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11.26 이란 골키퍼 농락한 김영권 손가락 있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4)
  2. 2010.07.30 지소연 0.004% 눈물의 도전에 네티즌 감동 댓글 뭉클했다 (지소연 골 모음 동영상 포함) by 진리 탐구 탐진강 (24)
  3. 2010.07.13 카시야스 눈물과 열정 키스가 감동인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1)
  4. 2009.02.19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가 돌아온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이란을 4 대 3으로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드라마였지요. 아시안게임에서 이란을 상대로 승리한 것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40년만이라고 합니다.

이란 전에서는 상당히 감동적인 장면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란을 꺽고 승리가 확정되자 홍명보와 박주영이 감격의 포옹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주영이 종교적 색채가 강한 기도세레모니로 반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지만 선배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모습이었습니다.

홍명보는 아시안게임 내내 항상 믿음직하고 침착한 감독의 카리스마와 포스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란 전이 끝난 후 눈물을 잠시 보이더군요. 처음으로 대표팀 감독을 맡아 이번 아시안게임은 혹독한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혼자 고독했고 마음졸였겠지요. 선수라면 함께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라도 있었겠지만 감독 홍명보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홍명보가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동원의 2골이 반전드라마의 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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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홍명보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와의 경기에서 선수교체 실수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공격수를 강화하기 보다는 골키퍼를 교체해 곧바로 UAE 선수에게 골을 먹고 패배했으니까요.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요. UAE 골키퍼의 선방과 비교해 더욱 뼈아픈 결과였습니다. 더욱이 이란전에서 승리의 1등공신인 지동원이 UAE전에 출전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란전은 상대적으로 빛났습니다. 우리나라 축구팀은 이란과의 3-4위전에서 구자철과 박주영이 1골씩 기록한 데 이어, 지동원이 후반 43분부터 1분간 두골을 몰아넣어 4대3으로 역전승했습니다. 그런데 이란전은 이라크 심판의 편파판정이 심각했습니다. 특히 후반전 종료직전에 이란 골키퍼 메디 라마티가 우리팀 골 문전에 들어와 우리 골키퍼 김승규를 차징 반칙하는 장면은 황당했습니다.

이란골키퍼의 더티플레이 응징한 막내 김영권의 손가락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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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심판은 아예 모른 척 하더군요. 그런데 거기서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자세히 시청한 사람은 알 수도 있지만 빠르게 지나가 대부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 팀의 중앙 수비수 김영권은 이란 골키퍼의 차징 반칙을 목격하고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메디 라마티에게 보여줬습니다. 비매너이기는 하지만 이라크 심판이 반칙 선언을 하지않아 김영권은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했을 것입니다.

이란 골키퍼는 김영권에게 달려들어 크게 소리를 지르며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옆에 있던 우리 선수들도 가세하고 이란 선수들도 달려와 몸싸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김영권은 얼굴 표정 하나 변화없이 이란 골키퍼에 또 한번의 손가락 대화를 보내더군요. 이란 골키퍼의 당황한 모습이 대조적이었습니다. 김영권의 손가락 행동은 평소라면 비매너로 눈살을 찌푸릴 상황이었지만 이란 골키퍼에게 당당하게 손가락 경고를 하는 모습은 속시원했습니다.

승리의 '한골 더' 다짐한 박주영과 구자철 손가락 세레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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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 경기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골을 넣고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펴고 축하하는 세레모니도 있었습니다. 박주영과 구자철이 나란히 검지 손가락을 편 모습이 '한 골 더'를 외치는 듯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한 골 씩 넣었지요. 손가락 하나를 폈지만 김영권의 가운데 손가락 중지는 박주영 구자철과는 달랐습니다. 김영권은 이란팀 비매너 더ㅍ티플레이에 대한 응징이었습니다. 소심한 듯 하면서도 강력한 경고가 담긴 메시지였지요.

