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5.30 김명곤 김제동의 노제, 노무현 유서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47)
  2. 2009.05.23 터미네이터 4, 한국계 문블러드굿 빛났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45)
  3. 2009.04.26 내가 본 최악의 프로야구 LG vs 롯데 '코미디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37)
  4. 2009.02.19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가 돌아온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시청앞 서울광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서울광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노제가 열린 것은 민주주의의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광화문-서울광장-남대문에 이르는 거리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는 60만명에서 100만명은 되어 보였습니다. 2002 월드컵이나 지난해 촛불집회 보다 사람들이 촘촘하게 밀도높게 모여있어 이번 노제가 훨씬 더 많은 듯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노제의 총감독은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제의 사회자는 방송인 김제동이었습니다. 주로 연예프로 사회자인 김제동과 전통예술 문화의 아이콘인 김명곤 감독이 함께 노제를 진행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해 보인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네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불과했습니다. 아니 기우였습니다. 노제는 우리 일반 사람들 즉 국민들의 눈높이와 맞닿은 '사람 사는 세상'의 마당과 울림이었습니다. 남녀노소가 하나였습니다. 지역도 성별도 차별이 없었습니다. 특권도 없었습니다. 노무현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김명곤 총감독의 노제 컨셉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였다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기 직전에 경호원과 나누었던 대화의 한 대목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김명곤 감독은 이에 대해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그 취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고인은 언제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몸을 바쳤고, 싸웠고, 분노했고, 도전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비전이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과 조롱과 저주에도 꿋꿋이 버터 오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겸손한 존중심과 높은 윤리관과 엄격한 도덕율이 있었기에, 그 드높은 이상에 상처를 입힌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부엉이바위 아래 몸을 던지신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노제에는 6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했다

이 자리에는 방송인 양희은, 윤도현의 YB밴드, 가수 안치환 등이 나왔습니다. 대중 연예인들의 식전 행사 이후에는 국악인 안숙선 명창 등이 등장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편안히 가실 수 있도록 씻김굿 등을 보여주었습니다. 전통 문화와 현대 대중 문화의 마당이 하나로 어우러진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고인이 즐겨부르던 '상록수' 노래를 양희은이 부를 때는 사람들도 함께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양희은은 지난 2002년초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때에도 '상록수'를 국회에서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이 날 특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은 김제동의 '노무현 유서'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김제동이 가수 안치환과 민중노래패 ‘우리나라’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김제동은 “도저히 원고대로는 못하겠습니다. 그냥 제 가슴에서 느끼는 대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김제동의 말들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명문으로 남을 듯 하여 김제동이 한 말들을 옮겨 봅니다. 김제동 감동어록으로 회자되고도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이 당신에게 진 신세가 너무도 큽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 분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 분으로 인해 받은 행복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짐 우리가 오늘부터 나눠지겠다고 다짐합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슬퍼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슴 속, 심장 속에 한조각 퍼즐처럼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미안해 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이야 말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운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님의 뜻을 저희들이 운명처럼 받아들고 가겠습니다.

화장하라고 하셨습니다. 님을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태우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의 마음 속의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가슴 속의 열정으로 남기겠습니다.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 가슴 속에도 조그만 비석 하나씩 세우겠습니다.
 
김제동은 이 외에도 사회를 보면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말들로 사람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달래 주었습니다. 양희은의 ‘상록수’가 끝난 뒤 "누구도 돌보지 않아도 이 땅에 상록수는 자라납니다. 먼훗날 우리의 자손들이 ‘그 분은 왜 돌아가셨냐’고 물으면, 우리 가슴에 아직 상록수로 살아 있다고 답합시다." 그리고 YB의 ‘너를 보내고’가 끝난 뒤에는 "이제 저희들은 먼산 언저리마다 그 분을 놓아드렸습니다. 흐린 날도, 맑은 날도, 비오는 날도, 눈오는 날도 그 분이 계시는 곳을 향해 창문조차 닫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그 시간이 짧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오래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역사의 문턱을 넘고자 했던 그 분의 마음, 그 마음이 우리들 속에서 지켜지기를 바랍니다."라며 눈물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대중 연예인들을 정치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대중 연예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제동의 경우는 다른 사례와 특별히 다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서거했고 고인은 김제동과 인연도 있었습니다. 지난 2006년 5월 5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어린이날 방송 행사에서 사회를 본 적도 있었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남다른 감회가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은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 땅의 서민들 그리고 일반 대중 국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가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 자리는 민주주의의 마당이었습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마당에 모여 때론 함께 웃고 때론 함께 울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날의 서울광장은 사람들이 고인을 떠나보내는 마당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입니다.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 위 맑은 하늘에 갑자기 무지개구름(채운)이 떴다

