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펠레의 저주'라는 마법의 대포가 우승 후보를 하나씩 격침시키고 있습니다. 당초 펠레는 남아공월드컵 우승팀이 남미 또는 아프리카에서 나올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일찌감치 16강전에서 아프리카팀들을 거의 전멸했습니다. 겨우 가나가 8강에 오르기는 했으나 우루과이에게 패배해 아프리카는 우승이 좌절됐습니다.

그나마 펠레의 예상에 부응하듯 남미팀들이 파죽지세로 8강까지 선전했지만 우루과이 한 팀만 남게 됐습니다. 펠레는 도중에 우승 후보를 다시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로 압축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펠레의 저주가 다시 위력을 발휘했는지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나란히 8강전에서 탈락했습니다. 사실상 최강의 전력을 보였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펠레의 저주란 마법에 걸린 듯 했습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 8강전 대결은 사실상 결승전과 다름없는 박빙의 경기여야 했는데 실상은 독일은 4 대 0 압승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한국팀을 이기고 올라간 아르헨티나의 선전을 바라기도 했지만 독일 전차군단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의 지나친 독설에 대한 반감인지 아르헨티나가 패배한 것 보다 마라도나 감독이 진 것이 통쾌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펠레의 저주를 벗어난 팀 중에서 우승을 한다면 어느 팀이 가능성이 클까요? 4강전에 오른 팀은 유럽의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과 남미의 우루과이입니다. 독일과 스페인, 네덜란드와 우루과이의 대결로 압축된 마당이니 현재로는 독일 또는 스페인의 우승 확률이 우세할 듯 합니다. 그러나 항상 축구는 의외의 변수가 많다보니 쉽게 예측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만 펠레의 저주를 감안하면 독일은 제외되고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됩니다.

펠레의 저주란 무엇인가?

'펠레의 저주'는 펠레가 예측한 내용들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일종의 루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구황제 펠레는 대회전 까지만 해도 브라질과 스페인을 최고 전력을 갖춘 팀으로 꼽았지만 지난달 16일 스페인이 조별예선 H조 1차전에서 스위스에 0-1로 패하자 우승 후보를 <브라질 독일 아르헨티나>로 말을 바꾼 바 있습니다.

사실 월드컵 역사에서 '펠레의 저주'는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펠레가 우승후보로 예상한 콜롬비아는 이 대회에서 조별리그를 탈락했습니다. 자살골을 넣은 안드레스 에스코바는 콤롬비아 귀국 후 극성팬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비극적 사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펠레가 지목한 우승후보 스페인이 16강에도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또 펠레는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브라질이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7연승을 거두며 완벽하게 우승을 했습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펠레의 저주가 어떤 결과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펠레의 저주가 사실상 월드컵 우승컵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자 각국 팀들은 펠레가 언급하지 말기를 바란다



<골닷컴의 펠레의 저주 10선>

10. 2002년 중국
펠레는 중국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해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중국은 한 골도 넣지 못하고 9골을 실점한 채 전패로 탈락했다.

9. 1998년 스페인
펠레는 스페인이 1998 프랑스 월드컵의 우승 후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나이지리아에 패하고 파라과이와 비기면서 16강 진출에도 실패했다.

8. 1994년 콜롬비아
펠레는 콜롬비아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것이라며 돌풍을 예상했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조별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탈락했고, 자책골을 기록했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고국으로 돌아간 뒤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까지 발생했다.

7. 2002년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펠레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프랑스가 결승전에서 격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16강 진출에 실패했고, 프랑스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6. 심지어는 영화에서도 '펠레의 저주'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한 '승리의 탈출'이라는 영화에서 펠레는 2차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로 등장한다. 그는 영화 속에서 나치 장교들과 축구 경기를 펼치는데, 전반전에 심한 반칙을 당하고 '다시 뛰기는 어려울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펠레는 후반전에 돌아와 바이시클 킥으로 놀라운 골을 득점한다. 영화에서도 펠레의 예상은 빗나가고 만다.

5. 호나우두의 은퇴
2008 년 1월, 호나우두가 AC 밀란에서 심각한 부상으로 쓰러지자 펠레는 그가 더는 축구를 하기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호나우두는 2009년 3월에 코린치안스오 계약하고 첫 14경기에서 10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펼쳤다.

4. 제2의 펠레, 니 램프티
1991년 17세 이하 세계 선수권에서 가나의 신예 니 램프티가 대단한 활약을 펼치자 펠레는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램프티는 이후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PSV, 아스톤 빌라, 코벤트리, 베네치아 등을 전전했다.

3. 니키 밤비는 지네딘 지단급?
펠레는 니키 밤비가 지단, 호나우두와 같이 세계적인 수준의 스타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밤비는 평범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23번의 A매치에 출전했으나, 월드컵에는 한 번도 참가하지 못했다.

2. 아프리카의 돌풍
펠레는 21세기가 오기 전에 아프리카 팀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은 2010년인데 아프리카 팀은 월드컵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기록한 적도 없다.

1. 조국을 위한 독설?
펠레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조별리그도 통과하기 어렵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브라질은 보란듯이 우승을 차지했다

펠레의 저주의 행운은 무적함대 스페인이 조금은 유리하지 않나 싶습니다. 스페인은 8강전에서 파라과이를 맞이해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갔고 결국 다비드 비야의 결승골로 1 대 0 힘겨운 승리를 거뒀습니다. 파라과이는 먼저 페널리티킥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스페인 골키퍼 카시야스의 선방에 막혀 선취점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이어 스페인도 다비드 비야가 얻은 페널리티킥을 사비가 파라과이 골키퍼에게 막혀 실패하면서 장군멍군을 기록했습니다.

무적함대 스페인, 공수 조화 최고의 전력 앞세워 우승 향한 항해

무적함대 스페인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다비드 비야는 현재 득점왕 랭킹 1위와 더불어 우승을 견인할 태세다.


