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2.25 강호동-유재석 위협 이수근-김병만 인기 놀라운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
  2. 2010.11.15 1박2일 이만기와 감동대결, 강호동이 눈물 흘린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41)
  3. 2009.12.20 강심장 강호동의 눈물이 가슴뭉클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3)


강호동이 유재석을 제치고 '2010년 올해를 빛낸 개그맨' 1위에 등극했습니다. 한국 갤럽 조사연구소에서 전국 13세 이상 남녀 1701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조사한 결과였습니다. 강호동은 그 동안 갤럽조사에서 매년 2위에 머물러 왔었지요. 부동의 1위 유재석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재석은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줄곧 1위를 차지했고 강호동은 만년 2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강호동은 2010년에 드디어 감격스런 1위에 오른 것입니다. 갤럽 조사가 시작된 2005년 이래 6년만에 처음 달성한 1위입니다. 강호동의 뚝심과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민속 씨름 천하장사가 이제는 진정한 예능 천하장사가 된 것입니다.

'2010년 올해를 빛낸 코미디언/개그맨' 갤럽 조사 결과를 살펴볼까요. 1위 강호동은 43%를 차지했고, 유재석은 38.1%로 2위에 머물렀습니다. 강호동이 현재 KBS <해피 선데이–1박 2일>과 MBC <무릎팍 도사>, SBS <강심장>, <스타킹> 등 지상파 간판 예능 프로그램의 메인 MC를 맡고 있는 가운데 시청률도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1위의 결과는 어느정도 예상도 됐습니다. 사실 1박2일과 강심장에서 강호동을 도와준 이승기의 역할도 큰 힘이 됐지만요.

강호동, 6년만에 유재석 제치고 개그맨 1위 등극 이유 있다

반면 유재석은 2005년, 2007년, 2008년, 2009년 조사에서 모두 강호동에 앞서 1위을 차지했지만 올해는 예년에 비해 다소 주춤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유재석은 KBS <해피투게더>, MBC <무한도전>, <놀러와>, SBS <런닝맨> 등의 메인 MC로 활약하고 있지만 '패밀리가 떴다'의 폐지에 이어 '런닝맨'이 예상보다 부진한 시청률로 고전한 측면이 있지요.


이번 조사결과 강호동은 10~20대를 제외한 30대 이상 모든 연령대에서 고르게 1위를 차지했으며, 특히 50대 이상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지지(48.4%)를 받고 있는 점이 주목됩니다. 유재석은 10~20대 젊은 층에서 강호동을 앞섰으며, 특히 여성팬의 지지가 두드러지고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남자들은 강호동(43.4%)에게 상당한 차이로 유재석(34.5%)을 지지를 보냈으며 여자들은 유재석(42.6%)이 근소한 차이로 강호동(41.7%)을 앞선 결과였습니다. 강호동이 여자들에게도 인기도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강호동 30대 이상 고른 지지, 유재석 10~20대에서 인기

다만 유재석은 10대(38%)와 20대(43.7%)에서 강호동이 차지한 33.2%와 34.3%에 비해 꽤 앞선 결과를 보여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비교해보면 강호동이 1박2일에서 고른 연령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유재석의 무한도전이 10대 20대에게 더 어필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해 집니다. 갤럽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재석과 강호동은 상호 보완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 봐야 하겠습니다. 한편 연말 방송3사 연예대상에서 두 사람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이번 조사결과 비교는 흥미롭겠지요.

                             프로 씨름 천하장사 강호동은 이제 방송예능 천하장사가 됐다

그 다음으로는 이수근(31.9%), 김병만(15.4%), 이경규(4.6%)가 각각 3위~5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박명수, 신봉선, 박미선, 유세윤, 김신영이 6~10위를 이어갔습니다. 박명수가 톱5에서 밀린 것이 눈에 띕니다. 박명수가 캐릭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갤럽조사에서 김제동이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만약 조사에 이름이 포함됐다면 톱5 내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개그맨 링킹 3위 이수근 31.9%, 4위 김병만 15.5% 급상승 저력

