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9.10.26 머릿니 전염 확산, 학생들 조심하세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66)
  2. 2009.10.22 시험 공부시키던 아내의 분노 "당신이 가르쳐"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3)
  3. 2009.09.21 숙녀가 된 딸아이의 초경, 부모의 마음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9)
  4. 2009.07.19 여자친구가 맞선본다 했다, 어떡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70)
  5. 2009.05.11 술먹고 다른 잔디밭에 누운 두 남자, 그 후 by 진리 탐구 탐진강 (34)
  6. 2009.03.25 딸아이 친구 금붕어가 4년만에 죽었어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7)
  7. 2009.03.06 여성개발자 지존 꿈꾸는 여대생 만나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


주말에 깜짝 놀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작은 딸이 방에서 나오면서 베개에서 작은 벌레를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작은 딸은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아이의 말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저희 아파트는 바로 옆이 산과 들이라서 가끔씩 작은 곤충이 창문이나 현관 문을 타고 날아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 작은 딸에게 그게 뭔지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생긴 벌레였니?"
"아주 작아서 잘 안보이는데 조금씩 움직여요"

문득 드는 생각은 얼마 전에 시골에서 햅쌀이 올라왔는데 혹시 쌀벌레 종류인 바구미는 아닐까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당장 아이가 잡았다는 것을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작은 딸은 휴지에 작은 벌레를 쌓아서 휴지통에 버린 상태였습니다. 휴지를 펼쳐서 살펴봤더니 정말 아주 작은 벌레였습니다.

유치원 및 초등학생들 머릿니 전염 많지만 쉬쉬하는 사이 확산

그것은 이 종류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머릿니가 발견된다는 말인가 생각했습니다. 작은 딸에게 다시 물어 봤습니다.
"머리가 가렵지 않니?"
"요즘 머리가 자주 가려워요."

작은 딸의 증상을 들어보니 확실히 머릿니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아내에게 작은 딸의 머리를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에서 몇마리의 머릿니와 서캐(알)가 발견됐습니다. 작은 딸과 함께 방을 쓰는 큰 딸의 머리도 살펴봤습니다. 큰 딸은 거의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약국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가 머리가 가렵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약사는 '머릿니'라고 했습니다. 약사는 '머릿니 제거 샴푸'를 곧바로 내놓았습니다. 약사는 최근 아이들의 머릿니 때문에 약국을 찾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이미 많이 감염되어 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사실을 접하고 황당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머릿니에 감염되고 있다면 학교나 교육청에서 학부모들에게 주의보를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일단 아내는 두 딸의 머리를 단발로 잘랐습니다. 두 딸은 머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졸지에 단발 머리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머릿니 제거 샴푸를 머리에 골고루 발랐습니다. 그 후 저는 세면실에서 아이들의 머리를 샤워기로 깨끗이 헹군 후 감겨주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다행스럽게도 머릿니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이들 머리에 대한 우선 응급 조치가 끝난 후 아이들이 사용하던 이불을 비롯해 집안의 침대 커버나 베개 등을 전부 세탁기로 넣었습니다. 가깝게 사는 장모님이 와서 아이들 머리는 물론 집안의 비상 상황(?)을 정성껏 돌봐 주셨습니다.
 

학교 및 교육 당국의 상황 조사 및 적극적인 예방 대책 필요

학교에서 다른 학생에게 전염된 것이란 심증이 굳어졌습니다. 이후, 아내는 인근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아줌마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매의 학부모였습니다. 머릿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그 아줌마도 자기 아이가 얼마 전에 머릿니에 전염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뿐 아니었습니다. 머릿니는 작년에도 발생해 여러 학생들이 전염된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우선 조치가 종결된 후 작은 딸에게 다시 몇가지 물었습니다.
"혹시 학교에서 다른 아이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 없었니?"
"친구 한 명이 자주 곁에 와서 제 몸에 머리를 기대고 그래요."

