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4.04 무한도전 폐지설, 황당하지만 불안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41)
  2. 2009.01.20 회사는 왜 무능한 상사들을 그대로 방치할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무심코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무한도전 폐지설에 게시판이 시끌시끌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기사가 뜨나 싶어 무한도전 게시판에 들어가 봤습니다. 정말로 게시판에는 무한도전 폐지설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소문이 나돌았을까?

그것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권고조치를 받은 것이 근원지인 것 같았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는 지난 2월 13일 방송된 무한도전 신년특집 F1 카레이서편 내용 중에서 "야! 너 미친 놈 아니냐?" "다음 MT 때는 내가 똥을 싸겠다" 등 표현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와 51조(방송언어)를 위반했다며 권고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방통심의위가 무한도전 F1특집이 방송된지 거의 2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뒤늦게 권고조치를 내렸는지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또한 유독 무한도전에만 쌍심지를 켜고 꼬투리 잡기에 여념이 없는지 방통심의위의 모습이 황당합니다. 최근 몇년간 방송을 살펴보면 불륜 폭력 패륜 살인 등을 주제로 한 막장드라마가 넘쳐나고 있지만 방통심의위는 관대한 편이었습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견지해야 할 방통심의위가 이중잣대와 흑백논리로 무한도전에만 무리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입니다.

왜 두 달이나 지난 방송분을 문제 삼았나?
 

사실 방송통신심의위가 무한도전에 대한 무한한 애정행각(?)은 이번 뿐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집요하게 전개되어 온 일입니다. 틈만 나면 정권의 이중대로 불리는 극우보수단체는 예능프로그림인 무한도전에 좌파 색깔공세를 펴왔습니다. 이에 방통심의위는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서 어김없이 무한도전에 징계조치를 내리곤 했습니다. 자신의 뜻에 반하면 과거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나 다름없는 좌파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드는 극우보수의 모습은 흑백TV를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합니다.

                     무한도전은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우리나라 대표적 예능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각을 마치 무자르듯이 좌우로 나누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통치는 국민들을 좌파 우파로 나눠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흑백논리 이분법에 의해 선악을 구분하는 나찌 1940년대 히틀러식 선전선동 전체주의 독재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런데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나라에 아직도 전체주의 독재의 유령이 백주대낮에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그것도 여당 대표 안상수와 같은 지도층 인물을 비롯한 기득권 인사들이나 극우보수언론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내뱉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을 분열시키고자 광분한 자들이 누구인지 명약관화해 졌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좌파 운운하면서 사람들을 이간질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원흉입니다. 정치경제 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대표적 세력입니다. 이미 전세계는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국가 단위를 넘어 글로벌 지구촌 사회로 변화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지난 1940년대 전체주의 그리고 1950년대 냉전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사는 일부 극렬 분열주의자가 한 줌 밖에 안되는 권력에 빌붙어 국민 분열책동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한도전 시청자 게시판에 폐지설을 걱정하는 방문자들이 힘내라는 격려의 글을 남기고 있다

지금도 오직 기득권 유지만을 위해 지하벙커에서 어떤 해괴한 일을 꾸밀지 모릅니다. 소위 정권의 방송장악이라는 오명을 듣고있는 MBC 사태만 해도 그야말로 악랄하고 집요했습니다. 그 동안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는 꼭두각시 김우룡은 바지사장 김재철을 내세워 MBC를 마치 점령군 행세하듯이 조직을 쑥대밭을 만들었습니다. 김우룡은 김재철을 청소부라고 부르며 큰집(?)에 불러 조인트를 깠다고 말한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김재철은 김우룡을 고발한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조용한 것을 보면 조인트 맞고 청소부 역할로 충실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능은 예능일 뿐 흑백논리 쌍심지 켜지 말자

무한도전 폐지설이 황당하지만 일말의 우려와 불안감이 드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방문진을 위시한 극우보수세력의 MBC 흔들기는 엄기영 전 사장의 하차를 포함 100분 토론 진행자 손석희 교수의 하차, 김제동의 오마이텐트 폐지, 9시뉴스 신경민 앵커의 하차 등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최근 PD수첩의 김환균PD의 하차도 광우병 쇠고기 문제 보도 이후 극우보수세력이 노골적으로 전개한 PD수첩 무력화 시도의 일환이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 최고의 원칙인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의 자유 마저 유린당한 형국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무한도전을 비롯한 예능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풍자와 해학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생활의 활력소를 느끼기 위한 것입니다. 예능오락 방송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고 그 곳에는 현실사회에 대한 비틀기와 꼬집기도 양념처럼 버무려져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독재시대에서 회장님으로 대변되는 해학과 풍자의 코미디가 유행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독재시대 보다 오히려 연예오락프로그램이 사회풍자에는 자기검열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은 시청자들과 항상 소통하며 '미안하디 미안하다'송으로 재치있는 사과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무한도전 마저도 스스로 자기검열을 할 정도입니다. 최근 무한도전 제작진은 쩌리짱, 노찌롱, 뚱보등 출연진의 캐릭터를 지칭한 별명의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도 있습니다. 김태호PD는 그 동안 무한도전의 특정 방송분이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는 경우 스스로 사과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한도전 뉴욕특집 식객편에서 유재적 박명수 정준하 등 멤버들의 여러 행동이 문제가 되자 재치있게 '미안하디 미안하다'송 패러디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감동을 주는 사과를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시청자들의 판단에 따라 유연하게 소통하는 김태호PD의 모습이 여타 예능프로그램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막장방송에 관대하고 무한도전에 가혹한 이중잣대가 문제

