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6.20 유재석 유디트 명화 팜므파탈, 잔혹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
  2. 2009.08.22 제시카고메즈 화보 vs 미야자와리에 누드 닮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0)


무한도전 멤버들이 예능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았습니다. 우리가 명화나 명품 조각상을 보면 한번쯤 똑같은 포즈를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무한도전 7명의 멤버들의 독특한 캐릭터를 살려 일곱 색깔 무지개와 같은 각자의 예술적 감각을 그대로 표현해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일종의 명화 패러디 화보였습니다. 무한도전 3월 달력의 컨셉트는 레인보우(무지개)에 맞추어 멤버들이 고른 7가지 색깔의 명화를 각자 캐릭터를 살려 화보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3월 달력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패션지 보그코리아 7월호 화보 촬영을 통해 패션모델로 나선 것이기도 했습니다.

빨간색을 선택한 노홍철은 마네가 그린 빨간 바지를 입은 '피리 부는 소년', 주황색을 고른 정준하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노란색의 유재석은 클림트의 명화 '유디트(Judith)', 초록색 정형돈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파란색의 하하는 모델 송경아와 함께 샤갈의 '브라이덜 커플'(The bridal couple), 남색의 길은 마그리트의 '겨울비'(Golconde)에 등장하는 중절모의 신사, 보라색의 박명수는 뭉크의 '절규'를 고난이도 표정연기로 도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한도전 멤버들은 모델 장윤주와 함께 함께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여신' 화보를 패러디했습니다.

박명수의 절규, 상황극의 대가답게 고난도 표정연기 '압권'

                            박명수의 '절규'와 뭉크의 명화 '절규. 비슷한 분위기 느낌이다.

사실 명화의 장면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이 상상한 만큼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7명의 멤버들은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아 두 번 꼴찌가 되면 무한도전 달력 촬영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혼신의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우선 박명수가 절규의 명화를 거의 100% 씽크로율 느낌으로 보여준 것이 재미를 주었습니다. 무한도전 달력에서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는 박명수는 역시 상황극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컨셉에 맞게 표현하는 연기는 단연 돋보였습니다.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던 터프가이 촬영에서도 박명수는 예상을 깨고 멋진 모습을 연출해 내 천상 연기자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유재석, 바른생활에서 팜므파탈 여인으로 변신 '놀라워'


무엇보다 지난 주 무한도전 달력 2월호 촬영에서 바른생활 이미지를 그대로 선보여 충격적인 꼴찌를 한 유재석의 변신은 가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유재석은 유디트의 팜므파탈적 여인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프로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른생활 사나이의 이미지를 벗고 유디트의 몽환적 분위기를 표현해 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지만 사진 전문가도 칭찬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유디트 명화의 모티브가 어떤 것일까요? 유디트는 1901년 구스타프 클림트가 캔버스에 그린 유화 그림입니다. 클림트의 명화로는 '키스'도 유명하지만 유디트는 표현하기 힘든 성경 속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클림트의 '유디트'는 어떤 명화일까?

유디트는 경외 성서인 '유디트서'의 여주인공으로 앗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을 유린할 때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2세기, 앗시리아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연전연승을 거두며 수도 예루살렘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앗시리아군이 예루살렘으로의 진격 전야에 젊고 아름다운 과부 유디트는 침략자의 수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만취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가 잠든 사이 그의 칼로 목을 베어 죽인 후 그의 목을 들고 빠져나와 그 목을 이스라엘군의 성벽에 내걸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이 광경을 본 앗시리아 군대는 지리멸렬 퇴각하였고, 이스라엘을 구한 유디트의 용기는 오래 칭송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천주교의 구약성서 73권에는 포함돼 있지만, 마틴 루터가 삭제하는 바람에 개신교 구약성서(66권)에선 빠져 있다고 합니다. 

여기 작품에서는 1899년,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가 성경의 인물 '유디트'를 위해 모델로 나섰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초상화가 아니지만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통해 아델리임을 확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목걸이는 부유한 제당회사 사장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가 아내에게 선물 한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유디트 작품을 보면, 유디트의 손은 처참히 잘려버린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에 살며시 놓여져 있고 밑을 바라보며 졸린듯 살짝 감긴 눈과 약간 벌어진 입술은 그녀를 감싸고 있는 에로틱한 향기를 더욱 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보티첼리, 도나텔로, 티치아노, 카라바조, 젠틸레스키, 루벤스 등 수많은 화가들이 유디트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그러나 클림트의 유디트 만큼 독창성이 뛰어난 명작은 없었습니다. 클림트는 그녀의 애국심은 제외시키고 관능만 남아있는 유디트를 묘사했던 것입니다.