사실 저는 이번 일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 70년대에 창궐했던 머릿니가 최근에도 널리 전염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학교나 교육청은 흔한 가정통신문 하나 보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교육당국이나 보건당국은 학생들이 머릿니와 같은 전염성 강한 해충이 학생들에게 발생하면 주의보를 발령해야 하는데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머릿니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천안, 울산 등 여타 지역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에게서 머릿니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학부모들의 경우 머릿니나 서캐때문에 자녀가 친구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교육청도 아직까지 머릿니로 인해 교육청에 문의가 오거나 현황이 접수된 바 없다며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머릿니가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여러 학생들과 학교에 퍼져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들의 4%에서 머릿니가 발견된다고도 합니다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머리를 점검해보고 머릿니가 발견되면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통해 대처방법을 알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울러, 학부모들도 아이들의 머리 상태를 확인해 보는 지혜가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미국을 비롯 전세계적으로 신종 플루의 급속 확산에 의한 사망자가 급증하며 신종 플루 거점병원이 북새통이라는 뉴스도 들리는데 머릿니까지 확산돼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불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머릿니의 조기 발견 방법은?

머릿니는 알(서캐)에서 약충, 성충으로 자라나며 서캐로 있는 기간은 약 7~8일 정도이고 약충은 3회 탈피하여 성충이 됩니다. 성충은 몸길이가 2~4mm 크기로 아주 작고 분당 23cm를 아주 천천히 움직이므로 눈에 띄어 바로 잡아내기가 힘듭니다. 암컷 성충은 하루 5~10개의 알을 낳고 수명이 약 30일 정도 됩니다. 머릿니는 2시간마다 흡혈하고 또한 24시간 굶으면 죽게 됩니다. 따라서 성충은 두피를 떠나서는 1~2일 이상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서캐는 두피(머리 표면)를 떠나서도 약 10일정도 살 수 있습니다.
 
머릿니 성충은 머리의 모근 부근에서 주로 발견되며 모양과 색깔이 깨와 비슷합니다. 서캐는 좁쌀 모양으로 약간 흰색을 띄고 있으며 머리 카락의 옆에 단단하게 붙어있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머리를 잘 살펴보면 머릿니 성충이나 서캐를 발견해 감염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머릿니 성충과 서캐를 동시에 발견하기도 하지만 서캐의 발견으로 감염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머릿니가 애완동물로부터 감염되나?

머릿니는 사람에게만 기생하는 해충입니다. 따라서, 개나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에게 감염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머릿니 감염 방지 및 방제 방법은?

머릿니 살충 및 방제용 약물을 이용하는 방법이 일반적입니다. 주로 샴푸 타입의 용액제와 크림 타입, 그리고 젤 타입이 있습니다. 샴푸액은 과다 사용시 신경 독성이 있어 2세 미만에는 사용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물들은 머리카락에 물기가 없는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며, 뒤늦게 알에서 부화된 약충을 제거하기 위하여 10일 후 한번 더 치료해야 합니다. 머릿니 제거는 화학적 약물 이외에도 참빗을 이용해 지속 제거해주는 전통 방법도 있습니다.

아내는 학생들이 등교하는 오늘, 월요일에 학교측에 머릿니 확산에 대한 사실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따돌림 당할까 두려워 쉬쉬한다면 오히려 여러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그리고 학교측도 아이들에게 전염이 확산되는 것을 조기에 방지하기 위해 예방책과 방제 요령을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적극 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린 아이들과 학생들이 머릿니의 전염 확산으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몇년 사이 유행병처럼 전염되는 머릿니가 완전히 소탕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가 너무 소홀하게 다루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는 교육당국이나 보건당국도 우리나라 전역에 머릿니가 확산되는 있는 상황을 파악해 조기에 예방 수습될 수 있도록 방역체계를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뛰놀 수 있도록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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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내가 두 딸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아내는 초등학교 5학년인 큰 딸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면서 눈치만 살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무엇인가 차분하게 설명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아내의 목소리가 커져 갑니다.
"이것은 뭔지 설명해 볼래?"
"...(묵묵부답)..."

"이건 엄마가 몇번 알려준 거잖아. 왜 매번 잊어버리는 거니?"
"......."

"지난 번에 뭐라고 했어? 응?"

아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집안을 정적 속으로 만들었습니다. 보다못한 저는 잠시 끼어들었습니다.
"살살 가르쳐. 요즘 무슨 일 있어?
"중간고사 시험이 있잖아." 

"그래도 목소리를 좀 낮추라고. 애도 잘하고 싶겠지."
"그럼, 당신이 가르쳐봐!"

