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고버섯'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5.17 1박2일 김C의 공정여행 장흥3합 진미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4)
  2. 2009.11.07 다이어트에 좋은 표고버섯 효능 5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38)
  3. 2009.10.20 군대 간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 눈물의 차이 by 진리 탐구 탐진강 (66)
  4. 2009.07.30 군대가는 아들 뒤 아버지의 눈물을 봤다면... by 진리 탐구 탐진강 (40)
  5. 2009.02.15 한반도의 정중앙과 정남진을 아시나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22)


김C가 1박2일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에 김C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1박2일이 될 것 같습니다. 1박2일은 '전국일주 코리안루트'를 통해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연환경 비교체험의 진수와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1박2일은 3개팀으로 흩어져 전국일주를 했는데 우선 은지원-김종민은 서로 취향과 성격이 너무 다른 상극 커플이지만 금산사 템플스테이 체험 등을 통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강호동과 이승기는 순천만 자연공원을 방문해 아름다운 환경과 함께 후한 마을의 인심을 추억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은
 김C-이수근-MC몽이었습니다. '지역 경제 살리는 공정여행'이라는 테마로 장흥 토요시장을 방문해 지역특산물 한우를 비롯 장흥 3합을 맛본데 이어 즉석콘서트로 주민 및 여행객들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보성녹차밭을 찾아 즉석 녹차송 CF를 제작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김C의 공정여행은 도시와 지역이 상생하는 비전의 제시였다

김C가 1박2일을 떠나더라도 공정여행을 제시한 의미는 계속 남을 듯 합니다. 사실 김C는 노래하는 가수로서 예능을 비롯 각종 방송에 출연하지만 공정무역(Fair Trading)을 위한 사회적 공익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개념있는 연예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정무역을 실천하고 있는 아름다운가게의 아름다운초콜릿 '초코렛'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장흥의 특산물 한우, 표고버섯, 키조개 등이 한번에 즐길 수 있는 장흥 3합 (사진 @jkjung50 트위터)


공정무역은 무한도전에서 '씽크커피(Think Coffee)'가 등장하는 뉴욕 특집을 통해 일반에도 알려진 바 있는데 이번에 김C가 '공정여행'을 제시해 새로운 여행테마의 신기원을 제안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단지 여행이 놀고 먹는 것만이 아닌 지역을 살리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셈입니다. 도시민들이 전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지역을 찾더라도 함께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행이 바로 공정여행이라는 것입니다.

정남진 장흥 3합의 진미, 물맑고 산좋은 자연의 축복이었다

서울 광화문 기점에서 직선으로 동쪽 강원도에는 정동진이 있고, 남쪽에는 정남진이 있습니다. 정남진이 위치한 곳이 바로 장흥입니다. 이번에 1박2일팀의 김C-MC몽-이수근 일행이 먹은 장흥 3합은 바로 장흥의 주요 특산물을 하나로 요리한 별미라 할 수 있습니다. 장흥은 산이 높고 물이 맑아 산에는 표고버섯이, 바다에는 키조개가, 그리고 마을에는 한우가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표고버섯 생산량 중 25% 이상을 장흥 유치면 등에서 생산할 정도로 표고버섯은 최고의 특산품입니다. 탐진강이 장흥은 잘 아는 곳이고 직접 맛본 특산물이라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키조개를 드럼통 장작구이로 구워먹는 재미도 일품이다. 키조개와 대하를 장작불에 굽는 장면이다

그리고 장흥 토요시장에서는 1등급 한우 고기를 현장에서 구입해 곧바로 식당에서 구어먹을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이 되어 있어 품질좋은 한우 고기를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1박2일에도 나왔지만 토요시장에서는 길거리 공연과 시장의 북적대는 정겨움을 함께 즐길 수도 있습니다. 장흥읍내에서 남쪽으로 가면 남해안 바닷가가 위치해 정남진과 함께 바다의 별미 키조개와 매생이국을 맛볼 수 있기도 합니다.


