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30 군대 신교대 얼차려와 목숨 건 전초 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18)
  2. 2009.06.26 독사에 물린 선임하사 'DMZ서 구출하라'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3. 2009.04.21 산딸기 따다 지뢰밟아 죽은 전우 생각하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5)


지금은 군대문화도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1980년대 군대는 얼차려를 빙자한 가혹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심각한 가혹행위로 인해 군대를 탈영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20여년전 군대의 얼차려는 어떠했을까? 그것은 최근에도 역사와 전통 속에서 이어지는 경우도 있을 듯 합니다.

강원도 최전방 부대의 신병교육대(신교대)로 간 당시는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논산 신교대로 갔다면 그렇지 않았을텐데 최전방 신교대로 배치받은 신병들은 지지리 복도 없는 셈이었습니다. 전방 부대 신교대에서 얼차려는 기합과 가혹행위 사이를 오가는 줄타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조교들이 곧 즉결심판하는 악마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여름 8월 군번이라 무더운 햇볕 속에서 훈련받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신교대에 첫 날 도착하자 조교의 무자비한 얼차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등 초보적인 얼차려였습니다. 이후 대가리 박어, 대가리 박고 왼발 들고 오른손 들어, 두 손 깎지 끼고 엎드려 뻗쳐 등 응용 얼차려로 기진맥진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운도 없었던 것이 그곳은 대학생 전방입소 최전방 부대였고 과거 삼청교육대로 악명을 떨쳤던 신교대였습니다.

한 바탕 얼차려의 고통이 끝나고 잔뜩 겁먹은 신병들은 일장 훈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빨간 모자를 쓰고 가슴에 호랑이 마크를 달고 있는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위풍당당한 체구와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 그야말로 위압감을 주는 군인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조교가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이름을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튀어나온다."
"김OO, 이OO, 박OO...탐진강"

비무장지대 수색매복 전초대, 죽음의 각서를 쓰다

탐진강도 이름이 호명됐습니다. 도대체 첫 날부터 왜 이렇게 빠지지않고 이름이 불린단 말인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름이 호명된 신병은 25명 가량 됐습니다. 모두 긴장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 마크를 단 군인을 따라 갔습니다. 걸어 가는 도중에 현역 군인이 말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전초구만. 고생 좀 하겠네."하면서 야릇한 미소가 느껴졌습니다. 우리들은 후미진 곳의 막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침상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짧고 굶은 전초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중대장 : "너희들은 전초다. 위험한 곳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남자로 태어나 멋진 군생활을 할 수 있다."
중대장 : "그럼, 지금부터 나눠준 종이에 싸인을 한다. 자신없는 자는 지금 나가도 좋다."

그러자 우리 동료 중 1명이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후환이 두려워 그렇게 못했습니다. 전초 중대장이 나눠준 종이는 그야말로 '군생활 중 죽더라고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서였습니다. 신교대에 오자마자 이상한 부대에서 호명해 죽음의 각서를 쓰다니 참 복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초대는 소위 민정경찰대로 비무장지대 안에서 수색 매복, 땅굴탐지, GP 정찰 등 작전 임무를 맡고 있었던 특수 부대였습니다.

각서를 쓰고 나오는 24명의 신병들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습니다. 그것은 정말 다가올 죽음의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전초로 사전에 차출된 신병들은 신교대 훈련이 끝나며 전초중대로 자대 배치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신병 훈련장으로 돌아 온 우리들은 조교들의 얼차려와 함께 파란만장한 지옥훈련이 시작됐습니다.

군대 얼차려 중 한강철교의 한 장면인데 엎드려 다리를 다른 사람 어깨 위에 올리고 있다

신교대의 얼차려는 한강철교, 원산폭격, 대가리 박고 기어가기 등 다양했습니다. 이런 얼차려는 응용편으로 가면 인간의 한계, 또는 인간성의 말살로 이어졌습니다. 정상적 훈련 이외의 생활에서 얼차려는 가혹했습니다. 그것의 실상은 가혹행위였습니다. 모기회식, 치약 뚜껑에 머리 박기, 식판 입에 물로 오리걸음 등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미 군대를 다녀 온 당시의 분들은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군대 얼차려, 기합과 가혹행위 그 경계는 무엇일까?