"...그건, 좀..."
"공부가르치는 일이 쉬운 줄 알아. 나도 살살 가르치고 싶다고."

그러더니 아내는 갑자기 작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폭발한 것입니다. 저는 큰 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 엄마가 물어보는데 왜 대답을 안해?"
"아는 것이었는데 생각이 안났어."

"엄마가 너를 위해 공부를 가르치는 거잖아. 공부하는데 중요한 것이 뭐라고 했었지?"
"예습 복습이요."

"그래, 예습 복습을 열심히 하라고 했었지.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는 거라고?"
"예습 복습 잘하는 거요."

풀이죽은 목소리로 큰 딸이 말문을 열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 큰 딸은 공부를 잘하지는 못합니다. 시험 성적이 평범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작은 딸은 늘 최상위권 시험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내는 항상 큰 딸이 걱정이었습니다.

과거에 큰 애를 낳고나서 저와 아내는 아이가 마음껏 뛰놀며 건강하게 자라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소 자유방임으로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이가 놀고싶으면 놀이터에서 마음대로 놀도록 했습니다. 유치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여기저기 학원다니면서 시달리는 아이들이 되지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원도 거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가 하고싶은 몇가지만 학원에 보냈습니다. 처음에 큰 아이는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태권도 학원에 보냈습니다. 몇개월 다니더니 그만 다니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후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피아노 학원에 보냈습니다. 그 당시 아내의 친구가 이민을 가면서 피아노를 주고 갔던 터라 큰 딸과 작은 딸은 피아노와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키웠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내가 달라졌습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시험 성적을 받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처음 본 큰 딸의 시험 성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날 이후 아내는 큰 딸을 붙들고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수학 등 학습지도 신청해 공부를 시켰습니다.

다행인지 큰 딸의 성적은 점차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큰 딸은 공부에 흥미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아내는 조금만 더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면 중요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시기를 잘 보내야지 나중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공부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도 동의했습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작은 방으로 들어간 아내와 잠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당신이 고생하는 것은 알아. 이해한다고."
"아이 앞에서 뭐라고 하지 말아."

"그래. 그런데 아이가 너무 주눅들게 가르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자꾸 애가 조금 전에 알려준 것도 모르잖아. 작은 애는 안그러는데."

"작은 애와 비교하지마. 예전에는 안그랬잖아."
"알았어.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공부시키다보면 자꾸 그렇게 되네. 암튼 당신이 이제 가르쳐."

결국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아내도 상당히 불만이 고조된 상황이었습니다. 아이에게 공부도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잔소리만 하는 남편이 야속했던 것입니다. 다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주말에 1시간씩 공부를 가르쳐 볼게."
"알았어. 그렇게 해줬으면 해."

이제 주말부터는 제가 아이들의 공부를 거들게 됐습니다. 자기 자식의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내는 주말에도 자기 일만 하는 남편에게 아이들 공부 좀 시키라고 한 적도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아이들 양육의 부담을 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내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저는 다른 남편들에게 비해 호사를 누린 셈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만 되면 벌써부터 해외로 유학을 보내는 강남의 부유층도 많다고 합니다. 강남의 고급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봐서 일정 수준 이상만 학원 입학이 가능하다고도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입시 지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문제는 심각한 수준인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사회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아내가 '당신이 가르쳐 보라'며 남편에게 분노할 만도 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이 공부를 아내에게 모두 맡겨버리고 신경도 안썼기 때문입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에 사는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교육은 언제나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교육문제 만큼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희 부부도 이렇게 달려졌으니 말입니다.

교육문제, 이제 저도 걱정이게 됐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아이들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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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주,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휴대폰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가 업무 중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휴대폰을 부랴부랴 받았습니다.

아내가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했습니다.
"큰 딸이 초경을 했어요. 축하해 주세요."

저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 머뭇거렸습니다.
"뭐라고? 초경?"
"응, 첫 생리를 시작했어. 숙녀가 된 거 축하해 줘."
"그래. 축하해야 겠네. 일찍  퇴근할게"

그제서야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인 큰 딸이 초경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여엿한 숙녀로 성장했습니다.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인 저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아빠로서 처음 알게되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자 아이가 태어나 자라서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과정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전히 초보 아빠인 셈입니다.
 
