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0.11.14 어머니가 보내준 감 박스에 눈물 삼킨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29)
  2. 2010.01.16 20년전 군대, 말년 병장 죽이는 낙서 놀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3. 2009.11.22 남자가 첫사랑의 여자를 잊지못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84)
  4. 2009.09.04 해변에서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10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79)
  5. 2009.08.07 태풍 모라꼿 영향, 제주 범섬의 파도 무섭네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46)
  6. 2009.07.17 헤어진 첫사랑을 다시 만나선 안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73)
  7. 2009.06.02 추억의 뽑기 '최강의 청룡검을 뽑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47)
  8. 2009.05.24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추억과 아내의 눈물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9. 2009.05.06 TV동화 행복한 세상, 방송과 계약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72)
  10. 2009.04.22 아이들 학교 급식 "국내산 만을 사용합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33)


며친 전 회사에서 회의 중인데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휴대폰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이폰 스마트폰입니다. 아이폰애 찍힌 전화번호를 살펴보니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낮에 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회의 중 밖으나 나와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아이고. 집으로 전화를 한다는 것을 잘못 걸었구나."

"집에는 왜요? 급한 일 있으세요."
"아니, 오늘 장에 갔다가 아들 생각나서 감을 샀어. 한 박스 택배로 보냈다. 알려주려고."

"도시에도 감 많은데요. 안그러셔도 되는데요."
"감이 아주 좋더라. 한 박스에 만원 밖에 안해서 두 박스 샀단다."

"어머니, 보내신 감 잘 먹을게요."
"그래. 아이들하고 잘 먹어라."

어머니는 여전히 자식 생각 뿐입니다. 전화를 끊고나서 여러가지 상념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농사 일을 거의 다 하셨습니다. 저를 낳으실 당시에 낫에 무릎을 심하게 다쳐 한쪽 다리가 거의 불구나 다름없습니다. 그렇지만 불편한 다리로 소도 키우고 농사 일도 하고 자식들도 공부시켰습니다. 그 당시는 아버지가 도회지에 돈 벌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과거 저희 시골 농촌 아니 산촌은 초가집이었습니다. 밥은 가마솥에 나무 땔감을 태워 지었습니다. 아버지 없이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참으로 억척스런 삶을 사셨던 것이지요. 저는 어린 마음이지만 그런 어머니를 항상 애처롭게 생각했습니다. 어리지만 낫을 들고 논둑을 베고 나무를 하고 소에게 먹일 소꼴을 베기도 했습니다. 벼농사 밭농사도 어머니와 함께 했습니다. 고사리 손이지만 뭔가 돕고 싶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산 중턱에 있던 집 뒷동산에 감이 익어갔습니다. 엄청나게 큰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감나무의 높이가 5층 이상의 건물은 족히 됐습니다. 그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감을 따곤 했습니다. 제가 그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땄습니다. 대나무의 끝을 갈라서 감따는 도구로 이용했지요. 감나무가 너무 커 땅에서는 딸 수가 없었지요. 감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감을 모조리 땄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다칠까 걱정이었습니다. 그 감나무는 마을 청년들도 못올라갈 정도로 높이 솟아 있었어요.

"얘야, 그만 따라.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지 마라."
"아니요. 괜찮아요. 조금만 더 딸게요."

"그래도 위험하다. 이제 내려와라."
"엄마, 저 감나무 안 무서워요. 여기 끝에만 따면 돼요."

사실 그 때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감 하나라도 더 따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와 겨울 내내 함께 먹을 간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겨울에는 농한기라서 먹을 것을 비축해 두었습니다. 벼와 곡식을 추수하면 모두 장에서 팔아야 했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집에서 먹을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겨우 먹을 소량의 식량만 남겼습니다. 저에게 겨울 간식은 고구마와 감이었습니다. 고구마와 감은 별도의 대나무 울타리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배고프면 하나씩 빼먹곤 했지요.



큰 감나무에서 딴 감이 쌀가마니로 10 가마니가 넘었습니다. 겨울 내내 먹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감이 식량이나 다름없었지요. 그래서 감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모든 감을 다 땄던 것입니다. 감을 대나무 울타리 안에 두면 점차 홍시로 변해 갔습니다. 때론 곶감을 만들어 놓기도 했지요. 감나무 오르는 것이 어린 나이에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위해 제가 혼자서도 도울 수 있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이번 5일장에 가서 좋은 감을 보시고 제가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주말에 집에 있는데 아파트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택배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감 한 박스가 배달됐습니다. 거실에서 감 박스를 열어보니 먹음직스런 감이 가득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감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아내와 두 딸이 있어 제 컴퓨터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혼자 옛 생각을 하니 울컥하더군요. 아이들이 볼까 두려워 눈물을 삼켰습니다.

어머니가 보내준 감을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몇 개를 깎았지만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박스에 표시로는 10kg이었는데 갯수로는 100개 정도는 돼 보였습니다. 가까이 사시는 장모님과 이웃집에 몇개씩 나눠 드렸습니다. 다행히 두 딸도 감을 잘 먹었습니다. 대개 도시의 아이들은 초콜릿이나 사탕과 같이 너무 단 맛에 길들여져 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요. 할머니가 보낸 감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따르던 아이들이었지요.

언제나 어머니는 자식들 걱정인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 마트만 가도 쉽게 감을 살 수 있지만 어머니가 보내주신 감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겨울나기를 하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어머니가 정말 힘들 때 우리 가족을 지켜준 보물인 셈입니다. 부모님은 지금은 그래도 과거와 달리 금슬좋게 잘 지내십니다. 부모님은 가을 추수를 하면 매년 쌀과 고춧가루 등을 보내주시곤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또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의 감 한 박스가 그것입니다. 곧 어머니의 생신입니다. 아내는 벌써 눈치를 챘습니다. 제게 말했습니다. "올해는 어머니 용돈을 두둑히 보내드려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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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천하무적 짱가도 내 앞에선 고철"

태권V가 짱가를 마구 때리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태권V와 짱가의 모습을 실제 그림으로 그려 실감나게 낚서를 한 장면이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덧붙여 '임자 만날 날 있을 걸.'이란 의미심장한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하겠지요? 제가 20년전 군대를 제대할 무렵에 후배나 동료 전우들이 회상록에 그린 낙서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상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군대 회상록을 들추어보다가 전우들의 낙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에서 짱가는 저의 군대시절 별명입니다. 당시 힘좋고 기술좋은 작업반장이었던 저를 전우들은 '짱가'라고 불렀습니다. 짱가는 그 시절 사람들이 좋아했던 로보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 짱가를 힘으로 눌러주고 싶던 후배 전우가 로보트 태권V 주인공을 그려 우스꽝스런 만화를 그린 것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 (야!)'로 시작되는 노래인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곡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단번에 알 것 같습니다.

