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8.09 내비게이션 믿다 교통사고, 최악 여름휴가 된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51)
  2. 2009.12.28 2cm 눈에 아수라장 된 서울 나들이 '분통터져', 왜 그랬을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87)
  3. 2009.03.14 김명곤 전 장관, "백지영 노래 듣고 눈물 흘렸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75)
  4. 2009.01.25 명절 폭설 길에 아가의 분유 물 찾아 삼만리 by 진리 탐구 탐진강 (26)


최악의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포함해 시골서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내려가는 고속도로에는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 꼼짝없이 주차장 신세였습니다. 조금 길이 풀린다 싶으면 이내 다시 거북이 걸음이었습니다.

서울서 천안까지 고속도로는 주차장과 같았습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만 무려 7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 후 천안부터는 고속도로로 풀렸습니다. 그런데 추월차선 앞에서 두 대의 자동차가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 앞에 있는 자동차가 그 앞의 차를 추월해 갔습니다. 저도 앞 차를 따라서 추월해 갔습니다.

그런데 추월당한 첫번째 자동차가 갑자기 제 앞을 다시 추월해 오더니 앞에 급속히 속도를 낮췄습니다. 놀라서 저도 속도를 낮췄습니다.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제 앞에 추월한 두번째 자동차를 제 차로 착각했는지 고속도로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세우고 인마살상용 수색대 시범을 보일까 하다가 아이들이 타고 있어 그냥 참았습니다. 

짜증나는 고속도로 운전은 11시간이 걸려 끝났습니다. 아침 6시 30분에 출발했는데 오후 5시가 넘어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가끔 운전을 번갈아 해줘 고생을 덜했습니다. 중간에 졸음이 와서 혼났습니다. 아내와 저는 기차를 이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사실 출발 전에 기차 또는 고속버스로 갈까 고민하다가 자가용을 이용한 터라 순간의 선택을 아쉬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산골 계곡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포함한 형제자매와 가족들이 모두 모이니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연례 행사 처럼 매년 휴가 때 마다 온 가족이 일정을 맞춰 모이기 때문에 가족애를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둘째 남동생 가족은 회사 일로 인해 일정을 맞추기가 여의치 않았지만 다행히 막판에 휴가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신났고 한우 꽃등심을 장작구이로 먹는 재미에 모두가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휴가를 보낸 저와 형제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출발 전 자동차를 살펴보니 네비게이션이 바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폭염에 자동차 유리에 붙여놓았던 네비게이션 거치대의 흡착력이 저하되면서 거치대가 유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가 떨어진 내비게이션을 유리에 다시 붙였습니다. 아침부터 내비게이션이 떨어지다니 불길한 예감이 스쳤습니다.

자동차를 몰고 산굽이를 돌아 큰 도로로 나왔습니다. 돌아가는 국도는 잘 뚫렸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횡단보도 앞에 잠시 섰습니다. 신호등이 바뀌고 출발을 하는데 갑자기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아내가 놀라는 외마디가 들렸습니다. 조수석을 순간 쳐다봤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다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자동차 정면을 응시했습니다. 앗, 어느새 눈 앞에 다른 자동차가 보였습니다. 급제동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멈췄습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 자동차를 충돌한 것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떨어지는 것을 본 순간 1~2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충돌한 차는 택시였습니다. 전적으로 저의 실수라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무더운 여름철 고온에 의해 거치대가 떨어져 위험하다

다행히 택시는 범퍼도 그대로 였고 외관상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에서 내려서 제 차를 보니 앞 범퍼를 비롯해 한쪽 헤드라이트 그리고 본네트가 일부 손상을 입었습니다. 택시 기사와는 합의를 보고 손해를 배상하기로 했습니다. 택시 기사는 자동차를 몰고 서울에 가서 수리를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사고 현장에 온 견인차 운전사는 정비를 맡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민하는데 아내는 안전하게 정비소에 맡기자고 했습니다.

결국 정비소에 맡기도 고속버스로 귀경을 결정했습니다. 아이들도 있어 안전이 우선인 선택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견적을 받아보니 큰 금액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수리하면 집으로 대리운전 기사가 가져다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됐습니다. 돈으로 따지면 아깝지만, 사람들이 다친 곳 없이 모두 무사하니 다행이라고 아내는 위로를 했습니다.

