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0.11.08 불타는 아파트 가을 단풍에 장모님도 놀란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0)
  2. 2010.05.10 골미다 호피무늬 월드컵 특집, 민망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46)
  3. 2010.05.08 부모님께 최고의 효도 음식, 과수원 보리밥집 아시나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23)
  4. 2010.02.15 1박2일 제주도 여행이 특별한 3가지 이유 <시청자투어로 본 졸업/가족/신혼여행> by 진리 탐구 탐진강 (37)
  5. 2009.11.30 난생 처음 김장 김치 담가본 남자 '여자 마음 알겠더라'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7)
  6. 2009.11.26 시한부 암환자를 둔 아내의 눈물, 어떡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7. 2009.08.21 장모님이 밥 잘 먹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1)
  8. 2009.07.27 부모 5명 모시는 천사표 아내의 결혼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83)
  9. 2009.04.18 60년 전통 송학반점에서 장모님에 효도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7)
  10. 2009.03.29 팔 부러진 채 주말농장에서 삽질했던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6)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주말에 모처럼 아파트 단지를 바라봤습니다. 고층에 살고있던 터라 멀리 아파트단지가 한 눈에 보였습니다. 눈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불타는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붉게 물든 단풍이 아파트 단지 곳곳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단풍이 펼치는 장관이었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렇게 단풍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마트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 곳 마다 빨갛고 노란 단풍이 형형색색으로 가을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며칠 전 장모님과 함께 북한산과 남산의 단풍을 구경하고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 단지 만큼 멋진 단풍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고생해 대중 교통수단을 타고 단풍 구경을 갔지만 사람들이 북적대고 그다지 볼 것이 없어 그렇다고 합니다.

붉은 단풍의 향연이 아파트 단지에서 마치 캠프파이어를 하는 듯 타오르다


그 당시 아내는 장모님과 함께 예능프로그램 1박2일 방송에서 나왔던 장소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의 단풍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장모님은 북한산에 이어 무한도전에서 나온 남산 팔각정을 찾았지만 역시나 기대에 이르지 못했답니다. 장모님은 여기 아파트 단지의 단풍이 최고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고생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 아파트 단지의 가을 풍경을 감상해 볼까요. 안개가 자욱해 사진이 다소 흐리게 나온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해해 주세요.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면 가는 곳 마다 단풍의 향연이 가득합니다. 빨간 단풍이 가장 화려하지만 노란 은행잎을 비롯해 여러 색상의 단풍도 여기저기 펼쳐져 있습니다. 눈이 한없이 즐겁니다. 단풍 뿐만 아니라 빨갛게 익어가는 감이 달린 감나무 산수유를 비롯 여러 과일 나무와 열매 나무가 종종 보이곤 합니다.

장모님과 아내가 어느 단풍 구경 보다 아파트의 단풍이 더 환상적인 이유



거의 불타는 듯한 단풍 나무는 아파트 단지의 명물입니다. 멀리 내장산 단풍 구경을 가지 않더라도 아파트 단지만 둘러봐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빨간 단풍나무 이외에도 여타 활엽수는 노란 잎으로 갈아입고 저 마다 가을을 뽐내고 있습니다.


마트를 가는 길과 아파트 단지 주변 길도 단풍의 향연은 계속 됩니다. 마트를 가는 길에는 단풍 속에서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이나 부부들도 자주 마주칩니다. 멀리 보이는 노부부의 산책 모습도 정겹더군요. 아파트 주변에 이 정도 좋은 데이트 코스가 있는 곳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걸어 보아요.


마트에 갔더니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특히나 부부들이 쌍쌍으로 많이 왔습니다. 저희 부부가 결혼할 당시인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부부가 함께 마트에 오른 일도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부는 물론 남자가 혼자 마트에서 시장보는 일도 많더군요.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마트에서 다시 아파트 단지로 돌아오니 단풍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자, 붉은 단풍으로 불타는 아파트 단지 구경 잘 하셨는지요. 장모님은 살아오시면서 이 토록 멋진 단풍을 가진 주택이나 아파트 단지를 보신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저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 단지가 이렇게 잘 꾸며진 것은 과거에 아파트 건설사가 당시 땅이 많아 시범적으로 조경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삶의 질이 중요해진 세상, 아파트 단지에서 마음껏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행복입니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철쭉, 목련 등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온갖 단풍이 향연을 필치는 아파트 단지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운치가 있습니다. 아파트를 나서 조금만 가면 산과 들이 펼쳐져 있기도 합니다. 언제나 땅을 밟아볼 수 있고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아내는 이사를 가지않고 여기서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옮길 때가 오겠지요. 저도 오래 여기서 살고 싶지만 인간사가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번 가을은 유난히 아름다운 단풍이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여러분의 가을은 어떻게 무르익어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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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버이날과 함께 한 주말이라 장모님을 모시고 처가 가족들과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외식을 할 수도 있지만 복잡하고 비용만 많이 들 것 같아 집에서 두루치기 별미를 만들어 먹기로 했습니다. 주말농장 텃밭에서 상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를 준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알찬 저녁 모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틀었는지 모르지만 TV화면에 민망한 호피무늬 옷을 입은 여자 연예인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뭔가 봤더니 SBS의 예능프로그램 '골드미스가 간다(골미다)'였습니다. 골미다는 6명의 여자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시집가기 프로젝트로 1박2일 합숙생활을 하면서 게임을 통해 이긴 사람이 맞선 기회를 갖고 데이트하는 과정을 그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아이들도 함께 가족들과 식사를 하던 중이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화면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의 모습이 민망했는지 중간에 채널을 돌려버렸습니다.