                                지난 1970년대 추억의 로보트 3인방, 짱가-태권V-황금박쥐 모습

그런 만화 낙서를 보니 군시절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여름철 폭우가 내려 작전도로가 유실되면 저와 친구인 J는 둘이서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저는 돌쌓는 기술로, J는 엄청난 괴력의 힘으로 돌을 날라 순식간에 도로를 복구했습니다. 강원도 철책에 폭설이 내리면 언제나 제일 앞에 서서 저와 J는 눈을 치웠습니다. 군대 작업의 달인, 환상의 짝꿍 듀엣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하던 선배도 말년 병장이 되면 후배들의 장난감이 되는 이유  

그래서 후배 전우들은 저와 J의 존재가 고맙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했나 봅니다. 그런 것들이 낚서로 표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헤어지는 아쉬움과 친근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낙서를 살펴볼까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을 놀리는 낚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말년의 고뇌여~ 가는 날까지 우리들에게 갈굼 당할 걸 생각하니 힘드시겠지."
"짱가씨 결혼할 거니? 짱가 왈 내비둬, 이렇게 살다 껌에 붙어 갈겨."
"짱가씨. 집에서 전화왔어요. 집에 오지 말라고."
"웃기지 마. 나도 때 빼고 광 내면 미스코리아 화장실 청소라도 할 수 있다  뭐라고라~"


군대 회상록 낚서판에 동료 전우들이 말년 병장을 향해 한 마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장면

낙서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후배들이 말년 병장인 저를 갖고 노는 것 같은 구절들이 묻어나 보입니다. 사실 군대에서 제대 앞둔 말년 병장은 후배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한창 때 무시무시한 선배였다 하더라도 말년은 후배들에게 당해주면서 정겨움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전통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남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정과 훈훈한 의리였습니다.

잠깐 퀴즈?
낙서에 나온 것인데 아래 각각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요?

1.창녀가 가장 좋아하는 야채는?

2.남녀 혼성 이부 합창은 순한국말로 하면?
3.브라자를 순한국말로 하면?

당시 군대에서 유치한 문답 놀이 정도 됐었나 봅니다. 지금 살펴보니 그 때는 저런 저질 유치 개그가 유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방위에 대한 당시 이야기도 낙서에 나왔습니다.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방위에 대한 유머(?) 장난이 아닌가 생각되는 낚서였습니다.

방위란?(낙서 버전)
1.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면사무소를 접수한다
2.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예비군을 통제한다
3.전쟁시 도시락을 지참 9시에 출근하여 5시 반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오리지날 버전
방위의 임무. 하나.
전쟁이 발발시 방위는 적진의 동사무소를 점령한다.
방위의 임무. 둘.
방위는 도시락통을 싸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도시락통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망을 교란한다.
방위의 인무. 셋.
방위는 아무리 전쟁이 치열하거나 해도 아침 9시에 근무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넷.
방위는 일부러 적의 포로로 잡혀가 적의 식량을 축낸다.
방위의 임무. 다섯.

전쟁발발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여군들을 몽땅 꼬신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최전선 철책을 넘나들며 비무장지대를 호령하던 전초 수색대들의 생활은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항상 삶과 죽음의 사선을 오가는 비무장지대 수색과 매복은 긴장과 서스펜스나 다름없었습니다. 순간 잘못 길을 가면 지뢰지대이고 잠깐 졸다가는 북한군이 목을 베어갈 준전시상태였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 강추위의 비무장지대에서 매일 밤 13시간 매복 작전

그러다 보니 군기가 가장 센 곳이었습니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개인 화기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태권도 및 특공무술을 비롯한 최강의 무예를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한 겨울 맹추위에 비무장지대 매복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1박2일에서 박찬호가 강호동을 포함 멤버들이 펼친 혹한기 실전캠프는 사실 '새 발의 피'였습니다.


전우들의 낚서판(좌)과 제가 그린 그림으로 수탉이 알에서 나온 코끼리 새끼를 본 후 암탉의 외도 의심

철책을 통과해 비무장지대 내에 들어선 순간 부터는 철처하게 자신과 전우들을 믿어야 했습니다. 군사분계션까지 도달해 겨울 매복작전을 펼칠 때면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북한 땅이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과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총탄을 장전하고 있는 최강 DMZ 수색대원도 오로지 혼자가 된 느낌의 순간에는 나약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료와 말도 못하니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어떤 과자나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심지어 오줌도 눌 수 없어 오줌통을 들고 들어가는 비무장지대 내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우와 동료를 신뢰해야만 비무장지대 수색 및 매복 작전은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 매복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얼어서 새벽 무렵 철수할 시간은 지금도 불현듯 스쳐지나가고곤 합니다. 체감온도 40도 전후의 강추위에 밤새 13시간을 야외에서 뜬 눈으로 이틀에 하루 꼴로 밤을 지새운다는 것이 상상이 가시겠습니까? 잠시 회상에 젖었습니다.