딸아이 둘이 있는데 두 살 차이입니다. 지난해 큰 딸이 가슴에 몽우리가 생기면서 스포츠 브래지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딸도 성장이 빠른지 올해부터 브래지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벌써 딸아이들이 이렇게 컸다는 것이 늘 낯설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숙녀로 커가는 딸아이들을 보면서 앞으로 점차 부모와 함께 있을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도 됩니다.

저녁에 퇴근하면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빵을 샀습니다. 그리고 가족들만의 조촐한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큰 딸은 엄마 아빠가 축하해주니까 밝은 표정을 보입니다. 딸아이에 물어봤더니,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들 중 절반 정도가 이미 초경을 했다고 합니다. 과거에 비해 영양 공급과 발육 상태가 좋아서인지 초경이 빨라진 것 같습니다.
 
그 다음날은 주말이었습니다. 아침에 큰 딸은 혼자서 무엇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큰 딸은 "왜 여자는 생리를 1달에 한번씩 해야 하지. 1년에 한번만 하면 안되나?"라며 초경이 귀찮은 듯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딸에게 불편하고 적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큰 딸에게 여자로서 이것 저것 설명을 해주며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기분도 전환하기 위해 두 딸을 데리고 가까운 동산에 가족 소풍을 갔습니다. 집 근처의 낮은 산이었습니다. 큰 딸은 처음에는 산에 오르는 것에 짜증스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에 올라 김밥을 먹으면서 한결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큰 딸이 새로운 몸의 변화에 처음에는 다소 적응이 안되었지만 가족 소풍을 갔다 온 후 빨리 적응해가는 듯 합니다.

저는 주로 남자 아이들이 많은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딸아이의 몸의 변화나 반응에 대해 어찌할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빠로서 좀 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번을 계기로 여자아이의 초경과 관련 부모와 아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공부를 해봤습니다.

초경은 언제부터 시작하나?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경 나이는 12-14세라고 하지만, 월경이 시작하는 나이의 범위는 약 11-18세입니다. 최근 생활환경의 변화와 충분한 영양섭취와 건강조건이 좋아져 초경 나이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4-6학년에 초경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생리를 시작하기 전에 가슴이나 체모의 변화 그리고 약 6개월 전에는 성호르몬 변화에 따라 팬티에 평소와 다른 분비물이 약간 나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알려줘야 하나?
여자아이가 초등학교 3~4학년이 되고 신체적 발육이 눈에 띄게 나타나면 부모는 미리 생리 전의 정신적 긴장감이나 생리 중에 일어나는 여러 증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생리가 왜 일어나는 것인지, 생리를 통해 진정한 여성이 된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어야 합니다. 초경이 있을 때는 신체적으로는 배와 허리가 아프고 전체적인 불쾌감이 따르고 정신적으로는 불안하고 부끄러운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당황하지 않도록 초경 전후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생리주기는 언제 안정화되나?
초경이 시작된 후 처음 2년간은 이렇다할 규칙적인 주기가 없지만 약 1~2년 후에는 비교적 규칙적인 주기가 형성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호르몬이 안정된 상태로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초경때부터 월경에 관한 기록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면 자기의 주기의 변화와 생리 때의 몸상태를 잘 알 수 있어서 평상시의 건강관리에 많은 도움을 얻게 되므로 아이에게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

예기치 않은 생리에 대한 대처법은?
여자아이가 만일 전혀 예상치 못할 때 생리가 시작된다면 휴지나 화장실 종이 아니면 깨끗한 손수건 등을 생리대처럼 비상시에 쓰도록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갖고 있는 패드를 빌리도록 하고 학교에 있을 때 생리가 시작되면 양호실에서 생리용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한 여성으로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신호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소중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합니다.

아내는 큰 딸이 초경을 시작하자 기분이 심숭샘숭한 모양입니다. 이제 아이가 진정한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아이였던 딸이 여자로서 달라 보인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지만 이제 부모 곁을 떠나갈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으로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도 머리 속을 맴돌았다고 합니다.

