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땅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5.04 무공훈장 받은 군견병, 따귀 맞은 이유는? 군견 계급 최초의 소위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24)
  2. 2009.12.25 20년 전 화이트 크리스마스, 직접 경험한 4땅굴 발견 관통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32)


"군견은 계급이 하사라서 사병이 경례를 해야 한다?" 
"군대에서 사병이 죽으면 개값만도 못하다?"
"군견에도 장교가 있을까요?"
"군견의 복무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과연 이러한 질문의 정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군대에서 군견과 관련해 실제 있었던 일화가 생각나 끄적여 봅니다. 저는 1980년대 후반에 입대를 했습니다. 영화 JSA를 봤다면 짐작할 수 있는 비무장지대 전초 수색대였습니다. 강원도 최전방 철책을 넘나들며 수색 매복 작전을 하고 땅굴탐지 임무였습니다. 투입 전 훈련은 개인이 다룰 수 있는 모든 화기를 완벽하게 마스터해야 했고 특공무술을 비롯한 인간병기를 만들었습니다.

요즘과 같은 5월의 봄날에도 강원도 최전방에는 눈이 내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9월부터 눈이 내리기도 했으니 고작 3개월을 제외하면 나머지 9개월이 겨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칠흑같은 비무장지대 안에서 매복을 하게 되면 거의 11시간 이상을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많은 날들을 나라를 지킨다는 의지로 버텨 냈는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수색 군견과 오소리의 혈투의 결과는?

몇년전 뉴스에 떠들썩했던 총기사고 현장이 바로 비무장지대에 있는 최전방 초소 GP라는 곳입니다. 감옥같은 생활이다보니 군기가 세기로 유명하지만 간혹 대형 사건이나 미확인 지뢰지대에서 지뢰 폭발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지뢰 사고로 고참 한 명이 사망해 첫 휴가를 대전 국립묘지로 간 것도 그 같은 이유였습니다. 수색 소대 단위로 항상 움직여야 했기에 휴가도 소대 전체가 단체 휴가를 갔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군견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군견은 대개 독일산 세퍼드였습니다. 비무장 지대를 수색할 때 군견이 함께 들어가기도 하지만 군견이 지뢰 냄새를 맡고 흥분해 광분하다 밟을 수도 있어 자주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최전방은 길도 좁고 주변에 지뢰지대가 많아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지요.

독일 군인들이 군견을 데리고 수색 중이다


어느 날, 비무장지대 밖에 있는 중대본부에 하룻밤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그 날 밤, 군견병과 야간 경계 근무를 서야 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막사 곁에 묶어둔 군견 세퍼트가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밤 중인데다 군견이 아주 큰 소리로 짖어대 쩌렁쩌렁했습니다. 군견병이 잠시 다녀오겠다고 군견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오소리 한 마리가 군견을 향해 공격을 하고 있었습니다. 군견은 묶여있어 오소리의 공격을 방어하며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황당하게도 군견이 공격받자 막사에 키우던 작은 똥개 한 마리가 오소리를 향해 컹컹 짖으며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소리에게 똥개는 가소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냥 무시하고 세퍼트만 공격했습니다. 더욱이 웃긴 것은 오소리는 군견병이 곁에 다가와도 씩 한번 쳐다보더니 계속 세퍼트를 공격했습니다.   

