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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3 물난리에 추석 차례상 포기, 백부의 눈물...서민들 명절 앗아간 정부의 늑장대응 by 진리 탐구 탐진강 (52)


"그냥 니가 추석 차례상 차려라. 어제 집안에 갑자기 들어온 물 치우느라 몸이 아파서 도저히 안되겠다. 새벽에 일어나 가보려고 했지만 힘들겠구나."

큰아버지의 전화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습니다. 추석 날 아침에 날아온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자동차나 택시로 모셔 드리겠다고 했지만 큰아버지는 움직일 힘조차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아침에 큰아버지가 도착하면 차례상을 차릴 예정이던 집안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추석 하루 전 날 미리 와서 추석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준비를 함께 했던 큰어머니의 얼굴 표정이 더욱 쓸쓸해 보였습니다. 몇 해 전부터 저희 집에서 명절 차례상이나 조상들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큰어머니가 연세가 들면서 다리마저 불편한 상황에서, 제가 모시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 내외는 자식이 없어 제가 본의아니게 장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이신데 제가 큰 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올해 추석 명절은 추석 날 아침부터 기분이 다운된 상태에서 차례상을 차려야 했습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큰아버지 걱정만 할 수는 없어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차례를 지냈습니다. 나중에 걱정이 되어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큰아버지는 감기 기운이 있는 상태에서 갑작스런 물난리가 겹쳐 심한 몸살이 난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가 물난리를 당한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추석 전 날인 21일 오후 집에 있는데 갑자기 집안에 물이 들어왔습니다. 큰아버지 집은 반지하에 위치해 있지만 그 동안 이런 물난리는 없었습니다. 처음 겪은 상황에 당황해 혼자서 집안에 흘러들어오는 물을 치웠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다행히 같은 건물에 집주인이 있어 급히 집주인이 달려왔습니다.


집주인은 마음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연로한 큰아버지를 도와 함께 열심히 물을 치웠습니다. 그러다 집주인은 동사무소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연락했습니다. 그러나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공무원이 무슨 죄가 있으랴만은 서민들은 집중호우와 물난리로 생고생을 하는데 비상재해대책도 없고 전화조차 받지않는 상황이라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컸습니다. 더욱이 기상청은 일기예보도 늦게 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 기상청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큰아버지와 집주인은 빗줄기가 줄어든 이후까지 무려 5~6시간을 집안의 물을 퍼내느라 고생해야 했습니다.

큰아버지가 연세도 많은데 무리하게 일을 했으니 심한 몸살로 몸져누울 만도 했습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간 큰어머니에게 물어보니 그마나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안방이나 거실에는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이 안방 뒷쪽에 있는 쪽방으로 들어왔는데 그 곳에서 일차로 물을 막아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곳은 주로 창고로 사용하는 장소라서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겠네요. (참고로 백부, 즉 큰아버지는 과거 사업에 실패하며 어렵게 반지하에 살게 됐습니다.)

콘크리트 인공하천인 청계천 홍수와 범람으로 청와대 앞 광화문이 물바다가 됐다

그래도 큰아버지는 다행이라지만 심각한 물난리를 겪은 지역도 많았습니다. 청계천이 홍수로 물이 넘치면서 광화문 일대와 세종문화회관 교보문고 등 주변 건물이 일부 침수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청계천은 콘크리트 인공하천이라 물고기도 살 수 없고 집중호우에도 항상 위험합니다. 서울에서 가장 심한 물난리를 당한 곳은 양천구 신월동이었습니다. 그 곳의 상황을 보도한 일부 내용만 봐도 생지옥이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잠깐 그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동사무소에 9번이나 전화했지만 아무도 안 왔어요. 남편은 암 투병 중이고 두 딸밖에 없었어요. 물을 뺀다고 환자가 비를 많이 맞아 참 걱정이에요. 남편은 약을 먹고 누웠어요. 이사도 못해요. 애들 아빠가 몸이라도 성하면..."

"물이 들어올 때마다 동사무소에, 구청에 얘기했지만 아무도 안 도와줬어요. 나라에서는 아무 것도. 주인집하고 옆집 사람들이 도와줬죠. 물을 퍼내는 것도 옆집에 있는 펌프를 빌려 썼어요."

"고향에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다시 올라왔어요. 집에 물이 차고 있다는데 안 올 수가 없죠. (가재도구가) 하나도 안 빼놓고 다 젖었어요. 고향에 다시 내려가진 못할 것 같네요. 올해 추석은 이걸로 끝입니다."
 

[참고]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물난리 현장인 서울 신월동 르뽀 내용 중 인용

가난한 서민들에게 이번 추석 명절은 최악이었던 것입니다. 남편이 암 투병 환자인 상황에서 물난리를 당한 신월동 주민 박 모씨 사례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동사무소에 9번이나 전화해도 아무도 오지않아 발만 동동 굴러야 했을 터. 겨우 주인집과 이웃집 주민들의 도움으로 겨우 집안에 밀어닥친 물을 치울 수 있었습니다. 추석을 맞이해 모처럼 고향을 찾아 도착한지 두 시간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물이 찬 집을 치우며 눈물흘려야 했을 서민들. 서민들의 이번 추석은 불행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물난리가 발생한 서울에 공무원 비상 동원령이 내려진 것은 그 날 저녁 7시라고 합니다. 이미 서울은 그 날 오전부터 청둥 벼락과 함께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고 기상청이 호우주의보를 내린 것은 오후 1시 30분 이후였습니다. 기상청도 늑장대응에다가 서울시도 늑장대응이었습니다.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피해를 고스란히 당한 것은 불쌍한 서민들이었습니다. 


이번 추석 전 날 집중호우 때문에 신월동 화곡동을 비롯 침수 피해를 당한 이재민만도 1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겨우 잠자리가 가능한 피해자들도 가구도 하나 꺼내 놓지 못하고 겨우 방 안에 고인 물만 빼내 신문지로 바닥을 말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냥 이렇게 물이 마르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더 고통스런 이재민들입니다. 이들 이재민들은 양수기가 없어 물통으로 밤늦게까지 물을 퍼내고, 잠은 가까운 초등학교 강당에서 자야 했습니다. 이번 서울 물난리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대책없는 정부의 인재입니다.

이 날 아침에 이명박 대통령은 KBS 아침마당 프로에 나와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했습니다. 좀 황당하지요. 그러나 그 때 아침부터 인천을 비롯 서울 및 수도권에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시각입니다. 미리 녹화한 추석특집 아침마당이었겠지만 대통령이 친서민을 내세우며 눈물로 쇼를 할 것이 아니라 진정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세워 실행해야 합니다. 환경파괴하고 일부 땅부자를 위한 4대강 사업에 22조원이란 천문학적인 국민세금을 혈세로 낭비할 것이 아니라 서민복지나 일자리 창출에 사용해야 합니다. 재래시장에서 오뎅먹으며 사진찍거나 말로만 친서민쇼하지말고 진정 국민들이 원하는 일을 했으면 합니다.

큰아버지는 명절 차례상만은 반드시 챙겼던 분입니다. 그런데 올해 추석 차례상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있어 가장 큰 어른이신 큰아버지가 가난한 삶에도 그래도 정신적 지주로서 책임감을 갖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물난리를 당하며 남몰래 눈물흘려야 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이러한 물난리는 바로 자신과 이웃들의 일입니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입니다.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미입니까?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돌아보는 추석 명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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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