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0.08.03 재벌 이익은 중소기업 피눈물" 하청 직원 만나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8)
  2. 2010.06.27 퇴폐적 노출 응원녀와 상술 마케팅 판친 월드컵, 꼴불견 베스트5 by 진리 탐구 탐진강 (22)
  3. 2009.09.16 정신병원 입원한 직장인과 갑을 노예계약 '앵벌이' 한국사회 by 진리 탐구 탐진강 (72)
  4. 2009.07.29 100원 양말, 눈물의 폐업정리 '100원의 기적' 꿈꾸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63)
  5. 2009.07.21 돌아와 여보 vs 선영아 사랑해, 티저광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4)
  6. 2009.07.19 여자친구가 맞선본다 했다, 어떡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70)
  7. 2009.01.20 회사는 왜 무능한 상사들을 그대로 방치할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삼성전자 직원의 방문이 왕의 행차 같았습니다. 하청업체 직원은 머리 조아리고..."
"삼성전자가 최대이익을 냈는데, 하청업체는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매년 원가절감 명목으로 협력업체 쥐어짜기로 돈을 뜯어갑니다."

삼성전자의 재하청업체 직원인 지인 A씨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들입니다. A씨는 삼성의 하청도 재하청도 해봤지만 올해들어 '하청업체 쥐어짜기는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아침 원청업체를 방문해 인민재판처럼 품질개선계획서를 발표해야 하는 것은 고역이었습니다. A씨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지고 수면제없이는 잠을 잘 수도 없을 정도가 됐고 몸무게는 심각할 지경으로 줄었습니다.

얼마 전,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이 발표된 바 있습니다. 사상 최대 5조원의 이익입니다. 삼성은 이익이 대부분 부품과 해외 부문에 많고 고환율 정책의 수혜가 아니라고 강변했습니다. 실제 삼성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기사화한 언론이 많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하청업체 중소업체들은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중소 하청업체들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 삼성 홍보기사를 쓴다는 것입니다. 황당한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입니다.

삼성의 쥐어짜기에 수면제없이 잠도 못자는 하청업체 직원의 눈물

작년에도 삼성이 최대 이익 잔치를 했지만 B 하청업체는 대량 손실을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거래를 끊고 생존할 수 없는 구조라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삼성의 단가인하 압력에 매년 응해야 했습니다. B하청업체는 삼성식으로 재하청업체들을 쥐어짰습니다. 삼성전자 직원이 하청업체 방문은 곧 왕의 행차 또는 저승사자의 왕림으로 비추어질 정도였습니다.

나이가 환갑에 가까운 B 하청업체 사장이 삼성전자 과장 또는 차장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삼성식 행태는 재하청업체에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B업체 대리가 재하청 C중소업체 사장과 관리자들의 상전이었습니다. 갑이 삼성이고 을이 B하청업체, 병이 C재하청이라는 먹이사슬구조인 셈입니다. 삼성 직원이 C업체에 품질관리를 문제로 방문하는 날은 그야말로 초죽음입니다. 사단장이 일선 부대를 방문하면 사병들이 청소하고 난리가 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네티즌 D씨는 "삼성의 원가절감이란 첫번째로 협력업체부품단가 몇%로 깍는 게 연초의 목표입니다"라며 삼성의 부품의 이익에 대해서도 중소 하청업체의 피와 땀이라고 밝혔습니다. 삼성이 LCD 등 부품에서 이익이 발생했기에 세트와 달리 하청업체 쥐어짜기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웃기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삼성의 부품은 협력업체들의 부품과 장비로 만드는데 삼성전자에서 장비 발주와 같이 납품단가 인하는 매우 심하다는 것입니다.

삼성이 2분기에 장비 발주금액을 얼마에 했는지 변화추이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전 세계적으로 다 알고 있는 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허리가 휘는 협력업체에게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엔화 상승으로 허덕이는 장비업체들의 장비발주 금액은 바닥을 헤메다 못해 하청업체는 죽음 일보 직전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매년 정해진 퍼센트(%) 만큼 단가를 낮춰야 하는게 중소 협력업체의 처참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부품에서 이익도 중소협력업체의 장비 발주 납품단가 후려치기의 산물

그렇다면 세트 부문에서 중소 하청업체 쥐어짜기는 더 심하다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E씨는 '삼성 효자 종목이라는 휴대폰 부품 중소 협력업체들 실적을 보면 얼마나 치졸하게 단가 인하 압력을 했는지 실적을보면 한눈에 보입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의 네고 결재 앞에 치를 떨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한국 대기업-중소기업 수직 하청구조의 부끄러운 현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원자재가 가격이 올라도 납품가는 계속 내리고 엔화나 달러가 강세여서 부품가격이 폭등을 해도 남품 단가는 계속 낮아지고...모든 위험요소와 손실원인은 협력업체에게 뒤집어 씌우고 자신들은 매년 넘쳐나는 이익으로 연봉 만큼의 성과금을 받아가는게 삼성입니다. 천안에서는 탕정이 바빠지면 문닫는 협력업체가 늘어 난다는 웃지 못할 진실이 있습니다."

