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5.07 자식위해 평생 불구가 되신 어머님 전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2. 2009.02.08 정월대보름 쥐불놀이하다 죽을 뻔한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17)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칠순이 다 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십니다. 호랑이같은 아버지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어머니는 청춘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자식들은 대도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막내 남동생이 가까운 도시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곤 합니다.

그러나, 장남인 제가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십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신 다리로 평생 산골에서 힘든 농사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제게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불행하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사연과 혼자서 저를 키운 새색시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까마득한 두메산골입니다. 아직도 온통 산으로 뒤덮인 고향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다닐 정도로 산골 오지입니다. 부모님은 산골 외딴집에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만큼은 시골 집에 동생들 가족들과 일정을 맞춰서 함께 가곤 합니다.

어머니는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이셨고 아버지는 초등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지난 1960년대는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던 시절에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을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알려진 벌교에서 지냈던 분으로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신혼 시절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기피한 상태였는데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해 헌병대에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헌병대를 피하기 위해 초가집의 흙벽을 무너뜨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 후 아버님을 몇년 동안을 도시에서 숨어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군대에 간 후 사망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군대 기피가 많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머니는 새색시가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땔감을 구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시골집은 초가집이었고 나무 땔감으로 밥을 짓고, 소꼴을 베어 소를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기도 가스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녁엔 방에 호롱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혼자서도 힘든데 홀몸이 아닌 상태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소까지 키워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겹게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열심히 밭 일을 하다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밭에서 일을 끝내고 머리에는 소꼴을 가득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길가에 뻗은 칡넝쿨에 걸려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넘어지던 중 머리에 인 소꼴에서 낫이 떨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낫은 어머니 앞에 날이 선 상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예리한 낫의 날에 닿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어머니는 무릎의 힘줄이 끊기는 대형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할 병원도 없었습니다. 곁에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몸이다보니 칡넝쿨에 걸려 균형을 잡지 못한데다 낫을 피하지 못해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임신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몸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봐 못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어머니는 다시 농사를 짓고 혼자서 저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갓 결혼 후 남편도 없이 무려 5년을 그렇게 농사도 짓고 저를 키웠던 것입니다. 저는 아가 시절을 마당이나 밭을 기어다니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마당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닭과 함께 놀고, 밭에서는 지렁이가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도 일을 하고 계시고, 밭에 가서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저의 유년 시절은 밤낮으로 어머니 밖에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호롱불 밑에서 제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5살 때 처음 어버님이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저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만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오신 후에도 집안 일은 하지않고 한량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싹텄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마음의 화해가 어느정도 되었고,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과거와 달리 농사 일이나 집안 일도 했습니다.

제 나이가 5~6세 정도일 때도 저는 동네 아이들과 산에 올라가 고사리 손으로 나무를 하곤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오직 어머니 일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의 일을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시절에도 방학 동안 내내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돕는데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 때부터 어머니 혼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왜 다리 하나가 불편하게 되셨는지 얘기를 처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어머니가 다리를 절면서 걷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것이 모두 제 탓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보면, 그 젊은 시절에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참고 이겨냈는지 가슴이 아프곤 합니다. 제가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생각하는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벼가 익어가는 여름 날, 논둑을 걸으면서 저에게 하신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어머님은 소중한 등불과 같았습니다. 제가 방황하거나 잘못 가려하면 언제
나 등대처럼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다리가 잘리는 듯한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디셨습니까. 그리고 홀로 저를 어떻게 키우셨나요.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만 하셨습니다. 특히 홀로 키웠던 저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유년시절의 기억 마저 희미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주 연락도 못드려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은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어머니의 귀중한 가르침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언제나 힘을 주시는 어머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뵙겠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큰 데 건강 조심하세요.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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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음력 1월 15일은 정월대보름입니다. 정월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밝음사상을 반영한 명절로 다채로운 민속이 전해져 옵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불에 타 죽을 뻔한 어린 시절의 사건이 생각나곤 합니다. 아마도 내 나이가 9살 정도일 때였던 것 같습니다. 산골짝 시골 마을이었는데, 정월 대보름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저녁에 쥐불놀이를 했습니다. 낮에는 자치기나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깡통에 구멍을 뚫어 철사줄을 매달아 쥐불놀이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어느새 저녁이 되고 보름달이 뜨면 아이들은 동네에서 가장 큰 논으로 가서 쥐불놀이를 신나게 했습니다. 가끔 실수로 불꽃이 아이들의 머리에 붙어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쥐불놀이를 하는 장면은 정말 멋졌습니다. 불이 붙은 깡통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기 때문에 여러 아이들이 동시에 깡통을 빙글빙글 돌이면 불꽃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쥐불놀이 재미에 흠뻑 빠져 놀았습니다.