그런데 이번에 이수근이 무려 32%에 달하는 지지로 3위에 오른 것은 놀라운 결과입니다. 이수근은 2008년 5.5%로 처음으로 톱5에 이름을 올린 이후 2009년 11.3%(3위)에 이어 올해에는 31.9%로 인기도가 급상승한 것입니다. 이수근은 지난 1년 사이 인기도 증가분(20.6%)은 최고로 수직상승한 셈입니다. 지난 5년간 유재석-강호동 쌍두마차 체제 속에서 1위 경쟁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수근이 32%의 지지율로 톱3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은 예상을 넘는 그 이상의 결과로 보입니다.

그 만큼 이수근의 활약이 올해 두드러졌다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강호동 유재석 이수근 3강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강호동 유재석의 아성에 비해 이수근은 다소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수근의 꾸준한 상승세를 감안하면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한 것으로 봐야 할 듯 합니다.

이수근 개그맨 성공 뒤에 김병만 있었다

이수근의 성공은 절친 김병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과거 이수근과 김병만은 개그맨 시험을 위해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러나 이수근은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던 개그맨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져 개그맨의 꿈을 접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수근은 개그맨의 꿈을 포기하고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했고 당시 수련계에서는 알아주는 강사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김병만은 이수근이 개그맨을 하지 않겠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팀을 짜 오디션을 봐 합격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림남녀' 코너입니다. 달인의 전신이라 할 만도 합니다. 이후 김병만은 이수근을 설득하기 위해 그가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하고 있는 수련회에 직접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수근은 당시 김병만의 끊임없는 설득에 다시 개그맨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던 것이지요. 결국 이수근은 개그맨 공채에 합격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수근에게 김병만은 참 고마운 친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눈물겨운 이수근과 김병만의 우정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김병만의 상승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김병만은 15.4%라는 안정적 지지율로 4위에 입성한 것입니다. 김병만은 이수근과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급상승세는 상호 시너지효과를 내지 않나 싶습니다. 김병만은 이전 조사결과에서는 톱5에 이름도 없었습니다. 김병만은 지난해 9위에서 5계단이나 뛰어올라 올해에는 4위로 등장해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그콘서트 달인을 비롯한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 큰 활약을 펼친 결과일 것입니다.

이수근-김병만 단신 극복 우정, 성실한 인간승리의 드라마

이수근과 김병만의 급상승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둘 다 유명 개그맨들에 비해 비주류의 한계를 극복하고 올라온 노력형 개그맨이라는 것입니다. 이수근은 1박2일에 처음 투입됐을 당시 그다지 활약을 못하고 운전기사로 겨우 존재감을 보여주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매사에 열심히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로 인해 1박2일의 일꾼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앞잡이 캐릭터로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이수근은 최근에서 1박2일의 입담꾼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정도가 되었지요.

                              단신의 절친 이수근과 김병만은 우정의 연말 콘서트를 연다

김병만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욱 처절하게 분투했습니다.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에서 어느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도전을 성공해냈습니다. 더욱이 김병만은 단신의 키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투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신인 이수근은 자신의 키를 164.7cm라고 밝히며 김병만은 자신이 내려다 볼 정도라고 한 바 있습니다. 김병만은 키에 대해 항간에는 160cm도 안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김병만이 작은 키에도 신체의 한계를 극복해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난 추석연휴 김병만의 달인쇼가 시청률 1위를 기록한 것은 그간 노력의 결과이자 시청자들의 보답인 셈입니다. KBS 연예대상 후보에서 김병만 수상 가능성도 제기될 정도이니까요.

이수근과 김병만은 훤칠한 용모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청산유수같은 말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카리스마가 넘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수근과 김병만은 인간미가 넘치고 사람들을 기분좋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항상 노력하는 성실함이 돋보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서민이나 루저의 애환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있지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진정성이 대중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수근과 김병만의 인기 급상승은 이유있는 선택인 셈입니다.