삼성을 잘 아는 F씨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최대 기업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책임이 더 클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이 도덕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대기업은 아닌 듯 합니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협력업체 후려치기와 같은 비판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프렌들리를 하던 정부의 갑작스런 변심이 진심인지 모를 일입니다. 친서민 정책의 허구성을 알기 위해서는 정부의 언행일치가 맞는지 최종 정책과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대차 등 여타 제조 대기업들도 중소 하청업체 쥐어짜 이익 빼앗기 극심해

우리나라 대기업 직원수는 100만명도 안되지만 중소기업은 1천만명이 넘습니다. 우리나라 일자리 창출과 고용의 대부부은 중소기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로 모든 경제구조가 짜여져 있을 정도입니다.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보니 대다수 하청업체의 희생을 강요하고 대기업은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가장 쉬운 하청업체 쥐어짜기만 골몰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대기업 노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 노조를 귀족노조라고 하듯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골몰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청업체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주장을 경영진과 노조 협상에서 말은 하지만 결국 최종 합의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기업 노조가 철저하게 집단 이기주의에 매몰돼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같은 노동자이지만 대기업 노동자가 하청 업체 노동자를 낮춰보는 시각입니다. 노동자의 계급사회인 셈입니다. 물론 노조도 없는 삼성은 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하청업체 쥐어짜기는 삼성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다른 제조 대기업도 똑같습니다.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도 죽을 맛입니다. 삼성전자와 유사한 단가 후려치기나 하청업체 쥐어짜기로 겨우 목숨만 유지하는 수준입니다. 하청업체가 이익이라도 내면 당장 단가 인하 압력이 들어오니 이익도 못내고 직원들 입에 풀칠할 정도의 유지만도 감지덕지해야 합니다.

대기업 하청을 잘 알고 있는 G씨의 이야기입니다.
"매년 원가절감(CR)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쥐어 짜다시피 뜯어갑니다. 그러나 중소 하청업체 근로자 임금이 대기업들하고 차이가 많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울산 현대차에 납품하는 업체의 경우 CR 주지 않는다고 오더를 주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협력업체 생산라인에 일하는 근무자는 매년 생산량을 늘여야 하는 구조입니다. 근무자는 과도한 업무량에 허덕이고 임금은 줄어들고 원가절감은 원청 자체에서 하여야 함에도 협력업체에게 떠넘깁니다. 이런 구조를 정부가 모를까요? 알고 있지만 손을 쓰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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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한국팀이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초 목표로 했던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주장 캡틴 박지성을 중심으로 한 한국팀 선수들이 이룬 쾌거였습니다.

한국팀의 선전에 밤을 새워가며 응원전을 펼친 국민들은 그 동안 행복했습니다. 비록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2대1로 패배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한국인의 투혼을 세계만방에 과시한 경기였기에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박지성, 김남일, 이운재, 안정환, 차두리, 이영표 등 고참 선수들은 은퇴를 하거나 다음 월드컵에는 참가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 마지막 월드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이들 선수들에게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차두리의 눈물은 아마도 마지막 월드컵을 끝내야 하는 아쉬움과 더불어 최선을 다한 경기였기에 그 동안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안타까움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태극전사들에게는 조국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응원에 대한 감사와 보답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선수들의 눈물에 이심전심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월드컵의 감동은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월드컵이 남기고 간 뒤안길에는 상업주의와 퇴폐적 자본주의로 물든 꼴불견도 많았습니다.

대기업의 무차별 애국심 마케팅과 붉은악마의 순수성 상실

대기업이 장악한 광장은 순수 붉은악마가 아닌 마케팅도구로서 전락한 현실이 있었다


이번 월드컵에는 유난히 대기업의 마케팅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게다가 붉은악마가 대기업 마케팅 상술의 도구가 되어 스폰서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순수성이 생명인 붉은악마 응원이 대기업 마케팅의 도구로 전락해 응원가마저도 길거리 응원 장소마다 달랐습니다. 대기업 마케팅이 도를 넘어 순수성을 훼손하자 아예 대기업이 없는 장소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적어도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길거리 응원이나 2006년 미국 월드컵은 순수한 자발성이 응원의 중심이었습니다. 서울광장을 비롯해 길거리 응원에 나선 사람들은 오직 한국팀의 응원에 하나된 목소리로 자발적 참여를 했습니다. 지난 2006년 꼭짓점 댄스를 배우기 위해 열풍이었던 것도 상업성이 아닌 자발적 참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대기업 광고나 응원가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았습니다. 자발성이 아니라서 거부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길거리 응원전이 지나간 자리의 쓰레기 누가 치우나?

길거리 응원이 지난 자리에는 심각한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았다


여전히 시민의식이 실종된 모습은 바로 길거리 응원이 끝난 후 쓰레기 더미였습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었습니다. 일부 시민들이 쓰레기 치우기에 나서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즐겁게 한국팀을 응원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의 자리는 스스로 치우는 시민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제 우리도 선진 시민의식과 질서의식이 필요할 때 입니다.

스포츠기획사와 닮은 SBS의 단독중계와 돈벌이 수단화

방송3사 합의를 통해 월드컵 등 스포츠 빅이벤트를 공동으로 중계하려던 움직임은 상업방송에 의해 좌절됐다


세계인의 축제 그리고 국민적 스포츠 빅이벤트인 월드컵을 이용해 돈벌이 수단화하는 방송사의 횡포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물론 FIFA라는 거대 스포츠마케팅 집단이 자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남아공 월드컵을 단독중계하기 위해 비싼 금액을 지불하며 국부 유츌은 물론 국민들의 보편적 시청권을 강탈한 SBS의 행태는 퇴폐적 자본주의의 진면목을 보는 듯 했습니다.

