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5.01 연봉 3억 조폭정치 국회의원, 성상납 명단 공개 안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15)
  2. 2009.07.13 양아치들에게 끌려가는 여성 구해줬지만...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3)
  3. 2009.06.24 여중생 폭력 현장 목격한 증언을 들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43)
  4. 2009.05.04 용역깡패들 폭력을 본 철거민이었던 나, 25년전과 비교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5월 1일, 오늘은 노동절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 수준으로 성장한 데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입니다. 노동절의 의미는 대기업 재벌과 정치 권력의 착취와 핍박을 이겨내고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받는 역사를 인식하고 노예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다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서울광장에서 예정됐던 노동자들의 노동절 기념 행사는 경찰에 의해 금지됐습니다. 노동절 기념 행사는 노동자들의 생일 자축 행사와 같습니다. 자본주의 민주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은 곧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노동절의 주인공인 노동자들의 자신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광장에서 생일 행사도 못한다니 과연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문이 듭니다.

노동절에 생각나는 88만원 세대와 국회의원 세비 연봉

우리나라의 수많은 대학생들을 비롯 젊은이들이 88만원 세대로 전락하고 일자리 취업을 못해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한 대의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은 어떤가요? 국회의원이 받는 1년 연봉이 무려 2억 7천만원 정도 됩니다. 도대체 국회의원이 3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법을 만들고 지켜야 할 국회의원이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는 황당한 일이 2010년 오늘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폭스런 불법을 저질러도 연봉은 많이 받는 국회의원인 셈입니다. 그것이 국민 세금인데 국민으로서 이런 국회의원을 뽑았다니 부끄럽지 않나요.

국회의원 세비(연봉) 내역 현황

국회의원 연봉 지급 주요 내역
세비- 월 940만원 
활동 유지비- 670만원
차량 유지비-125만원
통신 요금, 사무실 운영 및 용품비-166만원
입법 정책 개발비-233만원
기타 의정 활동비-148만원                                        


합계 : 연간 2억7천384만원 지급

국회의원당 직원 지원 및 세금 지원 내역
비서관-4급 2명 연 6400만원
비서관-5급 1명 연 5300만원
비서관-6급 1명 연 3600만원
비서관-7급 1명 연 3100만원
비서관-9급 1명 연 2400만원                                        

합계 : 연간 2억 800만원 지급

국회의원 기타 특권 및 지원 내역
국회의원 사무실에 지원 및 직원 10여명
25평 규모의 화장실 딸린 개인 사무실
공항 출입 절차 논스톱, 관용 여권 지급 공항 의전실 사용
비행기 탑승, 해외 출장 시 일등석
KTX 무료, 골프회원 우대
면책 특권 등

부자 대학 및 사립학교 재단의 돈줄을 지키겠다고 조폭 깍두기 머리에 도전

민주주의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박탈당한 노동절이 우울하기만 합니다. 오늘도 취직을 하지못해 고통받는 20대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학생들이 일자리를 얻더라도 국가 권력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마저 인정해주지 않는 셈입니다. 그리고 국가는 법치주의를 외칩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자신들이 만든 법도 지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국회의원 자신이 만든 법도 지키지 않고 사법부를 조폭 협박하다니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는 법원에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법부에 불복하고 나섰습니다. 더욱이 정두언 의원을 비롯 한나라당 의원들이 조폭 판결이라며 법원에 반기를 들며 명단공개를 강행하겠다고 합니다. 누가 조폭인가요?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의 원칙 마저 위협하며 사법부를 능멸하며 국민들을 협박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이 바로 조폭이나 다름없지 않나요?

                       조폭이나 정치인이나 다름없이 느껴지는 5월 1일 노동절의 단상이다

더 황당한 것은 한나라당 의원들 자신이 만든 법을 스스로 지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7년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해 만든 법이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입니다. 쉽게 말해 전교조 명단 공개와 같은 것은 불법이란 것입니다. 이쯤 되면 국회의원이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합니다.