세상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이수근-김병만에게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연말 12월 31일에 두 사람은 '이수근-김병만 쇼'를 열 계획인데 인간승리의 모습이 빛나는 이벤트가 아닐까 기대해 봅니다. "대충 웃길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이수근과 김병만. 이수근-김병만의 2010년 마지막 무대는 그들이 지금껏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판이 될 것입니다. 늘 성실하게 노력하는 이수근 김병만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어려웠던 시절의 초심을 잃지말고 주변의 이웃들도 돌아보는 따뜻한 인간미로 계속 정진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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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이 2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던 순간, 버라이어티 예능프로 1박2일 방송에서는 이만기와 강호동의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박태환은 아시아신기록을 깨고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예선에서 다소 불안했지만 중국 경쟁 상대를 여유있게 제치고 승리의 포효를 날렸습니다. 박태환의 기록은 올해 기록중 세계 1위였습니다.

박태환이 금메달을 확정짓고 두 팔을 벌려 함성을 지르는 장면은 마치 강호동이 모래판에서 포효하는 듯한 장면과 오버랩되어 스쳐지났습니다. 강호동이 씨름판의 황제 이만기를 처음 무너뜨린 것은 1989년 7월 11일이었습니다. 더벅머리 19세 소년 강호동은 혜성같이 등장해 백두장사 준결승에서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 이만기를 2대 0으로 완승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들고 승리의 포효를 날렸던 것입니다.

당시 강호동의 승리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강호동은 언젠가 자신의 영웅 이만기를 이길 날만을 손꼽아 준비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강호동은 씨름에 입문한 중학생 때 3개월간 이만기가 연습하던 곳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지요. 강호동은 이만기가 '꿈같은 존재'였고 '마음 속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때 이만기의 싸인을 받아 친구들에게 50원에 팔기도 했다는군요.

박태환의 금빛 포효에서 강호동 모습이 스쳤던 이유

                박태환이 금메달을 획득한 후 포효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호동의 모래판 장면이 스쳤다

무려 6년간 이만기의 경기를 관찰했던 강호동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백두장사 준결승 경기였습니다. 그 동안 이만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며 만반의 준비를 해왔던 강호동이었습니다. 강호동은 이만기를 본 순간 심장이 떨려 눈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강호동은 이만기를 이겼습니다. 강호동에게 영웅이었던 이만기를 모래판에 쓰러뜨리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천하장사 강호동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만기는 강호동이 등장하던 그 해 이미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정점에서 은퇴를 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만기는 은퇴를 미뤘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도 있지만 무엇보다 씨름계의 후배 양성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만기 자신의 대업을 이어 씨름판의 인기를 후계자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가 바로 강호동이었습니다. 이만기에 기가 눌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러 스스로 근성과 집념을 보여주었던 강호동이었습니다.

이만기는 7년간 10번의 천하장사와 47회의 씨름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프로씨름의 황제였습니다. 이만기의 승률 84.9%는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대변해 줍니다. 이만기는 1991년 3월, 화려했던 씨름판을 떠나며 은퇴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모래판을 떠나지만 강호동이 지키는 프로씨름이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겠지요. 우리나라 전통 씨름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사나이 이만기-강호동 시대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이만기가 영웅이었던 소년 강호동의 집념과 천하장사 등극


그 후 이만기는 씨름 후배 양성을 위해 인제대 씨름단을 맡아 고군분투했습니다. 지금은 부교수 위치에 있으니 대학에서도 자리를 잡은 셈입니다. 강호동도 홀연히 씨름판을 떠나 개그맨이 됐습니다. 당시 씨름선수가 코미디언 또는 개그맨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지요. 강호동과 더불어 박광덕도 코미디에 도전하던 시기이기는 했지만요. 강호동은 이경규의 도움으로 코미디계에 입문한 후 승승장구하면서 예능계의 천하장사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강한 집념과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겠지요.