어느 아빠 엄마나 비슷한 기분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저도 딸아이가 숙녀가 되었다는 것이 한편 기쁘지만 항상 사랑스런 어린 아이가 훌쩍 커서 어른이 되어간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점점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갈 날이 다가온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기에 행복한 마음으로 딸아이의 숙녀로서의 성장을 축하해주고 올바르게 자라도록 지도해 주어야 겠습니다. 딸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은 어느 누구나 비슷하겠지요?

오늘은 월요일이고 회의가 있어 일찍 출근을 하려고 하는데 큰 딸이 벌써 일어났나 봅니다. 큰 딸이 상냥하게 아빠에게 인사를 하는데 이제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그래, 우리 숙녀도 학교 잘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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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남자와 여자의 연애나 결혼에 있어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친구의 약 20년전 이야기입니다. A군은 군복무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A군은 머리를 식히고 싶었습니다. 잡자기 어디론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역으로 가서 야간 기차를 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입석표였습니다. 빈좌석에 무작정 앉았습니다. 기차 창밖으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A군이 앉아있던 좌석의 곁을 한 여자가 잠시 주춤하다가 지나갔습니다. A군은 좌석의 주인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당돌한 직장 여자와 대학 복학생, 기차에서 만나다

조금 후 지나갔던 한 여자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창밖을 보고있던 A군에게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모...르겠는데요."

A군은 앉았던 자리 옆의 책가방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놨습니다.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몇학년?"
"삼~ 삼학년"

"몇학번?
"팔육 학번"

"나랑 같은 학번이네. 난 B양이야. 우리 친구하자. 넌 이름이 뭐니?"

당돌한 B양이었습니다. A군은 B양이 당돌하고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무뚝뚝하던 A군은 B양의 나긋나긋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A군과 B군의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둘 다 기차 입석표를 샀는데 좌석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A군과 B양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B양은 기차가 대전역 부근에 도착하자 우표 5개를 핸드백에서 꺼냈습니다.
"난 여기서 이제 내려야 해. 넌 의무적으로 나에게 우표 5개 만큼 편지를 해야 해."
"알았어. 잘 가"



서울의 A군과 대전의 B양은 그 후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A군은 학보가 나오면 편지를 함께 넣어 보냈습니다. B양은 자주 편지를 학교로 보냈습니다. 직장인이었던 B양은 주말에는 A군이 공부하던 대학 도서관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B양은 식사를 사주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A군의 B양의 호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자신이 B양에게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A군은 4학년이 되었습니다. B양은 서울에 올 때 마다 A군이 공부하던 도서관에 나타났습니다. B양은 A군에게 늘 용기를 주는 말을 했습니다. A군은 B양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시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A군이 노리던 정부투자기관 입사에 실패했습니다. A군은 입사를 하면 B양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군은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기관에 도전해야 했습니다. A군은 B양에게 미안했습니다. B양은 A군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A군은 대학 졸업 후에도 백수였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던 정부투자기관 시험에 낙방 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실시된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B양이 대전에 잠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B양은 직장을 그만 두고 유치원을 개업하기로 했는데 개업 준비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던 A군은 B양의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과 부잣집 딸의 슬픈 이야기의 결말은?

그런데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 위해 A군이 가보니 B양과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친척 동생들이 와 있었습니다. A군은 쑥스러웠지만 열심히 일을 거들었습니다. 저녁에는 B양의 남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B양과 저녁에 데이트를 했습니다. B양은 말을 꺼냈습니다.
"나 내일 선본다."
"그래."

B양이 선본다는 말에 A군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아직 백수인지라 B양을 위해 뭐라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B양은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B양과 남동생에게 별도로 아파트를 얻어주었습니다. 그 날 밤 A군은 B양의 남동생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A군은 대전역으로 갔습니다. A군이 떠나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역 앞에서 B양은 다시 말했습니다.
"여기 근처에서 선보기로 되어 있어."
"그렇구나. 좋은 사람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A군과 B양은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A군은 자신의 초라한 처지가 슬펐습니다. 그래서 B양의 맞선을 단념시키지도 못했습니다. A군은 서울에 올라 와 모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습니다. 대기업은 가기싫었지만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그 후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려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군에게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 우편물은 B양의 결혼식 청첩장이었습니다. A군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B양은 그 당시 선본 남자와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B양이 선본다고 했을때 붙잡지 못한 자신이 후회되었습니다. 아직 백수인 자신의 입장에서 B양에게는 불행할 수도 있어 B양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직하면 B양을 다시 만날 것이라 다짐했었던 것입니다.