특히나 쾌락의 절정에서 눈이 풀리고 입이 살짝 벌어진 것을 보면 황홀한듯 관능적인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배경의 화려한 색채와 더불어 팜므파탈적인 매혹적이며 야릇한 분위기마저 더해 오묘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한 대의 앞에 자기 희생을 감수한 고결함이나 성스러움과는 달리 여인의 강렬한 관능적 자태가 클림트의 유디트를 특별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요.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그 강렬함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유디트 이야기의 특성상 잘려진 적장의 목이 어김없이 등장해 감상하기 편안한 주제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태생적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클림트는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홀로페르네스의 목은 화려한 배경 속에서 살짝 비껴가 있어 눈에 잘 띄지 않게 배치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같은 주제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패션 화보나 그림엽서에도 부담없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클림트의 유디트는 신념에 찬 여인이 아니라 오히려 선정적이고 음탕하다는 느낌마저 줍니다. 미술평론가들이 클림트가 에로티시즘을 통해 새로운 인식의 장을 열었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인 듯 합니다. 어쩌면 클림트의 유디트는 오랜 동안 구국의 여인이라는 인식으로부터의 해방에 황홀함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림 상단에 돋아있는 글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참고로 17세기, 이탈리아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가 그린 유디트는 매우 적나라한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서에 나온 이야기를 자신이 실제 당한 강간에 대한 분노를 투영해 만든 작품인데 매우 공포스럽고 괴기스럽기까지 합니다. 심약한 분들이 보기엔 무서운 작품이라 더 보기로 처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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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이 유디트를 촬영하는 장면만 보면 하나의 예술을 예능으로 재미있게 소화한 것으로 지나칠 수 있지만 실제 명화 유디트 이야기에는 잔혹한 역사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단지 팜므파탈적 여인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전쟁의 잔인함과 파괴된 인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셈입니다. 신성한 구약성서 이야기가 마틴루터의 개신교 성서에서 삭제된 것은 구국의 여인을 바라보는 후세들의 시선이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성서 이야기를 에로티시즘으로 승화시킨 클림트의 작품이 예술로 인정받는 다양성이 유럽 문화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조심스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한편으로, 무한도전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명화의 세계에서도 예술을 예능으로 발전시키는 창의성과 독창적 아이디어가 빛난다 하겠습니다. 하하가 애인과의 결별의 외로움을 승화시킨 샤갈의 '브라이덜 커플' 명화 패러디나, 노홍철이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을 천진난만한 소년의 이미지로 재해석한 모습도 무한도전만의 예술적 예능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예술적 예능 버라이터로 승화시킨 무한도전 빛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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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은 어쩌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아닐까요. 예능이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가위질당하는 현실, 그리고 정권의 눈 밖에 나면 밥줄이 끊기는 개그맨의 삶은 자유로운 예술혼에 대한 끊임없는 예술가들의 역사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이 여타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레전드가 된 것은 바로 구태의연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예술가와 같은 창의성과 아이디어에 있다 하겠습니다. 비록 잔혹한 현실을 팜프파탈로 승화시킨 클림트의 명화처럼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권위주의 세상을 비틀어 웃음과 감동으로 승화시킨 무한도전인 셈입니다. 유재석의 유디트는 바로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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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우연히 실시간 검색어를 보니 제시카고메즈 화보가 1위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제시카고메즈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국내 TV 프로그램이나 광고에도 나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동안 발견하지 못한 이름이었습니다. TV 프로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라서 못본 듯 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 살펴봤습니다. 얼핏 이름만 들었을 때는 완전히 남미쪽 미인이 아닐까 상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찾아본 제시카 고메즈의 사진은 동양적인 분위기와 서양의 육감적인 매력을 동시에 지닌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동서양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함께 갖고 있어 관심을 더 받는 듯 합니다. 

