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8.27 대학생 군사훈련 문무대의 황당 야동 사건 by 진리 탐구 탐진강 (71)
  2. 2009.08.15 탱크의 이동을 보며 스친 군사반란의 기억 by 진리 탐구 탐진강 (32)
  3. 2009.06.25 '대한 늬우스' 관객 반응 "사이코패스 광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4. 2009.05.31 노무현과 원칙과 가치 지킨 유시민의 눈물 생각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56)


대학시절에 군대 입소 군사훈련 문무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대학생들도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에는 문무대 입소, 2학년엔 군방 입소 훈련이 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교련이란 군사훈련 과목이 있어 1~2학년은 의무적으로 학점을 이수해야 했습니다. 대학에서도 냉전 군사정권 체제의 잔재가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남자들은 고등학교 3년과 대학 2년, 즉 5년을 군사훈련을 받았고 그 후 군대 3년을 보내야 했으니 무려 8년 동안 학창생활을 군사훈련을 받은 셈입니다.


그 당시 교련 군사 훈련 때는 교련복을 별도로 입었습니다. 1980년대는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대학가 시위가 거의 매일 벌어졌는데 교련복은 오히려 시위 때 자주 입던 복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은 군사훈련을 통해 대학생들을 세뇌 또는 의식화시키려 했지만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생들의 불만과 반발만 일으켰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병영집체훈련인 문무대에 입소를 했습니다. 대학생들을 군대에 1주일 정도 강제로 입소시켜 군사훈련을 받게하는 것입니다. 교련복을 입고 군대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 때 여학생들은 입소하는 남학생들에게 초콜릿이나 사탕 그리고 담배를 선물로 준비해 전달해주곤 했습니다.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여학생들의 배려일 것입니다.

문무대에 입소할 때 선배들이 나와서 격려해 주기도 했습니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당시 대학생들이 시위 때 부르던 늙은 군인의 노래, 농민가 등을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가다시피 했던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대학에 갓 입학한지 얼마 안된 1학년들은 5월경 단체로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으니 그 시절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이 갈 것입니다.


교련복을 입고 문무대에 입소하는 80년대 대학생들 장면 [자료 사진]

문무대에 입소하면 군복으로 갈아입고 소위 '얼차려'부터 시작됩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옆으로 굴러.' '귀잡고 연병장 뺑뺑이 돌기' 등등. 그야말로 군대식 훈련방식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게다가 1주일 정도를 압축해 유격훈련을 비롯한 총검술, 화생방 등 각종 군사 훈련을 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새없이 굴립니다. 자유가 없는 군대에서는 나약해지는 인간 군상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무대에서도 부당한 얼차려에 항의해 용감하게 시위를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가혹한 군대의 복수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대학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정의감이 충만했던 시기였습니다.

문무대 훈련이 끝나면 10시에 취침을 하게 됩니다. 보통 취침 전에 인원 점검과 보고를 하게 되고 이후 명상의 시간을 TV를 통해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취침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루종일 군사훈련으로 지치고 힘든 학생들에게 가족과 나라를 생각하게 하는 TV 영상물을 틀어주고 사상 교육을 시키는 형식입니다. 실상은 반공교육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이미 잘못된 군사정권의 실상을 이미 알고있던 터라 반공교육이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문무대의 훈련이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황당한 사건이 생각납니다. 5월의 퇴약볕 밑에서 힘겨운 훈련을 끝내고 취침에 들기 직전이었습니다. TV를 통해 명상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모두가 군대 침상에 누워 TV에서 흘러나오는 명상의 시간 영상물을 보고 있었습니다. 눈만 말똥말똥 뜨고 TV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쳤구나 생각하며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명상의 시간이 끝나고 방송이 꺼져야 하는데 TV에서는 이상한 화면이 흘러나왔습니다. 발가벗은 남녀가 신음소리를 내며 열심히 그 짓을 하는 포르노였습니다.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하던 학생들은 놀란 눈으로 TV에서 나오는 야동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습니다. 모두가 말도 못하고 TV를 향해 눈만 크게 뜨고 바라봤습니다. 어떤 학생이 조용한 목소리로 "야, 저거 포르노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서야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근엄한 군사훈련 중에 벌어진 야동 방송에 놀라면서 한편 웃겼던 것입니다.
 
내부반 TV에서 야동이 나오자 당직 장교는 다급하게 TV를 끄라고 외쳤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잠시 1~2분여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때 당직 장교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각 내무반 침소의 문을 열고 황급히 들어와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야, TV 꺼"라고 크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뭔가 사고가 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내 TV에서 흘러나오던 야동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부반에 누워있던 학생들은 황당한 일에 모두 웃음만 터트릴 뿐이었습니다. 조금 후 다시 당직 장교가 각 내무반을 돌며 "야, 불 꺼. 빨리 취침해."라고 돌아다녔습니다.

