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9.11.26 시한부 암환자를 둔 아내의 눈물, 어떡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2. 2009.09.26 박원순의 눈물과 대한민국 소송의 황당함 by 진리 탐구 탐진강 (41)
  3. 2009.07.30 군대가는 아들 뒤 아버지의 눈물을 봤다면... by 진리 탐구 탐진강 (40)
  4. 2009.07.27 부모 5명 모시는 천사표 아내의 결혼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83)
  5. 2009.07.26 냉면 음악중심과 무한도전 '듀엣의 궁합'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4)
  6. 2009.02.04 강호순 팬카페와 미친 사회 신드롬 by 진리 탐구 탐진강 (19)
  7. 2009.01.02 두 딸의 40대 아빠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47)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의 소식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러한 죽음이 나의 가족일 경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몇달전 큰 처형이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평소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검진도 주기적으로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몸 속에서 암덩어리가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혀 담배도 피지않고 항상 몸 관리를 잘해왔는데 폐암이란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장모님을 비롯해 아내와 가족들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장모님 생신을 맞이해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암으로 투병 중인 큰 처형은 차가운 날씨가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처형 부부가 사전 예고없이 참석했습니다. 큰 처형은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주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다소 무리해서 참석한 것입니다.

이미 가족들은 큰 처형이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큰 동서와 작은 처형이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던 터라 가족들은 슬픔에 젖어 있었습니다. 사실 큰 처형 부부를 포함해 온 가족이 모두 함께 모인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바쁜 일상으로 함께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말기암 환자가 있는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큰 처형은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외출도 쉽지않은 몸상태로 보였습니다. 비록 자신의 몸이 아프지만,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려는 큰 딸로서 책임감의 발로였을 것입니다. 큰 처형은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애써 밝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고 저도 장모님 생신인지라 가족들 모두를 재밌게 해드리려고 노력했던 자리였습니다.

어쩌면 이번 가족 모임이 큰 처형을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한 마지막 모임일지도 모릅니다. 그 후 최근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작은 처형은 병 간호를 하는데 의사는 길어야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미 폐암이 말기 불치병 증세로 전이되고 있고 치료가 힘든 암 종류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장모님과 가족들은 비통에 빠졌습니다.

지난 주말, 아내는 저에게 큰 처형의 상태에 대해 몇가지 상의를 했습니다. 큰 처형은 아직도 자신의 삶이 시한부 인생인 줄 잘 모르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큰 처형의 남편인 동서는 그 동안 병수발에 지쳐있어 장모님과 작은 처형이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기로 했다며 우리가 좀 도와주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명의가 필요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물질적인 부분도 당연히 가능한 돕기로 했습니다. 

건강이 좋지않은 장모님이 암환자와 함께 살겠다면?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장모님의 건강이었습니다. 사실 장모님은 몇년전 우울증에다가 심장병이 겹쳐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고 수술해도 몇년을 못살 수도 있다는 진단까지 했지만 다행히 급격히 호전되어 수술없이도 다시 건강을 어느정도 회복했습니다. 장모님은 그래도 주변 자연과 공기가 좋은 저희 아파트 단지로 이사와 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장모님이 건강이 좋아지신 상태이지만 큰 딸의 병수발을 하는 것이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저는 "장모님이 당신의 큰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건강상 함께 사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아마도 아내는 암환자인 큰 언니에 대한 걱정과 엄마에 대한 고민이 오버랩되어 지나갔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너무 담담하게 현실을 말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시한부를 사는 언니를 생각하는 아내와 장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는
건강이 그다지 좋지않은 장모님마저 시한부 큰 딸의 고통 속에 함께 살며 눈물짓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은 처형이나 다른 가족이 큰 처형과 함께 살고 장모님은 가끔 한번씩 병문안을 들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제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랜디 보시디가 쓴 책 '마지막 강의'를 보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어느 교수가 남은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개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좌절도 슬픔 속에서 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교수는 하루 하루를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랜디 보시디는 무엇보다 인생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꿈을 향해 나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이 시한부의 삶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하늘나라의 별먼지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운명이고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늘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6개월이든 몇십년이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 바로 곁에 있는 가족 중에 한명이 몇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갑자기 가족이 그런 일이 닥친다면 마땅한 방법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살 때 할 수 있는 일
- 오늘 우리가 살아 있음에 대해 감사하며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 손을 꼭 잡아주고 곁에 있어주며 책도 읽어준다
-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희망을 심어준다
- 세상에는 기적도 있듯이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준다
- 주변을 함께 산책하거나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도와준다

