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8.24 이준기 부상투혼과 중국팬 구명운동, 인권문제 비화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53)
  2. 2009.08.21 김대중 친필일기 전문, 위대한 사랑의 역사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
  3. 2009.01.30 흉악범은 마스크써도 되고 시민은 안된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6)
  4. 2009.01.22 오바마는 왜 소통의 IT 대통령을 꿈꾸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이준기의 부상 투혼을 보여주는 충격적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게 됐습니다. 무려 50바늘이나 꿰매는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붕대를 감고 공연에 출연한 사진입니다.

이준기는 지난 21일 첫 공연을 앞두고 뮤지컬 '생명의 항해' 리허설 도중 어둠 속에서 무대 동선에서 벗어나다 철골 구조물에 머리를 부딪쳐 이마에 큰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준기는 119 구급차에 의해 곧장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는데 찢어진 이마 부상 부위가 엄청난 출혈과 함께 심각하게 벌어져 약 2시간 동안에 걸쳐 무려 50여바늘이나 꿰매는 봉합수술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준기는 이 같은 심각한 이마 부상에도 불구하고 대역 배우가 담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 날 오후 공연에 출연을 강행했다고 합니다. 워낙 찢어진 이마 부상 상태가 심각하고 무더운 여름이라 상처가 덧날 우려가 있어서 안정이 필요했으나 이준기는 주연배우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부상 투혼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실상은 투상 투혼이 국방부의 명령에 의한 것이란 이야기가 많습니다. 당시 뇌와 목에는 이상은 없었지만 이마에 붕대를 감고 공연을 감행하는 것은 무리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마에 큰 부상으로 무려 50바늘 봉합수술 직후 첫 공연 무대 올라

                   이마에 붕대를 두르고 공연 무대에 선 이준기의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준기 소속사는 처음부터 더블 캐스팅이나 대체요원을 두고 공연을 준비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이준기 스스로도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강행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이준기의 이마 부상 상처가 아무는 6개월 뒤에는 성형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준기는 21일 오후 출연 이후 이마와 얼굴이 붓고 통증이 심해지는 등 부상이 악화돼 소속사의 만류로 일단 22일과 23일은 출연을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준기가 이마에 붕대를 감고 중절 모자를 쓰고 공연 무대에 선 모습이 안타깝다


이런 와중에, 이준기의 부상 소식은 중국 팬들에 의해 중국 언론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중국 언론들은 이준기가 심각한 이마 부상에도 뮤지컬에 출연한 사진을 싣고 한국은 중국의 인권문제를 운운할 수 없다고 비판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준기의 중국 팬들은 이마에 붕대를 감고 얼굴이 부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며 분노를 표시하거나 한국 언론사에 이준기 구명운동에 나설 정도였습니다. 중국 이외 아시아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이준기 팬들은 망가진 이준기 얼굴 사진에 안타까운 심정을 밝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 언론과 이준기 팬들, 대형 부상에도 무대 출연에 인권 문제 주장

중국 언론들이 한류스타인 이준기의 심각한 이마 부상 소식과 함께 우려를 전하고 있다

한류스타인 이준기의 부상 소식이 아시아 지역의 관심사로 떠오른 셈입니다. 더욱이 중국 언론이 한국의 인권문제를 비판할 정도로 이준기의 부상 문제는 국가 차원의 인권 이슈로 비화할 조짐도 보이는 것입니다. 미국으로부터 인권 문제를 지적받는 국가인 중국의 언론이 이준기 부상 소식에 한국의 인권을 문제삼다니 사실 어이없는 상황일 수 있지만 사실 이준기의 부상 정도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 만큼 이준기 부상 소식을 중요한 사안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나라 망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진 속의 이준기는 이마에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에서 머리에 중절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얼굴이 부어있고 피멍이 든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였기 때문에 부상 상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마에 50 바늘이나 수술한 직후라서 마취가 채 풀리지도 않은 채 첫 공연 무대를 소화했다는 점에서 부상 후유증이 우려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 공연 중 이준기의 머리 붕대에 피가 배어 나오기도 했다고 알려질 정도입니다.