그 다음 날 이후 몇 명의 군인과 장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군대의 교도소인 영창을 간 듯 합니다. 당시 방송실에서 군인들이 명상의 시간이 끝나면 야동을 자기들끼리 보려고 준비했다가 잘못해 모든 내무반에 방송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나 봅니다. 사실 당시 군인들도 대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한 청춘이었으니 야동에 관심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비록 그 군인들은 영창에 있겠지만 문무대에 입소했던 우리 대학생들은 씁쓸하지만 잠시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문무대 병영집체 훈련이란?
문무대는 지난 1970년대부터 1989년(?)까지 실시됐던 대학생들 대상 병영집체훈련입니다. 대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교련이란 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그 중에서 1학년 때는 문무대에 약 1주일간 입소해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대학생들의 반발을 막기위해 학점에 포함됐고 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곧바로 군대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근책으로 군대 입대시 문무대 입소하면 45일, 대학 2학년 때 전방입소까지 이수하면 90일이나 빠른 전역 혜택을 주었습니다. 일반 고등학교 졸업생 보다 무려 3개월이나 빠른 복무기간 단축의 전역 혜택이 주어진 것입니다. 당시 30개월 군복무기간이었으니 대학생들은 27개월을 군대에 복무하게 된 셈입니다. 그러나 평등권의 위반을 비롯 문제점이 많고 대학생들이 군사독재 정권 유지책이라며 문무대 및 전방입소 거부가 집단적으로 일어나면서 폐지됐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에 경기도 양평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줄지어 지나는 탱크들과 장갑차들을 봤습니다. 탱크와 장갑차가 서울로 향하는 모습처럼 느꺼졌습니다. 물론 서울로 향하는 것은 아니고 훈련 중일 것입니다.

탱크나 장갑차를 보면 1980년이 생각나곤 합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시절입니다. 종로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던 시절이라 광화문 앞을 지나 통학하곤 했습니다. 당시는 청와대 인근에 장갑차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의 눈으로 본 장갑차와 군인들은 무서웠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커다란 위압감을 주었습니다.

신군부가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 즉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차근차근 군사독재 정권을 현실화했던 시기였습니다.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도 전두환 신군부를 무력 진압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국의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는 김영삼을 가택연금시키고 김대중에게는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민주주의가 군사독재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소위 '땡전 뉴스'를 들어야 했습니다. 방송사의 9시 뉴스는 "전두환 대통령은 ..."으로 시작되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눈과 귀가 있어도 올바른 소식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이 있어도 군사독재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대중은 나중에 미국의 도움(?)으로 사형을 면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1980년대는 군사독재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진실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다시 군사독재와 항거를 시작했습니다. 목숨을 건 민주화 항쟁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많은 사람들이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구금되고 고문당하고 죽음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은 결국 다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은 노리던 전두환은 권좌에서 물러나고 노태우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영삼은 기존 군사독재 세력과 손잡은 3당 합당으로 대통령의 길을 열었습니다. 김영삼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을 원했던 것입니다. 김영삼에 의해 정치에 입문한 노무현은 독재와의 야합을 반대하다 결국 야당의 가시밭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민주주의가 꽃을 피워가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기존 독재의 유산을 물려받은 당의 인물들과 같은 패였습니다. 그리고 과거 20~30년 전의 행태들이 사람들을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독재의 도시의 망령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광화문과 서울 광장은 전경들이 가득합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전경차들을 보면 1980년 광화문을 지키던 장갑차와 군인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노무현은 부엉이 바위 위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촌로는 그렇게 갔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삶은 이승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모두가 소중하게 보듬고 가꾸어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대중이 위독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병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갔습니다. 과거 민주화 세력도 병문안을 했습니다. 김대중에게 사형을 내렸던 전두환도 병문안을 갔습니다. 김대중은 대통령 시절에 전두환을 용서했습니다. 신앙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용서와 화해란 당한 사람이 해주는 것입니다. 늘 DJ콤플렉스로 살며 김대중을 욕하던 김영삼은 병문안가서 화해했다고 합니다. 혼자 욕하고 혼자 화해한 셈입니다.

