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손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24 김대중 손자 김종대, 영정 든 모습 슬펐다 (인생의 교훈과 철학은 남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2. 2009.08.23 김대중 맏아들 김홍일, 눈물의 장례식 감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41)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6일간의 국장으로 엄수됐습니다. 고인의 영결식과 안장식을 비롯한 장례식은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국민들의 심정은 슬픔을 참으며 차분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합니다.

영결식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도 숙연하면서도 엄숙했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던 가족들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남편이자 동지를 잃은 이희호 여사의 슬픔은 어느 누구 보다 컸을 것입니다. 87세의 고령에도 하루 종일, 뜨거운 햇볕과 무더위 속에서 영결식과 운구 행렬, 그리고 안장식에 이르기까지 국장의 모든 절차를 지키고 있는 이희호 여사를 보면서 순간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서울국립현충원으로 향하는 운구행렬 도중 민주주의 상징 서울광장에서 잠시 하차해 운집해있는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사는 "입원기간과 국장 기간에 보여준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신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편은 평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고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고인의 유지입니다.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화해와 용서, 행동하는 양심' 유지 밝히는 이희호 여사의 소망

시민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대중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이희호 여사님 사랑합니다" "당신의 행동하는 양심을 잊지 않겠습니다"고 화답했습니다.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오정해는 자신의 결혼식 주례와 국악을 사랑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상여소리를 해서 시민들을 숙연한 분위기기로 만들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자 김종대 군이 고인의 영정을 안고 걷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바로 손자 김종대였습니다. 손자 김종대는 할아버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참으며 침착하게 운구 의식을 진행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자 종대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쓴 친필 일기에도 손자에 대한 애틋한 애정이 묻어 나오기도 합니다.

[김대중 친필 일기 중에서]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자애로운 할아버지로서 손자를 안고 행복해 하는 김대중 생전 모습]

손자인 종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의 장남으로 1986년생(만 23세)입니다. 김대중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청와대에서 손자를 안고 즐거운 망중한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김대중은 손자인 종대에게 일기에서 "나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다정다감한 시간을 가졌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김대중은 손자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어떤 인생관과 철학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나 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인생과 종교적 믿음의 핵심이 이웃 사랑이라는 핵심 덕목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요즘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판치고 있는 가운데 이타적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김대중은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고 손자에게 삶의 교훈과 원칙을 세워준 할아버지였습니다. 손자에게는 평생 자랑스럽고 찬란한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잊혀지지 않는 손자 종대의 슬픈 눈빛과 김대중이 들려 준 인생의 교훈

김대중은 독재와 불의에는 굴복하지 않고 원칙을 지킨 강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손자와 아이들 그리고 서민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였습니다. 믿음과 인생살이에 있어 이웃 사랑이 가장 중요한 핵심 덕목이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는 손자 종대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철학일 것입니다.
 

 
김대중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통일에의 염원이 무지개 같이 피어오르는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 자유 통일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행동하는 양심"을 이야기했습니다. 깨어있는 우리네 사람들의 몫인 셈입니다. 이 땅에서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이제는 그의 유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 꿈과 과업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손자 종대는 곧 살아가는 역사의 후세들인 우리 모두입니다. 영정을 든 손자의 슬픈 눈빛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손자 김종대 군이 할아버지의 서재에 영정을 올려놓고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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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고(故)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영결식과 운구 의식 그리고 안장식이 국장으로 거행됐습니다. 장엄하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장례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눈물나는 장면도 많았습니다. 

특히 맏아들인 장남 김홍일 전 국회의원의 모습은 감동의 눈물을 심어주었습니다. 김홍일은 파킨슨병으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비록 몸이 불편하더라도 장남으로서 아버지를 위한 책임감과 의지의 발로일 듯 합니다.

사실 김홍일은 아버지의 서거 이후 극도로 쇠약해졌기 때문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 몸 상태가 좋지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김홍일 전 의원은 의사가 극구 만류할 정도로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홍일은 영결식에 참석했습니다.