김영권은 1990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스무살에 불과합니다. 아시안게임과 같이 국제대회에서 굴하지 않고 가장 열심히 뛰어준 선수였지요. 선배 형들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역할 이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영권의 손가락은 어쩌면 선배들에게 비매너 더티플레이를 한 이란 골키퍼에 대한 응징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대표팀 막내 스무살 김영권의 손가락 응징이 귀여운 이유입니다. 앞으로 김영권이 대표팀의 대들보 수비수로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이 기대됩니다.

아, 이 날 경기에서 해설자 허정무도 좀 웃긴 장면이 있었습니다. 김영권이 이란 골키퍼에게 손가락 경고를 하고 양측 선수들이 몸싸움이 잠시 벌어질 때 였지요. 캐스터가 "선수들 침착할 필요가 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허정무는 "괜찮습니다. 저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기죽으면 안됩니다...지금 마지막 순간이거든요"라고 답변해 순간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역시 축구 감독 출신 해설자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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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연이 맹활약을 펼쳤지만 결국 독일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쉽게도 4강 신화에 그쳤습니다. 이번 U-20(20세 이하) 대회는 아직 3-4위전이 남아 있어 최대 3위를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여자축구팀이 콜롬비아전에 승리를 하여 3위만 해도 남녀 월드컵 통산 최고의 성적이 됩니다.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할 수 있는 이번 4강 독일전에서 한국팀이 보여준 5대 1 점수차는 단순한 셈법으로 보면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 이룬 기적의 4강이란 점에서 앞으로 더 큰 희망을 보았습니다. 실제 실력차도 세계최강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옥석을 다듬는다면 단기간내 세계최고의 자리에 우뚝 설 날도 머지않았다고 봅니다.

지소연이 독일전에서 수비수 2~3명을 골에어리어에서 제치고 골인을 넣는 장면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단 1골이었지만 남자축구팀 선수들도 못해낸 놀라운 골이었습니다. 161Cm의 작은 키의 지소연이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빼내며 첫 번째 수비수를 제친 지소연은 순간적인 오른쪽 드리블로 두 번째 수비수 마져 제친 후 골키퍼를 피하기 위해 오른발로 감아차 독일 오른쪽 골대를 갈랐습니다.

골에어리어에서 직접 수비수들과 골키퍼를 자신있게 따돌리고 골인을 넣는 배짱과 실력을 보면서 지소연을 왜 '지메시'라 부르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여자 박지성이 아니라 여자 메시와 더 닮아있는 플레이였던 셈입니다. FIFA(국제축구연맹) 홈페이지는 한국과 독일의 4강전 리뷰를 통해 후반 19분 지소연 골을 이날 '경기 최고의 골'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가슴아팠던 지소연과 여자축구, 그러나 희망을 쐈다


경기가 끝난 후 지소연 관련 기사를 우연히 봤는데 거기에 달린 댓글 하나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104만명 대 1414명의 차이에서 - 댓글달기 미안해라'라는 제목으로 별빛나그네님이 댓글을 달았는데 이번 대회를 지켜본 국민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만 했습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소개해 봅니다.

104만명대 1414명의차이에서--댓글달기 미안해라  (별빛나그네님)

울면서 글을 올립니다

제발 남의이야기다고 댓글 함부로 달지 맙시다
교체멤버 조차 빈약한 선수층--왜소한 체격
짖궂은 날씨에 그라운드는 미끄럽기 한량없고
이제 20세미만 우리 청소년 국가대표선수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장한 우리딸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노트북 하나 없는 지소연
넉넉치 못한 환경에서 불굴의 의지로 일궈낸 저들에게
우리는 한없이 미안 합니다
아시아 유일의 생존 팀 --대한민국
그녀들이 있기에 요즈음 행복했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5대 1로 큰 점수차로 패배한 것에 비난 댓글을 달기도 하지만 지소연과 여자축구의 열악한 현실을 생각하면 이번 4강 신화 기적만으로도 큰 박수를 보내주어야 할 것이란 의미입니다. 실제 한국팀 선수들은 독일에 비해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끝까지 열심히 싸웠습니다. 비록 점수차는 컸지만 실제 경기 내용은 크게 밀리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수비력을 보완한다면 독일도 머지않아 능가할 것 같았습니다.

