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11.14 어머니가 보내준 감 박스에 눈물 삼킨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29)
  2. 2010.09.19 무도 산내리마을, 특별한 감동인 이유 3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28)
  3. 2009.05.07 팔순 할머니와 손자의 나들이 '효심' 감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30)
  4. 2009.03.01 10살 딸도 감동한 워낭소리, 세대 관통한 소통 by 진리 탐구 탐진강 (12)
  5. 2009.01.19 블로거뉴스의 트래픽 폭탄을 실감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6)


며친 전 회사에서 회의 중인데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휴대폰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이폰 스마트폰입니다. 아이폰애 찍힌 전화번호를 살펴보니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낮에 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회의 중 밖으나 나와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아이고. 집으로 전화를 한다는 것을 잘못 걸었구나."

"집에는 왜요? 급한 일 있으세요."
"아니, 오늘 장에 갔다가 아들 생각나서 감을 샀어. 한 박스 택배로 보냈다. 알려주려고."

"도시에도 감 많은데요. 안그러셔도 되는데요."
"감이 아주 좋더라. 한 박스에 만원 밖에 안해서 두 박스 샀단다."

"어머니, 보내신 감 잘 먹을게요."
"그래. 아이들하고 잘 먹어라."

어머니는 여전히 자식 생각 뿐입니다. 전화를 끊고나서 여러가지 상념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농사 일을 거의 다 하셨습니다. 저를 낳으실 당시에 낫에 무릎을 심하게 다쳐 한쪽 다리가 거의 불구나 다름없습니다. 그렇지만 불편한 다리로 소도 키우고 농사 일도 하고 자식들도 공부시켰습니다. 그 당시는 아버지가 도회지에 돈 벌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과거 저희 시골 농촌 아니 산촌은 초가집이었습니다. 밥은 가마솥에 나무 땔감을 태워 지었습니다. 아버지 없이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참으로 억척스런 삶을 사셨던 것이지요. 저는 어린 마음이지만 그런 어머니를 항상 애처롭게 생각했습니다. 어리지만 낫을 들고 논둑을 베고 나무를 하고 소에게 먹일 소꼴을 베기도 했습니다. 벼농사 밭농사도 어머니와 함께 했습니다. 고사리 손이지만 뭔가 돕고 싶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산 중턱에 있던 집 뒷동산에 감이 익어갔습니다. 엄청나게 큰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감나무의 높이가 5층 이상의 건물은 족히 됐습니다. 그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감을 따곤 했습니다. 제가 그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땄습니다. 대나무의 끝을 갈라서 감따는 도구로 이용했지요. 감나무가 너무 커 땅에서는 딸 수가 없었지요. 감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감을 모조리 땄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다칠까 걱정이었습니다. 그 감나무는 마을 청년들도 못올라갈 정도로 높이 솟아 있었어요.

"얘야, 그만 따라.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지 마라."
"아니요. 괜찮아요. 조금만 더 딸게요."

"그래도 위험하다. 이제 내려와라."
"엄마, 저 감나무 안 무서워요. 여기 끝에만 따면 돼요."

사실 그 때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감 하나라도 더 따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와 겨울 내내 함께 먹을 간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겨울에는 농한기라서 먹을 것을 비축해 두었습니다. 벼와 곡식을 추수하면 모두 장에서 팔아야 했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집에서 먹을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겨우 먹을 소량의 식량만 남겼습니다. 저에게 겨울 간식은 고구마와 감이었습니다. 고구마와 감은 별도의 대나무 울타리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배고프면 하나씩 빼먹곤 했지요.



