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땅굴'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0.01.22 북한 여군 목욕 미인계 vs 최전방 수영장, 왜 그랬을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71)
  2. 2009.04.21 산딸기 따다 지뢰밟아 죽은 전우 생각하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5)
  3. 2009.02.22 20년전 군대 위문편지 보낸 선희에게 by 진리 탐구 탐진강 (17)
  4. 2009.02.18 블로거뉴스가 20년전 전우들을 찾아주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5. 2009.02.17 군대시절 땅굴발견해 받은 참모총장상을 찾아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317)
  6. 2009.02.15 한반도의 정중앙과 정남진을 아시나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22)
  7. 2009.01.18 북한 땅굴과 남북전쟁 위기감에 대한 단상 by 진리 탐구 탐진강 (2)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에서 양측 철책선이 가장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남한의 가칠봉과 북한의 김일성 고지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양측 철책선 사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군대 회상록을 살펴보다가 추억의 사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가칠봉 초소 부근에서 찍은 것이었습니다. 그 곳 초소에서는 당시 우리 국군이 북한군을 향해 대북 선전 방송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북한도 대남 선전 방송을 하던 곳입니다.

그 곳은 남측과 북측이 직선 거리로 600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서로 너무 가까운 거리이다보니 방송을 하지 않더라도 남북한 병사들이 큰 목소리로 부르면 들리기도 했습니다. 가칠봉에는 대북 OP(관측초소)가 있어 북한군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군 지역의 산등성이에는 '오라. 북으로' '수령님 명령만 내리소서'와 같은 선전 문구들이 새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비무장지대 수색대였기에 여러 상황에서 북한군을 목격할 일이 많았습니다. 당시 OP에서 관찰한 북한군은 초소 근무를 하면서 무료한 시간에 발차기 연습을 하면서 실력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북한군이 돼지를 키우는 장면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채소나 곡식을 재배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트럭을 타고 지나가는 북한군도 자주 목격되었습니다. 거기엔 북한 보급품을 나르는 케이블카가 있었습니다.

'올림픽 영광' 초대형 간판 속 20년전 빛바랜 사진의 추억

더욱이 1980년대 후반 당시 남북한의 심리전 선전전은 최고조였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중의 압권은 남한 병사와 북한 병사가 서로 무슨 음식을 먹었느냐는 설전이었습니다.

"남한 동무들, 우리는 돼지고기 고깃국에 밥 먹었수다."
당시 북한 군인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면 남한 군인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야, 우리는 아침에 소고기 먹었다. 이리로 넘어와라."
 
        당시 가칠봉 정상에 세워진 '올림픽 영광'이란 최대형 간판에는 아리따운 여성 그림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북한 군인들의 이런 대화는 유치하기 그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웃음이 절로 나는 코미디였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해 성공적인 개최를 선전하기 위해 가칠봉에 '올림픽의 영광'이란 초대형 간판이 세워졌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한창의 청춘 나이인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 여군의 선녀폭포 목욕과 남한 가칠봉의 미스코리아 수영복

그러한 심리전의 절정은 그 이후에 있었습니다. 그 때는 1989년 제4땅굴을 발견해 역갱도 공사로 땅굴을 관
통한 1990년 직후였습니다. 아예 노골적인 미인계가 벌어진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제대를 했기에 직접 목격할 기회는 아쉽게도 놓쳤습니다. 북한 여군이 가끔 등장하는 것은 본 적이 있었지만 제대 이후 들은 이야기지만 아예 북한 여군이 알몸으로 목욕하는 광경이 등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대하던 시기에 가칠봉에 수영장을 건설한다는 이야기가 막 전해지던 시기였습니다. 남한은 해발 1242미터 가칠봉 정상 부근에 남한 경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수영장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후배 군인들이 평지도 아닌 산 정상에 수영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합니다. 