울면서 글을 올린다는 별빛나그네님이 한국 여자팀이 있어 행복했고 그녀들이 자랑스럽다고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반성문일지도 모릅니다. 독일은 무려 105만명의 여자축구선수가 등록돼 있는 반면 한국은 여자축구선수가 고작 1404명에 불과합니다. 독일 여자축구선수들과 비교해 겨우 0.004%의 선수로 대적한 셈입니다. 

화려한 기술과 골결정력, 지소연의 플레이는 메시 보다 오히려 더 빛났다

그 마저도 지금은 줄어들어 전국 축구대회를 열기도 힘든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등을 모두 합쳐서 56개팀 밖에 안됩니다. 수천개의 팀이 있는 독일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그런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한국 여자축구팀은 4강이란 기적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아직 20세 이하로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앞으로 성인 축구무대에서 월드컵 영광을 이어갈 수 있어 희망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다만 여자축구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지원과 국민들의 성원이 이어져야 겠습니다.


지소연과 여자축구 선수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지소연이 지메시라고 불리지만 메시 보다 오히려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메시가 볼을 잡으면 몇 명의 수비수가 달려들 듯이 지소연과 공을 잡으면 떡대좋은 수비수 여러명이 에워쌓았습니다. 메시는 거의 골을 못넣었지만 지소연은 스스로 골도 넣고 공간도 확보하며 다른 선수들에게 골 찬스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소연은 이번 대회 한 경기 헤트트릭을 비롯해 무려 7골을 기록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남자 선수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홍명보 장학생 지소연과 여자축구, 무관심과 냉대 속에 아름답게 꽃피다

                     "눈물을 거둬, 지소연. 잘 싸웠다" 독일전 직후 지소연이 눈물을 흘렸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과거 휴대폰도 없었고 지금도 컴퓨터가 없다는 지소연. 그런 지소연의 최근 소식을 듣고 삼성전자는 영악하게도 지소연 어머니에게 노트북과 갤럭시S 스마트폰을 몰래 보냈다고 합니다. 대기업에 지원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지소연이 뜨니까 홍보성 차원에서 보내는 것 같아 한편으로 씁쓸합니다. 지소연이 소속된 한양여대 총장도 노트북을 준비해 성대한 환영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역시 개운치 않습니다.

평소 지소연과 여자축구 선수들에 대해 관심과 지원을 더 많이 했다면 더 좋았겠지요. 지소연은 홍명보 장학생 출신이기도 합니다. 홍명보는 여러 여자선수들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축구를 하기 때문에 도움을 줄 선수들이 많은데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 장학금을 모두 줄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이제는 국민의 관심이 증대된 만큼 예전 보다 좋은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대회 지소연은 FIFA 홈페이지에서도 '조별리그에서 최고로 빛난 별'(tournament's brightest stars)이라고 칭찬을 할 정도로 눈에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골든골 후보에도 올랐지만 9골을 기록 중인 독일 포프에게 밀리겠지만 유감없이 기량을 발휘한 지소연도 최고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지소연을 비롯한 여자축구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비록 독일에 졌지만 0.004%의 기적을 일군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한편 미안하면서도 더 밝은 희망을 향해 큰 박수를 보냅니다.

[지소연 골모음 동영상 : 출처 아이러브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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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구촌을 열광시킨 2010 남아공 월드컵은 스페인을 사상 80년만에 처음으로 우승의 영광을 남기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새벽 잠을 설치며 감동의 순간을 보기 위해 노력도 이제는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 갑니다.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은 차음으로 감동적 장면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페인을 첫 우승으로 이끈 이끈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의 눈물과 열정 키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올해 29세로 명문팀인 레알 마드리드 소속인 카시야스는 그야말로 거미손이었습니다. 스페인이 우승하기 까지 단 2골만 내주며 완벽하게 스페인 골문을 지켰습니다. 점쟁이 문어가 숨은 MVP이면 카시야스는 진정한 MVP인 것입니다.

