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3.31 봄의 향연, 도시 아파트와 텃밭 vs 시골 논밭 풍경 by 진리 탐구 탐진강 (50)
  2. 2009.08.05 추락 위험 '트레일러 구출작전' 현장에 직접 가봤더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73)
  3. 2009.05.07 자식위해 평생 불구가 되신 어머님 전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겨울이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의 매서운 강추위가 강타하고 3월 함박눈 폭설과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봄은 끝내 우리 앞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던 고난의 날들을 이겨내고 봄은 대자연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주말농장 텃밭을 살펴보기 위해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족들과 산책 겸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두 딸아이도 올해는 자신들만의 텃밭을 일구고 싶다고 해서 작년 보다 두 배의 텃밭을 계약하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과연 제대로 텃밭에 채소를 재배하고 관리할지 미지수입니다. 처음에 파종만 하고 나중에 잡초제거 김매기를 비롯한 허드렛일은 아빠 엄마의 몫일 될 공산이 크지만 아이들의 꿈과 소망을 들어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주말농장은 어떻게 지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의 전령사와 만나고 있을까 궁금해 텃밭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러면, 봄의 전령사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비닐 하우스 속에는 시금치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전원 식당을 운영하며 주말농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텃밭을 분양해주는 아줌마의 채소입니다.

전원 식당인 멧돼지 전문점의 앞마당에는 잔디밭이 파릇파릇한 새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앞의 사진은 식당 안에 있는 꽃인데 참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텃밭에는 대파와 시금치가 야외에서 그대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텃밭을 갈아줄 농기계가 본격적인 농사 일을 준비하기 위해 텃밭 가운데 서 있기도 합니다.

지나오는 길에 천주교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 텃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단의 아저씨들이 벌써 텃밭의 땅을 파고 거름과 비료를 주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날씨를 보인 날이어서 그런지 야외에는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길가에 있는 고깃집 뒷마당에는 커다란 몸집의 검은색 개가 사납게 노려보며 컹컹대며 짖어댑니다. 살이 포동포동 오른 개인데 개돼지로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요? 마을에 들어서니 아파트 단지의 공원에는 운동기구들이 봄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목련꽃을 피우기 위한 몽우리가 봄의 향연을 먼저 준비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을 이고있는 나무들과 꽃망울이 싱그럽기만 합니다.

아, 벌써 노란 산수유는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한 셈입니다. 다음 주가 되면 산수유는 노란색 꽃으로 아파트를 아름답게 채색할 듯 싶습니다. 

위 사진은 시골 마을에 1월말에 다녀오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논에는 아직 지난 가을에 추수한 추억을 간진한 채 다시 봄이 되어 모내기를 하는 계절을 기다리면서 을씨년스런 자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밭에는 봄나물이 자라고 있고 봄동이라 불리는 배추가 입맛을 돋구며 속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봄의 향연이 펼쳐질 듯 합니다. 이미 소리없이 다가온 봄날이 향기롭고 싱그러운 자태로 우리들 곁에 와 있습니다. 주말에는 도시락을 싸들고 아이들과 함께 야외로 나가 즐거운 식사를 하는 재미도 멋진 추억이 될 듯 합니다. 겨우내 움추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들판으로 나가서 땅도 밟아보고 하늘도 바라보는 유유자적의 시간을 보내는 설레임의 나들이를 느껴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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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산골 마을의 비포장 신작로 도로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산세가 험난해서 낭떠러지도 많습니다. 게다가,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한 모퉁이나 절벽도 많아 차량 운전자들의 시야를 좁게 합니다. 첩첩산중에는 일반 자동차가 다니는 광경도 보기 드문 곳입니다.

그런데, 고추밭에 가족들과 다녀오는 길에 트레일러 차량 두 대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근처에 광산이 생겼는데 거기서 나오는 트레일러(일명 추레라)라고 합니다. 트레일러 한 대는 노란색의 암석 분쇄기를 싣고 이동 중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장면이라 신기했습니다.

고추밭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대형 차량들도 이동하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에 도보로 이동하던 3명의 젊은이들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광산에서 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트레일러가 삼거리 부근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습니다. 삼거리는 부모님이 살고계신 집과 논에서 가까운 바로 인근 지역이었습니다.