장흥 1등급 한우 꽃등심과 키조개를 장작구이로 구워먹고 나서 매생이국을 먹는 것도 진미를 느낀다 

정남진 장흥3합은 장흥의 특산물을 결합한 웰빙 음식인 셈입니다. 장흥 토요장터에서 장흥 3합은 A++ 1등급 한우고기+표고버섯+키조개에다가 더불어 매생이국+어죽을 함께 퓨전식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장흥3합이 아니더라도 각각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를 먹어도 특별한 진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드럼통 장작구이로 키조개와 버섯 그리고 한우 꽃등심을 구워먹는 재미는 시골에서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재미라 할 수 있습니다.

표고버섯의 효능 및 영양

1.콜레스테롤-고혈압의 예방
콜레스테롤이나 고혈압의 수치를 내리는 효과가 있어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나 육류에 표고버섯을 곁들이면 매우 일품입니다.

2.빈혈예방 및 임산부에 특효
표고버섯은 정력을 좋게 하고 풍을 고쳐주며 빈혈 예방에 좋은 비타님 B1및 뼈대구성에 필요한 비타민 D2가 풍부해서 임산부에게 특히 좋은 식품입니다. 전통의학 서적인 본초강목에 따르면 표고버섯은 기(氣)를 도와주고 허기를 느끼지 않게 하며 풍(風)을 고치는가 하면 피를 잘 통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다이어트 식품으로 으뜸
표고 버섯은 무칼로리 식품으로소 가장 이상적인 다이어트 식품으로 허기를 느끼지 않게 하므로 끓여서 물로 마시며 단식하는데도 좋습니다.

4.비타민 D의 보고
비타민 D는 뼈나 이를 튼튼하게 하며, 다른 음식에서는 얻기가 힘드나 건조표고 버섯에는 풍부하여 귀중한 보급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5.항암 작용및 혈액순환 촉진
표고 버섯에는 레티닌이라는 항암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제암효과가 크며 장을 맑고  튼튼하게 하고 혈액 순황을 촉진 시키며 진정 작용과 간 질화, 심장기능강화, 동맥경화 및 치액 제거에 효과적입니다.

장흥은 서쪽에 강진군과 동쪽에 보성군 그리고 북쪽에 화순군이 있는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남해안에 있지만 사방으로 험한 산세에 둘러쌓인 곳입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형상의 장흥군 북쪽에는 가지산과 화학산, 보성군과의 경계인 동쪽에는 제암산과 사자산, 남쪽에는 천관산 등이 솟아 있습니다. 기차역도 없고 고속도로도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탐진강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이 있고 장흥댐도 1급수 물이 담긴 담수호로 깨끗하게 보존돼 있습니다.


산좋고 물맑은 장흥에는 1급수 탐진강과 장흥댐이 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이다

장흥 북쪽 유치면에는 무려 천년 역사가 넘는 고찰 보림사가 위치해 있는데 산세가 험하지만 통일신라 당시 (5교) 9산 중 하나가 바로 보림사입니다. 국내최대의 표고버섯 산지가 바로 이 곳 부근입니다. 산나물이나 토종 벌꿀도 특산품입니다. 으로 가면 해안이 나오는데 득량만과 보성만을 바라보고 사는 갯벌은 상당 부분 평야로 변해 있습니다. 간척 공사를 통해 얻어진 그 넓은 땅이 있고 농사를 짓습니다.


장흥의 북쪽에는 천년고찰 보림사가 위치하고 있고 남쪽 정남진에서는 일출을 멋지게 볼 수 있다

장흥이라는 지명 유래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려 17대 왕인 인종(재위 기간 1122~1146)은 1126년 임원후의 딸과 혼인을 했는데 그녀가 인종의 세 번째 부인인 공예왕후로 인종과의 사이에서 5남 4녀를 낳았으며 아들들은 각각 의종(18대), 명종(19대), 신종(20대)이 되었습니다. 인종은 공예왕후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인종은 왕비의 출신 고장이 '길게 흥하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장흥(長興)'이라는 지명을 하사했던 것입니다.