다시 낙서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티파니왈 흔들자고"라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도 티파니가 있나 본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추가] 댓글을 보니 1980년말 티파니(Tiffany Renee Darwish)라는 미국 팝가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써니텐 광고에서 '흔들어 주세요'로 유명해 이 같은 낙서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갈 때 죽을 때 까지 똥침 놀 거다"
"기분이다. 아줌마, 단무지 하나 더 주세유"
"너 지금 가면 안올거지 그지?"
"뭐 같은 인생 간편히 살자고."
"집에 가서 잠만 자지 말고 여자 구해 장가 갈 궁리나 해라"
"수고했다 뺑이 치느라고"
"엿먹고 조총을 쏴라"

후배들의 낚서 중에는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서를 보니 똥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랜 전통을 지닌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20년전 군대에서도 유행하던 놀이는 똥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위의 낙서 중 '뺑이친다'는 말은 힘들게 고생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일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그린 DMZ 수색대 마크(좌)와 후배 전우들이 회상록에 넣어준 자신들의 사진 모습

지난 20년전 군대에서 동료 전우들의 낙서를 보면서 20대의 용광로같은 젊은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은 편하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당시는 눈덮힌 야외 들판에서 판초우의 한 장으로 밤새 추위를 이기고 생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겨울 이겨냈던 DMZ 비무장지대 수색대원들은 결코 동장군 강추위에도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남북한은 물론 지구촌을 배회하던 아픈 역사 현장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남자들만의 의리와 정을 나누고 그 자릴 지켰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싹튼 우정과 동료애는 말년 병장을 사회로 보내야 하는 아쉬움으로 추억의 낚서를 회상록에 남겼던 것입니다. 20년만에 20대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 당시의 낚서를 보니 수많은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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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남자와 여자 모두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갖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소꿉놀이 친구이든 학창 시절의 소나기같이 다가온 추억이든 마찬가지로 소중한 기억의 편린입니다. 그렇지만 남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면 첫사랑이 다소 각색되고 윤색되어 실제 보다는 과장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첫사랑의 여자는 더 아름다운 추억이기 때문이기 일 듯 합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설사 짝사랑이나 외사랑이라 하더라도 당사자에게는 아픈 사랑의 추억이 될 것 입니다. 얼마 전 K를 비롯한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K는 친구의 누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미 결혼을 한 K는 이제는 담담하게 친구 S의 누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잘 살고 있는지' 정도의 안부 인사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K와 S의 누나는 나이차도 한 살 밖에 나지않아 아주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K가 당시 일찍 실연의 아픔을 겪은 셈이지만 쿨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친구 S가 있었기 때문일 듯 합니다.

오래 전인 90년대 초중반에 '아이러브스쿨'이란 사이트가 유행인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나 첫사랑을 찾아주는 사이트였습니다. 친구들로부터 아이러브스쿨이란 사이트를 알게되어 저도 가입해 봤는데 초등학교 시절의 여자친구가 반갑게 인사를 인사를 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몇번 이메일을 주고받기만 하고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러브스쿨로 만난 친구들도 있다지만 추억을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당시 너무 바쁜 일상도 작용했을 듯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첫사랑의 여자를 왜 못잊는 것일까요? 남자가 그렇듯이 여자도 첫사랑은 소중한 기억일 것 같지만 조금 차이는 있을 듯 합니다. 남자들도 갖자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도 아련해 못잊는 남자도 있는 반면 그저 지나간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첫사랑은 이룰 수 없었기에 더 잊지못한다

언젠가 이룰 수 있는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라는 목표가 있고 직장에서는 진급하고 연봉을 더 많이 받는 목표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이란 목표는 결혼이란 결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늘 자신을 중심으로 한 목표와의 투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첫사랑은 남자가 스스로 노력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 여자 친구의 상황이나 환경 변수들이 결혼이라는 목표에 함께 도달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남자가 자신의 뜻대로 이루기는 너무 벅찬 환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룰 수 없었는 사랑은 그래서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진 셈입니다.


남자들은 당시의 첫사랑 만큼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불가피했다는  자신에 대한  책망이 클 것입니다. 그렇기에 첫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아련함이 남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으로 인식하면서 하나의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가 새로운 여자친구와 교제하는 상황이나 결혼한 이후에도 첫사랑을 잊지못한다면 이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간혹 이미 애인이 있는 남자가 첫사랑을 못잊어 애인 앞에서 과거 연인을 이야기한다면 차라리 일찍 헤어지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지고지순한 첫사랑은 아름다운 추억

학창 시절에 황순원의 '소나기'라는 소설을 읽으며 순수한 첫사랑에 감동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랏빛 색깔을 보면 간혹 소나기의 첫사랑이 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당시의 소나기라는 소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이라서 더욱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첫사랑은 순수한 마음 그대로의 감정이었기 때문이었고 때묻지 않은 동심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점차 물질문명 사회에 익숙해지면서 순수한 마음 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성과의 만남도 사회적으로 학습된 외모 뿐만아니라 재산, 학력 등을 따지게 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을 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아마도 첫사랑과 같은 지고지순한 순수함을 많이 잃어버린 이유도 작용할 듯 합니다.

우리가 첫사랑, 첫키스, 첫만남 등의 단어에 설레임을 여전히 간직하고 사는 이유는 바로 처음이라는 특별한 가치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은 바로 순수함과 셀레임이 주는 인생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인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처음 그 순간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삶의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

첫사랑의 여인이 자기과시의 대상일까?

남자들은 함께 모이면 간혹 첫사랑이나 과거의 여자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은 첫사랑의 여인은 실제보든 미화되어 표현되곤 합니다. 첫사랑의 여자는 청순하고 아름다운 절세미인이 다반사입니다. 첫사랑이 예쁘고 마음씨 고운 여자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가장 소중한 추억의 여자이고 처음으로 만난 인생의 이상형 여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첫사랑의 여자를 과장하고 미화하는 것일까요? 남자들은 자신을 과시하려는 성향이 강한 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났던 여자가 최고의 여자였다는 것이 마치 훈장과도 같이 자기과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일부 남자들은 여러 여자를 만났던 사실을 강조해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자리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원래 지나간 과거의 추억은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런 일부 남자들의 경우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술책으로 허풍을 떠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첫사랑을 소중히 하는 남자라면 첫사랑의 여자를 지나간 이벤트나 술자리 안주로 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여자를 사귈 때 첫사랑의 여자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해 주도권을 잡기 위한 남자의 경솔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현재 만나는 여자에게 충실하지 못하는 '못난 남자'일 뿐입니다. 그런 남자는 자신의 능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첫사랑의 소중함을 팔아먹는 파렴치한 남자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첫사랑을 소중히 하지만 일부 과시용으로 허풍떠는 남자는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첫사랑은 남자나 여자에게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에 오래 잊지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남녀가 한번쯤 불꽃같은 순수의 사랑을 하고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첫사랑은 남녀가 강렬한 두뇌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해 강렬한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첫사랑도 각각 느끼는 정도가 다른 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첫사랑이 너무 강렬해 평생 잊지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는 첫사랑이 지속되는 시간의 차이가 다르다고 합니다. 여자에 비해 남자가 훨씬 더 감정의 깊이가 오래 간직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남자가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후 오래 슬픔을 잊지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는 한 여자와 헤어진 다음에는 다른 여자를 사귀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카사노바의 경우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금새 다른 여자를 사귀지만요. 그래서 사랑의 감정이 없는 동물적 배설에만 관심있는 카사노바 유형의 남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어쨌든 어떤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자는 감정의 선이 여자보다 굵어서 여자보다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 오래 지속돤다고 합니다. 여자도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많으니 남녀 마다 편차가 있을 듯 합니다. 실제 과거 첫사랑을 오래 잊지못하는 남자는 새로운 여자를 사귀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따라서 첫사랑을 잊지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여자에 집착해 있는 남자는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남자가 첫사랑의 여자를 만날 경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과거의 첫사랑도 세월이 지나면서 변했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은 세월이 지난 후 만나야 할까?