▲비포장 도로인 산작로 산길을 따라 여러 트레일러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집에 도착한 후 트레일러 사고 현장에 동생들과 함께 가봤습니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고추밭에서 봤던 트레일러였습니다. 트레일러가 비포장 도로의 모퉁이를 돌다가 뒷바퀴 하나가 걸려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 했습니다. 지반이 약한 도로의 모퉁이 부분은 이미 무너져내린 상태였습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트레일러를 도로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수억원대 트레일러와 암석 분쇄기가 도로가 무너져 절벽으로 추락할 위험에 처해

다음 날 귀경해야 하는데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을까 노심초사 걱정도 됐습니다. 산골 마을의 교통 수단인 버스 운행도 어려워 주민들의 발이 묶일까 우려도 했습니다. 과연 엄청난 무게의 암석 분쇄기를 실은 트레일러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까? 트레일러 사고 현장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사고 현장의 인부에 의하면 트레일러 차량은 전체의 가격이 약 2억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더욱이, 수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암석 분쇄기도 싣고 있어 만일 트레일러가 낭떠러지로 전복했다면 엄청난 손실을 당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일단 트레일러가 전복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스런 일인 것입니다.

▲육중한 무게의 대형 트레일러가 암석 분쇄기를 싣고 낭떠러지로 추락할 위험에 처했다.

얼마 후 크레인 한 대가 사고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광산에 마침 일을 하러 왔던 크레인이 있었는데 사고가 나자 곧바로 달려온 것입니다. 크레인은 도로에 차량을 고정시키는 장치를 견고하게 부착했습니다. 크레인으로 차량을 끌어올릴 때 엄청난 무게로부터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후, 크레인 차량은 기중기 역할을 하는 상단 타워 부분을 한 바퀴 돌려 사고 트레일러에 강력한 철근 로프를 묶었습니다. 전봇대의 전깃줄을 피해 크레인을 트레일러와 고정시킨 것입니다.


▲크레인을 지지대로 고정시킨 후 트레일러 사고 차량의 후미와 연결해 끌어올릴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크레인이 사고 트레일러 차량의 후미를 공중으로 살짝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육중한 트레일러 대형 차량이 쉽게 들어올려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트레일러 차량은 놀랍게도 낭떠러지에서 조금씩 벗어났습니다. 크레인은 몇번에 걸쳐 조금씩 도로 위로 트레일러를 위치 이동시켰습니다. 아래 사진을 통해 크레인이 육중한 무게의 트레일러 차량을 들어올려 도로 위로 옮기는 장면을 차례로 보시기 바랍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

▲크레인이 육중한 무게의 트레일러 사고 차량을 끌어올려 조금씩 도로 위로 옮기는 장면.

크레인은 트레일러 대형 차량은 안전한 도로 위로 끌어올려 옮긴 후 로프를 풀었습니다. 그 후 크레인은 다시 처음의 위치로 상단 타워를 원위치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습니다. 트레일러가 낭떠러지로 추락하지 않을 것도 다행이지만 신속히 트레일러 사고를 수습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근처 광산에 크레인이 당시 하루동안 일하러 오지않았다면 트레일러 구출은 당장 힘들었을 상황이었습니다. 천만 다행인 것입니다.


▲크레인은 트레일러를 끌어올려 도로 위에 안전하게 안착시킨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로가 정상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살펴보니 삼거리 사고 현장에는 여러 차량들이 집결해 있었습니다. 광산에서 온 듯한 유조차도 있었고 요즘 볼 수 없는 소위 딸딸이로 불리는 트럭도 보였습니다. 이 또한 산골에서는 신기한 장면이었습니다.


▲트레일러 사고 도로 현장에는 위험 표시줄을 설치했고 인근에는 유조차와 딸딸이도 출동했다.

트레일러 사고는 지반이 약한 도로가 무너지면서 생긴 일입니다. 좁은 비포장 도로를 주행하는 트레일러의 무게가 약한 도로의 지반과 만나면서 무너진 것입니다.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인명 사고나 트레일러 차량의 파손도 없이 신속히 사고가 해결됐습니다.

사고는 신속히 해결했지만 산골 오지의 도로 보수 및 주민 편의시설 확충 필요해
 
사고 현장에서 트레일러를 구출하고 여타 사고를 신속히 방지한 것은 행운도 있었지만 광산 관계자들이 사고 발생 즉시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애쓴 것을 더 칭찬할 만 합니다. 만일 사고를 방치했다면 다른 차량들의 이동은 물론 주민들의 불편이 컸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광산 현장의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신속한 조치는 평가받을만 합니다.

