회에 감동을 준 우정과 사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준엽은 당시 친구를 위해 클론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가수로도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클론은 쿵따리 샤바라 이외에도 난, 초련 등 최고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인기 절정의 시기였다는 점에서 구준엽의 우정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한 우정은 곧 강원래가 구준엽과 그 만큼 평소 절친하게 잘 지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우정 뿐만 아니라 강원래를 사랑하는 김송도 감동 스토리였습니다. 뜻하지 않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강원래를 간병하며 결혼까지 한 김송의 모습은 숙연하게 하기도 합니다. 쉽게 헤어지고 만나는 보통 사람들에게 김송의 극진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했습니다. 강원래는 장애를 딛고 다시 무대에 서서 자신의 아내를 위한 노래 '내 사랑 송이'를 불러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래는 요즘 장애인들과 함께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강연이나 공연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법무부 명예보호관찰관으로 활동하며 수원보호관찰소에서 법원으로부터 수강명령을 받은 상습 음주운전자, 무면허운전자 등 교통법규 위반자와 소년 보호관찰 대상자 50여명을 대상으로 준법운전 특별강연도 했다고 합니다. 강원래 자신이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장애인이 된 후 좌절과 시련 그리고 극복과정을 통해 느낀 점을 설명하며 일반 사람들도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 항상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었지요.

어떤 인터뷰에서 강원래는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심한 셈입니다. 온전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도 길을 가면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왜 오토바이를 타서 그렇게 됐냐고 하세요. 저는 교통신호 준수하며 가고 있었지만 지나가던 트럭이 불법 유턴하던 저를 들이받은 거에요. 저로써는 어쩔 수 없이 사고를 당한 거죠. 근데도 저에게 왜 그랬냐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아직도 힘들 때가 많아요. 못생긴 사람에게 너 왜 그렇게 못생기게 태어났느냐고 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사고라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뿐더러,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걸 너무 죄 인양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매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화가 나기도 해요."
                <꿍따리 유랑단은 강원래 단장과 장애인들로 구성돼 세상의 희망을 만들고 있다>

"제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준 사람은 장애인이에요. 어떻게 보면 나쁜 거죠. 나보다 가난한 사람보고 ‘아, 난 부자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니깐요. 그래도 나보다 힘들게 사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어요.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저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구나. 저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보자’라고 생각하며 제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됐죠."

강원래를 만나본 후 여러가지 상념이 오버랩되어 스쳐지나 갔던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좌절하고 희망을 잃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강원래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희망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희망에는 우정과 사랑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강원래 자신이 가장 강한 의지와 집념을 가졌겠지만 기꺼이 그의 곁을 지켜준 친구 구준엽과 아내 김송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강원래가 앞으로도 건강하고 꾸준한 활동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강원래가 어디선가 한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환경이 좋든 나쁘든, 그것을 바라보는 생각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꿈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환경이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살아가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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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천하무적 짱가도 내 앞에선 고철"

태권V가 짱가를 마구 때리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태권V와 짱가의 모습을 실제 그림으로 그려 실감나게 낚서를 한 장면이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덧붙여 '임자 만날 날 있을 걸.'이란 의미심장한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하겠지요? 제가 20년전 군대를 제대할 무렵에 후배나 동료 전우들이 회상록에 그린 낙서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상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군대 회상록을 들추어보다가 전우들의 낙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에서 짱가는 저의 군대시절 별명입니다. 당시 힘좋고 기술좋은 작업반장이었던 저를 전우들은 '짱가'라고 불렀습니다. 짱가는 그 시절 사람들이 좋아했던 로보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 짱가를 힘으로 눌러주고 싶던 후배 전우가 로보트 태권V 주인공을 그려 우스꽝스런 만화를 그린 것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 (야!)'로 시작되는 노래인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곡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단번에 알 것 같습니다.