다시 가족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현재 건강이 좋지않은 장모님은 당신의 딸을 위해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고자 하시고 저는 장모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의 큰 딸의 곁에서 지켜드리고 싶으신 마음일 것입니다.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장모님마저 건강이 악화될까 두렵습니다. 큰 언니를 걱정하는 아내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줄 수 있을지 어려운 숙제입니다. 지금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곧 시한부 인생은 아닐까요? 우리의 삶에 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저와 아내의 입장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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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박원순 변호사를 몇년 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게'의 나눔 행사인 '아름다운 토요일'에 참여했는데 그 자리에 박원순 변호사가 참석했습니다. 과거 참여연대 시절에 시민운동을 하던 모습을 상상했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이웃집 아저씨같이 소탈한 모습이었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박원순 변호사의 눈물짓는 모습을 어렴풋이 보게 됐습니다. 워낙 바쁜 일상에 살다보니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박원순 변호사의 눈물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산다는 것이 오히려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의 삶 보다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박원순 변호사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주변의 선행의 이웃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건 당사자가 어이없게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저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도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했을까요? 그리고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도 대한민국 이름의 소송이 얼마나 해괴망측했을까요? 세계 어느나라에 자기 나라가 국가 이름으로 한 시민을 소송 건 사례가 있을까요? 정부기관의 과잉충성이나 오버가 지나쳐도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상식을 넘어선 황당무계한 일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다시 아름다운 가게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박원순 변호사를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에서 잠시 봤을 때 '이렇게 평생을 다른 사람들과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분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미국 출장을 갔을 때 생활 속에서 재활용 물품을 나누는 광경을 보고 '아름다운 가게'를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벌써 전국에 100호점을 넘어서 아름다운 가게는 풀뿌리 나눔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사회에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위해 아름다운 기부의 문화를 만든 대표적 사례입니다. 거기도 박원순 변호사가 주축이 되어 만들었습니다. 현재 아름다운 재단은 수많은 시민들과 선량한 기업들이 참여해 국내에서 가장 큰 기부 문화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그 이전에 참여연대를 만들어 시민운동의 가장 모범적 사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재벌들의 탈법적인 행태를 바로잡고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데 참여연대는 큰 기여를 하였고 박원순 변호사는 참여연대가 자리를 잡자 홀연히 떠났습니다. 자신의 분신과 같은 참여연대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얼마나 사심이 없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성공할지 모르는 아름다운 가게와 아름다운 재단, 그리고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건전하고 건강한 생활 속 시민문화를 만드는데 열정을 쏟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나눔과 배려를 평생 실천한 박원순의 아름다운 인생

박원순 변호사가 쓴 '나눔'라는 책을 보면 그의 소탈하고 아름다운 삶의 원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재산도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일생과 재산을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쏟아부었기에 재산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는 흔한 자가용도 없다고 합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대부분 대중 교통수단을 타고다니고 가까운 거리는 늘 걸어다닌다고 합니다. 부자들이나 고관대작들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서민들을 힘들게 하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입니다.

나눔과 희망의 메시지

박원순 변호사는 여전히 나눔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은 생활 속 아이디어를 모아 시민들에게 보다 따뜻하고 건강한 가치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라는 편한 길을 포기하고 시민들 속에서 보다 나은 삶의 가치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입니다.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을 박원순 변호사는 놀라운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이루어 냈습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서민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다시 희망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나눔의 실천과 생활이었습니다.

이제 나눔을 넘어 희망을 심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박원순 변호사가 최근에 펼치는 활동입니다. 기업가정신을 불어넣어 시민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통해 건강하고 건전한 기업가들이 우리 생활에 보다 많이 넘치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는 나눔을 넘어 희망을 심는 희망전도사인 셈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란 이름이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한민국 구성원인 저는 이런 소송에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대한민국 이름을 도용하는 것인가요? 탈법과 편법과 비리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정상이 비정상으로 둔갑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박원순 변호사가 일생 동안 펼친 나눔의 철학과 실제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은 구린내 나는 대한민국을 보다 행복하고 따스하게 만드는데 그 무엇보다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대한변협을 비롯한 법 전문가들도 “국민이 국가기관의 잘못을 비판할 헌법상 자유가 보장돼 있는 민주사회에서 국가 권력기관이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 “국정원이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므로 재고하기 바란다” 등의 선언을 하며 들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심지어 정부의 법제처장도 이번 소송을 잘못됐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 나마 소신있는 법제처장인 것 같습니다.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황당한 소송은 국민들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인식이 한심한지 보여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국정원이나 정부가 박원순 변호사의 명예를 훼손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정부의 명예훼손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말인가요? 박원순 변호사의 눈물은 곧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물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의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한 고난의 십자가 기꺼이 지겠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여러 곳에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해 오셨습니다.
이메일, 문자메시지, 댓글로 저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초면의 사람들도 용기를 잃지말라는 따뜻한 말을 전해오셨습니다.
 

미국의 LA에서, 워싱턴에서, 스페인에서, 캐나다 뱅쿠버에서도 정의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뜻을 전해주셨습니다.

가장 반가운 소식도 들리고 있습니다. 아예 희망제작소 회원으로 가입하는 숫자가 늘고 있습니다. 어제, 그저께 이틀동안의 회원가입 숫자가 전달의 한달 전체 회원가입 숫자를 넘어섰습니다.

