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1.02.24 중학교 입학하는 딸이 점 빼려다 성형수술을 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61)
  2. 2011.02.12 눈물과 감동의 초등학교 졸업식 참석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68)
  3. 2009.11.03 시험 잘보는 비법 vs 공부 잘하는 방법 by 진리 탐구 탐진강 (88)
  4. 2009.07.04 교사 17년 친구의 말 "개천에서 용 안난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8)
  5. 2009.06.24 여중생 폭력 현장 목격한 증언을 들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43)
  6. 2009.05.18 5.18 광주항쟁, 어머니와 친구의 그 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0)


이맘 때만 되면 학생들에게 큰 변화가 있습니다. 졸업 입학 시즌이기 때문이지요. 학부모들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고민과 기대가 많은 시기입니다.

며칠 전, 큰 딸이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성형수술이라고 하니까 거창한 것 같은데요. 실상은 다리에 큰 점이 있었는데 그 점을 제거하는 수술이었습니다. 큰 딸은 어린 시절부터 왼쪽 다리의 정강이 장딴지 부근에 커다란 점이 있었습니다. 치마를 입으면 한 눈에 보이는 점이었지요.

그 동안 큰 딸은 점을 빼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치마를 입을 일도 많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점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도 못했겠지요.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큰 딸은 점차 다리에 있는 점이 고민이 됐던 모양입니다.

큰 딸이 중학교 교복을 처음 입은 후 가장 큰 고민은?

그러다, 최근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딸은 중학교 입학을 위해 엄마와 교복을 사러 다녀왔습니다. 어느 날, 제가 퇴근해 집에 오자마자 큰 딸은 교복을 입고 '짜~안'하고 나타났습니다. 드림하이에 나오는 여고생 교복과 흡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학생들은 교복 치마를 입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은 교복을 입은 후 다리의 큰 점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입학 전에 빼달라고 했다

큰 딸은 교복이 잘 어울렸고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교복 치마 아래로 보이는 다리의 점이 신경쓰였던 것이지요. 점의 크기가 2~3cm는 되어 보였습니다. 그 다음 날, 아내는 큰 딸과 함께 집 근처 병원을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냥 점을 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대개 작은 점은 간단히 레이저로 그 부분만 빼면 되는데 점의 크기가 크거나 뿌리가 있을 경우 성형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큰 종합병원 성형외과로 옮겨야 했지요.

사춘기 소녀 여중생이 된 딸의 콤플렉스와 미래를 위한 투자

그렇게 큰 딸은 생애 처음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다리의 점 부위를 아주 길게 째서 점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술이었습니다. 수술시간도 무려 1시간 정도 걸렸다니 그냥 단순한 점빼기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수술 후 큰 딸은 꼼짝없이 방에 엎드려 누워만 있었습니다. 서 있거나 걷게 되면 피가 몰려 수술 부위가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지요.

 다리의 점을 제거하는 수술 후 붕대를 감은 모습과 붕대를 푼 후 크게 수술한 자국이 보이는 장면이다

큰 딸은 3~4일이 지나면서 수술 부위의 붕대도 풀었습니다. 큰 딸은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앓던 이를 뽑은 것처럼 연신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큰 딸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돌에 심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녀시대, 가인, 2NE1, 아이유 등에 심취하고 댄스를 흉내내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거울을 자주 보기 시작했습니다. 외모에 관심이 커진 것이지요. 가끔 혼자서 고독을 씹기도 합니다.

아마도 사춘기가 도래한 듯 했습니다. 어느새 큰 딸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외모에 더욱 신경을 썼던 것입니다. 큰 딸이 다리에 점을 제거하는 수술에 들어간 비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성형수술 비용만 70만원이었고 다른 검사 비용까지 합치면 더 많았습니다. 성형수술은 의료보험 혜택이 없어 고스란히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도 큰 딸이 평생 고민할 문제였기에 빨리 수술해주는 것이 낫겠지요. 콤플렉스가 되면 안되니까요.