스포츠기획사와 다를 바 없는 SBS의 노출 모습은 국민들에게 돈독이 오는 상업방송으로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당초에는 일반 식당의 응원마저도 돈을 받으려고 공문을 보낼 정도였다고 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물론 소규모 식당이나 호프집은 제외됐지만요. 국민들이 하나의 방송사에만 의존해 월드컵 시청을 하다보니 좀 더 다양한 월드컵의 묘미를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SBS가 아예 축구 스포츠 전문채널처럼 방송 프로그램을 운영해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의 월드컵 열기 이용한 정략적 행태 여전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태극기 태극문양이 가꾸로 잘못 그려진 것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이다


스포츠와 정치의 역학관계는 예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들의 스포츠 열기를 이용한 애국심 마케팅이 도를 넘는 것 같습니다. 그 곳에는 대기업의 애국심 마케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앞장 서 월드컵 마케팅에 편승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길거리 응원전에 직접 나가서 태극기를 흔들 계획도 세웠다가 경호 문제로 실현되지는 않았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순수해야 할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하겠습니다.

노출녀 응원녀와 같이 연예계 진출의 무대로 삼은 월드컵 마케팅은 어느 때 보다 논란이 많았다


노출 응원녀들의 퇴폐적 마케팅, 때와 장소도 못가리나?

태극기를 거꾸로 매단 월드컵 응원녀들의 문제도 있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마도 응원녀들의 마케팅이 아닌가 싶습니다. 벗기 위해 안달난 노출 응원녀들의 모습은 차가운 눈초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응원녀들이 순수 일반 응원단이 아닌 연예기획사들이 만든 인위적 작품이라는데 문제가 많았습니다. 월드컵 열풍을 이용해 한번 떠보기 위한 무대가 된 셈입니다.

특히나 똥습녀 속옷녀로 대변되는 응원녀의 장면은 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똥습녀의 태도는 더욱 어이없었습니다. 국민 정서나 상식과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벗고 다니겠다는 몰상식한 생각은 또 다른 퇴폐적 자본주의의 씁쓸한 사례였습니다. 태극기를 거꾸로 달고 나온 응원녀도 있었습니다. 기본 소양도 없이 연예계 진출의 교두보로 월드컵을 이용하려는 모습으로 비추어졌습니다. 물론 길거리 응원에 나선 대다수는 순수한 열정으로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가족 단위도 많은데 때와 장소도 가리지 못하고 노출증 환자처럼 옷을 벗어 제낀 일부 응원녀들의 모습은 꼴불견의 진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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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월드컵의 감동을 뒤로 하고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갈 시간입니다. 아직 월드컵 결승까지 여러 경기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광장에서 목청껏 '대~한 민국'을 외칠 일은 없어진 것입니다. 월드컵 열기에 묻혀 소외된 이웃들은 없었는지 주위를 둘러보는 배려도 필요할 것입니다. 권력자나 기득권층이 월드컵 열풍을 이용해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를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월드컵이 지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꼴불견은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월드컵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서민들의 팍팍한 삶의 현장을 개선해 주지도 않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들이 냉혹한 현실과 맞서 이겨내야 할 문제들입니다. 월드컵 꼴불견은 여전히 우리들 삶의 문제인 셈입니다. 월드컵 감동은 간직하되 불굴의 투지로 냉혹한 현실을 깨우쳐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월드컵에 느꼈듯이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역동적 민족의 기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현실도피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삶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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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앵벌이하러 갑니다."
어느 직장인이 자신이 돈버는 일을 비하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불량배의 부림을 받는 어린이가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을 버는 짓, 또는 그 어린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앵벌이는 구조적 모순의 조직사회에 나타나는 병폐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고 복종시키는 상명하복의 조폭문화나 약육강식의 정글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느 직장인이 사용한 '앵벌이'라는 단어는 곧 돈벌기 위해 힘들게 생활하는 자신의 처지를 대변합니다. 
우리사회에는 앵벌이를 조장하는 악습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갑과 을의 문화입니다. 이는 수평적 관계가 아닌 갑이 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노예처럼 부려먹는 것을 말합니다. 을이 갑에게 반항하면 바로 죽음일 뿐입니다. 갑의 부당한 대우로 인해 아무리 치사하고 아니꼽더라도 을은 참아야 합니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금융기관에 파견나가서 근무하던 중소 IT기업의 직장인(이하 을A)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입니다. 사연인즉, 을A는 갑인 금융기관에서 전산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갑은 언제나 잡스런 일로 시키고 밤샘작업은 예사가 아니었습니다. 정작 갑은 모두 퇴근해 버리고 혼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갑과 을의 문화는 현대판 노예제도인가?

그 정도는 참을만 했습니다. 그런데 식사시간에도 늘 혼자만 내버려두고 가버려 왕따였습니다. 심지어 식사시간에도 일을 시켰습니다. 갑의 사적인 심부름을 을에게 시키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게다가 뭔가 전산에 문제라도 생기면 갑은 모든 책임을 을에게 전가하면서 온갖 욕은 다 했습니다. 을A는 온갖 수모를 참았습니다. 을A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매일 시달렸습니다. 그러다 결국 을A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 후 갑은 을을 다른 업체로 바꿨습니다. 을은 대학생 알바를 갑에게 파견했는데 그는 일주일도 안되서 무단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에게는 도저히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나 봅니다. 사람 대접 받을 수 없는 악질 갑이었던 셈입니다.

갑이 을을 노예처럼 대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어느 날, 어떤 시상식 행사장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또 다른 IT기업의 직장인(이하 을B)을 만났습니다. 갑이 수상을 하게 됐는데 을B가 꽃돌이로 온 것입니다. 갑이 요구사항이랍니다. 이 정도라면 갑은 을을 노예나 종처럼 부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갑이 부르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하는 것이 을의 신세입니다. 갑의 전화 한 통에 일년 365일, 24시간을 울고 웃어야 하는 을의 일상입니다.