누구나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국정원이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왔는데 위축되지 않을리 있겠습니까? 더구나 국가의 이름을 달고 있는 그 소장의 표지를 보면서 기가 질리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제가 잘못한 것이 없을지라도 국정원의 위세가, 국가의 위력이 저를 엄습해 왔습니다. 이제 이 뉴스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제가 마치 대역죄를 지은 것같이 생각할지 걱정이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고초를 겪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기업을 하시거나 정부에서 일하는 분들이 이제 우리와 함께 하는 활동은 이제 힘들겠다는 생각에 초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여러분들 때문에 저는 평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저께는 희망제작소의 행복설계아카데미 10기 마지막 강연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과거 기업의 임원이나 정부의 고위공무원을 지낸 분들이었는데 강의 내내 활발한 반응으로 저를 즐겁게 해 주셨습니다. 어제부터는 도봉구 우이동에서 제3기 좋은시장학교의 2박3일과정에 내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기 참여한 지방선거 후보자들 역시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시장에서, 식당에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저를 알아보고 힘내라는 말을 던지고 웃음으로 악수로 격려해 주십니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의는 외롭지 않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여러분이 주신 힘으로 저는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지난 세월동안 열심히 이 나라의 민주화와 사회정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회, 나눔과 통합의 공동체를 위해 일해왔습니다. 도대체 왜 제가 국가로부터 이런 소송을 당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저는 이 수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과정에 필요한 일이라면 저는 그 십자기를 기꺼이 짊어지겠습니다.

국정원쪽에서 이미 소송을 제기해온 이상 여기에 대응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여러 변호사님들과 상의해서 이 부당하고 불합리한 소송을 각하.기각시키기 위한 법률적 대응을 고민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갑니다.

제 다이어리에 적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다시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하고 미래를 디자인하는 희망프로젝트에 매달릴 것입니다. 며칠전에도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부질없는 시도로 저의 발목을 잡아도,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할지라도 저는 뚜벅뚜벅 앞을 향하여 걸어갈 것입니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기자회견문 전문]
명예훼손은 국정원이 아니라 국민이 당하고 있습니다

1.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고발하다니요?

이미 보도되었듯이 저는 원고 대한민국으로부터 명예훼손에 따른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배소송을 제기한 것은 적어도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입니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과거 유신시절에 국가모독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국민의 비판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와 더불어 그것은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비판과 토론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합리적 제도입니다. 국민이 국가를 비판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자유로 일컬어지며, 특별한 보호를 받습니다.

법리적으로나 형식논리로 보더라도 이 소송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추상적인 실체로서 인격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는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하겠다면 국정원장 개인이 해야 합니다. 왜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고 국가라는 방패 뒤에 숨는 것인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저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적인 사찰을 문제 삼고 그러한 불법적인 사찰을 벌인 국정원장이나 그 직원을 비판한 것이지 결코 국정원 그 자체나 국가의 명예를 훼손한 적이 없습니다.

2.국정원의 사찰을 비판한 것은 대한민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일입니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은 바로 국정원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명예와 발전을 위해 진력해온 사람입니다. 제가 미력하나마 온 삶을 통하여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 삶의 질과 복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회를 위해 일해 온 것은 온 국민이 아는 바입니다. 국정원의 활동을 비판한 것도 그런 야만적이고 비민주적인 일이 사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시민사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오랜 세월 인권을 지키고 옹호해온 인권변호사로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이런 사실을 알고도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국정원입니다. 국민을 사찰한 것이야말로, 국민이 낸 세금으로 그런 불법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선출하고 우리가 위임한 권력으로 그런 야만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과 그 국민의 명예를 심대히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3.사찰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법률가로서, 국회에서 그토록 자주 행해지는 근거 없는 폭로, 과장된 비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례, 정파적 이익을 위한 선동을 혐오합니다. 저의 발언은 그러한 것들을 가려볼 줄 아는 양식 있는 한 시민, 그동안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진력해온 한 지식인으로서의 판단입니다.

오늘 별첨해 드리는 자료는 모두가 진실입니다. 제 삶과 활동의 전 과정을 통하여, 제가 가진 모든 양심을 걸고 증언하건대 모두가 진실입니다. 저는 있지도 않은 일을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 국가권력의 상징인 국정원을 상대로 허위주장을 한단 말입니까?

이미 기무사와 국정원의 사찰 사실은 공지의 것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들어와서 온갖 유형의 사찰 사실들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남의 이메일을 들여다보고, 뒤를 따라다니고, 도감청이 횡행하는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는 묻고 싶습니다. 개인 박원순이 사외이사로 받는 월급에 대해, 기업이 내가 일하는 단체에게 얼마를 지원했는지에 대해, 개인 박원순의 정계 입문 가능성에 대해 왜 국정원이 그렇게 조사하고 탐문하고 다니는 것입니까? 그것이 국정원의 업무이고 권한입니까? 소장의 표현을 빌리면 “국가안전보장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왜 그런 일을 하고 다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용인하면, 민주주의가 깨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4.거버넌스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회발전의 한 축인 시민사회가 질식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문제 삼고 있는 저의 발언은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거버넌스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과 그에 대한 우려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중시하고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해 왔습니다. 저는 그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도 다른 모든 국민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풍요롭고 기품 있고 정의로운 선진국이 되기를 열망합니다.

