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1.21 아내 없는 빈자리 초등학생 두 딸의 메모에 눈물났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9)
  2. 2009.10.12 어머니 첫 해외여행 허락한 아버지의 변심 이유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88)
  3. 2009.08.22 19세 연하 여자와 중년남, 결혼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33)


어제는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습니다. 그 전 날, 일찍 잠이 들어 평소 보다 빨리 잠에서 깬 것입니다. 냉장고의 물을 꺼내 마신 후 거실 탁자 위에 컵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탁자 위에 자명종 시계와 그 앞에 쪽지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의 메모였습니다. 저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갑자기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두 딸은 아내가 자매들과 해외여행을 간 사이 대신해 아빠의 출근과 아침 밥상을 걱정해준 메모였습니다. 큰 딸은 초등학교 6학년, 작은 딸은 4학년입니다.

식탁 위 알람시계와 메모지의 정체는?

그 메모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빠! 알람 끄려면 알람 뒤에 있는 on 스위치를 off로 바꾸세요.
그리고 아침 드실거면 저희 깨우세요. 그럼 드릴게요. We ♡ Dad
"


두 딸이 아빠를 위해 알람 시계를 준비해 두고 그 앞에는 아침 식사를 드릴 것이라는 메모도 있었다

역시 딸들은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사이에 그 역할을 대신해 아침 잠을 깨워주고 식사까지 챙겨주려는 마음씨가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아빠들이 딸 아이를 선호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날은 조용히 출근을 했습니다. 저는 새벽 6시경 일찍 출근을 합니다. 두 딸이 곤히 잠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아내는 캄보디아로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세 자매가 함께 갔습니다. 그 이유는 큰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1년 전, 겨울에 큰 언니가 암과 투병하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내와 자매들은 큰 언니의 죽음 앞에 슬퍼했습니다.

아내가 밤 12시에 슬프게 눈물 흘린 이유는?

얼마 전,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밤에 TV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책도 함께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TV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침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조금 후, 이상한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였습니다. 이상한 울음소리에 오싹했습니다. 울음소리가 통곡처럼 들렸습니다.

제가 여기저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침실이었습니다. 침실의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불을 켜보니 아내는 이불을 둘러쓰고 울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래? 내가 뭐 실수했어?"
"아니야. 그냥 혼자 있게 해줘."

"갑자기 우니까 걱정돼 그래. 혹시 내가 TV 돌려서 그런 거야?"
"아니라니까. 오늘은 언니의 기일이야. 언니한테 미안해서 그래. 혼자 있게 좀 해줘."


저녁에 아빠가 퇴근하자 두 딸은 직접 압력밥솥에 밥을 했고, 냉장고의 반찬과 함께 식탁을 차렸다 

아내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저는 그냥 거실로 나왔습니다. 그랬습니다. 언니의 기일이 되자 아내는 언니 생각에 눈물이 났던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회한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아내와 자매를 비롯 가족들은 큰 처형이 모셔진 납골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세 자매는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지요. 아내는 시계나 휴대폰도 집에 두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냥 모처럼 속세를 잊고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지요.

아빠를 위해 초등학생 두 딸이 차려준 밥상

아내는 그 동안 제가 입을 셔츠를 여러개 다림질해 두었습니다. 두 딸은 모처럼 엄마가 여행을 다녀오도록 반갑게 이야기해 주었지요. 물론 저도 아내의 마음을 알고 있던 터라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아내가 해외여행을 하는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자매들은 앙코르와트를 비롯 여러 곳을 여행하겠지요. 요즘같이 강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따뜻한 나라 여행이라서 좋을 듯도 합니다.

그러나, 아내의 빈자리가 커보이기는 했습니다. 저녁에 퇴근하니 두 딸이 아빠를 위해 압력밥솥에 밥을 직접 만들어 밥상을 차렸습니다. 큰 딸은 햄을 구웠는데 조금 타긴 했지만 맛있었습니다. 저는 계란 후라이를 만들었습니다. 찬은 많지 않지만 두 딸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는 행복했습니다. 이럴 때는 아들 보다 딸이 훨씬 좋지 않나 싶더군요. 큰 딸은 1년 전 겨울에 아빠를 위해 뜨게질로 목도리를 떠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이 딸가진 부모의 기쁨이겠지요. 