이번 방송에서 골미다는 남아공 월드컵 특집 프로젝트로 '골드미스 월드컵'을 보여준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당초 월드컵의 의미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골드미스들 골탕먹이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한 듯 합니다. 현영, 양정아, 박소연 등 골미다 출연 여자 연예인들이 몸에 쫙 달라붙는 호피무늬 옷을 입고나와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는 외국인 여자들과 100미터 달리기, 미니축구 등을 보여주었는데 19금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의상때문에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아이들도 함께 모인 식사 시간대에 온 몸에 쫙 달라붙는 호피패션이라니...

현영의 도발적인 호피무늬 복장의 화보 장면(방송 캡쳐도 저작권을 따지는 SBS의 악법때문에 대체한 것임)

또한, 김종국과 김흥국이 각각 골드미스팀과 월드미스팀 감독을 맡았는데 김종국에게도 호피무늬 반반지를 입혀 골미다 여자연예인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 굳이 호피무늬 의상을 입혀야만 하는지 의아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예능프로그램이라 재미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는 있지만 나이가 40이 다 된 여자들에게 몸에 꽉 끼는 옷을 입혀 억지웃음을 유도하고 희화화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현영과 양정아 박소연 서유정 이인혜와 같이 일부 몸매가 되는 연예인은 당당하게 호피무늬 옷을 입고 몸매를 과시하는 모습도 그다지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신봉선과 송은이는 불만어린 표정을 지었습니다. 수치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자 연예인들의 외모와 몸매를 시청자들의 눈요깃거리로 만들어 시청률만 올리면 된다는 제작진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방송사들의 선정적 막장 프로그램 반성해야

특히나 100미터 달리기를 한 후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밀가루를 잔뜩 뿌리는 장면도 연출되었는데 밀가루 범벅이 된 여자연예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화면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재미도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작위적으로 여자연예인들의 얼굴이나 가슴 엉덩이 등에 밀가루를 뿌려 수치스럽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웃음도 품격있게 만들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디어가 없이 단순히 연예인 망가지는 장면만 만드는 제작진은 연예인의 인권도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시청자 게시판을 비롯한 인터넷에는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의 골미다 비판 글이 쇄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체적인 내용은 "너무 야하다" "가장 한심한 프로였다" "혐오수준이다" "노처녀들 밉상짓이다" 등 비호감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상업방송이지만 방송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제작진은 보다 신중한 자세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그 동안 좋은 이미지의 연예인 마저 비호감으로 전락시키는 방송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골미다라는 것은 모두에게 악영향인 셈입니다.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하게 된 것은 방송사의 옐로 저널리즘의 잘못이 크다 하겠습니다. 더욱이 골미다는 가족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대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인데 여자연예인들에게 몸에 찰싹 달라붙는 호피 무늬 옷을 입혀 시청자들을 민망하게 만든다는 것은 제작진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요즘 방송사들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져 연예인들에게 무리한 장면을 요구하거나 막장드라마에서 선정적 장면을 내보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도 합니다. 방송사와 제작진이 이성을 찾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SBS는 방송 캡쳐화면 조차도 무리하게 저작권을 핑계로 단속한다고 하여 관련 사진은 언론사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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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주말에 아내와 함께 주말농장 텃밭에 갔다가 열심히 일을 하다보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당시는 아이들이 시험공부를 할 때라서 텃밭에는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던 시간이라서 아내에게 그냥 근처 보리밭집에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아내도 저녁을 안해도 되니 해맑게 웃었습니다. 집에 전화해 두 딸도 합류하게 됐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주말 농장에서 조금 떨어진 보리밥집 '전원일기'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 두 대가 우리 곁을 지나쳐 가더니 갑자기 멈췄습니다. 그러더니 자동차 창 문을 열었습니다.

"매형, 저희도 전원일가 가요."
"앗 처남......안녕하세요. 장모님도 계시네요. 웬 일이세요?"

"응, 오늘 따라 보리밥이 먹고 싶었어."
"하하. 오늘 장모님과 이심전심이네요."

그랬습니다. 그 날 장모님도 보리밭이 갑자기 땡겼던 것입니다. 사전에 예정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장모님 가족들과 우리 가족들은 함께 보리밭집에 동행하게 됐습니다.





장모님은 가끔 보리밥을 즐기시는 편입니다. 물론 저와 가족들도 별미로 보리밥을 좋아합니다. 처남 가족 4명과 처형을 포함하면 10명이 함께 보리밭집을 가게 됐는데 모두가 보리밭을 좋아하는 셈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리밥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가지 음식들을 포함해 맛도 좋지만 분위기가 예술인 것도 크게 작용합니다.


전원일기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고향과 같은 정다움이 있고 특히 과수원에 만들어진 집이라는 것도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전원일기 보리밥집은 배나무 과수원과 바로 붙어 있습니다. 지금은 하얀 배꽃이 활짝 피어 있어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그림같은 풍경이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더욱이 저와 같이 애주가들에게 있어 항아리에 담긴 동동주를 반주로 마시는 참맛도 잊지못할 추억입니다. 장모님도 동동주를 드실 수 있어 사위와 잔을 마주하는 것도 훈훈하기만 합니다. 미리 예정하고 장모님과 함께 보리밥집을 찾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하게 함께 가족 모임을 할 수 있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까운 보리밥집을 찾는 것도 최고의 효도 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에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에는 웰빙 식품이라 할 만 합니다. 보리밥 비빔밥에 들어가는 반찬이나 음식도 각종 나물이 있어 보리밥 왕후장상의 식사나 다름없습니다.