부엉이 바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했지만 서울광장에서는 "여기 사람들, 우리 국민들이 모였습니다."라고 화답하는 자리였는지도 모릅니다. 하늘도 감동했는지 무지개가 잠시 비추다 지나갔습니다. 맑은 하늘에서는 때아닌 무지개가 비춘 것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으로 이해해 봅니다.

이제 노제도 끝나고 화장도 끝났습니다. 고인은 영영 이 세상에 육신이 없습니다. 김제동이 말했듯이 고인은 우리 가슴 속에 새겨진 작은 비석으로, 그 열정으로 살아있을 것입니다.
 
<추가> 오늘 새벽에 경찰이 다시 서울광장의 마당을 봉쇄했다고 합니다.ㅠㅠ
새벽에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도 경찰은 강제 철거했다고 합니다.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강제 철거한 경찰은 영정도 내팽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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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개봉일에 영화 '터미네이터4 - 미래전쟁의 시작'을 단체 관람했습니다. "I`ll be back"의 명대사가 그리웠던 터미네이터가 6년만에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이 영화는 2억 달러(한화 약 2500억원)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추억을 음미하면서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실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컴퓨터그래픽(CG)의 현란한 기술과 박진감은 그 동안 그래픽 기술의 진보를 실감케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했던가.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발전에 비해 인간의 구성 능력은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맥지 감독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도대체 주인공이 누구였지?"

그러면 터미네이터4의 기억 속으로 다가가 나름대로 느낀 이야기를 전할까 합니다. 우선 주인공인 존코너(크리스찬 베일)의 역할 보다 마커스(샘 워싱턴)의 모습이 더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영화 속에서 존코너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많지만 강렬한 무게감은 마커스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존코너는 혼자서 종횡무진 활약을 하지만 묵직한 마커스의 모습에 비해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본 후 사람들은 '도대체 주인공이 누구였지?'하는 반응을 하기도 했습니다.

"CG는 역시 화려했다"

터미네이터의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이 영화는 컴퓨터그래픽(CG)의 화려한 향연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힘은 CG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없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영화를 본다면 터미네이터의 CG의 화려함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시종일관 심각한 모드의 영화이지만 가끔 웃기는 장면도 나옵니다. 저항군 대장인 존코너와 스카이넷의 본부에서 대결 장면에 잠시 나온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아놀드의 얼굴과 몸매는 컴퓨터 그래픽 합성 장면이지만 아마도 팬서비스로 설정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존코너가 'I`ll be back'이라고 하면서 스카이넷 본부로 혼자 떠나며 말한 대사도 마찬가지로 터미네이터 전편들의 추억을 암시하는 설정일 것입니다. 진지한 영화 속의 약간의 조미료같은 요소였습니다.

"블러드굿, 여전사 역할 인상깊었다"


최근 코스폴리탄 표지로 등장한 문블러드굿과 과거 맥심 표지 모델로 나왔던 문블러드굿 사진 모습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동양계 영화배우인 것 같은데 상당히 매력적인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문블러드굿은 한국계 혼혈 배우였습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문블러드굿은 맥심이 선정한 '가장 섹시한 100인’에 3년 연속 이름을 올린 명성을 이미 갖고 있었습니다. 긴 팔과 다리, 글래머러스한 볼륨의 몸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매력을 발산하는 이국적인 마스크와 매혹적인 눈빛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문블러드굿은 이 영화에서 저항군의 여전사 '블레어' 역할로 나왔습니다. 스카이넷의 공격으로 폭파된 전투기로부터 비상 탈출한 블레어를 마커스가 구해주면서 두 남녀가 사랑이 싹틉니다. 그러나 저항군 본부에서 존코너에게 붙잡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연인(?) 마커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 구해내는 강렬한 여전사의 모습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블레어 역할로 나온 문블러드굿은 매력적인 여전사로 등장해 아마도 남성 관객들에게 더 인상깊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블러드굿이 터미네이터 4에서 비중은 존코너의 상대역 여배우에 비해 훨씬 돋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마커스와 문블러드굿이 주연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한국계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문블러드굿 이외에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트렉 - 더 비기닝’(감독 J.J.에이브람스)에서도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존조가 주연급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에이브람스 감독은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 김윤진을 발탁해 글로벌 스타로 성장시킨 감독이기도 합니다.)

