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27 11살때 홀로 산을 넘다 만난 여름밤 귀신불의 공포 추억 by 진리 탐구 탐진강 (45)
  2. 2009.04.02 뻥튀기 장수 "국산은 없다" 그 이유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33)


여름밤에 홀로 산속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마도 11살 때 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서울로 일찍 유학(?)을 왔고 큰집에 기거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혼자서 서울에서 시골 고향에 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 대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몇번 정도 오는 시골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장터행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시골 장터는 5일장이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이라서 5일장 장날에 맞춰 시골 마을에 가는 날을 정했습니다. 그 날도 5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다소 안도하고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터행 시외버스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보니 시외버스에는 혼자서 타고 있었습니다
.

운전기사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학생. 어디까지 가나?"
"장터요."

"그래. 그럼 여기서 내려."
"네. 여기는 장터가 아닌데요."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장터야. 어서 내려."
"얼마나 걸리나요?"

"아마 20분만 걸어가면 장터야."
"네."

어쩔 수 없이 저는 내렸습니다. 운전기사의 말을 듣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20분을 걸어가도 장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저녁노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버스에 어린 아이 한명만 타고 있자 종점까지 가지 않고 저를 내리라고 하고 버스를 되돌려 가버린 것이었습니다.)

30년전에 여름 납량특집으로 유명했던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


장터에서도 2시간을 넘게 걸어서 산을 몇개 넘어가야 시골 고향 마을이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장터에서 고향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산길을 넘어가야 하는데 이미 장터가 끝날 시기였습니다.

무조건 달렸습니다. 장터에서 고향 사람들을 못만나면 혼자서 산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장터나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장날은 끝난 상태였습니다. 고향 사람들도 장이 끝나고 이미 마을로 떠나고 없었습니다.

여름 날도 이미 저물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산길을 혼자서 넘기로 했습니다. 산길은 빨리 어두워졌습니다. 나무 막대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산길에는 뱀이나 산짐승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일종의 호신용이었습니다.

산길에 들어서자 갑자기 풀숲에서 산새가 소리를 지르며 날아갔습니다. 움찔했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조금 후 길가에서 뱀 한마리가 지나갔습니다. 더욱 무서워졌습니다. 식은 땀이 흘렸습니다.

앞만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더 어두어지기 전에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산길을 한참 걸었습니다.
드디어 첫번째 산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한숨을 돌렸습니다. 갈대가 산고개에는 많았습니다. 밤하늘에는 흐린 구름 사이로 반달이 떴습니다.

달빛을 바라보다 산중턱을 보니 무덤이 하나 보였습니다
.
무덤을 보니 무서움이 밀려왔습니다. 당시 '전설의 고향'이 여름 납량특집으로 방송되던 시절이라서 산속에서 만난 무덤의 공포는 컸습니다. 구미호가 무덤 위에 서서 저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엄청난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다시 뛰었습니다. 그런데 신발이 벗겨졌습니다. 달리던 속도로 인해 신발은 저 뒤에 있었습니다. 뒤돌아 달려가 신발을 들고 다시 뛰었습니다.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한참을 달리자 두번째 산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산고개에는 거친 바람이 불었습니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발 아래 뭔가 밟혔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죽은 토끼의 발이었습니다. 산짐승에 잡아먹힌 토끼의 발만 남았던 것입니다. 다시 계속 달렸습니다.