자동차를 산 지 5년 동안 무사고였는데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왜 떨어졌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이 떨어졌다고 순간 눈을 돌린 운전 부주의도 자책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요즘과 같이 태열 열이 강한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계속되는 기간에는 유리에 붙인 흡착식 내비게이션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여름철에 내비게이션이 떨어지는 것은 태양 열에 흡착력이 약해진 이유입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내비게이션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 신문에 실린 네비게이션으로 인한 기사 한 토막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직장인 배모 씨는 최근 내비게이션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퇴근 길 배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려 모서리를 도는 순간 내비게이션이 떨어지면서 이를 붙잡으려다 앞차와 접촉사고가 났던 것. 배씨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는데 그 짧은 2~3초 사이 그런 사고가 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저와 비슷한 사고 유형이었습니다. 배 씨의 경우는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철 내비게이션 거치대가 떨어지면서 이로 인한 교통사고였습니다. 겨울철 거치대가 쉽게 떨어지는 이유는 유리흡착식 거치대는 유리면에 붙이는 흡착판이 차가운 공기로 인해 딱딱해지면 흡착력이 약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런 상태에서 히터를 틀면 급격한 온도 차이로 흡착판 사이로 공기가 유입돼 더욱 떨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내비게이션 거치대 10개의 안전성을 테스트한 결과 2년 이상 사용한 4개 제품이 부착력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바 있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내비게이션 거치대 관련 불만상담도 매년 50여건에 달했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습니다. 이 중 60% 가량이 거치대가 떨어지거나 액정이 파손된 경우였습니다.
내비게이션과 관련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지켜야 할 몇가지 주의사항을 소개합니다.

내비게이션 주의사항 5가지



▷거치대는 소모품이므로 2번 이상 유리에서 떨어지면 신제품으로 교체한다

▷내비게이션 밑부분이 자동차의 대시보드에 닿도록 설치해야 한다
▷흡착판 부착 전 차량 앞유리에 묻은 습기나 먼지를 깨끗이 제거한다
▷차량 출발 전 거치대를 가볍게 당겨보며 부착상태가 양호한지를 확인한다
▷흡착판에 입김을 불어 따뜻하게 한 뒤 유리에 밀착한 상태에서 장착버튼을 눌러 단단하게 설치한다

사실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를 해주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운전 중 내비게이션에 신경을 쓰다보면 이에 집중한 나머지 운전자들이 각종 도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도 늦어져 교통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큰 것 같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운전의 편리성을 주지만 운전자들의 시선이 자주 가다보면 사고 위험성도 높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비게이션 사용시 주의사항도 조심해야 겠습니다.

유리 흡착식 내비게이션 거치대의 경우 운전자의 80% 이상이 거치대가 떨어진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무더운 여름철이나 추운 겨울철에는 거치대가 잘 떨어져 내비게이션 액정 파손이나 교통사고 유발 가능성이 큰 만큼 사용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네비게이션 배터리가 여름철 고온에 폭발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 상태를 항상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한 셈입니다.

아무튼 이번 여름휴가는 내비게이션 믿다가 오히려 교통사고가 발생한 사건으로 최악이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입니다. 자동차 수리비를 비롯해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습니다. 그나마 가족 모두 건강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겠습니다. 우리가 평소 방심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을 자주 점검하고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비 언니 너무 믿지 말고 조심 운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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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서울에 있는 큰아버지 집에 다녀왔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인사도 드릴 겸 점심 식사도 하고 올 심산이었습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내외 두 분은 모처럼 방문에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더 반갑게 맞이해 준 또 하나의 식구가 있었습니다.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은 애완용 강아지였습니다. 가장 먼저 문 밖까지 달려와 총랑대며 반겨주는 강아지가 귀엽기 그지 없었습니다. 두 딸은 강아지의 재롱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두 딸은 집에 데려가 살면 어떠냐고 졸랐습니다. 아내는 아파트에서 키우는 것도 어렵지만 보살피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부리는 것은 옳지않다며 두 아이를 달랬습니다. 큰아버지도 적적한 두 분의 살이에 강아지의 재롱이 좋으셨는지 아이들에게 양보할 마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큰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십니다. 저는 학창 시절의 상당 부분을 큰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지냈습니다. 큰어머니는 세탁소에서 식당에 이르기까지 거의 평생 동안 일을 해오셨습니다. 큰아버지는 한량이셨던 터라 큰어머니가 거의 집안을 지탱한 지주였습니다. 저는 큰어머니가 요리해 준 식사를 늘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 날도 뚝배기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아내와 두 딸도 큰어머니 음식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눈발이 시작된 직후 서울 나들이 중단하고 귀가를 서둘렀지만..

