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9.12.02 60일간 소국 국화꽃 탄생과 일생 관찰기(국화의 매력 5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2. 2009.11.26 시한부 암환자를 둔 아내의 눈물, 어떡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3. 2009.08.21 김대중 친필일기 전문, 위대한 사랑의 역사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
  4. 2009.05.17 텃밭 채소 첫 수확과 농사의 즐거움 10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59)
  5. 2009.05.07 팔순 할머니와 손자의 나들이 '효심' 감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30)
  6. 2009.04.25 선배에게 200만원 돈빌려주고 발등찍혔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89)
  7. 2009.04.03 뇌출혈로 중환자실 입원한 삼촌 생각하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30)
  8. 2009.01.19 블로거뉴스의 트래픽 폭탄을 실감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6)
  9. 2009.01.05 다음 첫화면에 블로그글 소개돼 가문의 영광 by 진리 탐구 탐진강 (5)


어제는 장례식장에서 하루종일 있었습니다. 국화꽃으로 장식된 근조화환이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조문객을 맞이할 때마다 서글프게 우는 처형의 남편인 동서가 애처롭기만 했습니다.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고 모두가 자신의 탓이라고 한탄'하는 큰 동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때때로,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면서 통곡하는 남자의 눈물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올해 늦가을부터 국화꽃을 유난히 많이 보게 됐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늦가을 빌딩 앞에 소국화가 심어지기 시작했고 저는 휴대폰에 그 국화꽃이 변화하는 모습의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거의 매일 소국을 보면서 국화의 변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최근 돌아가신 큰 처형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고통없이 편히 쉴 수 있기를 기원하는 헌화로 바치고자 합니다. 휴대폰 사진첩에 저장돼있는 국화꽃을 찾아봤습니다. 그다지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좋지않아 다소 화질이 떨어집니다. 작은 국화꽃을 무리지어 꽃피우는 소국의 탄생과 일생이라 할 수 있는 그 슬픈 향연 속으로 떠나가 봅니다.

9월 15일경, 화단에 작은 국화인 소국이 심어졌습니다.
어느정도 화원에서 길러진 소국이었는지 벌써 꽃망울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노란색과 희색을 띤 꽃몽우리가 꽃의 탄생을 시작하는 셈입니다.


소국은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화단에는 밝고 화사한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9월 20일경, 소국이 하나 둘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작고 노란 꽃이 눈부신 햇살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꽃잎이 벌어지지 않아 사진 상으로 마치 노란 점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꽃망울들의 군락 속에서 눈에 띄는 꽃이 있습니다. 노란색 잎을 벌리며 소국 한송이가 군계일학처럼 그 자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하나 둘 터뜨려지기 시작합니다. 9월의 가을 햇살은 국화꽃을 피우는데 적당한 일조량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9월 25일경, 드디어 노란 소국이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노란색 꽃을 활짝 드러내며 밝은 미소를 짓는 것 같습니다. 노란색 국화는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화사하고 청순한 느낌입니다. 아직은 꽃망울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꽃망울이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국화는 동양에서 상고절이라는 한자어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동양화에서는 사군자의 하나로 순결과 절개의 상징으로 국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국화는 왜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불렸을까?

우리들은 대개 국화하면 늦가을에 피는 대표적 꽃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많이 가을에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국화는 주로 서리가 내리는 계절에 피어나 차가운 서리에도 굴하지 않고 외롭게 늦가을을 지켜내기 때문에 오상고절이란 별칭을 얻었습니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은 업신여길 오(傲), 서리 상(霜), 외로울 고(孤), 마디 절(節)이란 한자를 쓰는데, 그 의미는 서리를 업신여기며 홀로 절개를 지킨다는 뜻이 됩니다.

사실 국화가 가을에만 피는 것은 아닙니다. 국화꽃이 피는 시기와 꽃의 크기 및 생김새 등에 따라 여러 가지 국화의 종류가 있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서는 5~7월에 피는 하국(夏菊), 8월에 피는 8월국, 9~11월에 피는 추국(秋菊) 및 11월 하순부터 12월에 걸쳐 피는 한국(寒菊)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리고 꽃의 크기에 따라서는 꽃의 지름이 18센티미터(㎝)가 넘는 대국(大菊), 지름이 9~18㎝ 정도인 중국(中菊), 지름이 9㎝가 채 안 되는 소국(小菊)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소국이 주제이니 사진과 글을 참고하면 될 듯 합니다. 또한 국화꽃의 생김새나 색상에 따라서 여러가지 이름들을 갖고 있습니다. 국화는 우라나라 사람들에게 그 만큼 친근한 존재인 셈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을 터트린 국화가 화사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9월 28일경, 여전히 꽃망울은 끊임없이 생기고 꽃잎은 활짝 펴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꽃망울이 꽃잎에 비해 더 많습니다. 그 동안 노란색 국화만 사진을 찍었는데 옆에서 보니 바라색 소국도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노란색에 비해 개화가 더 빠른  것 같습니다. 보라색은 첫사랑의 추억을 생각하게 합니다.