여기서 갑은 을의 도움을 받고 일하는 상황입니다. IT 전산 관련 일은 주로 대기업 및 정부기관과 중소기업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갑인 대기업과 정부기관과 을인 중소기업의 종속관계인 셈입니다. 그런데 갑과 을이 결국 서로 같은 일을 하는 IT 전산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일로 보면 같은 처지의 갑이 을을 종부리듯이 다룬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자신도 을의 처지를 잘 알텐데 말입니다. 조폭 행동대장처럼 되어버린 현실입니다.

대기업은 IT서비스 책임추궁 악습 끊어라

문제는 책임소재입니다. 대기업의 IT자산을 담당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늘 사고가 생기면 책임 추궁을 당하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기 위해 을에게 책임전가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기업 경영자들이 문제가 많습니다. 경영자들이 투자는 제대로 하지도 않고 모든 사고의 책임을 IT부서에게 묻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기업 IT부서도 을에게 가혹한 일을 시키고 책임을 전가하는 악습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재벌 대기업들은 자체 IT서비스 기업을 만들어 계열사의 IT 전산시스템 관련 일을 합니다. 그런데 IT서비스 업체는 계열사 일을 하다보니 재벌 기업에서는 을의 신세가 되고, IT 서비스 업체는 중소 IT업체들의 갑이 됩니다. 따라서 중소 IT업체들은 말단 을이나 병이 되어 버립니다. 대기업 IT서비스업체(SI업체)도 을의 입장인데 중소기업에게는 갑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병에게 푸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금융기관도 IT자산이 많고 돈을 다루는 곳이다보니 슈퍼 갑입니다. 그래서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중소 IT기업은 고양이 앞의 쥐 신세입니다.

그래서 을A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꽃돌이가 된 을B와 같은 사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연예계 노예계약 문제가 최근 사회문제화된 적이 있습니다. 노예계약은 연예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앞에서 언급한 IT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도 자주 나타나기도 합니다.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에서는 갑과 을의 노예계약을 못하게 하지만 실제 점검을 하지 않아 실제 비즈니스 관행에서는 여전히 노예계약이 성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는 갑과 을의 노예계약 공화국?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모 언론에 소개된 또 다른 기업의 사례입니다.

어떤 기업 영업직에서 일하는 홍모(33)대리는 얼마 전 한밤중에 경춘국도를 달려야 했다. 밤 11시에 고객 회사 직원이 “춘천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고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3시였어요. 우리 제품을 사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 무조건 잘 보여야하니까요.”

국내 모 제약회사에 다니는 양모(29) 주임의 주말은 빡빡하다. 약국을 상대로 일하는 그는 주말마다 약사 자녀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이나 공원에 간다. 약사 자녀가 해외연수를 떠나면 공항에 데려다 주기도 한다. 약국에서 유리창 닦고 쓰레기 버리는 것은 일상에 가깝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과 을의 모습들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입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왜 저렇게 비참하게 직장생활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마누라와 자식이 있는 처지에서 직장을 때려치고 나오기가 쉽지 않는 인생의 비애일지 모릅니다. 을이 갑이 되면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을이 갑이 되면 더 심하게 을을 다루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대기업의 조직문화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입니다.
 

                      연예계 노예계약 문제로 대두된 동방신기의 모습이 우리 사회 현주소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협업하는 관계라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상대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는 적습니다. 대기업은 자신의 서비스를 높여주는 것이 중소기업이나 아웃소싱 업체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아웃소싱 중소업체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편리한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은 중소기업의 서비스를 공부해 스스로 적용하려 하고 고마워한다고 합니다. 서로를 동반자의 관계로 인식합니다. 책임 전가의 대상이 아니고 스스로 품질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 값을 지불하고 중소기업 도움을 받아 노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이나 미국으로 국내 소프트웨어 인력이 빠져나가는 일이 왜 생기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중소기업 프렌들리가 서민 중도실용 경제

원천적으로 보면 IT의 문제는 특정 전산부서의 문제는 아닙니다. IT를 하는 사람들이 천대받는 우라나라의 사회경제적 경향이 문제입니다. IT는 찬밥, 아닌 버린 밥 신세인지 오래 됐습니다. 세계적인 IT강국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IT 핵심부품이나 소프트웨어는 외국에 대부분 의존하는 무늬나 껍데기만 강국입니다. 그리고 현 정부 들어 IT를 천시하고 있으니 대기업이나 중소기업도 IT를 천시하는 악순환입니다.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도 IT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사고의 책임만 묻기 보다는 기업의 가치를 증진시켜주는 업무로 인식해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로만 상생을 외치지 말고 중소기업을 진정한 동반자로 인식하고 실제 실행을 해야 합니다. 대기업 회장들이 모이면 말로만 '상생'이라고 하는데 정말 실천으로 보여주기 바랍니다.

정부도 '대기업 프렌들리'가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종사하는
 중소기업들의 어려운 현실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요즘 서민들을 위한 중도실용을 내세우는 정부인데 서민들은 바로 중소기업입니다. '중소기업 프렌들리' 없는 서민경제 실현이 가능할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진정 서민들을 위한다면, 서민들을 앵벌이 일꾼으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겠습니다.


