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24 김대중 손자 김종대, 영정 든 모습 슬펐다 (인생의 교훈과 철학은 남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2. 2009.08.21 김대중 친필일기 전문, 위대한 사랑의 역사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
  3. 2009.08.19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국장 갖고 흥정말라 by 진리 탐구 탐진강 (82)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6일간의 국장으로 엄수됐습니다. 고인의 영결식과 안장식을 비롯한 장례식은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국민들의 심정은 슬픔을 참으며 차분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합니다.

영결식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도 숙연하면서도 엄숙했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던 가족들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남편이자 동지를 잃은 이희호 여사의 슬픔은 어느 누구 보다 컸을 것입니다. 87세의 고령에도 하루 종일, 뜨거운 햇볕과 무더위 속에서 영결식과 운구 행렬, 그리고 안장식에 이르기까지 국장의 모든 절차를 지키고 있는 이희호 여사를 보면서 순간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서울국립현충원으로 향하는 운구행렬 도중 민주주의 상징 서울광장에서 잠시 하차해 운집해있는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사는 "입원기간과 국장 기간에 보여준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신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편은 평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고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고인의 유지입니다.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화해와 용서, 행동하는 양심' 유지 밝히는 이희호 여사의 소망

시민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대중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이희호 여사님 사랑합니다" "당신의 행동하는 양심을 잊지 않겠습니다"고 화답했습니다.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오정해는 자신의 결혼식 주례와 국악을 사랑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상여소리를 해서 시민들을 숙연한 분위기기로 만들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자 김종대 군이 고인의 영정을 안고 걷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바로 손자 김종대였습니다. 손자 김종대는 할아버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참으며 침착하게 운구 의식을 진행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자 종대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쓴 친필 일기에도 손자에 대한 애틋한 애정이 묻어 나오기도 합니다.

[김대중 친필 일기 중에서]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자애로운 할아버지로서 손자를 안고 행복해 하는 김대중 생전 모습]

손자인 종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의 장남으로 1986년생(만 23세)입니다. 김대중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청와대에서 손자를 안고 즐거운 망중한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김대중은 손자인 종대에게 일기에서 "나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다정다감한 시간을 가졌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김대중은 손자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어떤 인생관과 철학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나 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인생과 종교적 믿음의 핵심이 이웃 사랑이라는 핵심 덕목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요즘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판치고 있는 가운데 이타적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김대중은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고 손자에게 삶의 교훈과 원칙을 세워준 할아버지였습니다. 손자에게는 평생 자랑스럽고 찬란한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잊혀지지 않는 손자 종대의 슬픈 눈빛과 김대중이 들려 준 인생의 교훈

김대중은 독재와 불의에는 굴복하지 않고 원칙을 지킨 강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손자와 아이들 그리고 서민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였습니다. 믿음과 인생살이에 있어 이웃 사랑이 가장 중요한 핵심 덕목이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는 손자 종대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철학일 것입니다.
 

 
김대중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통일에의 염원이 무지개 같이 피어오르는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 자유 통일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행동하는 양심"을 이야기했습니다. 깨어있는 우리네 사람들의 몫인 셈입니다. 이 땅에서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이제는 그의 유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 꿈과 과업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손자 종대는 곧 살아가는 역사의 후세들인 우리 모두입니다. 영정을 든 손자의 슬픈 눈빛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손자 김종대 군이 할아버지의 서재에 영정을 올려놓고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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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쓴 친필 일기의 일부가 공개됐습니다. 유족측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식 추모 홈페이지에 일기의 일부를 게재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친필 일기였기에 공개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다만 일부만 공개해 다소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는 김 전 대통령이 올해 1월 1일부터 입원하기 1달전인 6월 4일까지 쓴 내용 가운데 일부에 불과합니다. 친필 일기는 하루 하루를 짧게 주요 내용이나 생각을 짧게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일부이기는 했지만 공개된 전문을 읽어보니 위대한 지도자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넘는 이웃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극진한 아내 사랑에 대한 마음 가득했다

친필 일기의 내용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 이웃사랑의 소중함 등 따뜻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며 극진한 아내 사랑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고난의 길에 있어 평생 동지이자 아내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인생이란 의미있고 가치있게 사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인상깊은 구절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살지만 고인은 고통받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웃을 위해 사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추구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평생 올곧은 민주주의를 위한 '한 길'을 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시대에 정권에 의한 감금, 투옥, 가택연금, 암살 기도 등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헤치고 살아 온 인생을 통한 교훈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일기에서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라며 역사와 국민을 위해 평생 한 길을 걸었던 올곧은 삶을 밝혔습니다.


