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03.20 리비아 공습 vs 이라크 침공, 카다피 최후일까? 그 교훈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6)
  2. 2009.04.18 20년전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찾고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9)
  3. 2009.02.25 군대 고참의 전문과 군발이 10대 강적 by 진리 탐구 탐진강 (15)
  4. 2009.01.22 오바마는 왜 소통의 IT 대통령을 꿈꾸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5. 2009.01.18 북한 땅굴과 남북전쟁 위기감에 대한 단상 by 진리 탐구 탐진강 (2)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8년만에 서방세계가 아랍세계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 5개국 연합군이 리비아 카다피 군사력에 대한 대대적 공습을 실시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3월 20일 오늘은 2003년 미국이 앞장 선 이라크 침공일과 날짜가 같습니다.

사실 저는 카다피 국가원수가 독재자로 전락해 최후의 결사항전을 선언한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과거 1980년대 초중반 당시,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카다피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한 우리나라 노동자가 '한국인'이라는 잡지에 쓴 내용이었지요. 한국인 노동자는 야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카다피 국가원수가 한 밤 중에 깜짝 방문해 즐겁게 야식을 했던 장면에 감격해 경험담을 썼었지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은 리비아와 국교 관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리비아는 북한과 국교 관계를 맺고 정치적으로 유대가 강했던 시절이지요. 그렇지만 카다피는 정치와 경제 분리 원칙을 내세워 한국의 건설회사가 대수로 공사에 참여하게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동아건설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는 향후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오를 만큼의 대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비아 국토는 사하라 사막이 대부분일 정도로 척박합니다. 카다피는 1969년 27세 나이의 대위 시절에 무혈혁명으로 당시 부패한 이드리스 왕정국가를 무너뜨리고 국가원수가 됐습니다. 그 후 사막을 옥토화시켜야 리비아 국민들이 향후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수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리비아의 석유자원이 고갈되면 후손들이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해 사막을 농업이 가능한 옥토로 바꾸겠다는 수십년 구상이었지요.

독재 왕정을 무혈쿠데타로 장악한 카다피의 야망과 녹색혁명 대수로 공사

사막의 옥토화는 리비아의 미래였습니다. 그래서 카다피는 국기도 녹색 단색 하나로만 했습니다. 그가 쓴 책 '그린북(Green Book)'은 제3의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는 사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나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전두환 독재국가 시절이라도 카다피의 그린북은 금지 서적이었지요. 젊은 카다피는 중동 이슬람 아랍세계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반미 제국주의를 내세우며 이슬람 아랍세계의 단결을 외치며 외세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지요.

            카다피는 왕정국가를 쿠데타로 장악한 후 사막의 녹색옥토화를 위해 대수로공사를 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의 진리가 있습니다. 카다피는 42년 장기 독재정권의 독재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김제규의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카다피와 다를 바 없겠지요. 박정희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유신독재를 비롯해 부마 민주화 항쟁 등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독재자 길로 접어들었지요.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로 포장된 그 이면에는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하고 노동자를 억압한 독재자의 마각이 숨어 있지요. 그 후 전두환 군사독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카다피 독재자의 모습 뒤에는 박정희 군사독재나 김일정-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세습 독재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지나갑니다. 독재자들은 처음에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권력과 탐욕에 빠져 독재자인지 모릅니다. 절대 권력이 부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친미 독재자이듯이 카다피는 반미 독재자일 뿐입니다.