이준기 팬들은 아예 주요 언론사에 연락해 "공연 첫날 리허설에서 이준기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연으로서의 책임감과 무대에 대한 열정으로 공연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지금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이준기의 배우 인생에 어떤 마이너스가 생길지 모른다"며. "24일 언론 취재진을 상대로 한 프레스 공연에 이준기가 서는 것을 막아달라. 다른 언더 배우를 써 달라"고 이준기 구명운동과 함께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준기는 지난 5월 신체등급 1급 현역 판정을 받아 아주 신체 건강한 남자로서 입대한 바 있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여자 보다 예쁜 공길 역으로 열연을 펼쳐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군복을 입은 이준기는 씩씩한 대한민국 현역 군인이었습니다. 이준기가 팬들 앞에서 "저는 맡은바 최선을 다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잠깐 눈물을 살짝 비치는 장면은 순간 뭉클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군대를 비겁하게 불법으로 피한 병역기피자들이 정치인들은 물론 연예인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입대하는 이준기는 역시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준기가 이번에 출연하는 '생명의 항해'는 국방부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기획한 뮤지컬로8월 21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었습니다. 이번 '생명의 항해'는 군인 이준기 이외에도 주영훈(주지훈), 김세현(김다현)과 현 뮤지컬 배우 윤공주, 손현정, 문종원 등이 주요 등장인물로 발탁돼 공연을 준비해 왔습니다.

국방부 '군인신분 뮤지컬 출연 명령' VS 주치의 '부상 심각 입원 치료 필요'

그런데, 이준기가 심각한 이마부상에도 불구하고 첫 날 공연에 무리하게 나섰던 것은 국방부가 기획한 작품이라 군인 신분이라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 의구심도 듭니다. 군대는 개인적 판단이 아니라 상관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군대 조직은 오직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이준기가 책임감에 수술 후 곧바로 공연 무대에 선 것은 책임감이라기 보다 국방부의 중대한 작전 명령(?)에 따른 것이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입니다.


따라서 이번 뮤지컬을 기획한 국방부는 이준기 팬들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습니다. 이준기의 부상 상태가 심각한 만큼 공연 보다는 먼저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휴식을 취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입
니다. 현재 이준기가 24일 공연에 나오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준기는 병원 주치의 의사의 소견과 뮤지컬 주최측인 국방부 관계자와 조율해 24일 무대에 설지 여부를 최종 결정지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준기 부상에 대해 주치의도 일주일 이상의 입원 치료가 필요하고 무리한 활동을 해서는 안되는 큰 부상이라고 하는데 국방부가 다소 무리하게 언론사 홍보를 위해 이준기를 무대에 세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도 의심받는 대목입니다. 당초 이준기 소속사는 이번 뮤지컬에 출연을 고사했지만 국방부가 명령이라며 차출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설사 이준기가 명령으로 출연했다고 하더라도, 이준기는 현재 심각한 부상 중 입니다. 군인이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해도 후방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는 것이 상식인데 이준기가 큰 부상으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무대에 세우려는 국방부는 과욕을 참았으면 합니다.

국방부나 뮤지컬협회는 이준기가 무대에 서는 것이 공연 티켓을 산 팬들에 대한 책임감과 예의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실제 이준기 팬들은 먼저 부상 치료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상황이란 점에서 심사숙고했으면 합니다. '생명의 항해'가 자유와 생명의 소중함을 다룬 것이듯이 얼굴이 생명인 이준기의 건강도 매우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군대 기피자가 많은데 자칫 이번 일이 군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지 않도록 국방부는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 팬들의 구명운동과 더불어 인권문제로까지 비화된 이준기의 이마 부상과 건강이 큰 문제없이 빨리 쾌차하기를 바랍니다.  

[참고 글]  이준기 입대와 군대 안간 리더들의 모순은?

[추가] 이준기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생명의 항해'에 오늘 오후 프레스콜 무대를 시작으로 다시 공연에 나선다고 합니다. 군의관이 무대 부근에 상시 대기한 채로 공연을 강행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준기는 당초 조교를 원했으나 국방홍보원 소속으로 배치가 됐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상당히 심각한 부상인데 공연을 강행할 상황인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준기 본인이 책임감 때문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국방부가 사병의 건강 보호 차원에서 만류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부디 이준기가 큰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하는 상황이지만 건강에 이상이 없이 공연이 무사히 잘 끝나기를 바랍니다.