적어도 제가 이제껏 활동해온 시민사회부문을 놓고 보면, 글로벌 스탠다드가 무엇인지는 명백합니다.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경계를 넘어 서로 협력하고 공조하는 협치, 즉 거버넌스가 21세기의 대세입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은 NGO, NPO들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여 정부 안에 시민사회부문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독자적인 기관을 가지고 다양한 개혁과 혁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러한 흐름에 공감하여, 비판을 넘어 시민사회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내고 거버넌스를 통해 우리 사회를 혁신하는 일에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그 흐름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정부 들어서 정부기관과 함께 일하던 많은 NGO, NPO들이 심사에서 아예 배제되거나 계약을 파기당하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방침 때문에 기업들마저 NGO, NPO와의 협력 사업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민주화 이후 조금씩 조금씩 진전되고 있던 거버넌스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5. 이 소송은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부인하는 소송입니다

-국민의 입을 막으려는 정부에 대해 슬픔을 느낍니다

국가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존재이나 주권자가 감시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언제나 괴물이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모두 그러한 전제 위에서 성립한 것이며,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이 폭넓게 허용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이와 같은 소송이 제기된 이유는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 원리를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주권자의 비판과 감시, 통제를 위축시키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어느 경우이든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다고 과연 그렇게 될까요? 역사는 그것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체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제소로써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이 틀렸습니다.

6.국민이 명예를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 더 이상 우리를 창피하게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국가가 제게 명예훼손을 말하니 저도 말하고 싶습니다. 저 자신 그 일원인 대한민국은 고난에 찬 근현대사를 거치면서도 산업화와 민주주의에 성공한 이례적인 국가로 평가받습니다. 저는 제가 그러한 대한민국의 주권자라는 것에 말할 수 없는 명예와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최근 저는 그 명예를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남북은 다시 대결로 치닫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신이 깎이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를 적대시하는 정부, 국민을 사찰하는 국가기관은 저를 말할 수 없이 부끄럽게 합니다. 저 자신, 그 국가를 구성하고 책임지는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7.주권자로서의 위엄을 찾는 길은 무엇일까요

- 정의를 구하는 시민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국정원장이 개인으로 저를 고소했다면 어쨌든 진실을 따져볼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감히 국가의 이름을 내세워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저는 분노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원고적격 여부, 즉 과연 국가가 그러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가를 법정에서 다투어 소중한 판례를 남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것인가를 두고선 조금 더 생각해 보려 합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기에, 차라리 재판에 불출석하는 것이 이 비이성적인 소송에 대한 합당한 대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일에 관계된 사람들이 국정원을 의식하지 않고 진실한 증언을 법정에서 해 줄지, 하더라도 그 분들이 치를 곤욕도 저로서는 걱정입니다. 따라서 법률적 대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으로서의 위엄을 지키는 길인가를 조금 더 판단해 본 뒤 선택할 것임을 밝힙니다.

저는 앞으로 헌법이 허용하는 국민적 권리에 기초해 주권자로서 제 자신의 위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의롭고 상식적인 사회를 열망하는 시민들과 함께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국가기관의 위법적인 행위에 대해 전국민적인 고발운동도 벌일 것이며, 온라인을 활용한 시민행동도 조직할 생각입니다. 기죽지 않고, 제가 하고자 했던 ‘대한민국 희망프로젝트’도 계속하겠습니다. 새벽은 오고야 말고 진실은 늘 승리합니다.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박원순 변호사 응원하러 가기] 박원순블로그.(링크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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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도 불안했습니다. 일방적인 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제가 다섯 살이 되던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저를 낳고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거부했습니다. 당시는 1960년대 시기였습니다. 신혼 시절에 아버지를 잡으러 산골 마을로 군인들이 닥쳤습니다. 아버지는 초가집 벽을 부수고 산속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혼자서 농사일을 하고 혼자 저를 낳아 길러야 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벌교에서 주먹 대장이었고 돌아온 마을과 읍내에선 호랑이였습니다.

다섯 살 아들이 아버지에게 날린 주먹과 첫 만남

제가 처음 아버지를 본 모습도 불청객으로 느꼈을 듯 합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는 밥상 앞에서 어머니에게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얼굴에 그만 주먹을 날렸습니다. 아버지는 호랑이같은 눈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이 놈이 어디다가..." 저는 부엌 문으로 나와 마당을 지나 도망갔습니다. 한참 달리다 마당 입구에서 되돌아보니 아버지는 집 앞에서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첫번째 전투였을지 모릅니다.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있으면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늘 당하기만 했습니다. 바보같이 왜 당하기만 하냐고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마다 어머니는 자식들 걱정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서울 큰 집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서울 구경 시켜준다는 큰 아버지를 따라 나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큰 집에 자식이 없어 제가 서울로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비관하던 학창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힘겹지만 이겨내야 했습니다.