또한 장흥은 '문림의향'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글 재주가 좋은 문사가 많이 나왔고 충절심이 강한 의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보다 25년 앞서 지어진 '관서별곡'의 지은이가 장흥 출신 문신이자 문장가인 기봉 백광홍(1522~1556)입니다. 현대에서도 소설가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이 배출됐습니다. 이 같은 문인들을 고장답게 천관산 문학공원이 조성돼 있습니다. 천관산 기슭의 중허리 쯤에 위치한 탑산사 밑에 위치해  있어 문학과 자연이 만나는 정취가 아름답습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육지로 정남쪽에 위치한 장흥 정남진. 김C와 1박2일이 공정여행을 떠난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정남진은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의 사금마을에 있습니다. 김C가 여행의 새로운 묘미를 알려주고 1박2일에서 하차한다고 하니 아쉬움과 함께 1박2일이 기존의 균형감을 갖춘 팀워크가 가능할지 의구심도 듭니다.
 


김C가 떠난 빈자리는 여행 후 후유증과 같이 오래 추억으로 남을 듯 합니다. 1박2일이 진정한 여행의 참맛을 일깨워 주었듯이 김C는 여행과 사람이 만나서 업그레이드된 공정여행의 의미를 심어준 것 같습니다. 단지 웃고 즐기는 예능이 아니라 예능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감동도 함께 동반해 나아갈 수 있다는 방향의 제시인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4대강 사업으로 황폐화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우리가 좀 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환경을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진정한 여행의 참맛, 공정여행이 그 출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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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표고버섯의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희 부모님은 시골에서 표고버섯 재배를 하고 계십니다. 가을에 더욱 바쁩니다. 벼농사와 밭농사 추수도 해야 하고 표고버섯이 쏟아져 나오면 수확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980년대 중반 군대에 가기 전에 표고버섯 재배를 위한 전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참나무를 베고 적장한 크기로 자른 참나무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종균을 집어넣고 다시 참나무를 세워두는 등 여러 복잡한 과정의 연속입니다. 사실 참나무를 산꼭대기부터 휘발유 톱을 이용해 자르는 일은 위험하지 짝이 없습니다. 나이드신 부모님이 산에서 위험한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불안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부모님은 여전히 표고버섯 재배를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에게 이제는 쉬시라고 말씀드려도 높은 산에 올라가 참나무를 자르는 것부터 시작해 표고버섯 재배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다리가 좋지않아 더욱 걱정이 되곤 합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반년 이상을 표고버섯 재배를 도와드렸던 이유도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것이 안쓰려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천연 표고버섯은 어디서 생산 가능할까?

올해 가을도 표고버섯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살고있는 장흥은 국내 표고버섯 최대 생산지이기도 합니다. 표고버섯은 부모님에게는 주 수입원이고 농사짓는 것 보다는 수익도 좋아서 그만 두기가 쉽지 않나 봅니다. 쉬엄 쉬엄 일하시면 좋겠지만 표고버섯은 비가 온 후도 쑥쑥 자라기 때문에 신속히 버섯을 따야 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힘이 드는 일입니다. 아무쪼록 내년에는 새로 참나무를 베지말고 기존 표고버섯 나무들만 잘 관리하면 버섯이 나오는 것만 재배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표고아빠님이 정성껏 보맨 편지와 박스에 담긴 표고버섯이 풍성하고 향기롭다

며칠 전, 표고버섯의 달인 표고아빠님에게 이벤트 선물을 받았습니다. 시골에서 사용하는 누에키우는 도구를 맞췄는데 표고버섯을 한 박스 보내주셨더군요.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인데 이벤트 선물로 이웃들에게 풍성하게 보내주셔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실 표고버섯 재배와 농사를 지으면서 블로그까지 운영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듯 합니다. 그런데도 표고아빠님은 시간을 쪼개가면서 블로그 이웃들에게도 성실하고 친근하게 대해 주십니다.