얼마나 심리전이 극에 달했는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건설한 가칠봉 수영장이 완공된 후 1992년 미스코리아 대회 수영복 심사를 가칠봉 수영장에서 했다고 합니다. 미녀 탤런트 이승연이 당시 미스코리아 미를 차지한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가칠봉 수영장의 탈의실은 3면이 투명하게 보였는데 특히 북한쪽에서는 훤히 탈의실이 보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북한 군인들이 미인계로 인해 잠못드는 밤이 되었을 듯 합니다.

반면 북한은 스탈린 고지(운봉 1358m)과 모택동 고지(매봉 1290m) 사이에 있던 선녀폭포에서 북한 여군들이 알몸으로 자주 목욕하는 모습의 미인계를 보여주곤 했다고 합니다.  선녀폭포라는 이름도 북한 여군들이 폭포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이 마치 '선녀와 나뭇꾼'의 전래 동화와 유사한데 빗대 북한 여군이 남한 군인들을 유혹한데서 붙여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과 같은 고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결사항전을 위해 그런 것이며 '철의 능선'도 치열했던 고지 쟁탈전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세계 전쟁사에 남을 미인계 심리전은 웃지못할 남북한의 비애
        가칠봉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크게소리 지르면 남북한 병사가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

또한 가칠봉 수영장의 유래를 살펴보니 제4땅굴 탐지를 위한 시추작업을 벌이다 수맥이 발견되자 지하수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장병들이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위로 시설과 북한에 대한 심리전을 노린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고지대라서 차가운 장소 특성상 오히려 수영하러 가는 것이 군기교육대라는 말도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남한과 북한 군인들이 펼친 미인계 심리전은 아마도 세계 전쟁사에 남을 웃지못할 전설이 될 듯 합니다. 이제는 빛바랜 사진 속 장면이지만 가칠봉 고지에 세워진 '올림픽 영광' 대형 간판 앞에서 전우들과의 추억의 모습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혈기왕성했던 젊은 날의 초상은 여전히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남북의 현실에 암담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때는 비포장 작전도로에 폭설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여간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허리 춤까지 차오른 눈폭탄으로 보급품이 끊겨 비상식량으로 연명하다가 부식추진조를 편성해 매일 군장을 메고 수십 km 산등성이를 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도 가칠봉과 김일성 고지에는 남과 북의 군인들이 과거의 역사를 간직하고 여전히 대치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한민족 동포 형제가 하나된 조국에서 민족의 미래와 희망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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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일요일 오후에 주말농장에 가서 고추와 호박을 비롯한 채소 모종을 심었습니다. 삽질로 땅을 파서 하나씩 소중하게 심는 작업이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준비한 모종을 모두 심고 옆을 보니 딸기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이웃 주말농장 분양받으신 분이 심어놓은 딸기 모종인데 예쁘게 꽃이 핀 것입니다.

딸기꽃을 보니, 군대 시절의 가슴 아픈 일이 생각났습니다. 중동부 전선의 봄은 서울보다 한참 늦게 다가옵니다. 지난 20년전의 봄이었습니다. 제 4땅굴의 징후를 발견하고 비상 경계 근무와 훈련이 반복되던 시기였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면 저녁까지 만일에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비한 특수 훈련과 비상 근무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덧 철책선에도 꽃이 활짝 피고 싱그러운 신록이 그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땅굴 탐지 소대였습니다. 제 4땅굴의 징후를 발견해 이미 북한이 굴착한 지하의 땅굴을 시추공(지상에서 지하로 뚫는 수직 굴착법)을 통해 발견한 직후였습니다.

작은 산골 마을에 오순도순 살고있던 평화로운 땅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작은 소대가 생활하던 땅에는 육군본부 시추대를 비롯한 공병대 미군부대 등 수많은 군인들이 집결했습니다. 아마도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발령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매일 우리는 북한군이 감행할 수 있는 모든 공격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훈련을 하고 경계 근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봄 날에 중대장이 저에게 특별 휴가를 다녀오라고 명했습니다. 우리 소대는 개인 휴가는 없고 소대 전체 휴가를 다녀오는 특수한 조직인데 의아했습니다. 알고보니, 수개월전에 사단 대표로 군단 역량 측정대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예기치 않게 우수한 성적을 받아 이번에 특별 휴가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날, 제 대신에 중대 본부에서 1명이 대체 근무를 위해 작전 지역에 파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대 본부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에 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비상상황에서 혼자 휴가를 갈 수 있는 행운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다 중대본부에서 밤 10시에 취침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밤 11시경 중대장이 전원 기상을 시켰습니다.


