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6.06 '바람의 아들' 이종범, 프로야구 신화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
  2. 2009.04.04 한국-일본 커플의 딸아이가 살아가는 법 by 진리 탐구 탐진강 (23)
  3. 2009.03.26 WBC 올스타 명단, 한국 야구팀 김태균 등 4명 진정한 1위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4. 2009.03.24 한국팀, 빅볼 토털야구로 세계중심에 서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4)
  5. 2009.03.22 김태균, 커튼콜받고 세계적 타자로 등극 4가지 의미 by 진리 탐구 탐진강 (12)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드디어 국내 프로야구 통산 500도루와 1000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이종범은 '바람의 아들'을 탄생시킨 '(기아)타이거즈'의 광주 홈팬들 앞에 대기록을 선사하며 감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프로야구의 전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프로야구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프로야구에 많은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1990년대 프로야구는 최고의 국민 스포츠 시대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최고의 명문 구단은 해태 타이거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삼성 두산 등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구단들에 비해 해태 타이거즈는 가난한 구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종범을 비롯한 선수들에게는 최고를 향한 꿈이 있었습니다.

꿈을 향해 달리던 이종범의 근성과 도전정신, 그것은 '바람의 아들' '야구 천재' '수비의 귀재' '야구 9단' 등 수많은 별명이 그를 상징해 줍니다. 우리나라 야구 역사상 100년에 한번 나올 수 있는 유격수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번에 이종범이 500도루와 1000득점을 달성한 것은 여러가지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 사실상 최다 도루 대기록 달성
이종범의 500 도루는 표면적으로는 히어로즈의 전준호의 500도루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그러나 실상을 따져보면 이종범이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는 사실상 최다 도루의 기록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종범은 국내 프로야구를 떠나 지난 1998년부터 일본 주니치에 입단해 3년 반동안 53개 도루를 성공시킨 바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기록을 합하면 개인적으로는 이종범은 553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이다. 국내 최다기록은 전준호가 보유하고 있는 549개이지만, 일본기록까지 더한다면 사실상 최다 기록은 이종범이 보유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전력 질주 모습(주니치 시절)

이종범의 이 날 기록은 프로데뷔 17년, 한국 프로야구 14시즌 만에 거둔 대기록입니다. 일본 주니치에서의 프로야구 시즌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국내 프로야구에서 더 많은 대기록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종범이 1루 주자로 진출하는 것 만으로 투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경기에서 차지하는 진가를 가늠케 합니다.

이종범은 지난 1993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과 함께 무려 73도루(2위)를 성공시켜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과 함께 첫 해부터 대도의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해인 1994년에는 타율 3할9푼3리의 기록과 함께 사실상 깨지기 힘든 84도루를 성공시켰습니다. 그 이후 이종범은 극내 프로야구에서 통산 네 차례의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한편, 이 날 2번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전한 이종범은 6회말 1사후 선두타자로 나서 삼성 배영수를
상대로 깨끗한 좌익수 옆 안타를 날렸고, 이종범은 관중들의 " 뛰어! " 라는 함성 속에서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를 던지는 순간 2루 도루를 감행해 역사적인 기록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이종범은 도루성공과 함께 자신이 예고한 대로 2루 베이스를 들어올려 자축했고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소 경기 1000득점에도 성공
이종범은 최다 도루 대기록과 함께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소 경기 1000득점의 기록도 동시에 세웠습니다. 이 날 이종범은 최희섭의 중전 적시타로 홈까지 밟아 통산 4번째이자 최소경기 1000득점도 함께 기록한 것입니다. 이종범에게는 도루 기록과 함께 기쁨이 두배가 된 셈입니다.

이종범은 1000득점은 1439경기 만에 달성한 것인데 종전 기록은 삼성의 양준혁이 보유하고 있던 1522경기였습니다. 무려 83경기나 앞당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득점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해보면 이종범의 존재 가치는 빛날 수 밖에 없습니다.