큰 딸은 햄을 굽고 반찬을 준비했고 작은 딸은 밥을 만들어 밥상을 차려 아빠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아내가 큰 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털고 즐겁게 여행을 하고 돌아왔으면 합니다. 결혼 후 세 자매가 따로 여행은 처음일 것입니다. 아내가 없는 빈자리, 두 딸이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아내의 빈자리가 허전합니다. 주말 토요일에는 두 딸을 위해 맛있는 외식을 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아내가 돌아오는 일요일이 되겠지요. 그 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간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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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어머니께서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해외여행을 한번 가자고 하면 아버지 눈치 때문에 주저하던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신있게 해외여행에 나선 것입니다. 부모님은 시골 산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계십니다.

저녁에 퇴근해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어머니께서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의아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놀라운 일인데."
"이모님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다녀오신데..."

"우리가 함께 해외여행 가지고 할 때는 안간다는 했는데."
"아버님이 이번에 다녀오시라고 했다는 거야."

"정말 의외인데..."
"막내 이모님이 환갑인데 자매들이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이모님 두 분을 포함 셋이서 중국 여행을 다녀오신 것입니다. 중국 여행은 막내 이모님의 아들이 주선을 했습니다. 여행 경비는 저와 동생들이 별도로 부쳐드렸습니다. 가능한 한 비용 걱정없이 다녀오실 수 있도록 형제들이 각각 경비를 넉넉하게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의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한번도 어머니가 여행가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집 떠나면 고생이라며 해외여행에 대해 거부감이 강했습니다. 더욱이 어머니 혼자서 여행가는 것에는 알러지 증상을 일으킬 정도로 완고했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불호령에 언제나 여행을 포기하곤 했었습니다. 아버지 혼자서는 밥도 못해 드시기 때문에 어머니는 지금까지 아버지를 홀로 남겨두고 여행을 떠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 올해 여름휴가에 시골마을에서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내던 모습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어머니께서 여행을 떠나신다고 싱글벙글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예전의 모습이 아닌 듯 했습니다. 어머니는 집만 나오시면 아버지가 밥은 제대로 드실까, 시골집에서 키우는 개밥은 누가 줄까 늘상 걱정이 태산이셨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전혀 걱정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순순히 여행을 보내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완고하던 아버지께서 변심한 것 같습니다.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 사시는 모습을 지켜봤던 저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절대 해외여행을 가지도 않겠지만 어머니를 홀로 여행보내는 일은 없을 것 같다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들의 예상을 완전히 깨버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칠순을 넘기면서 마음이 여려지신 듯 합니다. 산골 마을에서 젊은 시절부터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고집센 촌부의 대명사였던 아버지였습니다. 

저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그렇게 해외여행을 함께 가자고 했을 때는 아버지 핑계를 대며 거부하던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이모님과 함께 해외 여행을 간다고 하니 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오히려 자식들이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데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가득했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는 두 분의 여동생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습니다. 언니로서 여동생들이 힘들 때에도 특별한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시절에 대한 회한이 많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가부장적인 가장으로서 어머니를 늘 힘들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이모님을 만나기 위해 여행 떠나는 것 마저 거절하던 시절이 많았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이모님들과 해외여행을 허락한 것은 천지개벽할 정도의 소식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형제들은 어머니께서 이모님들에게 늘 빚을 지고 사시는 듯 하였기에 이모님들과의 중국 여행을 축하해 드렸습니다. 어머니와 이모님들은 중국 선양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중국 선양에서 사업을 하는 막내 이모의 아들이 현지 가이드가 되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외여행이 중요하기 보다는 이모님들과 자매 셋이서 함께 있다는 사실자체가 더 행복한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와 이모들이 함께 여행한 것도 평생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 산골마을의 계단식 논과 조립식 주택으로 단장한 마을의 전경


중국 여행에서 귀국한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중국 잘 다녀오셨어요?"
"정말 가는 곳 마다 더럽더라."

"중국 가셨는데 좋은 곳 많이 못가셨어요?"
"우리나라가 좋더라. 외국에 가보니 우리나라가 깨끗하고 좋은지 알겠더라."

어머니께서는 빨리 한국에 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모님들과 첫 해외여행이라서 즐겁기도 했겠지만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잠시라도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항상 아버지 걱정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완고하고 집안 일도 안하시고 성질도 급하신 분입니다. 어머니는 항상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떨어져 지내시면 아버지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아버지와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
"어머니 없는 동안 식사는 잘 하셨어요?"
"막내가 집에 와서 밥해 줘 잘 지냈다."