방학 때 마다 혼자서 시골을 찾았습니다. 한 여름날에도 어머니의 농사 일을 도와 논둑을 베고 땔감 나무를 했습니다. 저의 얼굴에는 항상 땀이 범벅이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농사 일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읍내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날도 많았습니다. 한량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머니 혼자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집에 땔감이 떨어져도 아버지는 태평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와 멱살을 잡고 싸울 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산으로 도망갔습니다. 산 속에 있는데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하라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어느새 1980년대 중반 대학에 갔습니다. 암흑과 같던 군사 독재 시절에 치열한 대학시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난 뒤었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 까지 어머니 일을 도왔습니다. 농가 부채는 1억원에 달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는 아버지가 어느정도 마음을 잡고 일을 했습니다.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산 등성이에서 일해야 하기에 위험했습니다. 겨울에는 참나무를 베고 봄에 버섯종균을 넣은 후 나무를 세워두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힘든 일을 하면 더 화를 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화풀이 대상이 어머니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늘 참았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장성한 제가 있어 아버지는 예전보다 심하게 가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이 왔습니다. 비가 온 후 버섯이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지게를 등에 지고 엄청난 버섯을 산길을 타고 집으로 날랐습니다. 어머니는 버섯을 따고 부자는 쉴새없이 버섯을 날랐습니다. 하루종일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가다보니 얼굴에 소금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가장 힘든 노동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된 일로 다리를 절뚝거리는 저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산 위에 떠오른 태양의 햇살은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에 반짝였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저는 집 앞에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시골 집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가면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네 번 정도 버스가 다녔습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데 아버지를 계속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말없이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그만 들어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 봤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그 때 저는 보았습니다. 이제 막 산꼭대기에는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태양의 햇살에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이 순간 반짝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지만 저는 이미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군대가는 아들이 걱정됐습니다. 계속 아들 뒤를 따라오며 잠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아들에게 보여주기 싫었지만 저는 햇살에 비친 아버지의 눈물 한방울이 빛나는 것을 봤습니다. 난생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렇게 강하신 분이셨던 아버지의 눈물은 충격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군대를 향해 가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화해를 했습니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어쩌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단한 삶과 닮아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삶 보다는 자식들을 위해 늘 헌신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표현에 인색했고 어머니는 항상 자식을 사랑으로 감싸주셨습니다. 첨단 문명이나 도시 사회에서 보면 워낭소리의 노부부의 삶은 한편으로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부부의 삶에는 가족이 있고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슬프고 괴롭고 힘들더라도 안식과 위안이 되는 곳입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이제 아버지도 기력이 약해지고 어머니도 몸이 아프시곤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도 자식들과 손주들 기다릴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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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종손의 며느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종손의 며느리는 챙겨야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서 제사는 물론 경조사를 모두 챙겨야 합니다. 사실 대가족을 모두 챙기면서 생활한다는 것이 요즘 시대에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내는 부모를 무려 5명이나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제 부모가 4명이고 아내의 어머니 1명을 포함해 모두 5명이나 됩니다. 저에게는 저를 낳아준 부모와 키워준 부모가 각각 있습니다. 아내는 아버지가 나이 50이 넘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 홀로 자식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아내는 딸 넷에다 아들 하나인 집안의 셋째 딸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언제나 5명의 부모를 모셔야 하는 일에 대한 부담이 큰 편입니다. 제 친부모님은 시골 농촌에 살고 계시고 저를 키워준 부모님은 서울에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장모님은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바로 아래 층에 살고 계십니다. 저를 키워 준 부모님은 사실 큰 아버지 내외이신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제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 모시면서 함께 지냈고 거기서 공부를 했습니다.

대가족의 장손의 며느리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아내는 늘 밝은 모습입니다.

장모님은 셋째 딸인 아내와 마음이 잘 맞는 편입니다. 결혼 후에는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지금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장모님은 우울증도 심했고 심장이 좋지않아 몇년전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도 있었습니다. 장모님이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술을 하더라도 신장에 투석을 하면서 길어야 5년을 살 것이란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술도 하지않고 장모님은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십니다.

당시 저는 어차피 수술할 것이라면 수술 대신 기다려보자고 했었습니다. 다행히 장모님은 점차 회복되어 중환자실에서 퇴원해 저희 아파트에 몇일간 머물렀습니다. 제가 제안했던 일입니다. 저희 아파트에 머무르는 동안 장모님의 건강은 더욱 좋아졌습니다. 그 후 저는 장모님이 아예 저희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는 것을 권했습니다. 아내가 있는 곳에 가깝게 사신다면 더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장모님은 건강하십니다.

제가 장모님을 모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매우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와 결혼해 준 아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내는 충청도 제천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생활을 서울에서 보냈으니 서울 사람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내는 도회지 느낌이 충만한 여자였습니다. 아내는 당시 저를 만난 이후 저의 궁핍하고 불행한 삶을 알았지만 저와의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가족은 언제나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는 사랑과 희망입니다.