다비드 비야는 이번 골로 남아공 월드컵에서 5골로 득점왕 랭킹 선두에 나섰습니다. 게다가 4경기 연속골이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60년만의 4강 진출이란 행운도 잡았습니다. 스페인은 FIFA 랭킹 2위로 최고의 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은 그 동안 메이저 대회에서 늘 초반 탈락하는 징크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 앞서 펠레가 스페인을 브라질과 함께 최고의 전력이라는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스페인은 조별 예선에서 스위스에 1 대 0으로 패하며 힘겹게 4강까지 왔지만 여전히 강력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상대적으로 손쉽게 16강전을 펼쳤지만 결국 8강전에서 독일과 네덜란드에 일격을 당하며 탈락한 것을 보면 축구는 상대적 경기이며 그 날의 행운이 많이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스페인은 골키퍼 카시야스를 중심으로 한 수비력과 다비드 비야를 앞세운 공격력이 공수 조화를 이루면서 안정적인 경기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클로제를 위시한 폭발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독일과 짜임새있는 팀워크를 보여주는 네덜란드, 그리고 한국팀을 8강전에 이긴 우루과이 복병도 우승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4강전부터는 체력과 행운이 어느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다만 독일은 여전히 펠레의 저주가 남아있어 가장 큰 복병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 나아가, 경기의 흐름도 중요합니다. 스페인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60년 만의 준결승 진출에다가 주공격수 다비드 비야가 5골로 득점왕 단독 1위의 상승세를 탄다는 것도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비드 비야는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 토마스 뮐러, 네덜란드의 베슬러이 스네이더르, 아르헨티나의 곤살로 이과인,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비테크와 공동 1위로 경쟁을 해왔습니다. 당초 예상한 메시 등 득점왕 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한 것도 의외입니다.

스페인은 결승 진출전이 4강에서 상대적으로 수월한 우루과이와 만난 것도 행운입니다. 다비드 비야 입장에서도 우루과이를 만나 득점을 추가하면서 결승 진출의 기회를 잡은 점도 유리합니다. 이제 독일과 네덜란드 선수와 득점왕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형국이지만 어차피 두 팀 중 하나는 결승전 탈락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여유를 갖게 됐습니다. 월드컵 우승 트로피인 '줄리메컵'을 스페인이 들어올릴 것인지 기대가 커지고있습니다.

펠레의 저주 징크스, 남아공 월드컵을 즐기는 또 하나의 묘미

그러나, 펠레의 저주를 피할 수 있었던 스페인에게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대륙별 축구선수권대회 우승팀은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징크스입니다. 스페인은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에서 우승팀이기 때문에 징크스에 걸려 있습니다. 올해로 80년째인 월드컵 역사상 대륙별 챔피언이 뒤이어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72년 유럽챔피언 독일과 75년 남미챔피언 아르헨티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징크스는 78년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우승 이후 30여 년째 계속되고 있어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징크스를 깰지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입니다. 어쩌면 단순한 숫자나 기록에 불과할 뿐일 수도 있지만 좀처럼 깨기가 힘든 것이 바로 징크스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징크스의 지속 여부를 지켜보는 것도 월드컵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와 묘미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 변수는 문어의 예언인데 문어가 독일 대신 스페인을 택한다면 스페인 승리는 따논 당상입니다.
 
스페인은 펠레의 저주를 벗어난 행운과 다비드 비야의 득점왕 도전이 상승 효과를 발휘하며 무적함대의 전설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내친 김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기록하는 행운까지 잡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독일이 펠레의 저주 징크스를 깨고 우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 또한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은 펠레의 저주와 득점왕 레이스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도 끝까지 이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참고]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100% 승리팀을 맞춘 점쟁이 문어 파울이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우승팀 예상을 스페인이라고 예견해 과연 결과가 어떨지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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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머니 없이는 대표선수마저도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월드컵 출장이 결정되고 곧바로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감격으로 서로 말이 안 나와, 대화가 되지 않았어요."

정대세가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이 결정된 후 가장 먼저 기쁨을 알리기 위해 전화 통화를 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습니다. 정대세에게 있어 어머니는 정신적 지주이자 가장 열성적인 팬이었습니다. 정대세가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하기까지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은 절대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 G조 예선 브라질과의 첫 경기에서 정대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현지 경기장에서 직접 열렬한 응원을 하던 어머니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대세의 형인 정이세는 모 인터뷰에서 동생의 눈물은 '한국 국적이면서도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어야 하는 일본의 재일동포3세의 설움과 현실'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대세 선수의 인생역정을 통해 일제시대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서글픈 역사를 고스란히 알게 됐습니다. 정대세의 조선인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강제 이주 이후 일본 나고야에서 부당한 차별과 핍박을 견디며 그대로 살게 되었고 한국 국적을 이어받은 아버지는 조선 국적의 그대로 보유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일본은 북한과 국교관계가 아니라 북한 국적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대세의 불꽃투혼과 영광을 이끈 어머니가 월드컵 현지 응원에 직접 나서고 있다 

정대세를 비롯 형과 누이는 일본과 외교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서 한국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즉, 정대세는 다른 북한 선수들과 달리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 3세입니다. 정대세는 중국 언론이 보도한 글 속에 불행한 우리나라 근현대사 역사의 아이러니가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니다. 한국인이지만 북한 국가대표팀을 위해 봉사한다. 북한팀 선수지만 일본에서 생활한다. 이 모든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독일과 예멘이 과거 분단국가였으나 지금은 통일된 하나의 조국을 갖게 되었지만 유독 우리 민족만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채로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정대세는 겉으론 눈물을 흘린 이유를 '최고의 월드컵 무대에서 세계1위의 브라질팀과 경기를 하게 돼 기뻐서'라고 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설움과 역경 속에서 재일동포 3세로 살아가며 느꼈던 분단된 조국의 비애와 일본인으로 사는 남북한 사이 경계인의 고뇌가 함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감수성 풍부한 소년 정대세, 경계인으로 삶과 정체성의 혼란

정대세는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의 혼돈을 많이 격어야 했습니다. 가족사 자체가 곧 혼란이었을 것입니다. 정대세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눈물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의 정체성과 닮아있는지 모릅니다. 울보이지만 결코 축구 경기에서는 야생마나 인간 불도저와 같은 모습으로 쓰러지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그의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그런 정대세의 투혼과 영광 뒤에는 항상 어머니 리정금 씨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정대세가 일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 남게 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상류층이 다니는 유치원에 정대세를 입학시켰습니다. 정규 교육도 일본 학교가 아닌 일명 '우리학교'에 보냈습니다. 학비가 매월 2만엔(20만원) 남짓한 정도로 만만치 않았지만 정대세를 포함한 누이와 형 등 삼남매를 위해 '우리학교' 12년 교육과정에 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감수성 풍부한 소년 정대세는 울보였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정대세의 아버지 정길부씨는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풍족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정대세가 어릴 적부터 좋은 교육을 받도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피아노, 수영 등을 배우게 하며 다양한 능력을 키우도록 헌신적인 교육을 했습니다. 교육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우리나라 전통의 어머니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학교는 일본 학교에 비해 절반 정도 크기의 열악한 운동장이지만 정대세는 거기에서 축구도 배웠습니다.

'사회에 큰 사람이 돼라'는 의미, '대세(大世)'라는 이름

정대세의 이름도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에 큰 사람이 돼라'는 의미로 '대세(大世)'로 부모가 직접 작명했다는 것입니다. 정대세는 이름처럼 세상의 큰 사람이 된 셈입니다. 아들 정대세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 온 어머니의 삶은 진한 감동을 줍니다. 눈물겨운 어머니의 삶이었기에 정대세도 늘 어머니를 이야기합니다. 정대세는 자신을 키워내기 위해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합니다.