큰 감나무에서 딴 감이 쌀가마니로 10 가마니가 넘었습니다. 겨울 내내 먹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감이 식량이나 다름없었지요. 그래서 감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모든 감을 다 땄던 것입니다. 감을 대나무 울타리 안에 두면 점차 홍시로 변해 갔습니다. 때론 곶감을 만들어 놓기도 했지요. 감나무 오르는 것이 어린 나이에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위해 제가 혼자서도 도울 수 있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이번 5일장에 가서 좋은 감을 보시고 제가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주말에 집에 있는데 아파트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택배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감 한 박스가 배달됐습니다. 거실에서 감 박스를 열어보니 먹음직스런 감이 가득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감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아내와 두 딸이 있어 제 컴퓨터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혼자 옛 생각을 하니 울컥하더군요. 아이들이 볼까 두려워 눈물을 삼켰습니다.

어머니가 보내준 감을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몇 개를 깎았지만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박스에 표시로는 10kg이었는데 갯수로는 100개 정도는 돼 보였습니다. 가까이 사시는 장모님과 이웃집에 몇개씩 나눠 드렸습니다. 다행히 두 딸도 감을 잘 먹었습니다. 대개 도시의 아이들은 초콜릿이나 사탕과 같이 너무 단 맛에 길들여져 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요. 할머니가 보낸 감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따르던 아이들이었지요.

언제나 어머니는 자식들 걱정인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 마트만 가도 쉽게 감을 살 수 있지만 어머니가 보내주신 감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겨울나기를 하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어머니가 정말 힘들 때 우리 가족을 지켜준 보물인 셈입니다. 부모님은 지금은 그래도 과거와 달리 금슬좋게 잘 지내십니다. 부모님은 가을 추수를 하면 매년 쌀과 고춧가루 등을 보내주시곤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또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의 감 한 박스가 그것입니다. 곧 어머니의 생신입니다. 아내는 벌써 눈치를 챘습니다. 제게 말했습니다. "올해는 어머니 용돈을 두둑히 보내드려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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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각박한 요즘 인심이 너무 비견되던 날이었습니다. 하루살이가 전쟁터일 정도로 각박하고 살벌한 도회지의 삶에서 오늘 본 산내리의 풍경은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어르신들이 방송 내내 절대 병풍이 아니었다는 점과..(무도 멤버들이 죄다 쩌리였다는...ㅋㅋ)..마지막에 한우 불고기 100인분...ㅋ" "매회가 레전드구먼,,,,,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해 내는지,,,"

"꾸밈없는 웃음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도 생각나는 그런 저녁이었네요." "독거노인들이 즐비한 현 세태에 비유되는 훈훈한 광경이 일품이었죠."

"그 동안 20~30대 젊은 층을 겨냥했다면 40대 이상의 장년, 노년층을 위한 특집이었던 것 같다. 특히 추석 연휴라는 점에서 무겁지 않게 주제를 선정했고, 그리고 레슬링으로 지쳤던 멤버들에게 조금이나마 배려했던게 보였다. 빅재미는 없었지만, 깨알 같은 웃음들이 있었다. 특히 앵순 할머님~"

무한도전 '산내리마을'편을 본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의 소감입니다. 사람의 눈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무한도전이 찾아간 산내리마을은 바로 우리들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현재는 역사와 뿌리가 있습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요? 한자 4자성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살던 언덕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도 고향이나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 한가위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그야말로 민족의 대이동이 고향을 향해 이루어지겠지요.

그렇지만, 과거에 비해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고향이 없거나 여러 이유로 갈 수 없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고향이나 부모님에게 못가는 마음 한 켠에는 죄송함과 서글픔이 남아 있겠지요. 늘 마음은 간절하지만 실제 효도라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도 추석은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수구초심을 생각합니다.


무한도전이 그랬습니다. 복잡하고 각박한 현대 물질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던져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동안 잊고지냈던 소중한 것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무한도전 산내리마을편이 준 특별한 감동,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무한도전이 산내리마을에 간 이유입니다.