치아 교정도 만만치 않은 비용...10년후 비전 계획을 세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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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여중생 등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교복은 드림하이 스타일의 교복이다

한편으로, 중학교에 입학하면 갑자기 목돈이 필요합니다. 교복값, 책값 등 비용도 30~40만원 이상이 쉽게 나갑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학원 수업 몇개만 들어도 수십만원이 깨집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사교육비 부담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공교육만으로 안되는 교육 풍토 개선이 필요한데 학부모와 학교 정부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큰 딸이 수술을 한 것을 생각하니, 그 전부터 치아 교정을 받고 있는 것도 포함하면 상당히 많은 외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네요. 큰 딸과 작은 딸은 모두 치아가 고르지 못하고 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둘 다 교정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턱이 발달하지 못해 비슷한 상태라고 하더군요. 두 딸이 한꺼번에 치아 교정을 받다보니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돈덩어리인 셈이지요.

그렇지만 여자 아이들이 점이나 치아 문제 때문에 평생 고민하게 하는 것 보다는 빠른 시기에 교정 또는 수술을 받아 자신감있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 전후 시기가 가장 적당한 때라는 전문가 의견도 있더군요. 그 대신 두 딸은 아빠와 약속을 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기로 말입니다. 그리고 두 딸은 10년 후 비전과 꿈, 목표와 실천계획 등을 스스로 공책에 썼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마치 드림하이처럼. 꿈을 만드는 수술이었던 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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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큰 딸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곧 중학교 입학식도 있겠지요. 벌써 큰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습니다.

아빠로서 아이의 졸업식만은 꼭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의 과거 졸업식이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한지는 30여년이나 지났습니다. 당시 졸업식에는 큰어머니가 혼자 오셨지요. 일찍이 서울에 유학(?)왔던 저에게는 큰어머니가 그 역할을 대신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시골의 부모님은 참석할 수 없었지요.

그렇지만 부모님이 참석한 친구들을 보면서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모가 되고 큰 딸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맞이했으니 남다른 감회가 있었지요.

통장 아줌마가 중학교 졸업식에 가는 이유

아내와 함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파트를 나섰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통장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동네 주민들을 잘 모르는데 아내가 소개시켜 주더군요. 통장 아줌마는 인근 중학교 졸업식에 간다고 했습니다. 알몸 뒤풀이 졸업식이 사회문제화되자 통장들과 주민 자치대가 졸업식 질서 자원봉사에 나섰다고 하더군요. 경찰이 졸업식을 감시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지난해 알몸 뒤풀이 등 막장졸업식 이후 달라진 풍속도라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합니다. 도를 넘어선 일부 학생들의 일탈이 경찰의 감시 속에 치러지다니요.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되었지요. 학교는 학생 선생님 학부모 등이 주체가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

초등학교에 도착하니 강당에서는 졸업식 행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모습을 보니 몸집은 거의 어른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영양 상태가 좋다보니 키와 몸무게 등 발육도 빠른 편이지요. 그러나 초등학생들은 몸집은 크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입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찌는 아이들 모습(사진 김천뉴스 인용)

강당 졸업식에서 선생님에게 함성을 지른 학생들

드디어 졸업식 행사가 열렸습니다. 먼저 선생님 소개가 시작됐습니다. 몇 분의 선생님 소개가 조용히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 소개가 있자 갑자기 학생들이 "와~"하는 함성과 박수갈채가 터졌습니다. 큰 딸의 목련반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목련반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미리 준비한 감사의 표시였지요. 이후 선생님 소개 마다 아이들의 함성이 이어졌습니다. 사회를 보던 선생님은 연예인 행사같다고 재치있는 말을 하더군요.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보니 아이들의 순수함과 선생님의 열정은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강당은 공간이 협소해 부모님을 비롯 가족 참석자들은 각 반 교실에 설치된 TV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는 졸업식을 시청했습니다. 제가 교실을 방문한 것도 오래 됐습니다. 직장 일을 핑계로 엄마에게 미루고 그 동안 무심했던 탓이겠지요. 아빠로서 미안한 마음도 들더군요. 교실 벽면에 붙어있는 여러가지 아이들의 흔적을 보면서 옛 추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교실 책상 위 선생님의 지시봉과 종의 용도는?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사용하는 종과 지시봉이었습니다. 지시봉은 나무 막대기 모양이 회초리 역할을 하지 않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딸에게 물어보니 주로 아이들이 떠들 때 조용히 하라고 탁자를 두드리는 용도라더군요. 종도 마찬가지 용도였지요. 나무 막대기 지시봉은 아이들을 때리는 용도는 아니었습니다. 요즘 체벌금지에 대한 말이 많은데 이러한 지시봉 수준이면 좋지 않나 싶더군요.




