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남자들 중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대부분 태권도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군대에서 태권도로 인해 많은 추억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아픈 기억이지만 지나면 추억이 되나 봅니다.
 
지난 1980년대 군대는 다소 무지막지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수색중대 백골소대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소대장의 특명이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1주일 후 태권도 승단심사가 있다. 신병들은 모두 통과하도록 한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1주일 연습하고 태권도 승단 심사를 통과하라니.' 당시 소대에는 이미 1~2주 전에 자대배치를 받은 신병 고참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수색소대는 비무장지대 투입 전 훈련을 앞두고 대거 신병을 뽑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는 단 1일만 군번이 빨라도 고참 대우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동기 J는 소대의 막내였습니다.

아침부터 태권도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교관인 병장 고참이 소리쳤습니다.
"사회에서 태권도 해본 사람 있나?"
"네, 일병 J. 해봤습니다."
(참고로, 전초수색중대는 DMZ 출입 특수성을 감안해 처음부터 이병은 건너뛰고 일병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몇 단인가?"
"2단입니다."

"다른 운동도 잘하는 것 있나?"
"검도가 3단입니다."

제 동기 J는 곧바로 열외가 됐습니다. 그리고 태권도 조교가 됐습니다. 저는 엄청 부러운 눈길로 J를 바라봤습니다. 소대 단위 생활이니 뭔가 잘하면 특별히 열외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 바둑을 좀 두었기에 고참이나 외부에서 장교 방문시 담당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날부터 지옥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바로 다리찢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조교 1명이 다리를 벌리고 교관이 위에서 어깨를 눌러버렸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루종일 다리찍기만 계속 했습니다.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이 계속 됐습니다.

동기 J는 저를 보면서 안타까운 눈빛만 보냈습니다. 그래도 J가 있어 든든했습니다. 한 마디라도 서로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8월말의 태양 햇살은 낮에는 엄청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강원도 산악지대라 밤에는 매우 추워졌습니다.

저녁에 계곡의 냇가로 씻으러 갔습니다. 하루종일 퇴약볕에 굴러서 온 몸이 땀과 흙에 쩔어있었습니다. 신병 고참들이 옷을 벗었습니다. 그런데 허벅지 뒷부분이 모두 시퍼랬습니다.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거의 발목 뒤에서 엉덩이 부근까지 파랗게 피멍이 든 모습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태권도때문이었습니다. 저희 보다 일찍 온 신병 고참들은 그 전부터 태권도 훈련을 받았던 겁니다. 그런데 강제로 다리를 찢다보니 실핏줄이 다 터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리가 피멍으로 얼룩졌던 것입니다. 정말 온 몸이 오싹한 모습이었습니다. 눈으로 그 광경을 보면 아찔합니다. 그 다음날 저도 그렇게 피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일주일 간의 연습이 계속 됐습니다. 다리찢기에서 시작된 태권도 훈련은 발차기를 비롯 품세와 대련 등 전과정을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단 심사의 날이 됐습니다. 중대장은 최전방이다보니 태권도 승단 심사는 1년에 1번 기회가 올까말까 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수색중대에서 20명 정도가 승단 심사를 봤던 것 같습니다. 짧은 훈련으로 과연 승단이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절반 정도는 승단에 성공했습니다. 저는 보기좋게 탈락했습니다. 1주일 훈련으로 승단한다는 것도 기적을 꿈꾸는 일이었습니다. 얼차려 엄청 받았습니다. 탈락도 서러운데 얼차려까지. J는 그 날 저에게 많은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러나 그 날이 한이 되었습니다. 태권도 최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날 이후 매일 남몰래 태권도 훈련을 했습니다. 새벽이나 저녁에 혼자서 나무를 세워두고 발차기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거의 거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서 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언제나 태권도 수련은 빠짐없이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중대본부에 특별 휴가를 받아 하루 묵게 되었습니다. 중대장이 갑자기 전원 소집했습니다. 휴가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태권도 심사가 갑자기 있으니 모두 다음 날 심사에 참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태권도는 부대의 전투력측정에 포함되는 항목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합격하라는 특명이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태권도 심사를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태권도 대련은 자신있는데 품세는 문제였습니다. 혼자서 품세는 연습할 수 없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발차기는 자신있게 했습니다. 다행히 품세는 여러 사람이 함께 했는데 자리가 뒷줄이었습니다. 반 박자 늦게 앞 사람을 따라서 했습니다. 반 박자 동작은 늦었지만 힘있고 화려한 절도와 기술은 자신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특공무술도 마스터한 상태라 기술은 저를 비롯한 수색중대 요원들이 모두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대련이었습니다. 가장 자신있는 종목입니다. 그 동안 산 속에서 혼자 갈고닦은 발차기가 있었기에, 저는 뒤돌려차기, 이단옆차기 등 공중을 붕붕 날아다녔습니다. 저와 대련상대인 K병장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탐진강, 살살해. 누구 죽일 일 있냐."
"그럼, 한번씩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가면서 합시다."

결과는 합격입니다. 그 동안 한을 갖고 연습했는데 아주 쉽게 승단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여러 상념이 감돕니다. 대한민국 군대에 다녀오면 유단자가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나 봅니다.

지금은 군대에서 태권도가 예전 만큼 필수적인 승단 심사 항목이 아닌 곳도 있다고는 합니다.
그런데, 과거 80년대는 태권도가 전투력측정의 평가대상이라서 군부대마다 가산점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대장은 부대원들의 태권도 승단 결과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입니다. 그 유래는 군대에 전투력 증강의 필수훈련으로 태권도가 채택된 것은 박정희 군사쿠데타 정권 집권 초기 시절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승단하지 못하면 병장 진급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특히 군대에 갔다오면 태권도 유단자가 많은 이유입니다. 사실 군화만 신어도 태권도 1단이라는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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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kkuldanji.tistory.com BlogIcon 마음의꿀단지 2009.09.23 13:15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단증가지고 군대가신 분들이 부러웠었습니다^^

  3. Favicon of http://nkpower.textcube.com BlogIcon 모난돌 2009.09.23 14:0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전 승단심사가 있을 때마다 일이 있어서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육군 병장 현역 제대를 했음에도 무단이네요. ^^ 같이 있던 동기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인사과였고, 인사과는 무조건 합격이더군요. 좀 씁슬하데요....