중대장은 슬프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오늘 지뢰를 밟았다. 1명은 죽고 1명은 다리가 잘렸다. 작전 중 발생한 사고이다. 가슴아픈 일이다. 지금은 매우 위급한 비상경계 중이니 전 중대원은 동요하지 말라. 오늘을 교훈삼아 각별히 지뢰사고에 조심하기 바란다"와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중대장의 사건 소식을 듣는 동안에 망연자실했습니다. 겉으로는 지뢰사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걱정했지만 한편 속마음에서는 '아, 모처럼 맞이한 휴가를 못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대장은 "내일 휴가 가는 O상병은 예정대로 휴가 간다. 아침에 까만 봉지를 줄테니 갖고 가라."라고 말했습니다. 지뢰사고에 대한 아픔도 있지만 고대하던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게 단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중대장이 건네준 까만 봉지를 들고 발걸음도 가벼운 휴가를 떠났습니다. 중대장은 까만 봉지를 연대본부 인사계에 전달하고 휴가를 가라고 했습니다. 연대본부에 도착하니 정문 위병소 앞에는 봉고차 한대가 정차해 있었습니다. 일단의 민간인들이 위병소 앞에서 유리창을 깨면서 울분을 토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연대본부 인사계를 찾았습니다.

인사계 준위에게 까만 봉지를 전달하자, 인사계는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어제 지뢰밟아 죽은 OO의 유품이구만." "휴가 잘 다녀오게."

순간 하늘이 하얗고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하게 멍해졌습니다. 까만 봉지에는 전날 지뢰를 밟아 죽은 전우의 유품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휴가를 떠난다는 생각에 까만 봉지를 돌리며 연대본부로 향했던 것입니다. 연대본부 위병소 앞에 있던 봉고차의 사람들은 죽은 전우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젊디 젊은 아들을 잃은 부모와 가족들은 청천벽력같은 슬픔이었던 것입니다.

죽은 전우의 슬픔을 뒤에 두고 휴가를 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경계근무에 나가야 하는 곳에서 두명의 군인이 지뢰를 밟았습니다. 제 대신에 근무에 나선 중대본부의 전우와 육군본부에서 파견 온 군인이 경계근무에 나섰다가 산등성이에 있던 산딸기를 봤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산딸기를 따기 위해 산등성이에 올랐다가 지뢰를 밟은 것입니다.
 


그들이 산딸기를 따러 간 위치는 미확인 지뢰지대였습니다. 항상 미확인지뢰지대를 넘나들던 수색소대원들과 달리 그들은 처음 근무를 서다보니 미처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것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뢰를 밟은 육군본부 군인은 즉사했고 중대본부 전우는 한쪽 다리가 잘려나가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비록 지뢰사고의 구체적인 상황을 잘 모른 체로, 휴가를 다녀왔지만 휴가 기간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더구나 휴가에서 돌아온 후 당시 지뢰사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나서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산딸기는 봄철에 비무장지대나 철책 부근의 산자락에 은밀하게 유혹을 합니다. 이미 지형에 익숙한 군인들은 적절하게 대처를 하지만 처음 근무를 하는 군인들은 사전에 숙지시킨 주의사항에도 불구하고 산딸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평상이 지나다니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에서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 최전선의 지역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날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금도 딸기꽃이나 산딸기를 보게 되면 저를 대신해 죽은 듯한 전우를 생각하며 슬픔에 젖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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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군대 복무 기간 동안에 사용했던 '군생활 회상록'을 꺼내 봤습니다. 군생활 회상록은 백두산부대에서 소속 부대 배치 당시에 나누어주었던 일종의 앨범입니다. 지난 1988년에 입대했으니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군생활 회상록은 이미 색도 바랬고 글자로 벗겨지는 등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군생활 회상록을 넘기다가 초등학생의 '군군 아저씨에게'로 시작되는 위문 편지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선희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편지 내용은 남아 있는데 편지봉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희가 보낸 편지에는 자신과 함께 엄마와 남동생의 사진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약 6 장 정도되는 사진인데 어쩌면 소중한 자신의 가족사진일지도 몰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어졌습니다.

