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입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28 대학생 전방입소 거부, 연병장서 시위 그 후...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2. 2009.08.27 대학생 군사훈련 문무대의 황당 야동 사건 by 진리 탐구 탐진강 (71)


1980년대 대학가는 매일 최루탄 가스가 자욱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던 시절입니다. 당시는 공포의 군사독재 정권 시대였습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 그들은 엄청난 갈등을 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배웠던 사실들이 엄청나게 달랐던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알면서 부조리와 불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정의감이 불타오르던 시기였습니다.


대학가 시위에는 무차별 최루탄 난사와 백골단의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전투경찰과 달리 백골단은 하얀 헬맷을 쓰고 몽둥이를 들고 가장 앞으로 뛰어나와 공격을 했기에 백골단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최루탄이아 백골단 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만일 잡혀가면 엄청난 구타와 폭력이  행해졌던 시절임을 생각하며 겁없던 젊은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대학생들은 당시 1학년 때 문무대에 입소해 군사훈련을 받았고, 2학년 때는 최전방 부대에서 전방 입소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군사독재 시절의 군사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1986년에는 서울대 학생이던 김세진 이재호 열사가 민주주의 쟁취 및 전방입소 거부를 외치며 분신 자살을 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당시 폭압적 정권은 회유와 협박을 통해 대학생들의 전방입소를 강제화했습니다. 거부하면 강제로 입대를 시켰고 교련과목 학점이 주어지지 않았고 군복무 단축 혜택도 없었습니다. 

전경들이 대학생들에게 최루탄을 쏘고 있고 뒤에는 하얀 헬맷을 쓴 백골단이 서 있다.

그 다음 해인 1987년은 역사적인 민주화 항쟁이 전국 대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이 대거 참여해 일어난 해입니다. 그런데 그 해에도 대학생들의 전방입소 거부 움직임은 계속 벌어졌습니다. 입소가 몇일간 지연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방 입소를 하면서도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고 반독재 구호가 난무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도 교내 운동장에서부터 반독재 구호와 함께 시작된 시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들은 태운 버스가 최전방 군부대의 연방장에 멈췄습니다. 완전 무장 군인들이 연병장에 내린 대학생들을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사단장이 대학생들이 나와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연병장에서도 연좌농성을 하면서 반독재 구호를 외쳤고 민중 가요를 다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군사독재라는 이유로 사단장과의 악수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두려움을 모르는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군대에서 그것은 순진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내 군인들과 조교들의 폭력과 얼차려가 시작됐습니다. 군대에서 반항은 가차없는 폭력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유와 진리를 추구한다는 상아탑은 아니었던 시절이었고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고분고분해질 수 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기선을 제압한 조교가 크게 외쳤습니다.
"여기가 어딘 줄 아나?"
"...(침묵)..."

"여긴 그 악명높은 삼청교육대다. 어디에도 도망갈 곳이 없다. 도망가면 사살이다."
"...(허걱)..."

대학생들은 놀랐습니다. 삼청교육대라면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무력으로 장악한 후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시민들을 불법 군대 입소시켜 무자비한 폭력과 훈련을 시켰던 곳입니다. 인권은 전혀 없던 곳이었습니다. 가장 악명높은 강원도 최전방의 삼청교육대가 바로 거기 였습니다. 가장 험준한 산악지대인 강원도 양구의 백두산부대였습니다. 기가 눌린 대학생들은 온통 까마득한 산으로 둘러싸인 연병장에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삼청교육대 시절의 훈련방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훈련이었습니다. 

인권이 말살된 시절의 삼청교육대 훈련은 무자비했다

실제 소위 휴전선 철책에서 야간 근무도 이루어졌고, 비무장지대 내 최전방 GP에도 들어가야 했습니다. 4월의 강원도 산악은 너무 추었습니다. 실제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군사적 대결의 분위기에서 대학생들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난생 처음 최전방에서 훈련받는 대학생들은 가족들과 친구들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나이의 군인들과 대학생들이 같은 내무반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해야하는 암울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로서 공감대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산 속에서 자유를 잃었지만 결국은 다가 올 희망과 미래였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런 전방입소 훈련이 끝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지긋지긋한 강원도 양구의 전방입소가 끝나고 친구들에게 한마디했습니다. "강원도 양구를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내 5월이 오고 6월이 다가왔습니다. 5월은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달이라 대학가는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해 6월은 전국에서 들불처럼 민주화항쟁이 일어났습니다. 대학생들을 필두로 시민들이 대거 동참했습니다. 군대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장기 군사정권을 획책했던 독재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전방입소 군사훈련이 결국 대학생들에게 아무런 특효약이 되지 않았던 셈입니다.