10월 5일경, 이제는 꽃망울 보다 활짝 피어난 국화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소국의 꽃망울은 잘 안보이고 활짝 핀 꽃잎이 더 많이 보여서 화단이 화사한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화단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눈길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국화는 매력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과 닮은 듯 하기도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옹기종기 함께 모여살면서 어려운 역경을 극복해가면서 살아가는 인생과 같다는 느낌입니다.

국화의 매력 5가지

첫째로 순수함입니다.
국화는 아주 화려하지 않습니다. 장미와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순수한 천연의 아름다움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늘 가깝게 두고 보고싶은 꽃입니다. 그래서 동양의 사람들은 관상용으로 국화를 길렀는지 모릅니다. 동양화에서 국화를 사군자로 칭송할 만큼 순수한 아름다움이 크다 하겠습니다. 화장을 덕지덕지한 인공미인이 아닌 자연미인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은은한 향기입니다.
국화는 아주 진한 향기가 아닌 은은한 향기를 갖고 있습니다. 너무 진한 향기는 당장은 사람의 코끝을 자극하지만 오래 향기를 맡기는 곤란합니다. 길거리에서 엔젤트럼펫 꽃향기를 맡게되면, 지나다가 흠칫 놀랄 만큼 향이 진한 것을 느끼게 되는데 너무 진한 향기는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여자가 진한 향기의 향수를 하고 지나가면 처음엔 눈길이 가다가도 코끝의 자극 때문에 불쾌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같은 이유일 듯 합니다. 

셋째로 친근감입니다.
국화는 우리 사람들과 늘 곁에 있는 듯한 친근한 매력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꽃이 있지만 국화만큼 친근한 꽃도 없습니다. 국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입맛에 맞는 한식 밥상을 찾듯이 국화는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동양적 아름다움이 간직한 국화인 셈입니다.

넷째로 인내심입니다.
국화는 차갑고 모진 서릿발을 이겨내고 피어납니다. 국화는 혼자가 아닌 여러 군락의 꽃이 함께 피어납니다. 국화가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꽃을 활짝 피우게 됩니다. 다 함께 환상의 꽃밭을 만들어 줍니다. 추운 날에 함께 있으면 추위를 이길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인내력도 함께 격려하며 나눌 때 커질 수 있습니다. 국화는 굳건한 기상과 절개로 피어난 인내심의 상징입니다.

다섯째로, 희생정신입니다.
국화는 자신을 희생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영혼을 달래주는 국화인 셈입니다. 우리가 장례식에서 헌화하는 꽃이 국화입니다. 오래 인간의 역사에서 꽃은 늘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국화만큼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과 함께 한 꽃은 드뭅니다. 스스로를 희생해 하늘나라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국화를 늘 아끼고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10월 10일경, 소국이 이제는 군락을 이루며 아름드리 피어나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월 20일경, 꿀벌도 국화 꽃향기에 취해 날아듭니다.
노란색 꽃송이의 한 가운데 꿀벌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얼마 남지않은 계절의 끝자락에서 열심히 꿀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화는 벌들에게 겨울을 준비하는 양식인 것입니다. 거의 꽃망울은 보이지않고 화사한 꽃들의 군락이 향연을 펼치는 듯 합니다.


10월 25일경, 국화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달리고 있습니다.
국화꽃이 저 마다 아름다움을 뽑내면서 화단에는 온통 노랜색 보라색이 덮어버렸습니다. 파란색 줄기의 잎은 잘 보이지 않을 정보입니다. 그런데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합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보라색 소국은 꽃잎의 색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11월 6일경, 갑작스런 초겨울 추위에 꽃들이 움추렸습니다.
한파가 닥친 국화는 주말을 지나며 급격히 생기를 잃은 모습입니다. 꽃잎도 색깔이 달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빛깔이나 보라 색상이 흰색을 조금씩 띄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여전히 국화꽃의 면모를 잃지는 않았지만 절정을 지난 듯 합니다. 강추위가 없었다면 더 오래 간직한 국화꽃의 향연이었을 것 같습니다.


11월 15일경, 소국은 이미 꽃잎이 하얗게 바랬습니다.
노란색은 옅은 노란색으로 변했고, 보라색 소국은 이미 꽃잎이 시들었습니다. 국화의 일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몇일 동안을 지켜보는 사이에 화단의 소국은 사라졌습니다. 빌딩 관리인이 소국 대신에 다른 식물로 교체를 한 것입니다. 아쉬운 소국과의 이별이었습니다. 