졸업 축가 노래가 들렸습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30년전이나 노래가 똑같더군요. 강당 졸업식이 끝나고 아이들이 각 교실로 일제히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졸업 가운을 입은 큰 딸을 비롯한 아이들이 어른스러워 보였습니다. 큰 딸은 하루 내내 싱글벙글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잠시 아이들과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가족들을 교실 밖에 머물게 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눈물흘린 사연은?

조금 후 선생님은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밖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다 함께 소리쳤습니다.
"울지마! 울지마!"

나중에 큰 딸에게 물어보니 선생님이 인사말을 하다가 눈물이 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답니다. 그 때 아이들이 외쳤던 소리였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한 명 한 명 아이들에게 졸업장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한명씩 꼬옥 껴안아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을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주위 사람들을 숙연하게 하더군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주는 감동이었습니다. 요즘 학교 공교육이 문제라는 말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큰 딸의 학교에서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선생님과 학생이 스승과 제자로서 서로 사제의 정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30여년전 제가 졸업할 당시처럼 순수함이 넘쳤지요. 선생님과 학생들의 시간이 지나고 저는 큰 딸과 선생님이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도 전했지요.

여전히 아이들에게 희망인 교육의 현장은 학교

그 후 우리 가족들은 강당과 교정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함께 있던 작은 딸은 언니의 졸업식이 부러워 보였던 모양입니다. 항상 언니 보다 잘하려는 경쟁심이 많은 아이입니다. 뒤늦게 발동이 걸린 큰 딸은 중학교 배치고사를 잘봐야 한다며 최근에는 공부에 여념이 없습니다. 건강하고 밝게 자라준 두 딸입니다.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여전히 우리 사회는 초등학교부터 경쟁이 시작되고 학부모들의 교육열 집착은 컸습니다.


과거 30년전 졸업식 때 가장 먹고 싶었던 짜장면 대신에 요즘은 돈까스 등을 찾는 아이들이 많다

학교를 나온 우리 가족들은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큰 딸이 선택한 것은 돈까스였지요. 그렇게 큰 딸의 졸업식과 함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오후에 중요한 일이 있어 다시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우려했던 졸업식은 없었습니다. 강당에서 졸업식 행사가 너무 길었다는 것만 빼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정이 넘치는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눈물과 감동의 졸업식이었지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눈물을 흘리고 서로 격려와 감사를 나눌 수 모습이었지요.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런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도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아이에게 담임 선생님에 대해 물어봤더니 좋은 분이라고 했습니다. 썰렁 유머지만 재밌는 이야기도 해주시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군요. 왜 아이들이 그 선생님을 좋아하는지 눈물을 흘렸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믿고 따르고 선생님은 학생들을 사랑으로 교육하는 학교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들과 선생님이 서로 불신하고 미워하는 곳도 많을 듯 합니다.


요즘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도 많습니다. 학생들이 너무 버릇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학생 체벌금지에 대한 찬반논란도 있습니다. 모두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학생들과 젊은이들에 대한 걱정은 계속 있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발전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은 개선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범이 되어야 할 어른들이 정말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부모는 '내 새끼 이기주의'에 빠져 교권을 무시하지 않았는지. 다른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지 않았는지, 사회 공동체를 위한 교육에 관심은 있었는지 등을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물려 줄 책임은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는 졸업식이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 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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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요즘은 학생들의 중간고사 시즌인 것 같습니다. 대학 수능 시험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시험에 든 계절인 셈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은 매일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큰 딸도 예전 보다는 열심히 학습 모드로 전환하는 편입니다. 작은 딸은 시험 기간이 되면 먼저 복습에 집중하곤 합니다. 작은 딸에게 자극받은 큰 딸도 공부에 열중하게 됩니다.