아이들은 식사 후 다시 강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는 생김새도 예쁘지만 어떤 사람이나 잘 따랐기에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 전에 키우던 애완견이 밖에 나갔다가 어떤 사람이 데려가버려 잃어버린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잘 키워야 하는데 사람들을 좋아하는 강아지가 아무나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습니다.

큰아버지와 잠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큰어머니가 밖에 눈이 많이 온다고 했습니다. 큰아버지는 날씨도 추운데 눈이 쌓이면 자동차 운전이 힘들 것이라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래서 예정 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밖으로 나와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발은 거셌습니다. 싸리눈이 영하 날씨에 녹지않고 그대로 쌓였습니다.



큰어머니가 시장에 가신다고 해서 도중 청량리에 내려드렸습니다. 서울 회기동에서 청량리를 거쳐 동대문 방향으로 행하는 벌써 도로가 꽉 막혀 있었습니다. 큰어머니를 내려드려야 했기에 종로를 거쳐 일산 방향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작 1cm 정도의 눈에 서울 도심으로 가는 길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도로가 엉망인데 교통안내나 제설작업하는 교통경찰이나 공무원도 없었습니다.

도저히 서울 도심을 관통해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도시 내부 순환 고속도로를 타기로 하고 차를 돌렸습니다. 종암동 방면으로 가는데 거기도 도로 사정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서울 전역이 엉망진창이 된 것 같았습니다. 겨우 내부 순환도로에 진입했습니다.

시속 6km 거북이 운행...교통 안내 및 기상 예보 부정확 혼란

그러나 내부 순환도로의 사정은 더 열악한 듯 싶었습니다. 순환도로에 진입하면 막힘없이 빨리 갈 것이란 예상은 보기좋게 어긋났습니다. 갑작스런 눈이 내리자 도로는 눈으로 덮이고 자동차들은 엄금엄금 기듯이 가야 했습니다. 기상 상황에 대해 뉴스에서도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상청에서 적절한 일기 예보를 못해 혼란이 가중됐고 서울시도 신속한 준비와 대처에 미흡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고작 시속 6km로 자동차를 달렸습니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걷는 속도 보다 못했습니다. 순환 고속도로가 아니라 거북이 도로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빠져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무려 2시간 정도를 순환 도로에서 거의 꼼짝없이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연희동 방향 진입로로 빠져 수색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시속 20~30km는 달릴 수 있었습니다. 큰 딸은 6km로 기어가다 30km로 달리다니 과속하는 것이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집까지 오는데 3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평소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습니다. 만일 계속 순환도로로 갔다면 1시간이 더 걸려 4시간은 걸릴 상황이었으니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날은 처가 가족들과 모여서 두루치기를 함께 먹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이미 처가에는 처남을 비롯 처제 등 가족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제 남편이 동서가 안보였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보니 분당에서 자가용 자동차로 오다가 길이 막혀 되돌아 갔다고 했습니다. 처제와 아들은 버스로 출발했으나 밖에서 일을 보고 오던 동서는 눈 길에 도저히 올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고생을 했던 터라 되돌아 갈 생각을 하면 차라리 안오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2cm 눈에 도시 마비 대혼란 발생...기상청과 서울시의 뒷북 대응

어제 27일 서울과 경기 일부의 교통 대란 대혼란은 완전히 당국의 안이한 대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상청에서 사전에 정확한 예보가 없었고 서울시의 대응도 뒤늦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날 눈은 약 2.6cm에 불과했다는데 이 처럼 혼돈이 발생한 것은 이미 교통이 마비되고 아수라장이 된 다음에야 부랴부랴 대처에 나선 서울시와 기상청의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기상청은 당초 서울 경기 지역에 오후나 밤 한 때 산발적으로 눈이 내릴 수도 있다고 예보를 했으나 눈이 확률은 60% 정도라고 했습니다. 당시가 눈이 오기 바로 직전이었는데 그 상황도 예측하지 못한 셈입니다. 눈의 적설량도 1cm로 예상했으나 그 보다 많은 2.6cm 정도였습니다. 기상청이 안일한 엉터리 예보로 눈에 의한 피해 가능성을 사전에 알려주지 못한 것입니다. 

눈이 온 후라도 날씨가 춥고 눈이 얼어붙어 도로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신속히 경보를 내렸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뒤늦게 허둥지둥 댔지만 이미 도로 교통이 마비된 이후였습니다. 연휴를 맞아 여행에서 돌아오던 시민들은 도로에 막혀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서울 도심과 전역은 물론 고속도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에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겨우 2cm 정도의 눈에 수도 서울과 경기 지역의 도로가 아수라장이 된 것은 안타깝습니다. 당국의 늑장대응으로 휴일 마지막 날에 고생했을 시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어제의 대혼란은 기상 문제 보다는 당국의 안일하고 소홀한 대응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과 서울시 그리고 기상청 등은 보다 책임있는 자세를 견지해 주었으면 합니다.

