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야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6.06 '바람의 아들' 이종범, 프로야구 신화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
  2. 2009.05.21 무릎팍, 허구연 송인득 명콤비와 야구감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12)
  3. 2009.03.26 WBC 올스타 명단, 한국 야구팀 김태균 등 4명 진정한 1위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드디어 국내 프로야구 통산 500도루와 1000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이종범은 '바람의 아들'을 탄생시킨 '(기아)타이거즈'의 광주 홈팬들 앞에 대기록을 선사하며 감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프로야구의 전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프로야구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프로야구에 많은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1990년대 프로야구는 최고의 국민 스포츠 시대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최고의 명문 구단은 해태 타이거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삼성 두산 등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구단들에 비해 해태 타이거즈는 가난한 구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종범을 비롯한 선수들에게는 최고를 향한 꿈이 있었습니다.

꿈을 향해 달리던 이종범의 근성과 도전정신, 그것은 '바람의 아들' '야구 천재' '수비의 귀재' '야구 9단' 등 수많은 별명이 그를 상징해 줍니다. 우리나라 야구 역사상 100년에 한번 나올 수 있는 유격수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번에 이종범이 500도루와 1000득점을 달성한 것은 여러가지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 사실상 최다 도루 대기록 달성
이종범의 500 도루는 표면적으로는 히어로즈의 전준호의 500도루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그러나 실상을 따져보면 이종범이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는 사실상 최다 도루의 기록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종범은 국내 프로야구를 떠나 지난 1998년부터 일본 주니치에 입단해 3년 반동안 53개 도루를 성공시킨 바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기록을 합하면 개인적으로는 이종범은 553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이다. 국내 최다기록은 전준호가 보유하고 있는 549개이지만, 일본기록까지 더한다면 사실상 최다 기록은 이종범이 보유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전력 질주 모습(주니치 시절)

이종범의 이 날 기록은 프로데뷔 17년, 한국 프로야구 14시즌 만에 거둔 대기록입니다. 일본 주니치에서의 프로야구 시즌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국내 프로야구에서 더 많은 대기록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종범이 1루 주자로 진출하는 것 만으로 투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경기에서 차지하는 진가를 가늠케 합니다.

이종범은 지난 1993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과 함께 무려 73도루(2위)를 성공시켜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과 함께 첫 해부터 대도의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해인 1994년에는 타율 3할9푼3리의 기록과 함께 사실상 깨지기 힘든 84도루를 성공시켰습니다. 그 이후 이종범은 극내 프로야구에서 통산 네 차례의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한편, 이 날 2번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전한 이종범은 6회말 1사후 선두타자로 나서 삼성 배영수를
상대로 깨끗한 좌익수 옆 안타를 날렸고, 이종범은 관중들의 " 뛰어! " 라는 함성 속에서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를 던지는 순간 2루 도루를 감행해 역사적인 기록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이종범은 도루성공과 함께 자신이 예고한 대로 2루 베이스를 들어올려 자축했고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소 경기 1000득점에도 성공
이종범은 최다 도루 대기록과 함께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소 경기 1000득점의 기록도 동시에 세웠습니다. 이 날 이종범은 최희섭의 중전 적시타로 홈까지 밟아 통산 4번째이자 최소경기 1000득점도 함께 기록한 것입니다. 이종범에게는 도루 기록과 함께 기쁨이 두배가 된 셈입니다.

이종범은 1000득점은 1439경기 만에 달성한 것인데 종전 기록은 삼성의 양준혁이 보유하고 있던 1522경기였습니다. 무려 83경기나 앞당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득점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해보면 이종범의 존재 가치는 빛날 수 밖에 없습니다.

1996년 WBC 한국-일본의 경기, 이종범이 결승타를 친 후 장면

이종범과 타이거즈의 한국 프로야구 9회 우승 신화
이종범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는 무시무시했습니다. 당시 해태타이거즈는 김응용 감독을 중심으로 이종범을 비롯해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습니다. 