<사진 출처> 이준기 팬클럽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해 주시는 따뜻한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 탐진강의 트위터는 @tamjingang 이오니 팔로우를 통해서도 쉽게 글을 구독할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쓴 친필 일기의 일부가 공개됐습니다. 유족측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식 추모 홈페이지에 일기의 일부를 게재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친필 일기였기에 공개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다만 일부만 공개해 다소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는 김 전 대통령이 올해 1월 1일부터 입원하기 1달전인 6월 4일까지 쓴 내용 가운데 일부에 불과합니다. 친필 일기는 하루 하루를 짧게 주요 내용이나 생각을 짧게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일부이기는 했지만 공개된 전문을 읽어보니 위대한 지도자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넘는 이웃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극진한 아내 사랑에 대한 마음 가득했다

친필 일기의 내용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 이웃사랑의 소중함 등 따뜻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며 극진한 아내 사랑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고난의 길에 있어 평생 동지이자 아내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인생이란 의미있고 가치있게 사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인상깊은 구절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살지만 고인은 고통받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웃을 위해 사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추구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평생 올곧은 민주주의를 위한 '한 길'을 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시대에 정권에 의한 감금, 투옥, 가택연금, 암살 기도 등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헤치고 살아 온 인생을 통한 교훈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일기에서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라며 역사와 국민을 위해 평생 한 길을 걸었던 올곧은 삶을 밝혔습니다.


역사상 독재자는 결국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자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심판을 받는지에 대한 생각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전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독재자들은 스스로 독재를 안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독재자로 전락해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정치인들은 새겨들어야 할 말인 듯 합니다.

김대중은 85세에도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이었다

고인은 85세의 고령에도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이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며 네티즌들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인터넷 보유국이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멀리 혜안을 갖고 미래를 내다 본 결과입니다. 네티즌 글에도 슬퍼하고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웃 사랑' 위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자인 종대에게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해주면서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물룬 인생에서 이웃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용산참사를 언급하고 추운 계절에 철거로 쫒겨나는 빈민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설날에는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라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했습니다.

애틋한 노부부의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희호 여사의 친필 편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고 인생과 역사를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을 달관한 성인의 격언처럼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외에도, 용공 및 비자금 허위사실을 유포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에 대해 사실 무근임이 대검에서 밝혀졌기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내용도 있었습니다. 평생 용공 조작을 해온 독재정권과 비슷한 짓이 이루어졌나 봅니다. 고인은 그리고 클린턴 부부와의 인연, 그리고 과거 살인적 폭압적인 독재정권 시절의 수많은 고난과 생사를 오가는 시절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를 다짐했지만 그 꿈을 완전히 보지못하고 서거했습니다. 평생동안 올곧게 가져온 민주주의와 중소서민 경제, 그리고 남북평화에 대한 열정을 마지막까지 보여준 셈입니다. 세계인들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위대한 세계적 지도자'의 인간적 모습과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친필일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우리 모두 한번쯤 읽어보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 시대를 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캐리커쳐 (출처 아리툰)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 전문입니다.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2009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24일
14년 만에 고향 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 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

2009년 4월 27일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크게 감사.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2009년 5월 1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 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2009년 5월 20일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다.

2009년 5월 22일
버마 혁명민주지도자 등 수 명이 내방. 민주화에 대해서, 나는 "버마는 외국의 지지는 충분히 얻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서 안에서 국민이 자력으로 쟁취하도록 노력하시오"라고 격려했다.

2009년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24일
노 대통령 장례식을 정부와 측근들은 국민장을 주장하는데 가족은 가족장을 주장해 결말을 못 보았다. 박지원의원 시켜서 '노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살았고 국민은 그를 사랑해 대통령까지 시켰다. 그러니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국민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는데 측근들이 이 논리로 가족을 설득했다 한다.

