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6.26 독사에 물린 선임하사 'DMZ서 구출하라'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2. 2009.04.21 산딸기 따다 지뢰밟아 죽은 전우 생각하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5)
  3. 2009.02.17 군대시절 땅굴발견해 받은 참모총장상을 찾아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317)


군대 시절 이야기입니다. 지난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일입니다. 한 여름날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군사령관이 방문한다는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GP(Guard Post)를 방문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군사령관이 방문하면 GP나 수색중대는 한바탕 난리가 납니다. 의전이나 경계 근무 등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드디어 군사령관이 DMZ(비무장지대)내 방문의 날이 왔습니다. GP 경계 뿐만 아니라 DMZ에는 수색과 도로 경계조가 투입되었습니다. 저는 수색분대로 투입됐습니다. 그리고 수색분대는 K선임하사가 분대장이었습니다. 차량경계조는 중대장이 직접 지휘했습니다. 거의 수색중대 수준의 DMZ 작전인 셈입니다.

수색분대가 철책선을 통과해 DMZ에 먼저 투입됐습니다. 사전에 DMZ 수색로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요충지에 근거지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여름날의 더위는 강렬했습니다. 한참 수색 중인데 길가에 독사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상당히 큰 까치 살모사였습니다. 까치 살모사는 독성이 강해 매우 위험합니다. 당시 저는 병장이었고 저격수였습니다. 선임하사에게 아주 작은 소리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잡을~까요?"
"그래 잡자."

선임하사는 보기 드문 까치 살모사라서 탐이 났던 것 같습니다. 제가 K-1 개머리판으로 살모사의 머리를 눌러 제압하고 살모사를 잡았습니다. 산 채로 생포한 것입니다. 그러자 선임하사가 까치 살모사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색분대는 까치 살모사를 생포한 후 매복 요충지로 이동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군사령관이 도로를 무사히 지나 GP에 이르는 도로를 경계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선임하사는 지루했습니다. 사실 이런 수색 경험이 많은 선임하사였습니다. 몇개월 후면 전역을 고려하던 선임하사였습니다.

얼마를 기다리자 군사령관이 DMZ의 작전 도로를 지나갔습니다. GP에서 나오기까지 상당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선임하사는 살모사를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었습니다. 선임하사가 독사를 다룬 경험이 많아서 걱정은 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만큼은 불안해 나즈막히 말했습니다.
"선임하사님, 조심하세요"
"괜찮아."



얼마 시간이 지났습니다. 선임하사는 살모사를 왼손으로 잡았다가 오른손으로 잡았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모사를 좌우 손으로 옮기던 중 선임하사가 순간 살모사를 놓쳤습니다. 그러자 살모사가 선임하사의 손을 곧바로 물었습니다. 중요한 작전 중에 선임하사가 맹독성 살모사에 물린 것입니다. 당장 수색을 중단하고 돌아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일단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독사에 물린 손의 팔꿈치 부분은 단단히 묶고 물린 곳의 피를 빨아냈습니다. 

그리고 무전병을 통해 긴급히 도로경계 수색분대 차량을 수배했습니다. 군사령관이 GP를 빠져나가면 도로 차량경계조 차량으로 군병원에 호송할 계획이었습니다. 군사령관이 마침내 GP를 나와 DMZ을 벗어나 철책 밖으로 통과했습니다. 곧바로 차량경계조에 선임하사를 태우고 DMZ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미 선임하사의 손은 엄청나가 부어있었고 선임하사는 맹독에 의해 거의 인사불성 상태가 되어갔습니다. 차량경계조는 강원도 산골에서 멀리 군통합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필사적으로 군트럭 모양의 차량경계 수색조가 병원에 도착한 것입니다. 선임하사를 긴급히 호송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수많은 군인들과 사람들이 몰려와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모습으로 쳐다 봤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쳐다보는 겁니까?"
"...(조용)..."

질문에 오히려 더 놀라는 듯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눈길을 피했습니다. 우리들끼리 쳐다봤습니다. 아뿔싸. 우리 수색분대는 수색 중 복장과 완전무장 상태로 그대로 병원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 분대는 전쟁상태의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탄복에 총알 장전된 각종 개인화기, 기관총이 장착된 도로경계차량, 수류탄과 대검을 매단 수색복장 등은 일반 군인들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희는 장전된 개인화기와 무장을 해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DMZ을 지나 철책의 통문을 통과하면 장전된 총알 등 무장을 해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시의 군병원까지 완전무장 상태로 왔으니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DMZ 작전 중이었습니다. DMZ에서만 있다보니 여긴 처음이라..."