이렇게 소국과의 짧은 만남은 이별을 고했습니다. 국화를 가끔 지나면서 보거나 꽃집에서 살펴보면 항상 화사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꽃망울에서 피어나는 모습, 그리고 절정의 시기에 군락의 화사함을 자세히 관찰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 후 국화가 시들고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어쩌면 국화의 일생은 우리 인간의 일생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네 사람들은 태어나서 결국 한 줌의 별먼지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꽃망울로 피어난 국화꽃과 같이 사람들도 아름다운 청춘을 지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 이별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한떨기 국화꽃처럼 살다간 큰 처형을 생각하니 국화의 일생이 더 가슴에 사무치게 와닿습니다. 하필이면 국화꽃이 지고나서 큰 처형은 지병이 더욱 악화됐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국화꽃의 탄생과 일생을 관찰한 60일간의 기록도 그렇게 마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어 행복했습니다. 국화꽃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라질 뿐입니다. 또 다시 태어날 탄생의 그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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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의 소식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러한 죽음이 나의 가족일 경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몇달전 큰 처형이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평소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검진도 주기적으로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몸 속에서 암덩어리가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혀 담배도 피지않고 항상 몸 관리를 잘해왔는데 폐암이란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장모님을 비롯해 아내와 가족들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장모님 생신을 맞이해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암으로 투병 중인 큰 처형은 차가운 날씨가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처형 부부가 사전 예고없이 참석했습니다. 큰 처형은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주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다소 무리해서 참석한 것입니다.

이미 가족들은 큰 처형이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큰 동서와 작은 처형이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던 터라 가족들은 슬픔에 젖어 있었습니다. 사실 큰 처형 부부를 포함해 온 가족이 모두 함께 모인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바쁜 일상으로 함께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말기암 환자가 있는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큰 처형은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외출도 쉽지않은 몸상태로 보였습니다. 비록 자신의 몸이 아프지만,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려는 큰 딸로서 책임감의 발로였을 것입니다. 큰 처형은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애써 밝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고 저도 장모님 생신인지라 가족들 모두를 재밌게 해드리려고 노력했던 자리였습니다.

어쩌면 이번 가족 모임이 큰 처형을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한 마지막 모임일지도 모릅니다. 그 후 최근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작은 처형은 병 간호를 하는데 의사는 길어야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미 폐암이 말기 불치병 증세로 전이되고 있고 치료가 힘든 암 종류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장모님과 가족들은 비통에 빠졌습니다.

지난 주말, 아내는 저에게 큰 처형의 상태에 대해 몇가지 상의를 했습니다. 큰 처형은 아직도 자신의 삶이 시한부 인생인 줄 잘 모르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큰 처형의 남편인 동서는 그 동안 병수발에 지쳐있어 장모님과 작은 처형이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기로 했다며 우리가 좀 도와주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명의가 필요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물질적인 부분도 당연히 가능한 돕기로 했습니다. 

건강이 좋지않은 장모님이 암환자와 함께 살겠다면?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장모님의 건강이었습니다. 사실 장모님은 몇년전 우울증에다가 심장병이 겹쳐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고 수술해도 몇년을 못살 수도 있다는 진단까지 했지만 다행히 급격히 호전되어 수술없이도 다시 건강을 어느정도 회복했습니다. 장모님은 그래도 주변 자연과 공기가 좋은 저희 아파트 단지로 이사와 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장모님이 건강이 좋아지신 상태이지만 큰 딸의 병수발을 하는 것이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저는 "장모님이 당신의 큰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건강상 함께 사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아마도 아내는 암환자인 큰 언니에 대한 걱정과 엄마에 대한 고민이 오버랩되어 지나갔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너무 담담하게 현실을 말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시한부를 사는 언니를 생각하는 아내와 장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는
건강이 그다지 좋지않은 장모님마저 시한부 큰 딸의 고통 속에 함께 살며 눈물짓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은 처형이나 다른 가족이 큰 처형과 함께 살고 장모님은 가끔 한번씩 병문안을 들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제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랜디 보시디가 쓴 책 '마지막 강의'를 보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어느 교수가 남은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개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좌절도 슬픔 속에서 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교수는 하루 하루를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랜디 보시디는 무엇보다 인생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꿈을 향해 나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이 시한부의 삶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하늘나라의 별먼지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운명이고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늘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6개월이든 몇십년이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 바로 곁에 있는 가족 중에 한명이 몇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갑자기 가족이 그런 일이 닥친다면 마땅한 방법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살 때 할 수 있는 일
- 오늘 우리가 살아 있음에 대해 감사하며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 손을 꼭 잡아주고 곁에 있어주며 책도 읽어준다
-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희망을 심어준다
- 세상에는 기적도 있듯이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준다
- 주변을 함께 산책하거나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도와준다