얼마 전 아내에게 아이 공부가르치는데 참견하다가 '앞으로 당신이 가르쳐!'라는 핀잔을 들었던 저는 최근 큰 딸의 공부를 거들어주고 있습니다. 모처럼 예전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해보니 만만치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공부가 이해력 위주가 많아 과거 어른들 세대의 단순 암기 공부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공부가 인생과 행복의 기준은 아닐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의 근본인 공부를 잘하는 것이 필요조건일 수 있습니다. 사실 공부를 잘하는 데 왕도는 없겠습니다. 수업시간에 충실히 하고 꾸준히 매일 예습 복습을 잘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열심히만 한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은 아닌 만큼 나름대로 학창시절에 터득했던 공부하는 방법과 시험보는 비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학교에서 평소 시험이나 수능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자랑은 아니지만 과거 학창시절에 과외나 학원을 가지않고 혼자서 자습을 통해 상위권을 유지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 비법을 정리하는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부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하라

학교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핵심적인 내용을 잘 기록하고 집중해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대체로 성적이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친 내용이 결국 시험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수업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선생님에게 질문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특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학교 수업만 잘 소화해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교 수업을 충실히 해야 학원이나 과외 수업에서도 효과가 증대될 수 있습니다.

예습 복습은 매일 반드시 하자

학교 수업을 충실히 하면서 예습 복습만 잘해도 우등생 대열에 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 학교 수업에 앞서 미리 예습 공부를 하고, 수업이 끝난 후 집에서 그 날 학습을 다시 복습하는 습관은 공부 잘하는 비법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바쁜 일이 있어 예습 복습을 하지 못한 경우라도 당일 수업 전에 단 10분이라도 복습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그 날 수업을 알차게 배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예습 복습을 하면서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어른들에게 질문해 반드시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영어와 수학은 꾸준히 공부하라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장 취약할 수 있는 과목이 영어와 수학인 것 같습니다. 매일 꾸준히 공부해두지 않으면 단기간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수업을 하기 때문에 기초를 튼실히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기초가 부족하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영어와 수학은 성적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큽니다. 다른 과목은 벼락치기로 공부가 가능하지만 영어와 수학은 벼락치기로 실력을 급신장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어와 수학은 매일 매일 꾸준하게 공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영어의 경우 단어나 문장을 외우면서 응용능력을 키우는 것이 좋고, 수학은 원리를 이해하면서 문제 풀이를 많이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생활화하자

'사람은 독서로부터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대부분 독서광이었습니다. 우리시대 '존경받는 지성인'으로 불리는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의 경우 어릴 때 활자광일 정도로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독서에 빠져 교과서에 다소 소홀히 했던 안철수는 초등학교 성적은 안좋았지만 고등학교 졸업 시에는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독서의 힘이었습니다. 독서와 함께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해주고 사고를 깊게 해주는 좋은 습관입니다. 요즘 전문가의 기본은 글쓰기 실력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시대인 것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동기부여를 하라

저는 어린 시절에 공부가 하기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이 더 싫었습니다. 산골 농촌 마을에서 아이들은 노동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난을 벗어나는 길은 공부 밖에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일찍 유학가서 도시 학생들과 공부로 실력을 겨뤄야 했습니다. 목표가 있었기에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학생 시절 부터 어떤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목표가 없이 무작정 공부한다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지칠 수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목표를 설정해보는 일이 선행되면 더욱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시험 성적 잘나오는 비결이 있을까?

시험 일정이 발표되면 공부 계획을 세워라

학교에서 시험 일정이 발표되면 먼저 시험 공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시험 과목들을 사전에 공부를 시작해 잘 준비해 둔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먼저 국어 영어 수학 등 중요 과목은 시험 일정이 발표되면 꾸준히 매일 공부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수학이나 과학은 교과서 공부를 충실히 하면서 문제집을 많이 풀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를 비롯한 암기 과목은 내용을 이해하면서 공부하면서 연대기 순으로 암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국영수를 꾸준히 준비한다면 암기 과목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공부하는 방법이 좋겠
습니다.