저는 총각 시절 저와 결혼한 여자들은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래서 불행을 제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와 사귀던 여자에게 솔직히 말했습니다.
"나는 부모가 4명이다. 그래도 나와 같이 결혼해 살 수 있겠니? 나는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당시 그 여자는 그래도 저와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아내입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나와 결혼했어? 보잘 것 없는 나에게."
"당신이 불쌍했어. 나라도 당신을 도와주고 싶었어. 그리고 날 굶겨죽이지는 않겠던데. (깔깔깔)"

그랬습니다. 아내는 청년 시절의 제가 불쌍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제가 당시에 다소 염세주의적인 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만난 이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이후 저는 불행이 아닌 행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주말농장 텃밭에서 옥수수를 따서 맛있는 별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개 희망이 없다면 염세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5명의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저의 4명의 부모님에게는 사랑스런 맏며느리입니다. 그리고 장모님에게는 사랑스런 딸이고 믿음직한 사위의 아내입니다. 아니, 장모님은 저를 장남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5명의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맏며느리가 된 이후 저희 대가족은 자주 모이곤 합니다. 아내가 늘 챙기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많아 무뚝뚝하던 가족들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모이면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그래서 장모님을 부모님과 같이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팔불출이라 생각하더라도, 저는 아내를 천사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와 가족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천사와 같은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가족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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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듀엣가요제가 '쇼 음악중심'을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무한도전 듀엣가요제에서 1위로 선정된 퓨처라이거의 'Let`s Dance(렛츠 댄스)'는 시작에 볼과했습니다. 이제는 명카드라이브의 '냉면'이 음악중심에서 중심에 우뚝 섰습니다. 당초 무한도전은 '쇼 음악중심'에 듀엣가요제 1위팀이 무대에 서기로 했습니다.

지난주 '쇼 음악중심'에는 예정대로 유재석과 타이거JK-윤미래 부부가 결성한 퓨처라이거가 듀엣가요제 1위팀으로서 광란의 무대를 연출했습니다. 관중들은 '유재석 유재석'을 연호했습니다. 노래도 함께 하며 하나의 하모니를 연출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유재석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비가 오듯이 쏟아졌습니다. 유재석은 긴장도 했지만 그 만큼 최선을 다한 무대였던 것입니다. 전 날에 과음한 영향도 작용했을 듯 합니다. 유재석은 가요 무대에 있어 데뷔 무대이자 은퇴 무대일 수 있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날 '쇼 음악중심'의 무대는 <무한도전>과 <쇼 음악중심>이 듀엣이 된 자리나 다름없었습니다. '쇼 음악중심' PD도 유재석의 퓨처라이거 공연에 연신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음악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쇼 음악중심'과 '무한도전'의 만남은 '듀엣가요제'를 통해 절묘한 찰떡 궁합을 보여주었습니다.

무한도전과 쇼 음악중심 듀엣으로 이룬 상승효과



<쇼 음악중심>과 <무한도전>이 단 한번의 짧은 만남으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듀엣 공연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주 '쇼 음악중심'에는 명카드라이브의 '냉면'이 무대에 오른 것입니다. 사실 예측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듀엣가요제 1위곡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냉면'은 이미 주요 음원차트 순위에서 1위를 비롯한 상위권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듀엣가요제 1위팀으로 퓨처라이거의 'Let`s Dance'가 '쇼 음악중심' 무대에 섰다면 '냉면'은 순수하게 음원 순위 1위로 그 무대에 당당히 서게 된 것입니다. 무한도전 듀엣가요제 이후 실제 대중적 인기곡 1위는 '냉면'이 차지한 셈입니다. 박명수와 소녀시대 제시카의 공연도 이전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특히나 박명수의 투혼이 빛났습니다. 냉면은 그래서 박명수와 제시카의 재발견이었습니다.



듀엣가요제 당시 제시카는 귀엽고 발랄한 모습을 잘 소화했지만 박명수는 다소 미흡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쇼 음악중심'에서 박명수는 황달증세를 비롯 건강이 좋지않음에도 전보다 훌륭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역시 프로정신은 달랐습니다. 무한도전에 2인자라는 멍에를 안고있지만 이번 무대에서 만큼은 1인자의 모습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 열정과 투혼이 빛났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은 역할 분담과 팀워크로 만든 버라이어티

사실 유재석은 빛나는 것은 박명수의 존재 가치가 뒷받침해주는 이유도 있습니다. 무한도전은 각자의 역할 분담이 잘된 팀워크에 의해 움직이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장 유재석을 중심으로 박명수 부반장과 정형돈 정준하 노홍철 전진이 각자의 캐릭터를 발휘해 제 몫을 해내고 신입생 '길'이 신선한(?) 구도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유재석은 박명수가 있어 보완이 되고 박명수는 유재석과 함께라면 더 자신의 끼를 발산할 수 있는 형식인 셈입니다.