서울로 향하던 탱크와 장갑차를 보니 아련한 1980년 군사독재의 기억이 스쳐갔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당시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광화문이나 서울 광장의 모습은 1980년과 닮아 있습니다. 관변 단체의 공간일 뿐입니다. 과거 1980년에도 군사독재 관변단체는 그렇게 했습니다. 2009년 8월 15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독립을 했습니다. 해방된지 64주년 광복절입니다. 해방된 나라에 살지만 아직도 일제의 그늘이 느껴지는 음산한 나라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문화관광체육부는 25일부터 전국 주요 52개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 <대한 늬우스>를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6.25 전쟁 발발일입니다. 문화부의 대국민 선전포고인가요? 문화부는 당초 '4대강 살리기 코믹 버전'이라고 설명했으나 <대한 늬우스>를 본 관객들은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한 늬우스> 정책광고를 본 관객들은 "사이코패스 광고냐?" "유치찬란하다" "국민이 초딩이냐?" "대화는 MB가 필요해" "극장 안가기 운동하자" "개콘 안보겠다" "혐오감을 주는 블랙 코미디다" "무더위에 약먹고 미친 거냐?" 등 한심하고 어이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국민들의 수준을 70년대 독재시절로 착각하고 만든 황당한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나온 <대한 늬우스> 정책광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KBS 개그맨 김대희가 아버지 역, 개그우먼 양희성이 어머니 역, 개그맨 장동민이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역으로 나오는 1분 30초 짜리 <대한 늬우스> 의 정책광고는 식사를 하는 과정에 아들이 불만스러워하자, 아버지가 원인을 묻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1) 아버지 : (식탁에 앉으며) "밥 묵자~동민이~ 임마 이거이 얼굴이 와이래 부워 있노?"

2) 어머니 : "지 친구 가족여행갔다고 저래 삐져있다 아입니꺼"

3) 아버지 : "가족여행? 우리는 뭐~ 뭐~ 가족여행 안가 봤나"

4) 아들 : "지 일곱살땝니더. 아~ 친구들 아부지는 예~ 가족여행도 같이 가고 자전거 하이킹도 같이 댕기고, 뭐 생태공원 또 역사박물관 이런 것도 다~ 구경시켜주고 하는데~"

5) 아버지 : "그런 걸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데가 대한민국 천지에 어디 있노?"

6) 아들 : "강물살리기가 그거 한다 아입니꺼? 자전거도로도 쫘악 깔고 예~생태공원도 만들고 역사박물관도 만들고예~ 그 영산강에는 그 황포 돗단배도 띄운답니더~"

7) 아버지 : "그거를 와 인제 얘기하노? 지금 밥 묵고 있을 때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퍼뜩 일나라~ 지금 당장 가자잉~"

8) 어머니 : "이 양반이 웬 일이노? 그럼 내 얼른 나가가 자동차 시동 걸고 있겠습니더잉~" (밖으론 뛰어나간다.)

9) 아버지 : (계속 식탁에 앉아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뭐하나? 퍼뜩 안 일어나고"

10) 아들 : "2012년 완공입니더~"

11) 아버지 : (다시 식탁에 앉으며) " 밥 묵자~"

12) 아들 : "어무이는 안모셔옵니꺼?"

13) 아버지 : "대문 잠가라~"

관객들은 한마디로 코믹은 커녕 썰렁하고 불쾌하다는 반응입니다. 사이코패스 가족의 대화를 본 기분이라고 합니다. 특히 군사독재 때의 관제홍보가 부활한 것이라며 시대를 거꾸로 가는 정부에 어이없다고 합니다. 네티즌들도 동영상을 본 후 유치찬란한 발상이라며 반발에 나섰습니다. 실제로 아고라에서는 "4대강 살리기 광고하는 대한 늬우스하는 극장 가지 말자"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한 "극장표 사기 전에 4대강 살리기 광고하는지 확인하자" "대한 늬우스 나오면 야유하자" 등 비판 의견이 거세게 나오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제59주년 6·25 계기 안보 홍보 이벤트라며 준비한 '안보신권' 내용도 괴기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국정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좌익사범' 식별 요령과 '111' 신고 등을 홍보하는 "국가정보원이 전수하는 대한민국 수호권법 안보신권"이라는 제목의 플래시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코믹한 복고풍이라고 하지만 70년대 군사독재 시절 수준의 기괴한 작품입니다. 거의 정부 부처 모두가 70년대 "잘 살아보세"로 대표되는 새마을운동이나 "때려잡자 공산당" 수준의 생각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아직도 냉전식 사고에 머물러 있어 30년전으로 역사가 후퇴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국정원의 기괴한 이벤트는 과장한 복고풍이라고 하나 코믹도 괴담스럽다

제가 살던 시골마을에 작은 하천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하천을 정비한다며 하천 바닥을 파고 하천가를 일직선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천 주변을 시멘트로 발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정비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천은 늘 말라았었고 물 속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았습니다. 하천 정비한 곳에는 수초도 살지 않았습니다. 수질도 악화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물놀이도 못하는 '죽은 하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시골 어르신들은 이야기했습니다.