그 다음 해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이제 군대도 많이 좋아졌겠지 하는 기대도 했습니다. 처음 입대해 준비하는 곳은 춘천 102보충대였습니다. 하필이면 강원도 춘천이란 말인가. 그 후 실제 훈련을 받는 부대가 배치됐는데 강원도 양구 백두산부대였습니다. 이런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춘천 소양호를 건너 배를 타고 더블백을 물고 산을 넘어 백두산부대에 도착했습니다. 조교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얼차려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전 해 대학생 전방입소에서 받았던 그 연병장이었습니다. 이미 기선을 제압한 조교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OO대학 출신 손 들어! 어서!"

저는 손을 들었습니다. 다른 몇 명도 손을 들었습니다. 다시 조교의 비장한 한 마디가 들렸습니다.
"너희들은 죽었다고 복창한다. 작년 여기 연병장에서 기억나는가? 앞으로 튀어 나와!" 

삼청교육대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군부대 내에 설치한 기관으로 대상자들을 검거하기 위한 군경 합동작전의 명칭이 '삼청작전'이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국보위는 1981년 1월까지 4차에 걸쳐 6만 755명을 불법으로 강제 체포했습니다. 피검거자들은 보안사령부를 비롯한 심사위원회에서 A B C D 4등급으로 분류되어 A급 3,252명은 군법회의 회부되었고, B급과 C급 3만 9,786명은 각각 4주교육 후 6개월간 노역과 2주의 교육 후 풀려나야 했습니다.

정통성이 없던 군사정권이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했지만 삼청교육 입소자들 가운데는 반체제 인사를 비롯해 억울하게 검거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의 4주간 교육은 군부대 연병장 둘레에 헌병을 배치하고 엄중한 총기 무장 감시 속에서 무차별 구타와 폭력이 자행되면서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도, 당시 삼청교육대에 끌려 가 5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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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대학시절에 군대 입소 군사훈련 문무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대학생들도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에는 문무대 입소, 2학년엔 군방 입소 훈련이 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교련이란 군사훈련 과목이 있어 1~2학년은 의무적으로 학점을 이수해야 했습니다. 대학에서도 냉전 군사정권 체제의 잔재가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남자들은 고등학교 3년과 대학 2년, 즉 5년을 군사훈련을 받았고 그 후 군대 3년을 보내야 했으니 무려 8년 동안 학창생활을 군사훈련을 받은 셈입니다.


그 당시 교련 군사 훈련 때는 교련복을 별도로 입었습니다. 1980년대는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대학가 시위가 거의 매일 벌어졌는데 교련복은 오히려 시위 때 자주 입던 복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은 군사훈련을 통해 대학생들을 세뇌 또는 의식화시키려 했지만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생들의 불만과 반발만 일으켰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병영집체훈련인 문무대에 입소를 했습니다. 대학생들을 군대에 1주일 정도 강제로 입소시켜 군사훈련을 받게하는 것입니다. 교련복을 입고 군대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 때 여학생들은 입소하는 남학생들에게 초콜릿이나 사탕 그리고 담배를 선물로 준비해 전달해주곤 했습니다.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여학생들의 배려일 것입니다.

문무대에 입소할 때 선배들이 나와서 격려해 주기도 했습니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당시 대학생들이 시위 때 부르던 늙은 군인의 노래, 농민가 등을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가다시피 했던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대학에 갓 입학한지 얼마 안된 1학년들은 5월경 단체로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으니 그 시절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이 갈 것입니다.