무한도전에만 유난히 가혹한 잣대로 제재를 가하는 방통심의위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만일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수상한 삼형제'를 비롯한 막장드라마나 1박2일을 포함한 예능프로그램의 막말이나 조작방송 행태도 똑같은 기준에서 제재를 가해야 납득이 갈 수 있습니다. '웃자고 만든 패러디에 죽자고 덤빈다'고 조롱받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김연아 회피 동영상 고발 조치를 보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조소를 보내는지 방통심의위는 곰곰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일들이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건의 경우도 침몰원인을 비롯한 소통은 없고 불통이 국민들을 더욱 경악하게 하고 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는데 한 몫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식과 원칙에 따라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춰 소통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무한도전 폐지설이 단지 해프닝이 아니라 혹시라도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을까 불안감도 엄습합니다. 지금은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우려가 기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국민들이 마음대로 웃을 수도 없는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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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우연히 경영컨설턴트인 구본형 씨가 쓴 글을 하나 읽었다. '회사는 왜 무능한 상사들을 그대로 방치할까?'라는 주제이다. 글의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어서 더욱 관심을 갖고 읽게 됐다. 구본형 씨가 쓴 <구본형의 더 보스, 쿨한 행동>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실 나도 직장에서 중간 간부이다보니 상사의 입장도 되고 부하 직원이 되기도 한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직장 상사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대개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상사의 고충도 이해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팀원들이나 다른 후배 직원들에게 어떤 상사로 비추어질까 자기 성찰도 하게 된다.

구본형 씨의 이야기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무능한 상사들을 아예 '쓰레기'라는 다소 저급한 표현을 쓴 것은 아쉽다. 흑백논리식의 이분법적 표현은 지금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양자택일의 대결 구도로 현상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 상사 중에는 쓰레기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사원 대리 시절에 나의 관점에서 나쁜 상사로부터 괴롭힘과 업무 과다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에 원형탈모가 생긴 적도 있으니 말이다.
 
과거 9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 기업문화를 보면 군사문화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직적인 조직구조 하에서 상명하달식 업무 처리 중심이다보니 다양성이 설 자리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일부 대기업이나 제조업에서는 군대식 문화가 상존하기도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개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수평적 문화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기존의 군사문화 속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지금과 같이 수평적 자율문화가 자리잡은 시대에 중간 관리자로서 생활한다는 것은 소위 샌드위치 세대, 즉 '낀 세대'로서 혼돈스럽기도 하다. 윗 사람들도 잘 맞춰야 하지만 아랫 사람들의 분위기도 맞추어야 하는 시대적 비애를 안고 산다. 선배 세대가 누렸던 고도 성장의 시대에 절대 권한을 누려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개성과 자율의 문화를 만끽해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시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중간 관리자로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후배 직원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당장 보기에는 무능한(?) 후배들도 성공과 발전을 위해 함께 가야 할 동료이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회사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태만하고 무능한' 관리자는 적절한 전환 배치 또는 좌천 등 인사 조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갱생(?)의 기회와 퇴출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방법도 좋다고 본다. 내가 관리자를 위한 변명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실 관리자도 사원부터 많은 노력과 성과를 있었을 것이다. 절대 무능하고 태만한 관리자가 떵떵거리는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런 회사는 이미 망했어야 할 기업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오늘도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 직장인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한다. 기업에서 선배 후배 모든 동료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서로 발전하는 회사 생활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유토피아는 없다.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기에 서로 서로를 배타적 대결 구도가 아니라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존중과 배려 속에서 상호 발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직장은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부터 실력있고 훌륭한 관리자가 되도록 더욱 공부하고 노력해야 겠다. 

그러면 구본형 씨의 글 전문을 소개해 본다. 기업 마다 다르겠지만 내용이 참고가 될 만한 회사라면 해결책을 모색해 봄 직하다.

회사는 왜 '무능한 상사들'을 그대로 방치를 해둘까?
 
 쓰레기 같은 상사들이 기업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그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2가지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이 2가지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2가지 중 하나는 경영자의 의도적 배치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회사의 무책임한 방치 때문이다.
 
 의도적인 배치는 경영자가 충성도를 기준으로 중간관리자를 통제할 때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경영자가 회사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야비하고 증오심이 강하지만 맹목적인 충성심을 가진 저질 중간관리자들을 필요한 자리에 정치적으로 포진시킨다. 이는 히틀러가 친위대와 비밀경찰을 육성했던 방법이다. 이런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빨리 나와 다른 회사를 찾는 것이다. 상사를 바꾸기보다는 회사를 바꾸는 것이 쉽다.
 
