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1.16 20년전 군대, 말년 병장 죽이는 낙서 놀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2. 2009.12.08 남자가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 10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9)
  3. 2009.04.23 면회금지 철책선에 애 엄마가 잠입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5)
  4. 2009.02.25 군대 고참의 전문과 군발이 10대 강적 by 진리 탐구 탐진강 (15)
  5. 2009.02.18 블로거뉴스가 20년전 전우들을 찾아주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6. 2009.01.24 명절 연휴에도 비상근무하는 직업 10선 by 진리 탐구 탐진강 (25)


"천하무적 짱가도 내 앞에선 고철"

태권V가 짱가를 마구 때리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태권V와 짱가의 모습을 실제 그림으로 그려 실감나게 낚서를 한 장면이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덧붙여 '임자 만날 날 있을 걸.'이란 의미심장한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하겠지요? 제가 20년전 군대를 제대할 무렵에 후배나 동료 전우들이 회상록에 그린 낙서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상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군대 회상록을 들추어보다가 전우들의 낙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에서 짱가는 저의 군대시절 별명입니다. 당시 힘좋고 기술좋은 작업반장이었던 저를 전우들은 '짱가'라고 불렀습니다. 짱가는 그 시절 사람들이 좋아했던 로보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 짱가를 힘으로 눌러주고 싶던 후배 전우가 로보트 태권V 주인공을 그려 우스꽝스런 만화를 그린 것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 (야!)'로 시작되는 노래인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곡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단번에 알 것 같습니다.

                                지난 1970년대 추억의 로보트 3인방, 짱가-태권V-황금박쥐 모습

그런 만화 낙서를 보니 군시절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여름철 폭우가 내려 작전도로가 유실되면 저와 친구인 J는 둘이서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저는 돌쌓는 기술로, J는 엄청난 괴력의 힘으로 돌을 날라 순식간에 도로를 복구했습니다. 강원도 철책에 폭설이 내리면 언제나 제일 앞에 서서 저와 J는 눈을 치웠습니다. 군대 작업의 달인, 환상의 짝꿍 듀엣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하던 선배도 말년 병장이 되면 후배들의 장난감이 되는 이유  

그래서 후배 전우들은 저와 J의 존재가 고맙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했나 봅니다. 그런 것들이 낚서로 표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헤어지는 아쉬움과 친근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낙서를 살펴볼까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을 놀리는 낚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말년의 고뇌여~ 가는 날까지 우리들에게 갈굼 당할 걸 생각하니 힘드시겠지."
"짱가씨 결혼할 거니? 짱가 왈 내비둬, 이렇게 살다 껌에 붙어 갈겨."
"짱가씨. 집에서 전화왔어요. 집에 오지 말라고."
"웃기지 마. 나도 때 빼고 광 내면 미스코리아 화장실 청소라도 할 수 있다  뭐라고라~"


군대 회상록 낚서판에 동료 전우들이 말년 병장을 향해 한 마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장면

낙서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후배들이 말년 병장인 저를 갖고 노는 것 같은 구절들이 묻어나 보입니다. 사실 군대에서 제대 앞둔 말년 병장은 후배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한창 때 무시무시한 선배였다 하더라도 말년은 후배들에게 당해주면서 정겨움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전통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남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정과 훈훈한 의리였습니다.

잠깐 퀴즈?
낙서에 나온 것인데 아래 각각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요?

1.창녀가 가장 좋아하는 야채는?

2.남녀 혼성 이부 합창은 순한국말로 하면?
3.브라자를 순한국말로 하면?

당시 군대에서 유치한 문답 놀이 정도 됐었나 봅니다. 지금 살펴보니 그 때는 저런 저질 유치 개그가 유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방위에 대한 당시 이야기도 낙서에 나왔습니다.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방위에 대한 유머(?) 장난이 아닌가 생각되는 낚서였습니다.

방위란?(낙서 버전)
1.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면사무소를 접수한다
2.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예비군을 통제한다
3.전쟁시 도시락을 지참 9시에 출근하여 5시 반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오리지날 버전
방위의 임무. 하나.
전쟁이 발발시 방위는 적진의 동사무소를 점령한다.
방위의 임무. 둘.
방위는 도시락통을 싸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도시락통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망을 교란한다.
방위의 인무. 셋.
방위는 아무리 전쟁이 치열하거나 해도 아침 9시에 근무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넷.
방위는 일부러 적의 포로로 잡혀가 적의 식량을 축낸다.
방위의 임무. 다섯.