중요 핵심 내용을 표시하고 요약해 두자

교과서나 참고서를 공부하면서 중요한 핵심 내용은 밑줄이나 별표를 해두는 것이 다시 복습할 때 시각적 효과와 함께 시간 절약에 좋습니다. 그리고 학습 노트에 요점을 메모해두면 시험 전 다시 복습할 때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수학이나 과학은 문제집을 풀어보고 틀린 문제는 별도 표시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틀린 문제는 다시 복습해 보는 것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예상 문제를 함께 만들어보고 서로 문제를 내고 맞추는 게임을 해보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시험 하루 전 날에는 집중해 공부하자

사실 아무리 매일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시험 전 날에 집중해 복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루 전 날의 집중력이 곧 시험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을 벼락치기 공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시험 전 날을 잘 활용해 공부를 합니다. 시험 하루 전 날의 기억력이 다음 날 시험에 영향을 많이 끼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암기 과목의 경우는 시험 전 날에 집중해 소리내어 읽으면서 암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한 내용도 다시 복습해 봐야 합니다. 국영수나 과학은 이미 공부한 내용 중 틀린 문제나 요약 정리한 노트를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 전 당일과 10분전 복습을 꼭 하자

시험 당일에도 복습은 중요합니다. 시험 전 날에 일찍 잠자고 시험 당일에는 일찍 일어나 집에서 복습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새벽에 공부한 내용은 기억력을 증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기 10분 전도 잘 보내야 합니다. 친구들과 떠들고 놀기 보다는 자리에 앉아서 집에서 공부했던 중요한 요점을 기록한 노트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10분 전 기억은 확실하게 시험에서 효과를 발휘합니다. 노트에 요점 정리한 내용 중에서도 핵심만이라도 다시 한번 집중해 읽어보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한 셈입니다.

시험 중에도 집중력을 잃지말아야 한다

시험을 치르는 시간 중에도 집중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시험 문제지를 받아들면 우선 전체 내용을 한번 훑어 보고 어떻게 시간을 안배해 문제를 풀어갈지 준비를 합니다. 어려운 문제 문항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한 문제에 시간을 너무 많이 쏟지 말며 침착성을 잃지말아야 합니다. 주위 사람이나 선생님에 신경쓰지 말고 문제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문제는 끝까지 잘 읽고 답변 문항을 읽어야 합니다. 문제를 모두 풀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남았으면 다시 한번 실수한 것이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시험 문제를 일찍 끝냈다고 먼저 나가지 말고 시험이 종료되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객관식 시험 잘 보는 10가지 비법

- 처음 문제부터 끝 문제로 순서대로 풀어라!
- 한번 적은 답이 확실히 틀리지 않는 이상 고치지 말라!
- 정확히 고를 수 없다면 틀린 것부터 지워나가라!
- 너무 쉽다고 생각되는 문제일수록 다시 한번 더 봐라!
- 정답이 분명하더라도 보기 예문을 끝까지 읽어라!
- 질문이 부정인지 긍정인지를 명확히 확인하라!
- 너무 어려운 문제는 넘어가고 쉬운 문제부터 풀어라!
- 질문의 요지나 핵심단어에 밑줄을 그어 표기해라!
- 문제를 꼼꼼하게 끝까지 탐독해라!
- 답안지에 정답이 밀리지 않고 제대로 표기했는지 다시 한 번 검토해라!

시험 잘보는 비법이나 공부 잘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습관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험 기간 중에는 가급적 컴퓨터나 TV를 꺼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하기 이전에 먼저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항상 TV만 보면서 아이에게 공부하고 말한다면 아이가 공부를 하겠습니까? 먼저 부모가 솔선수범해 책읽는 모습을 늘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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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우리네 사람들의 세상 살이에 있어 친구는 소중합니다. 며칠 전 고등학교 동문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현재 고등학교 교사인 친구도 있었습니다. 교사인 친구는 벌써 17년 동안 교편을 잡았습니다. 소주 몇 잔이 오가면서 친구는 요즘 교육의 현실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교육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관심 사항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특히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저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교육 문제는 관심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친구는 고등학교에서부터 벌써 학생들의 미래가 이미 정해져 버린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가장 선망의 대상은 역시 특목고였습니다. 외고(외국어고)나 과학고 그리고 자사고(자립형 사립 고등학교)가 대표적입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소위 일류 대학을 갈 수 있는 요건을 갖춘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특목고와 자사고는 어떤 학교일까 찾아봤습니다.
특목고란?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를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0조에서는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와는 특목고에서는 과학, 외국어, 농업, 해양, 예술, 체육 등 각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를 미리 학생들에게 습득시켜 그 분야의 전문가를 조기 양성을 하는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체육고등학교, 국제고등학교 등의 특목고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법규정상 한국과학영재학교는 특목고가 아니지만, 입시목적의 분류편의상 특목고로 간주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학부모들이 특목고 설명회에 대거 몰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입시 교육 열풍을 실감케 한다 