쥐불놀이를 하려면 먼저 몇가지 준비를 해야 합니다.
1. 빈 깡통에 못으로 군데군데 구멍을 뚫어 바람이 통하도록 합니다.
2. 그리고 깡통을 불에 타지않는 철사줄로 연결을 합니다. 그 후 깡통에 불붙은 나무를 가득 담습니다.
3. 쥐불놀이 준비가 끝나면 넓은 공간이 있는 논으로 이동을 합니다. 
4. 그리고 깡통을 빙빙 돌리면 불붙은 나무에서 불꽃이 튀면서 멋진 장관을 보여줍니다.
쥐불놀이의 동그라미와 풍년 소망. 쥐불놀이를 돌리노라면 왜 불꽃 동그라미들이 생겨날까. 원융무애(圓融無碍), 원만하게 융통되는 장애 없는 세상 만들고 싶어서이리라.

[참고] 해마다 첫 쥐날[] 또는 정월대보름 전날 농촌에서 논밭 두렁 등의 마른 풀에 불을 놓아 모두 태우는 풍습으로, 논두렁태우기라고도 합니다. 이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쥐를 잡고 들판의 마른 풀에 붙어 있는 해충의 알을 비롯한 모든 잡충()을 태워 없앨 뿐만 아니라 타고 남은 재가 다음 농사에 거름이 되어 곡식의 새싹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과 오랫동안 쥐불놀이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쥐불놀이를 하다가 힘이 들어 잠시 쉬고 있는데, 동네 형이 뒷마당에 짚단을 쌓아둔 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동네 형의 제안에 그 형의 동생(제 친구) 그리고 나를 비롯한 세 명은 뒷마당의 짚단 더미 속을 열심히 판 후 그 짚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짚단들이 뽕나무에 여러개 걸쳐 있어서 지푸라기를 헤치고 구멍을 파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어느새 짚단 더미 속에서 아지트를 마련한 세 아이들은 뽕나무에 호롱등(유리로 둘러싸인 등잔불)을 걸어놓고 잠시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네 형이 "불이야"라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빠져나갔습니다. 얼떨결에 잠이 깬 저와 친구는 짚단 더미 속에서 헤매다가 가까스로 빠져 나왔습니다. 짚단 더미는 벌써 불길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하루종일 피곤해 잠시 짚단 더미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쉰다는 것이 셋 다 잠에 빠졌는데 호롱불 또는 쥐불놀이하다 남은 깡통의 불씨가 짚단으로 옮겨 붙은 모양이었습니다.)
[호롱등 사진]

짚단 더미에서 빠져나온 저와 친구는 무서운 마음에 아무 곳이나 숨기로 했습니다. 저는 장독대 뒤에 숨었습니다. 머리를 만져보니 불길에 타버려 이상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장독대에서 살짝 뒤마당을 살짝 내다보니, 동네 어른들이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서 짚단 더미의 불을 끄고 있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 속에 있을 것이라면서 놀라서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무서웠습니다.

어느새 짚단 더미의 불도 꺼졌습니다. 어른들은 다행히 아이들이 그 안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마을에는 "OO아" "OO아"를 외치며 아이들을 찾는 어른들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한참 동안을 장독대 뒤에서 숨을 죽이고 숨어있던 나는 어른들에게 결국 발각이 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이 홀라당 새까맣게 타버리고 얼굴마저 까맣게 재가 묻어있는 나를 본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놀란 마음에 한참 풀이 죽어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크게 혼을 내지는 않으셨습니다. "다시는 불 장난하지 마라"며 한마디 말씀만 하셨습니다. 하마터면 짚단에 붙은 불길에 휩싸여 죽을 뻔한 정월대보름의 사건이었습니다.

지금도 정월대보름이 되면 그 날 벌어진 짚단 더미 속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기억이 나곤 합니다. 당시는 아무 생각없이 짚단 더미를 헤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잠이 깨지 않았었거나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농촌이나 시골 마을에서 쥐불놀이 만큼은 허락된 유일의 불장난입니다. 문제는 쥐불놀이 만이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 불장난을 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불놀이하는 것은 위험한 장난입니다. 어린 시절 당시 사건의 세 명은 이제 모두 어른이 되었고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위험한 불장난을 하지 않도록 아이들과 늘 함께 조심해야겠습니다. 쥐불놀이를 하더라도 어른들이 곁에서 지켜봐주며 행여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돌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올해는 아이들과 쥐불놀이의 추억을 함께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정월대보름은 가족과 함께 즐겁게 여러 나물들이 곁들여진 오곡밥도 먹고, 부럼도 까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축복을 기원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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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