당시 타이거즈는 초호화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팀웍을 바탕으로 한 근성과 집중력이 뛰어났습니다. 신인 선수들은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되면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호랑이'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타이거즈 우승 신화를 이끌던 1990년대 선수들을 살펴보면 투수에는 선동렬 이강철 조계현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자에는 이종범을 포함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홍현우 김봉연 김무종 등이 활약했습니다. 이들 선수들은 얇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뭉쳐 매번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홈팬들의 열정적인 응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습니다. 해태 타이거즈는 9번이나 우승을 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결국 김응용 감독의 리더십, 선수들의 혼연일체 팀웍, 그리고 팬들의 열정적 응원 등이 삼위일체가 된 프로야구사의 신화였습니다.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
이종범의 500도루 대기록은 과거 1990년대 프로야구 팬들에게도 큰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당시에는 대중 스포츠가 프로야구 이외에는 드물었기 때문에 어떤 스포츠 보다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종범을 비롯해 걸출한 프로야구 스타들이 많았습니다. 대중들은 프로야구를 보면서 웃고 울었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는 하루종일 화제의 이슈였던 시절입니다.

이미 1990년대 스타 선수들은 은퇴를 했거나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종범은 여전히 현역 선수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종범은 나이가 마흔에 도달하고 있는데 젊은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가르고 있다는 점에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종범이 대망의 500도루 기록을 달성하는 장면과 팬서비스로 2루 베이스를 들고 있는 모습

특히,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를 세계 속의 프로야구로 한단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1990년대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일본 등의 프로야구에 비하면 역사도 짧고 수준도 다소 낮은 편이었습니다. 이종범은 과감하게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해 후배들이 나아갈 수 있는 미래와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주니치 시절에 여러 병마와 싸우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 진정한 프로가 가야 하는 방향을 마련해준 것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박찬호가 진출하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승엽이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종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힘들지만 어려운 길에 도전했던 이종범. 그는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에 있어 하나의 '신화'입니다. 그리고 그 신화는 계속 될 것입니다. 이종범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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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허구연의 야구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송인득 캐스터와의 사연은 옛날 야구 중계를 들었던 추억과 함께 허구연이 왜 송인득을 그리워 했는지, 그리고 시청자들은 왜 송인득의 빈자리가 커보이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송인득, 어서 일어나서 중계하러 가야지. 그러니 힘을 내.”
허구연이 송인득 캐스터가 숨을 거두기 두 시간 전 쯤에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대고 한 말이었습니다. 허구연과 송인득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2007년 4월 7일까지 25년간 호흡을 맞춰 온 환상의 야구 중계 명콤비였습니다.

허구연은 이 날 방송에서 " 임종장면도 지켜봤다 " " 지금도 어떤 때는 송인득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르던 동생인데, 술 담배를 멀리 하라고 했는데… "  " 지금도 방 안에서 송인득과 함게 찍은 사진을 보면서 '바보 같은 친구야'라고 한탄을 하곤 한다 "  "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그렇게 되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다 " 고 말하며 안타까움고 함께 눈시울을 붉게 적셨습니다.


야구 캐스터 송인득의 영결식은 MBC 아나운서들의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송인득의 발인에는 수많은 MBC 아나운서들이 눈물을 적셨습니다. 남자 아나운서들은 물론 여자 아나운서들도 선배의 영면에 애도의 문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야구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송인득 캐스터의 공백과 그의 뛰어난 중계방송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에서 캐스터들의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다시한번 절실하게 부각된 바 있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에서 캐스터들의 흥분 방송과 알맹이 없는 방송과 달리 고 송인득 캐스터는 경기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방대한 전문 자료를 바탕으로 깊이있고 품격있는 중계 방송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 송인득 캐스터는 경기흐름에 따라 감정의 톤을 적절히 조절하며 시청자에게 관전포인트와 시각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했습니다. 특히, 허구연 해설위원과 역할 분담을 적절하게 조하시켜 야구의 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고 송인득 아나운서는 야구 중계방송 캐스터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허구연은 "고 송인득 캐스터는 해설위원보다 더 방대한 지식과 정보로 무장하고 경기 중계에 임했다. 그리고 해설위원의 역할이 돋보이도록 질문에서부터 화법에 이르기까지 배려를 했다"고 송인득을 회고한 바 있습니다. 송인득은 특히 애정을 가졌던 야구나 마라톤에 대한 방대한 자료 수집과 공부를 지속적으로 했던 결과였습니다. 무릎팍도사를 시청한 후 잊혀졌던 송인득 캐스터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어쩌면 송인득이 있었기에 한국 야구 그리고 허구연이 빛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릎팍도사에서 허구연의 몇가지 이야기]

스파이가 된 야구 해설가

허구연은 해설가이면서도 경기전 한국팀과 맞붙는 상대팀의 감독이나 선수들을 취재해 정보수집을 했습니다. 한국팀에 도움되는 결정적 정보를 제공해 경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 것입니다. 일종의 스파이 역할인 셈입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팀들은 정보를 어느정도 오픈했지만 일본팀은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일본팀은 한국팀을 경계했다는 반증입니다. 선동렬이 일본팀의 술책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고 있는 감독이라고 합니다.