과거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학법 개정에 반대해 삭발을 하고 촛불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최후의 항의 수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삭발이겠지만, 소위 입법권자인 국회의원들이 조폭스럽게 삭발을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사학법을 반대한 것도 결국 기득권 부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일이나 다름없는 행위인데 말입니다. 당시 촛불시위에는 현 이명박 대통령도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의 촛불시위는 불법이라며 무조건 금지시키는 현재 이명박 정부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작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립학교 재단의 돈벌이에 참여하는 재벌들과 보수언론 사주들이 많아서 일까요.

언론 사주와 언론인들의 사립학교 재단 이사 명단

방우영 조선일보 전회장 연세대 재단 이사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숭문중고 이사장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숭문중고 이사
고학용 조선일보 전논설위원  성덕여상 여중 이사
권문한 조선일보 방일영문화재단 사무국장 경기여상 이사
강우정 조선일보 전 기자  한국성서대 이사
김병관 동아일보 전 회장  고려대 이사장, 서울 중앙고 이사장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고려대 이사
권오기 동아일보 전 사장  국민대 이사, 울산대 이사
오재경 동아일보 전 사장  휘경여중고 이사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포항공대 이사
윤세영 SBS회장  추계예대 이사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  경희대 이사
현소환 연합뉴스 전 사장  국민대 이사
곽정환 세계일보 전 사장  선문대 이사
이체락 경향신문 전 사장  한북대 이사
서동구 KBS 전 사장   한성대 이사
권오현 부산일보 전 사장   경성대 이사
김상훈 부산일보 사장   대구 대원고 이사장
신우식 서울신문 전 사장  광주 광덕중고 이사
박상은 경인방송 전 회장   경남 남지 중고 이사
* 일부 언론인들 명단이지만 삼성 두산 등 재벌의 사립대학 재단 소유까지 포함하면 엄청납니다

사학법 반대 촛불시위 나선 한나라당 의원들과 이명박 모습

최근 검사들의 질펀한 성접대 리스트에 대해 일부가 MBC PD수첩에 의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현재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단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과거의 전례를 보면 과연 제대로 조사되고 성접대 검사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질지 의문이라는 국민들의 반응이 많습니다. 이미 국민들은 지난해 신인 연예인 장자연의 성접대 리스트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장자연 성접대 리스트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성접대 리스트에는 언론사 사주를 비롯한 유력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결국 힘없는 신인 연예인만 성노리개로 전락해 고통받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비극적 현실에도 권력을 가진 자들은 처벌도 받지않고 여전히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과 결탁한 권력이 지배하는 '더러운 세상'인 셈입니다.

국민들은 스폰서 검사 명단과 성삽납 리스트 공개 원한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부당한 재벌-언론-권력의 카르텔을 감시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특히 국회의원들의 조폭적 불법 무소불위 행위에 대해 당당하게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으로서 권리로서 명령해야 합니다. 국민들은 전교조 명단 자체는 관심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이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고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불법을 자행하는 행태가 문제입니다.

           사법부에 불복해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불법에 앞장 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모습

백번 양보해 여당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만든 교원단체 명단 공개는 불법이라는 법이 있지만도 전교조 명단 공개가 불법이 아니라고 칩시다. 그러면 국민들이 요구하는 스폰서 검사들에 대한 성접대 검사 명단을 공개해야 합니다. 장자연 성접대 리스트를 공개해야 합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 TOD영상화면과 교신일지 공개를 해야 합니다. 천안함 생존 장병과 해경에 대한 언론 취재가 허용되어야 하며 천안함 함미-함수에 대한 절단면이 공개되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단지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불법 행위로 무법천지로 만들면서 국민들이 원하는 정보 공개에는 침묵하는 것을 보면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민주주의 삼권 분립 원칙을 조폭적 발상으로 반역한 국회의원들 명단은 국민들이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국민들에게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순응을 주장하면서 국회의원 자신은 법치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일을 서슴치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삐뚫어진 조폭의 의리 마냥 조전혁 의원에게 동조해 불법을 자행하는 의원들은 국민들의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지난 60여년전 이승만 독재정권으로 후퇴한 듯한 2010년의 현실을 목도하게 됩니다. 깨어있는 국민 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다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세상을 물려줄 책임은 바로 우리 모두들에게 있습니다. 노동절에 드는 생각들입니다. 열심히 일한 '선량한 사람들' 모두들에게 행복이 깃든 노동절의 의미로 다가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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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7월이 되면 군대 시절에 이맘 때 기억하기 싫은 추억이 생각나곤 합니다. 약 20년전 말년 휴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친구들과 귀대를 앞둔 전 날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술도 한잔 걸쳤습니다. 당시는 밤 12시까지만 영업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밤 12시가 되기 전에 친구들과 헤어졌습니다.