선희는 아마도 당시 대구의 어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편지 내용 중에도 성은 없고 그냥 선희라는 이름만 있었습니다. 편지 내용이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단어 구사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선희도 세월이 흘렀으니 서른살이 훨씬 넘었을 나이일 것입니다.

지금은 군인 아저씨들에게 위문 편지를 보내는 일은 없어진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초등학생들이 위문편지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제가 20년전 근무하던 곳은 강원도 최전방이라서 학생들 위문편지도 다른 후방 부대들을 거쳐 제일 마지막에 받을 수 있어 일부 초등학생들 편지만 겨우 도착했었습니다. 아예 못받는 경우도 있었으니 편지라도 하나 받으면 감개무량한 시기였습니다.
 
먼저 간단히 당시 선희의 편지 내용 일부를 인용합니다.
저는 고향이 대구이고 대구에서 자라고 있어요. 먼저 우리 반의 여러 이야기를 말씀드릴께요. 저희 반에는 말썽장이들만 모여서 지내고 있어 그런지 언제나 덤벙대고 작은 사고도 가끔씩 일어난 답니다.

저번에는 교실에서 제기로 탁구놀이를 하다가 유리창을 깨는 일이 있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장난스러운 아이들을 용서해 주시기도 하셨어요. 그리고, 아저씨가 보내주신 편지를 내 친구가 빼앗아가서 아저씨와 나의 편지내용이 다른 아이들에게 들통날 뻔 하였지만, 내가 간신히 빼앗아 내용이 들통나지 않았어요.

아저씨, 휴전선을 지키실 때 북한 공산군과 마주보기도 하시죠. 그 때의 기분이 어떠세요. 저는 아저씨가 어떤 분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그리고 더 친해지고 싶어요.


선희는 연필로 글씨를 또박또박 예쁘게 쓰는 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여학생 다운 착한 심성과 함께 문장 실력이 우수한 편이었습니다. 같은 반 남자 아이들에게 편지를 빼앗겨 간신히 되찾았다는 내용은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당시 편지 보낸 시기는 1989년 10월이었습니다.)

당시 군대시절에 저는 위문편지를 상병 때 한 번 이외에는 받지를 못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위문편지가 선희가 보낸 셈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위문편지를 보내곤 했는데 (남학생이어서 그런지) 군인에게 답장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이 어린 마음에 속상한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제가 군인일 때는 선희에게 정성껏 답장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희는 당시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엄마와 남동생 셋이서 살고 있었나 봅니다. 선희가 보낸 사진 중에 아빠는 없고 가족 셋이 찍은 사진이 있었고 산소에 남동생과 함께 앉아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선희는 아빠도 없이 자라다보니 일찍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던 듯 합니다. 가족사진을 여러장 편지와 함께 보내주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입니다.