[참고] 더보기는 데브피아에 실린 '개발자 떡실신 시리즈'인데 웃자고 올리는 것인데 인생의 비애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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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정리 마지막" "눈물의 폐업정리" "양말 100원" "무조건 500원"
길거리를 걷다보면 간혹 눈에 띄는 문구들입니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멀쩡한 물건이나 상품들이 길거리에서 100원, 300원, 500원 등 헐값이 팔리고 있습니다. 폐업에 따라 재고로 남게 된 상품을 한 푼이라고 건지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입니다.

얼마 전 길거리가 가다가 한 매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장사 끝, 폐업정리 마지막"

커다란 종이 박스에 손으로 쓴 글씨였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종이 박스 마다 의류 상품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박스에 붙은 가격표는 '단 돈 100원'이었습니다. 박스에 붙은 300원 짜리, 500원 짜리도 보였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다소 놀랐습니다. 아무리 불경기라고 하지만 실제 100원에 물건을 내놓아야 하는 기업이나 매장 주인들의 마음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매장 주인에게 몇 마디 물어봤습니다.
"물건이 이렇게 싼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 중소기업들이 망해서 재고처리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싸게 팔아도 괜찮습니까?"
"저희 매장도 한 달만 운영해요. 잠시 빈 매장을 빌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매장은 부도난 기업의 땡처리 재고상품을 파는 일종의 소매상인 셈입니다. 그리고 매장도 한 달 동안 임시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기존 매장 주인이 폐업을 한 가게에 새 주인이 나타날 때 까지 일정 기간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그냥 빈 공간으로 놔두기 보다는 땡처리 매장을 잠깐동안 임대해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듯 합니다. 폐업을 한 가게 공간에 한 달 동안 폐업 상품들을 파는 매장이 들어선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냥 물건만 구경하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신사양말 500원'이라고 쓰여진 박사를 살펴보니 상품이 괜찮아 보였습니다. 양말 두 켤레를 샀습니다. 주인이 봉지에 넣어주려고 해서 '그냥 들고 가겠다'고 매장을 나왔습니다. 사실 비닐봉투 가격도 포함하면 남는 것이 없는 장사같아서 차마 봉지에 넣어달라고 말하기 미안했습니다. 집에 와서 양말을 살펴봤더니 그런대로 쓸만한 상품이었습니다.

어쩌면 매장도 부도로 인해 폐업한 중소기업의 물건을 대량으로 들여다 박리다매로 싸게 파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를 일부 땡처리업자의 마케팅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우리네 서민들의 어려운 현실이라는 상징적 측면에서 어려워진 서민경제에 대해 이해를 하고자 합니다. 이는 곧 부자와 서민 사이의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폐업정리되는 악순환의 현실을 접하게 되어 마음이 쓸쓸했습니다.


경기침체로 매장을 정리하는 자영업자들이 멀쩡한 재고품을 팔려고 내놓고 있다

서민 경제를 살린다고 정부는 말하지만 실제 재벌 대기업과 부자들만 살 판이 난 정책만 펼치고 있습니다. 말과 실제 정책이 다른 거짓말만 하는 셈입니다. 서민 행보를 한다고 사진만 찍는 위정자의 모습을 보면 위선자의 모습만 떠오를 뿐입니다. 한 줌도 안되는 권력을 위해 서민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현장을 보면 이기적 이중인격자들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눈물의 폐업정리를 하는 중소기업들도 크게 늘고 있어 현실은 암담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상반기에 엄청난 이익을 거뒀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체감적으로 일반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호황인지 모르지만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더욱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은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낮추고 있어 대기업은 이익을 늘리지만 중소기업은 더욱 힘들어지는 구조입니다. 대기업도 궁극적으로 중소기업과 중산층이 탄탄해야 결국 건전한 발전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100원의 양말은 아직은 100원의 기적을 꿈꾸는 마지막 희망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장사끝 폐업정리 마지막'은 다시 희망을 쏘기 위한 시작일 수 있습니다. 희망은 얼어붙은 서민들의 마음부터 녹아내릴 때 부터입니다. 길거리에 나붙은 폐업정리라는 문구가 앞으로 "희망의 신장개업"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희망은 서민들의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이 바로 100원의 기적입니다.

[추가] 이 글의 요지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이 몰락하고 폐업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서민경제가 어려운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희망을 잃어가는 서민들이 다시 일어서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만  아마도 여기서 등장하는 매장은 땡처리업자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만일 땡처리업자라 하더라도 일반 아파트 주변에서 어려운 서민경제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100원에 내몰린 양말이 상징하듯이 우리나라의 서민 경제 상황이 좋지않습니다. 그 100원의 양말은 바로 중소기업 그리고 자영업을 하는 일반 서민들의 상징이나 다름없습니다. 100원은 곧 최악의 경제불황에 내몰린 서민의 모습이란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100원의 폐업 위기가 아닌 100원의 기적으로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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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특이한 광경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무심코 길거리를 걷는데 젊은 남녀가 플래카드를 들고 횡단보도에 서 있었습니다. 가두 시위를 하는 것인가 순간 생각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플래카드의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젊은 남녀가 들고있는 플래카드에 적힌 내용을 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클*베 사줄께 돌아와 여보"

잠깐 생각한 것은 어떤 과자이름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장면을 휴대폰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몇일 동안 잊고지내다가 휴대폰 사진을 발견하고 '클*베'가 뭔지 검색을 해봤습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가정용품 회사의 신제품 브랜드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줄께'는 '사줄게'가 맞춤법상 맞는 표현입니다. 어느 기업인지 맞춤법도 틀리게 한 것은 무성의한 광고라는 비판도 받을 듯 합니다.