첫사랑은 누구나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첫사랑을 술자리 안주 정도의 무용담이라면 진정 사랑이 맞는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풋사랑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진정 소중한 첫사랑이라면 고이 마음 속에 간직해 두어야 합니다. 정말 생각나면 혼자서 추억을 반추해보면 그만입니다. 첫사랑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 첫사랑을 만나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시 첫사랑을 만나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마음 속에서 첫사랑의 소중한 설레임을 남겨주는 편이 훨씬 바람직해 보입니다. 다시 만나 세파에 찌들은 첫사랑의 남자와 여자의 만남은 대다수 후회로 남는다고 합니다. 10대나 20대 시절의 모습과 나이가 들어서 만나는 과거의 장면은 너무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보고싶다면 만나도 좋습니다. 그러나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말입니다. 실제 첫사랑을 오랜 기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나 이미 변한 모습에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첫사랑에 대한 순수하고 아련한 추억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험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마음 속에 오래 간직하며 추억하는 설레임과 그리움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 과거는 추억할 때 아름답고 현재는 미래를 향한 꿈을 꿀 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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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끼게 합니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8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눈부신 모래사장과 해변은 이제 9월을 맞이하여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고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 그 해변은 여전히 아름다운 바다와 모래사장이 빛나고 있습니다.

해변을 찾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여름마다 해변을 찾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름휴가에 제주도 협재 해수욕장을 다녀왔습니다. 옥빛 바닷물이 너무나 아름다운 해변이었습니다. 협재 해수욕장은 아이들은 물론 여러 가족들과 함께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바닷물의 깊이가 깊지 않았습니다.

협재 해수욕장은 넘실거리는 파도와 미세한 모래로 만들어진 해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다가오는 계절에 지난 여름의 추억을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지난 해변의 추억 만들기는 각자 모두에게 어떻게 남아 있을까요? 지나가는 여름과 해변의 추억을 파노라마처럼 정리해 봅니다.

모래성 만들기


아이들은 해변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만들며 꿈과 희망을 쌓고 있습니다. 바닷물이 빠진 모래사장은 더욱 넓어졌습니다. 다시 바닷물이 모래사장을 덮으면 이내 사라질 모래성입니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엔 또 다른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을 것입니다. 연인들도 그 자리에 그들만의 멋진 모래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래성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리를 내줍니다.

파도 타기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환희와 즐거움이 가득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파도에 몸을 싣고 즐거운 시간을 만끽 합니다.

고무 보트를 탄 사람들도 넘실거리는 파도에 배를 젓습니다. 허리 춤 깊이의 낮은 바다이지만 파도는 마치 깊은 바자처럼 느껴집니다. 온 종일 바다는 사람들을 품에 안고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줍니다. 

모래 속에 인간 묻기

썰물 시간이라 물이 상당히 빠진 해변은 모래사장이 크게 넓어졌습니다. 신난 사람들은 아예 물빠진 바다에 누웠습니다. 사람들은 그대로 모래를 덮기 시작합니다. 머리만 남기고 모두 모래로 덮어버립니다.  

잠시일 지도 모르지만 누워있는 사람이나 그 옆에서 모래를 덮는 사람들이나 모두 즐거운 시간입니다. 바다와 모래가 차지하던 자리에 인간이 마치 주인인 것 처럼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바닷물이 다시 밀려오기 전에 그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합니다. 바다와 인간이 하나가 되어 인간 모래성을 만든 셈입니다.

살인 배구

바닷물이 빠져 넓어진 모래사장에 젊은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물이 어느정도 고여있는 바다와 모래 사이에서 배구공을 높이 하늘로 올립니다. 바다에서 즐기는 살인 배구입니다.

물에 발을 담그고 배구를 하면 시원한 바다와 포근한 모래가 즐거움을 배가시켜 줍니다. 하늘 높이 던져진 배구공을 피하기 위해 가운데 사람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도 없습니다.

바다에서 살인 배구는 또 다른 묘미가 있습니다. 작렬하는 햇살 그리고 일렁이는 바닷물을 동시에 느끼며 모래사장에서 배구를 하는 느낌은 독특하기 그지 없습니다.

조개잡기


물이 빠진 바다에서는 조개를 잡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연인들은 그들대로, 아이들과 어른들은 그들대로 조개를 잡고 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조개를 잡는 묘미는 색다른 즐거움입니다.

물싸움하기



바닷물에서 물싸움을 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선 물과 친해지는 방법 중에 물싸움 만큼 빠른 것도 없습니다. 물싸움을 하면서 물과 친해진 사람들은 이내 물과 일심동체가 되어 물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소꿉놀이

꼬마 아이들은 모래사장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아빠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모래는 커다란 소꿉놀이터가 됩니다. 아빠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합니다. 아이들에게는 크나 큰 선물입니다. 바다와 모래와 그리고 아빠가 더 없이 반갑기만 합니다.