당시에 갑자기 땅굴 수색 등 작전과 맞물려 혼란스러워지면서 어쩌다가 사진을 돌려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강원도 중동부전선에는 9월에 첫 눈이 내리고 다음해 5월까지 지긋지긋하게 눈이 내릴 정도였던 기억입니다. 그 기간동안에 제4땅굴 수색 작전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이라고 선희에게 가족 사진을 돌려주고 싶은데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군대에서는 볼 수 없는 추억이겠지만 군생활 회상록에 남겨진 '선희의 국군 아저씨 위문편지'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선희에게 가족사진이라도 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 보내지 못했지만, 선희가 보고싶어했던 당시 군인 아저씨들 사진입니다. 늦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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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군대시절 땅굴발견해 받은 참모총장상을 찾아보니 라는 글을 블로거뉴스에 포스팅했는데 메인에 떡하니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놀랍게도, 블로거뉴스가 20년만에 군대 시절의 그리운 전우들을 찾아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중에는 같은 21사단 백두산부대 출신 선후배 전우들은 물론 제4땅굴 발견과 특수 작전에 투입되었던 수색대, 공병대, 3군단, 육군본부 시추대 등 수많은 분들이 당시의 추억 속으로 달려왔습니다. 또한, 군대에 복무 중이거나 제대한 여러 예비역들이 같은 부대가 아니더라도 군대생활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군대와 관련 다양한 분들의 댓글도 눈에 띄었습니다. 존경받는 참군인이신 당시 이준 사단장님의 자제분도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어떤 여자 분은 남자 친구를 21사단 수색대에 보낸 후 걱정했지만 용감하고 훌륭한 임무를 수행하는 남친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로 생각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가장 보람있는 것은 당시의 몇몇 전우들과 다시 재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수색중대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연락처를 많이 알게 되었고 전화를 통해 안부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선후배들이 별도의 카페도 운영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전우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예전 전우들을 만나고 싶어도 연락처도 없어 별다른 도리가 없었는데, 블로거뉴스가 20년만에 전우들을 찾아주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은 도움과 영감을 주신 zinicap님, 따뜻한 카리스마님, 해피아름드리님, 머니야머니야님 등 여러 블로거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반갑다, 전우야." "고맙다, 블로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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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 큰 아버지 생신이라서 큰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큰 아버님이 앨범 몇개를 준비해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거의 20년간 바쁜 일상을 살다보니 까맣게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군대 시절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소중한 물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군대와 대학시절을 큰집에서 보냈는데 당시 앨범들을 맡겨두고 잊고 지냈던 것입니다.

청춘의 끓는 피가 용솟음치던 20대 초반, 군대 생활의 모습을 발견하니 파노라마 처럼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제4땅굴 발견 공로로 받은 육군 참모총장 표창장이었습니다. 참모총장이 별 4개인 대장인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군대 제대 후 대학에 복학과 더불어 취직 공부에 매달리고, 사회 생활에 접어들고 결혼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군대 시절의 추억은 거의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군대 생활 중 제4땅굴을 발견했던 기억은 있었으나 참모총장 표창장을 받은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무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그 당시 상장과 당시 사진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실제 땅굴 탐지 징후를 최초로 발견하고 수색을 비롯해 전과정에 기여한 장병 보다 나중에 슬쩍 숟가락 하나 더 놓은 육본 고위장교들이 주요 훈장들을 받는 것을 보고 실망했었습니다.)

표창장을 살펴보니 거기에 실린 문구가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듯 했습니다.
"위 자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평소 부여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왔으며 특히 북괴 남침용 땅굴 발견에 기여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함"


당시는 북한을 '북괴'라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표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북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 시대에는 어린 초등학교 때부터 북한은 북한 괴뢰를 의미하는 북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바른생활 교과서에는 북한 공산당 사람들을 늑대의 얼굴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지금은 지나가버린 추억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일종의 반공교육을 심하게 세뇌를 당한 셈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귀순해 방송에 나온 얼굴을 보면서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4땅굴 내부 수색 중 우리 소대의 군견이 지뢰 폭발로 죽었는데 입구 부근에 충견묘가 세워졌다]

그리고 대학 시절은 전두환 군사 독재에 반대해 들불처럼 일어났던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후 군대에서는 최전선에서 북한이 남한 침공을 목적으로 뚫은 땅굴을 수색해야 했던 굴절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남과 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 가는데, 왜 우리 민족은 같은 동포들끼리 원수처럼 그토록 싸워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지금도 휴전선 철책은 남북 분단의 아픔을 안고 냉전 이데올로기의 전운이 감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겨울철 최전방에서 고생하시는 군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드립니다.)