전쟁발발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여군들을 몽땅 꼬신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최전선 철책을 넘나들며 비무장지대를 호령하던 전초 수색대들의 생활은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항상 삶과 죽음의 사선을 오가는 비무장지대 수색과 매복은 긴장과 서스펜스나 다름없었습니다. 순간 잘못 길을 가면 지뢰지대이고 잠깐 졸다가는 북한군이 목을 베어갈 준전시상태였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 강추위의 비무장지대에서 매일 밤 13시간 매복 작전

그러다 보니 군기가 가장 센 곳이었습니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개인 화기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태권도 및 특공무술을 비롯한 최강의 무예를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한 겨울 맹추위에 비무장지대 매복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1박2일에서 박찬호가 강호동을 포함 멤버들이 펼친 혹한기 실전캠프는 사실 '새 발의 피'였습니다.


전우들의 낚서판(좌)과 제가 그린 그림으로 수탉이 알에서 나온 코끼리 새끼를 본 후 암탉의 외도 의심

철책을 통과해 비무장지대 내에 들어선 순간 부터는 철처하게 자신과 전우들을 믿어야 했습니다. 군사분계션까지 도달해 겨울 매복작전을 펼칠 때면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북한 땅이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과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총탄을 장전하고 있는 최강 DMZ 수색대원도 오로지 혼자가 된 느낌의 순간에는 나약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료와 말도 못하니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어떤 과자나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심지어 오줌도 눌 수 없어 오줌통을 들고 들어가는 비무장지대 내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우와 동료를 신뢰해야만 비무장지대 수색 및 매복 작전은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 매복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얼어서 새벽 무렵 철수할 시간은 지금도 불현듯 스쳐지나가고곤 합니다. 체감온도 40도 전후의 강추위에 밤새 13시간을 야외에서 뜬 눈으로 이틀에 하루 꼴로 밤을 지새운다는 것이 상상이 가시겠습니까? 잠시 회상에 젖었습니다.

다시 낙서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티파니왈 흔들자고"라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도 티파니가 있나 본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추가] 댓글을 보니 1980년말 티파니(Tiffany Renee Darwish)라는 미국 팝가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써니텐 광고에서 '흔들어 주세요'로 유명해 이 같은 낙서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갈 때 죽을 때 까지 똥침 놀 거다"
"기분이다. 아줌마, 단무지 하나 더 주세유"
"너 지금 가면 안올거지 그지?"
"뭐 같은 인생 간편히 살자고."
"집에 가서 잠만 자지 말고 여자 구해 장가 갈 궁리나 해라"
"수고했다 뺑이 치느라고"
"엿먹고 조총을 쏴라"

후배들의 낚서 중에는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서를 보니 똥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랜 전통을 지닌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20년전 군대에서도 유행하던 놀이는 똥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위의 낙서 중 '뺑이친다'는 말은 힘들게 고생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일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그린 DMZ 수색대 마크(좌)와 후배 전우들이 회상록에 넣어준 자신들의 사진 모습

지난 20년전 군대에서 동료 전우들의 낙서를 보면서 20대의 용광로같은 젊은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은 편하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당시는 눈덮힌 야외 들판에서 판초우의 한 장으로 밤새 추위를 이기고 생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겨울 이겨냈던 DMZ 비무장지대 수색대원들은 결코 동장군 강추위에도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남북한은 물론 지구촌을 배회하던 아픈 역사 현장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남자들만의 의리와 정을 나누고 그 자릴 지켰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싹튼 우정과 동료애는 말년 병장을 사회로 보내야 하는 아쉬움으로 추억의 낚서를 회상록에 남겼던 것입니다. 20년만에 20대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 당시의 낚서를 보니 수많은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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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늘 서울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와 눈이 내리는 계절이면 군대 생활이 생각나곤 합니다. 군인들에게는 가장 힘든 계절이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민정경찰 수색대 군생활을 했던 터라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겨울에 무슨 눈이 계속 내리는지.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첫눈 오는 것을 기다리겠지만 군인들에게는 눈 내리는 것은 고통스런 제설작업을 떠올리며 악마의 비듬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강원도 최전방에는 지금도 많은 눈이 내린 곳이 많은가 봅니다. 한 겨울에 위문편지 하나라도 받아보고 싶었던 소박한 소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 80년대 중반 당시 저희 부대 군인들은 제대하면 강원도 양구를 향해 오줌도 싸지않겠다는 다짐은 당시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시절을 보냈는지 상징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까마득한 추억 속의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듯이 도전과 역경을 인내하며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과 책임감을 터득한 세월이 아니었나 반추해 봅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에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라는 굴레는 넘어야 한 산이기에 이왕이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군대를 다녀오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군대가 갖고 있는 일부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군대가 주는 장점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1. 부모와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머니 아버지의 품을 떠나 별도의 고립된 공간에서 스스로 자립심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곳이 군대입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화초처럼 자랐지만 이제는 독립된 주체로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더욱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신병 교육대 시절에 엄청나게 고통스런 훈련을 끝내고 '어버이 은혜'를 부를 때면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났던 때를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온 몸으로 느겼던 것 같습니다.