그런데, 제시카니즘이란 화보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제시카 고메즈를 보면서 지난 1980년대 당시 인기를 구가하던 미야자와 리에가 생각이 났습니다. 미야자와 리에는 당시 파격적인 누드 화보집으로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섹시 아이콘이었습니다. 미야자와 리에는 동양적인 청순한 마스크였지만 한편으로 이국적인 신비감이 감도는 분위기와 몸매로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며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미야자와 리에를 잘 모르겠지만 1980년대 인기는 제시카 고메즈의 요즘 인기에 비해 훨씬 높았던 것 같습니다.

제시카 고메즈와 미야자와 리에. 두 사람은 시대 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다를 것만 같지만 몇가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서양 모델은 몸매가 좋아도 이질감이 들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국내 연예인 화보들이 탄생했지만 신비감이 없어 관심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시카 고메즈 화보를 보면서 찾아 본 신비감과 매력은 과거 젊디 젊은 시절에 충격적으로(?) 다가 온 미야자와 리에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접했던 놀라운 광경이라 오랜 추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추억을 더듬어가며 제시카 고메즈와 미야자와 리에의 닮은 점을 비교해 살펴보겠습니다.


출생의 비밀에서 탄생한 동서양의 매력이 닮았다

제시카 고메즈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어머니와 포르투갈 아버지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호주 출신 모델입니다. 출생년도가 1985년생인 만큼 나이가 만 24세인 셈입니다. 중국계 싱가포르인 어머니 영향으로 까만 머리와 동양적 얼굴의 윤곽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177 센티미터의 큰 키와 긴 다리와 더불어 볼륨있는 몸매를 지니고 있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찬란한 유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시카 고메즈는 빼어난 미모를 기반으로 10대 초반에 모델로 데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모델계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제시카 고메즈는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모델 활동을 하면서도 한국인 또는 한국계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구적인 이질감 보다는 동북아 아시아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 나타나는 제시카 고메즈의 분위기일 듯 합니다. 이 같은 제시카 고메즈의 출생의 비밀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근감의 요소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미야자와 리에도 혼혈입니다.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야자와 리에는 어려서부터 출중한 외모를 바탕으로 11세의 어린 나이에 모델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5년 묘죠(明星)식품의 라멘 CM으로 데뷔합니다. 미야자와 리에가 본격 모델로 등장한 시기에 제시카 고메즈는 출생한 셈입니다.

미야자와 리에의 몸매는 1980년대 당시에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실 동양에서 당시 미야자와 리에와 같이 신비감을 지닌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미야자와 리에는 '신이 내린 몸매'의 원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미야자와 리에는 가장 아름다운 몸매의 시기에 누드를 찍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10대의 나이에 누드 화보를 찍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신이 내린 몸매를 누드와 화보에 담았다

제시카 고메즈가 우리나라에서 관심을 받는 것은 결국 타고난 얼굴과 몸매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스타가 화보를 찍었다고 해도 특별한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그 만큼 식상해졌다는 반증입니다. 고만고만한 몸매에서는 큰 관심을 받기가 힘든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 연예 스타도 아니고 외국 모델이라면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시카 고메즈는 '신이 축복한 몸매'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한국 무대에 섰습니다.

동양적 신비감을 가진 얼굴과 양 갈래 긴 머리, 그리고 쭉쭉 빠진 롱다리와 볼륨감있는 가슴 등을 자랑하는 제시카 고메즈의 몸매는 화보를 통해 순식간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시카 고메즈의 활동도 몸매를 바탕으로 한 CF 모델이나 TV 출연 등에서 점차 활동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제시카 고메즈 얼굴(좌)과 미야자와 리에 얼굴 사진

미야자와 리에는 파격적이고 획기적이었습니다. 제시카 고메즈가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게 크게 알려졌다면, 미야자와 리에는 순전히 누드 화보집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원조 누드인 셈입니다. 1980년대 당시는 인터넷이 거의 발달되기 이전이었기에 직접 누드 화보집 책을 구입해야 볼 수 있었습니다.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그 비싼 책을 사기 위해 친구들끼리 용돈을 모으고 구입한 책을 돌려보는 것이 당연시 되기도 했던 시절입니다.