그리고 이만기와 강호동은 다시 만났습니다. 1990년 마지막 대결 이후 20년만의 재대결입니다. 1박2일이 울릉도로 떠나려는 여행이 강풍으로 어려워지자 이만기를 찾아가는 '즉흥여행'을 선택한 것이 계기가 된 것이지요. 강호동은 현역 시절에 이만기와의 대결에서 4승 1패로 우세했습니다. 이만기의 전성기가 지난 이후 강호동이 등장했으니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그런데 이만기가 강호동에게 승리한 1승이 마지막 경기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만기 강호동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재대결인 셈이었습니다. 이만기는 비록 후배지만 현재 씨름 감독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고 강호동은 과거 마지막 경기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는 찬스였습니다. 항상 웃음이 넘치던 강호동이 이만기와 샅바를 다투는 장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강호동에게 있어 선배를 떠나 승부욕을 불태웠던 것이지요. 이만기도 마찬가지로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습니다. 어쩌면 이만기와 강호동이 재대결을 한 것은 침체된 씨름을 살리고 후배들을 위한 마음에서가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강호동은 모래판 황제 이만기를 롤모델로 천하장사가 됐다

3전 2선승제로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예능이 아닌 정식 씨름경기나 다름없는 라이벌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샅바를 잡고 모래판에 선 이만기와 강호동의 얼굴에서는 금방 땅방울이 흘러 내렸습니다. 잔뜩 긴장한 얼굴은 붉은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첫 판은 이만기의 승리였습니다. 순식간에 이만기의 되치기에 강호동이 쓰러진 것입니다. 짧은 경기에도 강호동은 가뿐 숨을 내쉬었습니다.

모든 힘과 기술 그리고 두뇌싸움에 기운을 빼앗긴 것이겠지요. 이윽고 두번째 판이 시작되자 강호동은 특유의 들배지기로 이만기를 모래판에 쓰러뜨렸습니다. 현역 시절에 강호동이 경쟁자들은 물리치던 기술이었습니다. 강호동은 유연성있는 허리로 수많은 씨름선수들을 들배지기와 이어지는 회전기술로 제압해 모래판에 눈히곤 했었습니다.

이만기와 강호동의 천하장사 재대결 스포츠정신 감동과 눈물

마지막 판은 이만기와 강호동의 힘 대결이 압권이었습니다. 먼저 들배지기를 시도하다 이만기의 방어에 막혔고 이내 이만기는 강호동을 들배지기에 이어 중심을 무너뜨리고 마지막 안간 힘을 다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쓰러뜨리느냐 넘어지지 않느냐 샅바를 잡고 힘대결로 한참 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중심이 무너진 강호동은 모래판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만기와 강호동은 모래판에 함께 누워 감동의 포옹을 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강호동은 이만기에게 90도 각도 인사를 하며 "제가 졌습니다"라며 깨끗이 승복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이승기 이수근 은지원 김종민 등 1박2일 멤버들은 놀라운 경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강호동의 말대로 이만기는 전설이 아니라 현실에 살아 있었습니다. 이만기는 20년 만에 샅바를 잡아 본 게 남달랐다며 회상에 잠겼고 '강호동과 평생에 다시 한 번 씨름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만기는 "20년 만에 잡아보니까 대단하다"며 강호동을 치켜세웠습니다.

그런데 강호동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강호동은 20년이 흘러 샅바를 잡았지만, 두 번째 판 샅바를 잡을 때 이만기 선배가 양보하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수였던 시절의 느낌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호동은 이만기가 첫 판을 이기고 두 번째 판에 자신을 배려해 준 것에 감사를 전했습니다. 강호동은 대인배 이만기의 배려에 감사와 더불어 살짝 눈물을 보였습니다. 

강호동이 선배 이만기에 대한 감사는 여기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강호동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무릎을 꿇고 이만기의 씨름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강호동은 선배이자 영웅인 이만기에 대한 깍듯한 예를 다했습니다. 강호동은 
"아, 이런 분을 내가 존경해왔고 이런 분이 내 씨름의 선배님인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고 했습니다. 이만기도 강호동의 근성이 없었으면 씨름계와 예능계의 강호동은 없었을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강호동의 영원한 고향 씨름판과 '마음 속 대통령' 이만기와 우정