한편으로 표고아빠님 블로그를 가면 정겹고 훈훈한 삶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마치 고향의 느낌을 받곤 합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어 더욱 더 정감이 넘치는지도 모릅니다. 표고버섯이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가교가 되는 셈입니다. 표고버섯은 아무 지역이나 생산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참나무가 많은 산악 지역이어야 하고 온도나 습도가 적당해야 하는 등 입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남부의 특정 지역 몇 곳에서 주로 재배가 됩니다.



제가 표고버섯을 제대로 알고 먹어 본 것은 부모님이 버섯 재배를 하면서 부터 입니다. 처음에 몰랐던 쫄깃쫄깃한 표고버섯의 맛은 고기보다 더 맛이 특별하고 좋았습니다. 표고버섯은 된장찌게를 비롯한 거의 모든 음식에 주요 재료로 들어갑니다. 심지어 표고버섯 무침도 있는데 색다른 별미입니다. 이번에 표고아빠님이 보내준 표고버섯을 활용해 다양한 음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버섯이 들어간 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표고버섯은 인체에 어떤 효능이 있을까?
 
표고버섯은 무공해 식품의 대명사입니다. 천연 그대로의 버섯을 그대로 수확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인 셈입니다. 표고버섯은 음식의 맛을 좋게 해주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효능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표고버섯이 사람의 인체에 어떤 효능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혈압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표고버섯은 콜레스테롤을 줄여주고 고혈압의 수치를 내리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나 육류에 표고버섯을 함께 넣고 곁들여 먹으면 매우 일품입니다. 돼지고기나 쇠고기 음식에 버섯을 넣는 이유는 고기 하나만 먹는 것 보다는 표고버섯과 함께 먹으면 건강에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기만 먹으면 느끼할 수도 있지만 버섯과 함께 먹으면 쫄깃쫄깃한 맛의 기품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표고버섯은 참나무에 종균을 넣고 일정 기간이 지나 비가 오면 버섯이 자라기 시작한다

빈혈예방 및 임산부에 좋습니다
표고버섯은 정력을 좋게 하고 풍을 고쳐주며 빈혈 예방에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표고버섯에 비타민 B1 및 뼈대구성에 필요한 비타민 D2가 풍부해서 임산부에게 좋은 식품입니다. 전통의학 서적인 본초강목에 따르면 표고버섯은 기(氣)를 도와주고 허기를 느끼지 않게 해준다고 합니다. 게다가 풍(風)을 고치는데 효고가 있고 피를 잘 통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좋은 식품인 셈입니다.

다이어트 식품으로 특효입니다
표고 버섯은 무칼로리 식품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합니다. 칼로리가 없어 고기 대신 먹을 수 있기도 합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비만이 많습니다. 따라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다이어트를 한다면 표고버섯을 먹는다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고기는 칼로리가 많지만 표고버섯은 고기 맛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칼로리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버섯은 허기를 느끼지 않게 하므로 버섯을 끓인 물로 단식하는데도 좋습니다. 


표고버섯을 이용해 버섯볶음이나 각종 레시피요리를 하면 쫄깃쫄깃하고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의 뼈를 건강하게 합니다
표고버섯은 비타민D가 풍부해 아이들의 뼈나 이를 튼튼하게 하는데 좋습니다. 특히나 건조 표고 버섯에는 비타민D가 더욱 풍부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뼈가 약한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영양 공급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표고버섯을 곁들여 요리를 한다면 비타민D 공급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항암 및 혈액순환을 촉진합니다
표고 버섯에는 레티닌(Lentinan)이라는 항암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몸을 튼튼하게 해서 건강에 도움을 주게 됩니다. 아울러, 표고버섯은 혈액 순환을 촉진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간 질환이나 심장기능 강화 그리고 동맥경화 등에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평소 표고버섯을 넣은 음식을 꾸준히 먹는 식습관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인 것입니다.

