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9.12.01 장례식에 흰 국화를 쓰는 이유와 유래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80)
  2. 2009.08.24 김대중 손자 김종대, 영정 든 모습 슬펐다 (인생의 교훈과 철학은 남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3. 2009.08.23 김대중 맏아들 김홍일, 눈물의 장례식 감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41)
  4. 2009.08.19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국장 갖고 흥정말라 by 진리 탐구 탐진강 (82)
  5. 2009.05.29 노무현 영결식과 노제 '민심은 천심이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8)
  6. 2009.05.24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추억과 아내의 눈물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산골 농촌 마을에서 자란 어린 시절에 간혹 꽃상여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아이에게 꽃상여와 상여소리는 신기한 대상이었습니다. 꽃상여를 따라가며 구경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죽은 이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의식이라는 것을 나중에 어른들을 통해 알게 됐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 때까지도 고인을 떠나보내는 장례식 의식은 꽃상여가 맡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유학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습니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의 도움으로 유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는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던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저는 방학 때 마다 시골에 돌아가 일손을 거들었습니다.

한 겨울에 산 비탈에서 표고버섯 재배를 위한 참나무를 베고 종균을 넣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산으로 부모님과 일을 하러 가는데 고향 친구의 아버지가 나와계셨습니다. 건강이 좋지않은 분이었습니다. 지나가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지게에 나무를 지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집 앞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슬프게 울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당시 저는 난생 처음으로 상여를 메고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마지막 의식에 최소한의 도리였습니다. 그 때가 1980년대 초반경이었습니다.

유년시절 꽃상여의 기억과 허망한 인간의 삼과 죽음

어제 저녁에 큰 처형이 입원한 암센터에 갔습니다. 말기암이었던 큰 처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실을 찾았습니다. 큰 처형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처가 식구들을 슬픔 속에서 쾌유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함께 기도하며 곁에 서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직감적으로 큰 처형이 운명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통한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서글펐습니다.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고인이 하늘나라에서는 아무 고통 없이 편안히 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인생에서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번뇌가 뇌리를 감싸고 돕니다.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허망한 사람의 일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년 시절의 꽃상여의 기억은 이제 흰 국화꽃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고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국화꽃을 바치고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례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이 흰 국화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자리에는 흰 국화가 놓여 있습니다. 왜 우리는 흰 국화를 고인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헌화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몇십년 전만 해도 꽃상여를 메고 향을 피웠습니다.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전통이 서구문화로 급속히 대체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과 100여년전 구한말 개화기에 처음 전해진 문화인 셈입니다.

하얀 소복과 꽃상여가 검은색 상복과 흰 국화로 바뀐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전통이 간소화한 서구 문화에 자리를 내준 셈입니다. 국화는 고결, 엄숙의 의미가 있고 검정색은 죽음을 뜻합니다. 경건하고 엄숙한 장례식에 국화가 갖는 의미는 각별한 것입니다.
 
고결함과 엄숙함의 국화꽃을 바치는 인간의 역사

그런데 국화가 인간의 장례에 사용되는 관습은 매우 오래된 역사입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영에 이미 국화가 장례식에 사용된 흔적이 있습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이 그 지역입니다. 샤니달 유적에서 출토된 네안데르탈인 시신 주변에는 여덟 류의 꽃이 담겨진 화분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20만년전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인 네안데르탈인이 이미 꽃으로 치장하고 헌화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운 장례 관습은 오랜 세월을 흘러왔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약 4만년전 구석기 시대에 국화가 장례에 사용된 흔적이 나타납니다. 지난
1979년 충북 청원군 두루봉에서 구석기 동굴인 '홍수굴'이 발견되었는데 다섯 살배기 어린 아이 유골도 함께 출토됐는데 유골 위에 고운 흙이 뿌려져 있었고 그 흙 속에서 국화꽃 가루가 나왔다고 합니다. 고인의 안락한 사후 세계를 위한 관습일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죽음 앞에서 국화꽃을 헌화하는 것이 고귀한 행위였던 셈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우주 속의 별먼지로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슬프지만 고인을 생각한다면 그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고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흰 국화꽃을 바치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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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6일간의 국장으로 엄수됐습니다. 고인의 영결식과 안장식을 비롯한 장례식은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국민들의 심정은 슬픔을 참으며 차분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합니다.