지금은 일상 속에서 참모총장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군대 시절 참모총장상을 받은 것을 발견하니 한편으로 소중한 추억의 편린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구촌 마지막 남은 분단 국가라는 것이 서글퍼집니다.

[참고] 제4땅굴 발견에 대해
제4땅굴은
지난 1989년 8월경 21사단 백두산부대 수색대(전초수색) 지하 청음수색병들이 처음 이상 징후(지하에서 땅굴 파는 소리)를 탐지해 지하 시추공 확인 작업을 몇달간에 걸쳐 지속 실시해 결국 수직으로 지하 땅굴을 관통(1989년 12월 24일 새벽 크리스마스 이브 날)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북한 공격시 실전 모의 훈련과 함께 우리 군에서 반대로 지하 역갱도 공사를 거쳐 북한 땅굴을 최종 발굴한 것은 1990년 3월 3일입니다. 또한 지하 군사분계선까지 땅굴 내부 수색 작업을 거쳐 장악한 후 경비부대를 별도 창설했습니다.(바로 경계지점이 12사단입니다.)

강원도 양구 북동쪽 펀치볼(해안마을) 산악지대에서 위치하고 있으며 땅굴 내부는 너비 2m, 높이 2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구조물이며 현재는 안보 관광지로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땅굴 내부는 관광용 모노레일 차량이 운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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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1사단 66연대 전초 수색중대 출신 전우님들이면 댓글에 비밀글로 연락처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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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한반도의 정중앙과 정남진을 아시나요?
여기서 정중앙을 무한도전의 정준하로 순간 떠올리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정동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 정중앙과 정남진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한반도는 서울의 광화문을 중심으로 정확히 북쪽으로 중강진이 있고 동쪽으로 정동진이 있는데, 한반도의 정가운데 지역으로는 강원도 양구 배꼽마을에 정중앙이 있습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한반도의 최남단인 전라남도 장흥에 정남진이 있습니다.


[천년 고찰 보림사의 사천왕상]

정동진은 관광객을 비롯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다소 훼손도 많이 되었지만, 정남진과 정중앙의 깨끗한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멋스럽고 특별한 여행을 하실 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듯 합니다. (특별히 정남진은 제가 태어난 고향인 장흥에 위치해 있는 곳이며, 정중앙은 제가 군대 시절에 근무한 강원도 백두산부대 인근이라서 더욱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

우선 정남진부터 가보겠습니다. 정남진은 정확히 행정구역으로 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기에 대한민국의 정남쪽임을 알리는 정남진 조형물이 서있습니다.

[정남진 마을 조형물]

정남진 주변에는 삼산 방조제를 비롯하여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으로부터 명량대첩 과정에 이르는 호국 역사의 마당인 회진과 회령진, 천관산 문학공원, 통일신라 9산 사찰 중 하나인 유치 보림사, 깨끗한 1급수 물의 탐진강과 탐진댐, 고려 인종왕비이자 의종·명종·신종의 어머니로서 장흥이란 지명을 낳게 한 공예태후 임씨의 탄생지, 그리고 방촌 문화마을과 지석묘 군, 영화 <축제>의 촬영지로 해맞이 행사가 일품인 남포 소등섬, 안양 수문의 해수탕 등 해안 주변에 천혜의 자연 관광자원이 많습니다.
[천관산 억새]
장흥 천관산과 탐진강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억새는 다도해의 풍광과 기암괴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국내 최고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천관산 문학공원 가는 길]
천관산 문학공원은 천관산 기슭, 중허리 쯤에 위치한 탑산사 밑에 위치해 있습니다. 장흥은 이청준, 한승원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입니다.
[매생이를 키우는 바다 모습과 매생이국]
[정남진 남포 소등섬 일출]
정남진 남포에서 소등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출과 함께 아침에 매생이국으로 속풀이를 하는 것도 일품입니다. 어머님이 끓여주던 매생이국이 그리워집니다.