마치 한국계 미국 프로풋볼 선수 하인스워드의 어머니의 감동적인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대세는 그런 어머니였기에 월드컵 본선이 결정된 순간에 대해 친구로부터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순간 또 울어버렸습니다. 친구가 전한 이야기는 월드컵 본선행이 결정되자 정대세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듣고 저도 울어버렸어요. 그때부터 몇번 울었는지 몰라요. 10분 간격으로 울고 있었어요."

추성훈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는 신세대 재일동포 3세의 꿈

그런데 정대세는 한편으로 신세대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과거 모 인터뷰에서는 '추성훈처럼 한국에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한 적도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확실히 정대세는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중국 언론에서는 정대세가 명차 수집을 즐기며 음악듣기를 좋아하고 패션과 헤어스타일에 각별히 신경쓴다고 합니다. 특히나 쇼핑과 스키를 즐기는데 한국 미녀에게 장가가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고 합니다. 

일본 프로축구팀에서 평상시 선수생활을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에 대한 동경도 함께 갖고 있는 경계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정대세는 국적의 한계를 뛰어넘어 살아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당당하게 운명과 맞서 싸우는 '아름다운 청년'인 것입니다. 정대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매력에 대해 "역시나 축구하는 모습이 아니겠냐"고 했듯이 말입니다.

또한, 정대세의 가슴에는 뜨거운 조국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정대세는 상해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남북대결 1차전에서 뜨거운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 후 정대세는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일본에서 온 내가 북한 대표팀으로 한국에서 뛴다는 의미를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올 뻔 했다"고 당시 심정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대세에게 조국은 정체성의 혼돈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조국은 존재합니다.

정대세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대세에게 있어 "조국은 나를 키워준 나라"라는 것입니다. 즉, 정대세는 '자신을 키워준 일본, 한국, 조선은 모두 조국'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당시 정대세는 "서울에서 묵는 동안 삼엄한 경비와 단절된 남북관계에서 아직도 통일까지는 멀다는 생각에 슬펐습니다. 스포츠로 통일의 한걸음이 되고 싶습니다"는 말이 요즘의 우리들에게 더 울림을 주는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작문 '나는 장래 반드시 국가대표가 될테야'

정대세는 월드컵에서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게 된 것도 운명이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국적 조선에 영향을 받았을 듯 합니다. 초등학교(소학교) 시절에 이미 정대세가 적은 작문은 '나는 장래 반드시 국가대표가 될테야.'였습니다. 어린 정대세의 꿈은 한결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적이지만 한국을 몰랐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그만 들뜬 마음에
"나는 꼭 조국대표가 돼서 여기(평양)로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선언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선택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FIFA에서 북한팀 선수로 뛰기 위한 조건으로 여권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대세가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J-리그 프로축구팀에 갈 때 까지도 한국 국적의 정대세가 북한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국적의 정대세에게 북한과 국교가 없는 일본은 북한 국적을 허용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FIFA에 북한팀에서 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유권해석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 국가대표로 뛴 경력이 없어야 하고, 여권 비자를 북한에서 발급받는 조건이었습니다. 마침내 정대세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국가대표가 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박지성을 존경하는 정대세, 꿈의 무대에서 어머니와 눈물

그렇다면 정대세는 박지성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정대세는 월드컵 예선 당시 모 인터뷰에서 "이전부터 저는 박지성 선수를 텔레비전에서 경기를 많이 보면서 팬이 됐어요. 그래서 박지성 선수의 동점골(북한팀이 월드컵 진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예선전 한국팀과 다른 팀 경기에서 나온 골)에는 정말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월드컵에 출장하면 같은 조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함께 조별리그를 돌파하고 결승 토너먼트에서 싸우게 되면 그 이상 기쁜 것은 없네요."라며 박지성에 대해 존경과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대세는 월드컵 본선에서 죽음의 조에서 축구 강호들과 겨루게 됐습니다. 그것은 월드컵 본선 통과 직후 자신의 바람이었습니다. 정대세는 개인적으로는 월드컵에서 득점하고 어필할 수 있도록 하고 싶고 가장 기대하는 것은 '죽음의 조'에 들어가서 브라질 잉글랜드 네덜란드하고 맞서고 발버둥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정대세는 브라질 포르투갈 등 최강의 우승후보들과 맞서 불꽃투혼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정대세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지만 결코 물러섬없이 불굴의 투지로 극복해 왔듯이 더 강해진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이겨내고 있는 셈입니다.

J리그 가와사키 프로팀에서 정대세는(`ε´) 이모티콘으로 표현되며 큰 활약을 한다

감수성 풍부한 순수의 청년 울보 정대세는 자신을 잡초혼 덩어리라고 말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투혼의 근간은 바로 잡초같은 자신의 인생과 꿈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재일동포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편견과 차별 속에 살면서도 아들을 위한 살아 온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정대세 어머니 리정금 씨는 브라질전에서 아들의 눈물을 또 지켜보며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경기에 응원나오지 않으면 골을 넣을 수 없다고 울던 아들이가 세계 최고 월드컵 무대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우리 민족의 어머니는 더 위대합니다. 정대세의 어머니도 국적으로 떠나 우리 민족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정대세의 눈물의 의미는 곧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세상의 큰 인물이 돼라는 의미의 정대세라는 이름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스포츠를 통한 통일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정대세라는 의미도 있다 하겠습니다. 정대세를 불꽃 투혼과 영광으로 이끈 어머니가 있어 월드컵은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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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정대세 '한국팀 아르헨티니전 승리 기적을 응원하겠다'
정대세는 모 인터뷰에서 "축구를 하다보면 결코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상대도 열 번을 싸워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날이 온다. 바로 그 날이 한국에게는 오늘일지도 모른다. 스위스가 스페인을 이길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한국 선수들도 그 기량을 놓고 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와의 경기를 통해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나 또한 한국의 선전을 응원하겠다"며 한국팀이 아르헨티나전에서 승리의 확신과 응원을 다짐했습니다.

아울러, "박주영-정대세 투 톱이 서는 팀에서 뛰어보고 싶냐"는 질문에는 "너무, 너무 뛰어보고 싶습니다"고 주저하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답변했습니다. 박지성 정대세 등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뛰는 환상의 드림팀이  나올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정대세, 그를 보면 '피는 물 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한 민족으로서 정대세에게 정이 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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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정대세 선수를 보면 수많은 상념이 스쳐지나갑니다. 하나의 민족이지만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와 조국의 설움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한 인간에 대한 고뇌인지도 모릅니다.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인데도 같은 민족끼리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싸우는 현실이 안타까움을 더해가는 시대. 그러나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스포츠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정대세가 있었던 셈입니다.