전남 함평의 산내리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은 모두 카메라를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바로 사진 작가들입니다. 마을에 독특한 잠월미술관이 생기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사진기를 주고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지요. 그렇게 시작된 잠원미술관에 사진 작사 어르신들이 찍은 사진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할머니들이 찍은 특별한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할머니들이 저마다 손에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작품활동에 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잠원미술관에 할머니들이 찍은 사진으로 추억이 채워지게 된 것이지요.(여기서 잠원미술관은 누에가 많은 고장이라서 잠원이라고 이름붙였더군요.) 이런 어르신들의 열정은 농촌 시골 마을은 '예술의 마을'로 승화시켰습니다.

그 중에는 20년 전 주민들의 사진을 현재에 재연한 사진도 있었습니다. 친한 할머니들의 첫 만남과 20년 후의 모습이 겹쳐져 눈길을 끌었지요. 젊은 아낙과 아줌마들의 머리에는 어느새 서리가 내려있었습니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오래된 사진 옆에는 추억과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요. 젊은 부부의 사진 옆에는 이제 할머니가 홀로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젊은이가 대신 자리잡고 있는 장면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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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원미술관 홈페이지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찍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무한도전의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 노홍철 길, 7명의 멤버들은 '은혜갚은 제비'란 주제로 산내리마을을 찾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2010년 무한도전 사진전에 어르신들이 사진작가로 참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내리마을 할머니들은 잠원미술관의 사진전을 넘어 이제는 무한도전에 참여하기도 한 것이지요. 젊은이들도 예상치 못한 어르신들의 열정이 무한도전에 이른 셈이지요.

그렇습니다. 김태호PD는 멤버들에게 정체 불명의 사진을 주면서 사진을 찍은 작가를 찾아 나서도록 미션을 던졌습니다. 무한도전이 산내리마을 찾은 이유는 올해말 열리는 '무한도전 사진전'에 참가하는 사진 작가들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의 원래 추억은 바로 고향과 같은 산내리마을이었습니다. 마치 제비가 고향 마을 초가집을 다시 찾아가듯이 무한도전 멤버들이 그랬습니다. 은혜갚은 제비는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고향과 부모를 찾아 명절 때 찾아가는 것은 '은혜갚은 제비'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추석명절의 의미입니다.

어린 시절, 추석 명절이 되면 시골 마을 어귀 마다 시끌벅적했습니다. 고향을 찾아 온 젊은이들과 어르신들이 어우러져 막걸리 파티가 열리기도 하고 윷놀이판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하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집집마다 이야기꽃을 피우며 훈훈한 가족의 정이 넘쳐 흘렀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면서 정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언제가부터 우리는 명절이 점차 퇴색돼 갔습니다. 도시화와 물질문명사회가 가속화되면서 농촌과 시골은 점차 소외돼 갔습니다. 핵가족화되면서 가족은 해체의 길을 걸었습니다. 친지 친척들과의 끈끈한 연대는 연결고리가 끊어져 갔습니다. 도시는 삭막하고 살벌해진 경쟁사회로 이웃들간의 정도 사라지게 했습니다. 효율성이란 미명 하에 기계문명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주객전도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가령 4대강 사업은 환경파괴를 통해 인간과 자연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지면 개발이익에 눈먼 부자들의 탐욕이 횡행하고 있지요.

무한도전이 찾아간 산내리마을은 바로 우리들의 고향입니다.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거기에는 자연환경과 사람들이 함께 공존합니다. 추석명절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살아갈 고향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시작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인간 본연의 삶이겠지요. 행복은 물질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미래 자원입니다. 미래를 파괴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를 지키려는 것이 명절의 의미인 셈이지요.