[참고] 대설로 인한 차량이 고립 시 행동요령

1. 출발 전 기상 정보와 목적지까지 우회도로를 미리 파악하고 월동 장비와 연료, 식음료 등을
사전에 준비한다.

2. 고립 및 정체 시에는 될 수 있으면 차량 안에서 대기하면서 라디오 및 휴대전화기 재난문자방송
등을 통하여 교통 상황과 행동 요령을 파악한 후 행동한다.

3. 부득이 차량에서 이탈할 때는 연락처와 열쇠를 꽂아 두고 대피한다.

4. 인근에 가옥이나 휴게소 등이 있으면 응급환자 및 노인, 어린이 승객을 우선 대피시킨다.

5. 담요나 두꺼운 옷 등을 걸쳐 체온을 유지하고 가볍게 몸을 움직인다.

6. 차량 히터 작동 시에는 환기를 위하여 창문을 자주 열거나 조금 열어둔다.

7. 수시로 차량 주변의 눈을 치워 배기관(머풀러)이 막히지 않도록 하고, 차량 출발이 쉽도록 한다.

8. 잠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동승자가 있는 경우 교대로 자되 한 사람은 항상 주위 상황을 살핀다.

9. 제설 작업 차량이나 구급차의 진입을 위하여 갓길에 주정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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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님을 며칠 전에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는 대학 친구도 함께 했습니다. 조촐한 고깃집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반주로 소주도 곁들인 자리였습니다. 김명곤 전 장관님(이하 님)이 먼저 도착했고, 저는 차를 여러번 갈아타느라 10분 이상이나 지각(?)해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넉넉한 미소와 너그러운 아량의 마음으로 이해해주셔 감사했습니다.  


사실 김명곤 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김명곤 님은 아리랑극단을 만들어 대학로에서 연극을 기획 제작했습니다. 친구는 연극에 빠져 극단에서 생활하다시피 했습니다. 저는 친구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가곤 했습니다.

실제 김명곤 님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후 김명곤 님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서편제'를 봤습니다. 그 동안 김명곤 님은 국립중앙극장장, 문화관광부장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실제 김명곤 전 장관님을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에겐 과분하고 영광스런 자리였습니다.

김명곤 님은 연극이나 영화에서 본 모습과 달리 이웃집 형님처럼 다정다감했습니다. 주로 전주 세계소리축제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술이 몇 잔 오가면서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게 됐습니다. 가장 흥미를 끈 것은 김명곤 님이 가수 백지영의 팬이란 사실이었습니다.


[김명곤 전 장관님이 '총맞은 것처럼' 노래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

김명곤 님이 백지영의 팬이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김명곤 님은 우연히 지방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총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를 처음 듣게 됐습니다. 김명곤 님은 그 때까지 백지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총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를 들었을 때 김명곤님은 애절하고 가슴을 저미는 노래 가사와 곡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휴게소에서 노래CD를 구입했습니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백지영이란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김명곤 님은 '총맞은 것처럼'을 계속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노래의 곡조와 가사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수 백지영의 팬이 되었습니다. 최근 백지영이 출연한 '무릎팍 도사'도 봤다고 합니다. 저는 김명곤 님이 가요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영화나 연극에서의 김명곤 님은 강인한 남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김명곤 님이 판소리와 국악을 하시는 분이라는 고정관점으로 인해 일반 가요도 좋아하신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김명곤 님은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총맞은 것처럼'을 흥얼흥얼 부르시기도 했습니다. 금방 감정이 이입되어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니 역시 최고의 배우이자 문화예술인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명곤 님이 나이가 50대 중후반인데도 아직도 소년처럼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노래방서도 '총맞은 것처럼'을 부른다고 합니다. 김명곤 님의 실제 노래방 18번곡은 김범수의 '보고싶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도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을 듯 합니다.