다행히 선임하사는 치료를 잘 끝내고 무사히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소대원들이 한 마디씩 했습니다.
"말년에는 구르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하시더니...앞으로 낙엽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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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일요일 오후에 주말농장에 가서 고추와 호박을 비롯한 채소 모종을 심었습니다. 삽질로 땅을 파서 하나씩 소중하게 심는 작업이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준비한 모종을 모두 심고 옆을 보니 딸기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이웃 주말농장 분양받으신 분이 심어놓은 딸기 모종인데 예쁘게 꽃이 핀 것입니다.

딸기꽃을 보니, 군대 시절의 가슴 아픈 일이 생각났습니다. 중동부 전선의 봄은 서울보다 한참 늦게 다가옵니다. 지난 20년전의 봄이었습니다. 제 4땅굴의 징후를 발견하고 비상 경계 근무와 훈련이 반복되던 시기였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면 저녁까지 만일에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비한 특수 훈련과 비상 근무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덧 철책선에도 꽃이 활짝 피고 싱그러운 신록이 그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땅굴 탐지 소대였습니다. 제 4땅굴의 징후를 발견해 이미 북한이 굴착한 지하의 땅굴을 시추공(지상에서 지하로 뚫는 수직 굴착법)을 통해 발견한 직후였습니다.

작은 산골 마을에 오순도순 살고있던 평화로운 땅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작은 소대가 생활하던 땅에는 육군본부 시추대를 비롯한 공병대 미군부대 등 수많은 군인들이 집결했습니다. 아마도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발령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매일 우리는 북한군이 감행할 수 있는 모든 공격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훈련을 하고 경계 근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봄 날에 중대장이 저에게 특별 휴가를 다녀오라고 명했습니다. 우리 소대는 개인 휴가는 없고 소대 전체 휴가를 다녀오는 특수한 조직인데 의아했습니다. 알고보니, 수개월전에 사단 대표로 군단 역량 측정대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예기치 않게 우수한 성적을 받아 이번에 특별 휴가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날, 제 대신에 중대 본부에서 1명이 대체 근무를 위해 작전 지역에 파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대 본부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에 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비상상황에서 혼자 휴가를 갈 수 있는 행운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다 중대본부에서 밤 10시에 취침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밤 11시경 중대장이 전원 기상을 시켰습니다.


중대장은 슬프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오늘 지뢰를 밟았다. 1명은 죽고 1명은 다리가 잘렸다. 작전 중 발생한 사고이다. 가슴아픈 일이다. 지금은 매우 위급한 비상경계 중이니 전 중대원은 동요하지 말라. 오늘을 교훈삼아 각별히 지뢰사고에 조심하기 바란다"와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중대장의 사건 소식을 듣는 동안에 망연자실했습니다. 겉으로는 지뢰사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걱정했지만 한편 속마음에서는 '아, 모처럼 맞이한 휴가를 못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대장은 "내일 휴가 가는 O상병은 예정대로 휴가 간다. 아침에 까만 봉지를 줄테니 갖고 가라."라고 말했습니다. 지뢰사고에 대한 아픔도 있지만 고대하던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게 단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중대장이 건네준 까만 봉지를 들고 발걸음도 가벼운 휴가를 떠났습니다. 중대장은 까만 봉지를 연대본부 인사계에 전달하고 휴가를 가라고 했습니다. 연대본부에 도착하니 정문 위병소 앞에는 봉고차 한대가 정차해 있었습니다. 일단의 민간인들이 위병소 앞에서 유리창을 깨면서 울분을 토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연대본부 인사계를 찾았습니다.

인사계 준위에게 까만 봉지를 전달하자, 인사계는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어제 지뢰밟아 죽은 OO의 유품이구만." "휴가 잘 다녀오게."

순간 하늘이 하얗고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하게 멍해졌습니다. 까만 봉지에는 전날 지뢰를 밟아 죽은 전우의 유품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휴가를 떠난다는 생각에 까만 봉지를 돌리며 연대본부로 향했던 것입니다. 연대본부 위병소 앞에 있던 봉고차의 사람들은 죽은 전우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젊디 젊은 아들을 잃은 부모와 가족들은 청천벽력같은 슬픔이었던 것입니다.

죽은 전우의 슬픔을 뒤에 두고 휴가를 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경계근무에 나가야 하는 곳에서 두명의 군인이 지뢰를 밟았습니다. 제 대신에 근무에 나선 중대본부의 전우와 육군본부에서 파견 온 군인이 경계근무에 나섰다가 산등성이에 있던 산딸기를 봤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산딸기를 따기 위해 산등성이에 올랐다가 지뢰를 밟은 것입니다.
 