A군은 곧바로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날이 B양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결혼식 장소가 수원이었습니다. A군의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A군은 퇴소식 날 고민했습니다. A군의 연수원 버스는 수원역에 내려주었습니다. B양의 결혼식을 곧 앞두고 있었습니다. A군은 결국 B양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운명은 그렇게 A군과 B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A군과 B양은 왜 결혼할 수 없었을까?
남자는 직장을 먼저 구해 여자친구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선보다는 것이 단지 미팅 정도로만 다소 가볍게 잘못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맞선본다는 고백이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해달라는 마지막 요청이었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자존심 상 초라한 자신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맞선본다고 했을 때 붙잡았어야 했지만 남자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그러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일구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적극적이고 당돌한 모습에 다소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한 남자와의 결혼이 사랑이 먼저일 것이지만 결국 현실 앞에 나약해질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바라보는 맞선의 차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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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신록과 꽃들이 아름다운 오월입니다. 아파트의 화단과 잔디밭도 푸르름이 넘실거립니다. 이맘 때가 되면 잊지못할 아파트 주민들과의 사연이 생각나곤 합니다.

아마도 6~7년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아파트 단지에 저희 가족과 친하게 지내는 세 가정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 가족이 다른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가서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아파트 단지의 세 가족이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은 아이들로 인해 맺어진 것입니다. 세 가족의 아이들이 같은 유치원에 다녔고 같은 아파트 단지였기에 아이들과 아내들이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들도 유치원 운동회를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면서 친하게 되었습니다. 세 가족은 각각 두명씩의 아이들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각 가족의 아이들은 각각 2년 터울의 동성이라는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유치원 운동회가 끝나고 있었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치원 운동회는 보통 토요일에 열렸습니다. 세 가족은 각각 부부와 아이들이 모두 모여 저녁 회식을 했습니다. 모처럼 귀가 걱정이 없는 동네에서 만난 남자들은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셨습니다. 부인들은 그들 대로 정겨운 수다로 신이 났고, 아이들은 함께 모여 있다는 것 만으로도 모두 신나는 자리였습니다.
 
저녁식사 자리가 끝나고 남자들은 2차로 맥주를 마시러 갔습니다.(저와 K 아빠와 S아빠로 칭하겠습니다.) 부인들은 한 집으로 함께 가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부터 과속으로 술을 마셨던 남자들은 이미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덜 취한 K아빠가 이만 자리를 끝내자는 제안으로, 저와 S아빠를 비롯한 세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오던 중, 아파트 단지의 잔디밭에 잠시 누웠습니다. 아마도 술을 깨고 집에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제 몸을 흔들며, 카랑 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아니, 여기  누워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일어나세요."
"...누구...."(헉)

[사진] Iron & Wine 표지 "Our Endless Numbered Days"


아내가 노려보듯이 누워있는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뿔싸, 잠깐만 잔디밭에 누워있다가 집으로 가려다가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깜짝 놀라서 잔디밭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내는 흐느적거리는 저를 부축해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제가 잔디밭에서 잠이 든 것은 그 당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집에 와서 저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동네 창피하게 이게 뭐예요?"
"미안해. 잠시 잔디밭에 누워있다가 술깨고 가려다가..."

그리고, 저는 취기도 있고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를 길게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둘은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심각하게 나누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는 전화에 대고 마구 웃는 것이었습니다. 전화가 끝난 후 무슨 일인지 궁금했습니다.
 
"무슨 일인데 전화를 하면서 그렇게 크게 웃는 거야?"
"참 한심한 남편들 이야기 했어."(피식 미소를 지었습니다.)

"한심하다니..."
"어제 저녁에 당신이 잔디밭에 누워 있었잖아. 그런데 그 시간에 S아빠도 다른 잔디밭에 누워서 잠들었다는 거야. 그러니 웃음이 안나오겠어."