                                지난 1970년대 추억의 로보트 3인방, 짱가-태권V-황금박쥐 모습

그런 만화 낙서를 보니 군시절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여름철 폭우가 내려 작전도로가 유실되면 저와 친구인 J는 둘이서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저는 돌쌓는 기술로, J는 엄청난 괴력의 힘으로 돌을 날라 순식간에 도로를 복구했습니다. 강원도 철책에 폭설이 내리면 언제나 제일 앞에 서서 저와 J는 눈을 치웠습니다. 군대 작업의 달인, 환상의 짝꿍 듀엣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하던 선배도 말년 병장이 되면 후배들의 장난감이 되는 이유  

그래서 후배 전우들은 저와 J의 존재가 고맙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했나 봅니다. 그런 것들이 낚서로 표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헤어지는 아쉬움과 친근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낙서를 살펴볼까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을 놀리는 낚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말년의 고뇌여~ 가는 날까지 우리들에게 갈굼 당할 걸 생각하니 힘드시겠지."
"짱가씨 결혼할 거니? 짱가 왈 내비둬, 이렇게 살다 껌에 붙어 갈겨."
"짱가씨. 집에서 전화왔어요. 집에 오지 말라고."
"웃기지 마. 나도 때 빼고 광 내면 미스코리아 화장실 청소라도 할 수 있다  뭐라고라~"


군대 회상록 낚서판에 동료 전우들이 말년 병장을 향해 한 마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장면

낙서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후배들이 말년 병장인 저를 갖고 노는 것 같은 구절들이 묻어나 보입니다. 사실 군대에서 제대 앞둔 말년 병장은 후배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한창 때 무시무시한 선배였다 하더라도 말년은 후배들에게 당해주면서 정겨움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전통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남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정과 훈훈한 의리였습니다.

잠깐 퀴즈?
낙서에 나온 것인데 아래 각각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요?

1.창녀가 가장 좋아하는 야채는?

2.남녀 혼성 이부 합창은 순한국말로 하면?
3.브라자를 순한국말로 하면?

당시 군대에서 유치한 문답 놀이 정도 됐었나 봅니다. 지금 살펴보니 그 때는 저런 저질 유치 개그가 유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방위에 대한 당시 이야기도 낙서에 나왔습니다.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방위에 대한 유머(?) 장난이 아닌가 생각되는 낚서였습니다.

방위란?(낙서 버전)
1.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면사무소를 접수한다
2.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예비군을 통제한다
3.전쟁시 도시락을 지참 9시에 출근하여 5시 반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오리지날 버전
방위의 임무. 하나.
전쟁이 발발시 방위는 적진의 동사무소를 점령한다.
방위의 임무. 둘.
방위는 도시락통을 싸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도시락통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망을 교란한다.
방위의 인무. 셋.
방위는 아무리 전쟁이 치열하거나 해도 아침 9시에 근무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넷.
방위는 일부러 적의 포로로 잡혀가 적의 식량을 축낸다.
방위의 임무. 다섯.

전쟁발발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여군들을 몽땅 꼬신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최전선 철책을 넘나들며 비무장지대를 호령하던 전초 수색대들의 생활은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항상 삶과 죽음의 사선을 오가는 비무장지대 수색과 매복은 긴장과 서스펜스나 다름없었습니다. 순간 잘못 길을 가면 지뢰지대이고 잠깐 졸다가는 북한군이 목을 베어갈 준전시상태였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 강추위의 비무장지대에서 매일 밤 13시간 매복 작전

그러다 보니 군기가 가장 센 곳이었습니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개인 화기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태권도 및 특공무술을 비롯한 최강의 무예를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한 겨울 맹추위에 비무장지대 매복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1박2일에서 박찬호가 강호동을 포함 멤버들이 펼친 혹한기 실전캠프는 사실 '새 발의 피'였습니다.


전우들의 낚서판(좌)과 제가 그린 그림으로 수탉이 알에서 나온 코끼리 새끼를 본 후 암탉의 외도 의심

철책을 통과해 비무장지대 내에 들어선 순간 부터는 철처하게 자신과 전우들을 믿어야 했습니다. 군사분계션까지 도달해 겨울 매복작전을 펼칠 때면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북한 땅이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과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총탄을 장전하고 있는 최강 DMZ 수색대원도 오로지 혼자가 된 느낌의 순간에는 나약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료와 말도 못하니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어떤 과자나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심지어 오줌도 눌 수 없어 오줌통을 들고 들어가는 비무장지대 내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우와 동료를 신뢰해야만 비무장지대 수색 및 매복 작전은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 매복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얼어서 새벽 무렵 철수할 시간은 지금도 불현듯 스쳐지나가고곤 합니다. 체감온도 40도 전후의 강추위에 밤새 13시간을 야외에서 뜬 눈으로 이틀에 하루 꼴로 밤을 지새운다는 것이 상상이 가시겠습니까? 잠시 회상에 젖었습니다.