"하천은 자연 환경 그대로 상태를 가능한 유지하는 것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이다. 하천 정비한다고 마구 파버리면 물고기도 사람도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생태계의 재앙이다."

오염된 중국의 하천이 핏빛으로 변했던 모습

정부가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 하에 마구잡이로 강을 파헤치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하천은 살리는 길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며 인간이 그 자연 속에 함께 사는 것입니다. 과거 독재정권은 군사작전하듯이 건설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건조하고 삭막한 콘크리크 빌딩의 서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자연을 복원한다고 삽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4대강을 콘트리트 빌딩 건설하듯이 군사작전식 삽질을 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장마에 땅만 파지 말고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감동으로 국민을 섬기는 일이 정부가 할 일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항상 변치않고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며 노무현과의 의리를 끝까지 지킨 사나이, 유시민. 저는 유시민과 일면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올곧은 정신과 의리에 대해 탄복하곤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위기에 처하고 어려울 때 언제나 함께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곧바로 달려와 펑펑 눈물을 쏟던 유시민을 생각하니 대학시절의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릅니다.

제가 유시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3년전 대학 입학 이후 였습니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저는 도서관에 책을 빌리기 위해 갔습니다. 여러 책들을 구경하다가 어떤 책 속에 꽂혀있던 수십 장의 종이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였습니다.

그리고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단번에 읽었습니다. 20대 청년이 이토록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동받았고 당시 군사독재의 진상을 알게 되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금기시 되었던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몰래 그 글을 읽어야 했습니다. 정당성과 도덕성이 없던 군사정권은 정권에 불리하면 무조건 금지시켰던 시기였습니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중에서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 중 략 )--------------------------------------------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지난 7년간 거쳐온 삶의 여정은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학생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시대의 모든 양심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비추어, 정통성도 효율성도 갖지 못한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여 민주 제도의 회복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이야말로 가위눌린 민중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새벽 종소리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오늘은 군사 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한 위대한 광주 민중 항쟁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날이며, 벗이요 동지인 고 김태훈 열사가 아크로폴리스의 잿빛 계단을 순결한 피로 적신 채 꽃잎처럼 떨어져 간 바로 그날이며, 번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 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더보기



항소이유서는 서울대 프락치사건에서 유시민은 주동자로 몰려 구속되면서 쓴 글이었습니다. 그 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인용한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 전 유시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하면서 서럽게 울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 노무현과 유시민은 어쩌면 닮아 있습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원칙도 소신도 없이 철새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따라 움직일 때 노무현과 유시민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국민과 민주주의 편에서 원칙과 소신을 지켰던 것입니다.

유시민에 대한 기억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국회에 의한 탄핵 시도에 오열하고 울분을 토하던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썪어빠진 환경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올곧은 사람이었던 노무현과 '원칙과 소신의 지향점'을 지켜냈던 유시민이었습니다. 수많은 정적들의 비난과 편견들에 맞서싸우며  그 고난을 받아내고, 노무현 후보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들어냈던 그였기에 탄핵시 울분은 그 누구보다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시민의 눈물은 진정성의 산물이었습니다.

▲지난 2003년 3월 국회에서 탄핵 당시 오열하던 유시민 의원의 오열 모습

정치적 원칙과 소신 보다는 배신과 야합이 난무하던 우리나라의 후진적 정치무대에서 유시민과 같은 정치인이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노무현의 정치적 꿈과 이상은 아직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앞서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삶과 죽음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한단계 발전하는데 있어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정치적 자산과 가치를 공유하던 유시민이 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시민은 단심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주의 가치와 원칙을 공유한 인물이다

유시민을 생각하면서 문득 백원우 의원이 오버랩되어 지나갔습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백원우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 내외의 헌화가 시작되자 '사죄하십시오'라고 외치다 경호원들에게 끌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경호원에게 입이 틀어막힌 백원우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입이 틀여막힌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백원우 의원이 서울역 분향소에서 쓴 글이 있어 소개해 봅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죄인의 심정으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래서 목놓아 소리내어 울고 싶어도 울지못하는 죄인입니다.

그저 줄서서 조문하는 분들에게 물한잔 대접하고 싶어도 어찌하지 못하는 상주일뿐입니다.

마음속 눈물이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고 있지만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머리속은 하얀 백지장이 되어 버리고 혀가 꼬이고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저는 그저 죄인입니다.

조문오시는 분들에게 하염없이 죄송하고 너무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2009년 5월 26일 서울역에서 국회의원 백원우

유시민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지난 1980년대부터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르기까지 많은 상념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순간은 속일 수 있어도 수십년에 걸쳐 속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위선에 속아 왔습니다. 이제는 진정으로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해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비열하고 야비한 정치인은 걸러내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은 지켜내는 감시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