군사 독재자들의 최후와 닮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몰락 교훈

그래서 저는 카다피의 독재자 최후 말로가 안타깝기도 한 것입니다. 적어도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카다피에 대한 모습과 지금의 독재자는 달랐으니까요. 모든 독재자가 결국은 스스로 권력에 탐닉해 몰락해 갑니다. 처음부터 나쁜 리더가 아니었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겠지요. 특히 군사독재정권은 비극의 역사를 잉태하기 마련입니다. 총칼로 지배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마조네스 여성 경호원들과 카다피는 독재자의 몰락을 상징한다

군사독재가 아니더라도 경찰독재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이 주권을 갖고 스스로 권력을 선택하는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이 필요한 이유겠지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자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독재자의 향수에 젖어 사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권력의 콩고물을 받았거나 한 줌도 안되는 기득권을 갖고 사는 부류의 인간군상들이 있는 셈이지요. 권력과 재력의 힘으로 서민 국민들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나라는 권위주의 국가일 뿐입니다.

리비아 공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서론이 길었습니다. 서양세계는 또 다시 아랍세계에 대한 침략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독재자에게 핍박받고 죽어가는 리비아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목적을 설명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리비아 공습의 명분 이면에는 석유자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큽니다. 리비아 민주화 운동과 내전 사태로 세계 석유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서양세계는 이라크 침공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고 크게 작용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리비아 공습은 스스로 지키지 못한 민주주의 교훈

그래서 카다피 국가원수는 연합군의 폭격이 시작된 후 국영 TV를 통해 "리비아의 독립과 단결,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카다피는 서방세계의 군사행동을 "식민주의 십자군 적"으로 규정하면서 "(서방의) 침략적이고 미친 행동으로 지중해에 있는 각 나라의 이해가 위험에 직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불행히도 지중해 지역의 해상과 영공에서 군인, 일반 시민 가릴 것 없이 실제 위험에 노출돼,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이 전쟁터가 되고 있다"고 이슬람 세계의 단결을 내세웠습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후 친미국가를 세웠지만 국민들은 더욱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카다피의 주장은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이슬람과 아랍세계가 서양 기독교 국가들의 전쟁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명분이겠지요. 그 와중에 러시아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리비아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군사행동 결정은 유감"이라고 밝히며 리비아 공습을 반대했습니다. 독일과 아프리카연합도 군사개입 반대입장입니다. 베네수엘라 등 일부 남미국가들도 서양의 리비아 침공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리비아 사태는 이제 친미 국가들과 반미 국가들의 대결 양상입니다.

국제 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습니다. 국가의 이익과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는 것이 국제 외교의 현실입니다. 카다피의 최후가 점차 다가오는 듯 합니다. 카다피가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리비아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는 의문입니다. 서양의 의해 이라크가 독재자 후세인을 몰아내고 친미국가를 세웠지만 이라크 국민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채 외세 통치 속에 사는 나라는 결국 국민들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카다피 최후가 끝은 아닌 셈입니다.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독재자는 결국 몰락한다는 교훈을 낳겠지요. 그렇지만 독재자도 서양의 이익에 따라 지원해주기도 하다가 쓸모없어지면 가차없이 냉정하게 버리는 것이 국제 정치경제 질서입니다. 독재자 카다피의 교훈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입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 경험을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조국과 민족이 외세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에도 끄덕없는 나라를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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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발생해 몇일간 계속 번졌습니다. 북한측에서 화공작전으로 산불을 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사실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일어나면, 맞불을 놔서 꺼지게 하거나 그냥 비가 와서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이번 산불도 다행히 최근에 비가 와서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비무장지대라는 특수한 환경이 존재합니다. 제가 군대 시절에 비무장지대에 근무했기 때문에 실제로 남북분단의 현실을 누구보다 피부로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은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과 북의 병사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을 했지만 어느정도 상황을 묘사한 측면도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는 군인이라도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특별하게 출입증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전협정상 군인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무장출입증도 까다로운 심사절차에 의해 승인된 극히 일부의 특수 군인에게만 발급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발급된 사람은 여러가지로 선택되고 검증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군대시절 생각이 나서 지난 20년전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찾아봤습니다. 예전 군생활회상록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는 민정경찰대, 수색중대, 전초대, 수색정찰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습니다.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출입증 앞면과 뒷면 모습]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상용 출입증'이란 명칭과 함께 '이 출입증은 민간행정 및 구제사업 제관서에 소속된 사람의 사용에 한함'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 출입증 소지자는 비무장지대 남경계선의 통과 및 비무장지대 남반부에서의 이용에 대한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 비무장지대 북쪽 부분을 출입하는데는 유효하지 않다.'고 부연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뒷면에는 영어로 똑같은 내용이 씌여 있었습니다. 이미 20여년이 지난 아주 오래 전 과거이지만 젊은 시절에 목숨을 걸고 비무장지대를 누비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습니다. 