남북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 유지와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조장하는 전쟁과 대결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순수한 스포츠정신과 월드컵정신 앞에서는 허상과도 같습니다.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는 위정자들이 나쁜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휴머리즘 속에서 오직 축구를 향한 열정의 화신 정대세를 생각해 봅니다.

남아공올림픽 G조 예선 첫 경기에 나선 북한의 정대세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대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대세는 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경기장 그라운드에 일렬로 나란히 섰습니다. 식전 행사가 시작되고 북한의 국가가 연주되었습니다.

국가 연주가 울려퍼지자 정대세는 또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양쪽 볼에 흘러내렸습니다. 경기장내 대형 전광판 화면에 정대세의 눈물이 그대로 비추어졌습니다. 수많은 관중들도 순간 멈칫 했습니다. 유독 짧게 자른 빡빡 머리의 남자는 사람들의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한 남자의 눈물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정대세 선수의 앞에 서 있던 남아공 어린이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심전심일까? 정대세의 눈물은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 속에도 그대로 함께 투영돼 눈물을 쏟아내게 했던 것입니다.

정대세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요?

정대세가 눈물은 한 축구 선수의 꿈이었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최고의 축구 무대에 선 남자의 각오이자 의지 그리고 열정과 자부심이 눈물로 승화된 것입니다. 어쩌면 굴곡진 축구 인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눈물이 아닐까 합니다.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는 원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대세는 조총련계 학교에서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대세는 2006년 북한 축구 대표팀이 일본에게 패한 것을 지켜본 뒤 북한대표팀에 합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66년 월드컵 8강 신화의 북한 축구팀이 일본에게 무참하게 패배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정대세에게는 한국 국적이라 하더라도 북한도 하나의 조국이었던 것입니다. 정대세 자신이 힘을 보태 또 다시 월드컵의 영광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결국 정대세는 J-리그에서 쌓은 실력과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북한을 44년만에 월드컵에 출전시키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북한이 44년만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 등장한 것입니다. 거기엔 정대세란 이름이 함께 있었습니다.

정대세는 브라질과의 첫 경기를 마친 후 말했습니다.
"드디어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해 감격했고 그래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축구를 시작할때 부터 이 날을 상상해 올 정도로 대단한 대회입니다. 그러한 무대에서 브라질이란 세계 최고의 팀하고 경기할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정대세는 축구가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정대세가 꿈꾸었던 것은 월드컵 무대에서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대세는 자신이 선망했던 세계 최강의 팀인 브라질과 처음으로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축구 무대에서 최강의 팀과 경기를 펼치고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대세는 감격스런 일이었습니다. 정대세의 눈물의 기쁨과 환희의 눈물인 셈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 선 선수에게 나타난 불굴의 스포츠정신의 발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대세의 눈물을 보면서 문득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 여자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끝마친 후 흘리던 눈물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결국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김연아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김연아는 스스로 최선을 다했기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감격과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자기 자신과 투쟁에서 승리했고 최선을 다했기에 그것만으로 그 동안 훈련과정의 고통은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의 눈물은 자연스럽게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김연아의 눈물과 정대세의 눈물은 그런 점에서 서로 닮아 있습니다. 최고의 무대를 행해 누구나 꿈을 꾸지만 아무나 그 곳을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김연아와 정대세는 그 꿈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고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김연아와 정대세는 더욱 더 불굴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김연아가 최선을 다해 노력한 과정을 알고 있기에 사람들이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듯이 정대세가 눈물을 흘린 의미 또한 이심전심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정대세가 브라질의 미남 선수 카카와 정다운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정대세는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 영어, 포르투갈어까지 여러 국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 취재 기자들이 정대세를 붙잡자 그냥 멈춰섰고 물 흐르듯이 대화를 나누고 역으로 질문까지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고 합니다. 정대세는 브라질과 G조에 편성되자 마자 자기 소속팀인 일본 프로축구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뛰는 브라질 선수를 통해 포르투갈어를 집중적으로 익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정대세는 축구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공부를 비롯한 여러 면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범적인 선수임에 틀림없습니다. 

정대세의 북한팀은 세계최강 브라질과 맞서 멋진 경기를 펼쳤지만 아쉽게 2대 1로 패했습니다. 정대세는 후반 44분 지윤남에게 헤딩 패스 어시스트를 통해 북한팀의 1골을 만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북한팀이 브라질과도 투지넘치게 경기를 펼친 것을 보고 진정한 스포츠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1차전에 승리했듯이 북한도 승리하기를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은 너무 강한 팀이었습니다. 비록 북한이 졌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정대세는 경기 후 브라질과의 경기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이 곳에서 골을 넣고 승리를 이끌자고 생각했는데 그걸 못해서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16강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은 이기겠습니다"


죽음의 조로 불리는 G조에서 북한의 정대세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정대세의 좌우명은 '승리를 스스로 믿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라고 합니다. 정대세가 믿는 승리와 눈물의 의미가 감동스러운 이유입니다.

[추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인 듯 하여 액션가면님이 댓글로 남긴 글을 공유합니다

<어제는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이었지만 남북 전쟁 위기 정국으로 인해 조용히 지나간 듯 합니다. 남북한 축구팀은 5년전 서울 상암축구경기장에서 하나된 조국과 평화통일을 위해 친선경기를 했습니다.>

6.15 선언 10돌을 맞는 어제 6.15공동선언문의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냉대받고 있는 민족적 기념일이 가슴아팠습니다. 4년전 6.15를 기념하기 위해 광주월드컵 경기장에서 남한과 북한의 친선경기가 있었는데, 그때 풍물놀이 한마당처럼 신명나게 남북을 함께 응원했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만 같습니다.

연일 천안함 관련해서 북한을 주적으로 몰아가는 언론과 곧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불안을 조장하는 정부를 보면 정말 통일이 올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정대세선수의 눈물은 그래서 더 가슴아픕니다. 제일교포3세로 힘들게 자랐을 그를 위해 한국이 한 일이 뭐가 있을까요? 그가 민족적 아픔을 고통스럽게 안고 살아가야 했던 그 시간동안 한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다들 말로는 하지 못하지만 그 눈물을 본 우리들은 모두 북한이 선전하기를 그가 흘린 눈물과 땀이 뜻 깊은 결실을 얻기를 가슴으로 응원할 것입니다.