배꽃이 만발한 배나무 과수원과 그 주변에는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나 있습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자목련, 철쭉꽃, 벚꽃 등이 보리밥집인 전원일기를 중심으로 피어 있어 가족들에게 커다란 선물과도 같습니다. 보리밥을 먹고 과수원길을 산책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부모님과 과수원길에서 봄나물을 구경하는 추억의 시간도 보람있을 것입니다.

사실 오월은 어버이날을 비롯해 가정의 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가족과 함께 봄날의 최고 별미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보리밥집은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의외로 잘 먹는 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리밥이 익숙치 않다면 어린이들을 위한 여타 다양한 음식들이 별도로 준비돼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주말에도 토요일 일요일 모두 어버이날을 맞아 어르신들과 가족 모임 식사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선물을 준비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싱그럽습니다. 어떤가요? 가정의 달에는 부모님과 함께 보리밥집을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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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설날 명절에 맞춰 1박2일 시청자투어가 시작됐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펼쳐지는 시청자투어에는 무려 150만명의 신청자가 몰릴 정도로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청자투어에는 7팀 90여명이 선정되었고 2박3일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에 대활약을 했던 국악고 소녀시대와 한국체대 여대생들이 특별 참가한 것도 관심을 증폭시킵니다.

이토록 시청자투어가 엄청난 관심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상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이렇게 많은 시청자들이 방송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참여해 2박3일간 촬영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강호동을 비롯 멤버들과 제작진이 시청자를 주인공이자 왕으로 대접해주는 1박2일의 인간적 정과 따뜻함이 무엇보다 시청자들을 끄는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1박2일이 그 동안 시청자들에게 가족과 같이 편안하게 다가간 노력이 공감을 받는 듯 합니다.
단순히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사람들과 함께 하며 진솔하게 다가갔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1박2일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지역 주민이나 여행객 시민들과 격의없이 형 동생 삼촌 아저씨 친구가 되어주고 했습니다. 상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편안하고 행복한 기운이 감도는 프로가 1박2일인 셈입니다.


1박2일 제주도 시청자투어에는 가족,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동호회 등 7개팀 90여명이 참가한다 

이번 시청자투어는 제주도를 택했습니다.
제주도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꼭 한번을 가보고 싶은 곳이고 추억의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번 시청자투어가 제주도로 떠나는 것을 보니 특별한 추억과 회상에 잠기게 했습니다.

90년대 초반 대학시절 제주도 졸업여행의 아련한 추억
 

우선 제주도에 처음 여행을 가본 것은 1991년 대학교 3학년 때 였습니다. 당시 저는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생이었습니다. 저는 86학번인데 당시 약 3년의 군대를 다녀오니 대학 3학년에 복학 후 89학번과 함께 학교 캠퍼스 생활을 했습니다. 복학 후 현역 학생이나 복학생이나 서먹서먹한 분위기였고 각각 따로 다녔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주도 졸업 수학여행을 가기로 결정됐습니다.
사실 지금은 해외여행도 많지만 그 당시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최고의 졸업 여행 장소로 찾던 곳이 제주도이던 시절이었습니다. 현역 학생 대표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복학생들이 함께 갔으면 하는데 많이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단기 복무인 방위 근무를 했기에 3학년에 함께 다니게 된 87학번후배들을 포함해 86학번 복학생들이 제주도 수학여행에 대거 참가할 수 있도록 저는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국악고 소녀시대 학생들의 여행은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제 인생에 있어 최초의 제주도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대학생들이라서 비용절감 차원에서 완도에서 저녁에 출발하는 유람선 배를 타고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떠나기로 한 완도에서 첫 날 배는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태풍이 불었기에 하루를 완도에서 기다리며 현지에 묵어야 했습니다. 어렵게 떠난 제주도 졸업여행은 한라산 등반을 비롯해 2박3일간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여행을 다녀온 후 현역과 복학생들이 모두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태풍과 만난 제주도 신혼여행과 친구의 쌀집 트럭

두번째로 제주도에 간 것은 신혼여행이었습니다.
지금은 신혼여행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지만 1990년대 중반 당시는 제주도 신혼여행이 많았습니다. 신혼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떠났습니다. 다만 제주도에 군대에서 절친했던 친구가 있어 신혼여행 기간 동안 여행 일정을 모두 챙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신혼여행 첫 날에 공항으로 몰고온 것은 쌀집 트럭이었습니다.
신혼여행 내내 고난과 추억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날 친구는 제주도에 있는 자신의 친구들을 모두 모아서 단란주점 하나를 통째로 빌려 밤새도록 서울에서 온 친구의 신혼여행과 결혼식 축하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신혼여행이 끝나 돌아가야 하는 날이 왔는데 태풍이 불었습니다.
하루를 더 제주도에 묵어야 했고 친구는 자신이 쌀을 대고있던 관광호텔의 방을 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갔지만 결항이 계속 돼 비행기편이 없던 터라 친구가 구해준 페리 배편으로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페리 배편을 타러가는 길도 친구는 쌀집 트럭을 몰고 왔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제주도 신혼여행의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가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맙기만 합니다.

      제주도의 소인국테마파크에 들렀을 때 아이들이 미니어처 불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다시 만난 태풍과 장모님 칠순 기념 제주도 가족여행

세번째 제주도 여행은 지난해 가족여행이었습니다.