어느 날 동기 중 친한 녀석인 J가 사고를 쳤습니다. 저녁에 화장실에 가던 J가 야간 근무 중인 신병들을 만났습니다. 암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러자 J는 "난 조교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두운 곳이라 신병들은 누군지 분간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화장실 안에 진짜 조교가 볼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조교 중 가장 악질인 조교였습니다. 조금 후 조교가 우리 내무반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시 늦은 밤이라 신병들은 이미 침상이 잠을 청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조교 : "모두 기상!"
조교 : "어떤 새끼야? 화장실서 조교라고 한 놈 앞으로 나와!"

친구 J는 두려움에 선뜻 앞으로 못나갔습니다. 조교는 다시 외쳤습니다.
조교 : "안나오면 너희들 오늘 다 죽는 날이다. 빨리 나와!"

J가 앞으로 나갔습니다. 조교의 주먹이 J에게 날아갔습니다.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 다시 주먹을 날렸습니다. 침상 앞에서 서있는 우리들은 살벌한 광경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조교는 M16 소총을 들더니 개머리판으로 J의 가슴을 가격했습니다. 지켜보는 저는 조교를 향해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는 신교대가 아니던가. 그러나 악명높은 조교는 폭력을 예사로 즐기던(?) 악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 내무반 신병들은 그대로 서서 밤을 새웠습니다. 조교는 연대책임으로 우리 내무반 신병들은 잠을 재우고 않고 서있게 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립니다. 

일요일이 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일요일엔 종교 행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불교를 선택했습니다. 불교는 신교대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처 사찰로 갔습니다. 거기에 일반 현역 병사들도 함께 종교 행사를 했습니다. 도착한 사찰에서 긴장감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전초 손 들어!"

저는 손을 들었습니다. 야릇한 미소를 던지며 그 현역병은 말했습니다.
"너희들 고생이 많다. 그런데 나중에 보자. 그래도 여기가 좋을 거야."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 복도 없지. 그리고 나중에 사찰에서 다른 현역병으로부터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얼마 전 전초부대가 비무장지대 수색 중 지뢰를 밟아 1명이 죽고 여러 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공포감이 다가왔습니다.

다시 신교대로 돌아왔습니다. 동기 한 명이 냇가 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어제까지 저기에 있던 소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소는 다리가 세 개 였습니다. 다리가 세 개인 이유는 발목지뢰를 소가 밟아 다리 하나를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은 들은 소식으로는 다리가 세 개인 소는 도살되었다고 합니다. 큰 비가 내리면 냇가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발목지뢰가 흘러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8월의 태양 아래 치열한 신교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치받은 곳은 전초중대의 백골소대였습니다.
이런 젠장, 백골소대는 바로 지뢰밟아서 1명이 사망했다는 그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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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군대 시절 이야기입니다. 지난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일입니다. 한 여름날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군사령관이 방문한다는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GP(Guard Post)를 방문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군사령관이 방문하면 GP나 수색중대는 한바탕 난리가 납니다. 의전이나 경계 근무 등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드디어 군사령관이 DMZ(비무장지대)내 방문의 날이 왔습니다. GP 경계 뿐만 아니라 DMZ에는 수색과 도로 경계조가 투입되었습니다. 저는 수색분대로 투입됐습니다. 그리고 수색분대는 K선임하사가 분대장이었습니다. 차량경계조는 중대장이 직접 지휘했습니다. 거의 수색중대 수준의 DMZ 작전인 셈입니다.

수색분대가 철책선을 통과해 DMZ에 먼저 투입됐습니다. 사전에 DMZ 수색로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요충지에 근거지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여름날의 더위는 강렬했습니다. 한참 수색 중인데 길가에 독사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상당히 큰 까치 살모사였습니다. 까치 살모사는 독성이 강해 매우 위험합니다. 당시 저는 병장이었고 저격수였습니다. 선임하사에게 아주 작은 소리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잡을~까요?"
"그래 잡자."

선임하사는 보기 드문 까치 살모사라서 탐이 났던 것 같습니다. 제가 K-1 개머리판으로 살모사의 머리를 눌러 제압하고 살모사를 잡았습니다. 산 채로 생포한 것입니다. 그러자 선임하사가 까치 살모사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색분대는 까치 살모사를 생포한 후 매복 요충지로 이동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군사령관이 도로를 무사히 지나 GP에 이르는 도로를 경계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선임하사는 지루했습니다. 사실 이런 수색 경험이 많은 선임하사였습니다. 몇개월 후면 전역을 고려하던 선임하사였습니다.