그렇습니다. 전 날 밤, 저와 S아빠는 아파트 단지 앞에서 헤어졌는데 그 후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아파트 부근 잔디밭에서 누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잔디밭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저를 찾아나섰고, 비슷한 시각에 S엄마도 남편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전 날 밤, 똑같이 겪었던 황당한 일에 아내와 S엄마는 깔깔대며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저와 S아빠는 가족모임이 있더라도 각각 아내의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일찍 귀가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오래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때 왜 그랬을까?" 혼자 생각하면 씁쓸한 쓴 웃음을 짓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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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은 금붕어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유치원때 선생님이 패트병에 금붕어를 키우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해 아이에게 주었는데 수명을 다하고 죽은 것입니다. 아이가 7살때 받은 것인데 현재 둘째 딸이 10살이 되었으니 금붕어는 무려 4년째 살다가 운명을 달리하게 된 셈입니다.

금붕어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둘째 딸아이가 당시 7살이었고 유치원 다닐 때 였습니다.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함께 패트병에 금붕어를 키우는 방법을 배우는 실습 시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둘째 아이는 유치원 선생님과 만든 패트병 어항에 물을 담아 넣은 금붕어 2마리를 갖고 집에 왔습니다. 둘째가 신난 듯이 엄마에게 "내가 유치원에서 만든 금붕어 어항이야. 금붕어를 집에서 잘 키워볼게."라고 당돌하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금붕어를 키워본 적이 없어 내심 걱정부터 들었답니다. 사실 좁은 패트병에서 금붕어가 살기도 힘들 것 같고 키울 자신도 없었습니다. (유치원에서 패트병에 금붕어를 키우는 학습이 올바른지는 의문이 들었던 시기였습니다. 대개 일찍 금붕어가 죽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니가 어떻게 키우겠니? 결국 내 일만 늘었지. 지금은 니가 잘 키울 거라 말하지만 엄마의 짐이 될 것 같구나."라고 둘째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내의 예상 대로 둘째는 처음에만 반짝 금붕어를 돌보더니 점점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버렸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그 전에 둘째가 유치원에서 누에를 가져온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아내는 벌레를 무척 싫어했는데 둘째가 가져 온 누에를 그냥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에가 뽕잎을 먹고 자라서 누에고치를 거쳐 나방이 될 때까지 정성들여 키웠던 일이었습니다. 누에는 결국 나방이 되어 멀리 하늘로 날아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주말에 아내는 저에게 금붕어 어항을 하나 사야겠다고 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이니 좁은 패트병 안에서 금붕어를 죽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와 저는 두 딸과 함께 마트에 가서 동그란 어항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이제는 금붕어는 온전한 집도 가진 우리 가족이 되었습니다.

금붕어 어항 밑에는 작은 돌들도 넣어주고 수초 장식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얀색과 분홍색의 옷을 입은 금붕어는 자신들의 집이 생기자 활발하게 어항 속을 뛰어 놀았습니다.

아내와 둘째는 금붕어를 위한 사료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적당량을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얀 금붕어는 식탐이 워낙 좋아서 어항 근처에 다가가면 물 위로 입을 벌리고 달려들곤 했습니다.

금붕어 두마리는 함께 어항에서 사이좋게 놀았습니다. 금붕어는 그렇게 우리 가족으로 4년을 함께 지냈습니다. 둘째 아이가 다니던 당시 유치원 친구들의 금붕어들은 이미 패트병 시기에 다 죽었다고 하니 참으로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하얀색 금붕어가 배를 거꾸로 하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는 그 동안 함께 친구처럼 살아온 금붕어의 죽음에 슬퍼했습니다.

이제는 분홍색 금붕어 한 마리만 홀로 어항을 헤엄치고 있습니다. 어항 구석에만 맴도는 것을 보면 외로운가 봅니다.

아내에게 "금붕어가 외로와 보이는데 몇마리 더 살까?"하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앞으로 계속 더 금붕어를 키울 자신이 없는 듯 말이 없었습니다. (남은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만 금붕어를 키울 모양입니다.)

금붕어의 수명은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잘 키우면 4~5년까지 산다고 합니다. 더 오래 사는 금붕어 종류도 있다고 합니다만 일반 가정에서 키우는 금붕어가 4년 이상 살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들은 하얀 금붕어가 제 수명을 다하고 늙어서 죽었다고 믿고 싶어졌습니다.