결국 카시야스는 남아공월드컵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야심상 수상자가 선정됐습니다. 눈부신 카시야스의 선방과 활약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여기서 '야신상'은 1990년 사망한 구 소련(현 러시아) 골키퍼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을 기리고자 FIFA(피파)가 1994년 미국월드컵 때부터 제정하면서 수여한 상으로, 수상자는 FIFA 기술연구그룹이 실점률, 슈팅 방어 횟수, 페널티킥 허용률 등을 종합 평가를 통해 결정됩니다.

첫 경기 스위스전 실수로 1대 0 패배, 리포터와 함께 맹비난 받아


저는 카시야스가 골키퍼로서 훌륭한 성과를 보인 것 보다는 승리를 향한 열정과 인간적 매력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카시야스는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1대 0으로 패하며 심각한 자책감이 시달렸습니다. 자국 언론은 리포터에 눈길을 주다가 제대로 골을 막지 못하고 실점을 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월드컵 시작부터 고통스런 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스페인 우승이 확정되자 감격의 눈물 흘리는 카시야스

게다가 카시야스는 스페인팀의 주장이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패배했다는 자책감은 박주영이 자살골(자책골)을 내주고 비난을 받아야 했던 상황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첫 경기의 아픔을 극복하고 카시야스는 이를 악물고 스페인 골대를 굳게 지켰습니다. 스페인 캡틴 카시야스는 마치 한국팀 주장 박지성의 열정만큼 강한 승부욕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오직 우승을 향한 집념만이 그의 모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스페인은 네덜란드를 연장전 끝에 1대 0으로 아슬아슬하게 눌렀습니다. 카시야스는 골문을 굳게 봉쇄했고 승리가 확정되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자의 눈물이 가슴을 적셨습니다. 정대세의 눈물이 남북분단의 근현대사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했던 재일동포 3세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듯이 카시야스이 눈물은 감격과 환희의 또 다른 눈물이었습니다. 박주영이 자책골의 고통을 날려버린 그림같은 프리킥 슛에 의한 골인 후 머리를 감싸며 감격했던 장면과 닮아 있기도 합니다.

우승 확정 후 감격의 눈물, 캡틴 카시야스 3전 4기 월드컵 도전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장으로서 첫 경기부터 골을 허용하고 비난을 모조리 감수해야 했던 고통이 어떠했을까? 더욱이 여자친구이자 애인인 스페인 방송사 텔레친코의 리포터 사라 카르보네로가 자신으로 인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는 상황에서 카시야스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카시야스는 보란듯이 스페인 골문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우승이란 축배를 들 수 있었습니다.

                             카시야스는 인터뷰 도중 여친 리포터에게 열정적 키스를 했다

카시야스의 눈물은 스페인 국민들이 느낀 감동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진정한 남자의 눈물은 이심전심으로 지구촌 사람들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우승이 확정된 후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는 카시야스는 피파 우승컵을 안고 또 한 번의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조국 스페인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여친 사라 카르보네로를 위해 카시야스는 남자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그것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월드컵 우승 소감 인터뷰 도중 리포터와 열정적 키스로 해피엔딩 끝내 

그리고 사라 카르보네로와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애인 카시야스를 만나기 위해 카르보네로는 방송 리포터로서 남아공 월드컵 현장에 달려왔습니다. 월드컵에는 가족도 올 수 없었던 터라 카르보네로의 남아공행은 어쩌면 카시야스의 가족을 위해 그리고 애인 카시야스와의 사랑을 위해 결심한 선택이었습니다. 사랑의 힘이었던 셈입니다.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감정을 숨기고 카르보네로는 방송 리포터 역할을 다해야 했기에 승리 소감을 카시야스에게 질문했습니다. 카시야스는 가족들에게 우승을 감동을 전하다가 갑자기 돌발 키스를 여친 카르보네로에게 열정적으로 퍼부었습니다. 그 동안 카시야스는 카르보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으로 인해 첫 경기 패배와 더불어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카르보네로에게 키스는 우승 이상의 커다란 선물이었던 셈입니다.