2. 팀워크의 조직 경쟁력을 체득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잘될 수 있도록 하는 팀워크는 중요합니다. 군대는 팀워크를 통해 만들어지는 조직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직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는 공간이 군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몰개성화나 획일적 인간을 만드는 것은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사회나 조직을 이루어 모든 생활의 터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팀워크 능력은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입니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조직 경쟁력의 원천인 팀워크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군대가 주는 강점 중 하나일 것입니다.


3. 음식이나 반찬 투정을 안하게 된다
군대에 가면 맛이 없어도 그냥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신병 시절에는 그것도 모자라 먹을 것에 대한 욕구가 큰 편입니다. 그래서 휴가나오면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과 반찬이 얼머나 맛있는지 알게 됩니다. 아니 어머니의 밥상이 늘 그리운 시절이 군대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군대가 가면 반찬 투정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과 반찬에도 투정하던 사람도 군대에 다녀오면 짬밥이 아닌 사제 음식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반찬 투정하는 남자를 싫어하지만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반찬 투정은 거의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군대에도 사제 음식 반입이 많아 여전히 반찬 투정을 못고치는 남자도 일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4. 몸도 마음도 튼튼한 태권도 유단자가 된다
우리나라 군대는 대부분 태권도를 기본적으로 훈련합니다. 태권도 승단 심사를 하기 때문에 병장 제대할 때까지는 대다수 유단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군대에서 일부 유단자가 아닌 체로 제대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수많은 작업과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특히나 군데스리가로 통칭되는 군대 축구는 군인들의 체력 강화 필수 코스였을테니까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군대를 가면 남자들이 더 남자답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태권도 유단자인 우리나라 남자들이 태권도 폼만 잡아도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체력은 국력입니다. 

5. 여자가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남자들만의 공간에서 지내다보니 군대가면 여자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군대에 있다가 휴가나오면 모든 여자가 다 예쁘게 보일 것입니다. 여자 친구가 더 예쁘게 보이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바로 군대있을 때입니다. 가끔은 현재 만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군대에 간다는 남자도 있다고도 하지만 군대가면 다시 그리워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비무장지대에 근무해서 휴가 이외에는 전혀 실제 여자 구경을 못했던 군대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군인들은 휴가 나올 때면 치마만 둘러도 아줌마도 할머니도 신기한 듯이 놀라던 때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껴지는 군대인 셈입니다. 그런데 TV 속의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등 걸그룹의 미모를 많이 봐서 눈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군대 시절을 보며 더 책임감을 갖고 여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변화가 있는 시기일 것입니다.

6. 노동과 한달 월급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지난 1980년대 군대에서는 일반 사병의 월급이 보통 1만원 이내였습니다. 지금은 사병 월급도 10만원이 넘는다는 합니다. 사실 한달 동안 땀흘려 일하며 한달 1만원이든, 10만이든 월급의 받는 경우는 군대 시절에 제대로 알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군대시절 한달 월급이 6~7천원 정도였고 비무장지대 근무라 위험수당이 추가돼 1만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1만원으로도 한달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덜 쓰고 아껴 쓰면 가능했습니다. 기본적인 식사와 의류는 제공되기 때문에 특별하게 돈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일부 군인의 경우 가족들에게 돈 부쳐달라고 해서 오히려 민폐끼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흥청망청 돈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동과 월급의 소중함을 통해 알뜰한 경제적 관념을 강하게 갖게 되던 군대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7. 가정을 이룰 기초 생활력을 기를 수 있다
군대에 가면 스스로 관물대 정리를 하고 막사를 청소하는 것부터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물건과 주변은 최소한 스스로 잘 정리정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족과 함께 지내던 학창시절에 어머니가 해주었을지라도 군대에서는 누가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옷도 스스로 다리미로 다려서 입기도 합니다. 군화도 스스로 닦아야 합니다. 담요도 털고 빨기도 합니다. 스스로 생활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궁하며 라면도 직접 끓여 먹습니다. 군대에 가면 라면이 더 맛있습니다. 라면 조리법도 얼마나 많은가요. 아무튼 군대에 가면 최소한 스스로 생존할 요리와 청소 등 생활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8. 자유와 평화가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군대란 개인의 자유가 통제되는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가장 최전선인 전방에서도 비무장지대 안에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눈 앞에서 북한 군인들을 매일 봤습니다.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상황에서 남과 북의 군인들 모두 자유가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전 상황의 비무장지대는 준전시상태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전쟁이 재개될 수 있는 곳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더욱 필요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군대는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줍니다. 물론 일부 직업 군인들의 경우 흑백논리와 양분법으로 냉전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2년 또는 3년의 군대생활을 통해 자유와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군대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악랄가츠님이 쓴 군대이야기란 책입니다. 여자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재치있고 재미있고 발랄한 터치로 쓴 이야기인데 요즘 군대는 예전보다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9. 책임감과 목표를 갖춘 삶의 주체가 된다
군대를 다녀오면 책임감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군대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이를 반드시 정해진 시간 안에 완수해야 합니다. 목표의식이 없이 살아가던 젊은 시절에 군대는 목표와 책임완수는 몸에 베인 습관으로 만들어 줍니다. 물론 하루동일 삽질해 땅을 파고 다시 묻는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요. 적어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명확한 목표를 만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책임있게 일하는 자세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은 엄마에 보호 속에 살아서 마마보이가 많기도 하지만 군대에 가면 마마보이가 아닌 스스로 해결하는 주체로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일본이나 다른 나라 남자들에 비해 책임감이 강한 것은 이같은 군대가 영향을 준 측면도 클 것입니다.