일광욕하기


바다에서 즐기는 일광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모래사장에 누워서 이글거리는 태양을 온 몸으로 받으며 무심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말뚝박기

동네 어귀에서 모여 말뚝박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학교 운동에서 말뚝박기를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추억의 놀이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해변에 일단의 젊은이들이 말뚝박기를 합니다. 힘이 몰리면 말은 무너지고 사람들이 모두 바다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땅에서 즐기는 것 보다 몇 배의 난이도와 스릴이 있습니다. 젊음은 바다에서 더 큰 모험심을 자극합니다.

바다에서 즐기는 말뚝박기는 그래서 더욱 즐겁습니다. 바다에 모두 빠져도 시원한 물이 재미를 더해 줍니다.

애정행각

바다는 파도를 만들고 사람들은 바다에서 사랑을 키웁니다. 파도가 밀려오자 어떤 커플은 서로를 느끼면서 하나의 튜브에 몸을 맡깁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서로가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은 낭만과 추억을 만들어 줍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바다는 넉넉하기만 합니다. 바다는 그래서 젊음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서 바다 위에서 파도는 타는 묘미는 그들의 특권일 것입니다.

파도가 밀려올수록 아름다운 시간들입니다. 이내 해변은 늦은 오후가 되고 있습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협재 해수욕장에서의 여름날의 추억이 이렇게 하나의 페이지로 장식되고 있습니다. 여름 해변과 모래사장이 아니더라도 가을 해변과 겨울 바다고 저 마다의 운치가 가득할 듯 합니다.
 

바다와 해변에서 추억 만들기.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추억의 시간들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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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제주도로 여름 휴가를 왔습니다. 갑자기 태풍 모라꼿이 밀려온다는 뉴스로 인해 긴장했습니다. 어제 제주도 공항에 도착했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여름 휴가는 망쳤구나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동서가 예약해 두었다는 멋진 펜션이 실수로 취소되는 사태까지 겹쳤습니다. 거의 망연자실했습니다. 다행히 숙소는 다른 곳으로 긴급히 수소문해서 마련했습니다. 비는 조금씩 계속 내렸습니다.

렌트카도 제대로 도착하지 않아 비를 맞고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렌트카를 타고 미니랜드로 향하던 도중 갑자기 비가 그쳤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그래도 성산 일출봉으로 코스를 바꿨습니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오히려 좋았습니다. 하늘도 햇살이 내리쬐지 않아 좋았습니다. 태풍 모라꼿의 영향으로 바람은 심하게 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숙소는 바닷가 근처였습니다. 범섬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저녁은 피곤해서 모두 일찍 잠들었습니다. 어김없이 아침 일찍 잠이 깼습니다. 저는 잠이 적은 편이라 가장 먼저 새벽에 잠이 깼던 것입니다.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태풍은 제주도에 직접적으로 상륙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인 영향으로 엄청나게 큰 파도가 해변가를 강타하고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 서귀포 범섬 근처입니다. 그래서 바로 바닷가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바닷가에는 바위들이 많아서 파도가 밀려오는 멀리서 웅장한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한적한 바닷가였습니다. 사람들이 태풍 소식에 피서를 미룬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근처의 산책로도 한적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바다의 파도는 산책로에서도 잘 보였습니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가 커다란 포말을 일으켰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파도를 직접 볼 수 있는 것도 드문 일입니다. 아침에 잠시 내리던 이슬비도 멈췄습니다. 이내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파도도 점차 잔잔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협재 해수욕장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꼭 해수욕장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괜찮을 듯 합니다.

태풍 때문에 걱정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붐비지 않고 즐거운 제주도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주 흑돼지 두루치기로 유명한 용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협재 해수욕장으로 갈 예정입니다. 어제 처음 올 때만 해도 태풍 모라꼿으로 인해 우려를 하던 가족들도 모두 밝아졌습니다. 제주도 여름 휴가 여행은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여름방학을 맞이해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최고의 여름휴가로 기억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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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첫사랑은 풋풋하고 아름답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것이 첫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첫사랑을 어떻게 정의할지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자신에게 의미있는 이성과의 첫기억 또는 애틋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첫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풋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첫사랑 또는 풋사랑의 추억을 더듬어가면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당시 네살이었습니다. 이웃집의 여자 아이 N은 세살이었습니다.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나이가 어립니다. 산골마을에서 바로 옆집에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농사 일을 나가면 저는 N과 하루종일 소꿉놀이를 했습니다. "나는 신랑, N은 신부" 그런 놀이였습니다.

네살 신랑과 세살 신부는 항상 집 앞의 뜰에 나와서 놀았습니다. 소꿉놀이 도구는 자연에 널린 돌과 풀이었습니다. 돌은 밥이 되고 풀은 국과 반찬이었습니다. 세살 신부는 돌과 풀로 밥을 짓고 국을 만들었습니다. 네살 신랑은 나무와 풀을 뜯어왔습니다. 나무는 밥을 지어야 할 용도이고 풀은 나물도 만들고 소에게 먹일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은 소꿉놀이하는 저와 N을 보면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애들아, 너희들 결혼할 거니?"
"네. 결혼할 거예요."

"그래, 나중에 결혼해 잘 살아라. N아 언제 결혼할 거니?"
"....(수줍음)....어른이 되면."

그렇게 저는 N과 늘 함께 놀았습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저는 이웃 마을로 이사를 갔습니다. N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N은 슬퍼했습니다. 저도 슬펐습니다. 헤어짐은 늘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N도 도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영영 저는 N과 헤어졌습니다. 몇 년 후, 저도 도시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둘은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에 방학 때 갔습니다. 어머니가 느닷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너, 시골에서 소꿉놀이 친구였던 N 기억하겠냐?"
"N이요." 

"내가 밭일 가면 옆집에서 N과 놀았는데."
"아, 어렴풋이 기억나요. 신랑 신부하면서 놀았던 것 같아요."

"그래, 맞다. 근데 N이 시골에 놀러 왔단다. 만나 볼래? 이쁘게 컸더라."
"음. 세월이 너무 지났네요. 궁금하지만..."