1996년 WBC 한국-일본의 경기, 이종범이 결승타를 친 후 장면

이종범과 타이거즈의 한국 프로야구 9회 우승 신화
이종범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는 무시무시했습니다. 당시 해태타이거즈는 김응용 감독을 중심으로 이종범을 비롯해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습니다. 

당시 타이거즈는 초호화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팀웍을 바탕으로 한 근성과 집중력이 뛰어났습니다. 신인 선수들은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되면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호랑이'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타이거즈 우승 신화를 이끌던 1990년대 선수들을 살펴보면 투수에는 선동렬 이강철 조계현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자에는 이종범을 포함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홍현우 김봉연 김무종 등이 활약했습니다. 이들 선수들은 얇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뭉쳐 매번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홈팬들의 열정적인 응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습니다. 해태 타이거즈는 9번이나 우승을 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결국 김응용 감독의 리더십, 선수들의 혼연일체 팀웍, 그리고 팬들의 열정적 응원 등이 삼위일체가 된 프로야구사의 신화였습니다.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
이종범의 500도루 대기록은 과거 1990년대 프로야구 팬들에게도 큰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당시에는 대중 스포츠가 프로야구 이외에는 드물었기 때문에 어떤 스포츠 보다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종범을 비롯해 걸출한 프로야구 스타들이 많았습니다. 대중들은 프로야구를 보면서 웃고 울었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는 하루종일 화제의 이슈였던 시절입니다.

이미 1990년대 스타 선수들은 은퇴를 했거나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종범은 여전히 현역 선수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종범은 나이가 마흔에 도달하고 있는데 젊은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가르고 있다는 점에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종범이 대망의 500도루 기록을 달성하는 장면과 팬서비스로 2루 베이스를 들고 있는 모습

특히,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를 세계 속의 프로야구로 한단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1990년대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일본 등의 프로야구에 비하면 역사도 짧고 수준도 다소 낮은 편이었습니다. 이종범은 과감하게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해 후배들이 나아갈 수 있는 미래와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주니치 시절에 여러 병마와 싸우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 진정한 프로가 가야 하는 방향을 마련해준 것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박찬호가 진출하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승엽이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종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힘들지만 어려운 길에 도전했던 이종범. 그는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에 있어 하나의 '신화'입니다. 그리고 그 신화는 계속 될 것입니다. 이종범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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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과 일본이 WBC 세계야구대회에서 격돌할 때 부부가 따로 응원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의 가정입니다. 한일 커플의 부부에게는 딸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일본인 아내는 다른 스포츠는 담담한데 야구 만큼은 열정적으로 일본 국가대표팀을 응원했습니다.


평상시 한일 커플 부부는 금슬이 좋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야구 경기가 벌어지면 서로 이야기를 안합니다. 서로 상처를 줄 수도 있어 피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힘든 존재는 딸아이입니다. 어느 장단에 춤출 수 없는 아이의 심정이 오죽 하겠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고등학교 후배는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현재의 일본인 아내를 만났습니다. 둘은 동양인이라는 공통점도 있고 서로 새로운 미지의 땅에서 공부하는 처지라서 급속히 가까워 졌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후배(이하 K)는 장인과 장모의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일본에 가게 됩니다. 전통적인 사무라이(?) 정신의 일본인 장인은 한국인 남자와의 딸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K는 대한 남아의 기개를 가진 녀석이라서 장인을 설득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을 했습니다. 장인은 마지막 테스트로 일본의 전통 온천에 K를 데리고 갔습니다. 가장 뜨거운 온천탕에서 한국인 사위를 시험했습니다. 엄청나게 뜨거운 온천탕에서 얼마나 버티는지 시험한 것입니다.

K는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충남 금산에서 자랐습니다. 금산은 인삼으로 유명한 곳이라서 K는 인삼을 많이 먹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K는 체력이나 끈기가 대단했습니다. 그까짓 온천탕에서 버틸 수 있는 의지가 출중했던 것입니다. 장인은 한국인 사위가 엄청나게 뜨거운 온천탕에서 보여주는 K의 놀라운 인내력에 결국 두 손을 들었습니다.