역사상 독재자는 결국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자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심판을 받는지에 대한 생각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전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독재자들은 스스로 독재를 안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독재자로 전락해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정치인들은 새겨들어야 할 말인 듯 합니다.

김대중은 85세에도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이었다

고인은 85세의 고령에도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이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며 네티즌들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인터넷 보유국이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멀리 혜안을 갖고 미래를 내다 본 결과입니다. 네티즌 글에도 슬퍼하고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웃 사랑' 위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자인 종대에게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해주면서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물룬 인생에서 이웃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용산참사를 언급하고 추운 계절에 철거로 쫒겨나는 빈민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설날에는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라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했습니다.

애틋한 노부부의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희호 여사의 친필 편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고 인생과 역사를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을 달관한 성인의 격언처럼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외에도, 용공 및 비자금 허위사실을 유포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에 대해 사실 무근임이 대검에서 밝혀졌기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내용도 있었습니다. 평생 용공 조작을 해온 독재정권과 비슷한 짓이 이루어졌나 봅니다. 고인은 그리고 클린턴 부부와의 인연, 그리고 과거 살인적 폭압적인 독재정권 시절의 수많은 고난과 생사를 오가는 시절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를 다짐했지만 그 꿈을 완전히 보지못하고 서거했습니다. 평생동안 올곧게 가져온 민주주의와 중소서민 경제, 그리고 남북평화에 대한 열정을 마지막까지 보여준 셈입니다. 세계인들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위대한 세계적 지도자'의 인간적 모습과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친필일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우리 모두 한번쯤 읽어보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 시대를 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캐리커쳐 (출처 아리툰)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 전문입니다.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2009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24일
14년 만에 고향 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 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

2009년 4월 27일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크게 감사.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2009년 5월 1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 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2009년 5월 20일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다.

2009년 5월 22일
버마 혁명민주지도자 등 수 명이 내방. 민주화에 대해서, 나는 "버마는 외국의 지지는 충분히 얻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서 안에서 국민이 자력으로 쟁취하도록 노력하시오"라고 격려했다.

2009년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24일
노 대통령 장례식을 정부와 측근들은 국민장을 주장하는데 가족은 가족장을 주장해 결말을 못 보았다. 박지원의원 시켜서 '노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살았고 국민은 그를 사랑해 대통령까지 시켰다. 그러니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국민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는데 측근들이 이 논리로 가족을 설득했다 한다.

2009년 5월 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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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도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CNN 등 세계 주요 언론들도 긴급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추모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제 사회의 추모 분위기는 오히려 우리나라 못지 않은 열기입니다. 이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는 물론 세계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세계인들의 존경과 예의의 표현일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상식과 예의범절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슬픔을 나누고 애도를 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인터넷에는 고인의 죽음 앞에서도 악플을 다는 인면수심의 패륜아들도 간혹 있습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인간말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장례식을 국장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측에서 난색을 표명했다는 일부 기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국장을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측은 국장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한 셈입니다. 다른 기사에서는 유족의 뜻에 따라 국장을 치르되 6일장으로 절충하자는 정부측 검토안도 나온다고 합니다. 고인의 장례식을 두고 정부측이 흥정을 하는 형국입니다. 참으로 비열하고 몰염치한 정부의 태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최대한 예우'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과연 이 대통령의 말이 진심일지 지켜봐야 겠습니다. 이번에도 빈 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도 이명박 대통령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최대한 예우'를 지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지시는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장례식 추모사를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현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파괴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또 서울광장을 봉쇄하며 시민들을 무차별 폭력과 연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분향소가 마련되고 추모객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과 추모 기간 동안 이명박 정부는 졸지에 비정한 패륜 정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정부가 패륜을 저지르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정부의 예산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일부 극우보수단체 할아버지들은 시민분향소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에게는 가혹한 폭력진압으로 악명높던 경찰은 극우보수 할아버지들의 망나니짓에는 눈을 감고 모른 체 했습니다. 이는 곧 현 정부와 대통령을 패륜 집단으로 욕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경찰의 패륜적 만행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시민들의 추모를 방해하거나 시민분향소 설치를 강제로 막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대한 예우를 지시하는데 경찰은 최대한 패륜을 저지른 셈입니다. 만일 이 대통령이 진심으로 지시한 것이라면 경찰 수뇌부는 파면 조치 등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망자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슬픔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의 도리입니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추모객들을 방해하고 폭압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짓일 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당연히 국장으로 치러야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적 지도자로서 충분히 국장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지역 민주주의 역사의 상징이자 신화입니다. 우리나라가 최대의 경제위기인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이었고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도 인권과 평화의 상징이자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루는 것이 타당합니다. 