다시 낙서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티파니왈 흔들자고"라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도 티파니가 있나 본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추가] 댓글을 보니 1980년말 티파니(Tiffany Renee Darwish)라는 미국 팝가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써니텐 광고에서 '흔들어 주세요'로 유명해 이 같은 낙서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갈 때 죽을 때 까지 똥침 놀 거다"
"기분이다. 아줌마, 단무지 하나 더 주세유"
"너 지금 가면 안올거지 그지?"
"뭐 같은 인생 간편히 살자고."
"집에 가서 잠만 자지 말고 여자 구해 장가 갈 궁리나 해라"
"수고했다 뺑이 치느라고"
"엿먹고 조총을 쏴라"

후배들의 낚서 중에는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서를 보니 똥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랜 전통을 지닌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20년전 군대에서도 유행하던 놀이는 똥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위의 낙서 중 '뺑이친다'는 말은 힘들게 고생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일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그린 DMZ 수색대 마크(좌)와 후배 전우들이 회상록에 넣어준 자신들의 사진 모습

지난 20년전 군대에서 동료 전우들의 낙서를 보면서 20대의 용광로같은 젊은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은 편하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당시는 눈덮힌 야외 들판에서 판초우의 한 장으로 밤새 추위를 이기고 생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겨울 이겨냈던 DMZ 비무장지대 수색대원들은 결코 동장군 강추위에도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남북한은 물론 지구촌을 배회하던 아픈 역사 현장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남자들만의 의리와 정을 나누고 그 자릴 지켰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싹튼 우정과 동료애는 말년 병장을 사회로 보내야 하는 아쉬움으로 추억의 낚서를 회상록에 남겼던 것입니다. 20년만에 20대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 당시의 낚서를 보니 수많은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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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성이면 감천"

예로부터 사람의 마음이 간절하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했습니다. 사랑과 결혼도 얼마나 간절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순수한 간절함으로 실행하고 다가서느냐에 따라 결국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달 대만 갑부의 딸과 브라질에서 만나 결혼한 친구의 이야기를 전한 바 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 남자가 매일 밤을 꼬박 새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동이 트면 한국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대만 여자가 묵고있는 숙소에 편지를 놓고 돌아오는 일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대만 여자는 한국 남자의 순수함과 간절함에 감복해 연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남자는 대만 여자가 갑부의 딸인지는 전혀 모르던 상태였습니다. 나중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녀의 신분을 알게되고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였습니다. 순수한 한국 청년의 간절한 마음과 실행은 언어와 국경을 넘어 부부의 인연이 된 것입니다.
(참고 :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 )

노홍철과 장윤정의 러브스토리가 MBC '놀러와 가족의 짝꿍을 소개합니다'라는 코너에서 공개되었습니다. 노홍철과 장윤정은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팀으로 함께 출연해 서로 친구로서 만남을 가지면서 사랑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밝혔습니다. '놀러와'가 녹화되던 시점은 노홍철이 장윤정에게 본격적인 연인이 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지난 8일 노홍철이 열애 사실을 실토하기 1달전에 녹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놀러와에서 만나 절친으로 사랑 굳혔다

그러나 노홍철과 장윤정이 '놀러와'에 출연해 밝힌 사실들을 들어보면 이미 장윤정의 마음도 노홍철에게 많이 기울어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방송이라고 하지만 결혼할 나이의 선남선녀가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한 팀으로 출연해 둘 사이의 만남과 데이트 과정을 소개한다는 것은 이미 우정은 넘어 사랑의 감정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노홍철은 장윤정에 대해 "2년 전 장윤정이 '놀러와'에 출연하면서 엄청 가까워졌다" "당시 장윤정이 출연해 힘들고 외로운 모습을 많이 내비췄다. 에너지를 나눠주고 싶고 인생을 즐기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녹화 후 대기실에서 장윤정의 번호를 알아내 연락했다" "이후 절친한 친구가 되서 내 모든 걸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둘의 만남을 소상히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노홍철의 이야기는 단순한 친구가 아닌 사랑하는 연인으로 만났다는 것을 반증해 줍니다. 