"허무한 엔딩과 감독은 실망이었다"

터미네이터 4는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부족한 영화였습니다. 컴퓨터그래픽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엉성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영화 전체의 스토리나 연출력 그리고 관객설득력 등은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컴퓨터그래픽 전문가들이 잘 만든 영화를 맥지 감독이 망쳐버렸다는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특히 마지막 결말의 엔딩 장면은 억지스럽고 허무할 정도였습니다. 그 동안 흥미롭게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영화가 끝난 후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난 후 개운한 것이 아니라 찜찜한 것 같았습니다.



터미네이터 2의 감동을 생각한다면 이번 터미네이터 4는 실망감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SF 영화의 묘미와 컴퓨터그래픽의 현란한 움직임을 중심으로 본다면 그런대로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기대는 낮추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즐기면 괜찮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두번 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 같습니다. 다만 문블러드굿이라는 한국계 여배우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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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25일 방송 채널을 돌리다가 LG 대 롯데의 프로야구 경기를 보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프로야구를 즐겨봤지만 지금은 어쩌다 한번쯤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날 두 팀의 경기는 한마디로 '코미디'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경기 중 최악의 프로야구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기 결과, LG는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13개의 안타와 12개의 볼넷 사사구를 얻어 10 대 9의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LG는 롯데를 상대로 이틀 연속 승리를 거두며 상위권 도약의 희망을 키우게 됐습니다. 롯데는 초반 대량 실점했으나 막판까지 1점차 추격을 했지만 패배하며 최악의 6연패 수렁에 빠졌습니다. 

롯데는 전날에도 LG에 7대 6으로 8회 강우 콜드 패를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통탄할 일이기도 했습니다. 빗속에서도 자리를 뜨지않고 경기를 응원하던 롯데 팬들은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1회초 5타자 연속 볼넷 밀어내기 3실점' 롯데 투수맞아?

LG는 1회초 공격에서 프로 1군 데뷔전을 가진 롯데 선발 김대우의 제구력 난조를 틈타 손쉽게 밀어내기 만으로 무려 3점을 뽑았습니다. 김대우는 1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4번 페타지니 부터 8번 조인성까지 5타자 연속 볼넷을 허용하면서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1회초 LG의 3득점은 모두 밀어내기였다는 점에서 프로야구 역사에 진기명기로 남을 만 합니다. 롯데 야구팬이라면 비통할 일이었습니다.

실제 김대우의 5연속 볼넷 기록은 프로야구 최다 기록으로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MBC 청룡 투수 이국성이 지난 1989년 7월 29일 태평양 전에서 기록한 4타자 연속 볼넷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대우는 1회 3실점에 이어 2회에도 추가로 2실점을 더해 1과 3분의 2이닝 동안에 2개의 안타를 맞고 6개의 볼넷을 내줘 5실점한 뒤 조기강판 당하고 말았습니다. 김대우는 아마 이 날 경기가 가장 치욕적인 경기로 생각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감독이 왜 준비가 안된 투수를 선발로 내보냈는지 그리고 난조를 보인 1회에 빨리 교체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실책 남발, 양팀 모두 동네야구 하나? LG 8회 3개 실책?

이 날 경기는 양팀 모두 실책의 연속이었습니다. 유격수가 공을 잡았다가 1루로 송구하지 못하고 글로브에서 빠뜨리거나 1루수가 평범한 송구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펼친 야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실수들이었습니다.

LG는 1회초에 이어 2회초에도 안타와 볼넷 2개로 만루 기회를 잡은 뒤 최동수의 2타점 중전 적시타와 박경수의 좌전 적시타로 3점을 뽑아 일찌감치 승부를 갈라놓은 듯 했습니다. 그러나 롯데는 2회말과 3회말 1점과 2점을 뽑아 추격에 나섰습니다. LG는 5회초 조인성의 3루타에 이은 이대형의 내야안타와 박용택의 투런홈런으로 3점을 더해 또 멀리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롯데는 뚝심을 발휘했습니다. 롯데는 4 대10으로 크게 뒤진 8회말 뒤늦게 집중력이 살아나면서 2점차까지 따라붙었습니다. 김민성의 2타점 적시타가 터진데다 LG는 유격수 권용관과 1루수 페타지니가 실책을 연발하며 급격히 흔들렸습니다. LG는 8회말에만 무려 실책이 3개나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롯데는 역전을 눈앞에 둔 2사 1, 2루에서 강민호가 LG 마무리 우규민에게 삼진을 당해 뒤집기에 실패했습니다.