마침내 마을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그 마을은 할머니가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냇가의 돌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그렇게 돌다리를 모두 건넜습니다. '아, 이제는 살았구나' 생각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고생했던 생각에 마지막 산고개를 향해 뒤돌아봤습니다. 산고개에는 파란 불빛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산고개의 파란 불빛에 눈이 고정되었습니다. 파란 불빛이 산고개에서 움직였습니다. 저의 눈은 파란 불빛의 움직임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발길이 저절로 그 산고개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머리 속에서는 '산고개로 가면 안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발길은 산길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머리 속 생각과 몸이 따로 놀았습니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안되는데' 이렇게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발길은 전혀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고 산고개의 파란 불빛만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눈으로 본 '파란 불빛'은 너무나 아름다운 광채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은 '파란 불빛을 보면 안돼'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탐진강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냇가에 물을 기르러 들렸다가 손자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할머니집으로 와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파란 불빛은 무엇이었어요?"
"그건 귀신불이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예전 6.25 전쟁때 산고개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단다. 그 이후로 날씨가 흐린 밤에는 귀신불이 나타난단다." [할머니는 도깨비불(인불)을 귀신불로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준 후레시를 들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삼촌도 있었지만 차마 같이 가자고 말을 못했습니다. 할머니집에서 20분 정도 신작로를 걷고 산중턱으로 가야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집이었습니다. 고향집에 가는 동안에는 도깨비불의 잔상과 호랑이가 오버랩되어 머리 속을 어지럽혔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결국 고향집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이제서야 마음이 푸근해 졌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무서웠던 한 여름밤, 산속의 공포 추억이 그렇게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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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70~80년대 시절, 당시 아이들에게 뻥튀기는 대표적인 간식 중 하나였습니다. 시골에서 5일장에 가면 뻥튀기를 튀겨주는 아저씨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고 도시에도 서민들에게 뻥튀기는 소중한 먹거리였습니다. 거기에는 사람사는 세상의 훈훈한 인심도 있었습니다. 물질이 풍족해 지면서 뻥튀기는 점차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옛 추억으로 남아있는 뻥튀기를 아파트 단지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아파트 단지에 장터가 열렸습니다. 초저녁에도 불을 켠 채로 뻥튀기를 팔고있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간이 천막을 치고 있었는데 '행복한 뻥튀기'라는 상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격표를 보니 1봉지에 2000원, 3봉지에 5000원에 팔고 있었습니다. 옛 생각도 나서 뻥튀기 한 봉지를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천막 안에서는 주인 아저씨가 작은 기계를 통해 뻥튀기를 구워내고 있었습니다. 내부 진열대에는 10여 가지 이상의 가지 뻥튀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뻥튀기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뻥튀기를 진열한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자 혹시나 단속나온 사람은 아닌지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이라고 안심을 시키자 안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뻥튀기 장수는 이미 허가받은 장터라서 특별히 잘못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노상에서 장사를 하다보니 오래 전부터 단속반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궁금증이 생겨 뻥튀기 장수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맥주 안주로 먹을 만한 것이 어떤 건가요?"
"마카로니 종류가 괜찮을 것 같네요. 기름에 튀긴 것도 있고..."

"이것 중국산은 아니겠죠?"
"중국산은 무서워서 사용안해요."

"그럼, 국산인가요?"
"국산은 없어요. 미국이나 호주산이예요."
(국산일 것이라고 잠시 착각했던 기대가 한 순간에 허물어졌습니다.)

"국산은 없다구요? 왜 그렇죠?"

"국산은 재료가 없어요. 그래서 외산을 써요."

"가격 때문은 아닌가요?"
"그렇기도 하지만...국산은 없어요"

제가 뻥튀기 장수에게 가격 문제를 질문하자 말을 흐려서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뻥튀기를 팔아서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국산만 사용하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요즘은 맛있는 과자나 사탕이 풍족한 시절이니, 예전 처럼 아이들이 뻥튀기를 먹지도 않아 장사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 것입니다.

뻥튀기 원재료가 수입산인 이유
정보에 의하면, 뻥튀기 재료인 옥수수 콩 등 원재료가 국산이 없는 이유는 독과점으로 운영되는 유통망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대부분 원재료가 수입산이고 수입상들이 독과점으로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뻥튀기 아저씨가 국산이 없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뻥튀기 원재료의 유통구조로 인해 국산 원재료를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별적으로 국산 원재료를 구입해 사용할 경우 가격적 부담으로 인해 장사에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어 그런 선택을 하는 뻥튀기 장수는 거의 없는 셈입니다. 뻥튀기 1봉지 가격이 2000원이나 하는 이유도 원재료 가격이 오른 때문입니다. 길거리 뻥튀기는 물론 할인점 등에서 판매하는 뻥튀기도 대부분 수입산을 사용합니다.


결국 뻥튀기 아저씨가 추천하는 마카로니 뻥튀기 1봉지를 샀습니다. 집에 와서 뻥튀기를 안주로 맥주를 마셨는데 예전에 먹었던 맛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종류를 잘못 고른 것인지, 입맛이 이미 변해버린 것인지, 수입산 재료라서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 추억을 담은 뻥튀기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수입산 원재료가 아닌 국산을 사용하는 뻥튀기 장수가 시골 장터 같은 곳에는 지금도 있다고 합니다. 각자 뻥튀기 재료인 국산 쌀이나 옥수수 등을 직접 가지고 가서 뻥튀기 아저씨에게 의뢰하면 뻥튀기(튀밥)을 튀겨 주는 곳입니다.


과거 우리 전통의 서민 먹거리로 인식되던 뻥튀기도 이제는 수입산에 밀려 국산을 찾아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심지어 차례상에 올라 갈 나물도 중국산이 차지할 정도이니 너무 많은 기대인지도 모릅니다. 때론 양심있는 뻥튀기 아저씨가 국산 재료를 사용해 뻥튀기를 만들어 팔아도 사람들은 중국산으로 의심을 한답니다. 뻥튀기와 같은 먹거리는 우리나라 땅에서 나오는 재료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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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