[사진 세계일보 : 충남 금산의 인삼과 충북 영동의 와인을 연결한 와인인삼 열차 모습]


K와 일본인 아내는 캐나다에서 살게 됐습니다. 그러다 K는 한국의 대기업에 스카우트가 됐습니다. 그러다 일본 법인으로 발령이 나서 몇년을 일본에서 보냈습니다. 장인과 장모는 마을 사람들에게 한국인 사위를 무척이나 자랑했습니다. 욘사마가 일본에서 뜨면서 한국인 사위 K는 욘사마와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 후 다시 한국 본사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처음 살게 된 일본인 아내는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힘들었지만 주변 이웃들과 친해지면서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문제는 부부 싸움입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하던 아내가 K를 억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K는 영업직이라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때 마다 아내는 주변 이웃들에게 들은 한국 남편 길들이기(?) 정보를 바탕으로 K를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신혼 초기에도 부부 싸움이 간혹 있었는데 당시는 각자 못알아듣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각각 이야기했다는데 지금은 언어를 다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부부 싸움을 할 때면 딸아이는 고민이었습니다. 딸은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딸아이는 한국인 아빠의 편을 들 수도 없고, 일본인 엄마의 편을 들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가 선택한 것은 철저한 중립입니다. 부부 싸움이 벌어지면 딸아이는 조용히 자기 방에 가서 공부하는 척 했습니다. 공부하는 딸아이 때문에 부부는 싸움을 멈춰야 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교육열이 강해서 아이의 공부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자제하기 때문입니다.

딸아이로 인해 한일 커플 부부는 싸움을 할 수가 없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부부가 한국과 일본을 응원합니다. 딸아이는 역시나 중립을 지킵니다. 그 이전에는 야구 경기를 갖고 다투었던 부부가 티를 내지 않고 마음으로 응원하게 됐습니다. 서로 응원하다 싸움이라도 붙으면 딸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한일 스타 커플 1호 : 가수 김정민과 일본 가수 타니 루미코 부부]


그런데, 영특한 딸은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아빠 편입니다. 그러나 엄마와 함께 있을 때는 엄마 편입니다. 그러니 아빠와 엄마는 딸아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조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한일 커플의 딸아이가 영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딸아이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을 구사합니다. 아무래도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장점 중의 하나인 듯 합니다. 그런 딸아이는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보배입니다. 한일 커플의 아이가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일찍이 깨달은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대결로 긴장했던 WBC 결승전은 조용히 각자 한국과 일본을 응원했다고 합니다. 딸아이의 무서운 눈치가 두려웠던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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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조직위원회가 발표한 올스타 명단입니다. 대한민국은 전체 12명의 포지션별 명단 중에서 총 4명으로 국가별 1위, 일본은 3명으로 2위입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1위인 것입니다.

내 야 수  : 김태균 (대한민국) 이범호 (대한민국) 지미 롤린스 (미국) 호세 로페스 (베네수엘라)

외 야 수  : 아오키 노리치카 (일본) 프레드릭 세페다 (쿠바)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쿠바)

포     수  : 이반 로드리게스 (푸에르토 리코)

지명타자 : 김현수 (대한민국)

투    수  : 봉중근 (대한민국) 마쓰자카 다이스케 (일본) 이와쿠마 히사시(일본)


국가별 올스타 숫자입니다. 우리나라가 4명으로1위입니다.

대한민국 : 4명(김태균 이범호 김현수 봉중근)

일본 : 3명

쿠바 : 2명

푸에르토 리코 : 1명

미국 : 1명

베네수엘라 : 1명


WBC 조직위원회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16개국 중에서 이번 대회 각 포지션별로 두각을 드러낸 선수들로 구성된 ‘올 토너먼트 팀’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각국 기자단의 투표로 만들어진 이 명단은 투수 3명을 포함, 총 12명으로 이뤄졌으며, 한국은 김태균 이범호 봉중근 김현수 등 16개국 중 최다인 4명을 배출했던 것입니다.