하얀 금붕어는 우리 가족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다가가면 늘상 물 위로 입을 벌리고 밥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마치 귀여운 강아지와 같았습니다. 식탐이 많은 재롱둥이 금붕어는 없지만 오랜 동안 함께 즐거움을 준 금붕어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남은 금붕어가 외롭더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합니다. 

금붕어를 키우는 것도 정성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내의 정성이 없었다면 더 일찍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4년여의 오랜 기간을 살았던 것은 아내의 정성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금붕어 한 마리의 죽음이지만 가족처럼 함께 살다보니 많은 정이 들었나 봅니다. 하늘나라에서 잘 살기를 기원해 봅니다.

[추가] 둘째 딸아이가 자신이 처음으로 함께 키워 본 금붕어의 죽음이 실감났는지, 아빠가 쓴 글을 읽더니 울음보를 터뜨려 버렸습니다. 어제는 담담하게 슬퍼했는데 4년간을 함께 살아온 금붕어를 생각하면서 "금붕어가 너무 불쌍해"하면서 펑펑 울어버리는 둘째 딸. 아직 여리고 감성이 풍부한 둘째입니다. 아내는 둘째를 달래주고 있습니다. 괜히 글을 보여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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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6살 때부터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프로그래머의 꿈을 키운 여대생을 만났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선택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의 한 소절입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오늘, 최고의 여성 개발자를 꿈꾸는 여대생 J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모 여자대학교의 데이터정보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현재 여자개발자 커뮤니티의 회원이고 앞으로 스탭 역할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J의 꿈은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개발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J는 그 꿈을 향해 끊임없는 도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과였기에 대학도 문과로 진학을 했으나, 그 꿈을 버리지 못해 다시 전공을 공과 계열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현재 07학번입니다. 어찌보면 남들보다 늦은 출발일 수 있습니다.


사실 J가 컴퓨터와 친하게 된 것은 오래된 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좋아하고 프로그래밍이 취미였다고 합니다. 6살 때부터 컴퓨터 학원을 다녔습니다. 유치원 시절부터 컴퓨터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였습니다. 보통은 피아노 학원이나 영어 학원을 다녔을 유치원 나이에 컴퓨터가 마냥 좋았답니다.

J는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그래서 J의 꿈의 여성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그 나이에 천리안 등 PC통신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성이 프로그래머 개발자가 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소망으로 인해 고등학교 문과를 거쳐 대학도 문과를 선택했던 터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J는 대학 전공도 바꾸고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여성 개발자들은 없는 것일까 인터넷을 찾아보고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여자 개발자 모임터(http://cafe.naver.com/womendevel)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습니다. 열성 회원입니다. J는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자 개발자 코임터 운영자 전수현 씨]

그리고, J는 개발자도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다양성을 배워야 한다면서 안철수연구소의 사보에 대학생 기자로도 지원해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개발자로서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야 할 길은 멀지만 늘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J가 속한 '여자 개발자 모임터'의 운영자는 아이비김영에 근무하는 웹 개발자 전수현 씨입니다. 여대생 J는 전수현 씨는 새로운 여성 개발자의 영역을 개척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멘토와 같은 선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존경하는 여성 개발자 중 한 분입니다. (여대생 J와 현재 웹개발자인 전수현 씨는 서로 다른 인물입니다.)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

이미 6살 때부터 꿈꾸던 여성 프로그래머 개발자로서의 길은 시작일 뿐입니다. 아니, 커다란 도전입니다. 남성들의 전유물 처럼 느껴지던 장벽을 넘어  신천지를 향한 탐험가입니다. 비록 우리 사회에 프로그래머 개발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는 개발자에 달려있다는 것을 J는 잘 압니다.

J는 도전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대학 공부 이외에도 커뮤니티의 스탭, 그리고 기업의 사보기자 등 할 일도 많고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우주인 이소연 씨와 같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가 되길 바랍니다.

유치원 때부터 꿈꾸던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 개발자, J의 도전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J와 함께 여성 개발자 지존의 꿈을 키우는 '여자 개발자 모임터' 회원 2000여명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남성 개발자 위주인 '금남의 구역'이었지만 그녀들을 위한 남성 개발자 분들의 사려깊은 배려가 많았으면 합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프로스트의 '가지않는 길' 마지막 소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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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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