김명곤 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자리를 마무리하고 헤어졌습니다. 김명곤 님은 때론 털털한 이웃집 아저씨같고 때론 대학 동아리 형님같았습니다. 심지어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와 솔직 담백한 순수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부드럽고 소탈하며 인간미 넘치는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김명곤 전 장관님의 요즘 고민은?
최근 김명곤 님은 전주 세계소리축제의 조직위원장을 맡게됐는데 처음에는 거절했답니다. 그러나 주최측서 우리 전통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행사의 취지와 더불어 삼고초려의 자세로 끈질기게 부탁하자 수락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행사 기획과 준비에 바쁜데 각계 저명인사들을 만나 관심도 부탁하고 저같은 블로거를 만나 블로그에 대해 궁금증도 물어보시기도 합니다. 불과 몇달이 남지않는 기간 동안 예산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전통과 소리가 세계 속에서 빛날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의 많은 관심과 성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명곤 님은 누구?


잡지사 기자, 여고 교사, 배우, 극단대표 등을 거쳐 현장예술인으로 문화부장관을 역임했습니다. '마법의 동물원' '어머니' '완판 창극 춘향전' 등 어린이 연극부터 창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배우, 연출가, 극작가 등으로 활동해온 공연예술계의 거장입니다.

영화배우로도 활동하며 '바보선언' '태백산맥' 등에 출연했고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서편제'를 통해 판소리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소탈하고 고결한 인품을 지니고 있어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면서도, 업무에서는 집중력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추진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주고 ▲서울대 독어교육과 ▲'뿌리깊은나무' 기자 ▲배화여고 교사 ▲예술극장 한마당 대표 ▲극단 아리랑 대표 ▲SBS '추적! 사건과 사람들' 진행 ▲전국민족극협의회 의장 ▲국립중앙극장장 ▲문화관광부 장관 ▲전주 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참고 글 링크] 전주 세계소리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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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인데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와서 귀성전쟁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 걱정스럽다. 설상가상으로 대설 주의보까지 내려 귀성길이 더욱 우려된다. 지금은 우리집에서 직접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귀성 전쟁을 치르지 않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제발 눈이 그만 내리고, 이번 귀성길에는 교통이 원활해졌으면 좋겠다.

문득 2001년 설날에 겪은 폭설로 인해 벌어졌던 '눈물 겨운' 귀성 길이 생각난다. 아빠가 딸 아가의 분유를 먹이기 위해 눈보라 속을 헤매던 이야기다. 당시 둘째 딸이 태어난지 몇개월이 안된 상태였다. 머나먼 남쪽 지역에 있는 고향에서 설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미 출발하기 전날부터 엄청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귀성길은 남동생과 매제의 가족들과 함께 2대의 자동차로 서울까지 함께 이동해야 했다. 비행기는 폭설로 운항이 중단됐고 기차는 완전 매진이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마저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 폭설은 계속 내렸다. 자동차 속도가 사람 걷는 속도 보다 느렸다. 아예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더 많았다. 몇시간이 지나도 몇 킬로를 나가지 못했다.

어느새 저녁이 왔다. 그런데, 아가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물이 떨어졌다. 아가는 배고프다고 계속 울었다. 자동차는 고속도로에서 전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가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매제가 운전하는 자동차에서 나와서 눈보다 속을 걷기로 했다.  1~2킬로만 빨리 걸으면 자동차 보다 먼저 고속도로 휴게소에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분유를 타기 위해서는 '보리차 끊인 물'을 구해오라고 했다. 한참을 걸어서 휴게소에 도착았다. 휴게소는 자동차들로 꽉차 난장판이었다. 휴게소의 가게 마다 들러 보리차 물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그러나 어떤 가게도 보리차가 없었다. 거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아줌마들이 있는 가게에 들어가 "아가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보리차물을 좀 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보리차는 없다고 했다.(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 난장판이 된 휴게소에서 보리차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한 아줌마가 남자가 물 구하러 다니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보리차를 끓여 줄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보리차가 거의 끟여질 무렵 매제가 운전하는 자동차도 휴게소 부근에 도착했다. 그렇게 딸 아가에게 분유를 먹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밤을 고속도로에서 뜬 눈으로 세웠다. 다음 날, 오전도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지 무려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오후 2시였다.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이었다. 그래도 늦었지만 오후 3시경 출근했다.

당시 아가였던 둘째 딸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간다. 아빠가 딸의 분유를 먹이기 위해 눈보라 속에 보리차 물을 찾아 고생했던 그 시절을 둘째 딸은 알기나 할까? 지금은 지나간 추억으로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는 정말 애타는 심정이었다. 이번 설날에는 둘째 딸에게 그 때 '분유 물 찾아 아빠의 삼만리' 이야기를 해주어야 겠다. 그러면 딸은 아빠에게 뭐라고 말할까?
[어제 눈이 내린 놀이터에서 둘째 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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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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