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18 술취한 남친 부축해 여관행, 엄마에 발각 by 진리 탐구 탐진강 (36)
  2. 2009.06.06 이정희 의원 VS 서청원 대표, 단식의 차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5)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곧 자신의 생일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선물로 반지를 하기도 했다고 말하는 눈치가 올해는 그냥 넘어가지 말라는 압력으로 느껴집니다. 벌써 결혼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으니 예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합니다. 선물을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저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 이해가 안갈 때도 있습니다.

과거 1990년대 어떤 남녀의 연애 시절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젊은 남자와 여자의 첫 만남 이후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우연히 알게 된 여자와 첫 눈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여자를 만난 이후 매일 저녁 늦게 남자는 그녀의 집 앞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에 없었던 것이 남자는 늘 야근이 많았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장소는 호프집이었습니다. 여자의 집 앞에서 멀지 않은 대로 변에 있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남자는 벌써 1차 술기운이 가득한 채 나타나곤 했습니다. 저녁에 회사 업무차 만나는 일정이 많았던 남자는 1차에서 대충 마무리하고 자리를 빠져 나왔던 것입니다. 그 당시는 저녁에 회사 업무 술자리에서  선배들을 피해 몰래 빠져 나오는 일이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회사 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매일 저녁 여자를 만나러 나타났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위해 매일 그런 노력을 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습니다. 여자는 매일 저녁 마다 그녀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남자가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는 회사 1차 술자리에서 무리했는지 만취한 상태에서 그녀의 집 앞 호프집에 나타났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업무상 술자리에서 사람들을 따돌리기 위해 그 날을 사람들과 소주를 과하게 마셨던 것입니다. 아직은 저녁 10시 정도지만 남자의 몸은 흐느적 거릴 정도였습니다. 남자는 여자 친구를 만났다는 안도감이었는지 호프 한 잔을 마시고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자가 남자 친구를 깨워서 집에 보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조차 없었습니다.



호프집 탁자에 엎드려 있는 남자 친구를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는 할 수 없이 남자 친구를 근처 여관에 재우기로 했습니다. 남자를 겨우 부축해 큰 길 건너 여관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방에 남자가 곤히 잠자는 모습을 뒤로 하고 여관을 곧바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 였습니다. 여자가 집에 들어오자 엄마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엄마와 마주쳤습니다. 역시나 찬 바람이 감돌았습니다. 여자는 영문을 몰라 하루 종일 회사에서 엄마의 행동이 왜 그럴까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퇴근해 엄마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엄마, 왜 그래? 왜 어제 저녁부터 나만 보면 차갑게 그래."
 "몰라서 묻냐? 너 어제 저녁에 뭐했어?

"어제 저녁에 뭐하기는...???"
"어제 저녁에 어떤 놈팽이하고 어디 갔어? 여관에 왜 갔어?"

"아, 그거. 남자 친구가 너무 취해서 인사불성이라 여관에 재우고 나온 거야. 아무 일 없었어. 오해하지 마."
"내 딸이 이럴 줄 몰랐다. 그 놈팽이랑 계속 사귈 거냐?"

"그건 내 남자 친구잖아. 엄마가 왜 그래."
"술먹고 몸도 못가누는 놈팽이가 뭐가 좋다고. 아이고."

[잠깐!] 여러분이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남자 친구와 만나면서 어느 정도 호감이 간 상태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남자 친구를 자주 가던 호프집에서 만났다. 남자 친구가 만취해 스스로 걸어갈 수도 없다. 인사불성 상태로 잠이 들어 버렸다. 남자 친구를 깨워도 도저히 일어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호프집에서 마냥 남자가 깨기 만을 기다리기는 늦은 시간이다. 남자 친구는 현재 몸상태도 안좋거니와 집이 멀고 길이 좋지않아 차를 태워보내기도 어렵다. 남자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
1. 남자 친구가 깰 때 까지 계속 기다려 본다.
2. 남자 친구를 그냥 놔두고 집에 가버린다.
3. 남자 친구를 근처 여관에라도 재워두고 집에 간다.