다시 가족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현재 건강이 좋지않은 장모님은 당신의 딸을 위해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고자 하시고 저는 장모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의 큰 딸의 곁에서 지켜드리고 싶으신 마음일 것입니다.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장모님마저 건강이 악화될까 두렵습니다. 큰 언니를 걱정하는 아내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줄 수 있을지 어려운 숙제입니다. 지금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곧 시한부 인생은 아닐까요? 우리의 삶에 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저와 아내의 입장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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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쓴 친필 일기의 일부가 공개됐습니다. 유족측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식 추모 홈페이지에 일기의 일부를 게재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친필 일기였기에 공개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다만 일부만 공개해 다소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는 김 전 대통령이 올해 1월 1일부터 입원하기 1달전인 6월 4일까지 쓴 내용 가운데 일부에 불과합니다. 친필 일기는 하루 하루를 짧게 주요 내용이나 생각을 짧게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일부이기는 했지만 공개된 전문을 읽어보니 위대한 지도자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넘는 이웃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극진한 아내 사랑에 대한 마음 가득했다

친필 일기의 내용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 이웃사랑의 소중함 등 따뜻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며 극진한 아내 사랑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고난의 길에 있어 평생 동지이자 아내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인생이란 의미있고 가치있게 사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인상깊은 구절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살지만 고인은 고통받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웃을 위해 사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추구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평생 올곧은 민주주의를 위한 '한 길'을 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시대에 정권에 의한 감금, 투옥, 가택연금, 암살 기도 등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헤치고 살아 온 인생을 통한 교훈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일기에서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라며 역사와 국민을 위해 평생 한 길을 걸었던 올곧은 삶을 밝혔습니다.


역사상 독재자는 결국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자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심판을 받는지에 대한 생각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전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독재자들은 스스로 독재를 안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독재자로 전락해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정치인들은 새겨들어야 할 말인 듯 합니다.

김대중은 85세에도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이었다

고인은 85세의 고령에도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이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며 네티즌들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인터넷 보유국이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멀리 혜안을 갖고 미래를 내다 본 결과입니다. 네티즌 글에도 슬퍼하고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웃 사랑' 위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자인 종대에게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해주면서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물룬 인생에서 이웃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용산참사를 언급하고 추운 계절에 철거로 쫒겨나는 빈민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설날에는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라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했습니다.

애틋한 노부부의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희호 여사의 친필 편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고 인생과 역사를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을 달관한 성인의 격언처럼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외에도, 용공 및 비자금 허위사실을 유포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에 대해 사실 무근임이 대검에서 밝혀졌기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내용도 있었습니다. 평생 용공 조작을 해온 독재정권과 비슷한 짓이 이루어졌나 봅니다. 고인은 그리고 클린턴 부부와의 인연, 그리고 과거 살인적 폭압적인 독재정권 시절의 수많은 고난과 생사를 오가는 시절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를 다짐했지만 그 꿈을 완전히 보지못하고 서거했습니다. 평생동안 올곧게 가져온 민주주의와 중소서민 경제, 그리고 남북평화에 대한 열정을 마지막까지 보여준 셈입니다. 세계인들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위대한 세계적 지도자'의 인간적 모습과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친필일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우리 모두 한번쯤 읽어보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 시대를 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캐리커쳐 (출처 아리툰)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 전문입니다.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2009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24일
14년 만에 고향 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 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

2009년 4월 27일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크게 감사.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2009년 5월 1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 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2009년 5월 20일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다.

2009년 5월 22일
버마 혁명민주지도자 등 수 명이 내방. 민주화에 대해서, 나는 "버마는 외국의 지지는 충분히 얻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서 안에서 국민이 자력으로 쟁취하도록 노력하시오"라고 격려했다.

2009년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24일
노 대통령 장례식을 정부와 측근들은 국민장을 주장하는데 가족은 가족장을 주장해 결말을 못 보았다. 박지원의원 시켜서 '노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살았고 국민은 그를 사랑해 대통령까지 시켰다. 그러니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국민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는데 측근들이 이 논리로 가족을 설득했다 한다.