영결식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도 숙연하면서도 엄숙했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던 가족들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남편이자 동지를 잃은 이희호 여사의 슬픔은 어느 누구 보다 컸을 것입니다. 87세의 고령에도 하루 종일, 뜨거운 햇볕과 무더위 속에서 영결식과 운구 행렬, 그리고 안장식에 이르기까지 국장의 모든 절차를 지키고 있는 이희호 여사를 보면서 순간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서울국립현충원으로 향하는 운구행렬 도중 민주주의 상징 서울광장에서 잠시 하차해 운집해있는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사는 "입원기간과 국장 기간에 보여준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신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편은 평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고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고인의 유지입니다.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화해와 용서, 행동하는 양심' 유지 밝히는 이희호 여사의 소망

시민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대중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이희호 여사님 사랑합니다" "당신의 행동하는 양심을 잊지 않겠습니다"고 화답했습니다.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오정해는 자신의 결혼식 주례와 국악을 사랑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상여소리를 해서 시민들을 숙연한 분위기기로 만들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자 김종대 군이 고인의 영정을 안고 걷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바로 손자 김종대였습니다. 손자 김종대는 할아버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참으며 침착하게 운구 의식을 진행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자 종대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쓴 친필 일기에도 손자에 대한 애틋한 애정이 묻어 나오기도 합니다.

[김대중 친필 일기 중에서]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자애로운 할아버지로서 손자를 안고 행복해 하는 김대중 생전 모습]

손자인 종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의 장남으로 1986년생(만 23세)입니다. 김대중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청와대에서 손자를 안고 즐거운 망중한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김대중은 손자인 종대에게 일기에서 "나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다정다감한 시간을 가졌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김대중은 손자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어떤 인생관과 철학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나 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인생과 종교적 믿음의 핵심이 이웃 사랑이라는 핵심 덕목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요즘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판치고 있는 가운데 이타적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김대중은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고 손자에게 삶의 교훈과 원칙을 세워준 할아버지였습니다. 손자에게는 평생 자랑스럽고 찬란한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잊혀지지 않는 손자 종대의 슬픈 눈빛과 김대중이 들려 준 인생의 교훈

김대중은 독재와 불의에는 굴복하지 않고 원칙을 지킨 강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손자와 아이들 그리고 서민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였습니다. 믿음과 인생살이에 있어 이웃 사랑이 가장 중요한 핵심 덕목이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는 손자 종대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철학일 것입니다.
 

 
김대중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통일에의 염원이 무지개 같이 피어오르는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 자유 통일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행동하는 양심"을 이야기했습니다. 깨어있는 우리네 사람들의 몫인 셈입니다. 이 땅에서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이제는 그의 유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 꿈과 과업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손자 종대는 곧 살아가는 역사의 후세들인 우리 모두입니다. 영정을 든 손자의 슬픈 눈빛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손자 김종대 군이 할아버지의 서재에 영정을 올려놓고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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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고(故)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영결식과 운구 의식 그리고 안장식이 국장으로 거행됐습니다. 장엄하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장례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눈물나는 장면도 많았습니다. 

특히 맏아들인 장남 김홍일 전 국회의원의 모습은 감동의 눈물을 심어주었습니다. 김홍일은 파킨슨병으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비록 몸이 불편하더라도 장남으로서 아버지를 위한 책임감과 의지의 발로일 듯 합니다.

사실 김홍일은 아버지의 서거 이후 극도로 쇠약해졌기 때문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 몸 상태가 좋지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김홍일 전 의원은 의사가 극구 만류할 정도로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홍일은 영결식에 참석했습니다.