그 날 이후 여자는 엄마와 사이가 더 나빠졌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셋째 딸이 어느 놈팽이와 눈이 맞은 것이 어머니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여관 골목으로 만취한 남자를 부축해 들어가는 자신의 딸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관으로 향하는 딸과 남자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여자의 집 앞 대로변에 약국이 있었습니다. 여자의 어머니는 약국집 주인과 친해서 가끔 저녁에 거기에 머물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약국에 앉아있다가, 자신의 딸이 만취한 남자 친구를 부축해 길 건너 여관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던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 친구와의 만남을 못마땅해 하는 엄마와 신경전은 계속 됐습니다. 여자는 식사 마저 거부하며 단식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당신의 딸이 그런 남자와 만나는 것이 가슴아팠습니다. 가장 아끼는 셋째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기를 기도했는데 엄마가 본 현실은 냉혹했던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남자와 사귀는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과연 남자와 여자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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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모 지하철 무가지를 보니 친박연대의 광고가 실려 있었습니다. "잔인한 정치보복, 친박연대만 당했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해 다른 정당을 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였습니다.

친박연대의 광고에서는 '서청원 대표가 2007년 대통령 경선 때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정치보복이다' '촛불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이 서청원 대표 상고심의 재판장에 선임된 것은 사법살인 증거이다' '정치검찰과 일부 언론이 합작한 정치살인이다' 등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최근 친박연대는 상당히 억울한 심정으로 감정을 토하는 듯 합니다. 친박연대의 서청원 대표를 비롯한 3명의 의원이 동시에 의원직 박탈은 물론 구속 수감된 상태이니 고통스러운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나 친박연대의 호소에 언론에서는 그다지 귀기울여주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친박연대의 광고는 울분과 분노의 감정도 묻어나는 듯 합니다.  

친박연대의 광고 '진인한 정치보복, 친박연대만 당했습니다."

서청원 대표는 옥중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친박연대의 당사에서는 일부 당직자들도 단식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비례대표 공천 대가로 특별당비를 받은 혐의로 수감 중인 서청원 대표는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와 대법원 판결이 "명백한 정치 탄압과 잔인한 정치 보복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친박연대의 결백을 주장하는 단식인 셈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창당의 근간인 박근혜는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조문 정국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한 것과 상통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또 다른 단식의 현장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4일부터 대한문 앞에서 민주주의 자유 회복과 이명박 대통령의 강압통치 사과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여성 의원이 6월의 폭염 속 길거리에서 단식 농성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 만큼 현재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이정희 의원은 모 언론 인터뷰에서 "들끓는 민심에도 귀를 막고 시민을 범죄자로 대하고 일체의 반성도 사과도 없는 현 정부의 독선에 숨이 막힌다"고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MB악법을 들먹이는 작태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정희 의원의 대한문 앞 단식 현장에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방문했다(사진 청지기님)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의 단식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단식은 이명박 정부의 강압통치에 대한 반대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점도 많습니다. 서청원 대표가 자신의 결백과 정치보복의 희생양인 점을 호소한 반면 이정희 의원은 민주주의의 기본권과 자유가 압살되고 있는 강압통치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정치적 지향점도 다르고 현실적으로 처한 상황 인식이 다르기 때문으로 이해하는 선에서 세부 분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단식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여러 날 단식을 계속 할 경우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단식은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커다란 분수령을 이룬 사건들도 종종 등장하곤 했습니다. 1980년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무기한 단식을 감행한 김영삼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은 독재 세력과 3당 합당의 야합으로 민주화에 오명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단식이 등장하던 시절은 항상 민주주의가 위협받던 시기였습니다. 올해 6월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듯이 민주주의 위기라고 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해야하는 시대가 다시 반복된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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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