얼마를 기다리자 군사령관이 DMZ의 작전 도로를 지나갔습니다. GP에서 나오기까지 상당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선임하사는 살모사를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었습니다. 선임하사가 독사를 다룬 경험이 많아서 걱정은 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만큼은 불안해 나즈막히 말했습니다.
"선임하사님, 조심하세요"
"괜찮아."



얼마 시간이 지났습니다. 선임하사는 살모사를 왼손으로 잡았다가 오른손으로 잡았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모사를 좌우 손으로 옮기던 중 선임하사가 순간 살모사를 놓쳤습니다. 그러자 살모사가 선임하사의 손을 곧바로 물었습니다. 중요한 작전 중에 선임하사가 맹독성 살모사에 물린 것입니다. 당장 수색을 중단하고 돌아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일단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독사에 물린 손의 팔꿈치 부분은 단단히 묶고 물린 곳의 피를 빨아냈습니다. 

그리고 무전병을 통해 긴급히 도로경계 수색분대 차량을 수배했습니다. 군사령관이 GP를 빠져나가면 도로 차량경계조 차량으로 군병원에 호송할 계획이었습니다. 군사령관이 마침내 GP를 나와 DMZ을 벗어나 철책 밖으로 통과했습니다. 곧바로 차량경계조에 선임하사를 태우고 DMZ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미 선임하사의 손은 엄청나가 부어있었고 선임하사는 맹독에 의해 거의 인사불성 상태가 되어갔습니다. 차량경계조는 강원도 산골에서 멀리 군통합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필사적으로 군트럭 모양의 차량경계 수색조가 병원에 도착한 것입니다. 선임하사를 긴급히 호송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수많은 군인들과 사람들이 몰려와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모습으로 쳐다 봤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쳐다보는 겁니까?"
"...(조용)..."

질문에 오히려 더 놀라는 듯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눈길을 피했습니다. 우리들끼리 쳐다봤습니다. 아뿔싸. 우리 수색분대는 수색 중 복장과 완전무장 상태로 그대로 병원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 분대는 전쟁상태의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탄복에 총알 장전된 각종 개인화기, 기관총이 장착된 도로경계차량, 수류탄과 대검을 매단 수색복장 등은 일반 군인들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희는 장전된 개인화기와 무장을 해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DMZ을 지나 철책의 통문을 통과하면 장전된 총알 등 무장을 해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시의 군병원까지 완전무장 상태로 왔으니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DMZ 작전 중이었습니다. DMZ에서만 있다보니 여긴 처음이라..."

다행히 선임하사는 치료를 잘 끝내고 무사히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소대원들이 한 마디씩 했습니다.
"말년에는 구르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하시더니...앞으로 낙엽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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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일요일 오후에 주말농장에 가서 고추와 호박을 비롯한 채소 모종을 심었습니다. 삽질로 땅을 파서 하나씩 소중하게 심는 작업이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준비한 모종을 모두 심고 옆을 보니 딸기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이웃 주말농장 분양받으신 분이 심어놓은 딸기 모종인데 예쁘게 꽃이 핀 것입니다.

딸기꽃을 보니, 군대 시절의 가슴 아픈 일이 생각났습니다. 중동부 전선의 봄은 서울보다 한참 늦게 다가옵니다. 지난 20년전의 봄이었습니다. 제 4땅굴의 징후를 발견하고 비상 경계 근무와 훈련이 반복되던 시기였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면 저녁까지 만일에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비한 특수 훈련과 비상 근무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덧 철책선에도 꽃이 활짝 피고 싱그러운 신록이 그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땅굴 탐지 소대였습니다. 제 4땅굴의 징후를 발견해 이미 북한이 굴착한 지하의 땅굴을 시추공(지상에서 지하로 뚫는 수직 굴착법)을 통해 발견한 직후였습니다.