군견병은 주변에 있던 커다란 돌을 들어 오소리를 향해 던졌습니다. 한 차례 두 차례 돌을 오소리에게 던졌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 때 마다 오소리는 군견을 한번 노려볼 뿐 다시 세퍼트를 공격할 정도로 집요했습니다. 결국 몇번 만에 군견병이 던진 돌이 오소리의 머리를 정통으로 가격했고 오소리는 즉사했습니다. 그 날 잡은 오소리의 쓸개는 나중에 중대장에게 상납(?)되었다고 합니다. 오소리가 덩치 큰 세퍼트에게 한 치 물러섬도 없이 공격하는 장면은 눈에 선합니다. 그래도 하찮은 똥개라도 의리로 세퍼트 군견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헌트 소위 충견묘에 안장되고 무공훈장 받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1989년 여름에 4땅굴 징후를 저희 분대가 처음 발견했습니다. 시추공 작전을 통해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땅굴을 수직 관통했습니다. 그 다음해 독일제 갱도 굴착 장비로 역갱도 작업을 실시해 지하 4땅굴을 관통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지하 4땅굴 수색에 나서는 일이었습니다. 저희 소대의 군견병이 세퍼트와 함께 수색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하 4땅굴 수색에 앞장 서 가던 세퍼트 군견이 목함 지뢰를 밟아 죽고 말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목함 지뢰라서 지뢰탐지기에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퍼트가 지뢰를 밟아 죽었기에 수색병들은 모두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만일 4땅굴을 견학하게 된다면 입구에 충견묘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 군견이 바로 헌트 소위입니다. 헌트는 군견으로는 두번째로 인헌무공훈장을 받았고 우리나라 최초로 장교인 소위를 추서받았던 것입니다.

제4땅굴 입구에는 헌트 소위의 충견묘가 있다


군견병도 4땅굴 작전의 공로로 인헌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군견병은 원래 소속이 춘천에 있는 군견대입니다. 수색대와 군견대 두 곳이 모두 소속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군견병이 그 후 군견대장에게 신고하러 갔습니다. 군견대장은 곧바로 군견병의 따귀를 날렸습니다. 군견병을 놀랐습니다.
"헌트를 죽이면 어떡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그랬습니다. 군견 세퍼드가 군견대장 입장에서는 매우 소중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각종 훈련을 통과해 작전견 군견이 되면 연간 1,500만원 가량이 소요되고 군견 한 마리의 가격만도 1,000만원이 넘습니다. 그리고 군견의 복무기간은 10년 가까이 됩니다. 군견이 되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때까지 복무를 하는 것입니다. 사병이 당시 30개월(현재 24개월)이었으니 군견은 평생 군인인 셈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군대에 1,400여 마리의 군견이 있다고 하니 군견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만 합니다.

군견의 종류는 수색, 추적, 경계, 탐지임무를 수행하는 독일산 세퍼트를 비롯해 추적속도가 뛰어나 수색, 추적, 경계임무를 수행하는 벨기에산 벨지움 말리노이즈 그리고 사람이나 동물에 공격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 폭발물탐지를 담당하는 영국산 라브라도 리트리버가 있다고 합니다. 단연 세퍼트가 수색 군견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군견은 평생 군대 복무 후 군인으로 죽는다?

그러면, 군견이 제대하면 어찌 될까요? 군견은 관리수칙에 따라 사람의 나이 65세에 해당하는 9~10세가 되면 후각과 추적능력이 떨어지게 돼 안락사 시키거나 대학 등에 연구용으로 기증된다고 합니. 사회로의 배출을 차단하는 것은 군견이 시중에 나돌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군견에 군인으로 살다가 군인으로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겠습니다.

군견 3년이면 망원경을 볼 수 있다


그러면 4땅굴 수색 작전 시 공로로 인헌무공훈장을 받은 헌트 소위 군견 이외에 또 어떤 군견이 훈장울 받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1968년 1월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기습 공격하려다 실패한 사건 당시입니다. 당시 생포된 김신조 일당의 무장공비 사건입니다. 군견 리틴은 무장공비의 유기물 발견을 비롯하여 소탕작전에 큰 공을 세웠고 인헌무공훈장을 처음 받은 군견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처럼 공로가 뚜렷한 경우와 달리 천안함 사고 사망자에게는 안타깝지만 무공훈장을 주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듭니다.

군견이 훈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군견이 일반 사병 보다 계급이 높은 하사라는 것이 맞을까요? 정답은 군견은 계급이 없습니다. 단지 사병에게 군번이 있듯이 군견에게는 견번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군인이거나 제대한 사람은 알겠지만 군인은 군번줄을 항상 목에 걸고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천안함 사고 관련 국회에서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장성들과 장교들이 대부분 군번줄도 차고 있지않아 이진삼 의원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군견 보다 못한 경우입니다. 군번줄도 차지 않은 군인은 군교도소인 영창감입니다.