허구연 어록의 재미와 해학
▲대쓰요
감동과 기쁨의 말
▲고마워요 사또
유리한 상황에서 하는 말
▲독도를 넘기고 대마도까지 갔어요
허튼 소리에 대한 말
▲청보 핀토스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한 말   (예)만취했던 지난 밤 생각 "어제 일은 청보 핀토스 같았어."

국민스포츠로 승화시킨 열정
허구연은 일본식 야구 용어를 제대로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1982년 일본의 역사왜곡에 분개해 기존 일본식 야구 용어를 정확하게 바로잡아야 겠다고 결심했다는 이야기에 그의 애국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민스포츠로 성장하는데 있어 이러한 열정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또 허구연의 노력과 선수들의 성장으로 한국 야구는 마침내 일본이 두려워하는 팀으로 발전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제 일본의 감독이나 이치로 선수도 '한국팀과 만나는 것이 싫다. 겁나고 무섭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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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조직위원회가 발표한 올스타 명단입니다. 대한민국은 전체 12명의 포지션별 명단 중에서 총 4명으로 국가별 1위, 일본은 3명으로 2위입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1위인 것입니다.

내 야 수  : 김태균 (대한민국) 이범호 (대한민국) 지미 롤린스 (미국) 호세 로페스 (베네수엘라)

외 야 수  : 아오키 노리치카 (일본) 프레드릭 세페다 (쿠바)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쿠바)

포     수  : 이반 로드리게스 (푸에르토 리코)

지명타자 : 김현수 (대한민국)

투    수  : 봉중근 (대한민국) 마쓰자카 다이스케 (일본) 이와쿠마 히사시(일본)


국가별 올스타 숫자입니다. 우리나라가 4명으로1위입니다.

대한민국 : 4명(김태균 이범호 김현수 봉중근)

일본 : 3명

쿠바 : 2명

푸에르토 리코 : 1명

미국 : 1명

베네수엘라 : 1명


WBC 조직위원회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16개국 중에서 이번 대회 각 포지션별로 두각을 드러낸 선수들로 구성된 ‘올 토너먼트 팀’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각국 기자단의 투표로 만들어진 이 명단은 투수 3명을 포함, 총 12명으로 이뤄졌으며, 한국은 김태균 이범호 봉중근 김현수 등 16개국 중 최다인 4명을 배출했던 것입니다.

김태균은 이번 대회에서 타율 0.345(29타수 10안타) 3홈런 11타점을 기록해 1루수에 당당히 만장일치로 이름을 올렸고, 타율 0.400(20타수 8안타) 3홈런 7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른 이범호는 3루수에 뽑혔으며, 김현수는 타율 0.393(28타수 11안타) 7타점을 기록해 ‘올 토너먼트 팀’ 지명타자에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봉중근은 일본팀을 상대로 2승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이 0.51에 불과했습니다. 만일 투혼상이 있었다면 단연 이용규 선수입니다. 김태균은 김만장이란 별명도 얻을 듯 합니다.


한국, 세계 야구 랭킹 2위로 상승

이번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세계 랭킹 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제야구연맹(IBAF)이 WBC가 끝난 지 하루 만에 발표한 세계 야구 랭킹에서, 1월 발표 순위 779.82점으로 3위였던 한국은 WBC 준우승으로 160점을 더 얻어 939.82점을 획득, 미국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입니다. 1위는 여전히 쿠바이고 일본은 3위로 올라섰습니다. 세계 랭킹에서는 한국이 일본 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나라가 일본에 WBC 결승전에서는 아깝게 졌지만 진정한 승자는 한국입니다. 올스타 투표 결과나 세계랭킹 순위는 결국 한국이 우세한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야구와 국가 대표팀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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