아쉬운 것은 남한의 경우 '군인'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을 위한 인원으로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유엔군사령부, 흔히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합니다. 바로 이같은 허가를 받은 군인을 '민정경찰(DMZ Police)'이라고 표현합니다. 북한은 '민경대'라고 합니다.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정전협정에 기인합니다.

지난 1953년 7월 27일, 미국
과 북한, 중국이 정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6.25 전쟁이 끝나고 남과 북 사이에는 휴전선인 군사분계선(MDL)이 생겼습니다. 당시 남한은 배제된 상태에서 정전협정문에 서명이 된 것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으로 2Km, 북으로 2Km 각각 사이의 땅이 바로 비무장지대입니다. 말 그대로 하면 군사적인 무장을 하면 안되는 지역인 셈입니다. 그리고 남북한은 비무장지대가 끝나는 지점에 철책을 만들어 대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① 어떤 군인이나 민간인도 비무장지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북 각 지역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가 있어야 하며(정전협정 제1조 제8항), ②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얻은 인원이 아니면 비무장지대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다(정전협정 제1조 제9항). 또한 ③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정전협정 제10항).

궁금증이 생겨서 북한의 비무장지대 출입증은 어떻게 생겼는지 검색을 해보니 하나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정전협정에 따른 문구는 없고 비무장지대 출입증의 소지자 신분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소비자는 북한의 민경대 소속 군인일 것입니다. 영화 JSA에서 남북한 병사는 아마도 이러한 신분증을 각각 소지하고 있었을 듯 합니다. 


     [좌측이 북한의 비무장지대 출입증 모습]

우리나라가 남북분단 국가라는 상징적인 장소가 비무장지대라면 비무장지대 출입증은 젊은 군인들이 온몸으로 분단의 현실을 느끼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는 미확인 지뢰지대들이 도처에 위험이 산재해 있습니다.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선을 넘나드는 곳입니다. 뉴스에서도 여러번 보도된 GP에서 총기사건이 바로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군대 시절에는 어떻게 무시무시한  공포의 비무장지대에서 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오싹하기만 합니다.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민족의 아픔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 같아 상념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을 잠시 중단한 개념인 휴전에 의한 정전협정이 아니라 진정으로 남과 북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종전으로 바꿔 평화협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습니다. 언제까지 동족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서로 같은 민족으로서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도 큰 진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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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의 김태우가 제대를 했다는 소식인데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군기가 센 수색대에서 복무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고참 시절의 god는 신과같은 존재였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군대 이야기 중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고참 이야기가 있는 듯 합니다. 약 20년전 군대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군생활 회상록에 적었던 고참에 대한 글인데 아마도 그 시절을 추억하거나 현재 군대 복무하더라도 온도차는 있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od 김태우 군대 시절 : 육군 웹진] 

군대를 모르시는 여성분들이나 시니컬하게 생각하는 남성분들에게는 다소 유치하거나 거북한 글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왜 그렇게 생활하고 추억하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하면서 가볍게 재미로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우선 글을 읽는데 주의사항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를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읽을 가치가 없을 수도 있으니 심각하게 고참이나 군대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이 글을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군발이와 같이 다소 비하적 표현은 당시 용어를 그대로 옮긴 것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쓰인 용어나 단어는 가감없는 당시 표현이라는 점을 밝힙니다.(요즘은 어떤 표현을 쓰는지 모릅니다.)