10. 당당한 남자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솔직히 우리나라 남자로 태어나면 군대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태어나 부모에 의지만 하다가 혼자가 가족과 떨어져 군대 생활한다는 것이 두렵고 힘든 도전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를 마쳐야 합니다. 간혹 군대에 가지않기 위해 탈법과 편법을 저지르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군대를 기피했다가 사회적으로 매장된 연예인도 있고 대통령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 고위 장관, 그리고 국회의원들 중에서 군대를 안간 사례도 많은 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늘 그들에게 주홍글씨처럼 군대 문제는 따라다니게 됩니다. 군대를 다녀오면 하루를 살더라도 보다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조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소한 나 스스로와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남자의 자신감은 군대가 주는 선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육군 병장으로 송승헌이 제대했고 오늘 공유가 군대 2년을 마치고 만기 전역했다

최근 가수 김종욱이 당당하게 군대 현역으로 입대하며 '군대가는 날'이란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한류스타 공유(공지철)가 2년의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만기 전역했습니. 김태우을 비롯 떳떳하게 정상적인 군생활을 마치고 연예인 활동을 활발히 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특히나 수색대에서 복무했던 김태우는 편한 곳 보다는 몸을 사리지않는 모습이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군방의 의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가기에 이왕이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군대를 다녀오면 좋은 이유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군대의 부정적 측면도 많지만 이는 모두가 알고 있기에 언급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로서 태어난 이상 군대를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기피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그런 경우라면 더욱 문제가 큽니다. 진정 바람직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모범을 보여할 것입니다. 군대는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합니다. 한국 남자들이라면 꼭 거쳐야하는 군대가 더욱 보람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를 해봤습니다. 아울러, 남자들만 군대에 가야하는 역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방의 의무에 대한 개선도 논의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욱 추워지고 눈 내리는 겨울에 오늘도 국방의 의무를 다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모두 고생이 많습니다.

[참고] 군대 기피 비리 의혹 연예인-국회의원-사회지도층 명단 
* 사진 참조 : 뉴시스

* 이 글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의 취지는 국방의 의무이기에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군대에 가야하지만 이왕이면 당당하게 군대를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며, 특히 국회의원과 부자를 비롯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군대는 두번 다시는 가고 싶은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장 비열하고 부도덕한 인간들은 바로 국방의 의무를 비롯한 자신의 의무나 책임도 다하지않고 소위 어깨에 힘주고 호의호식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질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매서운 겨울 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에 대해 위로를 보내는 내용입니다. 글의 일부 보다는 전체의 맥락과 속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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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군대 시절에 아이 엄마와 군인 아저씨의 특별한 면회의 사연을 이야기 할까 합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철책선 부근에서 별도로 막사 생활을 하는 수색소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GOP 철책선에  근무하는 군인들과는 달리 최전방 DMZ 수색소대는 소대 단위로 별동대 처럼 은밀한 곳에 1개 소대가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 작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의(20여 년 전의) 군대에서는 최전방 철책선이나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면회나 외출 외박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GOP 철책선의 군인들은 6개월 단위로 후방 부대와 임무 교대를 하게되면 면회나 외박 등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DMZ 수색소대는 1년 365일을 비무장지대나 철책선 근처에서만 훈련과 작전을 하는 임무인지라 면회 외박은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오직 휴가만이 유일하게 민간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휴가는 수색소대원들 모두가 단체로 휴가를 갔습니다.