길거리에 젊은 남녀가 "클*베 사줄께 돌아와 여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다

한편으로 '돌아와 여보'라는 일종의 광고 카피를 보면서 문득 스쳐가는 광고가 떠올랐습니다.
"선영아 사랑해"

지난 2000년 상반기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광고 카피였습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당시 수많은 '선영이'를 가슴설레게 했던 사랑 고백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선영아 사랑해'라는 내용을 본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의 소행인지 궁금증을 유발했습니다.

지난 2000년 당시의 '선영아 사랑해' 티저광고 모습

당시 언론에서는 "서울 등 대도시의 육교와 지하철 역 등에 일제히 나붙은 '선영아 사랑해'라는 여섯 글자의 현수막 광고는 4·13 총선 선거용, 혹은 선영이라는 여성을 쫓아다니는 스토커의 소행 등으로 오인돼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이때 선관위는 이 현수막이 특정 후보를 홍보 또는 음해하려는 것이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웠고, 대학가 등에서는 선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에게 전화와 e-mail이 쏟아지기도 했다는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어떤 남자가 선영이라는 여성에게 프로포즈 이벤트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는 일종의 티저광고 또는 게릴라 마케팅의 일환일 수도 있습니다. 티저광고는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메인 광고에 앞서 실시하는 광고의 형태입니다. 올해들어 KT가 '쿡(Qook)'이란 브랜드를 내놓기 전에 실시했던 "집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광고가 티저광고의 일환입니다.

'선영아 사랑해'의 광고는 결국 여성 포털사이트 마이클럽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마이클럽이 오픈을 앞두고 실시한 티저광고였던 것입니다. 마이클럽은 버스광고와 옥외광고를 통해서 50억이 채 안되는 예산으로 800억 이상의 광고효과를 보았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만큼 광고가 파격적이고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이클럽은 광고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해당 사이트 자체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KT가 올해 선보인 '집나가면 개고생이다' 티저광고 장면

어쨌든 마이클럽은 신선한 티저광고의 효과 만큼은 확실히 챙겼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기업이 마이클럽을 흉내낸 티저광고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이클럽이 보여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올해 KT의 '집나가면 개고생'은 티저광고의 효과를 다시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개고생'이란 단어의 어감이 불쾌하고 대기업이 청소년들의 언어습관을 나쁘게 조장한다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티저광고를 보면서 경제가 어렵다보니 자극적이고 튀는 광고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영아 사랑해'는 그래서 신선한 면도 있었지만 '집나가면 개고생'은 다소 자극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클*베 사줄께 돌아와 여보'는 직접적인 광고 느낌이 더 드는 것 같습니다. 아예 상표명을 광고에 포함했으니 순수 티저광고라기 보다는 게릴라 마케팅을 접목한 시도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티저광고를 보면 과거 '선영아 사랑해'에서 보여준 신선함 보다는 자극적인 상업성과 얄팍한 상술이 너무 부각되면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에게 유익하고 품질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가장 큰 기업의 사명과 목표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경제가 어렵지만 모두에게 희망과 힘을 주는 시대 정신을 기대해 봅니다.

<블로그 이웃 소개(2)>
아름다운 블로그 이웃들과 멋진 새내기 블로그를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은 두번째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블로깅하는 분들입니다.

행우니님 http://icahn.tistory.com/ 버스 기사님으로 우리 생활 속에서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블로거입니다. 늘 밝은 생각과 미소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엔시스님 http://www.sis.pe.kr/ 보안 전문 블로거이신데 최근 DDoS 대란 때에도 보다 안전한 인터넷 세상을 위해 애쓰신 분입니다. 보안의 생활화를 위한 멋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위 블로거님을 방문해 따뜻한 인사 한 마디라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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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연애나 결혼에 있어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친구의 약 20년전 이야기입니다. A군은 군복무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A군은 머리를 식히고 싶었습니다. 잡자기 어디론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역으로 가서 야간 기차를 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입석표였습니다. 빈좌석에 무작정 앉았습니다. 기차 창밖으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A군이 앉아있던 좌석의 곁을 한 여자가 잠시 주춤하다가 지나갔습니다. A군은 좌석의 주인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당돌한 직장 여자와 대학 복학생, 기차에서 만나다

조금 후 지나갔던 한 여자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창밖을 보고있던 A군에게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모...르겠는데요."

A군은 앉았던 자리 옆의 책가방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놨습니다.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몇학년?"
"삼~ 삼학년"

"몇학번?
"팔육 학번"

"나랑 같은 학번이네. 난 B양이야. 우리 친구하자. 넌 이름이 뭐니?"

당돌한 B양이었습니다. A군은 B양이 당돌하고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무뚝뚝하던 A군은 B양의 나긋나긋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A군과 B군의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둘 다 기차 입석표를 샀는데 좌석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A군과 B양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B양은 기차가 대전역 부근에 도착하자 우표 5개를 핸드백에서 꺼냈습니다.
"난 여기서 이제 내려야 해. 넌 의무적으로 나에게 우표 5개 만큼 편지를 해야 해."
"알았어. 잘 가"



서울의 A군과 대전의 B양은 그 후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A군은 학보가 나오면 편지를 함께 넣어 보냈습니다. B양은 자주 편지를 학교로 보냈습니다. 직장인이었던 B양은 주말에는 A군이 공부하던 대학 도서관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B양은 식사를 사주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A군의 B양의 호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자신이 B양에게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A군은 4학년이 되었습니다. B양은 서울에 올 때 마다 A군이 공부하던 도서관에 나타났습니다. B양은 A군에게 늘 용기를 주는 말을 했습니다. A군은 B양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시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A군이 노리던 정부투자기관 입사에 실패했습니다. A군은 입사를 하면 B양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군은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기관에 도전해야 했습니다. A군은 B양에게 미안했습니다. B양은 A군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A군은 대학 졸업 후에도 백수였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던 정부투자기관 시험에 낙방 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실시된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B양이 대전에 잠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B양은 직장을 그만 두고 유치원을 개업하기로 했는데 개업 준비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던 A군은 B양의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과 부잣집 딸의 슬픈 이야기의 결말은?