먼저 고참의 전문입니다. 부대마다 명칭은 다릅니다. 고참수칙이라든지 고참예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참의 전문

[정의] 고참 앞에서는 복종순종하는 군인이 된다.

[전문] 고참은 항상 자기 밑이나 친구가 아니다.
하나. 고참은 성모마리아의 기둥서방이다.
하나.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다.
하나. 고참은 을지문덕 보다 군번이 1번 빠르고 강감찬과 더블백 동기이다.
하나. 고참이 버린 담배꽁초는 길이길이 3년동안 모아 물려준다.
하나. 고참의 말은 진리이고 생명이다.

고로, 고참이 되려면 짬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
[출처 : 블로그]

*짬밥 : 군대에서 단체로 먹는 밥인데 쪄서 만든 밥입니다. 일반적으로 솥 밑 바닥에 불을 지펴서 바로 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루떡 찌듯이 밥을 쪄낸 것을 짬밥(또는 찜밥)이라고 합니다. 이 밥을 먹고 세월이 흘러 어느정도의 연륜을 쌓았나 하는 군대 고참의 기준으로 짬밥을 얼마나 먹었나 하기도 합니다.

이등병 때는 언제 일병을 달고 상병이 되고 끝내 병장의 반열에 들어 제대할까 늘 고민했는지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규율이 느슨하면 전쟁에서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군대 조직의 특성상 고참의 위치가 중요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개성 보다는 전체 구성원의 일사분란한 팀워크가 제일 중요한 군대 조직의 특성인 것입니다.  

고참의 전문은 업그레이드(?)된 버전도 있나 봅니다. 인터넷에서 소개된 글입니다. 내용이 유치하기는 합니다.

고참,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고, 정신이 멍멍해지는 말이다.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생이며, 석가모니와 같이 도를 닦으셨고, 달마대사와 같이 쿵후를 배우고 연구하셨으며, 칸트와 같이 철학을 논하셨으며, 성모 마리아와 엘리자베스의 기둥서방이시다.

고참은 모래알로 짬밥을 만드시고, 눈덩이로 우유를 만드시고, 고참은 동쪽하늘에 떠 오르는 커다란 태양과도 같으시며 쫄병은 그 주위를 하릴없이 맴도는 조그마한 위성이다. 

고참은 베에토벤에게 음악을, 펠레에게 축구를, 칼루이스에게 육상을, 피카소에겐 미술을, 히틀러에겐 독재를 그리고, 나에게는 노가리를 손수 가르치셨다. 고참이 던진 돌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뛰어가서 맞아야하고, 고참이 하는 모든 나쁜 말들은 일일이 메모를 해야한다.

(중간 생략)

또한 고참의 매력은 모나리자 마음을 자극했고, 클레오 파트라의 밤잠을 설치게 했으며, 양귀비에겐 상사병을 앓게 했다.


그리고 20년전에 군대에서 유행하던 군발이 10대 강적입니다. 지금은 군대에서 이같은 일이 거의 없을 듯 합니다만 과거에는 군인들을 괴롭히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의미로 보면 군대가 나태해지만 안되고 늘상 군기가 살아있어야 유사시 강한 군인정신을 발휘하기 때문도 있다고 위안을 해봅니다.(사실 비인간적인 처사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군발이 10대 강적

겨울에는 빵빠레
여름에는 완전군장
먹을만하면 식사끝
졸기만하면 선착순
휴가갈만 하면 비상
공부할만 하면 작업
면회만 오면 외출외박 금지
편지 쓸만 하면 소등
쉴만 하면 휴식 끝
잠들 만 하면 기상