[참고] 정대세는 박지성 선수를 존경한다고 합니다. 정대세는 2022 월드컵 유치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정대세는 영국 언론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만약 월드컵 경기가 (서울과) 평양에서도 열릴 수 있다면 그건 우리의 원대한 꿈.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남북의 정치적 봉합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포츠는 남북을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남북 공동 월드컵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된 조국과 평화를 원하는 정대세의 또 하나의 꿈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축구로 하나되는 월드컵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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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7급 공무원'이란 영화를 보고난 후 친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외국인 감옥에 수감됐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친구(이하 C)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이미 17년여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인도 현지에서 기막힌 일을 당했던 C는 당시 엄청난 충격과 함께 죽음의 공포를 느겼다고 합니다.
 
친구 C의 사연은 1990년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C는 인도어를 공부한 친구였습니다. 이왕 공부한 인도어를 현지에서 직접 경험해 볼 겸 인도로 배낭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당시에 해외 배낭 여행은 드문 경우였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 당시 인도를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보통 배짱으로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C는 언어도 가능하고 한국에서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한 후 여행에 나섰습니다. C는 인도에서 주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어느 날, C는 기차에서 만난 인도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기차 앞 자리에 앉아있던 인도인들이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인도 여행 중에 만난 친절한 현지인들이었기에 즐거운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C는 인도인이 건네 준 음식을 받게 되었습니다. C가 잠시 머뭇거리자 인도인은 웃으면서 빨리 먹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C는 호의를 거부할 수 없어 음식을 한 입 먹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C가 눈을 떴습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아마도 인도인이 준 음식에 강력한 수면제가 들어 있었나 봅니다. C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배낭과 외투 등 주요한 물건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권이나 여행 경비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순간 C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놀랐습니다. 기차 안을 여기저기 살펴봐도 앞에 있었던 인도인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벌떡 일어나 기차의 모든 칸들을 살펴봤지만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사진]인도의 기차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소년. 창살이 마치 감옥을 연상시킨다

C는 다음 기차역에 내려 인도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자신이 기차 안에서 겪었던 일들을 인도 경찰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인도 경찰은 대충 듣더니 약간의 차비를 주며 한국 대사관에 가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C는 무성의한 인도 경찰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C는 버스를 타고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렇지만 C는 수면제 후유증에다가 너무 당황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습니다. C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일단의 인도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C를 뒤쫒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이것은 C의 환상이었을 수 있습니다.) C는 다시 당황이 되었습니다. 버스 안의 인도인들도 모두 C를 노려보는 것 같았습니다. 버스가 불빛이 환한 대형 건물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C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버스를 뒤쫒는 인도인들도 무섭고 버스 안의 사람들도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C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형 건물을 향해 달렸습니다. 자신을 뒤쫒는 인도인들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대형 건물은 저녁인데 조명 불빛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대형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건물은 담벼락이 있었습니다. C는 계속 자신을 뒤쫓아오는 인도인들을 피하기 위해 대형 건물의 담장을 넘어 갔습니다. 너무 다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단의 인도 군인들이 C 앞에 나타났습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깜짝 놀라 손을 들고) 왜 그러세요. 여기가 어디죠?"

"누구냐? 여기가 어딘가 모르는가?"
"...모르겠는데요...저를 쫓아오는 무리들이 있어서 담을 넘었는데요."

C는 인도 군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놀랍게도, C가 담장을 넘은 곳은 인도 국방성 건물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C는 인도 군인들의 심문을 받았습니다. 인도 군인들은 C를 인도의 군사 기밀을 빼내기 위해 잠입한 간첩 즉 스파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감히 인도의 국방성 건물에 담을 넘어 침투할 수 있는 자는 스파이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북한 스파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C는 이후 인도의 외국인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참고] 인도 영화 '조다 악바르'

C는 정말 억울하고 무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인도 감옥은 시설도 매우 열악했습니다.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C에게 엄습해 왔습니다. 인도의 감옥에서 하루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죽음이 다가오듯이 공포였습니다. C가 아무리 감옥 관계자에게 한국 대사관에 연락을 해보라고 해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인도 감옥 관계자들은 이미 스파이로 낙인찍혀 수감된 C의 어떤 말도 듣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거의 한 달이 지났습니다. C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C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외국인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 중 영국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영국인 수감자는 C에게 작은 메모지 하나와 펜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여러차례 호소하던 C를 위해 영국인 수감자가 교묘하게 준비한 메모지와 펜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국 대사관으로 보낼 너의 사연을 써봐라."
"이러다 걸리면 사형당하지 않을까? 무서운데..."

"걱정마라. 나는 여기 교도소만 여러번 수감돼 봐서 여기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
"알았어. 잘 부탁해."

C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국인 수감자에게 메모지를 써서 주었습니다. 어차피 인도 감옥에서 스파이 혐의로 죽는 것 보다는 탈출을 시도해 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인도 감옥에서 쓴 메모지는 다행히 한국 대사관에 도착을 했습니다. 한국 대사관에 도착한 C의 메모지를 본 직원들은 "도대체 C가 누구야."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봤다고 합니다. 인도의 외국인 감옥에 간첩 혐의로 수감된 C가 한국인인지 북한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이러한 이야기들은 친구 C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입니다.)
 
한국 대사관에 전달된 C에 관한 첩보는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으로 전달됐습니다. 한국의 안기부에서 C가 누군지 조사와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C의 친구가 우연히 참석했습니다.
"아니, C는 제 친구인데요. 이 친구는 인도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언제 인도에 갔지."
"당장 한국 대사관을 통해 C를 석방시킬 수 있도록 합시다."

이렇게 C는 인도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국정원 친구의 신속한 도움이 없었다면 C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름이 돋기만 합니다. 그 당시가 1990년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얼마나 열악한 상황인지 짐작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C의 사연은 매우 긴 이야기인데 짧게 압축했습니다. 지금도 친구 C를 만나면 가끔 인도 감옥에 수감됐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곤 합니다. 당시의 C는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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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K가 대만 갑부의 외동딸을 만나서 소설같은 사랑을 하게 된 사연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가 나간 이후 매일 많은 분들이 다음 편을 기대해 주셨습니다. 이번 최종편은 브라질에서 대만을 거쳐 한국까지 오게 된 이야기입니다. 1부와 2부를 못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골라'(2부) : 성당에서 둘 만의 결혼식

대만행 비행기를 탄 K와 S는 꼭 축복받은 결혼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대만에서  재력가인 S의 아버지는 외동딸이 사랑을 택해 브라질로 몰래 떠나버린 후 상심해 있었습니다. 이제는 분노 보다는 자신이 반대하는 한국 남자 K를 위해 몰래 야반도주하듯이 브라질로 도망쳐버린 딸에 대한 배신감이 컸습니다.
 