군견이 하사라는 계급에 대한 풍문으로 인해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떠돌고 있습니다. 군견 소대에 갓 배치받은 신병에게 고참이 장난스럽게 군기를 잡는 방식 중 하나라고 합니다.
"군견에게 개밥 줄 때는 반드시 경례를 한다! 충성, 00(군견 이름) 하사님 식사하시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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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온 누리에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성탄절 크리스마스입니다. 오늘은 제가 군대에서 직접 경험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이야기 할까 합니다. 그 때는 1989년 12월 25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으로부터 바로 20년 전 그 날 입니다. 

강원도 양구 최전방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군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외롭고 쓸쓸한 날입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을 거쳐 크리스마스 날에도 시추대의 지하 시추 작업은 계속 됐습니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한국군과 공동 시추작업을 하던 미군들이 모두 휴가를 갔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추작업이 한창인 장소는 이미 지하에 땅굴 이상 징후가 거의 확실하게 포착된 곳이었습니다. 미군이 휴가 간 사이 국군 단독으로 북한 땅굴을 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그래서 밤새 하얀 눈 속에서 시추작업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하에서 북한의 땅굴 굴착 이상음이 들리다

그런데 언제부터 땅굴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까요? 그 해 8월이었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이었습니다. 전초 수색대는 북한의 땅굴 가능성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매일 수색과 지하 청음 활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주로 낮에는 주요 지점에 뚫어 둔 시추공의 수위(지하수의 높이)를 재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24시간 지하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청취하는 청음 탐지활동을 벌였습니다. 백두산부대 전초 수색대의 작전 중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지하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하에 매설한 마이크로폰으로부터 포착된 소리는 일정 간격으로 굴착기 소음과 유사하게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지속적으로 계속 들렸습니다. 전초 수색대는 지하에서 북한의 땅굴 작업 소리로 추정되는 이상 징후를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당시 육군본부 시추대와 미군 시추대가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1980년대는 미군 시추대 장비가 좋아 한국군이 미군에 의존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부터 땅굴 이상 징후 탐지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지하 시추공 뚫는 작전이 계속 전개됐습니다. 시추대의 시추공 뚫는 장비는 하와이 사막에서 지하 깊숙한 곳의 우물을 파는 용도였지만 땅굴 탐지에도 사용되던 것입니다. 

미군의 지하 투시 카메라를 시추공에 빠뜨리다

전초 수색 소대가 조용히 지내던 곳에 다른 군인들이 나타나면서 여러 사건과 에피소드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먼저 미군과의 에피소드 한 토막입니다. 수색 소대는 매일 시추공 의 수위를 재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희 분대가 미군들과 조우를 했습니다.

그 중 미군 한 명은 시추공 주위에서 지하 암석층의 카메라 촬영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지하 카메라 촬영 작업을 돕겠다고 나섰더니 흔쾌히 미군은 동의했습니다. 지하 시추공 밑으로 카메라를 집어넣는 작업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카메라가 시추공 안에서 뭔가에 걸려 빼지도 넣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추공에 수위를 재던 도르래로 카메라를 꺼내려고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도르래의 끈에 카메라가 걸린 듯 했습니다. 그 후 힘차게 도르래를 감아서 밧줄을 끌어 올렸습니다. 두 팔에 잔뜩을 힘을 주고 도르래를 끌어올리는데 갑자기 뚝 하면서 밧줄과 카메라 연결 줄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카메라가 시추공 안으로 완전히 빠져 버린 것입니다. 미군이 '오 마이 갓' 소리를 크게 지르더니 발라당 땅바닥에 누워 버렸습니다. 너무 놀랐던 것입니다. 미군은 뭐라고 씨부렁 씨부렁 거렸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자신의 장비를 잃어버려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됐다는 것 같았습니다.