심각한 몸상태에도 초인적 정신력으로 안장식까지 맏아들 책임감 

김홍일은 영결식 참석 후 몸 상태가 더 안좋아졌습니다. 30도를 웃도는 햇볕과 무더위 속에서 오랜 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파킨슨병을 앓고있는 김홍일에게 무척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김홍일은 심각한 몸상태로 인해 안장식은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버지 김대중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지킨 맏아들 김홍일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홍일은 안장식에도 나타났습니다. 초인적인 의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김홍일은 안장식에서 직접 헌화는 물론 허토 의식에도 참여했습니다. 안장된 관 위에 삽으로 흙으로 덮는 허토 의식까지 참여할 정도로 아버지를 향한 맏아들의 심정은 눈물겨운 장면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영면할 수 있도록 아픈 몸을 이끌고 초인적 정신력을 발휘한 감동의 장면이었습니다.

김홍일은 영결식과 안장식에서 심지어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일어서 헌화를 하고픈 장면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하지만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런 장남 김홍일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과 함께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최근 더욱 수척해진 몸으로 병마에 시달리는 김홍일은 맏아들 노릇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신촌세브란스 병원의 의료진도 만류할 정도였지만 김홍일은 평생 한이 될 수있는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던 것입니다. 아버지 김대중을 위한 아들 김홍일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는 김홍일의 과거와 현재 모습이 안타깝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기 이후 김홍일의 달라진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과거 건장한 풍채는 사라지고 삐쩍 마른 몸과 불편한 얼굴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김홍일은 몸상태가 안좋아 병원에 입원 중인 상황에서도 입원한 아버지 김대중을 위해 3번이나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김홍일은 아버지의 임종 순간에도 "아버지"를 3번 부르며 오열했다고 합니다. 김홍일은 말을 못할 정도였지만 아버지를 향한 모습은 달랐던 것입니다.

고문 후유증 파킨슨병 얻었지만 끝까지 아버지 지킨 아들의 감동

김홍일은 지난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이 발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아버지인 김대중은 억울한 내란음모사건의 누명을 쓰고 사형 구형이 처해지고 아들인 김홍일은 군사정권에 의한 불법 구금과 고문을 받아 허리와 등 그리고 신경 계통을 심하게 다쳤다고 합니다. 지난  군사정권 시절에 얼마나 야만적인 폭력 행태가 벌어졌는지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김홍일은 현재 파킨슨병으로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몸이 마비되고 떨리는 현상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이동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안타까워 했다는 장남 김홍일. 김대중은 큰 아들이 자신을 돕다가 군사정권의 모진 고문과 탄압으로 몸쓸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김홍일은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장남으로서 의젓하게 지켰습니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결코 병원에만 머물 수 없었던 김홍일이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아버지 김대중을 지킨 맏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김홍일에게 많은 국민들은 뜨거운 감동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아꼈다는 손자 김종대 군이 할아버지 영정을 들고 있다
김대중과 아들들 그리고 고난의 가족사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3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이 그들입니다. 김대중은 차용애 여사와 사이에 홍일과 홍업을 낳았으나 일찍이 사별하고 이희호 여사를 만나 홍걸을 낳았습니다. 아버지인 김대중이 정치적 탄압과 고난을 당할 때 아들들도 마찬가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어머니인 이희호 여사는 역경 속에서도 남편이자 동지인 김대중을 뒷바라지하고 혼자서 아들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김홍일은 아무 영문도 모른체 대학원 1학년 시절에 박정희 유신정권의 중앙정보부에 끌려 가서 모진 고문과 온갖 시국사건 누명과 핍박 속에서 고초를 당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도 신군부에 납치돼 엄청난 고문을 당한 이후 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게 됩니다.