그러나, 단체 휴가를 다녀온 후로 길게는 9개월을 비무장지대나 철책선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면회가 안되는 줄 모르고 아들을 만나러 왔다가 그냥 울고돌아간 어머니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저희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저는 통신보안 군대 전화로 연대본부에 오신 어머니와 짧은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어머니는 하염없이 우셨습니다. 저는 통화한 뒤 몰래 막사 뒤에 숨어서 소리없이 눈물을 삼켰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입니다. 철책선 밖에서 수색 훈련이나 작전을 수행하던 시절, 어느 날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산 속이라 날이 일찍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소대장이 K상병과 조용히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K상병은 저보다 고참이었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에 온 늦깎이 군인이었습니다. 소대장은 K상병에게 무슨 사연을 듣고난 후 상당히 당황한 모습으로 잠시 번뇌에 싸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 소대장은 결단을 했는지 긴밀하게 K상병에게 지시를 했습니다.

[이준익 감독 영화 '님은 먼 곳에' 2008년작]
(베트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위문공연단으로 자원한 아내를 소재로 한 영화)

그 날 밤에 K상병은 막사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K상병은 저녁에 조용히 막사를 빠져나가 산등성이를 타고 마을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사연인즉, K상병은 군대 입대하기 전에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K상병 부부는 아이도 하나를 낳았습니다. 사랑스런 아내와 간난 아이를 두고 군대에 입대한 K상병은 항상 아내와 아이에 대한 그리움에 괴로와 했습니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는 너무나 남편이 보고싶어 아이를 안고 강원도 최전방으로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이미 편지를 통해 비밀리에 만날 작전 계획까지 마련해 두었습니다. 몇날 몇시에 수색소대 막사로부터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만나는 계획이었습니다. 거의 첩보작전에 가까운 감행이었습니다. 아내는 무사히 아이를 데리고 마을로 잠입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K상병은 막상 D데이가 왔을 때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내와 편지를 주고 받을 때는 몰래 하룻밤을 잠깐 마을에 다녀오면 아무도 모를 것이란 생각이었지만 막상 D데이가 되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만일 소대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막사를 빠져나갔다가 발각될 경우 탈영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K상병은 사실대로 이실직고하고 소대장의 선처를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소대장은 원칙대로 한다면 절대 K상병을 마을로 보낼 수 없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소대장은 K상병에게 도로를 통해 마을로 가지말고 산등성이 수색로를 타고 마을에 몰래 다녀올 수 있도록 지시를 한 것이었습니다. K상병도 모험이었지만 소대장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결단이었습니다.

K상병이 마을로 내려간 길은 일반 군인들은 모르는 수색소대원들 만의 비밀 개척로였습니다. 소대 회식을 할 경우 마을에 몰래 내려가 소주를 추진해 오던 길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K상병은 몰래 마을에 내려가 그토록 보고싶던 아내와 아가를 만나 애틋한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소대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사무치고 보고싶었으면 K상병과 아내는 이토록 무모할 수 있는 만남을 추진했을까.

당시 K상병이 몰래 마을로 내려가 아내와 아가를 만난 사연은 우리 소대원 이외에는 전혀 모르는 야사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소대장의 나이 보다 K상병이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보통 소대장을 소위나 중위가 맡게되는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온 K상병 정도면 한두 살 이상이 더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군대는 나이와 상관없이 계급에 의한 위계질서가 중요합니다. 소대장이 면회 불가 원칙을 고수했다면 K상병은 아내와 아이를 눈 앞에 두고 만나지 못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대장은 나름대로 자신의 군생활 명운이 걸린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K상병의 사연도 인간적으로 고려해 배려심을 갖고 현명한 판단을 해주었기때문 입니다.

군대에는 수많은 사연의 군인들이 많습니다. 보고싶은 여자친구가 변심한 것을 알고 탈영하는 군인이 있는 것도 그 젊음의 끊는 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탈영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K상병과 같이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늦깎이로 입대해 고생하고 제대하는 경우는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보는 광경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K상병 처럼 결혼 후 입대한 경우는 최전방 보다는 후방부대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해주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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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god의 김태우가 제대를 했다는 소식인데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군기가 센 수색대에서 복무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고참 시절의 god는 신과같은 존재였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군대 이야기 중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고참 이야기가 있는 듯 합니다. 약 20년전 군대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군생활 회상록에 적었던 고참에 대한 글인데 아마도 그 시절을 추억하거나 현재 군대 복무하더라도 온도차는 있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od 김태우 군대 시절 : 육군 웹진] 

군대를 모르시는 여성분들이나 시니컬하게 생각하는 남성분들에게는 다소 유치하거나 거북한 글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왜 그렇게 생활하고 추억하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하면서 가볍게 재미로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우선 글을 읽는데 주의사항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를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읽을 가치가 없을 수도 있으니 심각하게 고참이나 군대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이 글을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군발이와 같이 다소 비하적 표현은 당시 용어를 그대로 옮긴 것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쓰인 용어나 단어는 가감없는 당시 표현이라는 점을 밝힙니다.(요즘은 어떤 표현을 쓰는지 모릅니다.)