제가 휴가를 맞아 기거하던 친척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걸어서 친척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다시 걸어가는데 여자의 비명 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젊은 여성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냥 가던 길을 갈까 생각하는데 또 그 여자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제가 걷던 인도의 반대편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듯 했습니다. 도로를 건너 반대편 인도로 갔습니다. 여자의 비명이 골목에서 또 들렸습니다. 어두 컴컴한 골목이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이었습니다. 조금 무섭기도 하고 긴장도 됐습니다. 골목을 따라 깊숙히 들어가자 젊은 여성을 양아치로 보이는 자들이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양아치들은 약 4~5명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순간 양아치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눈을 피하지 않자 양아치들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넌 뭐야? 야, 꺼져."
"너희들은 뭔데 여자를 끌고 가는 거냐."

"이게 주글라구..."
"존말할 때 여자를 풀어줘라."

그러자 양아치의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저는 주먹을 피하고 원투 스트레이트 카운터 펀치를 날렸습니다. 양아치 한 명이 쓰러졌습니다. 당시 DMZ 수색대에서 갈고닦은 특공무술을 발휘했습니다. 그 전에는 권투선수였던 삼촌으로부터 배운 권투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장 양아치가 쓰러지자 나머지 양아치들이 놀라서 여성을 놓아주었습니다. 여성은 재빨리 골목길에서 큰 길로 도망갔습니다.

나머지 양아치들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날렸습니다. 그러자 양아치들이 혼비백산해 골목길 깊숙히 도주했습니다. 양아치들이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다시 골목길에서 인도 쪽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친척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그런데 뒷쪽에서 뭔가 수상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뒤돌아 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대편 인도로 가기 위해 육교를 건넜습니다. 그 후 기억은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이 들어 깨어보니 병원이었습니다. 온 몸이 아프고 얼굴과 머리에는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누군가 말을 걸었습니다. 삼촌이었습니다.
"정신이 드냐? 괜찮냐?"
"예, 괜찮아요. 머리가 좀 아파요."

옆에 누가 있었습니다. 삼촌은 형사라고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젯밤 기억나세요?"
"잘 기억이 안나요.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됐나요?"

"육교 근처의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다고 경찰서로 신고가 들어왔어요. 어제 밤 어디까지 기억나세요?" 
"골목 길에서 어떤 여자가 끌려가는 것을 구해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 후로 생각이 안납니다."

대강 유추해 보면, 친척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양아치들이 미행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육교를 건널 때 양아치들은 도로를 건너와 숨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아치들은 각목으로 제 뒤통수를 가격했습니다. 그대로 저는 기절했습니다. 길바닥에 쓰러진 저를 양아치들은 마구 구타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처가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양아치들은 어두운 골목길에 봤기에 인상착의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양아치들이었다는 사실만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깨어난 그 날은 말년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귀대하는 날이었습니다. 형사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저를 두고 돌아갔습니다. 저도 아픈 몸을 이끌고 군대에 복귀했습니다.



군 부대에 복귀한 날부터 계속 잠만 잤습니다. 각목으로 구타당한 충격으로 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말년 병장인지라 후배들이 식사 시간 마다 짬밥(식사)을 챙겨다 주었습니다. 저는 막사에서 잠을 자거나 식사 시간에만 잠시 일어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막사 밖을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는 가을이 일찍 다가왔습니다. 한 여름과 초가을에는 독사는 독이 가득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군대에서는 뱀을 많이 잡아봤지만 전역 후에는 전혀 잡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말년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저에게 후배가 말했습니다.
 "지나가는 뱀을 잡아서 놀다가 병원에 간 말년도 있었답니다. 뱀 조심하십시오."