그렇게 네살 그리고 세살 때 소꿉놀이 신랑 신부가 만났습니다. 너무나 세월이 지나 서로는 당시의 모습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서먹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 부부였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들이 지난 후 만남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저와 N은 이미 당시의 추억이 아닌 20대의 시절로 만났기에 현실이 어색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N은 어머니와 예전에 살던 마을에 놀러왔다 저를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N의 어머니는 서로 친분이 깊어 소꿉놀이 부부의 만남을 주선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둘은 각자의 삶의 현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저는 N과 만나지 말았어야 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저 신비로운 추억만을 간직하며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고이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N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의 첫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듯 합니다. 그러나 그 추억을 만나는 순간부터 그 아름다운 첫사랑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서울로 초등학교 시절에 전학을 했습니다. 참기름집에 사는 여자 아이와 눈길을 마주치곤 했습니다. 한번은 같은 반이되었습니다. 마을에 살고 있어 서로는 스스럼없이 친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이 갈리면서 영영 못만났습니다. 그러다 아이러브스쿨이 유행일 때 친구의 권유로 가입했는데 놀랍게도 Y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서로 몇번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Y는 저를 잘 기억하는데 저는 기억못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만날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만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어린 시절에 N과의 추억을 간직하지 못했던 이유에서 입니다. 첫사랑이든 풋사랑이든 추억은 소중하게 간질할 때 영원히 아름답습니다. 나이가 들어 동창회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첫사랑이든 소중한 친구와의 만남이든 사심이 들면 그것은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의 풋풋하고 때묻지 않은 시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추억할 때 아름답습니다. 가슴 속의 첫사랑은 만나는 순간 그 추억은 사라집니다. 첫사랑은 만나지 않고 가슴에 묻어두고 추억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당시의 예쁜 추억만을 간직할 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순간부터 상상 속의 신기루가 바로 사라집니다.

첫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첫사랑은 아름답지만 추억으로 간직할 사랑입니다.
첫사랑은 영원토록 소중하고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행복한 사랑입니다.
헤어진 첫사랑과 만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 행복한 추억 속 사랑을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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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퇴근 후 아파트 앞을 지나는데 특별(?) 야시장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렸던 탓인지 사람들이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야시장에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신기한 장면을 잠시 보다가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나니 아이들이 야시장에 가자고 했습니다. 머뭇거리다가 오랫만에 구경삼아 아이들과 함께 나갔습니다. 야시장은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이었습니다. 시골 장터나 재래 시장 골목의 운치가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야시장은 신기한 장면이었습니다. 어른들과 함께 나온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두 딸아이가 '추억의 뽑기'를 보더니 달려갔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1970년대에 초등학생들에게 인기있었던 뽑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도 '추억의 뽑기'가 재미있나 봅니다. 잠깐 구경하던 두 딸아이가 어느새 뽑기를 시작했습니다. 한번에 1000원이었습니다. 큰 딸이 자신의 일주일 용돈의 절반을 과감히 배팅한 것입니다. 작은 딸은 아까워서 못할텐데 큰 딸은 배짱(?)이 두둑합니다. 그러면 '추억의 뽑기' 속으로 빠져 볼까요?


어른들은 추억을 간직한 채 구경하고 아이들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놀이로 '추억의 뽑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뽑기는 한번에 1000원이고 꽝이면 작은 금붕어 모양의 (설탕?) 과자를 하나 받게 됩니다. 일단 하나도 못맞춰도 기본으로 최소한 과자는 받는 셈입니다. 물론 금붕어 모양의 과자는 작아서 원가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추억의 뽑기를 하는 놀이판이 보입니다. 숫자들이 씌여있는 종이판 위에 권총 거북선 호랑이 용 등이 씌여있는 소형 글자판이 보입니다. 숫자판에 6개의 글자판을 대략 옮겨둔 후 옆에 있는 통속에 종이를 뽑습니다.

큰 딸이 둥근 통 속의 종이를 뽑고 있습니다. 종이에 각각 숫자가 씌여 있습니다. 숫자판과 종이의 숫자가 일치한 곳에 상품이 걸려야만 성공입니다. 확률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하나의 아무 상품이라도 걸릴 확률은 20% 정도일 듯 합니다. 거기에다가 커다란 상품이 걸릴 확률은 10% 이하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요? 뽑기에서 가장 큰 상품 중 하나인 '청룡검'을 뽑았습니다. 두 딸아이는 너무나 신났는지 연신 뽑기 이야기를 합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자랑한다고 그대로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청룡검의 크기는 거의 식탁을 다 차지할 정도로 큽니다. 아이들은 김치냉장고에 그대로 보관을 해둡니다. 아이들에게 청룡검을 뽑은 것은 큰 자랑인가 봅니다.

야시장 풍경입니다. 아이들이 백원짜리 펜을 고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물건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야광 상품들도 보였습니다. 주로 남자 아이들에게 야광 검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에게도 야외에서 즐기는 야시장의 정취는 즐거운가 봅니다. 가장 인기있는 야시장의 술집입니다.

사람들이 바베큐, 족발, 낚지볶음, 꼼장어볶음, 쭈꾸미볶음 등의 음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출출한 야밤에 동동주나 막걸리와 함께 즐기면 좋을 듯 합니다.

길거리에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도 음식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추억에 빠집니다.

만두집에도 추억을 담아가는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야시장은 역시 먹는 재미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야시장이 열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큰 즐거움을 주는 듯 합니다. 비록 이틀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야시장은 주민들에게 추억을 남겨줍니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려주고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추억을 심어줍니다. 이렇게 어른들과 아이들이 공통의 추억을 갖게 됩니다.

'추억의 뽑기'로 인해 온 가족이 화기애애한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딸아이는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뽑기에서 '청룡검'을 뽑았다고 하루종일 자랑할 듯 합니다. 어른도 아이도 즐거운 '추억의 뽑기' 세상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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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아침에 청천벽력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가슴에는 슬픔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듯 했습니다. 연신 담배만 피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마지막 직전에 경호원과의 대화가 눈에 선했습니다. 선문답같은 대화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담배 있나?"
"없는데요. 가져올까요?"
"저기 사람이 지나간다."

피끓는 청춘 시절을 잊고 20여년을 바쁘게 살았습니다. 한 가정을 일구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정치는 '그들 만의 리그'라고 치부하곤 했습니다. '먹고사니즘'이 더 절박한 생활이었기에 평범한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선거권은 반드시 행사했습니다.