                    씨름판의 천하장사 강호동은 방송 연예계에서도 천하장사의 포효를 했다

이 처럼 이만기와 강호동은 선후배로서 훈훈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강호동은 이만기에 졌기 때문에 인제대 씨름부와 초등학교 씨름부 선수들에 삼겹살을 사야 했습니다. 그런데 1박2일 멤버들을 포함해 30명도 안되는 인원이 먹은 삼겹살이 무려 160인분이나 됐습니다. 강호동도 기분좋게 선배로서 후배 씨름 선수들에게 삼겹살을 살 수 있어 기분좋은 장면이었습니다. 후배 씨름선수들도 선배 강호동의 배려에 즐거운 식사와 추억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만기와 강호동, 그리고 후배 선수들로 이어지는 훈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강호동은 왜 이만기 앞에서 눈물을 글썽거렸을까요? 그것은 강호동 자신의 영웅이었던 이만기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 속의 대통령이었던 이만기와 다시 씨름 대결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격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호동에게 씨름은 인생의 스승이고 고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다시 모래판에 선 강호동에게는 친정을 찾은 심정이었겠지요. 더욱이 강호동이 어린 시절부터 멘토이자 몰모델로 삼았던 천하장사 선배 이만기와 샅바를 잡았으니 얼마나 감동의 물결이었겠습니까? 진정한 남자의 진한 우정과 스포츠정신 그 자체였습니다. 이만기 강호동 모두 승자입니다.

저는 강호동을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짧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우락부락하고 거칠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실상은 마음이 따뜻하고 머리도 좋은 사람이더군요. 특히나 아이들에게 자상한 모습이 인상적이고, 일에 대해서는 열정과 카리스마 넘치는 자세가 남달났던 기억입니다. 강호동이 씨름에서 천하장사에 이어 예능에서도 최고의 MC 천하장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강호동이 대본 하나에도 집중력을 갖고 외우는 모습도 씨름에서 영웅 이만기와의 대결을 앞두고 철두철미한 준비에도 집념을 불태우는 '승리를 향한 포효'와 닮아 있습니다. 강호동과 박태환의 포효는 그래서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열정을 다해 최선의 노력과 집념을 불태울 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호동이 성공할 수 밖에 없고 세상과 인생의 천하장사가 된 이유일 것입니다. 노력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모두 승자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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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하기 전엔 씨름경기 때처럼 늘 긴장으로 몸이 굳어지거든요. 그럴 때 '강호동 넌 할 수 있어' '해낼 거야' '문제없어'하고 중얼거리면 곧 괜찮아집니다."

강호동이 어떤 인터뷰에서 밝힌 말입니다. 투박하고 강인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강호동도 여린 마음을 가진 보통 사람인 것입니다. 다만 누구나 긴장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강호동은 스스로 자신감을 불어넣고 이겨낼 수 있는 컨트롤 능력이 탁월하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강호동이 방송을 진행하는 장면을 직접 가까이서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출연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자세가 예의바른 편이었습니다. 늘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순발력 좋고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천하장사 씨름선수 출신으로 최고의 MC 반열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있었을까 생각하게 했습니다. 강호동이 유재석과 함께 정상의 MC위치에 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그 동안 방송계에 수많은 운동선수가 진출했지만 강호동 만큼 성공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 만큼 강호동이 새로운 방송 연예 분야에 진출해 부단한 노력과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벅머리 19세 청년, 천하장사 등극 후 감격의 눈물

1990년 3월 12일. 당시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민속씨름 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민속 씨름대회에 진출한 강호동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강호동은 우리나라 초대 천하장사이고 씨름 황제의 자리를 지키던 이만기를 누르고 새로운 천하장사에 등극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최연소 천하장사였습니다. 모래판을 박차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강호동은 1990년 당시 19세 최연소로 천하장사에 등극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당시 TV를 통해 비추어진 강호동의 포효와 눈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강호동은 중요 경기에서 승리하면 모래판에서 덤블링을 보여주는 승리 세레모니 쇼맨십도 뛰어났습니다. 그의 몸짓과 독특한 승리의 포효 소리는 관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강호동은 뚝심과 배짱이 두둑했습니다.