[천년 고찰 보림사의 전경 모습]

전남 장흥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림사는 지금부터 1천 3백여년(759년) 전에 보조국사가 창건한 통일신라시대의 거찰로서 불교 선종 9산 중 하나다. 어릴 적에는 무서웠다는...
[1급수 식수원으로 보존하는 장흥 탐진댐 모습]
[정남진 토요시장 모습]
정남진에서는 토요시장이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을 재연해 선보이며 현지에서 직접 길러서 육질좋은 최상급 한우의 별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장흥의 특산물인 표고버섯은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사진 및 정보 참고] 정남진닷컴 http://www.jungnamjin.com/

정남진을 소개하다보니 너무 많아져 버렸습니다. 정중앙은 간단히 소개합니다. 한반도의 정중앙은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일명 배꼽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 안보, 천문 등 천혜의 자연자원을 관광화하고 있습니다.
[천재화가 박수근이 탄생한 곳으로 박수근 마을]
 
강원도 양구군 해안마을(펀치볼)은 휴전선과 맞닿은 곳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의 분지로서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에 의해 펀치볼(punch bowl. 화채그릇)처럼 생겼다 하여 명명되었으며, 주위가 모두 해발 1,000m를 넘는 고지들로 인하여 6.25 당시 처절했던 전쟁의 아픔을 지니고 있으며 근처에는 제4땅굴, 을지전망대,통일관, 전쟁기념관 등 안보관광지가 있어 국민 안보교육장으로 널리 찾아지는 곳입니다.(제가 군대 시절 수색대로서 제4땅굴 발견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펀치볼 마을과 제4땅굴 입구]
[양구의 국토 정중앙천문대 모습]

양구 정중앙에서는 춘하추동 다양한 축제도 열립니다. 정중앙은 동쪽으로는 인제군, 남쪽으로는 소양호를 경계로 춘천시와 마주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동면, 서쪽으로는 양구읍과 경계를 이루며 해발 874m 봉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인근 자연 관광지와 연계해 여행을 떠난다면 차별화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참고 정보] 정중앙마을 http://www.invil.com/village/jeongjungang/
[국토 정중앙 양구 상징물]

한반도의 정남진과 정중앙을 동시에 소개하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닙니다.(ㅠㅠ) 너무 방대해 이번에는 이만 줄이고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좀 더 다양한 정보로 소개하겠습니다. 정남진과 정중앙은 제가 태어났거나 군대시절 근무했던 매우 친근한 지역입니다. 정남진과 정중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라 여행의 특별한 묘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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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최근 국정원 관련 모 교수가 북한이 김포까지 땅굴을 파는 등 남침 전쟁이 임박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개인 차원에서 언론사에 배포해 물의를 일으킨 모양이다.

항상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 안보가 중요한 나라에 있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물증과 사실이 아닌 개인적 주장으로 지나친 위기감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위정자들이 남북 분단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나 전쟁 위험을 다소 과장해 국내 정치에 악용한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한의 전쟁 위협 자체를 너무 과소 평가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1990년 양구에서 발견된 제4땅굴의 추억
나는 군대 시절에 강원도 양구에서 발견된 제4땅굴 발견 당시 실제 수색 활동에 참여한 바 있어 북한의 전쟁 위협이 얼마나 집요한지 실감한 바 있다. 양구의 제4땅굴은 이미 안보관광시설로 활용되어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제4땅굴은 북한의 새로운 침투 방법으로 모색되어 굴설된 땅굴로 1978년 제3땅굴이 발견된지 12년만인 1990년 3월 3일에 양구 동북쪽 26㎞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군사분계선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 데일리NK 뉴스]

이제는 제4땅굴이 있는 안보 관광지이자 남북 분단의 대치 상황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양구의 해안(亥安) 마을에 한번 가보고 싶다. 해안 마을은 펀치볼(punch bowl)이라고도 불린다. 해안 마을이 위치한 분지 형태가 거대한 화채 그릇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미군이 펀치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유래이다. 만일 통일이 된다면 나의 가족과 반드시 가보고 싶은 첫번째 장소가 펀치볼과 비무장지대가 될 듯 싶다.