김태균은 이번 대회에서 타율 0.345(29타수 10안타) 3홈런 11타점을 기록해 1루수에 당당히 만장일치로 이름을 올렸고, 타율 0.400(20타수 8안타) 3홈런 7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른 이범호는 3루수에 뽑혔으며, 김현수는 타율 0.393(28타수 11안타) 7타점을 기록해 ‘올 토너먼트 팀’ 지명타자에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봉중근은 일본팀을 상대로 2승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이 0.51에 불과했습니다. 만일 투혼상이 있었다면 단연 이용규 선수입니다. 김태균은 김만장이란 별명도 얻을 듯 합니다.


한국, 세계 야구 랭킹 2위로 상승

이번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세계 랭킹 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제야구연맹(IBAF)이 WBC가 끝난 지 하루 만에 발표한 세계 야구 랭킹에서, 1월 발표 순위 779.82점으로 3위였던 한국은 WBC 준우승으로 160점을 더 얻어 939.82점을 획득, 미국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입니다. 1위는 여전히 쿠바이고 일본은 3위로 올라섰습니다. 세계 랭킹에서는 한국이 일본 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나라가 일본에 WBC 결승전에서는 아깝게 졌지만 진정한 승자는 한국입니다. 올스타 투표 결과나 세계랭킹 순위는 결국 한국이 우세한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야구와 국가 대표팀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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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WBC 결승전은 '숙명의 대결'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의 명승부였습니다. 아쉬웠지만 잘 싸웠습니다. 5판 3선승제의 한일전이 되어버린 WBC 대회라는 말이 나올 만 했습니다. 다저스타디움은 모처럼 관중들이 가득했습니다. 전체 5만 5천명 중 4만명 이상이 한국 관중이었습니다. 경기는 승부를 가려야 하지만 관중들에게도 스릴과 서스펜스의 한판이었습니다.

마지막 경기는 일본이 먼저 선취점을 내고 추신수가 1점 홈런을 날려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본이 2점을 보태 앞서 3대 1로 앞서 나갔습니다. 그러다 다시 우리팀이 1점을 8회에 보태고 9회말 2아웃에 이범호의 안타로 극적인 3대 3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10회에 이치로에게 통한의 결승타를 맞고 5대 3으로 패배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발 투수인 봉중근이 1점만 내주고 잘 막아주었습니다. 추신수도 홈런으로 메이저리거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한편으로, 일본 선발 이와쿠마 투수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이치로도 스타 선수로서의 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임창용 투수가 10회에 1루가 비어있는 2, 3루 상황에서 이치로에게 정면승부를 한 것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일본은 비신사적 플레이로 매너에서 졌다

일본이
7회말 1루 주자 나카지마가 2루로 달리다 더블 플레이를 막기위해 2루수 고영민의 송구 방해 반칙을 하는 등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한 것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고영민은 수비 방해에도 1루로 송구, 더블 플레이를 성공시켰지만 자칫하면 큰 부상을 당할 뻔 했습니다. 일본은 경기에서는 이겼지만 결코 이긴 것이 아닙니다. 매너에서는 이미 한국에 졌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쉬운 결승전 경기였지만, 우리나라 야구팀은 이번 WBC 대회를 통해 몇가지 큰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꾸려질 때 결승까지 갈 것은 예상도 못했습니다. 이번 WBC에서 한국 야구팀에 대한 그 의미를 짚어 봅니다.




한국의 젊은 선수들 '즐기는' 야구에 눈뜨다

이번 WBC 세계야구대회는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이 야구 자체를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존의 한국 선수들의 투혼과 함께 경기를 즐기면서 관중과 함께 소통하고 생기발랄한 신세대 선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과거 국가 대표팀 선수들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어서 다소 애처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적당한 긴장감은 좋지만 스포츠 경기를 로보트가 전쟁하듯이 임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어울리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야구를 즐길 줄 아는 한국팀 선수들은 앞으로 '야구가 즐기는 문화'로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네티즌들이나 관중들도 함께 즐기는 야구시대가 열렸습니다.(김태균은 3대 3 동점때 덕아웃서 몸개그를 작렬했는데 별명이 하나 더 생길 듯...)