표고버섯의 특징
- 표고버섯은 성질이 차고 맛이 단 성분이 있습니다. 
- 표고버섯의 독특한 향기는 렌티오닌(Lentinan)에서 나오며, 레티오닌은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줍니다. 
- 표고버섯은 소화가 안되고 설사를 자주하는 사람은 많이 먹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음식점에서 먹는 표고버섯은 다소 품질이 안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표고버섯 중 좋은 품질은 색상이 하얀 편에 속하는 것이거나 붉은 색을 띠고 버섯의 갓이 펼쳐지지 않은 것이 해당합니다. 보통 동고나 홍고로 불리는 표고버섯을 의미합니다. 색상이 까맣게 변했고 버섯의 머리 부근의 갓이 펼쳐져 있다면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표고버섯에 대해 알고 드신다면 건강에 더욱 효과가 좋을 듯 합니다. 어떤 표고버섯이 좋은지 알고 있다면 마트나 시장에서 구분하여 사는데 도움도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표고아빠(링크 클릭) 이웃에게 문의해 직송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됩니다. 가족과 함께 모처럼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주말을 보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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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이 옷을 여미게 합니다. 가을도 깊어가면서 단풍도 절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맘 때가 되면 군대에서의 일이 생각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을 각각 따로 느낄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오늘은 그 시절에 비로소 가슴으로 느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과 사랑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때는 1980년 중반이었습니다. 치열했던 대학 2년의 시간들을 추억하며 군대에 가야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암흑같은 군사 독재와 맞서 대학가의 민주화 항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 까지 어머니 일을 도왔습니다. 저는 한량이셨던 아버지를 지독하게 싫어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어느정도 마음을 잡고 일을 했습니다.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산 등성이에서 일해야 하기에 매우 위험힌 작업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참나무를 베고 봄에 버섯종균을 넣은 후 나무를 세워두는 과정이었습니다.

과거 이야기부터 해야 겠습니다. 제가 본 유년시절의 아버지는 늘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결혼 후 5년동안 군대를 기피해 도피생활을 했던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제가 5살 때 였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그 때부터 언제나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힘들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임신했을 때 홀로 일하고 오다가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오던 소꼴에 꽂아둔 낫이 떨어져 무릎의 힘줄이 끊어지는 중상을 당했습니다. 산골이라 병원도 못가고 평생 불구가 된 것이었습니다.

아침 태양의 햇살은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에 반짝였다

저는 나중에 고등학생 시절에 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더 컸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표고버섯 재배를 함께 했습니다.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시라는 아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여전히 아버지는 일하시면서도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저는 대들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못하도록 타일렀습니다.


당시 저는 다리를 절뚝 거릴 정도로 일을 했습니다. 마침내 군대를 가는 날이 왔습니다. 저는 집 앞에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시골 집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가면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네 번 정도 버스가 다녔습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데 아버지를 계속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말없이 따라왔습니다. 

저는 "아버지 그만 들어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 봤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그 때 저는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을 보았습니다. 이제 막 산꼭대기에는 떠오른 아침 태양의 햇살에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이 순간 반짝했습니다. 난생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지만 저는 이미 아버지의 눈물을 봤던 것입니다. 그렇게 강하신 분이셨던 아버지의 눈물은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군대를 향해 가면서 저는 마음 속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화해를 했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면회왔다가 아들 못만난 어머니의 눈물 

저는 강원도 중동부 전선에 있는 백두산부대의 비무장지대 수색대에 배속받았습니다. 위험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만큼 부대의 군기는 살벌했습니다. 신병 시절은 너무 괴롭고 힘든 훈련과 얼차려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색대는 소대 단위로 생활했습니다. 산골짜기에 은밀하게 막사를 짓고 생활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강원도 산골은 급격히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은 물론 물동이를 지고 물을 나르고 화목(불때는 나무)을 하고 짬밥을 버리는 등 잡일도 신병의 몫이었습니다.