무한도전의 컨셉트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성 멤버들이 도전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멤버들이 팀워크를 통해 도전의 목표에 도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무한도전은 미 여러차례 보여주었듯이 '혼자만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잘 사는 공동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이 '쇼 음악중심'에 출연한 것도 무한도전만 잘 나가는 것이 아니라 '쇼 음악중심'이란 프로그램도 함께 찰떡 궁합으로 상승효과를 심어주었습니다.


무한도전의 정신은 곧 '더불어 잘 사는 사회 공동체'일 수도 있습니다. 김태호PD가 무한도전 멤버들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도 그러한 정신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무한도전이 듀엣가요제를 했을 때 더 멋진 곡들이 만들어지고 시너지효과가 커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 무한도전이 '쇼 음악중심'을 만나서 듀엣 프로그램처럼 빛난 것도 '더불어 함께'하는 정신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를 향한 무한 희망의 메시지

무한도전은 그래서 언제나 공익의 실천을 통해 소외된 불우이웃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한도전은 '듀엣가요제 앨범 판매수익금 전액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얼마든지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달력판매 수익금으로 마련된 수억원을 불우이웃돕기에 매년 사용하고 있듯이 듀엣가요제 수익금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은 단순히 웃음만 주는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한도전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위대합니다. 사람들이 무한도전에 열광하는 이유입니다. 가진 자들과 배운 자들이 오히려 자신의 부와 권력에만 탐욕을 부리면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태를 할지라도,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 모여서 의미있는 도전을 통해 함께 사는 공동체에 행복을 나누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한도전은 오늘도 우리 사회에 울림을 주고 희망을 쏘고 있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다 할지라도 무한도전은 '포기하지 말고 끝내 이겨내라'고 끊임없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 혼자가 아니라 듀엣과 같은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고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의 무한도전이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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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미쳤습니다. 마치 광기를 가득 안고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같습니다. 요즘 돌아가는 우리 사회 현상을 곰곰 생각해보면 공포영화처럼 끔찍하고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오늘 저녁 퇴근해보니 강호순 팬카페가 사람들의 궁금증을 사로잡았나 봅니다. 강호순 팬카페가 무엇이길래 그럴까 찾아봤습니다. 카페 회원수가 벌써 1만 2천명이 넘었습니다.(글을 쓰는 동안 1만 5천명이 넘었습니다.) 2월 2일 개설한 카페인데 가히 폭발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단순한 호기심때문에 궁금해서 가입한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강호순 팬카페에 가입하지 않고 궁금증을 해결해 보겠습니다. 궁금해도 절대 가입은 하지 맙시다.
1.강호순 팬카페 주소(http://cafe.naver.com/ilovehosun)에 들어갑니다.
2.궁금한 게시물 제목을 복사해 네이버 검색창에 붙여 검색합니다.
3.그러면, 검색한 궁금증 게시물의 내용과 댓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호순 팬카페의 첫화면입니다.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보면 멤버수 등을 확인할 수있습니다.
[강호순 팬카페 메인화면]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 이름부터 '연쇄살인범 강호순님의 인권을 위한 팬카페(http://cafe.naver.com/ilovehosun)'라고 버젓이 붙어 있습니다. 카페 매니저(개설자 이름) '위대한 살인자'라는 의미인 'GreatKiller'가 필명입니다. 더욱이, 카페 주소의 영어이름이 'ilovehosun'(나는 호순을 사랑한다)입니다. 살인마 강호순에 대해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개된 인터넷 카페에 다소 노골적 애정을 과시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스톡홀름 신드롬과도 흡사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참고 http://bizworld.tistory.com/520)

카페의 전체글보기 화면입니다.

카페의 전체글보기를 살펴보니 공지글 3개를 비롯해 3,500개 이상의 글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카페 매니저가 공지에 올린 글 제목이 '본 카페에 대한 일부 언론의 여론몰이식 보도태도를 규탄한다' '근거없는 욕설과 비방글은 강퇴 조치합니다' 등이 올라와 있습니다. 상당히 노골적으로 언론과 비판글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반발을 하는 듯 합니다. (카페 옆에 붙어 돈을 유혹하는 네이버 광고가 역겨운 느낌입니다.)

카페 매니저의 카페 개설 취지를 비롯한 입장을 들어봅니다.


카페 매니저, 강호순을 대중스타 팬과 같이 열성적으로 옹호 계획
카페 매니저인 ‘Greatkiller’는 “카페 이름이 ‘나는 강호순을 사랑한다’이지만 범죄자와 그 행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자비에 기인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강호순의 인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대중스타의 팬과 같이 열성적이고 지속적으로 옹호해 줄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범죄자도 인권이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연쇄살인범을 대중스타의 팬과 같이 옹호해주자는 것은 상당히 오버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사형제 반대에 대한 입장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오는 듯 합니다. 그 중 하나입니다.

댓글을 보면 팬카페의 주장에 반대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옹호하는 글도 가끔 보입니다.