장모님 칠순 생신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제주도 출신의 아랫 동서가 있어 가족여행은 순탄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언제나 방심을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제주도 도착한 날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고 공항에서 숙박지에 전화를 하던 동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주도에서 아주 멋진 팬션을 예약했던 동서는 거기에 전화로 확인해보니 뭔가 잘못돼 예약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동서가 제주의 친척에게 부탁했는데 구두 상으로만 말하고 실제 확인을 못한 실수였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제주 가족여행은 시작됐지만 현지에서 멋진 장소와 음식을 비롯 아주 즐거운 여행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번의 제주도 여행은 모두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졸업여행으로 처음 간 제주도였고 그 후 새로운 인생의 출발인 신혼여행 그리고 장모님을 모시고 간 가족여행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중한 추억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갈 때 마다 제주도 여행은 언제나 태풍을 동반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주도 여행 때 마다 닥친 태풍은 우리에게 특별한 추억을 하나 더 만들어주기 위한 하늘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행스럽게 태풍은 잠시 스쳐지나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제주도로 떠난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비단 저 만의 생각은 아닐 듯 합니다. 그 동안 제주도로 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을 떠났던 학생들, 그리고 소중한 결혼의 출발점에서 신혼여행을 갔던 신랑신부들,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여행간 사람들, 여러가지 사연들이 모여 따뜻한 행복을 만들어갔던 제주도의 추억들이 사람들 마다 아련하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1박2일 시청자투어는 모든 사람들에게 훈훈하게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제주도에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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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을 맞이해 주말농장 텃밭의 김장 무와 배추를 모두 수확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 정들었던 텃밭과도 이제는 잠시 이별이라 생각하니 조금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텃밭의 채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는 것은 그 만큼 정성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땅은 씨앗을 뿌리고 땀을 쏟는 만큼 결실을 맺는 것 같습니다. 무작정 씨앗만 뿌려놓고 농작물 수확만 기다리는 것은, 공부하지 않고 시험성적이 좋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땅과 주말농장 텃밭 농사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많이 배우는 것 같습니다. 매주 주말이면 텃밭에 가서 땀흘리고 정성을 다해 가꾼 결실을 수확하는 기쁨은 아들 딸 자식을 기르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듯 합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부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땅에서 소중한 쌀을 비롯한 농산물을 공급해주는 농부에 대한 고마움도 느꼈습니다.

그러면, 일년 농사를 마무리하는 김장 무와 배추 수확을 비롯한 김장 담그기를 직접 체험하고 느낀 점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땅은 땀과 정성을 쏟는 만큼 수확의 결실로 보답한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의 주말농장 텃밭에는 일년 농사 마지막 수확의 무와 배추가 남아 있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 텃밭의 모습입니다. 수확하기 바로 직전입니다. 갑자기 영하의 날씨가 무와 배추의 잎을 시들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추위에도 무와 배추는 용케 이겨냈습니다.


주말농장에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대파와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동장군을 피해 배추가 숨어있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텃밭의 대파와 비닐하우스의 배추입니다. 요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농작물입니다. 아마도 주변에서 고깃집을 하는 음식점에서 기르는 작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텅빈 주말농장을 지켜주는 최후의 농사인 셈입니다.


텃밭에서 막 수확을 끝낸 무와 배추를 마대자루에 담아 아파트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수확한 무와 배추를 텃밭에서 아파트 집으로 나르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예상 외로 올해는 수확이 좋았습니다. 제가 주말농장을 한지 3년째이다보니 농사짓는 솜씨가 늘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에서 보면 일부만 보여주고 있지만 마대 자루로 무는 네개의 포대였고 배추는 50포기가 넘었습니다. 

올해는 풍년인 셈입니다. 김장 무와 배추는 아래층에 사시는 장모님 댁으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김장 담그기 작업이 시작됩니다. 아내와 작은 처형 그리고 처제 등이 모두 모여 김장을 담그기로 했습니다. 저는 수확하고 옮기는 일이 주요 임무였습니다.

김장 담그기는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산고의 고통이었다

무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무청을 만들고 김장 배추는 노란 속살을 드러낼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로 옮겨진 배추와 무는 다듬는 작업부터 시작됐습니다. 무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다시 무채로 재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추는 바깥쪽 잎들을 다듬어서 노란 속들을 모아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여기서 남은 무 잎과 배추 잎은 말려서 시레기를 만드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시레기국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게 더 탐이 납니다.


난생 처음 얼떨결에 김장 김치의 양념속을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 남자의 속놀림이 바쁘게 움직인다

아내가 저녁에 김장 준비를 하러 간 사이에 저는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낮에 무리한 상태라 몸이 나른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장모님 집으로 호출을 했습니다. 아래 층에 내려가보니 추가로 주문한 김장용 배추 상자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족이 김장 김치를 먹어야 하기에 텃밭의 배추 만으로는 다소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김장용 배추 상자를 베란다로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현재 힘을 쓰는 마당쇠 역할을 할 사람이 저 밖에 없었던 터라 기꺼이 즐겁게 상자를 날랐습니다. 그런데 장모님이 이미 준비된 재료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김장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무채와 고춧가루 그리고 새우 젓갈, 생새우, 다진 마늘과 생강, 까나리 액젓, 찹쌀 풀, 쪽파, 대파, 갓 등 각종 재료를 섞는 일이었습니다. 김장 속양념만 10여가지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시골 고향에서 부모님이 고추 가루를 보내주셔 이번 김장에 요긴하게 활용했습니다.
 
건강이 다소 좋지않은 장모님이 고생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힘껏 재료들을 버무렸습니다. 재료들을 한꺼번에 넣고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넣고 계속 뒤집어주는 작업인지라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했지만 김장 속양념을 다지는 일이 거듭됨에 따라 기진맥진해졌습니다.

한참 동안을 몇차례 작업하는 동안에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땀이 얼굴을 적셔 자주 땀을 훔쳐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밤 12시가 되서야 끝났습니다. 김장 담그는 일은 가족 건강 음식을 만드는 정성은 물론 하나의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장인정신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보니 온몸이 땀에 젖어있어 샤워를 시원하게 했습니다. 이제서야 정신이 들 정도였습니다.