그런데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 위해 A군이 가보니 B양과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친척 동생들이 와 있었습니다. A군은 쑥스러웠지만 열심히 일을 거들었습니다. 저녁에는 B양의 남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B양과 저녁에 데이트를 했습니다. B양은 말을 꺼냈습니다.
"나 내일 선본다."
"그래."

B양이 선본다는 말에 A군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아직 백수인지라 B양을 위해 뭐라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B양은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B양과 남동생에게 별도로 아파트를 얻어주었습니다. 그 날 밤 A군은 B양의 남동생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A군은 대전역으로 갔습니다. A군이 떠나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역 앞에서 B양은 다시 말했습니다.
"여기 근처에서 선보기로 되어 있어."
"그렇구나. 좋은 사람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A군과 B양은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A군은 자신의 초라한 처지가 슬펐습니다. 그래서 B양의 맞선을 단념시키지도 못했습니다. A군은 서울에 올라 와 모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습니다. 대기업은 가기싫었지만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그 후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려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군에게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 우편물은 B양의 결혼식 청첩장이었습니다. A군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B양은 그 당시 선본 남자와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B양이 선본다고 했을때 붙잡지 못한 자신이 후회되었습니다. 아직 백수인 자신의 입장에서 B양에게는 불행할 수도 있어 B양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직하면 B양을 다시 만날 것이라 다짐했었던 것입니다.

A군은 곧바로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날이 B양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결혼식 장소가 수원이었습니다. A군의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A군은 퇴소식 날 고민했습니다. A군의 연수원 버스는 수원역에 내려주었습니다. B양의 결혼식을 곧 앞두고 있었습니다. A군은 결국 B양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운명은 그렇게 A군과 B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A군과 B양은 왜 결혼할 수 없었을까?
남자는 직장을 먼저 구해 여자친구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선보다는 것이 단지 미팅 정도로만 다소 가볍게 잘못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맞선본다는 고백이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해달라는 마지막 요청이었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자존심 상 초라한 자신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맞선본다고 했을 때 붙잡았어야 했지만 남자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그러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일구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적극적이고 당돌한 모습에 다소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한 남자와의 결혼이 사랑이 먼저일 것이지만 결국 현실 앞에 나약해질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바라보는 맞선의 차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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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경영컨설턴트인 구본형 씨가 쓴 글을 하나 읽었다. '회사는 왜 무능한 상사들을 그대로 방치할까?'라는 주제이다. 글의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어서 더욱 관심을 갖고 읽게 됐다. 구본형 씨가 쓴 <구본형의 더 보스, 쿨한 행동>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실 나도 직장에서 중간 간부이다보니 상사의 입장도 되고 부하 직원이 되기도 한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직장 상사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대개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상사의 고충도 이해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팀원들이나 다른 후배 직원들에게 어떤 상사로 비추어질까 자기 성찰도 하게 된다.

구본형 씨의 이야기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무능한 상사들을 아예 '쓰레기'라는 다소 저급한 표현을 쓴 것은 아쉽다. 흑백논리식의 이분법적 표현은 지금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양자택일의 대결 구도로 현상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 상사 중에는 쓰레기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사원 대리 시절에 나의 관점에서 나쁜 상사로부터 괴롭힘과 업무 과다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에 원형탈모가 생긴 적도 있으니 말이다.
 
과거 9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 기업문화를 보면 군사문화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직적인 조직구조 하에서 상명하달식 업무 처리 중심이다보니 다양성이 설 자리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일부 대기업이나 제조업에서는 군대식 문화가 상존하기도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개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수평적 문화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기존의 군사문화 속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지금과 같이 수평적 자율문화가 자리잡은 시대에 중간 관리자로서 생활한다는 것은 소위 샌드위치 세대, 즉 '낀 세대'로서 혼돈스럽기도 하다. 윗 사람들도 잘 맞춰야 하지만 아랫 사람들의 분위기도 맞추어야 하는 시대적 비애를 안고 산다. 선배 세대가 누렸던 고도 성장의 시대에 절대 권한을 누려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개성과 자율의 문화를 만끽해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시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중간 관리자로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후배 직원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당장 보기에는 무능한(?) 후배들도 성공과 발전을 위해 함께 가야 할 동료이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회사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태만하고 무능한' 관리자는 적절한 전환 배치 또는 좌천 등 인사 조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갱생(?)의 기회와 퇴출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방법도 좋다고 본다. 내가 관리자를 위한 변명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실 관리자도 사원부터 많은 노력과 성과를 있었을 것이다. 절대 무능하고 태만한 관리자가 떵떵거리는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런 회사는 이미 망했어야 할 기업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오늘도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 직장인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한다. 기업에서 선배 후배 모든 동료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서로 발전하는 회사 생활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유토피아는 없다.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기에 서로 서로를 배타적 대결 구도가 아니라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존중과 배려 속에서 상호 발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직장은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부터 실력있고 훌륭한 관리자가 되도록 더욱 공부하고 노력해야 겠다. 

그러면 구본형 씨의 글 전문을 소개해 본다. 기업 마다 다르겠지만 내용이 참고가 될 만한 회사라면 해결책을 모색해 봄 직하다.