어느 날, 열심히 물동이를 나르고 있는데 저를 부르는 소리가 멀리 막사에서 들렸습니다. 물동이를 내려놓고 급히 뛰어가보니 부대 통신보안 전화를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전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한 영문도 모른체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라고 말하자 마자 어머니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어쩐 일이세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겨우 말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한번 보기 위해서 머나 먼 남쪽에서 강원도 산골까지 산 넘고 물 건너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의 부대가 면회가 안되는 곳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아들이 입대 후 보냈던 안부 편지를 받고 무작정 아들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연대 본부를 찾아왔던 어머니는 아들의 면회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는 그만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연대 본부에서 전화라도 연결해 주었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저는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저는 건강하게 잘 있어요."라며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어머니와 전화를 끊고 막사 뒤 후미진 곳에 혼자 앉아서 저는 소리없이 울었습니다. 다리도 불편하신 몸으로 1박 2일에 걸쳐 강원도 산골까지 오셨다가 아들 얼굴도 못보고 되돌아간 어머니가 안타까웠습니다. 나중에 휴가가서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맛있는 떡과 음식을 해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대본부의 병사들이 그 음식을 전달해주지 않고 그냥 배달사고를 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눈물흘리고 돌아서며 아들에게 음식을 전달해달라고 호소했을텐데 말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속 눈물과 어머니의 흐느끼는 눈물은 하나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근엄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약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그랬습니다. 가부장적인 농촌 사회에서는 특히나 그러했습니다. 아버지는 완고했고 어머니는 자애로왔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항상 희생만 하시는 어머니가 안타까웠고 호통만 치시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강한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여렸습니다. 어머니는 숙명처럼 가족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렸고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지만 마음 속은 더 강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은 하나였습니다. 다만 그 표현이 달랐을 뿐입니다.

요즘은 아버지도 약해지셨는지 예전과 같지는 않습니다. 얼만 전에는 어머니가 여행을 다녀오시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있으셨습니다. 칠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경운기를 몰고 농사일도 하시지만 과거와 달라지신 모습니다. 한편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다정해지신 것 같아 다행스럽지만 몸이 쇠약해지신 것 같은 아닌지 걱정도 듭니다.   

오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쌀 두 가마니 보냈다. 내일 도착할 거다."
"추수하느라 힘드셨겠어요."

"아니다. 막내가 와서 도와줘 잘 끝냈다."
"도움을 못드려 죄송해요." 
(막내 남동생은 지난해 결혼해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전화 좀 해라. 이번에 추수에다 표고버섯까지 나와서 고생했단다."
"네. 알겠어요."

어머니의 전화를 끊고 저는 잠시 멍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를 가장 걱정하는 분은 어머니이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무뚝뚝한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별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이심전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전해져 옵니다. 앞으로는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와도 자주 전화를 드려야 겠습니다. 저도 어느새 아버지를 닮았는지 표현이 서투른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한 가정을 일구고 아버지가 되고나니 만감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글로 대신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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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도 불안했습니다. 일방적인 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제가 다섯 살이 되던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저를 낳고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거부했습니다. 당시는 1960년대 시기였습니다. 신혼 시절에 아버지를 잡으러 산골 마을로 군인들이 닥쳤습니다. 아버지는 초가집 벽을 부수고 산속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혼자서 농사일을 하고 혼자 저를 낳아 길러야 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벌교에서 주먹 대장이었고 돌아온 마을과 읍내에선 호랑이였습니다.

다섯 살 아들이 아버지에게 날린 주먹과 첫 만남

제가 처음 아버지를 본 모습도 불청객으로 느꼈을 듯 합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는 밥상 앞에서 어머니에게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얼굴에 그만 주먹을 날렸습니다. 아버지는 호랑이같은 눈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이 놈이 어디다가..." 저는 부엌 문으로 나와 마당을 지나 도망갔습니다. 한참 달리다 마당 입구에서 되돌아보니 아버지는 집 앞에서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첫번째 전투였을지 모릅니다.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있으면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늘 당하기만 했습니다. 바보같이 왜 당하기만 하냐고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마다 어머니는 자식들 걱정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서울 큰 집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서울 구경 시켜준다는 큰 아버지를 따라 나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큰 집에 자식이 없어 제가 서울로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비관하던 학창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힘겹지만 이겨내야 했습니다.