군 제대 후 어두운 골목길에 몰려있는 양아치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서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말년 휴가 때의 아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젊은 시절에는 의협심에서 나쁜 일을 보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양아치들이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그런 경우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냥 모른 체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물론 위험한 상황이라면 경찰에 신고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지금도 당시의 상처가 얼굴 가장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혼자서 여러 양아치들은 상대한다는 것이 무모할 수도 있지만 젊은 시절의 정의감에서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도 말년 시절에 후배가 했던 '지나가는 뱀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곤 합니다. 
"구르는 낙엽도 말년에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답니다. 낙엽 조심하십시오."

(교훈)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영화에서는 구해준 여성이 남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애틋한 사랑이 싹트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당장 위험으로부터 도망가기 급급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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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최근 잘 알고 지내는 P씨를 만났습니다. 올해 여자중학교에 갓 입학한 딸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어느 날 신촌 지역에서 P씨는 여중생들의 폭력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의 증언을 들어봤습니다. P씨가 겪은 황당한 여중생 폭력 현장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P씨가 신촌의 길거리를 걷는데 어떤 건물 뒷골목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뒷골목 쪽을 보니 여중생들이 몇명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듯 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한 무리의 여중생들이 또 다른 여중생들을 무릎을 꿇려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교복도 입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여중생 딸이 있던 터라 P씨는 폭력 현장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타를 한 가해자 여중생들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훈계를 했습니다.
"학생들, 이러지 마. 왜 그러니?"
"아저씨, 왜 참견이세요."

"너희들 몇학년이니?"
"알어서 뭐하게요? 참 나."

P씨는 무릎꿇고 있던 피해자 여학생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여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너희들은 몇학년이니?"
"1학년이요."(작은 목소리로 눈치를 보며)

"저 여학생들은 누구니?"
"몰라요."

"왜 너희들을 때린 거니?"
"그냥 기분 나쁘데요. 이유없이 때려요. 그냥 길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사진>부평의 모 여중생이 동급생을 무차별 구타하는 장면이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P씨는 뒤쪽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습니다. P씨에 뒤에 있던 다른 가해자 여학생이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태연하게 P씨를 쳐다보며 담배를 피웠습니다. P씨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학생, 지금 뭐하는 거야?"
"아저씨가 뭔데? 뭔 참견이야."

"뭐야. 니네들 안되겠구나."
"칫. 웃기네."

P씨는 화가 나서 대드는 가해자 여학생을 한 대 쥐어박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이 욕을 하면서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갔습니다. P씨는 혹시나 다른 남자들을 부르러 가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났습니다. 재빨리 뛰어가서 그 여학생을 붙잡았습니다. 그 사이 다른 가해자 여학생들은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P씨는 우선 피해자 여학생들을 큰 길로 도망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P씨는 가해자 여학생에게 "다시는 이런 짓 하지마라."고 말하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여기까지 P씨로부터 들은 실제 폭력 현장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P씨는 혼자서 여러 불량 여중생들을 만나는 것이 겁도 났다고 합니다. P씨는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라서 평소에는 지나쳤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또래의 여중생 딸이 있는 아버지로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P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도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서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생에서도 조폭을 흉내 낸 구타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요즘 여중생들의 폭력이 오히려 남학생들 보다 심각하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부평의 모 여중생이 친구를 무차별 구타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여중생 2학년들이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아역배우 출신 여중생인 H양이 학교에서 3시간 동안 친구를 구타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지난 2006년에는 당시 여중생 3학년이 동급생의 집에서 마구 폭행하다가 교복을 강제로 벗겨 휴대폰으로 촬영해 유포하는 충격적 사건도 있었습니다. 법원은 가해자들에게 피해 학생과 그 가족에게 7천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올해에도 10대 여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알몸 상태로 구타한 동영상이 공개돼 사회적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하는 등 여학생등의 폭력이 심각합니다. 물론 남학생들의 폭력 사건도 많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비해 여중생을 비롯한 여학생들의 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잔혹해 졌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요즘 욕이 아니면 대화가 안되는 학생들의 언어습관도 심각합니다.