그들이 산딸기를 따러 간 위치는 미확인 지뢰지대였습니다. 항상 미확인지뢰지대를 넘나들던 수색소대원들과 달리 그들은 처음 근무를 서다보니 미처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것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뢰를 밟은 육군본부 군인은 즉사했고 중대본부 전우는 한쪽 다리가 잘려나가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비록 지뢰사고의 구체적인 상황을 잘 모른 체로, 휴가를 다녀왔지만 휴가 기간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더구나 휴가에서 돌아온 후 당시 지뢰사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나서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산딸기는 봄철에 비무장지대나 철책 부근의 산자락에 은밀하게 유혹을 합니다. 이미 지형에 익숙한 군인들은 적절하게 대처를 하지만 처음 근무를 하는 군인들은 사전에 숙지시킨 주의사항에도 불구하고 산딸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평상이 지나다니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에서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 최전선의 지역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날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금도 딸기꽃이나 산딸기를 보게 되면 저를 대신해 죽은 듯한 전우를 생각하며 슬픔에 젖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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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 큰 아버지 생신이라서 큰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큰 아버님이 앨범 몇개를 준비해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거의 20년간 바쁜 일상을 살다보니 까맣게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군대 시절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소중한 물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군대와 대학시절을 큰집에서 보냈는데 당시 앨범들을 맡겨두고 잊고 지냈던 것입니다.

청춘의 끓는 피가 용솟음치던 20대 초반, 군대 생활의 모습을 발견하니 파노라마 처럼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제4땅굴 발견 공로로 받은 육군 참모총장 표창장이었습니다. 참모총장이 별 4개인 대장인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군대 제대 후 대학에 복학과 더불어 취직 공부에 매달리고, 사회 생활에 접어들고 결혼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군대 시절의 추억은 거의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군대 생활 중 제4땅굴을 발견했던 기억은 있었으나 참모총장 표창장을 받은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무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그 당시 상장과 당시 사진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실제 땅굴 탐지 징후를 최초로 발견하고 수색을 비롯해 전과정에 기여한 장병 보다 나중에 슬쩍 숟가락 하나 더 놓은 육본 고위장교들이 주요 훈장들을 받는 것을 보고 실망했었습니다.)

표창장을 살펴보니 거기에 실린 문구가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듯 했습니다.
"위 자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평소 부여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왔으며 특히 북괴 남침용 땅굴 발견에 기여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함"


당시는 북한을 '북괴'라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표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북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 시대에는 어린 초등학교 때부터 북한은 북한 괴뢰를 의미하는 북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바른생활 교과서에는 북한 공산당 사람들을 늑대의 얼굴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지금은 지나가버린 추억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일종의 반공교육을 심하게 세뇌를 당한 셈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귀순해 방송에 나온 얼굴을 보면서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4땅굴 내부 수색 중 우리 소대의 군견이 지뢰 폭발로 죽었는데 입구 부근에 충견묘가 세워졌다]

그리고 대학 시절은 전두환 군사 독재에 반대해 들불처럼 일어났던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후 군대에서는 최전선에서 북한이 남한 침공을 목적으로 뚫은 땅굴을 수색해야 했던 굴절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남과 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 가는데, 왜 우리 민족은 같은 동포들끼리 원수처럼 그토록 싸워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지금도 휴전선 철책은 남북 분단의 아픔을 안고 냉전 이데올로기의 전운이 감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겨울철 최전방에서 고생하시는 군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드립니다.)

지금은 일상 속에서 참모총장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군대 시절 참모총장상을 받은 것을 발견하니 한편으로 소중한 추억의 편린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구촌 마지막 남은 분단 국가라는 것이 서글퍼집니다.

[참고] 제4땅굴 발견에 대해
제4땅굴은
지난 1989년 8월경 21사단 백두산부대 수색대(전초수색) 지하 청음수색병들이 처음 이상 징후(지하에서 땅굴 파는 소리)를 탐지해 지하 시추공 확인 작업을 몇달간에 걸쳐 지속 실시해 결국 수직으로 지하 땅굴을 관통(1989년 12월 24일 새벽 크리스마스 이브 날)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북한 공격시 실전 모의 훈련과 함께 우리 군에서 반대로 지하 역갱도 공사를 거쳐 북한 땅굴을 최종 발굴한 것은 1990년 3월 3일입니다. 또한 지하 군사분계선까지 땅굴 내부 수색 작업을 거쳐 장악한 후 경비부대를 별도 창설했습니다.(바로 경계지점이 12사단입니다.)

강원도 양구 북동쪽 펀치볼(해안마을) 산악지대에서 위치하고 있으며 땅굴 내부는 너비 2m, 높이 2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구조물이며 현재는 안보 관광지로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땅굴 내부는 관광용 모노레일 차량이 운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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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1사단 66연대 전초 수색중대 출신 전우님들이면 댓글에 비밀글로 연락처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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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