멋모르고 덤볐다가 큰 고생을 한 셈입니다. 그렇지만 김장 준비를 완료하고 나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직접 김장을 담그는데 일조했다는 뿌듯함이었습니다. 여자들이 만들어주는 음식만 먹다가 가족 모두를 위해 김장 담그기를 직접 해보니 여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밥상이 앉아 편안하게 식사를 하지만 거기에는 여자들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주부들의 고생을 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던 뜻깊은 날입니다.

김장 속양념과 겉절이 김치로 즐기는 가족 파티의 즐거움


전날 만든 김장양념을 꺼내서 드지어 본격적으로 김장 배추 김치를 담그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루 밤이 지나고 다시 본격적인 김장 담그기 후반전이 시작됐습니다. 전반전 김장 준비를 전날 저녁에 했다가 하루 밤을 지나서 잘 간이 든 김장 속양념을 배추에 적절히 버무려 주는 작업입니다. 어떤 집은 양념속과 배추를 곧바로 버무리기도 하지만 저희 장모님은 하루 밤을 새우고 다음날 배추 김치를 담그는 순서로 진행했습니다. 김장 담그는 전통은 대가족 문중이나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조리법과 요리법이 있는가 봅니다.

김장 속양념도 어떤 집은 배즙이나 양파를 넣기도 한다고 합니다. 젓갈도 멸치젓이나 창란젓 토하젓 어리굴젓 새우육젓 갈치젓 등 다양한 것도 김장 양념이 얼마나 다양한지 짐작케 합니다. 이제는 김장 담그는 법을 마스터한 것 같습니다. 김장을 다 담근 후에 시식도 하고 김장양념이나 겉젖이 김치에 막걸리 한잔 하는 재미도 일품입니다.
 

김장 양념이 완성된 후 막걸리와 함께 노란 배추속에 굴과 치킨을 싸서 음주의 시간을 갖고 있다

전날 밤 12시가 넘어 김장양념에 굴과 배추 속을 싸먹었습니다. 여기에 막걸리를 마시는 기분은 최고의 별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늦은 밤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하루 일과를 끝내고 김장양념과 배추속에 굴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셔보는 재미는 현장에서 느껴보지 않으면 모를 환상의 묘미입니다. 게다가 치킨 닭에다 김장양념과 함께 배추를 싸먹는 것도 특별한 안주였습니다.


김장 김치를 모두 끝낸 후 가족 모두가 모여 막걸리와 보쌈 안주로 즐거운 만찬을 즐기고 있다

드디어 모든 김장 담그기 작업이 끝났습니다. 여기에는 처갓집 식구들이 대부분 함께 모였습니다. 올해 김장 담그기에 사용한 배추만도 100여 포기는 될 듯 싶습니다. 온 가족이 가정 마다 김장 김치를 나누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김장을 담그는 일은 가족애를 더욱 끈끈하게 해주었습니다.

모두가 서로의 고생을 격려하면서 겉절이 김장 김치와 김장양념을 돼지 보쌈과 함께 먹었습니다. 이날은 처남이 공수해온 토속 막걸리가 준비됐습니다. 김장김치와 보쌈을 즐기는 재미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겉절이 김치에 햅쌀로 만든 밥을 먹는 것도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별미입니다. 겉절이 김치를 손으로 찢어서 밥 숟가락에 얹어서 먹어본 사람은 충분히 감이 올 것입니다.

이렇게 김장 담그기 대장정이 끝났습니다. 이번에 김장은 제가 난생 처음으로 시작에서 끝까지 동참해 체험한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의미있는 김장 담그기 행사였습니다. 그리고 주부들이나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김장 담그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인스턴트 김치나 김치 공장의 김장김치를 사먹는 일이 많지만 직접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직접 김장 김치를 담가보는 것도 커다란 추억이 될 듯 합니다. 아이들은 그들대로 교육적 효과도 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올해 김장 담그기는 우리 가족들에게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된 것만으로 보람을 느낀 추억이 될 것입니다. 아직 김장을 담그지 않은 분들은 가족과 함께 즐거운 김장 담그기에 도전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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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의 소식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러한 죽음이 나의 가족일 경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몇달전 큰 처형이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평소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검진도 주기적으로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몸 속에서 암덩어리가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혀 담배도 피지않고 항상 몸 관리를 잘해왔는데 폐암이란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장모님을 비롯해 아내와 가족들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장모님 생신을 맞이해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암으로 투병 중인 큰 처형은 차가운 날씨가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처형 부부가 사전 예고없이 참석했습니다. 큰 처형은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주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다소 무리해서 참석한 것입니다.

이미 가족들은 큰 처형이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큰 동서와 작은 처형이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던 터라 가족들은 슬픔에 젖어 있었습니다. 사실 큰 처형 부부를 포함해 온 가족이 모두 함께 모인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바쁜 일상으로 함께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말기암 환자가 있는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큰 처형은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외출도 쉽지않은 몸상태로 보였습니다. 비록 자신의 몸이 아프지만,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려는 큰 딸로서 책임감의 발로였을 것입니다. 큰 처형은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애써 밝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고 저도 장모님 생신인지라 가족들 모두를 재밌게 해드리려고 노력했던 자리였습니다.

어쩌면 이번 가족 모임이 큰 처형을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한 마지막 모임일지도 모릅니다. 그 후 최근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작은 처형은 병 간호를 하는데 의사는 길어야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미 폐암이 말기 불치병 증세로 전이되고 있고 치료가 힘든 암 종류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장모님과 가족들은 비통에 빠졌습니다.