그랬습니다. 부모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 사는 막내 남동생이 시골집까지 출퇴근을 한 것입니다. 막내는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데 일부러 아버지를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수씨가 그렇게 하도록 조언을 했을 듯 합니다. 마음씨 착한 막내 동생 내외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해외여행을 허락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가부장적 사고로 표현도 못하시고 자신의 고집만으로 평생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자식들이 모두 결혼하고 나서 마음이 조금씩 변했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어머니와 두 분만 남게 되자 서로를 더욱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 가족들이 고추밭에서 이른 고추를 따기 위해 이동하는 장면


게다가 칠순을 넘기시면서 예전과 같은 기백도 조금 약해지신 듯 합니다. 아버지께서 이제는 어머니를 위해 여행도 권유하실 만큼 달라진 모습에 감동을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버지께서 언제나 기운넘치는 모습을 점차 잃는 듯 하여 아쉬움도 교차합니다. 평생을 유아독존과 같이 고개를 숙이지않고 살아오신 아버지께서 이제는 어머니를 위해 배려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보면서 부모님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산골마을에서 평생 살면서도 도시와는 담을 쌓고 지내시던 아버지. 어머니는 늘 불만을 표시하지만 아버지의 고집과 한 마디에 조용히 순종하며 살아오신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토록 원하던 이모님들과 즐거운 한 때를 허락하셨습니다.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연일지 모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엄청난 변화입니다.

저는 다시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아니, 해외여행 안간다고 하시더니 가실 생각을 하셨어요?"
"이제는 가보고 싶더라."

저는 어머니의 한 마디에 다시 한번 반성을 했습니다. 과거 안가신다고 하셔도 계속 어머니와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한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가족과 고향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하게 한다


"어머니, 다음에는 꼭 우리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자구요."
"그러자구나."

"어머니 칠순이 곧 다가오니 아버지와 함께 가요."
"그래. 아버지가 안가시려고 할 것 같기는 하지만."

"저희가 설득하겠습니다."
"너희들이 그리 해보렴."

어머니께서 이렇게 자신있게 말씀하신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여행하자고 하면 뒤로 빼시던 어머니께서 이제는 주저없이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아버지를 믿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옹고집 인생이 변심을 하자 어머니께서 기운이 넘치시는 듯 합니다. 다가오는 어머니 칠순에는 부모님을 비롯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도 이제는 손주들을 비롯 함께 여행가는 것에 대해 거부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어머니의 자신감은 이미 아버지의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행복한 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이제는 서로 사랑과 배려도 표현하면서 사세요.

오늘 당장 사랑한다 말해보세요.

樹 欲 靜 而 風 不 止(수욕정이풍부지)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쳐주지 않고

子 欲 養 而 親 不 待(자욕양이친부대)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네
<論語> 나오는 구절입니다.

돈을 벌면 잘 해드려야지,
성공해서 잘 해드려야지...하면 늦습니다.

부모님은 돈을 많이 번 아들,
크게 성공한 딸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고생하며 노력하는 그대로의 자식을
기다리며 행복해 하십니다.

‘아버님이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이 순간을 어머니가 지켜보셨더라면... "
하는 순간이 오기 전에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십시요.

아버지의 손을 잡아본 것이 언제였나요?
어머니를 안아 드린 것이 언제였나요?

오래전에 우리가 받았던 것을 돌려 드릴 때입니다.
손톱을 깎아 드리고, 발을 씻겨 드리고,
등을 밀어 드리고, 어깨를 주물러 드리세요.
부엌에서 설거지하시는 어머니 등 뒤에서
살짝 안아보세요.

처음은 어색하겠지만, 얼른 용기를 내보세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이
서로의 가슴에 물결 칠 것입니다.

우리는 쑥스러움 때문에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 고도원의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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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결혼은 나이와 국경을 초월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열아홉 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탤런트 이한위 씨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40대 후반의 이한위 씨가 20대 후반의 아내와 결혼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한위 씨는 결혼 후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자신의 친구나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나이 차이나 사회적 인식을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하고 생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지인 L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L은 오랜 기간 알고 지내는 분이었습니다. 평소 전화도 없던 L이 만나자고 해서 궁금 했습니다. 저녁 약속이 없던 날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만났습니다. L은 인쇄출판 관련 작은 사업을 하고 있어 일정 수준 정도의 벌이는 하는 분입니다. L은 나이가 저보다 한두살 연배지만 서로 말을 트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L은 자신이 자주 가던 식당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L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갑자기 연락해 만나자고 하고. 무슨 일 있냐?"
    "아니. 함께 식사한지 오래 됐잖아."