먼저 고참의 전문입니다. 부대마다 명칭은 다릅니다. 고참수칙이라든지 고참예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참의 전문

[정의] 고참 앞에서는 복종순종하는 군인이 된다.

[전문] 고참은 항상 자기 밑이나 친구가 아니다.
하나. 고참은 성모마리아의 기둥서방이다.
하나.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다.
하나. 고참은 을지문덕 보다 군번이 1번 빠르고 강감찬과 더블백 동기이다.
하나. 고참이 버린 담배꽁초는 길이길이 3년동안 모아 물려준다.
하나. 고참의 말은 진리이고 생명이다.

고로, 고참이 되려면 짬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
[출처 : 블로그]

*짬밥 : 군대에서 단체로 먹는 밥인데 쪄서 만든 밥입니다. 일반적으로 솥 밑 바닥에 불을 지펴서 바로 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루떡 찌듯이 밥을 쪄낸 것을 짬밥(또는 찜밥)이라고 합니다. 이 밥을 먹고 세월이 흘러 어느정도의 연륜을 쌓았나 하는 군대 고참의 기준으로 짬밥을 얼마나 먹었나 하기도 합니다.

이등병 때는 언제 일병을 달고 상병이 되고 끝내 병장의 반열에 들어 제대할까 늘 고민했는지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규율이 느슨하면 전쟁에서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군대 조직의 특성상 고참의 위치가 중요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개성 보다는 전체 구성원의 일사분란한 팀워크가 제일 중요한 군대 조직의 특성인 것입니다.  

고참의 전문은 업그레이드(?)된 버전도 있나 봅니다. 인터넷에서 소개된 글입니다. 내용이 유치하기는 합니다.

고참,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고, 정신이 멍멍해지는 말이다.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생이며, 석가모니와 같이 도를 닦으셨고, 달마대사와 같이 쿵후를 배우고 연구하셨으며, 칸트와 같이 철학을 논하셨으며, 성모 마리아와 엘리자베스의 기둥서방이시다.

고참은 모래알로 짬밥을 만드시고, 눈덩이로 우유를 만드시고, 고참은 동쪽하늘에 떠 오르는 커다란 태양과도 같으시며 쫄병은 그 주위를 하릴없이 맴도는 조그마한 위성이다. 

고참은 베에토벤에게 음악을, 펠레에게 축구를, 칼루이스에게 육상을, 피카소에겐 미술을, 히틀러에겐 독재를 그리고, 나에게는 노가리를 손수 가르치셨다. 고참이 던진 돌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뛰어가서 맞아야하고, 고참이 하는 모든 나쁜 말들은 일일이 메모를 해야한다.

(중간 생략)

또한 고참의 매력은 모나리자 마음을 자극했고, 클레오 파트라의 밤잠을 설치게 했으며, 양귀비에겐 상사병을 앓게 했다.


그리고 20년전에 군대에서 유행하던 군발이 10대 강적입니다. 지금은 군대에서 이같은 일이 거의 없을 듯 합니다만 과거에는 군인들을 괴롭히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의미로 보면 군대가 나태해지만 안되고 늘상 군기가 살아있어야 유사시 강한 군인정신을 발휘하기 때문도 있다고 위안을 해봅니다.(사실 비인간적인 처사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군발이 10대 강적

겨울에는 빵빠레
여름에는 완전군장
먹을만하면 식사끝
졸기만하면 선착순
휴가갈만 하면 비상
공부할만 하면 작업
면회만 오면 외출외박 금지
편지 쓸만 하면 소등
쉴만 하면 휴식 끝
잠들 만 하면 기상

[참고] 빵빠레
일반 사람들에게 ‘빵빠레’라는 아이스크림능 연상하겠지만, 군대에서 ‘빵빠레’는 악몽입니다. 곤한 잠을 자다가 갑작스런 ‘집합’(빵빠레) 소리에 단잠 깨고, 연병장(군대 운동장)을 돌면서 온갖 기합이란 기합은 다 받는 얼차려 종류입니다. 특히 겨울 밤에 '팬티만 입고 군화신고 연병장에 집합'하면 그 날은 끝장입니다. 한편 빵빠레에서 파생되는 얼차려가 여름에는 ‘모기 시식'입니다. 한 여름 팬티바람으로 연병장에 서있다보면 일반 모기보다 전투력이 훨씬 강한 군대 모기들이 달려들어 피를 빨아먹는데, 차려 자세로 가만히 서 있어야 하니, 그날은 그냥 모기들의 잔칫날입니다.