2009년 5월 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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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최근에 처가집 가족들과 의미있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어버이날과 가정의달을 맞이하여 장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소중한 것은 그 가족모임에 올해 텃밭에서 수확한 갖종 채소들이 첫 선을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주말에 텃밭을 가꾸며 농사를 짓는 보람과 재미는 바로 가족들과의 유대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날 모임에서 첫 수확한 농작물로 선보인 채소는 상추, 대파, 치커리 등 각종 채소들이었습니다.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채소들이 올해는 특히 잘 자랐습니다. 싱싱하고 맛있는 채소들을 직접 길러서 가족들 모임에 내놓고 즐거운 식사를 함께 만들어 먹는 즐거움이 곧 일상 생활에서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말농장 텃밭 가꾸기는 가족들과 생활의 행복 만들기

주말 농장의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각종 채소들을 첫 수확한 후 물에 씻은 후 모습이다

그 동안 주말농장을 하면서 수확의 과정을 살펴 봅니다. 채소들도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주말농장 텃밭을 일구게 되면 필수 농기구 중 하나가 바로 호미입니다. 호미가 2개인 것은 부부용입니다. 

큰 딸이 텃밭의 채소에 물을 주고 있습니다. 텃밭에 물주기는 아이들이 주로 많이 합니다.

채소밭의 풀을 매주고 채소가 잘 자라도록 땅에 늘 관심을 가져주어야 합니다. 큰 딸과 아내가 호미질을 하고 있습니다. 딸아이들이 텃밭에서도 제법 자기 몫의 일을 합니다.

드디어 올해 텃밭에서 첫 수확의 시간입니다. 아내와 둘째가 채소를 따고 있습니다. 둘째는 아직 채소의 잎을 따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엄마의 특훈(?)을 받고 있습니다.

쇼핑 비닐 봉지에 가득 채소들을 수확했습니다. 수확물만 바라보아도 벌써부터 마음이 푸짐해 집니다.

집에 돌아와 채소들을 다듬고 씻고 있는 상태입니다. 곧바로 수확한 채소라서 더 싱싱해 보입니다.

봄배추잎으로는 국도 끓였습니다. 제가 배추국, 시래기국 등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제 맛있는 밥상이 차려지고 있습니다. 즐거운 식사에는 반주도 한 잔하면 더 즐겁습니다. 

주말농장 텃밭을 직접 가꾸다보니 몇가지 농사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말농장 텃밭가꾸기의 즐거움 10가지

첫째, 가족들이나 이웃들과의 생활에서 재미와 행복을 만들 수 있다.

둘째, 자연의 소중함을 체험하며 자연과 인생에 대해 감사는 마음을 갖는다.
셋째,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풍부한 감성과 노동의 신성함을 심어줄 수 있다.
넷째,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이웃들과 나누어 먹으며 나눔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다섯째, 농사짓는 농부들에 대해 고마움을 알고 신토불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여섯째, 유기농 채소를 직접 재배해 안전한 식단을 만들 수 있다.
일곱째, 다양한 채소들과 식물들에 대한 정보와 사계절의 변화를 항상 인식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
여덟째, 맑은 공기 속에서 노동을 하면서 건강한 삶을 즐길 수 있다.
아홉째, 노후를 위해 미리 전원생활의 준비를 할 수 있다.
열번째,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스스로 문제해결하는 삶의 지혜를 넓힐 수 있다.


일단은 농사를 직접 짓는 즐거움은 10가지 정도로 정리가 됩니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된 사항들 이외에도 많은 즐거움이 있을 듯 합니다. 아직은 초보 농군이라서 많은 이치를 깨닫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농사의 경험을 쌓는다면 더욱 깊은 사색들의 이야기가 가능할 듯 합니다. 도시에 살더라도 농사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많습니다.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을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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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연휴에 호수공원을 다녀오면서 따뜻하고 훈훈한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꽃들이 만발한 공원에는 연인들과 가족들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모습이 눈 앞에 보였습니다.

팔순은 훨신 넘어보이는 할머니를 유모차에 모시고 공원에 나들이를 나온 분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40대 전후의 손자 정도로 보였습니다. 직접 물어볼 수는 없어 잠시 지켜봤습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손자는 할머니를 예쁜 꽃들이 활짝 핀 곳에 내려드렸습니다.

그리고 활짝 핀 꽃들의 거리에 자리를 펴고 할머니가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그 후, 손자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뻥튀기와 음식들을 하나씩 준비해 드렸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꽃 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는 아름다운 꽃들을 구경할 수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를 위해 유모차에 모시고 공원에 나타난 손자의 모습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광경이었던 것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한 손자의 모습은 어떤 아름다운 꽃들 보다 더 아름다운 '효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 살이를 보면 부모님과 자식, 그리고 손주의 관계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이 팔순인 아버지와 외출하는 오십대의 아들과의 대화의 한 토막입니다.
"아버지, 밖에 다녀올게요." 
"애야, 항상 차 조심하거라!"