K와 S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만에 도착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장인어른과의 만남은 K에게 배수의 진을 친 심정이었습니다. 드디어 K는 S의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K는 무릎을 끓고 S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 누구 보다도 따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

S의 아버지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어버린 딸의 사랑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K는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다시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따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S의 아버지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습니다.
"브라질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나?"
"옷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자네가 브라질에서 옷장사로 최고가 된 후 다시 나를 찾아오게. 그러면 인정해 주겠네."
"예,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K는 장인어른의 제안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자신도 있었습니다. S의 아버지는 자수성가로 갑부가 된 분이었습니다. 순순히 K를 인정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지만 S가 고생을 통해 뭔가 깨닫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K와 S는 대만을 떠나 다시 브라질로 돌아왔습니다. K는 대만으로 떠날 때 보다 더 비장한 마음으로 브라질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K는 브라질로 돌아오자 마자 더 열심히 "골라 골라"를 외치며 장사에 몰두했습니다. 잠자는 시간 마저 줄여가면서 옷장사에 올인했습니다. 점점 K의 옷가게는 번창해 갔습니다. 당시 브라질의 한인 사회에서도 K의 옷장사로의 성공이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한인들 중에 옷장사를 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K로부터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K는 마음이 넉넉한 친구라서 브라질의 한인들에게 비법 전수는 물론 한인들의 여러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를 못했습니다.

브라질에서 K의 옷장사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K의 "골라 골라" 다국어 메들리는 성공의 보증수표와 같았습니다. K는 사업이 번창해 갈수록 조금만 더 고생하면 S의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S도 사업의 번창에 따라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일요일에는 둘 만의 결혼식을 거행한 신부님의 성당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영화 'Love Story' 한 장면]

그러나, 불행은 예기치 않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잘 나가던 K의 의류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한 순간에 망하게 된 것입니다. K와 S가 그토록 희망을 꿈꾸던 의류 사업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K가 너무 한인들을 믿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K의 옷장사가 성공을 거두자 K에게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접근한 한인들이 사기를 친 것이었습니다. K는 한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자금들을 쉽게 빌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 한인들이 돈을 빌려간 후 만기가 되어도 갚지않고 도피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K의 의류 사업은 한꺼번에 밀려오는 자금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도가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K와 S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대만에 갈 수가 없게 되거나, 다시 처음부터 사업을 일으키려면 수많은 세월이 필요할 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좌절과 포기를 모르던 K도 자신감을 잃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패배감일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희망이 사라진 S는 더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K와 S는 늘 믿음과 용기를 주던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신부님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K와 S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잠시나마 K와 S는 신부님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용기를 얻어 성당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전화가 왔습니다. S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만에 계신 S의 아버지였습니다.
"요즘 몸은 건강하니?"
"네. 아버지."

"왜 목소리가 힘이 없니?"
"아니예요. 아버지가 웬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사랑하는 내 딸아. 힘들면 힘들다고 왜 말을 못하니?"
"......"
S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도저히 전화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Love Story / Taylor Swift]

"K를 바꿔주라. 딸아."
"네, 접니다. 어르신."

"브라질 생활 정리하고 대만으로 돌아오게."
"네. 아닙니다."

"자네의 브라질 생활을 다 알고 있다네. 의류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알고 있고 사업이 부도난 것도 다 알아."
"네. 어떻게..."

"브라질서 사업하는 지인들로부터 소식을 수시로 듣고 있었어. 자네의 사업 수완과 성공을 이미 듣고 있었어. 자네가 최근에 사업이 부도난 것은 자네의 잘못은 아니잖아. 너무 사람 믿지 말게. 그만 내 딸과 함께 대만으로 돌아오게. 자네가 이겼네."
"장인어른...."

K와 S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K와 S는 브라질 생활을 접고 대만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K는 다시 재기해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장인어른은 두 사람의 사랑과 결혼을 인정한 상태이니 고집을 피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S가  브라질 생활을 힘들어하고 대만의 고향 생각을 많이 해 더 이상 브라질에 머물기는 힘든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S의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두 사람의 브라질 생활을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S의 아버지는 브라질의 지인들을 통해 사랑하는 딸이 잘 지내는지 늘 궁금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K의 사람 됨됨이와 사업 수완을 멀리서 지켜봤던 대만의 장인어른은 K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갑작스런 부도로 인해 S가 상심하고 괴로와 하는 모습을 더 이상 못본체 할 수 없었습니다.

대만에 도착한 K와 S는 거기서 새로운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장인어른의 사업에 참여하기 보다는 선교사의 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장인어른도 같은 종교라서 적극 후원했습니다. S의 아버지는 당분간 두 사람이 홀가분하게 그 동안의 고생을 잊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기도 했습니다. K는 대만의 오지를 돌며 선교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K와 S가 심적으로 안정을 찾고 행복한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된 셈이었습니다.

몇년의 세월이 지난 후, K는 한국과의 무역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부산과 대만을 오가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부산에 머무르는 기간도 많았습니다. 무역사업도 했지만 주말을 이용해 K는 선교사 일도 병행했습니다. K는 무엇이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였습니다. 한국 남자 K와 대만 갑부의 딸 S는 브라질서 시작해 대만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사랑과 행복을 함께 했던 것입니다.


[영화 'Love Story' 한 장면]

저는 K가 몇년전 한국에 도착했을 때 대학 1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캠퍼스 앞의 주점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K가 대학을 중퇴하고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지 15년여가 지난 후 처음이었습니다. 그와 밤새도록 그 동안의 해외에서의 삶과 S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생활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K는 술을 한잔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 주당이던 K가 아니었습니다. 선교활동하면서 술은 완전히 끊었다는 것입니다. K에게 물었습니다.
"야. 그런데 너 어디서 선교를 하냐?"
"주로 술집에서..."


"장난하냐? 술집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는 남들이 다 하는 곳 보다는 비록 힘들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서 선교활동을 한단다."

"그런데 술을 한잔도 하지 않고 어떻게 선교가 가능하냐?"
"지금까지 한 잔도 안했잖아. 물 한잔으로 이렇게 있잖아."

저와 친구들은 도저히 K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밤새도록 대학교 앞으로 주점을 돌며 K를 시험했습니다. 새벽 5시가 되었건만 K는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술 한잔도 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물이나 콜라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친구들이 이미 지치고 졸려서 몸을 가눌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K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래도 못믿겠냐?"
"K야. 우리들이 졌다. 이제 집에 가자."

친구 K의 러브스토리 3부작 최종편은 여기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어떤 분은 요즘같은 현실에 어찌 K와 S의 순수한 사랑이 가능한지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K와 S의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표현상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K는 정말 지독한 녀석입니다. 다시 만나면 부산 도착 후 선교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갖고 K와 S의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는 러브스토리를 읽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5월의 연휴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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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대학 동창 모임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20여년만의 모임이라 친구들의 근황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미 중년의 나이에 모이니 친구들에 대한 소식이 그리움으로 다가섰습니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사는 친구나 기사 딸린 고급차를 타고다니는 사모님이 된 동창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날의 단연 최고 이야기는 대만 갑부의 외동딸과 결혼한 친구의 사연이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어 그 날 참석은 못했지만 동창 K의 결혼 스토리는 압권입니다. K의 사연은 약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K는 고향이 부산입니다. 부산에서 상경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게 됐습니다. K는 모든 모임을 주도하는 연예인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K가 대학MT나 모임에서 선보인 노래는 그 날 이후 공식 지정곡이 될 정도였습니다.