[참고] 빵빠레
일반 사람들에게 ‘빵빠레’라는 아이스크림능 연상하겠지만, 군대에서 ‘빵빠레’는 악몽입니다. 곤한 잠을 자다가 갑작스런 ‘집합’(빵빠레) 소리에 단잠 깨고, 연병장(군대 운동장)을 돌면서 온갖 기합이란 기합은 다 받는 얼차려 종류입니다. 특히 겨울 밤에 '팬티만 입고 군화신고 연병장에 집합'하면 그 날은 끝장입니다. 한편 빵빠레에서 파생되는 얼차려가 여름에는 ‘모기 시식'입니다. 한 여름 팬티바람으로 연병장에 서있다보면 일반 모기보다 전투력이 훨씬 강한 군대 모기들이 달려들어 피를 빨아먹는데, 차려 자세로 가만히 서 있어야 하니, 그날은 그냥 모기들의 잔칫날입니다.

[출처 : 다음 카페]

과거 군대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여름에 입대했던 군번이다보니 모기회식이나 빵빠레와 같은 얼차려를 많이 당하기도 했습니다. 군대라는 조직이 '사느냐 죽느냐'라는 극한 전쟁 상황을 가정하여 훈련을 하는 곳인 만큼 개인들 선택의 폭이 거의 없는 점도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한 군대 특성을 감안해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면 보다 너그러운 마음에서 군대와 군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군대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과거와 같은 얼차려는 많이 사라졌을 듯 합니다. 국방부에서 운영한다는 동고동락 블로그를 보면 많이 개선된 군대 문화를 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엄격한 규율과 명령체계를 기본 바탕으로 하다보니 실제 군대라는 울타리에서 체감하는 정신적 고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는 없을 듯 합니다. 김태우 병장의 제대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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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이 말했다. "예스, 위 캔(Yes, We can)".
미국인들도 말했다.  "예스, 위 캔(Yes, We can)". 오바마 열풍이다. 다시 할 수 있다는 다짐들이다.

오바마2.0은 인터넷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 강화
오바마 열풍은 오바마2.0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바마는 인터넷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이른바 `오바마 2.0'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웹 2.0의 개념을 현실정치에서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주창한 민주주의2.0과 일맥 상통한다.

대선 기간 동안 선거자금 모금과 지지자 확보를 위해 인터넷 서비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던 오바마는 당선 직후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새로운 정부에서 추진할 정책 아이디어를 올릴 수 있게 하는 등 네티즌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어느새 웹 2.0이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부상한 것이다.

백악관 홈페이지, 웹2.0 정신 반영한 쌍방향 대화 창구
오바마2.0은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www.whitehouse.gov)부터 달라졌다. 새롭게 선보인 홈페이지는 대통령과 미국 시민 사이의 소통과 참여, 투명성을 기본 원칙으로 양방향성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사이트 방문객들은 500자 이내의 짧은 이메일을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직접 보낼 수 있다.


백악관 뉴미디어국장인 매콘 필립스는 사이트 소개 글을 통해 "새 홈페이지는 온라인 참여를 확대하려는 새 정부의 노력의 시작일 뿐이다. 인터넷 참여가 미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홈페이지가 불통(不通)이었다면 오바마는 소통인 셈이다. 오바마의 홈페이지는 보다 섬세하고 세련미가 넘친다. 새 사이트에는 참여와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 웹2.0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오바마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IT 정책 총괄 CTO 신설
특히, 오바마의 IT에 대한 시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오바마는 정보기술(IT) 정책을 총괄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등 강력한 추진체계를 바탕으로 정보화를 적극 추진한다. 미국 전역에 차세대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재생에너지와 바이오연료 산업을 적극 육성해 500만개의 녹색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IT와 환경산업을 미국의 경제 재부흥을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오바마 정부는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 웹 2.0시대의 구현을 위한 '신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300억달러를 투입, 농어촌 지역 뿐 아니라 대도시 저소득층 등에 초고속인터넷 망과 설비를 보급할 계획이다. 초고속인터넷 네트워크 투자에 따라 즉각 10만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미 전역에서 서비스가 활성화하는 단계에서 추가로 200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또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정의하는 초고속 인터넷의 속도기준인 200Kbps도 대폭 상향 조정돼 미 전역에서 광대역 초고속인터넷망을 정비하는 사업이 대대적으로 펼치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IT 기업 종사자들 "오바마는 IT 대통령" 인식
미국 IT 기업 종사자 대부분은 오바마를 'IT 대통령'으로 인식하며 새 정부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시스코의 데이비드 헤스는 "오바마가 생각하는 21세기 고속도로가 바로 IT 인프라"라면서 "오바마 정부의 출범은 IT 산업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의 IT 업계는 오바마 정부가 건강보험제도(health care system)를 개선하기 위해 IT를 활용한 효율적인 정보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서버나 네트워킹 등 IT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단다.