    "사업은 잘 되냐? 요즘 경기도 안좋은데."
    "토요일도 일을 좀 해야겠어. 일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편이라."

    그러던 중 L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 여자 친구가 여기 오기로 했어. 여기서 자주 식사를 했거든."
    "응, 그렇구나. 그런데 어떤 여자 친구냐?"

    "19살 연하의 여자 친구야. 업무차 거래처에서 알게 된 사이인데 친해졌어."
    "그래. 그럼 여자가 20대이겠네. 나이 차이가 크기는 하구나."

    사실 L이 19살 연하의 20대 중반 여자와 사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L은 40대 중반의 이혼남이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방황을 했던 전례가 있어 L의 앞날에 대해 살짝 걱정도 됐습니다. 그래서 L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얼굴이 동안이라 여자 친구와 같이 다녀도 괜찮겠다."
    "뭐. 그렇기는 하지. 내가 더 노력해야지."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
    "예전에 바다 건너 여행 갔다고 했잖아. 그 때 여자 친구와 같이 갔어. 그 후 거의 매일 계속 만나고 있어."

    두 사람은 이미 깊은 관계인 것 같았습니다. L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자 친구에게 자신의 자동차 키를 맡길 정도였습니다. L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식사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여자 친구가 늦어지나 보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오늘 야근이래. 업무가 바쁜 편이야. 곧 올 거야. 10시면 도착할 것 같아."

    당초 L이 만나기로 한 시간 보다 너무 늦어졌습니다. 저는 그 날 몸이 좋지않아 저녁 10시가 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L은 이미 19살 연하의 여자와 함께 살기로 결심한 듯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하고 결혼하는 문제는 성인으로서 둘의 결정이라 생각됐습니다. L이 저를 보자고 한 것은 아마도 두 사람의 결혼을 공식화하기 위한 수순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L이 스스로 결혼과 삶을 결정하고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할 일이기에 곁에서 왈가왈부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예전에는 결혼에 대해 사회 통념이 남자와 여자는 몇 살 차이가 적당하다는 기준을 중시했지만 점차 그 기준은 허물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요즘도 적당한 나이가 사회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나이 차이도 더 늘어나고 있고 여자가 연상이 경우도 많아지고 국제 결혼도 증가하기도 하는 추세입니다. 그런 반면에 결혼도 쉽게 결정하고 이혼도 쉽게 결정하는 경우도 늘어나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결혼관의 변화에 따른 현상이지만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혼에 대한 신중한 판단도 필요할 것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결혼은 가족이나 사회 공동체 속의 삶이라 극복할 과제들도 많습니다. 물론 사회적 환경과 난관을 극복하고 오래 잘 살 수 있는 비결은 두 사람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변치않는 사랑과 인연의 끈을 지탱해나가는 마음가짐과 정성이 가장 중요한 관건일 것입니다.


    다시 L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L은 결혼에 대해 고민이 될 것 같습니다. 이미 L은 이혼의 아픔이 있고 아이도 있습니다. L은 사회적 통념도 고민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고민도 될 것입니다. 저는 L에게 어떤 말도 하기 어려웠습니다. L이 다시는 여자와 결혼이라는 문제로 고통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잘못된 조언이 오히려 L에게 안좋은 결과를 줄까 걱정이 됐습니다. 탤런트 이한위도 결혼 전 가장 큰 고민이 사회적 규범이나 결혼 후 여자의 고충 그리고 장모와 나이가 비슷한 가족 문제 등이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과연 19살 차이의 여자와 L이 결혼해야 할까요?
    여러분들이라면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참고] 무려 71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커플 이야기
    말레이시아에서 지난 2006년에 71살 나이 차이의 연상의 여자와 결혼한 남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커플은 33세 남성과 104세의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무려 71살이나 연상인 할머니와 결혼한 청년, 이 커플은 이슬람교 교리를 함께 공부하면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거의 정신적인 종교적 사랑인 셈입니다.

    남편은 71세의 나이차에 대해서 부인과 함께 있으면 너무 편안하다고 말하면서 신이 맺어준 인연을 소중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또한,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을 한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히려 부인이 너무 가난해서 돌볼 사람이 없는 것도 결혼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했답니다.

    젊은 남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104세의 부인은 지금까지 20번의 결혼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의 남편이 21번째라고 합니다. 말레이시아는 이스람교를 믿는 나라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실제 뉴스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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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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