지난 주말, 아내는 저에게 큰 처형의 상태에 대해 몇가지 상의를 했습니다. 큰 처형은 아직도 자신의 삶이 시한부 인생인 줄 잘 모르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큰 처형의 남편인 동서는 그 동안 병수발에 지쳐있어 장모님과 작은 처형이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기로 했다며 우리가 좀 도와주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명의가 필요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물질적인 부분도 당연히 가능한 돕기로 했습니다. 

건강이 좋지않은 장모님이 암환자와 함께 살겠다면?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장모님의 건강이었습니다. 사실 장모님은 몇년전 우울증에다가 심장병이 겹쳐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고 수술해도 몇년을 못살 수도 있다는 진단까지 했지만 다행히 급격히 호전되어 수술없이도 다시 건강을 어느정도 회복했습니다. 장모님은 그래도 주변 자연과 공기가 좋은 저희 아파트 단지로 이사와 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장모님이 건강이 좋아지신 상태이지만 큰 딸의 병수발을 하는 것이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저는 "장모님이 당신의 큰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건강상 함께 사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아마도 아내는 암환자인 큰 언니에 대한 걱정과 엄마에 대한 고민이 오버랩되어 지나갔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너무 담담하게 현실을 말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시한부를 사는 언니를 생각하는 아내와 장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는
건강이 그다지 좋지않은 장모님마저 시한부 큰 딸의 고통 속에 함께 살며 눈물짓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은 처형이나 다른 가족이 큰 처형과 함께 살고 장모님은 가끔 한번씩 병문안을 들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제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랜디 보시디가 쓴 책 '마지막 강의'를 보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어느 교수가 남은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개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좌절도 슬픔 속에서 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교수는 하루 하루를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랜디 보시디는 무엇보다 인생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꿈을 향해 나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이 시한부의 삶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하늘나라의 별먼지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운명이고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늘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6개월이든 몇십년이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 바로 곁에 있는 가족 중에 한명이 몇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갑자기 가족이 그런 일이 닥친다면 마땅한 방법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살 때 할 수 있는 일
- 오늘 우리가 살아 있음에 대해 감사하며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 손을 꼭 잡아주고 곁에 있어주며 책도 읽어준다
-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희망을 심어준다
- 세상에는 기적도 있듯이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준다
- 주변을 함께 산책하거나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도와준다

다시 가족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현재 건강이 좋지않은 장모님은 당신의 딸을 위해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고자 하시고 저는 장모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의 큰 딸의 곁에서 지켜드리고 싶으신 마음일 것입니다.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장모님마저 건강이 악화될까 두렵습니다. 큰 언니를 걱정하는 아내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줄 수 있을지 어려운 숙제입니다. 지금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곧 시한부 인생은 아닐까요? 우리의 삶에 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저와 아내의 입장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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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술 취해 인사불성인 놈팽이를 사귄다는 것을 처음 본 부모의 마음이 오죽 하겠습니까. 애지중지 키운 당신의 딸이 놈팽이와 결혼한다면 모든 부모가 반대할 것이 뻔한 일입니다. 여자의 엄마는 장래 딸의 남편이 될 수도 있는 남자의 첫 장면에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당신의 딸이 만취한 남자를 부축해 여관 골목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참고 : 전편 글]  술취한 남친 부축해 여관행, 엄마에 발각
(처음 보는 분은 전 편 글을 먼저 읽어보시면 빨리 이해가 됩니다.)

대로변 큰 길가의 약국집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목격한 당신의 딸과 남자친구의 모습을 목격한 이후 여자의 엄마는 딸을 냉랭하게 대했습니다. 그 날 이후 냉전이 계속 됐습니다. 여자는 엄마를 설득할 수도 없었습니다. 엄마의 충격이 너무 커서 어떤 이야기도 듣지 않았습니다.

딸의 엄마는 대로변 약국집에 있다가 우연히 딸과 남자 친구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엄마는 약국집 주인과 절친했습니다. 그런데 두 남녀가 술취해 지나가는 모습을 엄마는 약국집 주인과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약국집 주인도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설마 당신의 딸 만은 그럴 줄 몰랐던 어머니의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이 가족같이 지내던 약국집 주인과 그 모습을 봤으니 창피할 지경이었습니다.

사실 엄마가 생각하는 딸에 대한 생각은 컸습니다. 여자의 엄마는 몇해 전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홀로 자녀들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반듯하게 아이들을 키워서 결혼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홀로 된 여자의 어머니는 약국집에서 가끔씩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홀로 된 어머니를 이해해주고 서로 말동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약국집 주인 내외는 그렇게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였던 것입니다.



엄마의 반대는 완강했습니다. 그러다 여자는 약국집 앞을 지나다가 주인과 마주쳤습니다. 약국집 주인 아저씨는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S야, 오랜 만이다. 요즘 안색이 좋지 않다. 힘든 일 있니?"
"아니에요. 회사 일로 바빠서요."

"S야, 남자 친구를 좀 나에게 소개시켜주라. 우리는 가족과도 같은데 한번 보고 싶다"
"예, 아저씨. 생각해 볼게요."

그 후 여자는 남자 친구에게 약국집 아저씨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자 친구는 흔쾌히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결국 남자 친구를 약국집 주인 아저씨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S의 남자친구를 꼭 보고 싶었는데 반갑네요."
"진작에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송구스럽습니다."

약국집 주인 아저씨와 여자의 남자 친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금새 친해졌습니다. 성실하고 듬직해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약국집 아저씨도 애주가였습니다. 몇 마디 이야기를 해보니 남자가 평소에는 술취해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약국집 아저씨는 애주가로서 한번의 실수를 충분히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 날 이후 약국집 아저씨는 여자의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남자가 보는 남자에 대하여 아버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찌보면 약국집 아저씨가 이웃 사촌으로서 아버지와 같은 역할과 같은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게 여자의 어머니도 마음을 되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번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니 여자의 엄마는 남자 친구를 만나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어머니를 처음 만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무 긴장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말도 없이 식사만 열심히 먹었습니다. 여자 어머니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처음에 술취한 놈팽이의 모습이었기에 더욱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놈팽이가 경상도 말인줄 몰랐지만 여자의 엄마는 고향이 경상도입니다.)