심각한 몸상태에도 초인적 정신력으로 안장식까지 맏아들 책임감 

김홍일은 영결식 참석 후 몸 상태가 더 안좋아졌습니다. 30도를 웃도는 햇볕과 무더위 속에서 오랜 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파킨슨병을 앓고있는 김홍일에게 무척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김홍일은 심각한 몸상태로 인해 안장식은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버지 김대중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지킨 맏아들 김홍일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홍일은 안장식에도 나타났습니다. 초인적인 의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김홍일은 안장식에서 직접 헌화는 물론 허토 의식에도 참여했습니다. 안장된 관 위에 삽으로 흙으로 덮는 허토 의식까지 참여할 정도로 아버지를 향한 맏아들의 심정은 눈물겨운 장면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영면할 수 있도록 아픈 몸을 이끌고 초인적 정신력을 발휘한 감동의 장면이었습니다.

김홍일은 영결식과 안장식에서 심지어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일어서 헌화를 하고픈 장면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하지만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런 장남 김홍일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과 함께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최근 더욱 수척해진 몸으로 병마에 시달리는 김홍일은 맏아들 노릇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신촌세브란스 병원의 의료진도 만류할 정도였지만 김홍일은 평생 한이 될 수있는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던 것입니다. 아버지 김대중을 위한 아들 김홍일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는 김홍일의 과거와 현재 모습이 안타깝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기 이후 김홍일의 달라진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과거 건장한 풍채는 사라지고 삐쩍 마른 몸과 불편한 얼굴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김홍일은 몸상태가 안좋아 병원에 입원 중인 상황에서도 입원한 아버지 김대중을 위해 3번이나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김홍일은 아버지의 임종 순간에도 "아버지"를 3번 부르며 오열했다고 합니다. 김홍일은 말을 못할 정도였지만 아버지를 향한 모습은 달랐던 것입니다.

고문 후유증 파킨슨병 얻었지만 끝까지 아버지 지킨 아들의 감동

김홍일은 지난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이 발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아버지인 김대중은 억울한 내란음모사건의 누명을 쓰고 사형 구형이 처해지고 아들인 김홍일은 군사정권에 의한 불법 구금과 고문을 받아 허리와 등 그리고 신경 계통을 심하게 다쳤다고 합니다. 지난  군사정권 시절에 얼마나 야만적인 폭력 행태가 벌어졌는지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김홍일은 현재 파킨슨병으로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몸이 마비되고 떨리는 현상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이동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안타까워 했다는 장남 김홍일. 김대중은 큰 아들이 자신을 돕다가 군사정권의 모진 고문과 탄압으로 몸쓸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김홍일은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장남으로서 의젓하게 지켰습니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결코 병원에만 머물 수 없었던 김홍일이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아버지 김대중을 지킨 맏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김홍일에게 많은 국민들은 뜨거운 감동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아꼈다는 손자 김종대 군이 할아버지 영정을 들고 있다
김대중과 아들들 그리고 고난의 가족사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3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이 그들입니다. 김대중은 차용애 여사와 사이에 홍일과 홍업을 낳았으나 일찍이 사별하고 이희호 여사를 만나 홍걸을 낳았습니다. 아버지인 김대중이 정치적 탄압과 고난을 당할 때 아들들도 마찬가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어머니인 이희호 여사는 역경 속에서도 남편이자 동지인 김대중을 뒷바라지하고 혼자서 아들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김홍일은 아무 영문도 모른체 대학원 1학년 시절에 박정희 유신정권의 중앙정보부에 끌려 가서 모진 고문과 온갖 시국사건 누명과 핍박 속에서 고초를 당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도 신군부에 납치돼 엄청난 고문을 당한 이후 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게 됩니다.

김홍업과 김홍걸도 어린 시절을 힘겹게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장성한 후에도 억센 풍파와 맞서야 하는 시대적 아픔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어버지 김대중에게는 효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희호 여사가 남편과 아들들을 지키며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김대중과 이희호 여사 그리고 세 아들들(좌), 병환 중에도 안장식에 참여해 허토하는 장남 김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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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