미군은 직업 군인이라서 각자 자신의 장비를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하 암석층을 투시해 촬영하는 특수 카메라라서 가격이 매우 비싼 편이라는 것입니다. 미군은 다시 카메라를 구입하려면 자신의 월급에 크게 마이너스가 발생한다면서 거의 눈물을 쏟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미군의 표정은 그야말로 황당하고 어이없어 했습니다. 우리들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 도와주려 하다 발생한 사건이라서 미군은 이해는 하는 편이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날에 시추공이 4땅굴을 관통하다

다시 크리스마스 날 이야기로 돌아와 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도 한국군들으 계속 시추공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환호성이 들렸습니다. 시추장비에 뚫던 시추공이 4땅굴을 관통해 지하수가 순식간에 땅굴로 빠져나가며 그 지역의 지하수 수위가 낮아졌습니다. 북한 4땅굴은 지하 200미터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새벽 하늘에는 하얀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국군이 단독 임무 수행으로 북한 제4땅굴을 발견한 것입니다. 북한 땅굴은 주로 서부 전선에 발견됐는데 중동부전선에 땅굴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지역이 바로 강원도 양구 펀치볼 근처입니다.
 
땅굴 발견이라는 기쁨도 잠깐 이었습니다. 윤군본부에서는 현장에 대해 긴급 비상 상황을 선포하고 북한 선제공격을 대비한 비상 경계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공격을 비롯 비상시 시나리오 별로 방어 대응 훈련도 병행했습니다. 그 때 부터 더욱 힘든 비상 경계 상황이 지루하게 지속되었습니다.

이제는 북한 땅굴 위치가 확인된 만큼 우리 군대가 북한 4땅굴까지 굴착해 가는 역갱도 공사를 시작해야 할 시점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 시기는 겨울을 지나 다음 해 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광산 파는 장비인 TBM(Tunnel Boring Machine)이 투입되야 했습니다. 그 전에 미확인 지뢰지대가 많아 지뢰제거 작업을 통해 TBM 장비가 들어가고 여러 군인들을 위한 막사 건설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땅굴을 수직으로 관통한 후 해당 지역에는 공병대, 수단 수색대, 특공대 등 여러 군인들이 대거 투입됐습니다. 당시 저는 군사령관 표창으로 포상 휴가를 갈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휴가 가는 저를 대신해 중대본부에서 한 명이 파견나왔습니다. 그런데 중대본부 한 명과 윤군본부 병사가 공동으로 경계 근무하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해가 바뀐 것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중대본부와 윤군본부가 함께 2인 1조로 한 쌍인 우결(우리 결혼했어오) 두 사람은 깊은 산골엔 길가의 풀이나 사물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시 북한의 제 4 땅굴 발견 공로로 참모총장 표창을 받고 있는 장면

그런데 두 병사는 산딸기를 따러가다 미확인 지뢰 지대로 빠져 결국 지뢰를 밟고 말았습니다. 중대장은 저녁 11가 넘어 늦은 시간에 사건 현장에서 중대본부로 돌아왔습니다. 중대장은 휴가자들은 그대로 보내 주었습니다. 지뢰에 밟은 죽은 전우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4땅굴 수색 중 셰퍼드 군견이 지뢰를 밟아 죽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건과 사연이 있던 당시 4땅굴 역갱도 공사였습니다. 모두 이야기하기엔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20년전 오늘은 크리스마스입니다. 함박눈이 탐스럽게 날리는 그 날이었습니다. 당시 군인들은 크리스마스의 감흥을 느낄 겨를도 없이 4땅굴 지하 관통 작업을 벌였고 결국 성공한 것입니다. 직접 경험한 일이라서 그런지 이맘 때면 당시 군인들이 보고 싶기도 합니다. 특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는 유난히 4땅굴 발견 당시 시절이 스쳐 지나갑니다. 미군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휴가를 갔는데 한국군은 남아서 땅굴 탐사를 계속 했던 잔인한 날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4땅굴은 한국군이 처음 발견부터 지하 시추공 관통 그리고 역갱도 공사까지 전 과정을 수행한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추억은 무엇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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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