[출처 : 다음 카페]

과거 군대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여름에 입대했던 군번이다보니 모기회식이나 빵빠레와 같은 얼차려를 많이 당하기도 했습니다. 군대라는 조직이 '사느냐 죽느냐'라는 극한 전쟁 상황을 가정하여 훈련을 하는 곳인 만큼 개인들 선택의 폭이 거의 없는 점도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한 군대 특성을 감안해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면 보다 너그러운 마음에서 군대와 군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군대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과거와 같은 얼차려는 많이 사라졌을 듯 합니다. 국방부에서 운영한다는 동고동락 블로그를 보면 많이 개선된 군대 문화를 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엄격한 규율과 명령체계를 기본 바탕으로 하다보니 실제 군대라는 울타리에서 체감하는 정신적 고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는 없을 듯 합니다. 김태우 병장의 제대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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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군대시절 땅굴발견해 받은 참모총장상을 찾아보니 라는 글을 블로거뉴스에 포스팅했는데 메인에 떡하니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놀랍게도, 블로거뉴스가 20년만에 군대 시절의 그리운 전우들을 찾아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중에는 같은 21사단 백두산부대 출신 선후배 전우들은 물론 제4땅굴 발견과 특수 작전에 투입되었던 수색대, 공병대, 3군단, 육군본부 시추대 등 수많은 분들이 당시의 추억 속으로 달려왔습니다. 또한, 군대에 복무 중이거나 제대한 여러 예비역들이 같은 부대가 아니더라도 군대생활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군대와 관련 다양한 분들의 댓글도 눈에 띄었습니다. 존경받는 참군인이신 당시 이준 사단장님의 자제분도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어떤 여자 분은 남자 친구를 21사단 수색대에 보낸 후 걱정했지만 용감하고 훌륭한 임무를 수행하는 남친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로 생각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가장 보람있는 것은 당시의 몇몇 전우들과 다시 재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수색중대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연락처를 많이 알게 되었고 전화를 통해 안부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선후배들이 별도의 카페도 운영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전우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예전 전우들을 만나고 싶어도 연락처도 없어 별다른 도리가 없었는데, 블로거뉴스가 20년만에 전우들을 찾아주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은 도움과 영감을 주신 zinicap님, 따뜻한 카리스마님, 해피아름드리님, 머니야머니야님 등 여러 블로거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반갑다, 전우야." "고맙다, 블로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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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는 설날 연휴이다. 그런데 명절 연휴에도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음지에서 고생하는 사람들 덕분일 수 있다.

그래서 설 명절에 안심하고 고행에 다녀올 수 있는 것은 연휴에도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해 고생하는 분들엑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들 또한 명절 연휴를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문득 명절 연휴에도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 직업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 궁금해 찾아봤다.

1. 119 긴급 서비스(소방공무원)
전국의 소방서가 설 연휴 가스를 켜 놓고 출타했거나 전기시설을 차단하지 않아 화재가 우려될 경우 119로 신고하면 안전조치를 대신해 주는 서비스를 해준다. 가스렌지를 켜 놓은 상태로 여행길에 올랐거나 전기·수도를 차단하지 못한 경우, 창문이나 현관문을 잠그지 못한 경우 119로 신고하면 소방공무원이 출동, 안전조치를 대신해 주게 된다.

귀성 중 차량의 고장이나 교통사고시에도 119로 신고하면 가입한 보험회사에 연락을 대신해 주거나 부득이한 경우 119가 긴급출동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또한 귀성길, 집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경우 119로 연락하면 소방공무원이 찾아가 확인하고 응급상황시 조치를 취해주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2. 산림청 비상근무요원
산림청은 계속되는 건조한 날씨로 산불발생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설 연휴기간 전국에 '산불방지 특별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산불방지 비상근무 체계가 24시간 가동된다. 산림청은 설 연휴기간에는 산림청 산불상황실을 통해  24시간 산불 비상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전국 8개 산림항공관리소에는 2~3대의 산불진화헬기가 항시 출동태세를 갖추도록 하고 전국 지방산림청을 비롯한 산림기관에도 산불 비상근무체제를 갖추어 운영한다. 명절에도 특히 산불 조심하자.