  4. Favicon of https://cansurvive.tistory.com BlogIcon 흰소를타고 2009.09.23 16:40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으흑... 군대 태권도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ㅠㅠ
    저희때는 단증이 있어도 군대에서 인증심사를 받아야 해서... 차라리 없다고 하고
    초단심사를 받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5. Favicon of https://milyung.tistory.com BlogIcon 미령 2009.09.23 17:35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저희 부대는 뭘까요... 중대에서 한명인가 두명인가만 1단 땄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탈락...
    으... 그 겨울밤에 맨발로 하던 훈련이 생각나네요... 으으으ㅇㅎ

  6. Favicon of https://boskim.tistory.com BlogIcon 털보작가 2009.09.23 18:49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군대서 태권도 하기싫어서 요리조리 빠져 다녔더니 결과는......ㅎㅎ

  7. xjrnjseh 2009.09.23 20:1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원래 태권도는 검은띠따고 시작되는거야.

  8. Favicon of https://myeurope.tistory.com BlogIcon merongrong 2009.09.23 21:44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일주일만에...털썩... 고생하셨어요~~~~

  9. Favicon of https://mulpasnam.tistory.com BlogIcon 파스세상 2009.09.23 21:53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저는 열흘만에 품세 외우라고 해서 고생했던 옛 기억이 나네요.
    다행히 아는 품세를 시켜서 ㅋㅋ

  10.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2009.09.23 22:2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큰애는 공군,막내는 육군이었는데 ..태권도 이야기는 못들어 봣던 것 같습니다.^^

  11. Favicon of https://ebizstory.tistory.com BlogIcon 강팀장 2009.09.23 22:39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저도 군대 다녀와서 졸지에... 태권도 1단 단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 군대에서 재수 좋게... 2장을 하고.. 앞차기 옆차기 심사로 단증을 땄었습니다. ^^

  12. Favicon of https://pplz.tistory.com BlogIcon 좋은사람들 2009.09.23 23:05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오후 4시만 되면 연병장에 집합해서 땀뻘뻘 흘리며 태권도 연습한게 색악나네요.ㅋ

  13. Favicon of https://gallow.tistory.com BlogIcon 겔러 2009.09.23 23:05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어휴 저는 후방이어서 천만다행이었네요

  14. Favicon of https://boring.tistory.com BlogIcon 보링보링 2009.09.24 01:36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동창이 수색대를 다녀왔는데요..
    무슨 사진보니 동그란 링에 불붙이고 통과하는 것까지 하더라구요..정말 놀랬어요~ㅋ

  15. Favicon of https://realog.net BlogIcon 악랄가츠 2009.09.24 04:06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하하 저는 승단심사가 있을 때마다
    휴가, 파견등으로 요리조리 빠져나갔답니다 ㅋㅋㅋ
    한번도 안했네요~! ㄷㄷㄷ

  16. Favicon of https://pinkwink.kr BlogIcon PinkWink 2009.09.24 06:38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ㅎ.. 전... 태권도때매 휴가도 한달 밀렸었지요..
    에구.. 도대체 ... 왜그리 품새외우기가 안되던지...
    저희 부대는
    여름에 1시간반정도 오침시간이 있었는데
    무단자는 그 시간 태권도해야하거든요.. 그 설움이란~~~^^

  17. Favicon of https://renjulike.tistory.com BlogIcon 눈길에발자욱 2009.09.24 07:33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80년대 군대다녀오셨어요 전 01군번 수색대인데 그땐 이등병이 없었나봐요?

  18. Favicon of http://totoma.tistory.com BlogIcon 초리 2009.09.24 08:5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태권도 단증을 어렸을적 도장 다녔을때 초단을 군대갈때 단증으로 바꿔서
    다행이 군대에서 태권도를 안했습니다.
    물론 옆차기나,다리 찧기는 가능 하게끔 미리 준비를 했죠.
    자세 나오겠다. 다리도 잘 찧겠다. 단증도 있겠다. 당근 열외죠..
    어렸을적 태권도 학원 돈이 없어서 원장 안마 해주면서 다녔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어머니가 매번 편지를 써주면서,편지 내용은 뻔하죠.
    돈이 없다...그 봉투를 관장에게 갖다 주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었죠..
    그 편지를 본 관장은 꼭 저를 안마를 시켰죠..^^;
    그때 생각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좋은 추억을 환기 시켜 줘서 고맙네요 ^^*

  19. Favicon of https://multiwriter.co.kr BlogIcon 멀티라이터 2009.09.24 16:19 신고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군대가 누구나 갔다가 누구나 나오는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살기위한 (?) 치열함이 있는것 같아요.

  20. 병신 2012.02.25 13:1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군대가다오면 유단장 병,신유감을떨려요,ㅉㅉ
    깡방 가다오놈들이 더태권도 잘하지라

  21. 조이 2014.02.28 03:3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군대 태권도는 사회태권도와 다르게 자세보단 각을 더 중요시 한다는거죠 자세가 조금 안좋아도 각이 좋으면 1단정도는 웬만하면 주죠
    그리고 사회태권도는 주로 발등 발바닥으로 찬다면 군대태권도는 앞꿈치 뒤꿈치 옆날로 찬다는게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