작은 산골 마을에 오순도순 살고있던 평화로운 땅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작은 소대가 생활하던 땅에는 육군본부 시추대를 비롯한 공병대 미군부대 등 수많은 군인들이 집결했습니다. 아마도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발령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매일 우리는 북한군이 감행할 수 있는 모든 공격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훈련을 하고 경계 근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봄 날에 중대장이 저에게 특별 휴가를 다녀오라고 명했습니다. 우리 소대는 개인 휴가는 없고 소대 전체 휴가를 다녀오는 특수한 조직인데 의아했습니다. 알고보니, 수개월전에 사단 대표로 군단 역량 측정대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예기치 않게 우수한 성적을 받아 이번에 특별 휴가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날, 제 대신에 중대 본부에서 1명이 대체 근무를 위해 작전 지역에 파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대 본부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에 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비상상황에서 혼자 휴가를 갈 수 있는 행운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다 중대본부에서 밤 10시에 취침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밤 11시경 중대장이 전원 기상을 시켰습니다.


중대장은 슬프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오늘 지뢰를 밟았다. 1명은 죽고 1명은 다리가 잘렸다. 작전 중 발생한 사고이다. 가슴아픈 일이다. 지금은 매우 위급한 비상경계 중이니 전 중대원은 동요하지 말라. 오늘을 교훈삼아 각별히 지뢰사고에 조심하기 바란다"와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중대장의 사건 소식을 듣는 동안에 망연자실했습니다. 겉으로는 지뢰사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걱정했지만 한편 속마음에서는 '아, 모처럼 맞이한 휴가를 못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대장은 "내일 휴가 가는 O상병은 예정대로 휴가 간다. 아침에 까만 봉지를 줄테니 갖고 가라."라고 말했습니다. 지뢰사고에 대한 아픔도 있지만 고대하던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게 단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중대장이 건네준 까만 봉지를 들고 발걸음도 가벼운 휴가를 떠났습니다. 중대장은 까만 봉지를 연대본부 인사계에 전달하고 휴가를 가라고 했습니다. 연대본부에 도착하니 정문 위병소 앞에는 봉고차 한대가 정차해 있었습니다. 일단의 민간인들이 위병소 앞에서 유리창을 깨면서 울분을 토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연대본부 인사계를 찾았습니다.

인사계 준위에게 까만 봉지를 전달하자, 인사계는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어제 지뢰밟아 죽은 OO의 유품이구만." "휴가 잘 다녀오게."

순간 하늘이 하얗고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하게 멍해졌습니다. 까만 봉지에는 전날 지뢰를 밟아 죽은 전우의 유품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휴가를 떠난다는 생각에 까만 봉지를 돌리며 연대본부로 향했던 것입니다. 연대본부 위병소 앞에 있던 봉고차의 사람들은 죽은 전우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젊디 젊은 아들을 잃은 부모와 가족들은 청천벽력같은 슬픔이었던 것입니다.

죽은 전우의 슬픔을 뒤에 두고 휴가를 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경계근무에 나가야 하는 곳에서 두명의 군인이 지뢰를 밟았습니다. 제 대신에 근무에 나선 중대본부의 전우와 육군본부에서 파견 온 군인이 경계근무에 나섰다가 산등성이에 있던 산딸기를 봤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산딸기를 따기 위해 산등성이에 올랐다가 지뢰를 밟은 것입니다.
 


그들이 산딸기를 따러 간 위치는 미확인 지뢰지대였습니다. 항상 미확인지뢰지대를 넘나들던 수색소대원들과 달리 그들은 처음 근무를 서다보니 미처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것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뢰를 밟은 육군본부 군인은 즉사했고 중대본부 전우는 한쪽 다리가 잘려나가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비록 지뢰사고의 구체적인 상황을 잘 모른 체로, 휴가를 다녀왔지만 휴가 기간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더구나 휴가에서 돌아온 후 당시 지뢰사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나서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산딸기는 봄철에 비무장지대나 철책 부근의 산자락에 은밀하게 유혹을 합니다. 이미 지형에 익숙한 군인들은 적절하게 대처를 하지만 처음 근무를 하는 군인들은 사전에 숙지시킨 주의사항에도 불구하고 산딸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평상이 지나다니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에서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 최전선의 지역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날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금도 딸기꽃이나 산딸기를 보게 되면 저를 대신해 죽은 듯한 전우를 생각하며 슬픔에 젖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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