미야자와 리에는 청순한 미소녀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런 미야자와 리에가 누드사진집 <산타페>를 찍은 것입니다. 미국의 도시 산타페에서 촬영된 이 사진 화보집은 1991년 발매 당시 숱한 화제를 뿌렸습니다. 청순한 이미지를 지닌 아이돌 톱스타가 헤어누드에 도전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뉴스메이커였습니다. 일본에서만 150만부 이상이 판매됐고 우리나라 및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판매가 되었습니다. 이는 연대 연예인 사진집 중에서 최고의 기록 중 하나입니다.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사진집은 단순히 음탕한 노출이 아닌 예술적으로 승화된 사진과 몸매의 미학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시노야마 키신이란 유명 작가의 공도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요기감이 아닌 대중 스타로서의 진출 성공이 관건이다

미야자와 리에는 너무 빠른 시기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녀는 1987년 미쯔이의 리하우스CM에서 초대 '리하우스걸' 시라토리 레이코로 출연해 빅히트치면서 어린 나이에 일약 톱모델로 떠오릅니다. 이후 산타페의 성공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수많은 CF에 이르기까지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미소녀가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하며 방황의 시기도 거쳤습니다. 

미야자와 리에는 1992년 만 19세의 나이에 역시 어린 나이인 만 20세의 스모 선수 타카노하나 코우지와 약혼을 발표합니다. 타카노하나는 당시 일본 스모의 인기 스타였습니다. 일본 스모의 최고 영예인 요코즈나에 오를 정도였습니다. 연예계 최고 스타와 스포츠계 최고 스타의 약혼은 엄청난 이슈였습니다. 그러나 약혼 발표 2달 만에 파혼을 하면서 미야자와 리에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결솔한 약혼과 파혼은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미야자와 리에는 각종 염문설과 방황을 거쳐 이후 재기해 인기를 끌면서 일본 여배우의 대명사로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예전의 그 인기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말입니다. 


제시카 고메즈는 세계적 모델이었다고 하지만 한국 무대에서는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테이의 뮤직비디오, 이민호와의 CF 촬영 등 연예계의 핫이슈로 활동 중입니다. 해외에서는 유명 란제리 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을 비롯해 리바이스 모토로라 등 유명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활동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유명 매거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드'의 '2008 스윔수트 이슈(Swimsuit issue)' 에도 모델로 출연해 1등을 수상한 바 있고 뉴욕의 핫패션 피플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LG전자 비키니폰의 광고 모델로 S라인 몸매를 과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고 카스 맥주, 현대 소나타 트랜스폼 등 광고에도 등장해 보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제시카 고메즈가 한국 남성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여름 비키니폰 광고에서 그녀는 비키니를 입고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었습니다. 이 광고 한편으로 제시카 고메즈는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비키니녀로 강하게 각인되었던 것입니다. 외국인 모델에 인색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리매김한 경우라는 특이한 일입니다.

신비한 매력과 착한 몸매를 진정한 실력으로 승화해야

제시카 고메즈가 가진 묘한 매력이 우리나라에서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셈입니다. 이민호가 “언어가 좀 안 통했어요. 근데 좀 묘하게 섹시하고 착해 보이는 이미지였어요”라고 제시카 고메즈를 평가했습니다. 이는 제시카 고메즈가 갖고 있는 매력적인 몸매의 섹시함과 순수한 미소의 착한 이미지가 어느정도 우리나라에서 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다지 민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주는 미덕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제시카 고메즈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단순히 신비한 얼굴과 섹시한 몸매 만으로 소위 제시카니즘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시카 고메즈는 불가사의한 자신의 매력을 실제 TV 예능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 등 대중적 프로그램에서 실력으로 증명해 보여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얼굴과 몸매로 승부하는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얼마 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를 비롯한 TV 예능 프로에 출연한 제시카 고메즈에 대해 찬사보다는 비판이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굵어보이는 허벅지와 허리 라인의 실체를 보며 다소 과장된 몸매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는 제시카 고메즈와 기획사가 그러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장점을 승화시켜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과제로 남았습니다.

1980년대 폭풍같은 매력으로 다가온 미야자와 리에는 이제 점차 사라져 갑니다. 그 여운만이 당시의 젊은 시절의 영혼들에게 추억을 간직하게 합니다. 그러나 제시카 고메즈는 아직 가능성이 많습니다. 제시카 고메즈의 섹시한 매력이 민망하지 않고 순수한 미소가 착하게 비추어지고 아름다운 천연의 몸매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외면적인 매력을 내면적인 실력으로 치열한 연예 무대에서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의 노력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약 20년전 미야자와 리에를 추억하게 만든 제시카 고메즈는 역시 동서양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녔기에 그 때를 반추하며 몇자 적어 봤습니다. 

[사진은 LG전자 비키니폰 광고 및 SI닷컴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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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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