사실 특목고는 일반 인문계 고교와 달리 특수 목적의 여러 학교를 지칭하는 말인데 최근에는 특목고를 일반적으로 과학계열인 과학고등학교와 외국어계열인 외국어고등학교를 지칭할 때로 변질되어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 과학고와 외고로 대표되는 특목고는 입시 위주의 교육기관으로 변질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특목고를 명문 입시 고등학교로 보는 현상이 나타나고 특목고를 보내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고액 과외를 하는 부모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사고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는 정부 지원금이 없이 독립된 재정과 독립된 교과과정으로 운영되는 학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는 고등학교 평준화 이후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며, 학교 재정은 대부분 학생 등록금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교육이 가능하지만,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학생의 부담이 큰 편이기 때문에 귀족 학교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현재 6개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로는 민족사관고등학교, 상산고등학교, 해운대고등학교, 현대청운고등학교, 광양제철고등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최근 자사고로 지정된 하나고등학교는 서울시 은평구에서 2010년 개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교사 친구는 특목고와 자사고에 이어 그 다음은 서울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강북의 목동 소재 고등학교나 강북의 일부 명문 고등학교가 그 다음 순서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명문 대학을 꿈꾸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입시 위주 이기적 인간을 양산하고 무한 경쟁을 유발하는 고등학교의 서열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이는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교육 이야기를 계속 하던 중 친구의 한 마디가 뇌리를 강타했습니다.
친구 :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난다'고 했지?
탐진 : 그렇지.

친구 : 요즘에는 '개천에서 용 안난다'고 해. 특목고나 강남과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 극복이 어렵지.
탐진 : 정말 교육이 문제구나.

친구는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는 목동의 고등학교와 일반 보통 고등학교를 비교했습니다. 목동의 고등학교 1개반에 1등급이 10명이면, 일반 고등학교는 전체 학년 중 10명이 1등급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특목고나 강남의 고등학교는 1개반의 1등급이 10명 이상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이 처럼 엄청난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학교별 성적도 있지만 전국 수능 점수가 더 많이 반영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사 17년차인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슴이 답답해 왔습니다. 과거에도 학교별로 수준 차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고등학교 서열화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목동의 부모들은 강남으로 이사가려 하고 강남 부모들은 외국 유학을 보내는 세태라는 말도 있습니다. 강남은 부모나 아이들의 신분 과시의 장이기도 하지만 과열 교육 문제를 일으키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곳인 셈입니다. 부의 대물림은 교육으로 계속 진화하고 돈 없는 가정에는 허리가 휘는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특목고를 위한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초등학교 어린이 시절부터 매일 하루 종일 이기적 경쟁 위주의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현 정부 들어와 입시 열풍을 고조시키는 일제고사와 같은 교육 정책을 표방하면서 더욱 과열되고 있습니다. 부모들의 이기적 욕심도 아이들을 어린 시절부터 입시를 위한 성적 기계로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4~6학년을 대상으로 전국 일제고사가 12년 만에 부활했다

과거에는 시골 마을의 학생들에게 "개천에서 용난다"고 하며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개천에서 용 안난다"고 하니 작은 희망마저 없어져 버린 셈입니다. 정부의 이기적인 성적 지상주의 인간을 만드는 정책이나 부모의 자기 자식만을 위한 이기적 욕심으로 인해 아이들이 병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점수만 잘 따는 인간이 아니라 정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쉽습니다.