방학 때 마다 혼자서 시골을 찾았습니다. 한 여름날에도 어머니의 농사 일을 도와 논둑을 베고 땔감 나무를 했습니다. 저의 얼굴에는 항상 땀이 범벅이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농사 일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읍내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날도 많았습니다. 한량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머니 혼자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집에 땔감이 떨어져도 아버지는 태평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와 멱살을 잡고 싸울 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산으로 도망갔습니다. 산 속에 있는데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하라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어느새 1980년대 중반 대학에 갔습니다. 암흑과 같던 군사 독재 시절에 치열한 대학시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난 뒤었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 까지 어머니 일을 도왔습니다. 농가 부채는 1억원에 달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는 아버지가 어느정도 마음을 잡고 일을 했습니다.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산 등성이에서 일해야 하기에 위험했습니다. 겨울에는 참나무를 베고 봄에 버섯종균을 넣은 후 나무를 세워두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힘든 일을 하면 더 화를 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화풀이 대상이 어머니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늘 참았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장성한 제가 있어 아버지는 예전보다 심하게 가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이 왔습니다. 비가 온 후 버섯이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지게를 등에 지고 엄청난 버섯을 산길을 타고 집으로 날랐습니다. 어머니는 버섯을 따고 부자는 쉴새없이 버섯을 날랐습니다. 하루종일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가다보니 얼굴에 소금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가장 힘든 노동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된 일로 다리를 절뚝거리는 저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산 위에 떠오른 태양의 햇살은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에 반짝였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저는 집 앞에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시골 집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가면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네 번 정도 버스가 다녔습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데 아버지를 계속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말없이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그만 들어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 봤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그 때 저는 보았습니다. 이제 막 산꼭대기에는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태양의 햇살에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이 순간 반짝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지만 저는 이미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군대가는 아들이 걱정됐습니다. 계속 아들 뒤를 따라오며 잠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아들에게 보여주기 싫었지만 저는 햇살에 비친 아버지의 눈물 한방울이 빛나는 것을 봤습니다. 난생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렇게 강하신 분이셨던 아버지의 눈물은 충격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군대를 향해 가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화해를 했습니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어쩌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단한 삶과 닮아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삶 보다는 자식들을 위해 늘 헌신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표현에 인색했고 어머니는 항상 자식을 사랑으로 감싸주셨습니다. 첨단 문명이나 도시 사회에서 보면 워낭소리의 노부부의 삶은 한편으로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부부의 삶에는 가족이 있고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슬프고 괴롭고 힘들더라도 안식과 위안이 되는 곳입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이제 아버지도 기력이 약해지고 어머니도 몸이 아프시곤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도 자식들과 손주들 기다릴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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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정중앙과 정남진을 아시나요?
여기서 정중앙을 무한도전의 정준하로 순간 떠올리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정동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 정중앙과 정남진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한반도는 서울의 광화문을 중심으로 정확히 북쪽으로 중강진이 있고 동쪽으로 정동진이 있는데, 한반도의 정가운데 지역으로는 강원도 양구 배꼽마을에 정중앙이 있습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한반도의 최남단인 전라남도 장흥에 정남진이 있습니다.


[천년 고찰 보림사의 사천왕상]

정동진은 관광객을 비롯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다소 훼손도 많이 되었지만, 정남진과 정중앙의 깨끗한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멋스럽고 특별한 여행을 하실 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듯 합니다. (특별히 정남진은 제가 태어난 고향인 장흥에 위치해 있는 곳이며, 정중앙은 제가 군대 시절에 근무한 강원도 백두산부대 인근이라서 더욱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

우선 정남진부터 가보겠습니다. 정남진은 정확히 행정구역으로 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기에 대한민국의 정남쪽임을 알리는 정남진 조형물이 서있습니다.