그러나, 비가 자주 오는 여름철 비포장 도로는 언제라도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산골 마을의 주민 편의를 위해 비포장 도로는 철저한 보수공사가 필요합니다. 사고 인근 도로가 꺼져 있거나 다리도 흔들거리는 상태였습니다. 아직도 50년전 비포장 신작로 도로가 그대로 존재하고 도로 보수 공사가 안돼 지반이 무너지는 위험에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길은 군데군데 자갈밭이고 푹 파인 물웅덩이가 도로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정부는 물론 전남도와 장흥군은 산간 오지의 주민들을 위한 도로 및 편의시설 확충에 적극 나서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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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칠순이 다 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십니다. 호랑이같은 아버지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어머니는 청춘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자식들은 대도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막내 남동생이 가까운 도시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곤 합니다.

그러나, 장남인 제가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십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신 다리로 평생 산골에서 힘든 농사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제게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불행하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사연과 혼자서 저를 키운 새색시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까마득한 두메산골입니다. 아직도 온통 산으로 뒤덮인 고향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다닐 정도로 산골 오지입니다. 부모님은 산골 외딴집에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만큼은 시골 집에 동생들 가족들과 일정을 맞춰서 함께 가곤 합니다.

어머니는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이셨고 아버지는 초등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지난 1960년대는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던 시절에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을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알려진 벌교에서 지냈던 분으로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신혼 시절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기피한 상태였는데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해 헌병대에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헌병대를 피하기 위해 초가집의 흙벽을 무너뜨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 후 아버님을 몇년 동안을 도시에서 숨어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군대에 간 후 사망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군대 기피가 많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머니는 새색시가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땔감을 구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시골집은 초가집이었고 나무 땔감으로 밥을 짓고, 소꼴을 베어 소를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기도 가스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녁엔 방에 호롱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혼자서도 힘든데 홀몸이 아닌 상태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소까지 키워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겹게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열심히 밭 일을 하다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밭에서 일을 끝내고 머리에는 소꼴을 가득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길가에 뻗은 칡넝쿨에 걸려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넘어지던 중 머리에 인 소꼴에서 낫이 떨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낫은 어머니 앞에 날이 선 상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예리한 낫의 날에 닿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어머니는 무릎의 힘줄이 끊기는 대형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할 병원도 없었습니다. 곁에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몸이다보니 칡넝쿨에 걸려 균형을 잡지 못한데다 낫을 피하지 못해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임신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몸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봐 못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어머니는 다시 농사를 짓고 혼자서 저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갓 결혼 후 남편도 없이 무려 5년을 그렇게 농사도 짓고 저를 키웠던 것입니다. 저는 아가 시절을 마당이나 밭을 기어다니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마당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닭과 함께 놀고, 밭에서는 지렁이가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도 일을 하고 계시고, 밭에 가서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저의 유년 시절은 밤낮으로 어머니 밖에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호롱불 밑에서 제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5살 때 처음 어버님이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저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만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오신 후에도 집안 일은 하지않고 한량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싹텄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마음의 화해가 어느정도 되었고,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과거와 달리 농사 일이나 집안 일도 했습니다.

제 나이가 5~6세 정도일 때도 저는 동네 아이들과 산에 올라가 고사리 손으로 나무를 하곤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오직 어머니 일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의 일을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시절에도 방학 동안 내내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돕는데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 때부터 어머니 혼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왜 다리 하나가 불편하게 되셨는지 얘기를 처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어머니가 다리를 절면서 걷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것이 모두 제 탓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보면, 그 젊은 시절에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참고 이겨냈는지 가슴이 아프곤 합니다. 제가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생각하는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벼가 익어가는 여름 날, 논둑을 걸으면서 저에게 하신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어머님은 소중한 등불과 같았습니다. 제가 방황하거나 잘못 가려하면 언제
나 등대처럼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다리가 잘리는 듯한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디셨습니까. 그리고 홀로 저를 어떻게 키우셨나요.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만 하셨습니다. 특히 홀로 키웠던 저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유년시절의 기억 마저 희미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주 연락도 못드려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은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어머니의 귀중한 가르침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언제나 힘을 주시는 어머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뵙겠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큰 데 건강 조심하세요.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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