요즘 입시 지옥에서 고생하는 학생들에게 안영미 버전으로 위로를 드립니다.
"사회와 부모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니들이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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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최근 잘 알고 지내는 P씨를 만났습니다. 올해 여자중학교에 갓 입학한 딸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어느 날 신촌 지역에서 P씨는 여중생들의 폭력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의 증언을 들어봤습니다. P씨가 겪은 황당한 여중생 폭력 현장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P씨가 신촌의 길거리를 걷는데 어떤 건물 뒷골목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뒷골목 쪽을 보니 여중생들이 몇명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듯 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한 무리의 여중생들이 또 다른 여중생들을 무릎을 꿇려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교복도 입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여중생 딸이 있던 터라 P씨는 폭력 현장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타를 한 가해자 여중생들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훈계를 했습니다.
"학생들, 이러지 마. 왜 그러니?"
"아저씨, 왜 참견이세요."

"너희들 몇학년이니?"
"알어서 뭐하게요? 참 나."

P씨는 무릎꿇고 있던 피해자 여학생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여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너희들은 몇학년이니?"
"1학년이요."(작은 목소리로 눈치를 보며)

"저 여학생들은 누구니?"
"몰라요."

"왜 너희들을 때린 거니?"
"그냥 기분 나쁘데요. 이유없이 때려요. 그냥 길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사진>부평의 모 여중생이 동급생을 무차별 구타하는 장면이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P씨는 뒤쪽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습니다. P씨에 뒤에 있던 다른 가해자 여학생이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태연하게 P씨를 쳐다보며 담배를 피웠습니다. P씨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학생, 지금 뭐하는 거야?"
"아저씨가 뭔데? 뭔 참견이야."

"뭐야. 니네들 안되겠구나."
"칫. 웃기네."

P씨는 화가 나서 대드는 가해자 여학생을 한 대 쥐어박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이 욕을 하면서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갔습니다. P씨는 혹시나 다른 남자들을 부르러 가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났습니다. 재빨리 뛰어가서 그 여학생을 붙잡았습니다. 그 사이 다른 가해자 여학생들은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P씨는 우선 피해자 여학생들을 큰 길로 도망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P씨는 가해자 여학생에게 "다시는 이런 짓 하지마라."고 말하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여기까지 P씨로부터 들은 실제 폭력 현장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P씨는 혼자서 여러 불량 여중생들을 만나는 것이 겁도 났다고 합니다. P씨는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라서 평소에는 지나쳤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또래의 여중생 딸이 있는 아버지로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P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도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서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생에서도 조폭을 흉내 낸 구타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요즘 여중생들의 폭력이 오히려 남학생들 보다 심각하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부평의 모 여중생이 친구를 무차별 구타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여중생 2학년들이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아역배우 출신 여중생인 H양이 학교에서 3시간 동안 친구를 구타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지난 2006년에는 당시 여중생 3학년이 동급생의 집에서 마구 폭행하다가 교복을 강제로 벗겨 휴대폰으로 촬영해 유포하는 충격적 사건도 있었습니다. 법원은 가해자들에게 피해 학생과 그 가족에게 7천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올해에도 10대 여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알몸 상태로 구타한 동영상이 공개돼 사회적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하는 등 여학생등의 폭력이 심각합니다. 물론 남학생들의 폭력 사건도 많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비해 여중생을 비롯한 여학생들의 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잔혹해 졌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요즘 욕이 아니면 대화가 안되는 학생들의 언어습관도 심각합니다.

경제 불황의 여파에 따라 가정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럽고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충격적 폭력 사건도 급증하는 것 같습니다. 이같은 학생들의 폭력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발단일 수 있습니다. 또한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구조적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성공의 기준을 돈이나 지위로 판단하는 사회로 인해 사회 전체가 병들고 있는 셈입니다. 학생들에게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소중함과 인성을 강화시켜주는 교육이 선행되었으면 합니다. 가정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전한 가치관 형성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반성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어른들부터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가치관과 인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솔선수범해야 할 때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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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느덧 30년이 지났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그 날이 다시 오면. 그 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큰집에서 기거하며 일찍이 서울 유학을 했었습니다.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에 총격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이웃 아줌마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은 민주화 인사들을 체포하고 스스로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장갑차와 군인들의 서울 입성,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저는 중학교를 가려면 늘 청와대 앞 길을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그 길에는 장갑차가 보였습니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도 보였습니다. 5월도 그랬습니다. 당시는 왜 군인들과 장잡차가 청와대 앞에 그토록 많이 지키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저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1979년 전두환은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1980년 체육관에서 대통령에 오른다]

오월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큰집에 전남대에 다니던 친척 형이 올라왔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 형은 도무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큰집의 다락방에 늘 숨어지냈던 것입니다. 언제 닥칠지 모를 군인들의 검거를 피해 다락방에 하루종일 숨어있었습니다. 저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왜 그랬을까? 당시는 광주 지역 대학생이면 모두 잡아갔던 시절이었습니다.