[정남진 마을 조형물]

정남진 주변에는 삼산 방조제를 비롯하여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으로부터 명량대첩 과정에 이르는 호국 역사의 마당인 회진과 회령진, 천관산 문학공원, 통일신라 9산 사찰 중 하나인 유치 보림사, 깨끗한 1급수 물의 탐진강과 탐진댐, 고려 인종왕비이자 의종·명종·신종의 어머니로서 장흥이란 지명을 낳게 한 공예태후 임씨의 탄생지, 그리고 방촌 문화마을과 지석묘 군, 영화 <축제>의 촬영지로 해맞이 행사가 일품인 남포 소등섬, 안양 수문의 해수탕 등 해안 주변에 천혜의 자연 관광자원이 많습니다.
[천관산 억새]
장흥 천관산과 탐진강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억새는 다도해의 풍광과 기암괴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국내 최고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천관산 문학공원 가는 길]
천관산 문학공원은 천관산 기슭, 중허리 쯤에 위치한 탑산사 밑에 위치해 있습니다. 장흥은 이청준, 한승원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입니다.
[매생이를 키우는 바다 모습과 매생이국]
[정남진 남포 소등섬 일출]
정남진 남포에서 소등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출과 함께 아침에 매생이국으로 속풀이를 하는 것도 일품입니다. 어머님이 끓여주던 매생이국이 그리워집니다.

[천년 고찰 보림사의 전경 모습]

전남 장흥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림사는 지금부터 1천 3백여년(759년) 전에 보조국사가 창건한 통일신라시대의 거찰로서 불교 선종 9산 중 하나다. 어릴 적에는 무서웠다는...
[1급수 식수원으로 보존하는 장흥 탐진댐 모습]
[정남진 토요시장 모습]
정남진에서는 토요시장이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을 재연해 선보이며 현지에서 직접 길러서 육질좋은 최상급 한우의 별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장흥의 특산물인 표고버섯은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사진 및 정보 참고] 정남진닷컴 http://www.jungnamjin.com/

정남진을 소개하다보니 너무 많아져 버렸습니다. 정중앙은 간단히 소개합니다. 한반도의 정중앙은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일명 배꼽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 안보, 천문 등 천혜의 자연자원을 관광화하고 있습니다.
[천재화가 박수근이 탄생한 곳으로 박수근 마을]
 
강원도 양구군 해안마을(펀치볼)은 휴전선과 맞닿은 곳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의 분지로서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에 의해 펀치볼(punch bowl. 화채그릇)처럼 생겼다 하여 명명되었으며, 주위가 모두 해발 1,000m를 넘는 고지들로 인하여 6.25 당시 처절했던 전쟁의 아픔을 지니고 있으며 근처에는 제4땅굴, 을지전망대,통일관, 전쟁기념관 등 안보관광지가 있어 국민 안보교육장으로 널리 찾아지는 곳입니다.(제가 군대 시절 수색대로서 제4땅굴 발견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펀치볼 마을과 제4땅굴 입구]
[양구의 국토 정중앙천문대 모습]

양구 정중앙에서는 춘하추동 다양한 축제도 열립니다. 정중앙은 동쪽으로는 인제군, 남쪽으로는 소양호를 경계로 춘천시와 마주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동면, 서쪽으로는 양구읍과 경계를 이루며 해발 874m 봉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인근 자연 관광지와 연계해 여행을 떠난다면 차별화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참고 정보] 정중앙마을 http://www.invil.com/village/jeongjungang/
[국토 정중앙 양구 상징물]

한반도의 정남진과 정중앙을 동시에 소개하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닙니다.(ㅠㅠ) 너무 방대해 이번에는 이만 줄이고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좀 더 다양한 정보로 소개하겠습니다. 정남진과 정중앙은 제가 태어났거나 군대시절 근무했던 매우 친근한 지역입니다. 정남진과 정중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라 여행의 특별한 묘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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