 맥킨지의 에드 마이클스는 무능력하고 나쁜 관리자들에 대한 인사조치가 빨리 내려지지 않은 결정적 이유를 이렇게 봤다. 즉, 경영진들이 지난날 회사에 공헌을 했던 사람들이나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해고하거나 좌천시키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란 얘기다.
 
 그런 사람들의 경력 전체를 놓고 보면, 과거에 이들이 회사에 공헌을 많기 했기에. 지금 이들이 태만하고 무능력해도 괜찮다고 경영자들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태만하고 무능력해도 회사 경영자들이 묵인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쁜 관리자들은 당연히 재배치하거나 해고해서 조직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런 당연한 결정을 뒤로 미루는 것은 경영자의 무능이다.
 
 경영자가 조직에 대해서 가져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동료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못하고 기대되는 성과도 못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존심을 잃어 가면서 계속 일을 하게 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이는 인간에 대한 불경이다. 동시에 이는 경영자의 직무유기다.
 
 무능력한 중간관리자들을 다루지 못하는 경영자는 똑같이 무능력한 사람이다. 이는 경영자의 실패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나쁜 쓰레기 같은 상사들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절차는 간명하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서, 정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재빨리 한 단계 낮은 직위로 좌천시키거나 다른 부서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때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기준이 있다.
 
 첫째 나쁜 상사가 원하는 일이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주려는 성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치 못한 역할은 신통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먼저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제대로 된 자리를 배정해주는 게 좋다.
 
 둘째 중간관리자를 강등시킬 때에도, 가능하면 그들이 권위와 위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홈 디포(미국 최대의 주택자재 및 인테리어 관련 제품 유통업체)' 같은 회사는 지역관리자를 점포관리자로 강등시킬 때에 강등당한 이들의 과실이 새로운 부하직원들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한다. 이를 위해 강등당한 이들은 대개 새로운 지역으로 발령를 낸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경력을 쌓는 것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회와 함께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게 좋다. 그래야 성공율도 높다. 경영자가 확고한 기준과 의지를 가지고 부적절한 중간관리자에게 좌천이란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또한 적합한 프로세스을 통해서 다시 좋은 성과를 내는 중간관리자로 복귀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결과는 없다. 그러나 계속 해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팀워크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면 해고시키는 방법 외에는 달리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기업이 좋은 관리자를 양산하지 못하고, 쓰레기 같은 상사를 제재하는데 실패하면 직장은 지옥이 된다. 성과는 바닥을 칠 수 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 인재는 떠나고 회사는 문을 닫게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쓰레기 같은 상사들을 관리하고 격리하는 건 조직에게 주어진 커다란 과제다. 쓰레기 같은 상사가 주요 보직을 차지하다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경영자는 권력의 비밀을 깨달라야 한다.
 
 <말은 부드럽게 하되 몽둥이는 큰 것을 들고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원래 아프리카 속담이다.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매우 좋아한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을 가장 미국적인 스타일로 다시 표현한 사람은 바로 1920년대 시카고 암흑가를 휘어 잡았던 <알 카포네>다.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상냥하게 말만 하는 것보다는, 무기를 손에 들고 상냥하게 말을 할 때에,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나폴레옹 역시 권력의 비밀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벨벳 장갑 속에 숨어 있는 ‘철의 손(권력이나 힘을 뜻함 )’에 따라서 움직인다>
 
 차갑고 냉정한 철의 손이 있어야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 물론 철의 손은 늘 벨벳 장갑을 끼고 있어야 한다. 부드러워야 사람들을 모을 수 있어서다. 냉정함도 필요하다. 그래야 신통치 않은 사람들과 훌륭한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다.
 
 쓰레기 같은 상사가 판을 치지 않게 하려면 경영자가 먼저 변해야 한다. 충성과 감시의 메카니즘으로 조직을 통제하는 대신에 능력과 열정을 갖고서 조직을 이끌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 쓰레기 같은 상사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해야 한다.
 
 쓰레기는 쓰레기를 낳는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이내 또 다른 가해자로 변한다. 경멸, 멸시, 분노가 전 조직에 산불처럼 퍼지게 된다. 조직 전체가 나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이다.
 
 회사가 쓰레기 같은 상사에 대한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는 동안, 이 쓰레기들이 주는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직원들이 입게 된다. 이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3가지다.
 
 -회사를 떠난다.
 -지옥이라도 참고 견딘다.
 -쓰레기 같은 상사에 대항하며 나를 지킨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만 이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어느 조직이나 갈등과 긴장과 모욕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때에는 참아야 하고 어느 때에는 참아서는 안 되는가를 아는 것이다. 참지 말아야 할 때에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호소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제 쓰레기 같은 상사로부터 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호신술을 한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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