그 후 강호동은 내리 세번의 천하장사를 차지했습니다. 강호동 시대였습니다. 강호동은 언제나 특유의 유연성과 순발력을 보여주며 상대방을 압도했습니다. 씨름이 축구 야구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기에 강호동의 활약은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그런데 강호동은 5번의 천하장사와 7번의 백두장사라는 위업을 남기고 홀연히 씨름판을 떠났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새로운 길로의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더 이상 강호동을 볼 수 없다는 것에 씨름팬들의 실망도 컸습니다.

득남 소식에 1박 2일 촬영 중 눈물 흘린 아빠 강호동

강호동은 당시 최고의 MC였던 이경규의 권유로 방송 예능에 입문했습니다. 강호동은 방송 예능의 코미디와 개그 프로에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강호동은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컸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MBC 특채 개그맨이 된 강호동은 철저히 과거 천하장사라는 자만심의 자신을 버리고 바보 연기로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사실 천하장사로 최고의 위치에 있던 사람으로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올해 3월 1박2일 촬영 중 아내가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국내최고의 MC가 되었습니다. 그 후 강호동은 승승장구했고 '1박 2일'를 맡아서 최고 예능 중 하나를 만들어 갔습니다. 올해 3월에 강호동은 1박2일 촬영을 하다가 아내의 전화를 받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건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 2006년 결혼식을 올린 이후 3년에 만에 첫 아이를 낳았으니 한편 아내와 대한 고마움과 스스로 아빠가 된다는 감격이 한꺼번에 몰려왔을 것입니다. 강호동의 아들이름은 강시후(태명 백두산)로 정해졌습니다.

강호동의 가족에는 물론 심성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반증이었습니다. 당시 방송 중 강호동의 눈물은 가슴뭉클한 장면이었습니다. 언제나 강할 것만 같던 그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충만했던 셈입니다. 자연분만으로 고생하며 출산한 아내에 대한 애틋함과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한 상념의 소산이었습니다. 

아들 잃은 박영규의 눈물에 함께 눈물흘린 무릎팍도사 

강호동의 눈물이 화면상의 오버랩 장면으로 갑론을박인 된 적도 있습니다. 지난 2006년 12월 '야심만만' 프로에서 물러나는 윤종신의 고별사 도중 강호동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는 모습이 비춘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 윤종신의 하차에 눈물을 흘린 것인지 눈가에 땀이 나서 닦는 모습인지 아직도 미스테리한 장면입니다. 우연의 일치로 화면에 잡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호동의 눈물은 최근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박영규가 아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눈물을 흘리자 강호동도 역시나 눈물을 함께 흘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아들이나 딸 자식이 먼저 죽는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방송이 실제 중단될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다음 달 2010년 1월 중에 무릎팍도사의 박영규 편은 방송될 예정입니다.  

사실 부모에게 자식의 죽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 장모님이 큰 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몹시 슬퍼하는 아파했던 것을 생각하면 박영규의 눈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강호동의 눈물은 따뜻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남자의 눈물인 것 같습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고 했듯이 함께 눈물흘린 모습은 강호동의 새로운 면모입니다.

인간 강호동은 19세 나이에 씨름 천하장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강심장이었습니다. 당시 씨름황제 앞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고 승리를 거뒀고 지금까지 강심장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강호동은 강심장에 앞서 함께 슬퍼하고 기뻐할 줄 아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아들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의리의 남자였습니다.

혹자는 강호동이 쉽게 최고 MC 위치에 오른 것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강호동은 씨름선수 출신이란 핸디캡을 안고 있었기에 운동선수다보니 못한 공부를 만회하기 위해 누구 보다 더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방송 대본이 주어지면 더 열심히 읽고 준비했습니다. 방송하기 전이면 항상 긴장으로 몸이 굳어지지만 그럴 때 마다 '강호동 넌 할 수 있어'라며 스스로 이겨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면 최고의 프로를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에너지를 쏟아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고MC 반열에 오른 된 강호동의 참모습인 것입니다.

                           강호동은 예능의 천하장사를 위해 늘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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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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