경제 불황의 여파에 따라 가정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럽고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충격적 폭력 사건도 급증하는 것 같습니다. 이같은 학생들의 폭력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발단일 수 있습니다. 또한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구조적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성공의 기준을 돈이나 지위로 판단하는 사회로 인해 사회 전체가 병들고 있는 셈입니다. 학생들에게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소중함과 인성을 강화시켜주는 교육이 선행되었으면 합니다. 가정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전한 가치관 형성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반성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어른들부터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가치관과 인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솔선수범해야 할 때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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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약한 자가 더 약한 자를 해치고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한 자의 등을 쳐먹고 살도록 돼 있다." 영화 "똥파리'는 똥파리같은 인생들의, 숨쉬기조차 힘든(Breathless) 절망적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줄기 희망은 있지만.

가정의 달을 맞아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들과 정겨운 시간을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언제 닥칠지 모를 용역깡패들의 폭력과 위협으로부터 불안과 공포에 떠는 철거민들도 있습니다. 싱그럽고 따사로운 오월의 햇살 아래 모두가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단지 잠이라도 편안히 잘 수 있는 공간 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도시 빈민들의 절박한 삶, 생존을 걱정하는 도시 빈민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단 돈 5만원에 판자집 철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라는 미자라지님의 참회 글을 읽어보니 약 25년전 직접 용역깡패들을 경험한 철거민들의 아픔과 고통이 생각이 납니다.

지난 1980년대의 우리나라는 폭력과 공포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는 특히나 군사 독재가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라 정치사회적으로 '약육강식'이 그대로 통용되던 때였습니다. 군사 독재 정부는 '순화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깡패들이나 반체제 인사들을 강제로 군대나 감옥에 끌고가 강제 노역이나 고문을 일삼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조폭 집단은 눈에 거슬리면 무조건 잡아가서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해 폭력을 가차없이 행사했던 것입니다. 순화교육은 조폭정부가 깡패를 이용해 자신의 정당성을 홍보한 전형적인 폭력집단의 통치방식의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시대에 조폭 깡패들이 군사정권과 경찰과 야합해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폭력이라는 힘, 물리적 힘을 이용해 통치하는 군사정부나 조폭 깡패들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누가 더 큰 힘을 갖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폭력을 통해 약자를 억누르고 자신의 이익을 착취하는 형태는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1986년 어느 날, 저는 학교 공부를 마치고 홍은동의 할머니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집과 동네 집들은 모조리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을 잃고 멍하게 폐허만 바라봤습니다. 겨우 방 한 칸에 옹기종기 함께 모여살았던 당시 서민들의 삶의 현장이 순식간에 철거를 당했던 것입니다. 할머니집의 부엌 옆에 1평도 안되는 쪽방을 임시로 만들어 공부하던 저는 황당했습니다.

막내 삼촌이 다가와 "니 책하고 라디오는 겨우 건졌다"며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던 물건들이 폐허 속에 묻혀 버리다니. 잠시 정신을 추스리고 삼촌에게 그 날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낮에 일하러 간 사이를 틈 타, 갑자기 용역 깡패들과 철거 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쳐 동네 집들을 모두 철거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철거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돌아온 주민들은 살림살이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집안의 가구나 주요 물건들은 겨우 수습을 했지만 나머지 작은 물건들은 그대로 폐허 속에 묻혀 버린 것이었습니다.