3. 정보보안업체
설 연휴를 맞아 안철수연구소를 비롯한 정보보안업체들은 24시간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는데 혹시라도 발생할 지 모르는 신종 해킹이나 바이러스 등의 보안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안철수연구소는 시큐리티대응센터(ASEC)와 침해사고대응센터(CERT)를 중심으로 악성코드 모니터링 및 분석연구원과 침해사고 대응전문가 30여명이 상시 대응한다.

연휴 기간에 신종 악성코드나 오진 사례, 가짜 백신 등이 발견되면, 사용자는 안철수연구소의 웹사이트 내 바이러스 신고센터, 오진신고센터, 가짜백신 신고센터 (http://kr.ahnlab.com/info/customer/virus_call_new_renew.jsp)나 이메일(v3sos@ahnlab.com)로 신고하면 된다. 정보보안업체 이외에도 캡스 등과 같은 물리적 보안업체도 비상근무를 해야 한다. 명절에는 해킹 좀 하지 마라.


4.응급 비상진료 상황실(전화 1339)
연휴 기간 문을 여는 당직 의료기관과 당번 약국 명단 위치·연락처는 중앙응급의료센터 홈페이지(nemc.go.kr)나 당번 약국 홈페이지(pharm114.or.kr), 각 자치단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면 국번없이 '☎1339'를 눌러라. 현재 위치를 말하면 가장 가까운 당직 의료기관을 알려준다. 휴대전화를 이용할 때는 지역번호와 1339번을 함께 눌러야 한다. 가벼운 증상이나 증상 위중도를 잘 모를 때 의사와 상담도 가능하다. 서울시도 연휴기간 비상진료대책상황실(☎02-3707-9133∼4)을 운영하고 120콜센터에서 24시간 당직 병의원과 당번 약국을 안내한다.

5.교통경찰
귀성 차량들이 안전하게 고향에 다녀올 수 있도록 교통 안전을 책임진다. 설 명절은 겨울철이라 추위 속에서 고생해야 하는 교통 경찰의 고통은 심할 것이다. 명절 만큼은 넉넉한 웃음으로 교통 경찰에도 고생한다고 덕담이라고 해보자.

6.전방 군인
155 마일 휴전선을 지키는 군인들은 24시간 경계 근무를 강화해야 한다. 육군 해군 공군 등 전방의 군인들이 더 힘든 시기이다. 명절일수록 부모님과 고향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국토 안보를 지키는 그들이 있어 우리는 명절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나도 군대 시절에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수색대였기에 항상 비상근무에 긴장해야 했는데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이다. 명절인데 매서운 바람 속에서 허리까지 차오른 눈을 치울 때면 절로 눈물이 난다.



7.병원 응급실
병원 응급실은 명절에도 응급환자들을 위해 고생한다. 응급실에는 주로 레지던트와 같은 젊은 의사 초년생들과 간호사들이 배치된다. 남들처럼 명절에 쉬고 싶겠지만 응급환자들을 위해 명절을 반납해야 하는 것이다.

8.비행기/철도/지하철 등 승무원
비행기나 철도, 지하철 등 공공 교통수단의 승무원들은 명절에도 쉬지 못한다. 그리고 버스나 택시 등 운전사들도 명절에도 고생하는 직업이다. 그들이 있어 명절에도 편안한 이동을 할 수 있다.


9.시장/백화점/음식점 등 장사하는 분들
명절에도 시장이나 백화점 그리고 음식점 등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명절에도 고생한다. 명절이 대목일 수 있어 쉴 수가 없다. 그들은 돈을 벌어 좋고 우리는 연휴에도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좋은 것이다. 택배나 배달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쉬지 못할 듯 하다.

10.대한민국 주부들
명절에 쉬지 못하고 가장 바쁜 사람들 중에서 주부들이 단연 최고다. 명절이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편안해지는 것은 대한민국 주부들 덕분이다. 남편들은 연휴 후 아내들의 어깨라도 주물러주자.

[댓글 의견] 명절 비상근무하는 분들
* 차 정비/수리
* 자동차 보험 관련 업무
* 특수 TM 전화 관련 직업
* 발전소 분들
* 관광 안내원
* 파출소/지구대 경찰관
* 성당/교회 사무실
* 톨게이트 근무자
* 사회복지사


언급한 분들 외에도 명절에도 못쉬는 분들 많은 것 같다. 에고, 정리하기 힘들다. 이제 그만 해야 겠다. 명절에는 특히 소외된 이웃들이나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 분들도 생각해보자.
명절인데 비상근무하는 분들에 대해 아시는 분들, 댓글로 알려주세요. ^^
설날 명절 서로 덕담들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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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