더 이상 강호순 카페의 글들에 대해서는 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거의 같은 레파토리입니다. 혹시라도 궁금증으로 인해 카페에 가입하고자 하는 분들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간단히 강호순 팬카페에 대해 회원 가입 없이 살펴본 것입니다.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주장을 펼 수도 있지만 카페의 내용을 살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우후죽순처럼 강호순 팬카페가 장난스럽게 계속 등장하는 것을 보면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의 역기능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 곳곳에 속도전과 광기넘치는 야만의 시대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병리현상을 겪는 듯 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정상적이지 않는 면들이 많습니다. 지난해 미국 미친소 수입 문제, 미네르바 구속, 용산 철거민 참사 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들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야만의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권위주의가 판치고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속도전이 앞서다보니 대화나 소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차피 안된다는 패배의식이 팽배합니다.

게다가 경제도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빠져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취직을 할 수 없어 방황과 자포자기에 빠져버립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힘들고 기막힌 현실을 도피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상심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습니다. 상실감으로 쓰디쓴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원망합니다.

미래 희망을 잃어버린 막장사회가 부른 현실 도피 허무주의
집에 있어도 세상사의 고통이 짓누릅니다. TV 방송을 틀면 막장드라마가 나옵니다. 불륜, 악녀, 낙태, 탈법, 범죄, 일탈, 성폭행 등 비정상적 현상들이 공영 방송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현실 판타지나 막장 인생들의 막장 사회 이야기가 잠시 세상을 잊게 해줍니다. 현실에서는 희망이 없지만 막장 드라마 속에서 나마 허영심이나 대리만족입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허무하기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왜 사회적인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고 있을까요?
사회적으로 지도층들이나 리더들이 신뢰를 잃은 것이 크다고 봅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더라도 서로 신뢰하는 공동체에서는 희망을 안고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사회 지도층이나 정부에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믿지를 않습니다. 이미 양치기 소년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속지는 않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희망과 신뢰를 잃어버린 영혼들이 우리 사회에 넘쳐납니다. 허무주의가 세상에 가득 합니다.

사회지도층의 철학 부재와 도덕성 상실이 부른 신뢰의 위기
사회지도층이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는 철학의 부재와 도덕성 상실입니다. 원칙과 상식을 스스로 깨버린 사회지도층의 신뢰 위기가 그 시작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강부자(강남 땅부자)는 서민들의 꿈을 잃게 했습니다. 부자들에게 고급아파트 부동산세 세금을 소급 적용해 되돌려 준 사건도 서민들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커다란 상처와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구분된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것은 통합이 아닙니다. 힘에 의한 통치는 소통이 아닙니다.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촛불을 다시 들었다고 합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낮은 데로 임한 것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에 달려 있습니다. 그 솔선수범은 진정성을 가졌을때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소통과 통합을 외치면서 뒷구멍으로는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지도층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자
강호순 팬카페도 하나의 사회적 병리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를 하는 살인마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카페가 생겼을까? 그것은 신뢰를 잃은 사회적 혼돈의 산물일 뿐입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은 살인마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영령과 고인의 가족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공통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를 포함한 기득권을 가진 사회지도층의 통렬한 반성과 함께 진정성을 가진 솔선수범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눈물부터 닦아주는 '낮은 데로 임해서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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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나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딸을 둔 40대 중반의 가장이다. 토끼같은 아내와 예쁜 두 딸을 가진 평범한 중년 직장인이다. 나와 같은 또래 중년이 블로그를 시작한다는 것은 주변을 살펴보면 그리 흔한 일은 아닌 듯 싶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하니 앞으로 계속 꾸준히 잘 할 수 있을지 사실 걱정도 된다.

우리 사회에서 40대 중반의 나이는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샌드위치 세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독재 시대를 거쳐 민주주의를 쟁취한 386 세대이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보면 기존 군사 독재의 잔재를 안고 살아가는 반공 이데올로기 기존 50~60대 선배들과 군사 독재의 경험없이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20~30대 후배들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젊은 대학 시절은 군사 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 세상을 실현하면 아름답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직 젊은 날의 열정이 용솟음치지만 현실은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고 직장에 가면 중간 간부로서 막중한 책임과 역할이 인생의 무게를 짓누른다.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나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 시대의 아픔을 넘어 민주화를 쟁취하고 그 이후 각자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어느 386 세대의 일상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때론 지극히 평범한 가장과 직장인의 이야기일 것이고 한편으론 인생의 경험을 담은 담론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단순한 개인 일상사 만이 아닌 지난 경험과 지식이 함께 어우러져 사회 경제적으로 무엇인가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2009년 새 해를 맞이했지만 아직도 내가 민주주의가 후퇴한 과거 시대를 살지 않는지 하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거나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나와 아내는 절대로 소중한 두 딸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폭정의 시대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따라서, 내가 블로그를 시작은 이유는 나 만의 삶이 아니라 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혼자만 잘 살겠다는 개인 이기주의나 집단 이기주의가 아닌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다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일상 속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 자라나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를 쓴다는 것이 조금 거창해 진 것 같은데 결국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과 소통하기가 아닐까 싶다.

새해 2009년 모두가 사람이 희망이라는 마음으로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갔으면 한다. 나중에 두 딸이 블로그를 할 수 있게 되면 아빠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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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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