K의 대표적인 레파토리는 CM송 메들리였습니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자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콘~~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칩~~~ 농~심~ 크레오파트라~~~ 드세요~ 농~심~ 크레오파트라~   " 1980년대를 풍미하던 CM송의 일부를 메들리로 계속 이어지게 만든 곡들입니다. 80년대의 대학가는 군사독재 타도의 분노가 넘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낭만이 있었습니다. 비록 소주 한잔의 추억 속에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장엄한 서사시의 투쟁가가 있었고 한편으론 낭만의 곡들이 있었습니다. CM송 메들리는 그 중간의 흥겨운 화합의 노래였습니다. 

CM송 풀 메들리 80년대  사례

온 세상에 울리는 말고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영-창

열두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부라보콘------살ㅡ짝-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 콘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어른손 아이손 자꾸만 손이가

언제든지 새우깡 어디서나 맛있게

누구든지 즐겨요 노옹심! 새우깡!!

비비 비벼보자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ㅡㅡ (두손으로 비벼도 되잖아!)

ㅡ팔도 비빔면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그리 예쁜가요

----------------아아아아아아아 아카시아 껌
아아아 아아아아----------------아카시아 껌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 칩 (포테이토 칩)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 칩

---------------아아아아아-----------농심농심
농심 크레오파트라---------드세요 농심-------

크레오파트라

쵸코가 외로워 쿠키를 찾네 쵸코친구 쿠키친구

쿠키가 외로워 쵸코를 만나네 오리온 쵸코칩쿠키

오리온 쵸코칩쿠키 쿠키 이이!!!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삐익삐익 꼬였네 들쑥날쑥해

사과맛 딸기맛 롯데 스크류바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오 롯데껌 좋은 사람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손에 담아 드려요 오란씨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 오 오 오란씨

으쌰으쌰 어기여차 재미로 먹고 맛으로 먹는

오리온 고래밥 오리온 고래밥

오리온 고래고래고래고래 밥! 헤이!!

대학 1학년을 끝마치고 어느 날, K가 대학을 중퇴하고 해외로 떠났습니다. 독재의 그늘을 벗어나 해외로 망명한 듯한 히피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이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마련해 떠난 도피 자금으로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팔아서 돈을 모아 다른 국가를 방랑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국가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해외 여행을 꿈꾸기 어려웠던 그 당시에는 매우 희귀한 변신의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K는 미국을 떠나 다시 브라질로 갔습니다. 그는 낮에는 중국집에서 일하고 밤에는 중국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러다 K는 중국어학원에서 그녀(이하 S)를 만났습니다. S는 미국에 유학 중인 대만 출신 여대생이었습니다. S가 방학 기간 동안에 브라질에 여행을 왔다가 잠시 중국어학원의 임시 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K는 첫 눈에 S에 반했습니다.


[사진] 영화 '러브스토리' (1996년작, 배창호 감독)

K의 중국어는 이제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S에게 뭔가 중국어로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날 부터 K는 중국어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편지를 쓰는 일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밤새도록 중국어로 편지를 썼습니다. 한 숨도 안자고 정성을 다해 한 통의 편지를 쓰고나면 이미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동이 트면 K는 자건거를 타고 S가 머물고 있던 숙소를 향해 달렸습니다. S의 숙소에 편지를 넣어두고 다시 중국집으로 가서 일을 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중국어학원에서 S로부터 중국어 수업을 받았습니다. S는 편지를 받았지만 모른체 눈길도 주지않고 수업만 했습니다. K는 다음 날도 편지를 썼고 새벽이 되면 S의 숙소에 편지를 놓아두고 왔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K의 편지에 S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게다가 새벽 마다 자신의 숙소에 편지를 놓고 도망가듯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K를 본 S는 '한번 만나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한국 남자 K와 대만 여자 S의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둘은 만나는 동안,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눈빛으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이 지속되면서 S가 오히려 더 K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S는 사랑하는 K를 위해 브라질에 아예 머물러 버렸습니다. 그러다, S는 비자가 만료되어 브라질을 떠나야 했습니다. 브라질의 공항에서 둘은 약속했습니다.
"다시 돌아 올게. 조금만 기다려."
"언제까지나 그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렇게 둘은 뜨거운 포옹과 함께 브라질 공항에서 이별을 했습니다.

[참고] K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K와 S의 러브스토리는 조금 길기 때문에 여기서 1부는 마치겠습니다. 다음 2부를 기대해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K와 S의 러브스토리는 K를 몇년전 만나서 밤새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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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가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의 쇼트 프로그램에서 세계최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거의 완벽한 연기로 세계무대를 다시한번 놀라게 했습니다. 단순히 세계최고기록의 달성 뿐만 아니라 김연아는 '죽음의 무도' 음악과 함께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룬 멋진 영화와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우승 후 글 링크]  김연아, 꿈의 200점대 세계신기록 우승의 의미

김연아,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역사를 새로 쓰다 


김연아 선수가 등장하는 피겨 대회는 온 가족이 함께 응원하곤 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아이를 비롯하여 아내도 김연아의 경기는 너무 사랑스럽고 즐겁다고 아침부터 TV 앞에 앉아서 구경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김나영의 경기를 먼저 보게 되었는데 예전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번 시즌 최고점인 51.50점을 얻었습니다. 김나영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연아 혼자서 한국을 대표해 세계무대를 누비는 것 보다는 새로운 한국 선수들이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김나영이 세계 17위권에 진입하면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큰 수확입니다.

김나영 감격의 눈물...아사다 마오는 아쉬운 한숨

이어, 아사다 마오가 나와서 부드럽고 안정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다지 실수없이 경기를 마쳤지만 점수는 66.06점166점으로 다소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사다 마오는 경기 전반을 장악해 가면서 물 흐르듯이 연기를 펼침으로써 역시 세계적인 선수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김연아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을 전혀 차지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인연이 없던 대회였기에 독한 마음으로 오랜 준비를 했던 것이 주효했습니다. 김연아는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환상적이고 완벽한 최고의 연기와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환하게 웃는 김연아의 모습에서 만족한 경기였음을 실감했습니다. 코치도 두 손을 위로 쭉 뻗어 껑충껑출 뛰면서 경기가 훌륭했다는 것은 반가워했습니다.

