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서울에서 유학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습니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의 도움으로 유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는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던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저는 방학 때 마다 시골에 돌아가 일손을 거들었습니다.
한 겨울에 산 비탈에서 표고버섯 재배를 위한 참나무를 베고 종균을 넣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산으로 부모님과 일을 하러 가는데 고향 친구의 아버지가 나와계셨습니다. 건강이 좋지않은 분이었습니다. 지나가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지게에 나무를 지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집 앞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슬프게 울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당시 저는 난생 처음으로 상여를 메고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마지막 의식에 최소한의 도리였습니다. 그 때가 1980년대 초반경이었습니다.
유년시절 꽃상여의 기억과 허망한 인간의 삼과 죽음
어제 저녁에 큰 처형이 입원한 암센터에 갔습니다. 말기암이었던 큰 처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실을 찾았습니다. 큰 처형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처가 식구들을 슬픔 속에서 쾌유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함께 기도하며 곁에 서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직감적으로 큰 처형이 운명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통한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서글펐습니다.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고인이 하늘나라에서는 아무 고통 없이 편안히 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인생에서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번뇌가 뇌리를 감싸고 돕니다.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허망한 사람의 일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년 시절의 꽃상여의 기억은 이제 흰 국화꽃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고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국화꽃을 바치고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례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이 흰 국화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자리에는 흰 국화가 놓여 있습니다. 왜 우리는 흰 국화를 고인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헌화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몇십년 전만 해도 꽃상여를 메고 향을 피웠습니다.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전통이 서구문화로 급속히 대체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과 100여년전 구한말 개화기에 처음 전해진 문화인 셈입니다.
하얀 소복과 꽃상여가 검은색 상복과 흰 국화로 바뀐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전통이 간소화한 서구 문화에 자리를 내준 셈입니다. 국화는 고결, 엄숙의 의미가 있고 검정색은 죽음을 뜻합니다. 경건하고 엄숙한 장례식에 국화가 갖는 의미는 각별한 것입니다.
고결함과 엄숙함의 국화꽃을 바치는 인간의 역사
그런데 국화가 인간의 장례에 사용되는 관습은 매우 오래된 역사입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영에 이미 국화가 장례식에 사용된 흔적이 있습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이 그 지역입니다. 샤니달 유적에서 출토된 네안데르탈인 시신 주변에는 여덟 류의 꽃이 담겨진 화분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20만년전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인 네안데르탈인이 이미 꽃으로 치장하고 헌화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운 장례 관습은 오랜 세월을 흘러왔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약 4만년전 구석기 시대에 국화가 장례에 사용된 흔적이 나타납니다. 지난 1979년 충북 청원군 두루봉에서 구석기 동굴인 '홍수굴'이 발견되었는데 다섯 살배기 어린 아이 유골도 함께 출토됐는데 유골 위에 고운 흙이 뿌려져 있었고 그 흙 속에서 국화꽃 가루가 나왔다고 합니다. 고인의 안락한 사후 세계를 위한 관습일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죽음 앞에서 국화꽃을 헌화하는 것이 고귀한 행위였던 셈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우주 속의 별먼지로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슬프지만 고인을 생각한다면 그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고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흰 국화꽃을 바치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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