부모가 자식들 걱정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더라도 한결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식들이 아무리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사랑 만큼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저희 할머니도 중풍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합니다. 큰 삼촌이 모시고 있는 안산에 가끔씩 찾아뵙곤 합니다. 할머니는 늘 손자가 보고싶은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도 손자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 하십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호수공원에서 만난 백발의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는 참으로 건강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어버이날을 맞이하니 더욱 아름다운 감동의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현대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차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그리고 손주 사이에 훈훈하고 따뜻한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데 물질 보다는 정성어린 마음이 더 소중한 것 같습니다.


아가를 유모차에 데리고 나온 엄마(왼쪽)와 가족이나 친구들 끼리 나온 나들이객(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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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우리나라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믿었던 것에 배신을 당한다는 의미일 듯 합니다. 특히나 자신이 믿고있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 자주 쓰는 말인 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 때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잘 아는 선배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랫만이다. 잘 있냐?"
"형. 웬 일이야. 전화를 다 하고. 난 잘 있어."

"형이 급한 일이 있어 그러는데 200만원만 빌려주라. 이자까지 쳐서 일주일 후 갚을 거니까."
"잘 아는 사이에 뭐 이자야. 그냥 갚으면 되는 거지."

"그래 고맙다."
"그런데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거야?"

"사업하다가 정리하게 됐는데 조금 문제가 생겼어. 오늘까지 막으면 끝나는데 200만원이 부족해. 내가 얼마 전에 모 대기업에 부장으로 다시 입사했어. 다음 주면 월급받는데 먼저 갚을 게."
"사업하는 것이 어렵다는데 정리했구나. 그런데 그 대기업에 다시 입사하다니 역시 형은 대단해."

"나중에 소주 한잔 내가 살게. 좀 급하니까 지금 문자로 보내주는 계좌번호로 200만원 넣어 줘. 은혜는 잊지 않을 게."
"알았어. 급한 상황이라니."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선배의 통장에 돈을 입급해 주었습니다. 아내는 당장 200만원이라는 거금이 나가는 것이 불안했지만 남편을 믿었기에 그리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 다음 날 선배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내가 지금 힘든 상황이야. 일주일만 더 기다려 줘. 곧 해결될 거야.'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형. 연락이 없어서."
"내가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아파트 팔면 돈 갚을 게. 조금만 기다려. 아파트 팔면 문제가 없으니까. 한 달 내로 보내줄 게."

"그렇게 힘든가 보네. 알았어."
"이번에는 꼭 갚을 게. 아파트 팔면 다 해결되니까."

그리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또 역시 연락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우리도 급한 돈이었는데 왜 입금이 안되냐'고 드디어 한마디를 했습니다. 당시에 저희도 큰 아버님의 수술비 등으로 목돈이 필요했었습니다.

자꾸 전화로 독촉하는 것 같아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형. 우리도 큰 아버님 수술비로 돈이 급한데 연락이 없네.'

기다려도 선배로부터 답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두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문자가 왓습니다. '지금 우리가 매우 위급한 상황이야. 이번에 잘 해결되면 괜찮아 질 거야. 기다려.'

몇 달이 지났습니다. 우연히 전 직장의 과거 동료들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몇 순배 술잔이 오가던 중 동료들이 그 선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리에 참석한 몇 사람이 그 선배에게 급하다고 해서 100만원을 붙여줬는데 절반만 받고 못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굳이 저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 선배가 더 욕먹을 것 같아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 선배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대부분 선배 보다 상사이거나 나이가 많았던 분들이었습니다.

전 직장 동료들의 사연을 들어보니, 선배는 동업으로 화장품 사업을 했다가 경기가 안좋아 사업을 정리했는데 일부 빚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 대기업에 입사한 것도 맞았습니다. 다소 힘들 수 있지만 그리 큰 빚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선배에게 직접 들어본 적이 없어 정확한지는 모릅니다. 전 직장의 동료들은 그 선배에 대해 '일주일 후 갚는다더니 50%만 갚고 연락도 없다며' 못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그 선배가 어려운 일을 당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 셈입니다. 그 선배가 전 직장의 상사들에게는 50%를 갚으면서 저에게는 한 푼도 갚지않고 기다리라는 말만 계속 했으니 말입니다. 선배가 어려운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후배에게 통사정을 하면서 돈 빌린 후 연락도 하지않고 미적거리는 모습이 비겁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다시 선배에게 전화를 했지만 반복되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50만원을 입금해 주었습니다. 그 선배는 아파트가 팔렸는지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선배는 그래도 비싼 편인 대형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선배가 사업은 정리했지만 빚이 많지는 않아서 대형 아파트를 팔면 중형 아파트로 옮겨도 충분히 괜찮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후로는 기다려보기로 하고 선배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1년이 다 지났지만 그 선배도 전혀 연락이 없습니다. 선배는 대기업에 계속 잘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 선배가 처음부터 차라리 조금만 도와달라고 했다면 가능한 범위에서 도와주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돈을 잃더라도 사람을 잃는 것이 더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오늘 친한 후배에게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형. 아이 수술비가 없는데 100만원만 붙여줘. 일주일 후 갚을 게."