롯데는 LG보다 더 많은 15안타를 뽑았지만 투수진이 무려 12개의 볼넷 사사구를 남발하면서 결국 자멸하고 말았습니다. 롯데는 8 대 10으로 뒤진 9회말 이대호의 안타와 가르시아의 몸맞는 공으로 동점 기회를 잡은 뒤 1점을 추가했지만 2사 3루 찬스에서 김민성이 외야플라이로 아웃돼 역전에 실패했습니다. 전 날에 이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목놓아 응원하던, 롯데 팬들로서는 역전을 코 앞에 두고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롯데 15안타 맹타 불구, 감독의 용병술 부재로 패배?

이 날 경기는 롯데 감독의 전략 전술적 용병술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투수가 몸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 선발 투입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고, 출전 뒤에도 볼넷이 많고 제구력이 안될 경우 1회에라도 강판을 했어야 했고, 중간에도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어야 했으며 8회말 찬스에도 보다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 등 감독의 역할이 다소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경기 경과적으로, LG의 박용택은 이날 늑골 부상을 털고 2번타자로 시즌 첫 출전해 이름값을 했는데 6차례 타석에 들어서 5회초 2점 홈런을 포함, 3안타 2타점 2득점 맹타를 휘두르며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안치용도 3번타자로 출장해 4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습니다. LG의 4번타자 페타지니는 8회말 실책을 한 차례 하기는 했지만 볼넷을 3개나 얻어내며 2안타 2득점을 뽑았고 최동수와 박경수도 각각 3타점, 2타점씩을 기록했습니다. LG 선발 최원호는 5이닝 동안 7피안타 2사사구 4실점을 허용했지만 타선의 대량 득점을 등에 업고 시즌 2승째를 챙기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경기 전체를 지켜보면서 계속 '이건 프로야구가 아냐. 코미디야.'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양팀 모두 엉성한 플레이로 경기 내내 팬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이긴 LG도 겨우 이겼지만 프로답지 못한 실책이 많았고, 진 롯데는 볼넷을 비롯해 실수가 더 많았습니다. 감독이나 선수도 잘 하려고 했겠지만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경기는 선수들의 실수와 감독의 전략 부재 등이 어우러진 코미디였습니다. 경기를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재미일 수도 있었지만 다 보고난 느낌은 씁씀함이었습니다.

특히나 열성적인 응원을 보여준 롯데 팬들은 커다란 상처를 입었을 듯 합니다. 이 날 경기에서 진정한 프로는 롯데 야구팬들 뿐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직구장을 지키며 응원가를 계속 부르고 승리를 염원하는 롯데 팬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롯데 팬들에게 힘내시라고 위로라고 하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경기 내용을 중심으로 느낌을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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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리베로, 홍반장 홍명보가 돌아왔습니다.

홍명보는 20살 이하 U-20의 한국 청소년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옵니다. 지난 2007년 7월경 베어백 감독이 사임하자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을 물망에 오르던 홍명보 코치는 결국 감독이 되지 못합니다. 아마도 홍명보는 그 당시 논란의 가운데서 많은 상처와 번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홍명보 코치는 작년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후 올림픽축구대표팀 코치에서도 물러나게 됩니다. 홍명보는 여러 프로축구팀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의 J리그 프로축구팀에서 감독직 제안도 받았으나 "내가 가진 것을 한국 선수들에게 전수하고 싶다"며 거절했습니다. 역시 홍명보 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홍명보는 축구의 야인 생활을 합니다. 어린이 축구교실이나 홍명보장학재단 장학금 지원 등을 하기도 합니다. 홍명보는 일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무직생활'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홍명보에게 12살인 아들 성민이가 있습니다. 홍명보는 작년에 아들과 함께 산악인 엄홍길씨와 에베레스트 탕보체로 트래킹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돌아왔습니다. 선수가 아닌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입니다.