빅볼 토털 야구를 통해 세계 중심에 서다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스몰볼'이라는 조롱을 받기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야구가 연일 홈런포를 가동하며 진정한 '빅볼'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김태균은 타점 단독 1위, 홈런 공동 1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빅볼 야구 뿐만아니라 잘 던지고, 잘 치고, 잘 달리는 토털 야구의 진면목을 과시했습니다. 한국 야구가 세계의 중심이 선 것입니다. 메이저리거 선수는 단 1명 뿐인 한국팀이 메이저리거 선수들이 즐비한 세계 주요 국가대표팀을 연파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토털 야구는 세계를 관통하고 그 중심에 계속 설 것입니다.



대한민국 야구의 '위대한 도전'은 계속된다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은 야구 교과서에는 볼 수 없는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WBC가 열리기 전, 기존 주축이던 박찬호, 이승엽 등 대표 선수들이 빠진 한국 국가대표 야구팀은 최약체의 팀으로 평가받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WBC 대회가 열리자 한국 대표팀은 경기가 진행될 수록 더욱 더 강해지는 최강의 팀이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김인식이 있었습니다. 잡초같은 야구 인생을 통해 달인의 경지에 오른 김인식 감독의 '위대한 도전'은 이제 대한민국 야구의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경기 불황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큰 즐거움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용규가 2루로 달리다 슬라이딩 도중 헬멧이 부서지는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WBC 경기 시스템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결국 일본의 우승을 위한 하나의 장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팀은 우승은 못했지만 세계 야구계에 의미심장한 획을 그었습니다. 메이저리거가 1명 밖에 없는 한국 대표팀이, 빅리거들이 즐비한 세계 야구 명가 국가대표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아무도 한국 야구를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최종 결승전에서 9회말 2아웃에서도 뚝심으로 동점을 만드는 장면은 커다란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비록 일본이 이겼지만 그들도 한국의 저력에 놀랐을 것입니다. 한국팀은 아직 젊습니다. 그리고 스몰볼의 일본 보다 더 경쟁력을 갖고 있는 빅볼 토털야구입니다. 한국야구의 '위대한 도전'은 계속됩니다.

감동적인 투혼과 열정을 다해 WBC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끌어낸 대한민국 선수들 28명과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코칭진 7명 등 대한민국 국가대표 야구팀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 동안 한국 야구팀이 있어 행복했던 20일이었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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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이 홈런을 친 뒤 덕아웃에서 음료수컵을 들고 있는 장면이 TV화면에 비추어졌습니다. 김태군의 투런 홈런 뒤 잠시 경기가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다저스타디움 좌측 외야 상단 대형 화면에 덕아웃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김태균의 얼굴이 잡혔던 것입니다.

다저스타디움을 찾은 한국인 관중의 함성이 커졌습니다. '김태균 김태균'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함성은 외국인들도 합세해 더욱 커져 다저스타디움이 떠나갈 듯 했습니다. 김태균도 대형 화면에 나오는 본인 얼굴을 확인하더니 수줍게 '씨익' 미소를 던져주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관중들은 물론 TV 중계를 시청하던 국민들에게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입니다.


오늘 경기의 백미는 김태균의 커튼콜 장면이었습니다. 다저스타디움의 관중들은 투수교체 타이밍 시간이라 잠깐 경기가 중단된 상황이니 김태균에게 다시 한번 얼굴을 보여달라고 함성을 연호한 것입니다.

LA 다저스타디움에 감동의 커튼콜 물결치다 

김태균은 음료수컵을 입에 물고 덕아웃 밖으로 잠시 걸어 나와서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미국 현지의 교포 관중 뿐만 아니라 미국 관중도 김태균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미국 프로야구의 상징적 경기장인 다저스타디움에서 김태균의 커튼콜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광경이었습니다. 관중들로부터 경기 중에 최고의 찬사를 받은 김태균도 연신 웃음을 보였습니다.