김홍업과 김홍걸도 어린 시절을 힘겹게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장성한 후에도 억센 풍파와 맞서야 하는 시대적 아픔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어버지 김대중에게는 효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희호 여사가 남편과 아들들을 지키며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김대중과 이희호 여사 그리고 세 아들들(좌), 병환 중에도 안장식에 참여해 허토하는 장남 김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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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도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CNN 등 세계 주요 언론들도 긴급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추모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제 사회의 추모 분위기는 오히려 우리나라 못지 않은 열기입니다. 이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는 물론 세계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세계인들의 존경과 예의의 표현일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상식과 예의범절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슬픔을 나누고 애도를 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인터넷에는 고인의 죽음 앞에서도 악플을 다는 인면수심의 패륜아들도 간혹 있습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인간말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장례식을 국장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측에서 난색을 표명했다는 일부 기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국장을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측은 국장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한 셈입니다. 다른 기사에서는 유족의 뜻에 따라 국장을 치르되 6일장으로 절충하자는 정부측 검토안도 나온다고 합니다. 고인의 장례식을 두고 정부측이 흥정을 하는 형국입니다. 참으로 비열하고 몰염치한 정부의 태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최대한 예우'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과연 이 대통령의 말이 진심일지 지켜봐야 겠습니다. 이번에도 빈 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도 이명박 대통령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최대한 예우'를 지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지시는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장례식 추모사를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현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파괴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또 서울광장을 봉쇄하며 시민들을 무차별 폭력과 연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분향소가 마련되고 추모객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과 추모 기간 동안 이명박 정부는 졸지에 비정한 패륜 정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정부가 패륜을 저지르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정부의 예산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일부 극우보수단체 할아버지들은 시민분향소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에게는 가혹한 폭력진압으로 악명높던 경찰은 극우보수 할아버지들의 망나니짓에는 눈을 감고 모른 체 했습니다. 이는 곧 현 정부와 대통령을 패륜 집단으로 욕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경찰의 패륜적 만행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시민들의 추모를 방해하거나 시민분향소 설치를 강제로 막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대한 예우를 지시하는데 경찰은 최대한 패륜을 저지른 셈입니다. 만일 이 대통령이 진심으로 지시한 것이라면 경찰 수뇌부는 파면 조치 등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망자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슬픔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의 도리입니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추모객들을 방해하고 폭압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짓일 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당연히 국장으로 치러야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적 지도자로서 충분히 국장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지역 민주주의 역사의 상징이자 신화입니다. 우리나라가 최대의 경제위기인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이었고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도 인권과 평화의 상징이자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루는 것이 타당합니다. 

분향소를 찾은 권양숙 여사가 오열하며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를 하고 있다.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을 갖고 흥정하는 모양새는 보기좋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대한 예우하라고 한지 얼마 안돼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막고 정부측은 장례식 국장 문제로 대통령 얼굴에 먹칠을 해버렸습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갖기를 바랍니다. 고인 앞에서 속좁고 비열한 패륜 정부로 비추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통령 말 그대로 최대한 예우를 갖춘 예의있는 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정부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길입니다. 말로는 국가의 브랜드를 높이자고 하면서 스스로 깎아먹는 정부가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에 대한 전례 문제를 갖고 헛소리를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이없는 일입니다.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자는 국장으로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김 전 대통령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고 현저한 업적을 남긴 분입니다. 국장은 당연히 유족의 뜻에 따라 정부가 최대한 예우를 갖춰야 합니다.

기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경우에는 9일장 형식의 국장으로 한 바 있습니다. 독재자였던 박정희 대통령도 국장으로 거행했던 것입니다. 전례가 없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정부측은 관례에 따라 현직 대통령 사망은 국장으로 하고 전직은 안된다는 어이없는 주장도 한다고 합니다. 정부가 고인 앞에서 말장난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적법한 법률에 따라 정부는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예우를 충실히 하면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9일장의 국장으로 거행하면 됩니다. 정부는 국장 장례식을 갖고 6일장으로 하자고 흥정하거나 관례 운운하며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슬픈 2009년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별과 같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땅에서 못 이룬 꿈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을 믿어봅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집니다. 슬픔이 응어리지면 한이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제대로 된 국장으로 치르면서 국민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슬픔을 보살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서운 동토의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인동초 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닮았다.

[참고 글] 김대중의 노무현 추모사와 YS MB의 화해(?)