홍명보의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은 예정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홍명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입니다. 이미 대표팀 코치를 거쳤고 국가대표팀 시절에도 후배들을 카리스마로 압도하는 주장을 여러번 했습니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도 홍명보의 위상을 잘 알고 있었고 한국 축구 스타의 감독직 선임을 위한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청소년 국가대표팀 운영과 관련 홍명보 신임 감독은 " 조직적이고 공간을 활용하는 축구, 영리하면서도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축구를 보여주고 싶다 " 고 포부를 밝혔다고 합니다. 홍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 뒤 펴낸 자서전 < 영원한 리베로 > 를 통해 " 미래 축구스타를 꿈꾸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축구를 재미있게 즐기라는 것' " 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MB(명보) 시대? 홍명보가 싫어할까?

공교롭게도 홍명보의 영문 이니셜은 MB입니다. MB정부와 굳이 관련을 짓기는 어렵습니다. 우스개로 우리나라 축구계에 MB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홍명보 본인은 싫어할지 모르겠습니다.

홍명보는 이미 준비된 국가대표 감독인 것 같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한국 축구의 큰 자산인 홍명보 감독을 꾸준히 관리하며 키워왔다고 합니다. 정몽준 전임 축구협회 회장 때부터 협회 이사로 발탁돼 행정가의 길을 들어선 홍 감독은 아드보카트 감독 시절 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올림픽팀 코치를 거치며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홍명보의 카리스마, 독일 지단과의 악수]


따라서, 이번 U-20 국가대표축구팀 감독으로 선임된 것도 앞으로 우리나라 국가대표 감독으로 큰 일을 위한 준비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국개대표 청소년축구팀을 넘어 향후 성인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을 맡게 될 준비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현재 간판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지만 나중에는 홍명보가 될 가능성이 준비되고 있는 셈입니다.


홍명보로 인해 월드컵 4강 신화 한국 축구가 다시 부활할까?

홍명보는 그 자체로 한국 축구의 역사입니다. 국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스타입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더 높아질 것입니다. 사실 1983 멕시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신화를 이룬 사례를 제외하면 U-20 대표팀은 팬들의 큰 관심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감독 자리에 홍명보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겠지만 이제 홍 감독이 이겨내고 진면목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축국 선수 시절과 감독의 자리는 크게 다릅니다. 더욱 냉정한 평가가 감독직에는 있을 수 있습니다. 올해 9월에 예정된 이집트 청소년월드컵이 '홍명보호'에 대한 첫 시험대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감독직을 수행한다면 홍명보는 2012년 예정된 런던올림픽 감독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월드컵 4강 신화를 다시 한번 기대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홍명보는 이제 국가대표팀 감독도 영원한 리베로입니다. 아니 영원한 캡틴입니다. 홍명보 감독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홍명보가 돌아온 것은 그의 가슴에는 늘 조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홍명보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 프로필
①생년월일=1969년 2월12일
②출신교=동북고-고려대
③선수경력=92~96년(포항), 97~98년(일본 벨마레), 99~2001년(일본 가시와), 2002년(포항), 2003~2004년(미국 LA갤럭시)

④지도자 경력=2006년 독일월드컵 대표팀 코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코치
⑤주요성적=월드컵 4회 참가(90~2002년), A매치 통산 135경기 출전(9득점), 세계올스타 선정(94, 95, 97년), 2002년 한·일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 2002 FIFA 선정 월드컵 올스타, 2004 FIFA 선정 세계 100대 축구스타, K리그 MVP(92년), J리그 베스트11(2000년), 대한축구협회 이사(2009년), 한국청소년축구대표팀 감독(2009. 2.~) 

[수상경력]

1992 Ι K리그 최우수선수(MVP), 베스트11 수비수 부문 선정

1994 Ι K리그 베스트11 수비수 부문 선정

1994 Ι AFC베스트 수비수

1994 Ι 세계올스타 선발 한국대표

1995 Ι K리그 베스트11 수비 부문 선정

1995 Ι 세계올스타 선발 한국대표

1996 Ι K리그 베스트11 미드필더 부문선정

1996 Ι K리그 인기상

1997 Ι 세계올스타 선발 한국대표

1998 Ι 세계올스타 선발 한국대표

1999 Ι 센츄리 클럽 등록

2002 Ι FIFA선수분과위원회 위원

1990 - 1994 - 1998 -2002 4회 연속 월드컵 출장

2002    월드컵 브론즈슈 수상

2004-펠레가선정한 위대한100인의축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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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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