어른들이 밥 잘 먹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 성실해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
- 여자를 고생시키지 않을 것 같다.(깨작깨작 밥 먹는 남자는 여자가 힘들다.)
- 남자는 아내가 해준 밥을 잘 먹어야 믿음직하다.
- 사회 생활을 잘하고 어른들에게도 잘 할 것 같다.
- 마음씨 좋고 가정적일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여자의 어머니는 밥 잘 먹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여자의 엄마는 "밥 굶길 남자는 아닌 것 같더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여자의 어머니의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사실 남자는 긴장도 되고 과거가 부끄러워 밥을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점수를 딸 줄 몰랐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시 찾아온 행복의 시간들에 기뻐했습니다. 이제는 두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에게는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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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아내는 종손의 며느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종손의 며느리는 챙겨야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서 제사는 물론 경조사를 모두 챙겨야 합니다. 사실 대가족을 모두 챙기면서 생활한다는 것이 요즘 시대에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내는 부모를 무려 5명이나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제 부모가 4명이고 아내의 어머니 1명을 포함해 모두 5명이나 됩니다. 저에게는 저를 낳아준 부모와 키워준 부모가 각각 있습니다. 아내는 아버지가 나이 50이 넘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 홀로 자식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아내는 딸 넷에다 아들 하나인 집안의 셋째 딸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언제나 5명의 부모를 모셔야 하는 일에 대한 부담이 큰 편입니다. 제 친부모님은 시골 농촌에 살고 계시고 저를 키워준 부모님은 서울에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장모님은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바로 아래 층에 살고 계십니다. 저를 키워 준 부모님은 사실 큰 아버지 내외이신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제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 모시면서 함께 지냈고 거기서 공부를 했습니다.

대가족의 장손의 며느리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아내는 늘 밝은 모습입니다.

장모님은 셋째 딸인 아내와 마음이 잘 맞는 편입니다. 결혼 후에는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지금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장모님은 우울증도 심했고 심장이 좋지않아 몇년전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도 있었습니다. 장모님이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술을 하더라도 신장에 투석을 하면서 길어야 5년을 살 것이란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술도 하지않고 장모님은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십니다.

당시 저는 어차피 수술할 것이라면 수술 대신 기다려보자고 했었습니다. 다행히 장모님은 점차 회복되어 중환자실에서 퇴원해 저희 아파트에 몇일간 머물렀습니다. 제가 제안했던 일입니다. 저희 아파트에 머무르는 동안 장모님의 건강은 더욱 좋아졌습니다. 그 후 저는 장모님이 아예 저희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는 것을 권했습니다. 아내가 있는 곳에 가깝게 사신다면 더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장모님은 건강하십니다.

제가 장모님을 모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매우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와 결혼해 준 아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내는 충청도 제천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생활을 서울에서 보냈으니 서울 사람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내는 도회지 느낌이 충만한 여자였습니다. 아내는 당시 저를 만난 이후 저의 궁핍하고 불행한 삶을 알았지만 저와의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가족은 언제나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는 사랑과 희망입니다.

저는 총각 시절 저와 결혼한 여자들은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래서 불행을 제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와 사귀던 여자에게 솔직히 말했습니다.
"나는 부모가 4명이다. 그래도 나와 같이 결혼해 살 수 있겠니? 나는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당시 그 여자는 그래도 저와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아내입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나와 결혼했어? 보잘 것 없는 나에게."
"당신이 불쌍했어. 나라도 당신을 도와주고 싶었어. 그리고 날 굶겨죽이지는 않겠던데. (깔깔깔)"

그랬습니다. 아내는 청년 시절의 제가 불쌍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제가 당시에 다소 염세주의적인 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만난 이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이후 저는 불행이 아닌 행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주말농장 텃밭에서 옥수수를 따서 맛있는 별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개 희망이 없다면 염세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5명의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저의 4명의 부모님에게는 사랑스런 맏며느리입니다. 그리고 장모님에게는 사랑스런 딸이고 믿음직한 사위의 아내입니다. 아니, 장모님은 저를 장남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5명의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맏며느리가 된 이후 저희 대가족은 자주 모이곤 합니다. 아내가 늘 챙기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많아 무뚝뚝하던 가족들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모이면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그래서 장모님을 부모님과 같이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팔불출이라 생각하더라도, 저는 아내를 천사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와 가족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천사와 같은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가족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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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최근 충북 제천에 갔을 때 점심 식사를 한 송학반점이라는 중국집이 특이해 소개할까 합니다. 송학반점은 40여년전 장모님이 제천에 사실 때에도 있었다는데 역사만 60여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장모님은 원래 고향은 진주이신데 18살 꽃다운 나이에 공군 장교이시던 장인 어른과 결혼해 제천에서 사셨습니다. 장인은 이미 고인이 되셨기에, 장인 어른의 납골당이 있는 제천에 오면 장모님은 여러가지 상념이 드시나 봅니다.