장윤정도 노홍철과 출연을 사실상 열애 고백의 자리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장윤정도 "처음 만났을 때 노홍철과 친해지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당시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선지 노홍철이 말하는 당시 상황을 기억조차 없다"고 이야기해 단순히 친구인 것 처럼을 일단 연막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절친 퀴즈를 통해  한 밤 중에 삼청각과 자동차 극장에서 둘 만의 은밀한 데이트를 공개했습니다. 두 사람이 녹화 전에 어느 정도 열애인 점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지 않고서는 퀴즈에서 그러한 문제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연인 만이 풀 수 있는 문제를 맞추고 깡총깡총 손을 잡고 좋아하는 장면도 이미 친구가 아닌 연인이라는 점을 확연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유재석 '놀러와' 통해 만남과 열애 발표 계기 됐다

결국 노홍철과 장윤정은 2년전 '놀러와'에서 친구로서 만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고 이번 '놀러와 '절친'에서 연인을 공개한 셈이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놀러와' 프로그램은 MC 유재석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홍철이 장윤정이 마음에 들었을 때 연락을 권유한 것도 유재석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재석이 사람의 메신저 역할을 한 셈입니다. 유재석이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홍철이 장윤정과의 만남의 계기가 된 '놀러와'에 2년만에 다시 출연해 우정을 넘어 연인을 사실상 공개한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재석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두 사람이 연인임을 처음 밝히는 자리로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노홍철과 장윤정은 가장 절묘한 방법으로 유재석에게 보답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홍철의 순수한 간절함이 장윤정을 감동시켰다

노홍철은 장윤정의 팬클럽 이름과 생일 등도 모두 알고 있어 얼마나 간절하게 장윤정에 대한 흠모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노홍철은 오래 전부터 장윤정 팬클럽에 가입해 실제 정확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노홍철은 5년전 시상식에서 장윤정을 처음 봤고 이후 팬이 됐다고 말한 바도 있습니다. 노홍철은 '골드미스가 간다' 프로에 출연해서 "장윤정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관련이 없는 정보가 많이 나와 팬카페에 가입했다했다" "팬카페의 정보를 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회원 등급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노홍철은 장윤정에게 "윤정아, 나 널 보면 심장이 자꾸 뛰는데 왜 그러지?" "그건 널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고 솔직하게 밝힌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노홍철의 마음을 단순히 친구로만 생각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노홍철은 이미 장윤정에게 가장 감동적인 이벤트로 '집 안 가득 하트 모양의 풍선으로 장식해' 준 적이 있었는데 장윤정은 너무 고마워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이미 노홍철과 장윤정은 오래 사귀면서 마음이 통했던 셈입니다.

사실 장윤정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하던 수많은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윤정은 노홍철을 선택했습니다. 장윤정은 '행사의 여왕'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 돈을 잘 버는 여가수입니다. '국민 며느리'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며느리감으로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 장윤정이 노홍철과의 결혼을 결심한 것은 노홍철 만이 언제나 변함없이 순수한 간절함으로 자신에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노홍철은 오래 전부터 장윤정이란 여자만을 사랑했던 남자였던 셈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성이면 감천'이란 속담의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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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제가 어제 올린 죽마고우 친구의 결혼식에 대한 블로그 글이 다음 첫화면에 소개되었습니다.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몇일 안되었는데 블로그 시작에 대해 격려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마음씨 좋은 블로거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사이비 종교에 빠져 무려 30년 동안을 가족 및 친구 등과 단절하고 살다가 사망 신고까지 당했던 죽마고우 친구가 갑자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40대 중반 나이에 첫 결혼식을 했는데, 저는 그 결혼식을 다녀온 후 그간 친구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를 짧게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참고] 사망신고(?)당한 40대 중반 친구의 결혼 이야기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다음 첫화면에 소개되고 많은 블로거 분들이 그 친구의 행복을 기원해주고 그 친구와의 우정을 따뜻하게 성원해주셔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회와 단절된 삶에서 일상에 돌아와 결혼 후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오히려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제가 아내와 두 딸에게 다음 첫화면 소개된 블로그에 대해 '가문의 영광'이라고 자랑했더니 매우 신기한 듯이 축하해 줍니다. 제가 과거 포털에서 잠시 블로그를 해본 적이 있었지만 거의 개점휴업 수준이었는데 티스토리에서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새해 계획으로 시작한 것인데 다음 첫화면에 소개가 되니 저도 놀랍고 신기합니다.

기념으로 다음 첫화면 기념 스크린샷입니다.


이런 영광까지 얻었으니 좀 더 열심히 사회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블로그 활동을 통해 보답해야 겠습니다. 사실 삭막하리라 생각했던 블로그도 사람 사는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화면에 올려주신 티스토리 관계자 분들과 격려해주신 블로거 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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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