순간 머리가 멍했습니다. 일주일... 평상시 같으면 곧바로 도와줘야 겠다고 생각했겠지만 갑자기 그 선배가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는데 선배에게 배신당한 기억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후배에게 무슨 일인지 모른 체 할 수는 없었습니다. 후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무슨 일이니? 아이가 어디 아프냐. 수술을 할 정도니?"
"응. 아이가 혈액암인데 수술해야 해. 다행히 보험을 들어두어서 일주일 후면 돈이 나와. 그 때 갚을 게."

"혈액암이면 완치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고생이 많겠구나. 힘내라."
"완치는 안되어도 수술하면 좋아질 거래. 고마워."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후배에게 100만원을 부쳐주라고. 아내는 갑자기 큰 돈을 입금해주라는 말에 놀랐습니다. 아내도 그 선배가 생각났나 봅니다. 전화를 끊고나서 다시 아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100만원이 맞아. 갑자기 큰 돈이라서 확인하는 거야."
"응. 100만원 맞아. 후배가 아이 수술비가 급하다고 해서."

후배의 아이가 빨리 쾌유했으면 합니다. 한편으로 일주일을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세상만사가 선배이든 후배이든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마음대로 되지않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니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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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낮에 경기도 안산에 살고계신 작은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 전화가 없던 작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긴급한 일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지금까지 평생을 고생을 하면서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온 분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세요?"라고 묻자, 작은 아버지는 "K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했다.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전화했다."고 했습니다. K는 작은 아버지의 남동생입니다. 저에게는 작은 아버지(삼촌) 중 한 분입니다.
 
작은 아버지에게 지금 상태는 어떤지 다시 질문하자, 이미 수술을 했고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고 합니다. 의사의 이야기로는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어느정도 의식은 돌아왔지만 말을 하지도 못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당장 면회라도 가보려고 하자, 작은 아버지는 '지금은 면회도 하루에 두 번만 되고 의식도 없으니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작은 아버지에게 위로를 드렸지만 작은 아버지는 마음이 많이 울적하신 것 같았습니다. 주말에 병원을 찾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작은 아버지와 전화를 한 후 상념에 쌓였습니다. K삼촌이 뇌출혈로 쓰러진 것도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작은 아버지를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현재 심각한 당뇨병으로 고생하시는 할머님을 모시고 살고 계십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K삼촌 마저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니 작은 아버지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K삼촌은 결혼했지만 이혼한 후 혼자서 딸 하나를 키우면 살고 있었기에, 작은 아버지는 K삼촌의 딸도 함께 키워야 할 상황입니다.

뇌출혈이란?
뇌출혈(중풍)은 머리로 흐르는 피의 흐름이 오작동을 일으켜 머리 속에서 출혈을 일으키는 증상입니다.뇌출혈이 일어나면 곧 의식을 잃고 까무라치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의식을 잃거나 사망할 수 있습니다. 뇌출혈로 인한 후유증의 하나로 뇌출혈된 반대쪽에 반신마비가 오는 것이며 안면신경마비, 언어장애, 팔다리 이완성 마비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한국에서 30대 이상 성인의 사망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뇌졸중의 대표적인 질환입니다. 고혈압과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최근 5년간 투병하다 사망한 유명 탤런트 김흥기 씨도 뇌출혈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저희 아버지와 배가 다른 형제입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3남 1녀를 (이미 돌아가신) 첫째 할머니가 낳았고, 그리고 작은 아버지를 비롯한 3남 2녀가 있으니 모두 6남 3녀의 대가족으로 매우 복잡한 가족관계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버지는 둘째이시고 작은 아버지는 넷째이십니다.

 
그래서 작은 아버지가 자신을 낳아준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하며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당뇨병으로 병간호도 벅찬데 K삼촌 마저 뇌출혈로 거동을 하지 못해 그 가족들을 돌봐야 할 처지입니다. 가난한 살림에 대부분의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도전이 계속되는 셈입니다.

저도 힘닿는 대로 돕겠지만 직접 환자들과 가족들을 돌보며 살아야 하는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안됩니다. 왜 불행은 한 사람에게 한꺼번에 덮치는지 야속하기만 합니다. 

저에게 삼촌들은 학창시절에 언제나 의지가 되는 존재였습니다. 당시 시골 생활이 모두 어려웠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고있던 저를 위해 삼촌들은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곤 했습니다. 특히, 작은 아버지는 온 가족들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습니다.