분향소를 찾은 권양숙 여사가 오열하며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를 하고 있다.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을 갖고 흥정하는 모양새는 보기좋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대한 예우하라고 한지 얼마 안돼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막고 정부측은 장례식 국장 문제로 대통령 얼굴에 먹칠을 해버렸습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갖기를 바랍니다. 고인 앞에서 속좁고 비열한 패륜 정부로 비추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통령 말 그대로 최대한 예우를 갖춘 예의있는 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정부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길입니다. 말로는 국가의 브랜드를 높이자고 하면서 스스로 깎아먹는 정부가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에 대한 전례 문제를 갖고 헛소리를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이없는 일입니다.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자는 국장으로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김 전 대통령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고 현저한 업적을 남긴 분입니다. 국장은 당연히 유족의 뜻에 따라 정부가 최대한 예우를 갖춰야 합니다.

기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경우에는 9일장 형식의 국장으로 한 바 있습니다. 독재자였던 박정희 대통령도 국장으로 거행했던 것입니다. 전례가 없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정부측은 관례에 따라 현직 대통령 사망은 국장으로 하고 전직은 안된다는 어이없는 주장도 한다고 합니다. 정부가 고인 앞에서 말장난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적법한 법률에 따라 정부는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예우를 충실히 하면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9일장의 국장으로 거행하면 됩니다. 정부는 국장 장례식을 갖고 6일장으로 하자고 흥정하거나 관례 운운하며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슬픈 2009년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별과 같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땅에서 못 이룬 꿈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을 믿어봅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집니다. 슬픔이 응어리지면 한이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제대로 된 국장으로 치르면서 국민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슬픔을 보살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서운 동토의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인동초 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닮았다.

[참고 글] 김대중의 노무현 추모사와 YS MB의 화해(?)

[참고] 국장과 국민장의 차이

구분

국장

국민장

대상

1. 대통령직에 있었던 사람

2. 국가,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사람

기간

9일 이내

7일 이내

조기

장례기간 관공서 계속 게양

영결식 당일 관공서 게양

휴무

영결식 당일 관공서 휴무

없음

경비

전액 국고 지원

일부 보조 원칙
(전액 지원도 가능)

절차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과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 결정


[추가 속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6일장 형식의 국장으로 결정됐습니다.
정부는 19일 오후 8시경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 결정과 관련 임시국무회의를 개최해 이같은 장례 일정을 확정한 했습니다. 장의 명칭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며, 영결식은 오는 23일 오후 2시 빈소가 차려진 국회 광장에서 거행될 예정입니다.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입니다. 따라서 국장기간 내내 조기가 게양되며 장의 비용은 전액 국고에서 지원됩니다.

결국 정부는 9일 국장이 아닌 6일 국장으로 흥정을 한 셈입니다. 최대한 예우를 하려거든 처음부터 9일 국장으로 했다면 현 정부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통크게 하지 못하고 흥정하듯이 6일장으로 한 것은 현 정부가 고인 앞에서 치졸하고도 옹졸하다는 비판을 듣게 될 전망입니다. 정부가 앞장 서 최대한 예우인 9일장 국장을 선도했다면 좋았을 터인데 안타깝고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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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