오바마는 이미 변화하는 세상을 알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예스, 위 캔(Yes, We can)"이란 말로 오바마에게 화답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쌍방향 소통이다. 오바마는 인종과 종교, 지역을 넘어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미국을 하나로 만들고 있다. 그 핵심기반에서는 IT가 있다. 500만개 일자리 창출도 IT를 바탕으로 한다. 오바마의 리더십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와도 소통한다. 오바마2.0이라는 인터넷과 IT가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IT의 위력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오바마 서민들 세금 감면 정책과 강부자 정책의 차이
오바마는 백악관부터 임금 동결을 선언했다. 서민들에게는 세금을 낮춰주고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한다. 이라크인들이 강제 수용되어 인권유린의 상징이던 관타나모 감옥도 폐쇄한다. 대결과 전쟁이 아닌 화해와 통합의 리더십이다. 그래서 전세계인들도 오마바를 외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소통이 아닌 불통이 가득하다. IT가 아닌 삽질(?)이 난무한다. 용산 재개발 지역의 철거민들이 무참하게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통합이 아닌 분열의 리더십이다. 정통부가 사라지고 정부에 IT 수석도 없다. IT에 대한 컨트롤 타워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바마와 우리의 차이이다. 오바마는 IT 대통령을 꿈꾸지만 청와대는 건설만이 살 길이란다. 그저 쓴 웃음이 나온다. "예스, 위 캔 (Yes, We can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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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최근 국정원 관련 모 교수가 북한이 김포까지 땅굴을 파는 등 남침 전쟁이 임박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개인 차원에서 언론사에 배포해 물의를 일으킨 모양이다.

항상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 안보가 중요한 나라에 있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물증과 사실이 아닌 개인적 주장으로 지나친 위기감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위정자들이 남북 분단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나 전쟁 위험을 다소 과장해 국내 정치에 악용한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한의 전쟁 위협 자체를 너무 과소 평가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1990년 양구에서 발견된 제4땅굴의 추억
나는 군대 시절에 강원도 양구에서 발견된 제4땅굴 발견 당시 실제 수색 활동에 참여한 바 있어 북한의 전쟁 위협이 얼마나 집요한지 실감한 바 있다. 양구의 제4땅굴은 이미 안보관광시설로 활용되어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제4땅굴은 북한의 새로운 침투 방법으로 모색되어 굴설된 땅굴로 1978년 제3땅굴이 발견된지 12년만인 1990년 3월 3일에 양구 동북쪽 26㎞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군사분계선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 데일리NK 뉴스]

이제는 제4땅굴이 있는 안보 관광지이자 남북 분단의 대치 상황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양구의 해안(亥安) 마을에 한번 가보고 싶다. 해안 마을은 펀치볼(punch bowl)이라고도 불린다. 해안 마을이 위치한 분지 형태가 거대한 화채 그릇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미군이 펀치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유래이다. 만일 통일이 된다면 나의 가족과 반드시 가보고 싶은 첫번째 장소가 펀치볼과 비무장지대가 될 듯 싶다.