그런데, 인간 노무현의 등장과 서거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내가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TV에서는 뉴스특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잘 참고 있던 아내가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아내는 점점 감정이 북받치는지 울먹거렸습니다.

너무 감정이 감정이 격앙된 것 같아서 아내를 진정시키려 해봤습니다.

"왜 그러는 거야. 진정해."
"우리가 취임식에도 갔던 대통령이 서거했는데...(울먹울먹)..."

"그만 울어. 당신이 울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나려고 하잖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너무 슬퍼...(훌쩍훌쩍)..."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는 일반 국민 대표들이 함께 입장했다

저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나니 옛 생각이 났습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 왔습니다. 저녁 식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은 처음으로 일반 국민들의 인터넷 신청을 받아 추첨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운좋게도 난생 처음 대통령 취임식 참석의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국회에서 역사적인 제 16대 대통령 취임식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부부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의 영향과 이를 통한 일반 국민들의 참석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아내가 이렇게 가족 이외의 특정 인물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처음 본 모습이었습니다.

너무 허망한 대통령의 서거에 아내는 취임식 당시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당시 취임식은 2월 중순이라 여전히 추웠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부부가 특별한 이벤트로 가졌던 취임식 행사 참석이었습니다. 당시 식전 행사의 마지막 노래로 양희은이 '상록수'를 부르자 많은 참석자들이 따라부르며 진정한 민주주의 세상을 염원했습니다.

그리고 취임식은 노무현 대통령이 일반 국민 대표들과 함께 참석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 취임식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민주주의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희망했던 소중했던 추억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기존 극우 보수 세력과 하이에나 보수 언론에 임기 내내 물어뜯겼습니다.
 
시청 앞에서 거리 분향소 조문을 전경들이 가로막자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이 세상에는 어느새 독재의 망령이 스멀스멀 엄습해오고 있습니다. 소중한 가치 보다는 눈 앞의 이익과 욕심에만 너무 매몰되어 개인 이기주의, 지역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오히려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 보다 물질은 많아졌지만 더 많이 갖기 위해 아웅다웅 다투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사람 보다는 물질에 함몰되어 너무 각박한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취임식이 아니라 장례식을 지켜봐야 합니다. 자신을 산화해 희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울림의 메시지가 큽니다. 고인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속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들이 많습니다. 그 가치의 중심은 물질 보다는 먼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보다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때의 추억처럼 양희은의 상록수를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근조 소스 제작 : 예스비님 근조소스 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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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며칠 전, KBS 방송국의 모 작가 분이 제 블로그에 댓글을 하나 남겼습니다. 제가 지난 2월달에 쓴 '선생님의 지혜 '묵묵히 상'이 값진 이유'를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글이었습니다.

제가 평소에는 방송을 잘 보는 편이 아니지만,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은 그나마 즐겨보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 'TV동화 행복한 세상'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늘 바쁜 일상 속 생활이지만, 우리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고 훈훈한 감동과 함께 잠시라도 우리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던 기억입니다.

그래서 작가에게 흔쾌히 방송에 내보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참으로 신기한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작가는 방송을 위해서는 사전에 저작권에 대한 부분을 고려해 게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우편으로 문서를 보낼테니 작성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대한 일부 소개입니다.
세 잎 클로버, 일상에서 찾은 행복
우리는 행복을 어느 날 우연히 얻을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행운이 다가올 날을 기다립니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를 커다란 행운을 좇느라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운을 기다리는 사이 작지만 가치 있는,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이 사라져 갑니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입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뜻하는 ‘세 잎 클로버’를 프로그램 로고로 활용하여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행복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고자 합니다.

단 하나의 행운을 바라며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지 않은가요? 그 사이 수많은 세 잎 클로버를 무참히 짓밟고 있지는 않은가요?

TV동화 행복한 세상과 함께세 잎 클로버’ 의 의미를 생각하며 일상 속 행복을 찾고 누리는 연습을 시작하세요.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행복한 일상을 따뜻한 영상에 담아 시청자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이 전하는 일상 속의 작은 행복, ‘세 잎 클로버’를 기억하세요.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KBS1을 통해 오전 10시 50분에, 토요일은 오전 10시 55분에 각각 5분간 방송이 됩니다. 

기다리던 우편이 주소가 조금 잘못되었는지 돌고돌아 예정 보다 늦게 도착했습니다. 아마도 4일에 도착한 것 같은데 5일 어린이날에 우편함에서 발견해 수령하게 됐습니다. KBS로부터 도착한 우편에는 계약서 작성에 대한 설명서를 비롯해 계약서 2부가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을 살펴보니 글이 모여 방송은 물론 비디오 책 등으로도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 발간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은 불우이웃돕기에 쓰인다고 하니 참 반가운 일입니다.

방송국에서 보내 온 우편과 세부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소중한 사연들이 풋풋한 정서에 목말라하는 많은 분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드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번거롭다 생각하지 마시고 정성껏 작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소중한 추억들이 한 권의 책과 비디오 등으로도 제작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허락해주신 글로 엮어지는 'TV동화 행복한 세상 책'의 인세수익금은 불우이웃 돕기에 쓰여질 계획입니다."

게다가,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통해 방송이 되면 소정의 원고료도 지급이 된다고 합니다. 제가 블로그에 쓴 글 하나가 방송도 되고 불우이웃도 돕고 원고료까지 받게 되다니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문의 영광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곧바로 계약서 2부를 각각 작성했습니다. 계약사항을 읽어보니 '원작의 사용범위'는 상당히 포괄적인 것 같습니다. 원작 글에 대한 내용에 대해 모든 계약사항에 활용하지는 못할 수 있지만, 만일을 위해 사전에 향후 활용될 수 있는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 방송 영화를 위해 영상화하는 것
+ 연극으로 상연하는 것
+ 방송, 영화, 상연을 위해 각색한 내용(방송각본, 시나리오, 연극대본 등)을 기초로 서적(번역물 등)으로 출판하는 것
+ 어린이용 서적(만화 등)으로 출판하는 것
+ 전자책(e-book)으로 제작하거나 휴대폰 모바일 서비스에 이용하는 것
* 기타 '원작'을 번역, 변형, 각색, 영상 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2차적 저작물을 만드는 것

저에게는 이번 어린이날이 몇가지의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방송국과 처음 계약을 하게 되다
우선 난생 처음으로 방송국과 계약을 하는 일이 생기다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고 합니다. 그러한 출발점은 역시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 이러한 결과를 얻게 된 것 같습니다. 더욱이 'TV동화 행복한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이 제 블로그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해 더 반갑기도 합니다.