2009년 5월 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혼자 생각해보는 뉴스 분석이다. 군포 여대생 살해범인 강모씨의 얼굴이 경찰에 의해 공개되지 않고 있다.(강모씨는 여대생 이외에 또 한명의 40대 주부를 살해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고, 그 동안 미궁 속에 빠져있던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 5명 살인사건 등 7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살인마이다.) 
[뉴스 참고]군포 여대생 살해범, 실종 부녀자 7명 살해 자백

지난 27일 현장 검증에서도 경찰은 모자와 마스크로 강모씨 얼굴을 철저하게 가렸다. 시민들과 유족들은 "인면수심의 흉악범 얼굴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경찰은 거절했다.
우리나라 경찰은 흉악범 마저도 인권을 보호하고 초상권을 침해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언론에서 범죄자들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


참으로 가증스런 경찰의 모습이다. 경찰은 강력 범죄자인 흉악범의 얼굴과 인권을 친절하게도 보호한다. 그러나, 경찰은 시민들에게는 오히려 가혹한 형벌을 가하고 있다. 소위 집회시위법, 일명 '마스크법(복면금지법)'이다. 길거리에서 마스크만 쓰고 있어도 경찰이 임의적으로 잡아갈 수 있다.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집회의 가능성 만으로도 마음대로 체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래 박스에 있는 글은 언론에 소개된 마스크법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다.
회사원 박모씨는 자신이 가입해 있는 시민단체로부터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번주 토요일 오후 6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운하 반대’의 촛불을 밝힙시다.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동안 단체 활동에 뜸했던 박씨는 이번 행사에는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중학생인 딸이 집회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았잖아. 게다가 날씨가 추워”라며 말렸지만 딸은 고집을 부렸다. 박씨는 딸에게 옷을 두툼하게 입고, 마스크를 쓰라고 한 뒤 함께 지하철을 타고 시청 앞으로 갔다. 이미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단체에서 준비해 준 촛불을 들고 무리 속에 섰다. 2시간 남짓 진행된 집회가 끝나자 거리행진이 시작됐다.

인도를 걸어가던 부녀에게 경찰이 다가왔다. 경찰은 이들에게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을 어겼으니 긴급 체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씨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섰다.
경찰은 “집회·시위의 참가자가 신원 확인을 곤란하게 하는 복면 도구를 착용해서는 안되는데, 마스크를 썼으니 현행법 위반입니다”(집시법 제14조 4항 등)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이튿날 박씨는 자신이 속한 시민단체 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간사의 긴 한숨소리가 전해졌다. “우리 단체가 촛불집회를 주동했다고 1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왔어요. 상인들이 불법 시위로 경제적 피해를 봤다네요”라는 간사의 말 때문이다. 집단행위로 다수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박씨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되겠죠”라고 인사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MB 정부와 한나라당은 2월 국회에서 집시법 개정안을 상정할 계획이라 한다. 막장 판타지가 SF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2009년 현재 대한민국에 현존하고 있는 셈이다. 스탈린 독재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현재 우리나라에 진행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결사의 자유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인지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아이들에게 이제는 말하기가 힘들 것 같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경찰이 자의적으로 시민들의 얼굴을 촬영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흉악범 얼굴은 마스크를 씌워서 사진 촬영도 못하게 하는 경찰이다. 그런데 시민들은 사진 찍겠다고 통보만 하고 바로 얼굴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헌법 보다 위에 군림하는 모양이다.

흉악범은 사진 촬영을 못하게 모자와 마스크까지 친절하게 씌우면서 시민들의 얼굴은 마음대로 찍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가 우리의 현실이다. 살인마 흉악범은 초상권을 보호하고 시민은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찰은 교통에 방해된다는 통보만으로도 모든 집회를 불허할 수도 있다. 또, 방송사도 장악하려는 시도인 방송 악법도 국회에 상정한단다.


그야말로 공포의 경찰국가로 가고 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에도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선으로 선출된 현재 정부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시위도 경찰이 자의적으로 체포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살인마 흉악범의 인권 보다도 못한 시민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글프다.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소통은 언제 할 것인가? 이제 나이가 불혹이 넘었는데 지난 20대 젊은 대학생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 아직은 젊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겠다. 나약한 소시민으로 순응하면서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은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살아야 겠다. 다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다.

참고 링크 : 마스크법이란 (강풀 만화)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바마 대통령이 말했다. "예스, 위 캔(Yes, We can)".
미국인들도 말했다.  "예스, 위 캔(Yes, We can)". 오바마 열풍이다. 다시 할 수 있다는 다짐들이다.

