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2.15 1박2일 제주도 여행이 특별한 3가지 이유 <시청자투어로 본 졸업/가족/신혼여행> by 진리 탐구 탐진강 (37)
  2. 2009.07.07 신혼여행에 쌀집 트럭 몰고 온 친구 황당했지만... by 진리 탐구 탐진강 (52)
  3. 2009.04.15 오픈카의 원조 삼발이차의 세바퀴 질주를 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8)


설날 명절에 맞춰 1박2일 시청자투어가 시작됐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펼쳐지는 시청자투어에는 무려 150만명의 신청자가 몰릴 정도로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청자투어에는 7팀 90여명이 선정되었고 2박3일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에 대활약을 했던 국악고 소녀시대와 한국체대 여대생들이 특별 참가한 것도 관심을 증폭시킵니다.

이토록 시청자투어가 엄청난 관심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상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이렇게 많은 시청자들이 방송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참여해 2박3일간 촬영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강호동을 비롯 멤버들과 제작진이 시청자를 주인공이자 왕으로 대접해주는 1박2일의 인간적 정과 따뜻함이 무엇보다 시청자들을 끄는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1박2일이 그 동안 시청자들에게 가족과 같이 편안하게 다가간 노력이 공감을 받는 듯 합니다.
단순히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사람들과 함께 하며 진솔하게 다가갔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1박2일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지역 주민이나 여행객 시민들과 격의없이 형 동생 삼촌 아저씨 친구가 되어주고 했습니다. 상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편안하고 행복한 기운이 감도는 프로가 1박2일인 셈입니다.


1박2일 제주도 시청자투어에는 가족,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동호회 등 7개팀 90여명이 참가한다 

이번 시청자투어는 제주도를 택했습니다.
제주도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꼭 한번을 가보고 싶은 곳이고 추억의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번 시청자투어가 제주도로 떠나는 것을 보니 특별한 추억과 회상에 잠기게 했습니다.

90년대 초반 대학시절 제주도 졸업여행의 아련한 추억
 

우선 제주도에 처음 여행을 가본 것은 1991년 대학교 3학년 때 였습니다. 당시 저는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생이었습니다. 저는 86학번인데 당시 약 3년의 군대를 다녀오니 대학 3학년에 복학 후 89학번과 함께 학교 캠퍼스 생활을 했습니다. 복학 후 현역 학생이나 복학생이나 서먹서먹한 분위기였고 각각 따로 다녔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주도 졸업 수학여행을 가기로 결정됐습니다.
사실 지금은 해외여행도 많지만 그 당시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최고의 졸업 여행 장소로 찾던 곳이 제주도이던 시절이었습니다. 현역 학생 대표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복학생들이 함께 갔으면 하는데 많이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단기 복무인 방위 근무를 했기에 3학년에 함께 다니게 된 87학번후배들을 포함해 86학번 복학생들이 제주도 수학여행에 대거 참가할 수 있도록 저는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국악고 소녀시대 학생들의 여행은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제 인생에 있어 최초의 제주도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대학생들이라서 비용절감 차원에서 완도에서 저녁에 출발하는 유람선 배를 타고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떠나기로 한 완도에서 첫 날 배는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태풍이 불었기에 하루를 완도에서 기다리며 현지에 묵어야 했습니다. 어렵게 떠난 제주도 졸업여행은 한라산 등반을 비롯해 2박3일간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여행을 다녀온 후 현역과 복학생들이 모두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태풍과 만난 제주도 신혼여행과 친구의 쌀집 트럭

두번째로 제주도에 간 것은 신혼여행이었습니다.
지금은 신혼여행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지만 1990년대 중반 당시는 제주도 신혼여행이 많았습니다. 신혼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떠났습니다. 다만 제주도에 군대에서 절친했던 친구가 있어 신혼여행 기간 동안 여행 일정을 모두 챙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신혼여행 첫 날에 공항으로 몰고온 것은 쌀집 트럭이었습니다.
신혼여행 내내 고난과 추억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날 친구는 제주도에 있는 자신의 친구들을 모두 모아서 단란주점 하나를 통째로 빌려 밤새도록 서울에서 온 친구의 신혼여행과 결혼식 축하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신혼여행이 끝나 돌아가야 하는 날이 왔는데 태풍이 불었습니다.
하루를 더 제주도에 묵어야 했고 친구는 자신이 쌀을 대고있던 관광호텔의 방을 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갔지만 결항이 계속 돼 비행기편이 없던 터라 친구가 구해준 페리 배편으로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페리 배편을 타러가는 길도 친구는 쌀집 트럭을 몰고 왔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제주도 신혼여행의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가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맙기만 합니다.

      제주도의 소인국테마파크에 들렀을 때 아이들이 미니어처 불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다시 만난 태풍과 장모님 칠순 기념 제주도 가족여행

세번째 제주도 여행은 지난해 가족여행이었습니다.