교련복을 입고 문무대에 입소하는 80년대 대학생들 장면 [자료 사진]

문무대에 입소하면 군복으로 갈아입고 소위 '얼차려'부터 시작됩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옆으로 굴러.' '귀잡고 연병장 뺑뺑이 돌기' 등등. 그야말로 군대식 훈련방식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게다가 1주일 정도를 압축해 유격훈련을 비롯한 총검술, 화생방 등 각종 군사 훈련을 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새없이 굴립니다. 자유가 없는 군대에서는 나약해지는 인간 군상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무대에서도 부당한 얼차려에 항의해 용감하게 시위를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가혹한 군대의 복수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대학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정의감이 충만했던 시기였습니다.

문무대 훈련이 끝나면 10시에 취침을 하게 됩니다. 보통 취침 전에 인원 점검과 보고를 하게 되고 이후 명상의 시간을 TV를 통해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취침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루종일 군사훈련으로 지치고 힘든 학생들에게 가족과 나라를 생각하게 하는 TV 영상물을 틀어주고 사상 교육을 시키는 형식입니다. 실상은 반공교육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이미 잘못된 군사정권의 실상을 이미 알고있던 터라 반공교육이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문무대의 훈련이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황당한 사건이 생각납니다. 5월의 퇴약볕 밑에서 힘겨운 훈련을 끝내고 취침에 들기 직전이었습니다. TV를 통해 명상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모두가 군대 침상에 누워 TV에서 흘러나오는 명상의 시간 영상물을 보고 있었습니다. 눈만 말똥말똥 뜨고 TV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쳤구나 생각하며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명상의 시간이 끝나고 방송이 꺼져야 하는데 TV에서는 이상한 화면이 흘러나왔습니다. 발가벗은 남녀가 신음소리를 내며 열심히 그 짓을 하는 포르노였습니다.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하던 학생들은 놀란 눈으로 TV에서 나오는 야동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습니다. 모두가 말도 못하고 TV를 향해 눈만 크게 뜨고 바라봤습니다. 어떤 학생이 조용한 목소리로 "야, 저거 포르노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서야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근엄한 군사훈련 중에 벌어진 야동 방송에 놀라면서 한편 웃겼던 것입니다.
 
내부반 TV에서 야동이 나오자 당직 장교는 다급하게 TV를 끄라고 외쳤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잠시 1~2분여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때 당직 장교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각 내무반 침소의 문을 열고 황급히 들어와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야, TV 꺼"라고 크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뭔가 사고가 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내 TV에서 흘러나오던 야동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부반에 누워있던 학생들은 황당한 일에 모두 웃음만 터트릴 뿐이었습니다. 조금 후 다시 당직 장교가 각 내무반을 돌며 "야, 불 꺼. 빨리 취침해."라고 돌아다녔습니다.

그 다음 날 이후 몇 명의 군인과 장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군대의 교도소인 영창을 간 듯 합니다. 당시 방송실에서 군인들이 명상의 시간이 끝나면 야동을 자기들끼리 보려고 준비했다가 잘못해 모든 내무반에 방송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나 봅니다. 사실 당시 군인들도 대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한 청춘이었으니 야동에 관심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비록 그 군인들은 영창에 있겠지만 문무대에 입소했던 우리 대학생들은 씁쓸하지만 잠시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문무대 병영집체 훈련이란?
문무대는 지난 1970년대부터 1989년(?)까지 실시됐던 대학생들 대상 병영집체훈련입니다. 대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교련이란 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그 중에서 1학년 때는 문무대에 약 1주일간 입소해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대학생들의 반발을 막기위해 학점에 포함됐고 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곧바로 군대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근책으로 군대 입대시 문무대 입소하면 45일, 대학 2학년 때 전방입소까지 이수하면 90일이나 빠른 전역 혜택을 주었습니다. 일반 고등학교 졸업생 보다 무려 3개월이나 빠른 복무기간 단축의 전역 혜택이 주어진 것입니다. 당시 30개월 군복무기간이었으니 대학생들은 27개월을 군대에 복무하게 된 셈입니다. 그러나 평등권의 위반을 비롯 문제점이 많고 대학생들이 군사독재 정권 유지책이라며 문무대 및 전방입소 거부가 집단적으로 일어나면서 폐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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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