[참고] 국장과 국민장의 차이

구분

국장

국민장

대상

1. 대통령직에 있었던 사람

2. 국가,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사람

기간

9일 이내

7일 이내

조기

장례기간 관공서 계속 게양

영결식 당일 관공서 게양

휴무

영결식 당일 관공서 휴무

없음

경비

전액 국고 지원

일부 보조 원칙
(전액 지원도 가능)

절차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과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 결정


[추가 속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6일장 형식의 국장으로 결정됐습니다.
정부는 19일 오후 8시경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 결정과 관련 임시국무회의를 개최해 이같은 장례 일정을 확정한 했습니다. 장의 명칭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며, 영결식은 오는 23일 오후 2시 빈소가 차려진 국회 광장에서 거행될 예정입니다.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입니다. 따라서 국장기간 내내 조기가 게양되며 장의 비용은 전액 국고에서 지원됩니다.

결국 정부는 9일 국장이 아닌 6일 국장으로 흥정을 한 셈입니다. 최대한 예우를 하려거든 처음부터 9일 국장으로 했다면 현 정부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통크게 하지 못하고 흥정하듯이 6일장으로 한 것은 현 정부가 고인 앞에서 치졸하고도 옹졸하다는 비판을 듣게 될 전망입니다. 정부가 앞장 서 최대한 예우인 9일장 국장을 선도했다면 좋았을 터인데 안타깝고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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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날입니다. 이미 고인의 가신 길에 하늘이 울고 땅도 울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슬퍼하고 노여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 안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추모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민심이고 천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대목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고인의 삶과 진정성이 온 나라 국민들의 가슴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적시게 한 것입니다.

'민심이 천심'이란 것을 보여주는 추모의 대장정

어떤 못난 왕정승은 자신이 죽어도 국민들이 슬퍼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일지 모르지만 고귀한 죽음 앞에서는 잊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깁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 이름을 남기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 하늘도 땅도 울었습니다. 장대비 속에서도 추모의 대장정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민주주의2.0의 성지가 되어버린 봉하마을과 시작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은 '민주주의2.0'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노무현은 민주주의1.0을 이루어냈지만 진정한 민주주의 완성인 민주주의2.0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좌절했습니다. 그 좌절은 우리네 인간들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 앞에 한없이 나약했던 우리들 모두의 허망함이었습니다. 물질 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가치였습니다. 노무현의 서거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곧 민주주의2.0이자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이제는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루어가야 할 노무현의 유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가 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구 행렬에 참여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만든 대서사시 '장엄한 추모 행렬'

마지막 가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기 위해 봉하마을에 모인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가 시작되자 통곡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노란 종이비행기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란 사람들은 운구차를 뒤따라 차량 행렬의 장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인물이 이토록 장엄한 장례식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고 있는 대서사시입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행해 끝없이 이어졌던 봉하마을 추모 행렬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봉하마을로, 그리고 서울 광장으로 모여들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네 마음 속에 잠자던 민주주의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봉하마을의 신 새벽. 애도객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상록수' '타는 목마름으로' '아침 이슬' '작은 연인들'을 목놓아 불렀습니다. 발인제가 시작되자 봉하마을은 마지막 떠나는 님을 그리면서 수만명이 함께 통곡하는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살아오는 저 푸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이. 신 새벽에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타는 목마음으로 2절 중에서 -"

서울 경복궁에서 시청 광장의 노제로 이어지는 슬픈 진혼곡

이번 경복궁 영결식과 서울광장 '노제'의 총감독은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입니다. 영결식의 컨셉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한 말입니다. 김명곤 님은 "고인은 언제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몸을 바쳤고, 싸웠고, 분노했고, 도전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비전이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과 조롱과 저주에도 꿋꿋이 버터 오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겸손한 존중심과 높은 윤리관과 엄격한 도덕율이 있었기에, 그 드높은 이상에 상처를 입힌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부엉이바위 아래 몸을 던지신 겁니다."라 그 취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서울 경복궁의 영결식에 이어 서울시청 광장의 노제는 지금까지 추모 행렬 보다 더 많은 최대의 인파가 될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시청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주부들도 대학생들도 마지막 가는 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참석하거나 외근을 해서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대의 추모 인파가 될 것입니다. 서울 시청 광장에서 울려퍼질 슬픈 진혼곡 '상록수'는 국민들의 가슴을 비장감으로 적실 것입니다. 상록수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불렀던 양희은이 다시 부를 예정입니다.