어린이날에 소중한 선물을 받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날에 소중한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어린이날에 오히려 두 딸에게 고마운 선물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블로그에 쓴 내용도 두 딸이 학교 선생님으로 받은 상을 주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린이날 두 딸에게 커다란 선물을 받은 셈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 겠습니다.

글 하나로 불우이웃도 돕게 되다
블로그 글 하나로 인해 불우이웃을 돕게 된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TV동화가 책으로 만들어지면 인세수입금이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도록 한 KBS 방송국 그리고 'TV동화 행복한 세상' 제작진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블로그 방문자수 200만명을 돌파하다
미처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블로그 방문자수가 2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지난 1월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약 4개월 여 만의 결과라서 어리둥절합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 블로그 이웃님들과 이 세상의 모든 블로거 분들의 도움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실제 방송은 제작기간이 있어 몇달후에 방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방송은 물론 나중에 DVD와 책도 받을 수 있다니 많이 기대가 됩니다. 이 모든 소중한 추억이 블로그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모든 블로거 분들과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추가글] 제가 베스트 블로거 황금펜이 된 줄 몰랐는데, 댓글로 알려주셔 감사합니다.
갑자기 예기치 못하게, 겹경사가 생겨 어리둥절합니다. 이 모두가 소중한 이웃 블로거님들과 여러 블로거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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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저녁에 식사 후 냉장고에 붙어있는, 우리집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보낸 <급식 소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무심코 지나치던 내용이었는데 급식소식에 표현된 특별한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급식소식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쇠고기 국내산 한우, 돼지고기 닭고기 국내산, 쌀 국내산(고양쌀), 김치 국내산 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세심하게 급식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국내산 한우의 쇠고기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쌀의 경우에는 지역 농산물인 쌀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단표를 살펴보니, 요일마다 매일 다른 음식으로 상당히 괜찮은 식단이었습니다. 이번 주의 식단만 봐도 아이들이 다종다양한 밥과 반찬을 먹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식사의 품질도 좋고 맛도 좋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학교에 두 딸아이를 보내고 있어 학교 봉사활동에 참여해 이미 여러번 급식을 먹어본 바 있었습니다.
월요일 : 현미찹쌀밥 쇠고기무국 떡잡채 코다리양념구이 배추김치
화요일 : 차조밥 얼갈이된장국 사과오이무침 생선커틀렛 총각김치
수요일 : 토마토소스스파게티 옥수수크림스프 단무지 요구르트샐러드 마늘빵
목요일 : 쥐눈이콩밥 닭곰탕 돈육메추리알조림 무생채 배추김치 오렌지
금요일 : 녹두밥 팽이버섯국 낙지소면무침 참치옥수수전 배추김치

그렇다면, 한달 급식비 가격은 어떨까 찾아봤습니다. 점심 한끼에 2,100원이었습니다. 고급스런 식단의 수준에 비해 가격은 오히려 저렴한 수준인 것 같았습니다. 한달이면 4만 2천원이었습니다.

<급식소식> 뒷면에는 '즐겁고 유익한 학교 급식'에 대해 친절하게 영양기준, 식재료, 식단구성 및 조리법, 급식을 통한 교육 등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 중 식재료에 대한 주요 사항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식재료>
(1)농산물 : 90% 이상 국산이며 친환경 농산물, 과일 등
(2)공산품 : 원료의 국산화, MSG(일종의 화학조미료) 무첨가 제품, HACCP(식품위해요소 중요관리점) 제품 사용
(3)수산물 : 국산, 연근해
(4)육   류 : 한우 2등급 이상, 돼지고지 2등급 이상, 닭고기 1등급, 계란(무항생제, 1등급란)
(5)주 1회 이상 친환경 농산물 사용의 날 운영
(6)주식은 국내산 쌀(수확년도 1년 이내), 국산 찹쌀 15-20% 농협잡곡 5-7%를 포함한 혼식 원칙
(7)조미료 등의 식품첨가물 및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다시마 멸치 건새우 양파 무 등 천연재료로 맛을 냅니다.
* 바른 식생화 정착을 위해 1주 식단 구성시 채소류 중 나물반찬 2회 이상, 신선한 과일 주 1회 이상, 튀긴 음식 및 가공음식 주 2회 이하로 관리


그리고 학교에서는 편식 교정을 위한 지도를 비롯해 우리 몸에 적합한 전통식 위주의 식습관 교육, 올바른 식사 예절 교육 등을 실시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아내에 의하면, 실제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급식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딸아이들도 전혀 음식을 가리지않고 학교 급식을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요즘 어떤 학교의 고급 급식(좌측)과 70년대 교실의 난로 위 도시락 풍경(우측) : 자료사진]

한편으로, 초등학교의 학교 급식을 보면서 우리 시대와 비교가 많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는 보온도 안되는 도시락을 싸고 다녔습니다. 겨울철에는 조개탄을 태우는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데워서 먹기도 했습니다. 지나간 추억의 도시락이지만 요즘 아이들의 고급 급식 식단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학교의 급식이 이렇게 좋은 편은 아닐 것입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급식 위생 문제로 인해 식중독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꿀꿀이죽 수준의 부실한 식단이 밝혀져 학부모들을 경악하게 하기도 합니다. 먹는 음식을 이용해 악덕한 짓을 하는 일부 어른들 때문입니다. 아직도 미흡한 학교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학부모들과 학교들을 비롯한 각계 각층이 합심해 급식 문화 개선에 더욱 관심과 힘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미국산 쇠고기에 이어 광우병 발병이 많았던 유럽산 쇠고기도 국내에 수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으로 온 국민이 몸살을 앓았는데 한국과 EU(유럽연합) 사이의 FTA 협상이 유럽산 쇠고기의 수입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잠정 협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고, 농축산물과 같은 우리 전통의 먹거리들이 보호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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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