TV 시청을 함께 하던 아내도 감격스런 모습이라며 환호를 보냈습니다. 이번 베네수엘라와의 경기는 초반부터 압도적인 스코어로 앞서나갔기 때문에 긴장감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김태균의 커튼콜 장면은 하나의 보너스 선물과 같은 재미와 감동을 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커튼콜(curtain call)이란?
연극이나 음악회 등에서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들이 찬사의 표현으로 환성과 박수를 계속 보냄으로써 무대 뒤로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나오게 불러내는 일을 말합니다. 프로 야구에서도 연극이나 음악회와 같이 관중들의 함성과 연호에 따라서 선수가 덕아웃에서 경기장으로 나와서 다시 인사를 하는 경우 커튼콜이라 부릅니다.

결국 한국은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WBC 4강전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 초반에 터진 추신수, 김태균의 홈런포와 선발 투수 윤석민의 눈부신 역투에 힘입어 10-2 대승을 거뒀습니다. 추신수의 3점 홈런은 1회부터 압도하는 청신호였고 김태균의 2점 홈런은 승부에 쐐기를 박는 축포였습니다. 초반부터 큰 점수 차이로 앞서 나갔고 베네수엘라는 메이저리거 출신들로만 이루어진 최강의 전력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어이없는 실책을 남발하며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빅뱅의 노래 '원더풀'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김태균에 대한 4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태균, 국민타자 이승엽의 자리를 차지하다

김태균은 이번 WBC 세계 야구대회를 기점으로 국민타자의 반열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 동안 이승엽이 국민타자로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김태균 시대라고 할 만 합니다. 이승엽의 공백으로 국민 타자의 기근이었는데 김태균이라는 선수의 발견은 앞으로 우리나라 대표팀에는 큰 수확입니다. 김태균은 승부의 고비 마다 홈런포를 작렬시켜 4번 타자의 몫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WBC 대회에서 홈런 3개로 공동 선두입니다. 앞으로 결승전에서 홈런을 추가한다면 단독 1위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타점에서는 이미 11점으로 이승엽의 WBC 기록을 제치고 김태균이 가장 많습니다.

한국팀, 세계 야구 무대에 강팀 이미지를 쌓다

한국팀의 김태균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 야구 무대에서 장타를 날리는 팀컬러로 거듭 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 야구는 단타 위주의 팀으로 여겨졌습니다. 기동성과 단타 위주의 야구였기 때문에 세계 야구계는 한국팀을 '스몰볼'이라며 다소 낮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 야구는 김태균이라는 홈런 타자를 보유한 장타 위주의 강팀으로 포지셔닝된 것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반응도 과거와 달리 한국 야구에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네티즌 사이에 김만세 별명으로 불리는 김태균 모습]


친근한 4번 타자 이미지로 국민들의 사랑받다

김태균은 이번 커튼콜에서도 보여주었던 친근한 매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대형 화면에 자신이 비추어지자 미소를 보여주는 모습이나 관중들 앞에 나와서 인사하는 매너 장면은 그의 스타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김태균은 이미 인터넷 상에서도 네티즌들에게 김태균 별명이란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 대표팀 4번 타자 홈런왕이고 거구의 몸이라서 근엄하고 딱딱한 이미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 중에는 강한 승부 근성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귀엽고 친근한 모습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번 커튼콜 장면에서 김태균 선수의 인사를 빗대 '김인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지작했습니다.


[김박사 별명을 준 김태균 어린시절 사진]


한국 프로야구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다

우리나라가 세계 야구대회가 열리기 전에는 약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김태균을 비롯한 여러 신진 선수들이 많이 발굴됨으로써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적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재도약하는데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한국 국가 대표팀과 한결 가볍게 세계 무대에서 강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김태균이 있습니다.


오늘 경기를 보면서 김태균의 재발견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히 국가대표 4번 타자를 넘어서 세계인들이 인정한 세계적인 4번 타자의 면모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커튼콜을 받는 김태균의 모습에서 관중 그리고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감동의 모습은 야구의 묘미를 배가시켜주는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과거 보다 야구에 대해 다소 무관심했던 팬들도 앞으로는 더욱 더 관심과 성원을 보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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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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