우리 가족들은 물론 제천에 사시는 친지 분과 함께 송학반점을 찾았습니다. 장모님은 옛날 생각이 나셨는지 가보고 싶다고 해서 모시고 간 것입니다. 한자로 크게 쓰여진 '송학반점'이라는 간판이 붉은 색 바탕에 금색 글씨로 되어 있었습니다. 대개 붉은 색과 금색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상이라는 점에서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이 아닌가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 60여년 이상 한 곳에서 중국집을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는 대를 이어 가업으로 장사를 한다는 것인데 그 만큼 음식의 맛은 물론 인심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송학반점의 출입문 앞에는 '開門見喜(개문견희)'라는 글씨와 함께 중국풍의 왕의 모습을 한 인물이 그려진 그림이 붙어 있었습니다. 송학반점을 수호하는 부적과 같은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개문견희는 문을 열고 기쁨을 즐겨보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번째 중식은 돼지갈비라는 음식입니다. 돼지갈비를 튀겨서 마늘을 잔뜩 섞어 버무린 음식이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돼지갈비인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특이한' 중국 음식이었습니다.

다음은 탕수육인데 서울에서 먹는 것 보다는 더 진한 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물잡탕입니다. 다양한 해산물을 요리한 것인데 나름대로 특별한 맛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특히나 장모님이 모처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맛있게 드시니 모두가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소주와 함께 즐기는 중국음식이 안주로서도 별미였습니다. 가끔씩 소주 한두 잔을 하시는 장모님도 이 날 만큼은 기분이 좋으신지 몇 잔째 사위와 잔을 부딪쳤습니다. 제가 일찍 계산대로 나가서 전체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장모님께서는 눈치를 채고 나오셔서 "이러면 안돼지. 이건 내가 사야 하는 건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제가 사위로서 처음으로 장인 어른을 위해 사위가 사는 겁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라고 말씀드리자 장모님도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한편으로 장모님은 고마워하는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당신의 남편인 장인 어른을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홀로 자식들을 키워오신 장모님은 오늘 만큼은 사위가 큰 아들 마냥 사랑스럽게 느껴지셨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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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다시 주말농장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주말을 맞아 어제는 몇년전부터 경작한 주말농장을 다시 분양받으러 갔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땅을 고르려는데 예전에 처음 주말농장을 시작했을 때 팔이 부러진 채 땅에 삽질을 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지난 2007년 3월 초순경입니다. 두 딸아이와 아내와 함께 집에서 가까운 인근 산에 소풍을 다녀오는 길에 '주말농장 분양합니다'라고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마침 회사 일로 마음도 심란해 주말농장을 해볼까 생각했던 참이라 곧바로 주말농장 분양하는 곳에 찾아가 가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작업복장으로 갈아입고, 장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다시 주말농장으로 향했습니다.
두 딸들과 장난을 치며 달려가다 가로수를 못보고 부딪쳐 심하게 넘어졌습니다. 가로수에 부딪친 후 아스팔트에 팔꿈치 부근을 강하게 타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팔에 엄청난 고통이 있었지만 심한 타박상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장모님도 모시고 가는 길이고 가족들도 있어 아픈 내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말농장에 도착했습니다.


[두 딸아이가 올해 처음 주말농장을 찾아 밭을 고르기 위해 삽질을 하는 모습]


주말농장 텃밭으로 분양받은 땅에 외발 손수레를 이용해 거름을 날랐습니다. 밭에 듬뿍 거름을 골고루 뿌린 후 삽으로 밭을 갈아엎었습니다. 밭을 갈아엎기 위해서는 땅에 깊숙히 삽질을 해야 했습니다. 삽질은 상당히 허리와 팔에 무리가 가는 일이었습니다. 약 10평 정도의 땅이었지만 밭 전체를 삽질로 갈아엎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삽질을 하는 동안에도 팔에 통증이 심하게 왔지만 참고 삽질을 계속 했습니다. 얼굴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팔의 통증은 더욱 심해지고 허리도 아팠습니다. 도중에 그만 둘 수가 없어 밭 전체를 모두 갈아엎고 평평하게 다지는 일까지 결국 끝마쳤습니다.

일을 끝 마친 후, 저녁 시간이 되어 근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돼지갈비와 함께 소주 한병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쌈을 싸먹으려고 했는데 왼팔이 아예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너무 통증이 심하고 아파서 팔을 움직이는 것이 거의 불가했습니다. 장모님이 그 모습을 보시더니 걱정을 했습니다. 저는 "타박상인데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안심을 시켜드렸습니다. 한 팔로 소주 안주 삼아 돼지 갈비에 쌈까지 싸먹으며 겨우 식사를 마쳤습니다.

집에 돌아와 쇼파에 앉아있는데 엄청난 고통이 계속 되었습니다. 아내가 계속 걱정을 했지만 괜찮다고 버티다 결국은 응급실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X-레이 촬영을 해보니 의사는 팔꿈치 뼈가 골절되었다는 결과를 통보했습니다. 곧바로 기브스를 한 후 2달 이상을 고생했습니다. 장모님과 아내는 "어떻게 부러진 팔로 그 밭을 다 갈아엎고 일을 했느냐?"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주말농장에서 밭을 고른 후 파를 심는 모습과 인근에서 꽃을 심는 장면] 


예전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도 이해가 안갑니다. 이제 주말농장을 한 지도 3년째가 됩니다. 어제가 올해에는 처음으로 밭에 거름을 주고 밭을 갈아엎는 날이었습니다. 아내와 두 딸이 거들어 주었습니다. 땅을 모두 고른 후 작년에 경작한 밭에서 자라고 있던 파를 딸아이와 함께 옮겨 심었습니다. 그 동안 안하던 삽질을 조금 했다고 팔 근육이 욱신욱신 합니다.

주말농장을 올해 또 새로 시작하면서 2년 전 기억을 떠올렸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추억입니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서 뼈도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좀 더 몸조심하고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주말농장을 일구는 이야기를 계속 전해보겠습니다.

[주말농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저 마다의 모습으로 텃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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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