인터뷰 도중 카시야스는 잠시 코를 만지며 머뭇거리다가 돌발 키스를 여친 카르보네로에게 감행하자 카르보네로는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 이내 침착하게 남자의 마음에 감동한 듯 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카시야스와 카르보네로의 기습적 열정 키스에 박수를 치며 환호성으로 화답했습니다. 열정의 나라 스페인답게 카시야스는 열정적인 키스란 무엇인지 전세계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조국 스페인을 향한 애국심과 여친을 위한 사랑 '우승컵을 높이 들다'


사실 카시야스는 골키퍼로서 최고의 월드컵이었습니다. 카시야스는 예선전 2골을 내주었지만 
16강전부터 결승전까지 결승 토너먼트 4경기에서는 단 1골도 실점하지 않았습니다. 카시야스의 활약으로 스페인은 4경기 연속 1-0 승리 행진을 이어가며 결국 스페인 축구 사상 최초의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카시야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습니다. 카시야스는 이번 월드컵 기간은 지옥에서 천당을 오가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카시야스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수문장으로 참가한 적이 있어 우리나라 월드컵팀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한국팀과의 8강전에서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최종 승부를 다퉜지만 카시야스는 홍명보의 마지막 골이 들어가며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당시 21살의 카시야스는 월드컵 첫 출전에서 우리나라 팀에 통한의 패배를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다시 출전한 카시야스는 16강 탈락이라는 또 한번 쓴 잔을 맛봐야 했습니다. 결국 와신상담 3전 4기 월드컵 도전기였던 남아공 월드컵은 카시야스에게 해피엔딩으로 드라마틱한 우승을 안겨준 것입니다.

그러나 카시야스이 이 같은 고난의 길은 월드컵 세번째 출전 만에 스페인 우승과 더불어 야신상까지 수상하며 한풀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시야스는 스페인 우승에 누구보다 눈물의 감격을 느낄 수 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리포터로 남아공행을 감행한 여친 카르보네로에게 열정의 키스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카시야스는 스페인 우승은 물론 여친에게 최고의 선물로 보답한 셈입니다. 카시야스의 눈물과 키스가 감동적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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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영원한 리베로, 홍반장 홍명보가 돌아왔습니다.

홍명보는 20살 이하 U-20의 한국 청소년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옵니다. 지난 2007년 7월경 베어백 감독이 사임하자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을 물망에 오르던 홍명보 코치는 결국 감독이 되지 못합니다. 아마도 홍명보는 그 당시 논란의 가운데서 많은 상처와 번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홍명보 코치는 작년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후 올림픽축구대표팀 코치에서도 물러나게 됩니다. 홍명보는 여러 프로축구팀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의 J리그 프로축구팀에서 감독직 제안도 받았으나 "내가 가진 것을 한국 선수들에게 전수하고 싶다"며 거절했습니다. 역시 홍명보 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홍명보는 축구의 야인 생활을 합니다. 어린이 축구교실이나 홍명보장학재단 장학금 지원 등을 하기도 합니다. 홍명보는 일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무직생활'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홍명보에게 12살인 아들 성민이가 있습니다. 홍명보는 작년에 아들과 함께 산악인 엄홍길씨와 에베레스트 탕보체로 트래킹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돌아왔습니다. 선수가 아닌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입니다.

홍명보의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은 예정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홍명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입니다. 이미 대표팀 코치를 거쳤고 국가대표팀 시절에도 후배들을 카리스마로 압도하는 주장을 여러번 했습니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도 홍명보의 위상을 잘 알고 있었고 한국 축구 스타의 감독직 선임을 위한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청소년 국가대표팀 운영과 관련 홍명보 신임 감독은 " 조직적이고 공간을 활용하는 축구, 영리하면서도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축구를 보여주고 싶다 " 고 포부를 밝혔다고 합니다. 홍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 뒤 펴낸 자서전 < 영원한 리베로 > 를 통해 " 미래 축구스타를 꿈꾸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축구를 재미있게 즐기라는 것' " 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MB(명보) 시대? 홍명보가 싫어할까?