장모님 칠순 생신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제주도 출신의 아랫 동서가 있어 가족여행은 순탄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언제나 방심을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제주도 도착한 날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고 공항에서 숙박지에 전화를 하던 동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주도에서 아주 멋진 팬션을 예약했던 동서는 거기에 전화로 확인해보니 뭔가 잘못돼 예약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동서가 제주의 친척에게 부탁했는데 구두 상으로만 말하고 실제 확인을 못한 실수였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제주 가족여행은 시작됐지만 현지에서 멋진 장소와 음식을 비롯 아주 즐거운 여행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번의 제주도 여행은 모두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졸업여행으로 처음 간 제주도였고 그 후 새로운 인생의 출발인 신혼여행 그리고 장모님을 모시고 간 가족여행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중한 추억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갈 때 마다 제주도 여행은 언제나 태풍을 동반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주도 여행 때 마다 닥친 태풍은 우리에게 특별한 추억을 하나 더 만들어주기 위한 하늘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행스럽게 태풍은 잠시 스쳐지나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제주도로 떠난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비단 저 만의 생각은 아닐 듯 합니다. 그 동안 제주도로 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을 떠났던 학생들, 그리고 소중한 결혼의 출발점에서 신혼여행을 갔던 신랑신부들,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여행간 사람들, 여러가지 사연들이 모여 따뜻한 행복을 만들어갔던 제주도의 추억들이 사람들 마다 아련하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1박2일 시청자투어는 모든 사람들에게 훈훈하게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제주도에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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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올해 여름 휴가는 제주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장모님을 모시고 처갓집 가족들과 함께 갈 예정입니다. 제주도는 인연이 많은 곳입니다. 아내와 모처럼 제주도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다보니 13년전 신혼여행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내와 우연히 만나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간 곳은 제주도였습니다. 당시는 1996년 봄이었습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던 이유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만난 친구였습니다. 친구는 제주도 토박이였습니다. 제가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오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던 친구였습니다.

결혼까지 숱한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 신혼여행이 시작됐습니다. 친구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오기만 하면 나머지 모든 것은 자신이 해결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터 였습니다. 그래서 제주도 신혼여행은 친구만 믿고 항공권과 호텔 예약만 했습니다. 아내에게도 너무나 행복한 제주도 신혼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저녁 9시가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제주 공항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결혼식으로 시달려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팠습니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친구가 나타나기만 기다렸습니다. 친구가 근사한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나타나 호텔까지 데려다 주기를 상상했습니다. 아내는 특히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저녁 10시쯤 됐습니다. 드디어 친구가 식당에 나타났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반갑다, 친구야. 피곤한데 호텔로 가서 쉬어야 겠다."
"그래. 오느라 고생했다. 내가 데려다 줄게. 가자."

"야, 임마. 이걸 타고 호텔로 가자고?"
"미안한데, 여기서 택시 운전 친구가 일정이 안맞아서..."



친구의 차를 본 순간 저와 아내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 했습니다. 친구가 몰고 온 차는 트럭이었습니다. 아내는 실망하는 눈빛이 간절했습니다. 당시 친구는 제주도에서 도매상으로 쌀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로서는 신혼여행인데 쌀집 트럭이라니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전부터 눈치없는 친구인 줄 알았지만 설마 트럭 몰고 나타날 줄 몰랐습니다. 친구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친구야, 그래도 그렇지. 트럭타고 호텔 갈 수는 없잖아."
"그런가? 트럭도 재미있잖아. 그러면 어떻게 하려구?"

"친구야, 너의 마음은 알겠지만 트럭은 아닌 것 같다. 아내의 친척도 여기 살거든. 알아서 할게."
"알았다. 그러면 오늘은 그렇게 해라. 그 대신 내일 아침에는 확실히 택시 준비하마."

사실 제주도에는 아내의 여동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먼저 결혼한 동생은 제주도에서 살림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쌀집 트럭을 타고 신혼 첫 날을 이동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긴급히 아내의 여동생을 호출해 자가용으로 호텔까지 이동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무 힘든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제주도 신혼여행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친구가 호텔에 나타났습니다. 다행히 택시 운전하는 친구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아직 잠에서 깨기도 전인데 아침부터 친구는 험난한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신혼 여행 기간 동안 친구의 만행(?)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전하기로 하고 쌀집 트럭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제주도 유람선과 갈매기의 날개 짓 그리고 평화로운 풍경이 정겹다.(사진 : 청풍 )


신혼여행 마지막 날, 제주도에 태풍이 불었습니다. 모든 비행기와 선박이 묶였습니다. 하루를 더 제주도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미 기간이 끝난 호텔 대신에 잠자리를 구하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친구는 자신이의 쌀집과 거래하는 관광호텔을 잡아주어 하루를 묵게 했습니다. 그 날은 친구의 트럭을 이용해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찬밥 더운밥 따질 입장이 안되었습니다.