관중들도 모두 기립 박수와 함꼐 환호성과 축하를 보냈습니다. 김연아 선수와 관중들이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만끽하는 장면이 마치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이 길거리 응원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광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세계 피겨 대회는 경기 이상의 한일전 묘미가 있다 

결과는 세계최고기록 달성입니다. 점수는 76.12점입니다. 아사다 마오와 10점이나 큰 차이가 나는 점수입니다. 이날 김연아가 기록한 76.12점은 쇼트프로그램 역대 최고기록이며 지난 2월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작성한 72.24보다 3.88이나 높은 점수입니다. 예상을 못한 듯 김연아도 또 한번 깜짝 놀라며 기쁨의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경기를 시청하던 우리 집 온 가족도 즐거운 환호성을 보냈습니다.

깜짝 놀란 김연아와 오서 코치가 점수판을 쳐다보는 장면(로이터)


사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대결은 한일전이라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WBC 세계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이 일본에 패배한 것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쇼트 프로그램에서 먼저 김연아가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큰 격차로 따돌리고 세계최고기록을 달성하자 모두가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경기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연아 피겨퀸, 꿈의 기록 200점 돌파 가능성 크다

이제 김연아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최고기록으로 대회를 우승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열어두었습니다. 쇼트에서 세계기록을 수립한 김연아는 꿈의 기록인 200점 돌파도 노려볼 수 있게 됐습니다. 김연아는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189.07을 기록해 아쉽게 200점 달성에 실패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충분히 가능성 큽니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최고라는 점을 다시한번 입증해준 경기를 보니 주말이 매우 훈훈하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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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인들은 언제 감원이나 해고가 될지도 모르는 불안에 떨고 있다. 이같은 감원 태풍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유럽 등 지구촌 전체가 동시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올해 경제성장율이 0.5%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불황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올해 2~3% 마이너스 성장, 구조조정 한파 예상
심지어, IMF는 우리나라는 경제가 2~3%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야말로, 직장인들에게는 공포스런 예측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도 대량 감원과 실직 사태가 도미노 처럼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렵고 힘든 고난의 시기에 직장인들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미국 포천지 직장인 처신법 10가지 공개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근호에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직장인 처신법 10가지"를 공개했다고 한다. 미국은 현재 감원과 해고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그 동안 초우량기업으로 알려졌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도 감원과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포천지가 공개한 직장인 처신요령 10가지는 아래 내용과 같다.

직장인 처신요령 10가지

1. 신뢰를 얻으라
2. 스스로 많은 일을 하라
3.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라
4. 재택근무는 삼가라
5. 상사와 자주 대화하라
6. 상사의 고통을 공감하라
7. 불만 토로를 자제하라
8. 정장을 자주 입으라
9. 고자세를 버려라
10. 정보를 가까이 하라

[삽화 인용 : 문화일보]

위 10가지 중에서 '재택근무를 삼가라'는 우리나라 직장 현실과는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나머지 대부분은 우리나라 직장문화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직장인 생존법이 있는지 찾아봤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1월 경제위기로 인해 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평생직장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그 이후 45세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란 말이 유행어로 둔갑했다. 

우리나라 '사오정시대 생존전략 10가지 소개
계명대 경영정보학과 김영문 교수가 제시한 `사오정시대 개인의 생존전략 10가지`를 소개해 본다. 경영정보학과 교수가 만든 것이라 그런지 소호(SOHO)나 사이버 공간의 개인 사무실, 인터넷과 컴퓨터 활용 등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이채롭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블로그를 갖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도 하나의 생존전략일 듯 하다.

사오정시대 개인 생존전략 10가지

1. 시간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2.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확장시켜야 한다.
3. 늘 관심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해야 한다.
4. 사이버 공간에 자신만의 사무실을 개설해야 한다.
5. 소호(SOHO)와 투잡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6. 건강과 체력을 관리해야 한다.
7. 교육훈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기개발을 해야 한다.
8.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지적재산으로 등록해야 한다.
9. 관련분야 자격증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10. 컴퓨터와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일본 사람들은 어떨까 찾아봤다.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인 '덴쯔(電通)의 정신 10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전반적으로 대부분이 우리가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정신이지만 '마찰을 두려워 마라. 마찰은 진보의 어머니, 적극성의 비료다. 그렇지 않으면 비굴하고 미련한 사람이 된다.'가 독특하다. 평상시라면 모르지만 불황의 시기에는 잘못하다가는 해고 1순위가 되지 않을까? 덴쯔의 정신 10가지가 그래도 가장 현실적으로 기업에서 원하는 직장인상인 것 같다.

일본 덴쯔의 정신 10가지
1. 일은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2. 일이란 남보다 앞서가는 것이지 수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3. 큰일을 해야 한다.작은 일은 자신을 작게 만든다
4. 어려운 일을 목표로 해라. 그리고 그것을 이룩함으로써 진보한다.
5. 일을 시작했으면 목적을 완수할 때까지 죽어도 놓아서는 안 된다.
6. 주위 사람들을 이끌어라. 이끄는 것과 이끌려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7. 계획을 세워라. 장기 계획을 세우면 인내와 지혜, 그리고 올바른 노력과 희망이 생긴다.
8.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감이 없으면 일에 대한 박력도 끈기도 그리고 깊이도 없다.
9. 머리는 항상 깨어 있어 사방을 주시하고 한 치의 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란 원래 그런 것이다.
10. 마찰을 두려워 마라. 마찰은 진보의 어머니, 적극성의 비료다. 그렇지 않으면 비굴하고 미련한 사람이 된다.
 

고용불안시대 '직장인 생존전략 10가지'
덧붙여, 올해 여성동아 1월호 실린 '고용불안시대 직장인 생존전략 10가지'를 소개한다. 전체적으로 주요한 내용을 담은 듯 하다. 다만, 경력개발 컨설팅은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생존전략을 쓴 분의 이해가 들어간 듯하다.
1.상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2.1년에 한번씩 이력서를 쓴다.(스스로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해 본다)
3.상사나 선배 앞에서 티나게 일한다.
4.인맥지도를 만든다.
5.공생관계를 넓힌다.
6.자신만의 차별성을 개발한다.
7.꾸준히 건강을 관리한다.
8.긍정적 마인드를 키운다.
9.가족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힘든 일이 있으면 가족과 상의한다.)
10.경력개발 컨설팅을 활용한다.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등의 직장인 생존전략을 살펴보니 어느나라나 불황기에는 살아남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도 크게 보면 비슷하다. 직장인들이 어떻게 기업 내에서 처신해야 할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감원과 해고의 한파 속에서 오늘도 열심히 직장생활하시는 직장인 여러분 힘냅시다. (저도 곧 사오정인데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ㅠㅠ) 여러분들도 공감이 가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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