오바마2.0은 인터넷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 강화
오바마 열풍은 오바마2.0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바마는 인터넷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이른바 `오바마 2.0'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웹 2.0의 개념을 현실정치에서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주창한 민주주의2.0과 일맥 상통한다.

대선 기간 동안 선거자금 모금과 지지자 확보를 위해 인터넷 서비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던 오바마는 당선 직후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새로운 정부에서 추진할 정책 아이디어를 올릴 수 있게 하는 등 네티즌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어느새 웹 2.0이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부상한 것이다.

백악관 홈페이지, 웹2.0 정신 반영한 쌍방향 대화 창구
오바마2.0은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www.whitehouse.gov)부터 달라졌다. 새롭게 선보인 홈페이지는 대통령과 미국 시민 사이의 소통과 참여, 투명성을 기본 원칙으로 양방향성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사이트 방문객들은 500자 이내의 짧은 이메일을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직접 보낼 수 있다.


백악관 뉴미디어국장인 매콘 필립스는 사이트 소개 글을 통해 "새 홈페이지는 온라인 참여를 확대하려는 새 정부의 노력의 시작일 뿐이다. 인터넷 참여가 미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홈페이지가 불통(不通)이었다면 오바마는 소통인 셈이다. 오바마의 홈페이지는 보다 섬세하고 세련미가 넘친다. 새 사이트에는 참여와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 웹2.0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오바마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IT 정책 총괄 CTO 신설
특히, 오바마의 IT에 대한 시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오바마는 정보기술(IT) 정책을 총괄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등 강력한 추진체계를 바탕으로 정보화를 적극 추진한다. 미국 전역에 차세대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재생에너지와 바이오연료 산업을 적극 육성해 500만개의 녹색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IT와 환경산업을 미국의 경제 재부흥을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오바마 정부는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 웹 2.0시대의 구현을 위한 '신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300억달러를 투입, 농어촌 지역 뿐 아니라 대도시 저소득층 등에 초고속인터넷 망과 설비를 보급할 계획이다. 초고속인터넷 네트워크 투자에 따라 즉각 10만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미 전역에서 서비스가 활성화하는 단계에서 추가로 200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또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정의하는 초고속 인터넷의 속도기준인 200Kbps도 대폭 상향 조정돼 미 전역에서 광대역 초고속인터넷망을 정비하는 사업이 대대적으로 펼치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IT 기업 종사자들 "오바마는 IT 대통령" 인식
미국 IT 기업 종사자 대부분은 오바마를 'IT 대통령'으로 인식하며 새 정부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시스코의 데이비드 헤스는 "오바마가 생각하는 21세기 고속도로가 바로 IT 인프라"라면서 "오바마 정부의 출범은 IT 산업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의 IT 업계는 오바마 정부가 건강보험제도(health care system)를 개선하기 위해 IT를 활용한 효율적인 정보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서버나 네트워킹 등 IT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단다.

오바마는 이미 변화하는 세상을 알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예스, 위 캔(Yes, We can)"이란 말로 오바마에게 화답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쌍방향 소통이다. 오바마는 인종과 종교, 지역을 넘어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미국을 하나로 만들고 있다. 그 핵심기반에서는 IT가 있다. 500만개 일자리 창출도 IT를 바탕으로 한다. 오바마의 리더십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와도 소통한다. 오바마2.0이라는 인터넷과 IT가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IT의 위력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오바마 서민들 세금 감면 정책과 강부자 정책의 차이
오바마는 백악관부터 임금 동결을 선언했다. 서민들에게는 세금을 낮춰주고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한다. 이라크인들이 강제 수용되어 인권유린의 상징이던 관타나모 감옥도 폐쇄한다. 대결과 전쟁이 아닌 화해와 통합의 리더십이다. 그래서 전세계인들도 오마바를 외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소통이 아닌 불통이 가득하다. IT가 아닌 삽질(?)이 난무한다. 용산 재개발 지역의 철거민들이 무참하게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통합이 아닌 분열의 리더십이다. 정통부가 사라지고 정부에 IT 수석도 없다. IT에 대한 컨트롤 타워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바마와 우리의 차이이다. 오바마는 IT 대통령을 꿈꾸지만 청와대는 건설만이 살 길이란다. 그저 쓴 웃음이 나온다. "예스, 위 캔 (Yes, We can NOT)".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