역사 속에서 자주적 국가 안보의 중요성 실감
과거 우리 민족이 당했던 치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주적인 국가 안보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지금 순간에도 우리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것도 24시간 365일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다. 20대 초반,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에 군대를 다녀온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있어 그 시절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지만, 현재 발견된 4개의 북한 땅굴 이외에 추가로 발견된 땅굴은 없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고랑포에서 발견됐고, 제2땅굴은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견됐으며 제3땅굴은 1978년 10월 경기도 문산에서 발견된 바 있다. 그리고 1990년 3월 강원도 양구에서 제4땅굴이 발견된 이후 북한 땅굴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1970년대에 여러개의 땅굴을 팠으나 그들이 판 땅굴이 계속 발견되자 땅굴 공사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하에서 땅굴을 파는 일은 북한군에 가장 힘든 노가다 작업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하에서 땅굴 공사 작업은 어떤 식으로든 지하에서의 공사 소리나 지하수의 변화 등에 의해 쉽게 노출될 수 있어 효율성이 무척 떨어지는 일이다.


북한 땅굴 위협은 과거 우리가 그 실체를 몰랐을 때에는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북한 땅굴은 지난 1990년 제4땅굴 발견이후 거의 20년 가깝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가공할 위협 수준은 아닌 듯 하다. 우리나라의 국방 수준이 높아져 북한이 땅굴을 굴착하면 곧바로 탐지할 수 있는 첨단 장비가 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땅굴이 가동할 경우 즉각 타격해 용도 폐기할 수 있는 첨단 무기들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정치적 위기감 조성은 경계해야
일반 국민들은 북한의 땅굴에 대해 막연히 위기감을 느끼거나 불안해 할 수 있다. 어느정도 국가 안보에 대해 긴장감을 갖는 것은 좋으나 실제와 달리 너무 과도한 위기감으로 스트레스까지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울러, 정치적으로 국민들에게 국가 안보를 빙자한 실제 이상의 불안감 조성은 정치권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국가 안보는 정치적으로 악용할 대상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역사 앞에서 가져야 할 민족적 시대적인 소명이기 때문이다.

가볍게 시작한 글이 주제가 땅굴과 안보에 대한 얘기다보니 너무 딱해진 것 같다. 정리하면, 국가 안보는 자자손손 우리 민족이 살아가야 할 존재의 의미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실제 새로 발견된 땅굴도 없이 과장된 사실과 가능성이라는 미명 하에 너무 과장해 정치적 악용이나 위기감 조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국가 안보는 외부에 요란스럽기 보다는 냉철하고 착실하게 만일의 위협에 대해 철통같은 준비가 중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제4땅굴의 관광 안내에 대한 내용을 첨부한다. 땅굴 중 유일하게 내부에 관람용 전동차를 운행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과 양구를 함께 여행한다면 하나의 선택이 될 듯 하다. 아마도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실제 전쟁의 위협에 살고있는 우리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www.gwhsed.go.kr/cyberschool/gangwondo/yanggugo/dongmul/danggul.htm

관광지명 : 제4땅굴

위 치 :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현3리

개 요

  • 제4땅굴은 1990년 3월 3일 발견되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부 관람용 전동차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 땅굴광장에는 5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과 기념비, 군장비 및 안보교육관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안보교육관에는 28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영화관과 전시관을 비롯하여 북한의 관광지를 필름에 담은 3-D입체영상기가 휴게실에 비치되어 있어 북한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됨으로서 국내안보교육장의 활용되고있다.

규 모

    높  이 : 약 1.7m  
    폭     : 약 1.7m  
    깊  이 : 지하 145m  
    총길이 : 2,052m

관람방법

    통일부 양구북한관에서 출입신청(당일 신청 출입가능)  
    매주 화요일은 관람불가

교 통

    동서울,상봉동터미널에서 양구까지 버스운행, 양구에서 해안까지 4회 운행  
    서울-춘천-양구-해안

관 람 료 : 청소비(대인 1,000원, 소인 500원)  
                ※ 단체(30인이상):30%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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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