유재석은 산내리마을 할머니에게도 인기였는데 마을 변호사로 통하는 정앵순 할머니는 그의 팬이었다

그렇기에 무한도전이 찾아간 산내리마을 어르신들을 통한 과거와의 대화도 신선했습니다. 과거는 현재를 열고 현재는 미래의 거울이니까요. 산내리마을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시골 마을 노인들의 깊은 주름에는 찾아보기 힘든 추억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습니다. 정앵순 할머니는 '전우야 잘 있거라'를 열창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한 대규모 양민 학살이 일어났던 곳이 신내리마을입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가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겠지요. 남북분단의 비극을 넘어 미래는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어 통일의 희망이 넘실대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추석명절에도 고향에 못가는 실향민들의 아픔과 슬픔 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겠지요.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며 추석명절의 다양한 의미를 담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무한도전의 특별한 감동은 사람들의 정(情)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국민소득이 비교가 안되게 적은 나라에 비해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국내 최대의 재벌 대기업 삼성가 이건희의 막내 딸인 이윤형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충격적 사건이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남자 친구와의 행복한 사랑을 꿈꿨지만 결혼 반대에 직면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세간의 평가가 많습니다. 돈많은 부자지만 행복은 돈만이 아니었겠지요.

무한도전은 비록 우리네 삶이 힘들고 고단하지만 사람들의 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추석 명절은 사람들이 모여 조상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가족들 사이의 오붓한 사랑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나 손자 손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이웃들과 나누면서 사는 삶이 행복합니다. 추석명절에는 가족들은 물론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정이 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신내리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찾아가자 너나없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무도 멤버가 아니더라도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도시의 각박한 인심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치 친자식처럼 반겨주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도 멤버들은 팀을 이뤄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퀴즈대회도 열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도 멤버들은 신내리마을에서 스피드퀴즈도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모습은 추석을 앞둔 우리들에게 고향과 부모님, 그리고 가족에 대한 깊은 의미를 되살리게 했습니다. 부모님의 따사로운 사랑과 더불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스쳐지나갔으니까요. 어르신들이 가족이나 아들 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곧 우리 부모들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무도 멤버들이 연미복을 입은 제비로 분장해 고향을 찾듯이 우리들도 은혜를 갚기위해 고향을 찾아야 할 이유인 셈입니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우리도 산내리마을 어르신들과 같이 늙어갈 것이고 자식들과 가족들의 생각할 것입니다. 산악인들은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향이 거기 있고 부모님이 거기 있어 가족을 찾습니다. 무한도전은 바로 사람들의 정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무한도전에 비친 신내리마을 어르신들이 찍은 사진은 연말에 무한도전(무한도展) 사진전에 전시가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소중함이 묻어날 듯 합니다.

무한도전이 단순한 예능 버라이어티를 넘어 레전드로 감동받는 이유는 우리가 잊고지낼 수 있는 보다 소중한 사람의 도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특별함이 있는 셈입니다. 파랑새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듯이 추석명절은 우리들 가까이 있는 가족과 이웃의 정을 되새기게 합니다. 무한도전의 신내리마을편 같이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예 연중 방송으로 있어도 좋을 듯 합니다.

한편, 지난 금요일 MBC '스페셜'은 '할머니 전(傳)'을 방영했는데 타방송사의 19금(禁) 소재인 '스타부부쇼 자기야'나 걸그룹 멤버들이 출연하는 '청춘불패'를 제치고 최고 시청률을 보였습니다. 우리들 일상 속의 할머니들의 평범한 일상사를 다룬 프로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찡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는 무한도전의 산내리마을 할머니들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우리네 일상이 비록 평범하겠지만 진정한 감동이 있는 것이겠지요.

무한도전이 주는 감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들 곁에 있습니다. 방송을 본 어떤 분이 남긴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무한도전의 주인공은 사실 어르신들이었지요.
"환갑넘은 우리 엄마 눈시울이 붉어지시더라..ㅜ.ㅜ...엄마도 슬쩍.. 나도 요즘 카메라(디카) 찍는 거 배워볼까 하시던데. 추석선물로 디카하나 장만해드려야겠다..^^"

우리 모두 가족과 이웃,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하며 뜻깊은 추석명절 맞이했으면 합니다. 고향과 부모님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고 가족간 정의 소중함과 감동의 훈훈함이 넘치는 무한도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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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연휴에 호수공원을 다녀오면서 따뜻하고 훈훈한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꽃들이 만발한 공원에는 연인들과 가족들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모습이 눈 앞에 보였습니다.