역사 속에서 자주적 국가 안보의 중요성 실감
과거 우리 민족이 당했던 치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주적인 국가 안보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지금 순간에도 우리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것도 24시간 365일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다. 20대 초반,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에 군대를 다녀온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있어 그 시절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지만, 현재 발견된 4개의 북한 땅굴 이외에 추가로 발견된 땅굴은 없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고랑포에서 발견됐고, 제2땅굴은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견됐으며 제3땅굴은 1978년 10월 경기도 문산에서 발견된 바 있다. 그리고 1990년 3월 강원도 양구에서 제4땅굴이 발견된 이후 북한 땅굴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1970년대에 여러개의 땅굴을 팠으나 그들이 판 땅굴이 계속 발견되자 땅굴 공사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하에서 땅굴을 파는 일은 북한군에 가장 힘든 노가다 작업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하에서 땅굴 공사 작업은 어떤 식으로든 지하에서의 공사 소리나 지하수의 변화 등에 의해 쉽게 노출될 수 있어 효율성이 무척 떨어지는 일이다.


북한 땅굴 위협은 과거 우리가 그 실체를 몰랐을 때에는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북한 땅굴은 지난 1990년 제4땅굴 발견이후 거의 20년 가깝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가공할 위협 수준은 아닌 듯 하다. 우리나라의 국방 수준이 높아져 북한이 땅굴을 굴착하면 곧바로 탐지할 수 있는 첨단 장비가 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땅굴이 가동할 경우 즉각 타격해 용도 폐기할 수 있는 첨단 무기들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정치적 위기감 조성은 경계해야
일반 국민들은 북한의 땅굴에 대해 막연히 위기감을 느끼거나 불안해 할 수 있다. 어느정도 국가 안보에 대해 긴장감을 갖는 것은 좋으나 실제와 달리 너무 과도한 위기감으로 스트레스까지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울러, 정치적으로 국민들에게 국가 안보를 빙자한 실제 이상의 불안감 조성은 정치권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국가 안보는 정치적으로 악용할 대상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역사 앞에서 가져야 할 민족적 시대적인 소명이기 때문이다.

가볍게 시작한 글이 주제가 땅굴과 안보에 대한 얘기다보니 너무 딱해진 것 같다. 정리하면, 국가 안보는 자자손손 우리 민족이 살아가야 할 존재의 의미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실제 새로 발견된 땅굴도 없이 과장된 사실과 가능성이라는 미명 하에 너무 과장해 정치적 악용이나 위기감 조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국가 안보는 외부에 요란스럽기 보다는 냉철하고 착실하게 만일의 위협에 대해 철통같은 준비가 중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제4땅굴의 관광 안내에 대한 내용을 첨부한다. 땅굴 중 유일하게 내부에 관람용 전동차를 운행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과 양구를 함께 여행한다면 하나의 선택이 될 듯 하다. 아마도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실제 전쟁의 위협에 살고있는 우리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www.gwhsed.go.kr/cyberschool/gangwondo/yanggugo/dongmul/danggul.htm

관광지명 : 제4땅굴

위 치 :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현3리

개 요

  • 제4땅굴은 1990년 3월 3일 발견되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부 관람용 전동차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 땅굴광장에는 5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과 기념비, 군장비 및 안보교육관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안보교육관에는 28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영화관과 전시관을 비롯하여 북한의 관광지를 필름에 담은 3-D입체영상기가 휴게실에 비치되어 있어 북한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됨으로서 국내안보교육장의 활용되고있다.

규 모

    높  이 : 약 1.7m  
    폭     : 약 1.7m  
    깊  이 : 지하 145m  
    총길이 : 2,052m

관람방법

    통일부 양구북한관에서 출입신청(당일 신청 출입가능)  
    매주 화요일은 관람불가

교 통

    동서울,상봉동터미널에서 양구까지 버스운행, 양구에서 해안까지 4회 운행  
    서울-춘천-양구-해안

관 람 료 : 청소비(대인 1,000원, 소인 500원)  
                ※ 단체(30인이상):30%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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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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