회사는 왜 '무능한 상사들'을 그대로 방치를 해둘까?
 
 쓰레기 같은 상사들이 기업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그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2가지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이 2가지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2가지 중 하나는 경영자의 의도적 배치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회사의 무책임한 방치 때문이다.
 
 의도적인 배치는 경영자가 충성도를 기준으로 중간관리자를 통제할 때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경영자가 회사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야비하고 증오심이 강하지만 맹목적인 충성심을 가진 저질 중간관리자들을 필요한 자리에 정치적으로 포진시킨다. 이는 히틀러가 친위대와 비밀경찰을 육성했던 방법이다. 이런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빨리 나와 다른 회사를 찾는 것이다. 상사를 바꾸기보다는 회사를 바꾸는 것이 쉽다.
 
 맥킨지의 에드 마이클스는 무능력하고 나쁜 관리자들에 대한 인사조치가 빨리 내려지지 않은 결정적 이유를 이렇게 봤다. 즉, 경영진들이 지난날 회사에 공헌을 했던 사람들이나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해고하거나 좌천시키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란 얘기다.
 
 그런 사람들의 경력 전체를 놓고 보면, 과거에 이들이 회사에 공헌을 많기 했기에. 지금 이들이 태만하고 무능력해도 괜찮다고 경영자들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태만하고 무능력해도 회사 경영자들이 묵인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쁜 관리자들은 당연히 재배치하거나 해고해서 조직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런 당연한 결정을 뒤로 미루는 것은 경영자의 무능이다.
 
 경영자가 조직에 대해서 가져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동료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못하고 기대되는 성과도 못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존심을 잃어 가면서 계속 일을 하게 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이는 인간에 대한 불경이다. 동시에 이는 경영자의 직무유기다.
 
 무능력한 중간관리자들을 다루지 못하는 경영자는 똑같이 무능력한 사람이다. 이는 경영자의 실패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나쁜 쓰레기 같은 상사들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절차는 간명하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서, 정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재빨리 한 단계 낮은 직위로 좌천시키거나 다른 부서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때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기준이 있다.
 
 첫째 나쁜 상사가 원하는 일이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주려는 성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치 못한 역할은 신통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먼저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제대로 된 자리를 배정해주는 게 좋다.
 
 둘째 중간관리자를 강등시킬 때에도, 가능하면 그들이 권위와 위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홈 디포(미국 최대의 주택자재 및 인테리어 관련 제품 유통업체)' 같은 회사는 지역관리자를 점포관리자로 강등시킬 때에 강등당한 이들의 과실이 새로운 부하직원들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한다. 이를 위해 강등당한 이들은 대개 새로운 지역으로 발령를 낸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경력을 쌓는 것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회와 함께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게 좋다. 그래야 성공율도 높다. 경영자가 확고한 기준과 의지를 가지고 부적절한 중간관리자에게 좌천이란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또한 적합한 프로세스을 통해서 다시 좋은 성과를 내는 중간관리자로 복귀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결과는 없다. 그러나 계속 해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팀워크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면 해고시키는 방법 외에는 달리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기업이 좋은 관리자를 양산하지 못하고, 쓰레기 같은 상사를 제재하는데 실패하면 직장은 지옥이 된다. 성과는 바닥을 칠 수 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 인재는 떠나고 회사는 문을 닫게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쓰레기 같은 상사들을 관리하고 격리하는 건 조직에게 주어진 커다란 과제다. 쓰레기 같은 상사가 주요 보직을 차지하다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경영자는 권력의 비밀을 깨달라야 한다.
 
 <말은 부드럽게 하되 몽둥이는 큰 것을 들고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원래 아프리카 속담이다.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매우 좋아한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을 가장 미국적인 스타일로 다시 표현한 사람은 바로 1920년대 시카고 암흑가를 휘어 잡았던 <알 카포네>다.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상냥하게 말만 하는 것보다는, 무기를 손에 들고 상냥하게 말을 할 때에,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나폴레옹 역시 권력의 비밀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벨벳 장갑 속에 숨어 있는 ‘철의 손(권력이나 힘을 뜻함 )’에 따라서 움직인다>
 
 차갑고 냉정한 철의 손이 있어야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 물론 철의 손은 늘 벨벳 장갑을 끼고 있어야 한다. 부드러워야 사람들을 모을 수 있어서다. 냉정함도 필요하다. 그래야 신통치 않은 사람들과 훌륭한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다.
 
 쓰레기 같은 상사가 판을 치지 않게 하려면 경영자가 먼저 변해야 한다. 충성과 감시의 메카니즘으로 조직을 통제하는 대신에 능력과 열정을 갖고서 조직을 이끌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 쓰레기 같은 상사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해야 한다.
 
 쓰레기는 쓰레기를 낳는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이내 또 다른 가해자로 변한다. 경멸, 멸시, 분노가 전 조직에 산불처럼 퍼지게 된다. 조직 전체가 나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이다.
 
 회사가 쓰레기 같은 상사에 대한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는 동안, 이 쓰레기들이 주는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직원들이 입게 된다. 이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3가지다.
 
 -회사를 떠난다.
 -지옥이라도 참고 견딘다.
 -쓰레기 같은 상사에 대항하며 나를 지킨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만 이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어느 조직이나 갈등과 긴장과 모욕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때에는 참아야 하고 어느 때에는 참아서는 안 되는가를 아는 것이다. 참지 말아야 할 때에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호소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제 쓰레기 같은 상사로부터 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호신술을 한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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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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