문학소년이었던 착한 친구가 5월이 오자 눈물을 흘렸다

1980년대 중반, 저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전두환 군사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서야 1980년 5월 광주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가에는 소위 '짭새(비밀 경찰)'들이 출몰하던 시기였습니다. 대학생들은 군사 독재에 항거해 독재와 맞서 싸웠습니다. 항상 대학 캠퍼스에는 최루탄이 난무하고 백골단 특수경찰들이 교정에 난입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대학교 입학식 장에 최루탄이 날아들면서 대학 생활을 처음 시작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 5월 그 날의 광주 비디오도 처음 보게 됐습니다. 대학생들이 몰래 숨어서 비디오를 봐야만 했습니다. 언제라도 군사 정권은 대학생들은 강제로 잡아가던 살벌한 철권통치의 시절이었습니다. 군사정권에 항의하는 대학가의 시위는 5월을 맞아 치열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의 5월, 서울의 대학가는 광주출정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1980년 그 시절에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항상 조용히 책만 읽던 문학소년이었습니다. 문인을 꿈꾸던 착한 친구였습니다. 대학가에 계속 되던 시위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던 친구였습니다. 그런 친구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1980년 당시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 항쟁이 전국적으로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친구는 1980년 5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리고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친구는 광주 시내에서 의료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그 당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했습니다. 어린 중학생의 눈으로 우리나라 군인들에게 의해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부상을 당해 피를 흘리거나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은 큰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몇 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이 오면서 조용하던 친구는 처음으로 시위에 나섰습니다. 전투경찰은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지 못하도록 대학들을 완전 봉쇄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전투경찰들의 포위망을 뚫고 서울 도심으로 진출했습니다. 군사독재의 타도와 민주주의를 목놓아 외쳤습니다. 군사독재에 대항한 전국 대학가 민주화 항쟁의 시작입니다. 
 
산골의 어머니를 찾아온 대학생들 '배가 고파요'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낭만이 아닌 시대적 갈등 속에서 보내고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대학생이 된 저에게 처음으로 1980년 어느 날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첩첩산중에서 농사를 짓고 사시는 어머니가 어떻게 1980년 5월을 알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철저하게 5월 광주는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진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언론도 군사정권에 의해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어머니가 저녁 밥을 짓고 있는데 5~6명의 대학생들이 집에 찾아왔습니다. 허름한 복장에 몰골이 말이 아닌 젊은이들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배가 고픈데 밥 좀 주세요."
"젊은이들은 누구세요?"

"저희는 대학생들입니다. 광주에서 산을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학생들."

어머니는 그 대학생들을 통해 5월 광주에서 공수부대 군인들에 의해 자행됐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알게 됐던 것입니다. 대학생들은 당시 무장 군인들의 총칼로부터 살아남기위해 산등성이를 계속 걸어서 산골 마을까지 왔습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산골에 도착한 학생들은 무작정 마을 이장님 집을 찾아 밥 좀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1980년 광주, 공수부대원들이 한 시민을 곤봉으로 내려치고 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한번도 광주의 5월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생이 되고나서야 처음으로 그 당시의 대학생들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그 당시 대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1980년 5월이 지나갈 무렵에 큰집의 다락방에 전남대에 다니던 친척 형이 숨어지내야 했는지, 친구는 그 당시 무엇을 목격했고 왜 눈물을 흘리는지 과거의 역사가 하나씩 조각이 맞추어지면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이미 30년이 지난 광주의 그 날 이야기로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치열한 1980년대 중반의 대학 시절을 보냈고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화를 쟁취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직장인입니다. 다시 5월 그 날이 오면, 지난 1980년 그 날에 대한 세가지 기억들이 오버랩되어 지나갑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5월 그 날의 역사입니다. 아직도 그 역사는 현재 진행행인지 모를 일입니다.

[참고 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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