팔순은 훨신 넘어보이는 할머니를 유모차에 모시고 공원에 나들이를 나온 분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40대 전후의 손자 정도로 보였습니다. 직접 물어볼 수는 없어 잠시 지켜봤습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손자는 할머니를 예쁜 꽃들이 활짝 핀 곳에 내려드렸습니다.

그리고 활짝 핀 꽃들의 거리에 자리를 펴고 할머니가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그 후, 손자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뻥튀기와 음식들을 하나씩 준비해 드렸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꽃 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는 아름다운 꽃들을 구경할 수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를 위해 유모차에 모시고 공원에 나타난 손자의 모습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광경이었던 것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한 손자의 모습은 어떤 아름다운 꽃들 보다 더 아름다운 '효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 살이를 보면 부모님과 자식, 그리고 손주의 관계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이 팔순인 아버지와 외출하는 오십대의 아들과의 대화의 한 토막입니다.
"아버지, 밖에 다녀올게요." 
"애야, 항상 차 조심하거라!"


부모가 자식들 걱정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더라도 한결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식들이 아무리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사랑 만큼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저희 할머니도 중풍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합니다. 큰 삼촌이 모시고 있는 안산에 가끔씩 찾아뵙곤 합니다. 할머니는 늘 손자가 보고싶은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도 손자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 하십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호수공원에서 만난 백발의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는 참으로 건강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어버이날을 맞이하니 더욱 아름다운 감동의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현대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차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그리고 손주 사이에 훈훈하고 따뜻한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데 물질 보다는 정성어린 마음이 더 소중한 것 같습니다.


아가를 유모차에 데리고 나온 엄마(왼쪽)와 가족이나 친구들 끼리 나온 나들이객(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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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드디어, 보고싶던 영화 워낭소리를 봤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장모님, 그리고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모처럼 이번 영화를 장모님을 포함한 가족이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다지 영화를 즐기지는 않는 저에게도 이전부터 워낭소리는 반드시 봐야겠다는 의지가 충만했었습니다.  

독립영화라서 상영관이 많지않았지만,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집에서 가까운 프리머스에서 워낭소리를 상영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와 단 둘이서 볼까 생각했지만 이왕이면 장모님과 두 딸도 같이 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온 가족이 세대를 뛰어넘어 감동받은 영화였습니다. 3대에 걸쳐 감동을 전해준 소통의 영화였던 셈입니다. 우선 장모님은 영화를 관람한 후 저에게 "고마워"라며 고마움을 표시하셨습니다. 장모님 세대에는 그 만큼 공감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영화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장모님을 내내 무엇인가 상념에 젖은 모습이셨습니다. 그 만큼 울림이 컸다는 것입니다. 장모님이 좋아하시니 저도 행복한 마음입니다.

가장 놀란 것은 둘째 딸이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10살이고 새 학기가 되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이입니다. 둘째 딸은 영화가 끝난 후 "엄마 감동했어. 소가 죽을 때 눈물났어."라며 워낭소리 영화에 몰입이 되어 있었습니다. 집에서부터 워낭이 무엇인지 묻고, 영화관에서도 영화소개 전단지를 보면서 궁금증을 보여주던 딸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질만이 아닌 삶의 소중한 가치를 심어준 듯 하여 내심 기뻤습니다.