사람들이 밤을 새워 목놓아 울고 신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울 광장에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민심은 천심'이라는 교훈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광장으로 나아갑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가> 시청 앞 광장에서 거행된 노제에 다녀왔습니다.
경찰 발표 18만명(숫자가 영 저질?)이라고 하는데 실제 100만명은 되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있어 지난 월드컵 축구 당시(경찰발표 135만명 발표와 너무 차이나 나죠) 보다 밀도가 훨씬 높았고 광화문에서 서울광장 그리고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꽉차 있었습니다. 경찰 발표는 축소하기 급급한 것 같습니다. 온 국민이 보고 있는데 고인의 가는 길 마저 거짓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딱하기 그지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녀가 할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에 나서고 있다.
▲고인의 운구 차량 행렬과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사람들

아래는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입니다.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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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아침에 청천벽력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가슴에는 슬픔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듯 했습니다. 연신 담배만 피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마지막 직전에 경호원과의 대화가 눈에 선했습니다. 선문답같은 대화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담배 있나?"
"없는데요. 가져올까요?"
"저기 사람이 지나간다."

피끓는 청춘 시절을 잊고 20여년을 바쁘게 살았습니다. 한 가정을 일구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정치는 '그들 만의 리그'라고 치부하곤 했습니다. '먹고사니즘'이 더 절박한 생활이었기에 평범한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선거권은 반드시 행사했습니다.

그런데, 인간 노무현의 등장과 서거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내가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TV에서는 뉴스특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잘 참고 있던 아내가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아내는 점점 감정이 북받치는지 울먹거렸습니다.

너무 감정이 감정이 격앙된 것 같아서 아내를 진정시키려 해봤습니다.

"왜 그러는 거야. 진정해."
"우리가 취임식에도 갔던 대통령이 서거했는데...(울먹울먹)..."

"그만 울어. 당신이 울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나려고 하잖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너무 슬퍼...(훌쩍훌쩍)..."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는 일반 국민 대표들이 함께 입장했다

저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나니 옛 생각이 났습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 왔습니다. 저녁 식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은 처음으로 일반 국민들의 인터넷 신청을 받아 추첨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운좋게도 난생 처음 대통령 취임식 참석의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국회에서 역사적인 제 16대 대통령 취임식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부부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의 영향과 이를 통한 일반 국민들의 참석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아내가 이렇게 가족 이외의 특정 인물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처음 본 모습이었습니다.

너무 허망한 대통령의 서거에 아내는 취임식 당시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당시 취임식은 2월 중순이라 여전히 추웠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부부가 특별한 이벤트로 가졌던 취임식 행사 참석이었습니다. 당시 식전 행사의 마지막 노래로 양희은이 '상록수'를 부르자 많은 참석자들이 따라부르며 진정한 민주주의 세상을 염원했습니다.

그리고 취임식은 노무현 대통령이 일반 국민 대표들과 함께 참석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 취임식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민주주의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희망했던 소중했던 추억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기존 극우 보수 세력과 하이에나 보수 언론에 임기 내내 물어뜯겼습니다.
 
시청 앞에서 거리 분향소 조문을 전경들이 가로막자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이 세상에는 어느새 독재의 망령이 스멀스멀 엄습해오고 있습니다. 소중한 가치 보다는 눈 앞의 이익과 욕심에만 너무 매몰되어 개인 이기주의, 지역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오히려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 보다 물질은 많아졌지만 더 많이 갖기 위해 아웅다웅 다투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사람 보다는 물질에 함몰되어 너무 각박한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취임식이 아니라 장례식을 지켜봐야 합니다. 자신을 산화해 희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울림의 메시지가 큽니다. 고인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속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들이 많습니다. 그 가치의 중심은 물질 보다는 먼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보다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때의 추억처럼 양희은의 상록수를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근조 소스 제작 : 예스비님 근조소스 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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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