당시 용역 깡패들은 웃통을 벗고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위협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막내 삼촌은 아마추어 권투선수를 했던 분인데 수많은 깡패들의 위협에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깡패들은 온 몸에 문신이 가득했고 각목과 철근 쇠파이프를 들고 생명을 위협하며 설쳐대면 주민들도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당시 홍은동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어 본격적인 철거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80년대 서민들은 단 한 칸의 방이라도 얻기 위한 생존권 문제로 개발조합측과 협상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제대로 협상도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 생존해야 하는 서민들에게 조합측은 가혹했습니다. 용역 깡패들을 동원한 강제 철거였습니다. 서민들은 서울의 달동네에서 밀려나 수도권 변두리로 또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방 한 칸에서 고단한 삶이지만 열심히 살아왔던 서민들이 한 순간이 집과 살림살이를 잃고 가야 할 곳은 서울에 없었습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용역 깡패들은 도시 빈민들을 위협하곤 했다


주민들은 하루 하루 먹고 살기 바빠서 조직적인 저항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저녁에 퇴근한 큰 삼촌과 일부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조합장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조합장은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조합장의 집에서 연좌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농성이라고 해봐야 집에서 앉아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던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조합장을 만나서 항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늦어도 조합장은 얼굴도 내밀지 않았습니다. 조합장의 집에서 몇시간을 앉아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밖에서 거친 욕설이 들리면서 일단의 깡패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두목 쯤 되어 보이는 깡패가 웃통을 벗고 외쳤습니다.
"너희들 다 안나가. 다 죽여버린다. 개**들"

주민 중 한 명이 깡패들에게 '우리는 조합장과 대화를 하기 위해 왔으니 나가 달라'고 요청했으나, 깡패들이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주민들도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깡패들은 완력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저는 말도 못하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머리 속으로는 깡패들에게 달려들어 주먹으로 면상을 때려주고 싶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가 얼마나 비겁했는지 지금도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누가 몰래 경찰에 연락을 했습니다. 오랫동안을 깡패들의 위협에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한 참 후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도 깡패들과 한 패였습니다. 주민들은 전부 나가라며 깡패들과 같은 이야기만 반복했습니다. 허무하게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큰 삼촌 그리고 주민 대표 중 한 명은 밖으로 나와 경찰파출소를 찾아서 조폭 깡패들의 폭력 사태에 대해 경찰이 적극 수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파출소장은 알았다고 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폭과 경찰 그리고 조합은 한 패였습니다.

결국 주민들은 허무하게 수십년 살던 집들을 용역 깡패들에 의해 철거당하고 갈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시 은동 주민들은 가난하지만 서로 이웃 사촌 처럼 정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잠잘 곳도 없어지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집이 없어진 주민들은 당장 잘 곳이 없어 여관방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도 뿔뿔이 흩어져 당장 생존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하루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주민들은 매일 직장에서 나가야 했고 하루 빨리 도시 외곽의 빈민가로 이사를 가야 했던 것입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지만 가난한 도시 빈민들은 용역 깡패들의 폭력 앞에 무참히 무너지고, 다시 도시의 외곽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주민들을 뭉쳐서 조합측과 깡패들의 폭력에 맞서 싸우고도 싶은 심정이 굴뚝 같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당장 아이들과 가족들의 생계와 생활을 먼저 생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거대한 폭력 앞에 굴복하지만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슬픔과 분노를 거두고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때 삼촌은 안산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서울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서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직장도 퇴직하고 안산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저도 학교 문제로 다른 친척 집으로 거쳐를 옮겨야 했습니다. 서울의 서민들이 철거를 당해 수도권으로 밀려나는 일반적 형태입니다. 지금도 안산에 가면 옛날 철거민 시기의 아픔이 생각나곤 합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25년전 용역 깡패들 보다 더 잔인하다


2009년의 오늘은 어떤가요? 용산 철거민 대참사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철거민들이 죽었습니다. 거기에도 경찰과 용역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한 철거민들의 현실입니다. 25년 전과 달라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25년전 보다 더 폭력적인 철거와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시 철거민들에게는 가혹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인 풍요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철거민 사태와 같은 복지 문제나 폭력적인 통치 형태를 보면, 지금 25년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착각하게 하는 현실입니다.

그 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살았던 철거민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불끈불끈 화가 치밀곤 합니다. 실제 한 순간에 집을 잃어보고, 폐허가 된 자신의 삶의 흔적들을 바라보고, 무기력하게 조폭 깡패들의 위협에 굴복하고, 그래도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살아야 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철거민들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느껴본다면 우리는 함부로 그들을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배려와 관심을 두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약육강식의 사회라면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가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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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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