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되면 군대 시절에 이맘 때 기억하기 싫은 추억이 생각나곤 합니다. 약 20년전 말년 휴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친구들과 귀대를 앞둔 전 날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술도 한잔 걸쳤습니다. 당시는 밤 12시까지만 영업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밤 12시가 되기 전에 친구들과 헤어졌습니다.

제가 휴가를 맞아 기거하던 친척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걸어서 친척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다시 걸어가는데 여자의 비명 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젊은 여성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냥 가던 길을 갈까 생각하는데 또 그 여자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제가 걷던 인도의 반대편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듯 했습니다. 도로를 건너 반대편 인도로 갔습니다. 여자의 비명이 골목에서 또 들렸습니다. 어두 컴컴한 골목이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이었습니다. 조금 무섭기도 하고 긴장도 됐습니다. 골목을 따라 깊숙히 들어가자 젊은 여성을 양아치로 보이는 자들이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양아치들은 약 4~5명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순간 양아치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눈을 피하지 않자 양아치들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넌 뭐야? 야, 꺼져."
"너희들은 뭔데 여자를 끌고 가는 거냐."

"이게 주글라구..."
"존말할 때 여자를 풀어줘라."

그러자 양아치의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저는 주먹을 피하고 원투 스트레이트 카운터 펀치를 날렸습니다. 양아치 한 명이 쓰러졌습니다. 당시 DMZ 수색대에서 갈고닦은 특공무술을 발휘했습니다. 그 전에는 권투선수였던 삼촌으로부터 배운 권투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장 양아치가 쓰러지자 나머지 양아치들이 놀라서 여성을 놓아주었습니다. 여성은 재빨리 골목길에서 큰 길로 도망갔습니다.

나머지 양아치들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날렸습니다. 그러자 양아치들이 혼비백산해 골목길 깊숙히 도주했습니다. 양아치들이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다시 골목길에서 인도 쪽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친척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그런데 뒷쪽에서 뭔가 수상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뒤돌아 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대편 인도로 가기 위해 육교를 건넜습니다. 그 후 기억은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이 들어 깨어보니 병원이었습니다. 온 몸이 아프고 얼굴과 머리에는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누군가 말을 걸었습니다. 삼촌이었습니다.
"정신이 드냐? 괜찮냐?"
"예, 괜찮아요. 머리가 좀 아파요."

옆에 누가 있었습니다. 삼촌은 형사라고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젯밤 기억나세요?"
"잘 기억이 안나요.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됐나요?"

"육교 근처의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다고 경찰서로 신고가 들어왔어요. 어제 밤 어디까지 기억나세요?" 
"골목 길에서 어떤 여자가 끌려가는 것을 구해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 후로 생각이 안납니다."

대강 유추해 보면, 친척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양아치들이 미행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육교를 건널 때 양아치들은 도로를 건너와 숨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아치들은 각목으로 제 뒤통수를 가격했습니다. 그대로 저는 기절했습니다. 길바닥에 쓰러진 저를 양아치들은 마구 구타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처가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양아치들은 어두운 골목길에 봤기에 인상착의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양아치들이었다는 사실만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깨어난 그 날은 말년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귀대하는 날이었습니다. 형사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저를 두고 돌아갔습니다. 저도 아픈 몸을 이끌고 군대에 복귀했습니다.



군 부대에 복귀한 날부터 계속 잠만 잤습니다. 각목으로 구타당한 충격으로 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말년 병장인지라 후배들이 식사 시간 마다 짬밥(식사)을 챙겨다 주었습니다. 저는 막사에서 잠을 자거나 식사 시간에만 잠시 일어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막사 밖을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는 가을이 일찍 다가왔습니다. 한 여름과 초가을에는 독사는 독이 가득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군대에서는 뱀을 많이 잡아봤지만 전역 후에는 전혀 잡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말년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저에게 후배가 말했습니다.
 "지나가는 뱀을 잡아서 놀다가 병원에 간 말년도 있었답니다. 뱀 조심하십시오."

군 제대 후 어두운 골목길에 몰려있는 양아치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서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말년 휴가 때의 아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젊은 시절에는 의협심에서 나쁜 일을 보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양아치들이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그런 경우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냥 모른 체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물론 위험한 상황이라면 경찰에 신고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지금도 당시의 상처가 얼굴 가장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혼자서 여러 양아치들은 상대한다는 것이 무모할 수도 있지만 젊은 시절의 정의감에서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도 말년 시절에 후배가 했던 '지나가는 뱀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곤 합니다. 
"구르는 낙엽도 말년에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답니다. 낙엽 조심하십시오."

(교훈)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영화에서는 구해준 여성이 남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애틋한 사랑이 싹트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당장 위험으로부터 도망가기 급급합니다.ㅠ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