문제는 비행기표였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제주도에 발이 묶었던 참이었습니다. 항공사 다니는 친구에게도 전화해 비행기표를 구하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주도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친구는 비행기표는 구할 수 없으니 유람선 배편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내와 저는 유람선 배를 타러 부두로 갔습니다. 제주도 친구의 쌀집 트럭을 타고 갔습니다. 이제는 친구와 쌀집 트럭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친구는 저와 아내를 위해 쌀집 장사도 포기하고 트럭을 몰고 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도 첫 날은 황당했지만 어느새 쌀집 트럭에 정이 들었습니다. 배를 타기 전에 친구와 헤어지면서 말했습니다.
"친구야. 고맙다. 너의 쌀집 트럭이 우리에게 좋은 신혼여행 추억을 만들어 주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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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 자유로를 드라이브하고 있는데 낯선 오픈카 한 대가 앞질러 갔습니다. 어린 시절에 목격하던 앞바퀴 하나, 뒷바퀴 두개의 삼발이차였습니다. 한마디로 '세바퀴'인 셈입니다. 겉 모습은 보잘 것 없는 삼발이차가 시속 70킬로를 넘는 속도로 달렸습니다.

삼발이차를 다시 따라잡았더니 어떤 남자 분이 헬맷도 쓰지않고 다소 위험한 세바퀴 질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고급 오토바이의 엔진으로 개조한 차인지 모르겠지만, 네발 자동차 사이를 당당하고 유유히 달리는 삼발이차는 옛 추억을 되살리게 했습니다. 삼발이차는 삼륜차인데 과거에는 일명 '딸딸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차가 귀하던 지난 1970년대 시절에는 비포장 신작로에 삼발이 트럭 한 대라도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히치하이킹하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공짜로 얻어타는 히치하이킹(hitchhiking)은 시골 아이들의 재미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마음씨 좋은 운전사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이들을 태워주는 것을 당연시 했습니다.

버스도 없던 시골 산골마을에서 약 10리(4Km) 정도의 거리는 걸어다니던 아이들에게 지나가는 트럭의 뒷 칸에 올라 타 오픈카처럼 달리는 기분은 짜릿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까만 고무신을 신고 어깨에 책보를 매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풍경은 정겹기만 했습니다.
 


[세바퀴의 삼발이차가 네발 자동차 사이에서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모습]

당시에는 양말은 거의 못신고 다니다보니 뛰다가 고무신이 미끄러지고 벗겨져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고무신을 아끼기 위해 벗어서 들고 맨발로 걸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운동화를 신는 것이 꿈인 시절이었습니다. 트럭 아저씨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아무런 사례도 없이 태워주는 넉넉한 마음이 넘치는, 가난 속에서도 인정미가 넘쳤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직도 일부 시골 마을의 도로에서는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을 태워주는 경겨운 풍경은 남아 있습니다. 

까만 고무신과 신작로의 트럭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입니다. 요즘의 도회지 아이들도 시골에 가서 경운기 뒷칸에 타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지난해 여름에 시골에 갔을 때 아이들이 경운기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늘상 타는 자동차이기 때문인지 할아버지가 태워주는 경운기가 더 재미있다고 합니다.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은 덜커덩 거리며 달리는 경운기가 제 맛인가 봅니다. 

[1970년대 삼발이차에 탄 사람들과 현대의 경운기 타는 아이들]

삼발이차의 원조는 기아자동차입니다.
 일본에서 '삼화제작소'라는 기업의 경영을 이끌었던 '김철호' 옹은 해방 직전 귀국하여 1944년 12월 '경성정공'을 설립한 후 1952년 3월 한국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삼천리 레스포 자전거의 모체)'를 생산했던 것입니다. 1959년 일본의 '혼다'와 '동양공업(마쓰다의 전신)'과 제휴하여 1961년 모터싸이클 '혼다 C-100'(대림 혼다의 모체)를 생산했습니다.

그 후 1962년 1월  일명 '딸딸이'라 불리는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면서 1962년 10월 상호를 '기아산업'으로 변경했던 것입니다.
당시 삼륜차는 2기통 577cc 엔진을 장착하였고, 그 후 몇가지 개량형 모델이 나오며 1974년까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삼발이차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삼발이차는 안정성이 부족해 코너에서 넘어지기 쉽고 속도를 내는데 한계가 있었던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도 삼발이차는 중국을 비롯한 저개발 국가들에서는 우리의 1970~1980년대와 같은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수도인 북경에서도 가끔 삼발이 화물차를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삼발이차가 현대에 맞게 세련된 형태로 새로 나오기도 합니다. 삼발이차도 과거와 현재가 공준하는 세계인 셈입니다.
 

[중국 북경의 삼발이차 모습과 Panther Motors ScootCoupe의 삼륜차]
[삼륜차 형태로 만든 스위스의 전기 자동차]

삼발이차를 보고나서 어쩌다보니, 옛 추억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우리나라 삼륜차의 유래와 중국의 삼륜차, 그리고 새로 개발되는 현대 컨셉의 삼륜차에 이르기까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삼발이차는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져가는 추억의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시골 사람들이나 도시의 서민들에게는 애환이 담긴 소중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집집마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고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 교통수단들이 발달되어 있어 불편함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어려운 시절에도 불굴의 투지와 도전정신으로 열심히 경제발전에 매진한 결과 우리가 보다 나은 환경을 갖게 된 것임을 잊지말아야 겠습니다. 최근의 경제불황에 시름이 깊지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말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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