아마도 아이 때부터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뵙고 놀았던 기억들이 워낭소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방학 때 마다 시골에 가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던 두 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산과 들, 그리고 냇가 등 자연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컴퓨터와 가게가 없지만 아이들은 더 소중한 추억들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아내도 영화를 보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대화 하나 하나에 반응하고 소의 눈물에도 슬픔을 나타냈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내지만 저와 결혼 후 농촌과 시골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던 터라 감흥이 컸던 모양입니다. 둘째 딸이 소의 다리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내에 물었는데 정확히 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는 소 키우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소똥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워낭소리는 곧 저와 부모님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소를 키웠고 논과 밭을 경작했습니다. 나무 장작을 태워 밥을 하고 소죽도 끊였습니다. 어린 시절에 하는 일이 소꼴을 베고 나무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최원균 할아버지의 절룩거리는 다리는 저희 어머님의 다리였습니다. 워낭소리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는 최원균 할아버지 부분에서 저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임신했을 때 소꼴을 베고 머리에 이고오다 넘어졌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낫이 떨어졌는데 날이 선 낫에 무릎을 다치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도시에 돈벌고 가고 어머니 혼자였습니다. 혼자서 논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고 온갖 일을 다하셨던 것입니다. 평생 다리 하나를 불구의 몸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지금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험준한 산에서 표고버섯 재배를 하십니다. 나이드신 노인들이 산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고 힘든 일입니다. 이제 좀 산 일은 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최원균 할아버지의 고집은 저희 아버지와 닮았습니다. 워낭소리에서 할머니의 "에이고" 하는 한숨과 푸념은 곧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워낭소리의 여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장모님과 부모님 세대, 그리고 우리 부부 세대,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 세대가 함께 세대간 벽을 넘어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더욱 고귀하고 소중한 것은 사람사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세대를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 것은 앞으로 계속 우리 가족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워낭소리는 보실 분들은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워낭소리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세대를 관통하는 소통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현재 우리 시대를 돌아보면 온통 소통은 없고 탐욕만이 가득한데 소중한 것은 가족이고 가족간의 소통과 사랑입니다.

‘유년의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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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다음 블로거뉴스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가족들과 외식을 먹고 돌아와 두 딸이 좋아하는 무한도전을 함께 시청한 후 소감을 포스팅했습니다. 무한도전 콘서트 김태호PD의 힘, 역시 달랐다 라는 글이었습니다. 무한도전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무한 교도(?)이고 아내도 그냥 편하게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서 즐겨보는 편이라서 대세에 따라 저도 보게되곤 합니다.

일요일에 할머님 생신이라서 가족들과 수원에 다녀온 후 깜짝 놀랐습니다. 제 블로그에 트래픽 폭탄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 날 하루에만 7만명이 넘게 다녀갔습니다. 그동안 방문자수를 하루동안에 넘어서는 실로 엄청난 트래픽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살펴보니 무한도전에 대한 글이 블로거뉴스의 메인 글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올해부터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걱정도 많았지만 zinicap님이나 짠이아빠돌이아빠님 등 좋은 분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자신감을 갖고 하나씩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소감 정도로 생각했는데 블로거뉴스 메인 중 하나로 소개되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아내가 '김태호PD는 역시 다르다'고 얘기해준 것이 아마도 글을 쓰는데 직접적인 영감을 준 듯 합니다.

블로그를 개설한 이후 사실 아직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생활 속에서 느끼는 IT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아예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여러가지 이슈들을 닥치는 대로 써야 하는지 .... 도무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 날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생각나는 느낌 대로 글을 쓰곤 합니다.

처음에는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글들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런 글들을 쓰는 것이 아직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블로거 분들이 많아서 좀 더 생각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지금도 블로그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배우는 단계인 만큼, 좀 더 전문적인 글쓰기를 아시는 선배 블로거 분들의 많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다지 좋은 글도 아닌데 블로거 뉴스 메인에 올라가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블로거뉴스 메인을 장식한 기념으로 스크린샷을 올려봅니다. 암튼 다음이라는 포털과 블로거뉴스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항상 도움과 격려를 해주는, 마음씨 좋은 블로거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려야 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아내와 두 딸이 실질적인 영감을 준 것이니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야 겠습니다. 한편으로, 늘 잊지않고 생신 때 마다 찾아주는 손주가 고마워 할머님이 주신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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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