큰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그다지 평탄한 삶을 이루지 못했지만, 성실하고 온화한 작은 아버지는 언제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건달 생활을 하던 K삼촌의 마음을 잡아주고, 당시 권투선수였던 막내 삼촌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새롭게 출발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작은 아버지의 인생은 참으로 힘들도 어려운 삶이었지만 결코 고난에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살아왔습니다. 그런 분에게 하늘도 무심한 것 같습니다.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가능한 정성을 다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K삼촌이 뇌출혈 환자의 특성상 비록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더라도 빨리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작은 아버지가 비록 힘들지만 용기를 잃지마시고 힘을 내셨으면 합니다. 많은 상념과 생각이 교차하는 시간들입니다.

건강 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듯 합니다. 고혈압이 있으신 분들은 특히나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적당한 운동도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뇌출혈은 50~60대 이상의 고령에서 흔하며, 특히 요즘같은 환절기에 잘 발생할 수 있으니 건강해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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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다음 블로거뉴스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가족들과 외식을 먹고 돌아와 두 딸이 좋아하는 무한도전을 함께 시청한 후 소감을 포스팅했습니다. 무한도전 콘서트 김태호PD의 힘, 역시 달랐다 라는 글이었습니다. 무한도전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무한 교도(?)이고 아내도 그냥 편하게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서 즐겨보는 편이라서 대세에 따라 저도 보게되곤 합니다.

일요일에 할머님 생신이라서 가족들과 수원에 다녀온 후 깜짝 놀랐습니다. 제 블로그에 트래픽 폭탄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 날 하루에만 7만명이 넘게 다녀갔습니다. 그동안 방문자수를 하루동안에 넘어서는 실로 엄청난 트래픽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살펴보니 무한도전에 대한 글이 블로거뉴스의 메인 글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올해부터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걱정도 많았지만 zinicap님이나 짠이아빠돌이아빠님 등 좋은 분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자신감을 갖고 하나씩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소감 정도로 생각했는데 블로거뉴스 메인 중 하나로 소개되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아내가 '김태호PD는 역시 다르다'고 얘기해준 것이 아마도 글을 쓰는데 직접적인 영감을 준 듯 합니다.

블로그를 개설한 이후 사실 아직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생활 속에서 느끼는 IT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아예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여러가지 이슈들을 닥치는 대로 써야 하는지 .... 도무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 날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생각나는 느낌 대로 글을 쓰곤 합니다.

처음에는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글들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런 글들을 쓰는 것이 아직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블로거 분들이 많아서 좀 더 생각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지금도 블로그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배우는 단계인 만큼, 좀 더 전문적인 글쓰기를 아시는 선배 블로거 분들의 많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다지 좋은 글도 아닌데 블로거 뉴스 메인에 올라가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블로거뉴스 메인을 장식한 기념으로 스크린샷을 올려봅니다. 암튼 다음이라는 포털과 블로거뉴스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항상 도움과 격려를 해주는, 마음씨 좋은 블로거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려야 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아내와 두 딸이 실질적인 영감을 준 것이니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야 겠습니다. 한편으로, 늘 잊지않고 생신 때 마다 찾아주는 손주가 고마워 할머님이 주신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다음 뉴스 중 블로거뉴스 메인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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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제가 어제 올린 죽마고우 친구의 결혼식에 대한 블로그 글이 다음 첫화면에 소개되었습니다.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몇일 안되었는데 블로그 시작에 대해 격려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마음씨 좋은 블로거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사이비 종교에 빠져 무려 30년 동안을 가족 및 친구 등과 단절하고 살다가 사망 신고까지 당했던 죽마고우 친구가 갑자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40대 중반 나이에 첫 결혼식을 했는데, 저는 그 결혼식을 다녀온 후 그간 친구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를 짧게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참고] 사망신고(?)당한 40대 중반 친구의 결혼 이야기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다음 첫화면에 소개되고 많은 블로거 분들이 그 친구의 행복을 기원해주고 그 친구와의 우정을 따뜻하게 성원해주셔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회와 단절된 삶에서 일상에 돌아와 결혼 후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오히려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제가 아내와 두 딸에게 다음 첫화면 소개된 블로그에 대해 '가문의 영광'이라고 자랑했더니 매우 신기한 듯이 축하해 줍니다. 제가 과거 포털에서 잠시 블로그를 해본 적이 있었지만 거의 개점휴업 수준이었는데 티스토리에서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새해 계획으로 시작한 것인데 다음 첫화면에 소개가 되니 저도 놀랍고 신기합니다.

기념으로 다음 첫화면 기념 스크린샷입니다.


이런 영광까지 얻었으니 좀 더 열심히 사회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블로그 활동을 통해 보답해야 겠습니다. 사실 삭막하리라 생각했던 블로그도 사람 사는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화면에 올려주신 티스토리 관계자 분들과 격려해주신 블로거 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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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