공교롭게도 홍명보의 영문 이니셜은 MB입니다. MB정부와 굳이 관련을 짓기는 어렵습니다. 우스개로 우리나라 축구계에 MB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홍명보 본인은 싫어할지 모르겠습니다.

홍명보는 이미 준비된 국가대표 감독인 것 같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한국 축구의 큰 자산인 홍명보 감독을 꾸준히 관리하며 키워왔다고 합니다. 정몽준 전임 축구협회 회장 때부터 협회 이사로 발탁돼 행정가의 길을 들어선 홍 감독은 아드보카트 감독 시절 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올림픽팀 코치를 거치며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홍명보의 카리스마, 독일 지단과의 악수]


따라서, 이번 U-20 국가대표축구팀 감독으로 선임된 것도 앞으로 우리나라 국가대표 감독으로 큰 일을 위한 준비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국개대표 청소년축구팀을 넘어 향후 성인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을 맡게 될 준비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현재 간판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지만 나중에는 홍명보가 될 가능성이 준비되고 있는 셈입니다.


홍명보로 인해 월드컵 4강 신화 한국 축구가 다시 부활할까?

홍명보는 그 자체로 한국 축구의 역사입니다. 국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스타입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더 높아질 것입니다. 사실 1983 멕시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신화를 이룬 사례를 제외하면 U-20 대표팀은 팬들의 큰 관심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감독 자리에 홍명보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겠지만 이제 홍 감독이 이겨내고 진면목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축국 선수 시절과 감독의 자리는 크게 다릅니다. 더욱 냉정한 평가가 감독직에는 있을 수 있습니다. 올해 9월에 예정된 이집트 청소년월드컵이 '홍명보호'에 대한 첫 시험대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감독직을 수행한다면 홍명보는 2012년 예정된 런던올림픽 감독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월드컵 4강 신화를 다시 한번 기대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홍명보는 이제 국가대표팀 감독도 영원한 리베로입니다. 아니 영원한 캡틴입니다. 홍명보 감독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홍명보가 돌아온 것은 그의 가슴에는 늘 조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홍명보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 프로필
①생년월일=1969년 2월12일
②출신교=동북고-고려대
③선수경력=92~96년(포항), 97~98년(일본 벨마레), 99~2001년(일본 가시와), 2002년(포항), 2003~2004년(미국 LA갤럭시)

④지도자 경력=2006년 독일월드컵 대표팀 코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코치
⑤주요성적=월드컵 4회 참가(90~2002년), A매치 통산 135경기 출전(9득점), 세계올스타 선정(94, 95, 97년), 2002년 한·일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 2002 FIFA 선정 월드컵 올스타, 2004 FIFA 선정 세계 100대 축구스타, K리그 MVP(92년), J리그 베스트11(2000년), 대한축구협회 이사(2009년), 한국청소년축구대표팀 감독(2009. 2.~) 

[수상경력]

1992 Ι K리그 최우수선수(MVP), 베스트11 수비수 부문 선정

1994 Ι K리그 베스트11 수비수 부문 선정

1994 Ι AFC베스트 수비수

1994 Ι 세계올스타 선발 한국대표

1995 Ι K리그 베스트11 수비 부문 선정

1995 Ι 세계올스타 선발 한국대표

1996 Ι K리그 베스트11 미드필더 부문선정

1996 Ι K리그 인기상

1997 Ι 세계올스타 선발 한국대표

1998 Ι 세계올스타 선발 한국대표

1999 Ι 센츄리 클럽 등록

2002 Ι FIFA선수분과위원회 위원

1990 - 1994 - 1998 -2002 4회 연속 월드컵 출장

2002    월드컵 브론즈슈 수상

2004-펠레가선정한 위대한100인의축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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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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